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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슬람에 대한 이해
(1) 이슬람의 경전 꾸란(Quran)
오늘날 이슬람(Islam)은 기독교, 불교, 유교로 불리는 세계 4대 종교 의 하나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어 있다.
이슬람의 신(神) 알라(Allah) 는 기독교의 하나님 의 속성(屬性)과 다르고 이슬람의 율법과 경전의 기본 교리(敎理)가 기독 교와 다르기 때문에 이슬람은 이단이 아니라 타종교로 보아야 한다.
이슬람이 말하는 최후의 예언자 무함마드(Muhammad, 571?-632)는 무슬 림(Muslim)들에 의해 모든 계시(啓示)의 종결자(終結者)로 추앙 받고 있다. 그러나 무함마드가 신(神)으로부터 받았다는 계시(꾸란, Quran)는 다분히 주관적이고 인위적으로 절대화 되어 있다. 그리고 무슬림들은 인위적으 로 절대화 된 꾸란(Quran)이라는 이 교리에 철저히 복종하기 때문에 꾸 란(Quran)의 영향력은 무슬림들에게 절대적이다. 그런데 이슬람은 꾸란(Quran)이 기독교의 신구약 성경과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슬람에서 꾸란과 버금가는 권위를 인정 받고 있는 이맘(imam) 부카리(Bukhari)의 하디스(Hadith)에 무함마드가 간음 사건을 다루는 장면을 보면 다르다. 간음한 여자만 가슴까지 땅에 묻 고 돌로 쳐 죽이라고 명령한다. 이 명령은 즉시 실행되었고 지금까지도 그의 행동 모델은 무슬림들의 지침이 되고 있다. 이슬람 사회를 지탱하는 이슬람의 법 샤리아(Sharia)는 여성에 대해 사랑과 용서보다는 형벌을 강화함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위에 있다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한다.
무슬림의 결혼은 전적으로 남성 위주이다. 남성은 정식으로 결혼을 했더라도 두 번까지는 언제든지 원하면 이혼을 할 수 있고(꾸란 2:229), 여성과 동침하지 않았다면 지참금을 주기 전에 이혼해도 죄가 안 된 다.(꾸란 2:236) 이혼 당한 여인은 임신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3번의 생리가 끝날 때까지 반드시 남자의 집에 머물러야 하며 만일 여자가 임신 중이었다면 출산과 동시에 추방된다.(꾸란 65:4) 또 법정 증인 채택에서도 남성 한 명에 여성 두 명이 필요하다고 함으로써 여성을 남성 절반의 가치로 간주한다.(꾸란 2:282) 여성 한 명이 잘못 증언하면 다른 한 여성이 그 증언을 보충해주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이로써 여성의 증언 자체를 평가절하 한다. 또 남성 한 명에게 상속 된 재산과 여성 두 명에게 상속 된 재산의 금액이 같다.(꾸란 4:176) 남자이기 때문에 여자보다 두 배를 상속받는다. 특히 ‘바보’에게는 재산을 분배해서는 안 되는데(꾸란 4:5), 그 ‘바보’가 꾸란의 전후 문맥상 여성이라는 점에서 얼마나 여성을 무시하는지 알 수 있다. 꾸란은 이러한 여성에게 불리한 재산 상속을 이슬람 법으로 못 박고 있다.(꾸란 4:11) ‘바보’를 뜻하는 아랍어 ‘수파하’에 대해 922년 에 죽은 꾸란 학자 알 타바리(Al-Tabari)는 남긴 ‘타프시르’(Tafsir)라는 책 에서 ‘바보 중에 가장 바보가 여자’라고 했다. 니싸아(꾸란 제4장)에는 간음과 쾌락에 대해 애매모호한 가르침이 있 다. 자기 아내 이외의 여성과 간음한다는 비난을 받지 않고 정상적인 쾌락을 얻으려면 돈을 주고 그 쾌락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꾸란 4:24) 즉 여자에게 돈을 주면 간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남성의 간음은 허용하면서 여성에게는 절대 간음하지 말라고 한다. 그 이유는 남성이 여성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에 여성은 무조건적으로 남성에게 순종해야 한다.(꾸란 4:34) ‘누수즈’는 아랍어로 부인이 남편의 권위에 항거한다는 뜻인데 이슬람법에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반역과 같은 행동이다. 또 신분이 좋은 여자를 얻고 싶은데 재산이 부족할 때는 그 여자에게 줄 지참금으로 하녀를 대신 줄 수 있다.(꾸란 4:25) 이슬람 사회에서 자주 거론되는 명예 살인(殺人)도 여성을 철저히 유 린한다. 근본주의 이슬람은 여성이 옷에 향수를 바르거나 남성들만 모 인 곳에 지나가는 것조차 창녀처럼 여긴다. 이러한 편견이 여성을 단순 하게 속박하는 것을 넘어서 여성의 인권을 유린할 뿐 아니라 이슬람 법 샤리아(Sharia)에 따라 명예 살인이라는 끔직한 범죄로 이어진다. 이 점에서 이슬람 법 샤리아는 21세기의 보편적 가치인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를 초월하기 때문에 많은 비판에 직면해 있다. 꾸란은 또 이렇게 가르친다. “간음한 여인을 집안에 감금하되 죽음 이 그녀를 데려가든지 알라(Allah)가 구원의 길을 열어 줄때까지 감금하 라.”(꾸란 4:15) “나쁜 짓을 한 자는 임종의 순간에 회개해도 아무 소용없 다.”(꾸란 4:18) 이는 성경에 예수께서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에게 하신 말씀과 또 함께 십자가에 달린 한쪽 강도에게 자비를 베푸신 말씀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꾸란에 여성과 관련되어 많이 등장하는 주제가 결혼(꾸란 2:221,230, 235,237, 4:3,4,6,22-25,127, 5:5, 11:78, 15:71, 23:6, 24:3,32,33,60, 25:54, 28:27, 33:37, 49,50,52,53, 47:3, 60:10)과 이혼(꾸란 2:227,229-232,236-237, 33:4,37,49, 58:2,3, 65:1, 66:5)에 관한 것이다. 꾸란 4:22-23이 부적절한 결혼에 관해 나열하지 만 이미 이런 결혼은 이슬람 사회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왜 꾸란이 이렇게 결혼 금지 문제를 길게 언급하는 것인가? 그 이유를 역발상으 로 생각해보면 이슬람 사회에서 이혼과 재혼을 손쉽게 하기 위해서이 다. 즉 남자들에게 다양한 이혼과 재혼 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다. 꾸란 2:232은 “이혼당한 여자들이 헤어진 남편이 재혼하는 것을 방 해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꾸란 4:19은 “이혼한 여성이 재혼하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지만 사실상 무슬림 권에서는 남성 위주의 이혼과 재혼만이 가능하다. 아랍어에서 이혼이란 단어인 ‘탈락’ 은 모든 시대를 불문하고 이혼이 남성의 말에 의해 성사되어 온 것을 의미한다. 과연 이혼이 남성 한 쪽의 의견만 중시될 수 있는 것인가? 