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으로 제법 서늘한 바람도 불고 어제와 다르게 완연한 가을이 온 것 같은 기분이다.
이렇게 찬바람이 불면 생각나는 것이 있다. 바로 추어탕이다.
추어탕의 미꾸라지 '鰍'는 물고기'魚'와 가을 '秋'가 합쳐진 한자다.
한자로 명시된 바와 같이 역시 가을은 추어탕이 제격이다.
추어튀김과 추어 숙회도 있지만 사래기를 넣어 끓인 '추어탕'만 하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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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꾸라지는 논이나 마을 앞 작은 개울 혹은 얕은 냇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민물고기다.
특히 논에서 잡은 추어가 제일 맛있다. 천수답인 우리 마을에서는 논에서는 극히 드물었다.
미꾸라지는 물이 마르지 않아야 한다.
천수답인 우리 마을 땅은 냇가를 개간하여 만든 사질양토로 물이 금방 빠진다.
금방 빠진 논에 살려고 들어온 미꾸라지가 물이 마르면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죽는다.
논에 농약치면서 죽어 시체로 둥둥 떠다니는 미꾸라지를 많이 보았다.
(농약 치기전 3-4일전부터 약효 증진위해 일부러 말린다)
양질의 단백질이 주성분인 미꾸라지는 피부를 보호하고 각종 병으로부터의 저항력을 길러줄 뿐만 아니라, 각종 칼슘과 무기질이 풍부하여 가을 제철에 먹으면 여름에 지친 몸의 원기를 회복시켜준다.
이런 미꾸라지를 언제 잡는가.
농촌에서는 백로 무렵 추수때까지 일손을 놓고 쉬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때 벼베기 준비를 위해 물기 있는 논의 물기를 제거하기 위해 논 둘레에 도랑을 친다.
논배미 갓쪽을 쭉 파 물꼬를 만들면 물이 빠진다.
이것을 도구친다라고 한다. 도구치지 않으면 차가운 바람에 의해 벼가 떨어진다고 한다
물꼬를 만들때 누렇게 살진 미꾸라지가 나온다.
동면을 위해 땅속으로 기어 들어간 누런 미꾸라지가 놀라 하나 둘 나온다
그것을 잡아 평소 많은 신세를 진 마을 어르신들에게 대접하는 풍습이 있었다.
일제시대 어느 통계를 보니 우리나라 전체 인구중 대농이 10% 소작농이 30% 나머지 60%는 논밭이 없어 품팔이나 다른 일을 하며 살았다 한다.
시골에서 논이 없으니 별 수 있나 잘사는 집 대문을 쓸거나 혹은 허드렛일을 해 주면서 주인이 주는 쌀이나 보리 몇 됫박을 가져와 연명을 했다.
아침 일찍 부잣집 대문을 쓸고 와버린다. 몇 날 며칠 계속하면 주인이 알아서 쌀이나 잡곡을 주었다 한다. 이렇게 평소 은혜를 입은 동네 어르신들을 위해 젊은 남녀노소가 모여 벼논에 있는 물을 빼면서 나온 추어를 잡아 마을 큰 마당에서 대접을 했다 한다.
이런 동네잔치를 ' 상치마당'이다.
도랑치는 일은 누가 했느냐.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논밭 한뙈기 없어 품을 팔거나 그것도 없어 동네 어르신들에게 신세를 지며 살았던 가난한 사람의 몫이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 없어 가난에 쪼들려 늘 신세만 졌던 사람도 이 가을에는 미꾸라지 덕분으로 효성을 나타내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이로써 나도 마을 구성원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마을 일에 참여하고 기여할 기회를 제공하여 공동체에 참여하도록 하는 배려를 잃지 않았던 아름다운 우리의 풍속이었다.
尙齒마당 여기서 齒(이 치)는 나이 많은 어르신을 칭한다.
尙은 오히려 상으로 노인들을 숭상한다는 뜻으로 상치마당이란 노인을 숭상한다는 뜻이다.
10여년전만 해도 학교에서 퇴근하여 장화 신고 산태미(표준말:삼태기) 들고 조그만 양푼 들고 나가 한 시간 남짓 잡으면 우리 식구들 몇끼 먹을 양의 미꾸라지를 잡아 왔다.
이젠 마을마다 있는 보(보: 가뭄때 물을 대기 위해 하천이나 강 중간에 임시로 만든 인공시설물)역시 전부 시멘트로 해버려 미꾸라지 보기가 참 어렵다.
아무데나 가서 미꾸라지를 잡는다는 것이 전설?이 되어 가고 있다.
이 와중에 중국산 미꾸라지가 90년대 초부터 수입되고 있다.
아마 한 번쯤 중국산 추어탕을 식탁에서나 음식점에서 접했을 것으로 본다.
이젠 중국산 미꾸라지가 한 단계 UP그레이드되어 미꾸라지를 분말로 가공된 것을 수입하고 있다하니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분말로 하니 당연히 방부제가 들어갈 것이고 이에 따른 부작용이 많을 것은 뻔하다. 달걀도 구분을 못할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 버린 중국아닌가!
국내에서 일부 농가가 양식을 하고 있지만 생산량도 적지만 이 또한 국산이냐 중국산이냐의 논란이 많다.
수입산을 섞어 팔다 적발되는 경우가 자주 나오기 때문이다. 이것 또한 믿을 수 없다 하겠다
불과 몇 십 년만에 몇 백년동안 이어져 온 '상치마당'의 주재료인 미꾸라지가 수입되고 있어 안타까운 맘이다. 참으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에 전통적으로 정(情)을 유통시켜 내린 미꾸라지 마저 중국에서 수입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으니 변해도 많이 변했다.
어르신들 추어탕 한 그릇 대접하려해도 겁부터 난다. 중국산을 사들인것은 아닌지 말이다.
이젠'미꾸라지 잔치'의 풍속도 사라져 없어지고, 있다해도 이것을 추진할 사람이 없지 않은가!
음식도 제철에 나온 것을 제철에 먹어야 제맛을 낸다. 요즘은 사시사철내내 추어탕을 먹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후각과 미각을 잃은지 오래다.
역시 미꾸라지는 논에서 나온 주황색을 띤 것이 최고요 보약이다.
아 벌써부터 먹고 싶다.
제철 제음식으로 건강 챙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