청평군 사당 김공 중수기
「서경(書經)』에서 "공적을 기록하여 종중의 사람들이 공신(功臣)으로써 대제사를 거행하였다."라고 하였으며, 이것이 후대에 공신의 사당이 일어난 원인이다.
우리나라의 광주(廣州) 백운산(白雲山) 아래 사천(沙川)으로 불리는 마을에 빛나는 사당이 있다.
사당은 산의 양지쪽을 향하고 있는데, 새롭게 한 사람들은 청풍김씨의 여러 현명한 자손으로, 선조 청평군 부조묘(不祧廟)를 위하여 다시 고친 것이다.
16대손 상직(相稷)은 감독한 공이 지극히 크고, 상학(相鶴)이 부지런히 일한 것도 빛날 것이다.
15대손 표영(杓永)이 내게 중수기를 써 주기를 부탁하여 이미 수락하였으므로, 매우 노력하여 글을 짓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공의 휘는 우증(友曾)이시고 자(字)는 희여(希輿)이시며, 고려시중 대유(大猷)공이 그 시조이시고, 부친은 사재감(司宰監) 첨정(僉正) 극함(克諴)공이시다.
공은 자태가 훌륭하였으며, 일찍이 육예(六藝)에 통달하고 말타기를 잘하며 활쏘기에 뛰어났다.
성품이 강직하여 의롭지 않은 일은 하지 않았다. 남이 예의에 벗어난 것을 보면 비록 고관대작이라도 반드시 꾸짖었다. 남의 선행을 들으면, 비록 짐꾼과 행상이라도 반드시 선양하였다.
무과에 발탁되어 선전관(宣傳官)에 임명되었다. 하루는 연산군이 대궐의 뜰에서 말을 달리려고 하자, 공이 재갈을 잡고 간언하여, 명천현(明川縣)으로 보임되었고, 계속하여 또 갑자사화(甲子士禍)로 조상의 제사가 거의 위험해졌다.
공이 마침내 중종(中宗)을 받들어 추대하여 바로잡아 다스려 정상으로 회복시켰다. 진실로 어지러운 나라를 태평하게 다스린 공훈으로 제3등에 위치하였다.
밖으로는 동래현령(東萊縣令)과 정주목사(定州牧使)를 지내고, 조정으로 들어와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가 되었다.
그러나 사이사이에 날조된 함정에 빠져서 권세를 잃고 이리저리 다녀서 크게 현달하지 못하였다.
영조 임술년(1742)에 병조판서 겸 청평군에 추증되고, 불천위의 대상이 되는 의전을 하사받으니, 대체로 특별한 은혜였다. 공이 일찍이 시를 지어 "말 잘하고 아첨 잘하여 많은 복을 누린 것은 이미 드러났지만, 충성하고 신의를 지켜 일신을 그르치는 것을 누가 알까?"라 하였다.
공이 작위와 봉록을 바라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비록 공에게는 인색하였으나 후대에는 크게 발전하여, 가문이 오래도록 영화를 누려서 청풍김씨의 거대한 문벌이 되었으니. 착한 사람에게 복을 주는 하늘의 도리가 여기서 검증되지 않았는가?
지금 풍속이 바뀌고 세상이 변하여 예의제도가 이를 따라서 혁신되었으나, 여러 현명한 후예가 사당을 세우는 것은 마음이 아직도 옛것을 지키려고 있는 것이다.
쌓고 수리하여 사당이 다시 새로워졌네.
정성을 들이고 공경하여 제사가 아름답고 훌륭하다네.
오르내리는 조상의 영혼이 계시다면, 웃지 않아도 크게 기뻐하시리라!
『시경』에서 "자자손손, 폐지하지 말고 조상의 제사를 영원히 유지하라!"고 하였다.
내가 감히 여러 현명한 후예를 위하여 찬송문을 지었다.
단기 4317년 갑자년 6월 모일
서울대학교 도서관 규장각 해제위원 안동후인 권양섭이 삼가 짓다
18대종손 회덕이 삼가 쓰다
청주 집의종중 휘 효백파 14대손 춘용이 바치다
16대손 상직이 감독하다
清平君金公祠堂重修記
書曰記功ⓐ,宗以功作元祀,此後世功臣廟之所由起也,吾邦之廣州白雲山ⓑ下沙川之里有奐乎,廟面陽ⓒ而新之者淸風金氏諸賢,爲其先淸平君不祧廟ⓓ而重修之也。十六代孫相稷甫監董ⓔ之功至大,相鶴甫之勤勞亦著矣,旣洛十五代孫杓永普屬余以記楣語ⓕ,甚勤有不敢以不文辭,公諱友曾字希輿高麗侍中大猷其始祖司宰ⓖ僉正ⓗ克諴其父,公奇偉ⓘ之姿,早通六藝⑨,善騎善射,性剛直不犯非義,見人過差ⓙ,雖高官大爵必斥焉,聞人善行,雖擔夫敗竪ⓚ必揚焉,擢武科,拜宣傳官ⓛ,一日燕山主欲馳馬殿庭ⓜ,公執鞚諫出,補明川縣ⓝ,繼又甲子禍ⓞ作宗祀ⓠ幾危矣,公遂與成朴諸公翼戴ⓡ恭僖王ⓢ撥亂ⓣ而反之正,寶丙寅之靖國ⓤ勳而公居第三等也,外歷東萊縣令定州牧使,入爲僉知中樞府事,然間遭誣䧟ⓥ蹭登ⓦ不大顯,至英廟ⓧ壬戌贈兵判兼淸平君,賜不祧典ⓨ,盖特思也,公甞有詩曰,巧令ⓩ己見求多福,忠信誰知誤一身,公之不俯仰於爵祿①,可知也,雖然嗇乎公者,乃大發干後,門戶赫舄②,爲淸風氏之巨閥,福善③之天,不於斯驗乎,今風移世易,禮制隨草,而諸賢裔肯構之心猶夫昔焉,乃築乃修,廟字重新,以誠以敬,籩豆孔嘉,陟降如在之灵,其不含笑而悅䂊⑤矣乎,詩曰,子子孫孫,勿替引之⑥,余敢爲諸賢裔頌焉
檀紀四三一七年甲子六月日
서울大學敎圖書館奎章閣解題委員安東后人權亮燮謹記
十八代 宗孫 喜德 謹書
淸州執義公宗中諱孝伯派 十四代孫 春容 獻納⑦
十六代孫 相稷 菫役⑧
주석 :
ⓐ 記功,宗以功作元祀(기공, 종이공작원사): 출처는 『서경,주서,낙고(書經,周書,洛話)
ⓑ 백운산(白雲山): 지금의 의왕시에 있는 백운산.