이것은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말씀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예수 님은 본래 이혼과 재혼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하셨다. 모세 율법은 이혼증서를 써주면 가능하다고 가르쳤지만(마 19:7, 참고 신 24:1-4), 마태복 음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이 완악하였기에 이혼을 허락한 것이라고 하면서(마 19:8) ‘음행한 이유 외에’ 이혼과 재혼을 간음이라고 해석하였 다.(마 19:9) 그러나 본래의 예수님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은 이혼과 재혼 자체를 금하셨다.(눅 16:18, 막 10:11,12) 예수님이 재혼과 이혼을 금하신 이 유가 무엇인가? 그 이유는 하나님의 창조원리에 따른 것이며 또한 당 시 여성들에게 불리한 남성 위주의 사회적 환경에서 열악한 여성의 권 익을 보호하고 생존권을 지켜주려는 것이었다. 21세기 이슬람 사회의 현실은 어떠한가? 이슬람 사회에서 이혼과 재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이는 꾸란이 가르치고 있는 방식과 큰 차 이가 없다. 가정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숭고한 정신 위에 든든하게 세 워져야 한다. 이 점에서 성경에 나타나 있는 예수님의 결혼과 이혼에 관한 가르침은 꾸란에 나타나 있는 무함마드의 가르침보다 21세기에 더 중시되어야할 인류의 보편적 선행적 가치를 간직하고 있다. (3) 이슬람 문화와 기독교 문화 역사상 로마 가톨릭이 주도한 십자군 전쟁으로 인해 많은 무슬림들 이 희생당한 후 현대에 이르러서 이슬람 근본주의가 지하드(jihad)의 형 태로 미국의 9.11테러와 같은 끔직한 사태를 촉발하였다는 측면도 있 지만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만고의 진리 앞에 서 우리 모두 겸허해질 필요가 있다. 이슬람은 지하드(jihad) 곧 이슬람을 확산시키기 위해서 불신자들을 죽이는 전쟁을 정당화 한다. 아랍어 지하드(jihad)는 성전(聖戰, 거룩한 전쟁) 이라고 번역되기도 하지만 투쟁(鬪爭)이라는 의미가 더 정확하다. 학자들 은 이를 대(大) 지하드와 소(小) 지하드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이는 원래 지하드의 의미가 너무 혐오스러워 12세기 때 알 가잘리(AL-Ghazali)라는 학자가 구분지은 것이다. 그는 하디스를 인용하여 소(小) 지하드는 이슬 람을 수호하기 위해서 무기를 들고 싸우는 전쟁을 의미하고 대(大) 지하 드는 내면의 전쟁 즉 죄악과의 전쟁, 음란과의 전쟁 등 영적(靈的) 전쟁 을 의미한다고 했다. 이 지하드(jihad)는 이슬람 확산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 고 적용되는데 ‘마음으로 나타나는 지하드,’ ‘글로 나타나는 지하드,’ ‘통치로 나타나는 지하드,’ ‘칼로 나타나는 지하드’ ‘금융 지하드’ ‘싸이 버 지하드’ 등 여러 종류가 있다. 테러와 전쟁은 이념과 군사력이 충돌 할 때 일어나지만 결코 종교의 이름으로 테러가 감행되어서는 안 된다. 일반적으로 서구 사람들이 갖고 있는 근본주의 이슬람에 대한 대표 적인 이미지는 토마스 아퀴나스 이래로 ‘한 손에 꾸란, 한 손에 칼’인데 미국 9.11 테러 이후로 이런 이미지는 더욱 더 고착되었다. 혹자는 이 는 이슬람에 없는 사상이라고 미화시키기도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기를 보면 한 손에 꾸란 한 손에 칼이라는 구호가 그림으로 정확하 게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 근본주의 이슬람이 극단적인 과격한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그 이유를 꾸란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서구문명을 적 대시하려는 이슬람 원리주의자의 문화적 이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슬람 문화의 종교적 전통은 사랑과 평화와 자비보다는 비난과 폭력을 앞세우기 때문에 이슬람은 평화나 진리라는 미명하에 이념으로 무장한 정치 집단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이슬람의 정치 집단적 의식은 무함마드가 출현할 당시에 유목민이 가졌던 가치관과 친족 중심의 연대의식이 지닌 부족 중심의 전형적인 집단 지향성에서 기인된다. 이러한 내용은 이집트 정치가였던 하이칼 (Muhammad Husayn Haykal)이 1933년에 쓴 무함마드 전기(The Life of Muhammad)에도 잘 나타나있다.
(4) 한국의 다문화 가정 핵무장을 치밀하게 준비한 이란이 근본주의 이슬람 패권주의(覇權主 義)의 상징이 되고 있다. 이슬람 원리주의가 ‘테러 지하드’를 통하여 세 계를 정복하려고 한다. 이슬람의 세계 정복은 아프리카와 서남아시아와 유럽을 넘어서 미국과 동북아시아로 확대되고 있다. 이슬람의 한국 진출도 도를 넘었기에 극도의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 적이 자주 제기되고 있다. 한국 기독교가 ‘비전 2020’을 향해 범 교단 적으로 군(軍) 복음화 선교에 박차를 가하는 마당에 이슬람이 2020년에 세계 이슬람대회를 한국에서 개최함으로써 한반도를 거점으로 전 세계 를 이슬람화 하려는 전략을 은밀하게 진행하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이슬람은 한국에서 모스크 건립, 국제 이슬람학교 설립, 이슬람문화 센터 설립, 꾸란 번역, 이슬람대학 건립, 이슬람 관련 서적과 자료 출판 (일명 ‘펜의 전략’), 결혼 전략 등을 추진 중이다. 이러한 내용은 2005년에 이슬람연맹에 의해 발행된 ‘한국이슬람 50년사’에 발표되었다. 많은 이 들이 이 문제에 관심 갖고 한국인의 전통가치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일치하지만 이슬람의 문화적 가치는 21세기의 보편적 문화와 불일치한 다는 사실을 알고 이슬람의 대(對) 한국사회 침투에 대비해 전략적으로 협력해 나가야한다. 이슬람중앙회가 CTS 기독교 TV가 방송한 “이슬람 한국진출 이대 로 좋은가?”에 대해 2008년 12월 18일 언론중재위원회에 3차에 걸쳐 서 제소하였다가 취하한 사건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한국기독교에게 일깨워준 단적인 예이다. 이 사건은 기독교 학자들이 학문적으로 이슬 람의 폭력성을 경고한 내용에 관해 이슬람 측에서 스스로 시인한 결과 라고 평가할 수 있다. 오늘날 이슬람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검은 돈 인 오일 머니를 앞세우고 또한 문화의 옷을 입고 한국사회에 깊숙이 침투해 들어오고 있다. 이러한 도전은 한국 교회 안에 많은 다문화 가 정이 침투해 들어오면서 더욱 위험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국인들처럼 외국문화를 쉽게 받아들이는 민족도 드물다. 