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모에 오랜만에 쓰는 글인데.. 더러운 썰 가져와서 죄송해요.
요즘 학교에 재미진 일도 많고, 이것저것 벌린 일도 바쁘다보니 서사모 교직일기가 제 마음속 한구석에 자갈돌같이 덜그럭거렸는데 말이에요. 오늘 있었던 일은 글로 쓰지 않고는 못배기는 그런 일이라, 이곳에 남겨봅니다.
개인적으로는 방귀라는 단어는 너무 진짜같이, 생생하게 느껴져서 일상생활에선 잘 안쓰구요...
방구의 어감이 그나마(?) 귀엽게 느껴져서 꼭 써야한다면 방구를 종종 쓰곤 하는데 아무래도 교직일기이니 제목에는 바른 말을 써야할 것 같지요?
오늘은 수요일도 아닌데 급식이 아주 맛있게 나와서, 보쌈고기(선생님은 더 많이 주심)와 맛있게 적당히 익은 김치(김치도 애들 먹는 것의 두 배로 주심) + 들기름 막국수(우리 반 어린이는 밥 칸이 아니라 반찬 칸에 나와서 속상하다고 하였습니다.)까지 남길 메뉴가 하나도 없었어요.
특히 오늘 점심시간은 "학교 급식이 집밥보다 맛있어요. 공짜밥이잖아요! 그리고 남이 해주는 음식이 제일 맛있어요~" 같은 말을 소곤소곤 해주는 옆자리 어린이와 키득거리기도 하고, 돌아보며 학생들의 잔반량을 확인하시는 영양선생님께 몰래 엄지를 치켜올리기도 하는, 별다른 사고 없이 이 정도면 아주 교양있게 식사하는 어린이들을 바라보며.. 내 식사에 집중할 수 있는 아주 만족스러운 급식시간이었습니다.
아무튼! 사건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5교시 수업시간에 벌어졌습니다.
벌써 6월이 되었는데ㅠㅠ 저는 이제 6학년 1학기의 두 번째 주제를 나가기 시작했답니다. 비교적 진도가 느린 편이라 조금 쫄리지만 그래도 재밌어보이는 경제금융연구회의 교육자료가 있어서 잔뜩 인쇄해왔지요. 1960년대부터 시작하여 신문 기사를 읽어보면서 어떤 회사에 투자해야 자본금을 늘려나갈 수 있을지 게임 활동을 통해 우리나라 경제 발전 과정을 알아보는 그런 야심찬 수업이었어요.
지난 시간에 배운 내용을 언급하며 복습을 하는 와중에 갑자기 교실 뒷편에서 5~6명의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내가 분필로 판서하는데 웃어..?'
종종 떠드는 까불이 한 두 명은 차치하고서라도, 수업시간에 집중 잘하는 똘똘이까지도 키득대고 있기에 일단 화는 좀 눌러두고, 대체 무슨 일이냐며 왜 수업시간에 웃고있는지 캐물었습니다.
내용은 "ㅇㅇ이 물건이 바닥에 떨어져서 그걸 줍는데 방귀소리가 났다"는 것입니다.
여긴 6학년 교실이고, ㅇㅇ이는 남학생 중에서도 가장 키가 큰 편에 속하는(어쩌면 가장 빠르게 사춘기를 맞이한 것 같은) 어린이입니다. 그래도 여학생이 아니라서 이 상황이 차라리 다행이라고 할까요? 짧은 순간 머릿속에 이걸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이어지더군요. 생리현상이 반 친구들 앞에서 공개된 상황.. 순간 아찔했습니다.
예민해질 수도 있을 것 같은 문제는 초기에 진화한다! 저는 아무렇지 않게 오히려 과장하면서 말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13살이 교실에서 방귀를 뀌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음)
"서얼마! 스어얼마! 우리 ㅇㅇ이가 진짜 방귀를 뀌었겠냐~~~~"
"의자 끄는 소리가 절묘하게 난거겠지~~~~"
제가 일부러 더 과장된 목소리로 웃자고 말했으니 눈치보던 애들도 다 웃어 넘기는 듯 했습니다. 아무튼 지루한 5교시에 한바탕 잘 웃었고, 어려운 일이었지만 어물쩡 잘 넘겼다 싶었던 저는 다시 수업을 이어가려 했지요. 그런데 저를 제외한 나머지 어린이들은 이 상황이 찐이라는 걸 알았나봅니다. 한 어린이가 스르르 손을 들더니 진지하게 에어컨 끄고 창문 열어야할 것 같다고 말하더군요.....
냄새는 잘 모르겠지만(....) 창문이든 교실 앞뒷문이든 뭐라도 하나는 열어야겠다고 아우성을 치니 장단을 맞춰주었습니다.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고 있는데 저 뒤에서 우리 ㅇㅇ이가 머쓱해하면서 중얼중얼 합니다.
"아니 근데 학원에서도 이런 적 있어가지구.."
TMI..
정작 방귀 뀐 사람은 당당하고, 저만 조마조마했다니 그것도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그렇게 10분을 방귀 얘기로 떠들다가, 24년 6월 4일을 김ㅇㅇ 방귀의 날로 정하고 사건은 강제로 마무리하였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서사모에 무슨 글을 쓰면 좋을지 한참 고민했었는데..ㅠㅠ
제 글에서 방구냄새 안나죠?
첫댓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생생하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방귀 낀 친구 자존감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ㅋㅋㅋ
맞아용 요즘 여러모로 제 이마를 짚게 하는 학생입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