ⓒ 面陽(면양): 산의 남쪽이나 물의 북쪽을 향하다.
ⓓ 부조묘(不桃廟): 불천위(不遷位) 제사의 대상이 되는 신주를 모신 사당.
ⓔ 監董(감동): 조선 시대, 국가의 토목 공사나 서적 간행 따위의 특별한 사업을 감독하고 관리하기 위하여 임명하는 임시직 벼슬, 여기서는 감독하다.
ⓕ 楣語(미어): 현판의 글. 여기서는 중수기(重修記),
ⓖ 사재감(司宰監): 어물 육류 식염 소목 거화 등에 관한 일을 담당한 조선시대 관청.
ⓗ 첨정(僉正): 정3품 당하아문(堂下衙門) 중에서 시(寺) 원(院) 감(監) 등이 붙은 관서에 소속된 관직으로 종사품.
ⓘ 奇偉(기위): 기록하고 장대하며 아름답다. 기이하다. 훌륭하다.
ⓙ 過差(과자): 예의에 벗어나다. 분수에 넘치다.
ⓚ 撫夫販竪(담부판수); 짐꾼과 행상.
ⓛ 선전관(宣傳官): 조선 시대, 선전관칭(宣傳官廳)에 속하여 형명(刑名, 형벌의 이름),
계라(啓蝶, 나들이할 때 악기를 연주하는 일) 및 부신(符信, 둘로 쪼개서 증표로 삼는 물건)의 출납을 맡았던 무관직(武官職), 품계는 정삼품부터 종구품까지 있었다.
ⓜ 殿庭(전점): 대궐의 뜰,
ⓝ 명천현(明川縣): 함경북도 남동부에 있는 현.
ⓞ 갑자사화(甲子士禍): 1504년 갑자년에 연산군(燕山君)이 연산군의 생모 윤씨가 폐위(廢位)되어 사약을 받고 죽은 일에 관계한 신하들과 윤씨의 복위(復位)를 반대한 사람들을 학살한 사건
ⓠ 宗祀(종사): 조상의 제사.
ⓡ 翼載(익대): 받들어 추대하다.
ⓢ 恭僖王(공희왕): 조선 11대왕 중종(中宗, 재위 1506-1544).
ⓣ 撥亂(발란): 바로잡아 다스리다.
ⓤ 靖國(정국): 어지러운 나라를 태평하게 다스리다.
ⓥ 誣陷(무함): 날조하여 함정에 빠트리다.
ⓦ 蹭登(충등): 권세를 잃고 이리저리 다니다. 길을 잃다.
ⓧ 英廟(영묘): 조선 21대왕 영조(英祖, 재위 1724-1776).
ⓨ 不繞典(부조전): 불천위의 대상이 되는 의전(儀典)
ⓩ 巧令(교령): 교언명색(巧言令色), 남에게 잘 보이려고 그럴듯하게 꾸며 대는 말과 알랑거또는 태도,
① 爵祿(작): 작위와 봉록,
② 赫舄(혁석): 오래도록 영화를 누리다.
③ 福善(복선): 착한 사람에게 복이 온다.
④ 邊豆孔嘉(변두공가): 출처는 송나라 진종(眞宗, 재위 968-1022)의 사(詞) 「고종교사전요조형태묘삼십수(高宗郊祀前廟朝享太廟三十首」, 변두(邊豆)는 제사와 연회에 사용하는 예의용 그릇으로, 대나무로 만든 것이 변(邊)이고, 나무로 만든 것이 두(豆)이다. 변두는 제례의식을 가리키기도 한다. 공가(孔嘉): 매우 아름답고 좋다.
⑤ 悅線(열선): 기뻐하다.
⑥ 子子孫孫,勿替引之(자자손손, 물체인지): 출처는 「시경, 소아, 곡풍지십, 초차(詩經,小雅·谷風之什,楚茨)」체(替): 폐지하다. 인(引): 연장하다. 이러한 조상에 대한 제사를 길이 행하다.
⑦ 獻納(헌납): 바치다.
⑧ 董役(동역): 지도하고 단속하다. 감독하다.
⑨ 六藝(육예):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이며, 이는 각각 예학(예법), 악학(음악), 궁시(활쏘기), 마술(말타기 또는 마차몰기), 서예(붓글씨), 산학(수학)에 해당한다고 여겨진다.
번역자 약력
※ 성 명 : 김현용(金賢容)
※ 생년월일 : 1966년 4월 8일
※ 학 력 :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학사(1989년 2월),
연세대학교 문과대학원 문학석사(1991년 8월)
※ 번 역 서 : 중국의 종이와 인쇄의 문화사, 共譯,
연세대학교출판문화원, 2013년.
※ 전 화 : 010 2658 7768
※ 이 메 일 : swtaoyua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