다이어트 열풍으로 한국사회에 침투해 들어온 이슬람의 벨리 댄스(Belly Dance)는 어느덧 우리의 전통문화인 국악 한마당을 능가하였다. 주말에 동네 인 근의 야산 입구에서 문화공연이라면서 배꼽을 드러낸 한국여성들이 벨 리 댄스를 추는 어설픈 일도 빈번해졌다. 지금 동네마다 개설된 문화센 터에 벨리 댄스 무료강습과 아랍어 무료강좌가 앞 다투어 선보이는데 이런 배경에는 이슬람을 포교하려는 의도가 숨어있으며 여기에 이미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다. 문화의 파괴력은 우리가 상상 못할 위력을 가지고 있다. 수능시험에 서 아랍어를 제2 외국어로 선택하는 일이 해마다 늘고 있다. 아랍어가 상대적으로 다른 외국어보다 쉽기 때문이 아니다. 실제로는 그 반대로 아랍어 시험문제의 난이도가 다른 외국어 과목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 도로 쉽기 때문이다. 아랍어 알파벳만 알아도 될 정도다. 또한 표준 점 수제라는 채점제도 때문에 많은 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통계를 보면 지난 3년간 8개 제2 외국어 과목시험을 치른 학생 중의 평균 45% 정도가 아랍어를 선택했다. 그러자 일부 무슬림 학자들은 신문의 칼럼을 통해서 “이렇게 인기 있는 아랍어를 왜 사(私) 교육에 맡기고 있나? 즉시 공(公) 교육으로 끌 어들여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공교육으로 끌어들이라는 말은 전국 고등학교에 아랍어 교사를 한 사람씩 배정하라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이슬람권에서 교사자격의 이슬람 선교사들이 물밀 듯이 들어와 우리 학생들의 영혼을 점령해 나갈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즉시 난이도의 형평성을 조정하여 교묘하게 입시 까지 손을 대는 이슬람이 다른 외국어를 택한 학생들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는 불공정관행을 개선해야한다. 이슬람의 여성 차별과 일부다처제 는 혼인의 순결과 양성평등과 일부일처제의 가치를 중시하는 한국사회 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전근대적인 악습을 이슬람은 이것을 숨기고 문화라는 이름으로 교묘하게 우리 집 안방까지 발을 들여놓으려 한다. 무슬림 여성들의 인권도 심각한 상황이지만 아무도 그 문제를 해결 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인권상황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이슬람 사회 에서 여성이 의무적으로 교육을 받는 길이 열려야 한다. 앞으로 무슬림 여성의 인권문제와 더불어서 무슬림 남성과 결혼한 후에 자녀까지 낳 았지만 이슬람법에 따라 이혼당한 한국인 여성의 처참한 인권상황에 관한 연구들도 많이 나오기를 희망한다. 한국에서 무슬림 남성이 한국인 여성과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도 한 국국적만 받으면 고국에 있는 본처와 자식들을 데리고 오기 위해서 한 국인 여성들과 서류상 이혼을 하고 동거하기도 한다는데 이런 변형된 일부다처제는 가정파괴의 주범이며 일부일처제라는 보편적 가치에 비 추어 볼 때 반(反) 인륜적인 범죄이다. 이슬람 포교의 강력한 수단이 결혼을 통한 자연출산율 증가라는 사 실은 이미 확인되었다. 이슬람은 한국에서 종교의 자유를 누리지만 이 슬람권에 있는 많은 한국인 봉사자들과 전문사역자들은 공적인 활동조 차 보장받지 못하고 온갖 생명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이슬람권의 이 런 암담한 상황에서 많은 한국인들이 처참하게 인권유린을 당하는데 향후 이 문제에 관한 국제적인 동조와 연구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2. 성경의 아브라함과 꾸란의 이브라힘은 같은가? 우리는 이슬람을 잘 안다고 하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종교 이야기를 종종 들을 수 있다. 즉 아브라함의 종교를 이삭을 통해 서 전수받은 사람들이 기독교와 유대교인들이라고 한다면 이스마엘을 통해서 전달 받은 사람들이 바로 무슬림들이라는 설명이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이슬람의 신(神) 알라(Allah)와 기독교와 유대 인들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섬기던 바로 그 신(神)이라 고 주장한다. 그런데 기독교와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종교를 타락시키 고 경전으로 내려 준 성경을 변질시켰기 때문에 알라(Allah)가 선지자 무 함마드(Muhammad, 571-632)를 통해서 하늘에 있는 경전의 원본을 내려 보 내어 아브라함의 종교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것이 이슬람이라는 주장을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반복되는 이런 거짓말에 속아 오늘날의 중 동사태를 배다른 형제들의 싸움이니 이삭과 이스마엘의 싸움이니 하면 서 무슬림들의 근거 없는 주장을 대신 홍보해 주고 있는지 모른다. 무함마드는 과연 이스마엘의 후손인가? 이 문제를 생각하자면 거슬 러 올라가서 아브라함부터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성경의 아브 라함(Abraham)과 꾸란의 이브라힘(Ibrahim)이 과연 같은 인물인가? 성경의 아브라함은 아버지 이름이 데라(창 11:31,32)인데 꾸란의 이브 라힘의 아버지 이름은 아자르(Azar)라고 한다.(꾸란 6:74) 우선 아버지가 다르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경의 아브라함의 원래 이름은 아브람 이었는데 99세 때부터 하나님께서 바꿔주신 이름이다.(창 17:5) 그런데 꾸란의 이브라힘은 젊었을 때부터 이브라힘이라고 불리던 사람이었다. (꾸란 21:60) 또한 성경의 아브라함은 이방인들에 의해서 불속에 던져진 일이 없는데 꾸란의 이브라힘은 이방인들이 그를 불속에 던진 것을 알 라(Allah)께서 구해 주셨다고 한다.(꾸란 21:68,69) 꾸란의 여러 주석에 보면 그를 태워 죽이려던 이방인들은 앗수르 왕 니므롯의 백성들이라고 한 다.(김용선 주석, 최영길 주석) 특별히 성경의 아브라함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Makkah)에 간 일이 없는데 꾸란의 이브라힘은 메카에서 이스마엘과 함께 카바(Kaaba) 신전 을 건축했다고 한다.(꾸란 2:125~127) 그리고 이슬람의 제 2경전이라고 불 리는 부카리(Sahih al Bukhari)의 하디스(hadith)에 보면 이브라힘은 이스마엘 에게 이혼을 명령했다는 것이다.(Bukhari hadith volume4 book 55 number 584) 성 경과 꾸란의 이러한 극심한 내용상의 차이는 성경의 아브라함(Abraham) 과 꾸란의 이브라힘(Ibrahim)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 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또 어떤 사람은 아브라함이 아니라 이스마엘이 메카에 가 서 살았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이스마엘이 메카 로 간 것이 아니라 바란 광야에서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창 21:21) 성 경은 “그가 바란 광야에 살 때에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애굽 여인을 아 내로 얻어 주었다.”고 되어 있어 애굽 여인과 결혼할 때는 그가 바란 광야에 살았지만 평생을 거기서 살았다는 말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히브리 원문에는 ‘때에’라는 말이 없다. “그는 바란 광야 에 살았다. 그리고 그의 모친이 애굽 여인을 그에게 아내로 주었다.”는 것이 올바른 번역이며 킹 제임스 번역이나 Good News Bible도 그렇 게 번역하고 있다. 즉 성경에 의하면 이스마엘의 거처는 바란 광야 즉 이스라엘 남쪽 이며 모세가 열두 정탐꾼을 보냈던 가데스바네아 북부의 바란 광야였 다고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마엘이 메카에 가서 살았다 는 이슬람의 주장이 성경적으로 보면 전혀 근거가 없는 주장이라는 것 이 확인된다. 그렇다면 또 이스마엘의 후손 중 어떤 사람이 메카에 가서 살았고 그들의 후손 중에 무함마드가 태어나서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시작했다 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친절하게도 이스마엘의 후 손들의 거처까지 알려주고 있다. “이스마엘의 자손들은 하윌라에서 앗 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주 하였더라.”(창 25:18) 하윌라에서 술까지 통하는 지역이 어디인지 우리가 잘 모른다. 그러나 친절하게도 영어 성경에 보면 거기가 어딘지를 설명 해 주고 있다. Near the border of Egypt(이집트 국경 부근)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쉽게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이스마엘 의 모친인 하갈은 애굽 여인이었다. 그리고 이스마엘의 아내도 애굽 여 인이었다.(창 21:21) 그렇다면 이스마엘과 그의 후손들이 애굽 근처에서 살았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왜냐하면 어머니의 언어이자 할머니의 언 어를 그 자식들과 자손들이 자연스럽게 배웠을 것이기 때문에 말이 통 하는 사람들과 가까이 살았을 것이라는 것이 자연스런 추측이며 성경 도 애굽 국경 부근에서 살았다고 증거 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슬람 측의 주장을 합리화 하려면 이스마엘의 몇 대 후 대의 자손들이 언젠가 메카로 이주해 와서 그 조상 이스마엘이 아브라 함과 함께 섬기던 그 창조주 하나님을 섬겼었는데 그 후손 중에서 무 함마드가 태어났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 하게도 이 주장도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인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훌륭한 학자가 주장한다고 할지라도 성경의 근거가 뒷받침 되 지 않으면 우리가 받아들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도리어 성경은 이스마 엘의 후손들이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으며 오히려 하나님과 원수 된 사람들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시편 83편을 읽어 보면 3절에 “주님의 원수들이 떠들며 주를 미워 하는 자들이 머리를 들었나이다.”라고 호소하고 있다. 그렇다면 주님의 원수들이 누구란 말인가? 6절에 ‘에돔의 장막과 이스마엘인과 모압과 하갈인...’ 이들이 주님의 원수들이라고 성경이 분명히 말하고 있다. 마 지막 18절에 보면 “여호와라 이름 하신 주 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 게 하소서.”라고 기도를 마치고 있다. 즉 이스마엘 후손들과 하갈의 후 손들은 하나님의 원수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며 살았던 것이지 그 후손들이 아브라함의 신앙을 그대로 대대손손이 물려주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스마엘이 하갈의 복중에 있을 때 하나님의 사자가 그의 장래를 예언해 준 것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가 사람 중에 들 나귀 같 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 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니라.”(He will lie in hostility toward all his brothers. 창 16:12) 이스마엘은 태어나기 전부터 그의 형제들과 대적 하며 살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으며 이스마엘의 후손들도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하였더라.”(창 25:18)라고 번역되었지만 영어 성경에 보면 “they lived in hostility toward all their brothers.”라고 되어 있다. 이스마엘은 그의 형제들과 적대적 관계로 살 것이고 그의 후손들 역시 그 형제들 즉 이삭의 후손들과 적대관계를 가지고 살게 될 것이 라고 예언되었고 또 그 예언대로 적대적 관계를 가지고 살았다고 성경 은 기록하고 있다.(시편 83:) 그러므로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아브라함으로 부터 계승한 믿음을 충성스럽게 지키다가 무함마드 때에 그 믿음을 크 게 확산시켰다는 주장은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원수로 살았다 는 성경 말씀과는 정반대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이스마엘의 후손이라고 주장 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부카리(Bukhari)의 하디스(hadith)에 보면 이브라힘 이 이스마엘과 하갈을 데리고 메카에 와서 거기 버리고 갔다고 한다. 그 때 메카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는데 천사가 파준 우물 잠잠(ZamZam) 에서 물이 흘러나오자 주르훔(Jurhum) 족속의 사람들이 와서 함께 살기 를 청하였고 그 때 이스마엘은 젖먹이였으며 그들이 이스마엘에게 아 랍어를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하갈은 주르훔 족의 아랍 여인과 이스마엘을 결혼 시켰다는 것이다.(Sahih Bukhari volume4 book 55 number 584) 그래서 이스마엘은 아랍인들의 조상이 되었다고 하는데 성경에 의하면 이스마엘은 메카에 가지도 않았으며 이집트 여인과 결혼을 했다. 그러나 이 하디스(hadith)를 기초하여 후대 사람들이 무함마드의 족보 를 만들어 냈다. 이슬람의 제2의 경전인 부카리의 하디스에 이스마엘은 주르훔 족속에게서 아랍어를 배웠다는 것을 보면 아랍인들이 이스마엘 이전에 이미 존재했다는 것이며 따라서 이스마엘이 모든 아랍인들의 조상이라는 말은 거짓이라는 것을 스스로 반증 하는 것이다. 후대에 만들어진 무함마드의 족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씨엗 유쑤프(Syed Yusuf)로 대부분의 이슬람 학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무함마드는 이스마엘의 둘째 아들 까이달(Qaidar-게달)의 후손이라는 주장이다. 또 하나는 부카리의 하디스가 만들어지기 거의 100년 전에 무함마드의 전기 ‘씨라툴 라쑬알라’를 최초로 펴낸 이븐 이스학(Ibn Ishaq) 같은 비중 있는 학자들의 자료에 의하면 무함마드는 이스마엘의 첫째 아들인 나빗(Nabit-느바욧)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자료는 모두 무함마드부터 이스마엘까지를 25 세대로 그 족보를 소개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웹싸이트에는 30세대로 소개 하는 곳도 있다.) 무함마드는 주후 571년에 태어났으며 아브라함은 주전 2000년 전 사람이다. 그 두 사람 간격을 연결하는 인물들이 본인들을 제외하면 23명이라는 족보는 누가 봐도 약 2570년의 간격을 채우기에 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 또 한 가지 놀라운 것은 하디스에 무함마드가 자신의 근본에 대해 서 설명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자기(무함마드)는 무다르(Mudar)의 후손이며 그것은 지브리일(Gibriil) 천사가 자기에게 가르쳐 주었다.”고 했다는 점이 다.(Ibn Sa'd, Kitab al-Tabaqat al-Kabir, Volume I,p.4) 이는 무함마드 자신도 몰랐 고 그 조상들에게 전해들은 것도 아니고 자신의 가문이 간직하고 있었 던 족보에 근거한 것도 아니며 다만 천사가 말해주었다는 그런 아무도 입증할 수 없고 증거도 찾을 수 없는 계시를 빙자한 무함마드 개인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 그것을 근거로 부카리의 하디스에 보면 무함마드가 키나나(Kinana)의 아들 나드르(Nadr)의 자손 무다르(Mudar)의 족족에 속했다고 말한 것을 기록하고 있다.(Sahih al Bukhari, volume 4, Book 56, Number 698) 물론 후대 사람 들이 이들 이름을 무함마드 족보에 포함시켜 명단을 만들어 낸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슬람 이전 문헌에는 이스마엘과 무함마드가 혈통 상 관계가 있다는 것을 증명할 자료가 없다. 이는 모두 이슬람 이후 무함 마드가 했다는 말을 수집하여 엮은 하디스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것인 데 그 하디스라는 것들이 무함마드가 죽은 지 약 200년 후부터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죽은 지 200년이 넘은 사람이 살았을 때 했다는 말을 수집했다는 것의 신뢰도가 어느 정도나 될까를 상상해 보기 바란다. 그래서 무슬림들이 경전처럼 여기는 부카리의 하디스에는 종종 황 당한 기사들이 발견되는데 예를 들면 “지구상의 최초의 성전은 메카의 카아바 신전(Masjid ul Haram)이고 두 번째 성전은 예루살렘 성전(Masjid al Aqsa)인데 그 두 건축물의 역사적인 간격이 40년 이라는 것이다.(Sahih al Bukhari Volume 4 Book 55 number 585) 이는 카아바 신전을 자기들 말대로 이브라힘과 이스마엘이 건축했다 면 주전 1950년경에 건축했다는 말인데 무함마드가 주후 621년 어느 날 밤중에 천마(天馬)를 타고 방문했다는 예루살렘 성전(Masjid al Aqsa)과 역사적 차이가 40년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 때 예루살렘 성전은 주후 70년 로마의 디도(Titus) 장군에 의해서 파괴되어 존재하지도 않았지만 무함마드가 거기 가서 선지자들과 함께 예배드렸다고 주장하기에 예루 살렘 성전은 오늘날 이슬람의 성지가 되어 있는 것이다.(꾸란 17:1 참조) 이슬람의 제2 경전이라고 하는 부카리의 하디스가 이 정도 수준이 라면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이슬람은 아브라함의 종교가 아니라 무함마드가 속했던 꾸라이시(Quraish) 종족의 신(神) 알라(Allah)를 여호와 하나님과 동일한 신(神)으로 둔갑시키기 위해 아브라함의 이름을 메카로 끌어들여 그의 서자인 이스마엘과 함께 카아바 신전을 건축했다는 이 야기를 만들어 낸 무함마드가 창시한 종교인 것이다. 그러기에 전에는 이슬람을 마호메트교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슬람이 아브라함 의 종교라는 근거 없는 비(非) 성경적 말을 주장함으로 본의 아니게 그 들의 거짓말을 홍보하는 어리석은 행위를 더 계속해서는 안 될 것이다. 3. 이슬람과 타문화 한국 사람들은 오랫동안 홍익인간(弘益人間)을 목표하는 단일 민족임 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20세기 후반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가끔 길거리에서 눈이 파랗고 머리카락이 노란 외국인을 만나면 깜짝 놀라 그 외국인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곤 했다. 그런데 21 세기 들어서면서 외국인들이 급증하더니 이제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 인 숫자가 150만을 넘어섰고 한 해에 결혼하는 부부 중 외국인과 결혼 하는 사람이 10%나 된다. 이제 한국은 더 이상 단일민족을 고집할 수 없게 되었으며 어쨌든 몰려드는 외국인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장관급 인사 15명을 포함한 전문가들 50여명으로 구성된 국민 대통합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두고 다문화 정책이 우리나라에 성공적으로 뿌리내리도록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독일 안젤라 메르켈 총리, 영국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프랑 스의 사르코지 전 대통령 등 유럽 선진국 지도자들은 자기나라 다문화 정책이 이슬람 때문에 실패했다고 공언했다. 그들도 쏟아져 들어오는 외국인들을 융화시켜 평화로운 복지국가를 유지하려고 최선을 다해 다 문화 정책을 추진했었다. 그런데도 한국의 다문화주의자들은 유럽의 실 패를 거울삼아 제도를 보완하고 풍성한 재정을 포함한 정책적 지원을 하면 우리는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럴듯한 환상에 젖어있다. 유럽의 정상들과 정치인들인들 왜 그런 생각을 안 해 봤겠는가? 재 정지원 뿐 아니라 기존의 정책과 제도와 법을 바꿔가면서까지 무슬림 들의 비위를 맞춰 평화롭게 공존하려고 노력해봤으나 안 되더라는 것 이 그들의 결론이다. 그런데도 한국이 유럽에서 실패한 다문화 정책을 억지로 추진한다면 우리는 그들보다 더 비참한 실패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면 한국이 그들에게 베풀어 줄 수 있는 복지 혜택이나 재 정이나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유럽보다 결코 높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무슬림들은 유럽에서 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 문화에 동화될 수 없었을까? 그것은 특별히 문제가 많은 무슬림들만 유럽에 모였었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1) 이슬람 율법 샤리아의 기본정신 때문이다. 샤리아(Sharia)의 기본정신은 ‘알 왈라 왈 바라’(Al Walla, Wal Bara)이다. ‘알 왈라’(Al Walla)는 무슬림(muslim)들끼리는 국적, 성별, 피부색, 인종, 언어, 신분에 관계없이 무조건 돕고 보호하고 사랑하고 존경해야 한다 는 말이다. 반면 ‘왈 바라’(Wal Bara)는 이슬람 외의 종교를 가진 자들과 는 국적, 성별, 피부색, 인종, 언어, 신분에 관계없이 절대로 존경하거 나 사랑하거나 친절을 베풀거나 돕거나 친구로 사귀어서는 안 될 뿐 아니라 철저히 미워하며 대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정신 때문에 이슬람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열성적인 무슬림들 은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평화롭게 공존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며 특 정 지역에 무슬림들끼리 모여살기를 선호하고 자신들의 신앙과 문화를 지키는 게토(ghetto)를 형성해 그 영역을 넓혀 나간다. (2) 이슬람의 배타적 세계관 때문이다. 이슬람에서는 세계를 두 부분으로 나누는데 한 쪽은 무슬림들만 살 수 있는 ‘평화의 집’(다르 알 쌀람, Dar al Salam) 또 한 쪽은 기독교와 유대교 를 포함한 불교 힌두교 배화교 라마교 유교 등 이슬람 이외의 모든 종 교를 믿는 사람들이 사는 ‘전쟁의 집’(다르 알 하릅: Dar al Harb)이다. 그래서 열성적인 무슬림들은 설교나 강연들을 통해서 이슬람 이외의 문화권의 사람들과는 항상 ‘지하드’(알라를 위한 전쟁) 상태라는 것을 의식하며 살도록 교육을 받는다. 물론 대외적으로는 이런 교육 내용이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는 하지 만 종종 그들의 교과서에 실린 이런 내용들이 서방세계 매스컴에 폭로 되어 충격을 주기도 한다. 전쟁 상태라면 그들의 모든 행동은 일반적인 윤리 기준으로 평가하면 안 되고 전시 행동지침이 적용된다는 의미이 다. 전시에는 적을 속이는 것은 훌륭한 전략이고 적의 요인들을 암살하 는 것은 칭찬받을 일이며 많은 적들을 죽인 사람은 영웅이 되고 다른 사람들이 본받아야할 모델이 되는 것이다. 이를 이해하면 온 세계가 혐오하는 오사마 빈라덴(Osama bin Laden) 같 은 끔찍한 테러범이 이슬람권에서는 영웅으로 존경받는가 하면 평범한 서민들이 알카에다 같은 테러단체에 자발적인 후원금을 보내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3) 무함마드가 보여준 행동지침 때문이다. 무함마드가 보여준 행동은 시공을 초월하여 영원한 무슬림들의 모델 이며 율법의 근원이 되었다. 이를 아랍어로 ‘우스와 하사나’(uswa hasana) 라고 한다.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는 메카에서 힘이 없을 때는 “종 교는 강제로 하지 말지니라.”(꾸란 2:256)라며 유화 정책을 폈다. 그러다 주후 622년 메디나로 이주 후 세력을 결집하여 힘이 생기자 주변의 족 속들을 잔인하게 학살하였고 주후 630년 고향인 메카(Mecca)까지 점령 하고는 “이제부터는 두 개의 종교가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특히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은 변질된 경전(經典)을 가지고 있는 타 락한 무리들이기 때문에 ‘가장 사악한 피조물’(꾸란 98:6)이라며, 이슬람으 로 개종하지 않는 “이교도들은 어디서 발견하든지 살해하라.”(꾸란 9:5)고 명령했다. 그래서 이슬람은 초기부터 전쟁과 칼로 세력을 넓혀 나갔다. 어떤 이들은 ‘한 손엔 꾸란 한 손엔 칼’이라는 사상은 이슬람에 없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이는 이슬람의 여러 교리 중의 하나가 아니 라 이슬람의 핵심이다. 이슬람의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기를 보면 녹색바탕에 이슬 람의 신앙고백을 중앙에 아랍어로 적어 놓고 그 밑에 전쟁용 칼을 그 려놓았다. 이는 이슬람을 받아들이고 신앙고백을 하지 않는 사람을 죽 이라고 하는 이슬람의 핵심을 확실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4) 이슬람의 나지스(Najis or Najes) 사상 때문이다. ‘나지스’(Najis or Najes)는 비(非) 무슬림들은 더러운 존재들이라는 관념 이다. 이슬람권에 가면 비(非) 무슬림들이 쓰던 잔으로는 마시지 않는 사람들이나 아무리 배가 고파도 비(非) 무슬림들이 주는 음식은 안 먹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몇몇 유별난 사람들이 아니라 정상적인 이슬람 율 법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취하는 행동이다. 이슬람에서 가장 거룩하다고 여기는 도시 메카(Makkah)를 향한 고속 도로 수십 킬로미터 전방에는 ‘여기서부터 비(非) 무슬림들은 통과할 수 없음’이라는 대형 간판이 있다. 또한 죄수들을 고문실로 끌고 갈 때 눈 을 가리는데 죄수가 무슬림이 아니면 죄수의 수갑을 채운 손을 잡아끄 는 대신 작은 막대기 끝을 잡고 따라오게 한다. 이는 비(非) 무슬림을 불결하게 여기는 꾸란에 기록된 나지스 사상 때문이다.(꾸란 9:28) (5) 이슬람에서 비(非) 무슬림을 친구로 삼는 것은 죄악이다.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이것은 꾸란에 있는 명령이다.(꾸란 3:28, 4:139, 4:144) 유럽에서 이슬람 율법을 제대로 지키려는 사람들을 위해 안내와 질문에 답변해 주는 인터넷 사이트가 있다. 거기에 어떤 사람이 비(非) 무슬림 친구의 생일잔치에 가도 되는지 물었다. 이슬람 성직자는 이렇 게 답변했다. “그 초청에 응하는 것은 비(非) 무슬림들을 친구로 사귀지 말라는 알라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가면 안 된다.” 심지어 꾸란에는 ‘비(非) 무슬림들은 가장 사악한 짐승들’이라고 정 의한다.(꾸란 8:55) 짐승들 중에는 애완용으로 사랑받는 동물들도 있다. 그러나 사람만 보면 달려들어 공격하는 사악한 짐승은 보이는 대로 사 살하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이슬람 외의 타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모두 사악한 짐승이라는 꾸란의 구절 때문에 이슬람권에서는 이를 적용한 잔인한 살인사건들이 종종 발생한다. 심지어는 유럽 친구들과 사귄다는 이유로 자기의 친자식을 명예 살인하여 알라에게 충성심을 증명하려는 헌신된 무슬림의 기사가 가끔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6) 타크피르(takfir) 문화 때문이다. 이슬람에서 ‘카피르’(Kafir)는 불신자라는 뜻이지만 배교자 혹은 이교 도를 포괄적으로 칭하는 말로 ‘죽여도 좋은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다. ‘타크피르’(takfir)는 ‘카피르’를 처형할 때 무슬림들이 외치는 구호 같은 것인데 지금도 ‘타크피르!’하고 외치면 주변의 무슬림들이 돌과 몽둥이 를 들고 달려들어 폭력으로 죽이기까지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슬람 에는 자경단(自警團)이라는 것이 있는데 배교자, 간음한 자, 살인자 등 주요 범죄자들은 법정에 끌고 가지 않고 직접 처형할 수 있다는 샤리 아(sharia) 율법에 근거를 둔다. 따라서 ‘카피르’에게 임의로 폭력을 가해 도 처벌 받지 않는 것은 이슬람권에서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무슬림들은 집단적으로 몰려가서 기독교인들이 예배드리는 데 불을 지르거나 결혼식장에 몰려가 테러를 저지르는 일들이 끊임없 이 발생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이슬람 학자 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5 인방 중의 한 사람이며 이슬람에 관한 책을 120권이나 쓴 유수프 가라 다위(Yusuf al-Qaradawi)는 “만일 배교자를 살해하라는 율법이 없었다면 이 슬람은 오래 전에 없어졌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7) 딤미(Dhimmi) 사상 때문이다. ‘딤미’(Dhimmi)는 이슬람을 받아들이지 않은 기독교인이나 유대교인들 로부터 목을 자르지 않는 대가로 받는 ‘인두세’(지즈야, jizya)라는 세금제도 가 있었는데 이 세금을 내고 목숨을 부지하는 하층민들을 ‘딤미’(dhimmi) 라고 불렀다. 이 딤미 제도는 철저한 인권 유린, 폭력과 무거운 세금으 로 타 종교인들을 괴롭히던 제도였으나 영국과 프랑스가 중동을 통치 할 때 없애버렸다. 그러나 그 정신은 아직도 무슬림들의 머릿속에서 지 워지지 않았고 열성적인 무슬림들은 꾸란을 읽다가(꾸란 9:29) 이 제도가 사라졌다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속히 샤리아(sharia)로 다스리는 세상을 만들어 21세기에도 이 제도를 실행하기를 열망하고 있다. 그러므로 매주는 아닐지라도 모스크에서 설교를 통해 이런 가르침 을 받고 있는 무슬림들은 타문화에 적응이 거의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 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는 이미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는 무슬림들 도 많은데 왜 하필 극단주의자들의 견해를 들먹이며 혐오감을 조성하 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극단주의 무슬림들이 깜 짝 놀랄만한 테러를 저질렀을 때 그 많은 평화주의자 무슬림들이 입을 다물고 있는 현상을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그들도 이슬람의 율법인 샤리아(sharia)로 다스리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이슬람의 궁극적인 목 표에는 동의하지만 성취 방법에서만 약간의 차이를 보일 뿐인 것이다. 4. 이슬람의 금융 법 수쿠크(sukuk) 꾸라이쉬(Quraysh) 부족이 핵심세력이었던 이슬람이 7세기에 아라비 아 반도를 무력으로 정복한 이후 주위에 있던 부족들을 점차 점령해 나가면서 9,10세기에 이르렀을 때 중앙아시아를 포함하여 이집트와 북 아프리카 지역이 이슬람 화(化) 되었다. 현재 무슬림은 전 세계 인구의 1/4에 해당하는 16억에 이른다. 최 근 미국 외교 전문지인 ‘Foreign Policy’에 의하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률을 보이는 종교가 이슬람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전통적으로 기독교가 강력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 유럽에 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사 실이다. 이렇게 유럽에 이슬람이 확장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슬림 인구 의 유입과 유럽의 저조한 출산율에 기인한다. 그래서 무슬림 인구의 다 량 유입으로 인해 유럽에서 각종 사회문제가 유발됨으로써 오늘날 프 랑스, 오스트리아, 덴마크, 네덜란드, 독일, 영국 등의 유럽 국가에서 반(反) 이민 정책을 고수하며 이슬람을 경계하는 정당이 점차 힘을 얻기 에 이르렀다. 위에서 언급한 지역들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나라들 중에 인도네시 아와 방글라데시와 태국과 인도에서 이슬람이 점차 그 세력을 확장해 나고 있으며 지난번 북경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의 서쪽 지방 자치구에 서 테러와 무력 행동이 수차례 발생한 것을 놓고 볼 때 이슬람의 무장 이 아시아에서도 점차 노골화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이슬람이 한국 사회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것은 한국의 근현대사에 있어서 개화기와 일제 점령기에 실크 로드, 아라비안나이트, 신밧드의 모험, 밸리 댄스 등의 대중문화의 옷을 입고 들어 온 것을 들 수 있다. 그러다가 한국전쟁 이후에 UN의 지원 아래 16개국의 연합군에 포함된 터키 군대가 ‘형제의 나라’라는 미명하에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이슬 람이 한국 사회에 침투하게 되었다. 최근에 발표된 ‘The Church around the World’에 의하면 지난 50 년 동안 기독교는 47%의 성장에 그친 반면 불교는 63% 성장하였고, 힌두교는 117% 성장한데 반해 이슬람은 무려 500%나 성장했다. 이슬 람의 성장에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히는 것이 자연성장인 인구증가에 의 한 것이다. 이는 이슬람 인구가 아주 높은 출생률 증가로 전 세계에서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 무슬림 금융의 한국 침투 2001년 9월 11일 뉴욕의 맨해튼에 있던 쌍둥이 건물인 세계무역센 터가 무슬림들에 의해 납치된 여객기 2대로 인해서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고, 이어서 또 한 대의 여객기가 미국의 심장부인 워싱턴 DC에 있 는 국방부 건물인 펜타곤을 파괴하였고, 마지막 한 대의 여객기가 땅에 곤두박질쳤던 그야말로 철저히 준비된 테러를 벌인 이후에 지금 세계 는 이슬람과의 대(對) 테러 전쟁 중에 있다. 그 후에 세계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에 빠져 들고 있다. IMF 이후에 한국 경제가 되살아나는 듯 하는 분위기도 완전히 역전되 어 지금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없는 불확실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세계경제를 주도하던 월가의 주식도 연일 하락하면서 고전을 면치 못 하다가 미국연방 준비제도이사회(FRB)가 세계최대 보험회사인 AIG에 게 850억불을 지원하고, 이어서 부시 행정부가 7000억불에 해당하는 사상 초유의 구제금융 법안 처리를 미국 하원에 요청하였지만 1차 표 결에서 안타깝게도 부결되었다가 2차 수정안이 가까스로 통과된 일련 의 사태는 이슬람과의 대테러 전쟁 중에 있는 오늘날의 세계경제가 얼 마나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능히 가늠해 볼 수 있다. 한국이 IMF 직후에 많은 외자 유치를 위해 온갖 힘을 쏟을 때 은 근 슬쩍 이슬람의 오일 머니가 한국 사회에 유입되었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한국에 이슬람 문화원과 이슬람 대학이 버젓이 자리 잡게 되었다. 당시 한남동에만 있는 이슬람 사원이 이제는 전국에 걸쳐서 부산, 파 주, 부평, 안산, 포천, 안양, 광주, 전주 등 8개에 이르고 있으며 그밖에 동암, 대구, 마천, 마석, 김포 등 전국에 걸쳐서 임시 사원이 50~60개 로 무질서하게 산재해 있다. 이렇게 한국 사회에 우후죽순 식으로 이슬람이 자리를 잡게 된 배 경은 IMF 이후에 많은 동남아시아의 불법 외국인 노동자들을 한국교 회가 사랑으로 감싸준다면서 보호해 준 것도 한 몫을 했다. 이것이 오 늘날 한국 사회에 엄청난 이슬람의 양산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한 때 3D 업종을 마다하지 않고 돈을 벌어서 본국에 송금 한다면서 물밀듯이 들어온 동남아시아인들 중에서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태국 등에서 몰려온 불법 노동자들 중에 상당수 무슬림들이 섞여 있었으며 그 중에 철저히 훈련된 이슬람 선교사들이 숨어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한국 사회에서 이슬람이 교묘하게 그 정체를 숨기고서 경제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오일 머니를 대량으로 유포하면서 공식적으로 한국 사회를 파고들었고 동시에 비공식적으로 불법 노동시장을 통해 한국 교회의 동정까지 받으면서 침투해 온 것이 이제는 한국 교회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까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심각하게 그 대책을 마련 해야 하는 중대한 시점을 맞이하기에 이르렀다. 2008년 10월 7일에 마포에 있는 가든 호텔에서 국내 최초로 이슬 람 금융세미나가 개최되었다. 이것은 부산광역시가 후원을 하고 재단법 인 한국혁신전략연구소가 주최하고 다산자기관리부동산투자회사와 넥서 스 투자회사가 주관한 모임인데 미국 발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를 계기로 한국 사회에서 투자 패턴의 방향을 바꾸려 는 시도 중에 하나이다. 이렇게 우리가 꾸란이 지시하는 대로 따르는 소위 샤리아 은행(Sharia Bank)에서 주도하는 이슬람 금융을 경계하는 가 장 큰 이유는 이슬람의 검은 돈인 오일 머니의 위력 때문이다. (2) 무슬림 금융의 함정 그러면 왜들 이렇게 난리들인가? 지난 이슬람 금융세미나에서 허남 식 부산광역시장과 이승일 한국은행총재가 기조연설을 하였다. 이후에 송종찬 삼일회계법인에서 ‘이슬람의 금융, 회계, 및 조세제도’ 소개와 이슬람 금융센터의 로슬란 이사가 ‘이슬람 금융 시스템 및 이슬람 금융 상품’ 소개가 있었다. 여기서 문제가 된 것이 향후 이슬람 금융을 한국 사회에 확장시키 겠다는 계획이다. 발표와 행사를 주관한 사람들 모두가 한국에 이슬람 금융센터를 건립하여 은행, 금융, 증권, 보험 등뿐만 아니라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이슬람 펀드도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더 나아가서 한국 내에 이슬람 금융 전문가를 양성하고 한국 기업들에 대해서도 직접 투 자를 벌여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 모두가 단순하게 생각하여 한국 기업 에 돈이 필요하니까 이슬람 금융으로부터 투자를 받는 것도 괜찮은 방 법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단순히 이슬람 채권이 몰려오는 것이 아니라 이슬람의 법인 샤리아 (Sharia)에 근거한 물량공세를 통해 한국 사회에 이슬람이 침투해 들어오 려는 치밀한 전략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파하고 있어야 한다. 머지않아 한국 경제는 무방비 상태로 오일 머니로 무장하고 있는 이슬 람 채권인 수쿠크(sukuk)에 굴복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슬람은 국가의 근간을 세우는데 필요한 실정법보다는 코란에서 가르치고 있는 종교법인 샤리아(Sharia)를 더 중요시한다. 인간사에 만연 되어 있는 금융기법에 대해서도 샤리아(Sharia) 법은 아래의 5가지에 대 해서 금지하고 있다. 이자수수 금지(그러나 실제로는 수수료라는 명목으로 이자를 다 받는다.) 도박사업 금지 원금보장 금지 위험부담과 불확실성 금지 술, 돼지고기 등의 매매 금지 이런 원칙을 가지고 이슬람 금융 채권인 수쿠크(sukuk)는 단기적인 투자보다는 5년 이상의 장기적인 투자를 미끼로 한국 기업을 공략하려 고 한다. 더구나 이슬람 금융 채권은 유럽이나 미국의 금융기관보다 약 1.5% 정도 더 싼 금리를 제공하면서도 담보설정을 하지 않는 등의 기 법으로 초기에 저렴한 자금을 막대하게 확보하려는 한국 기업의 정서 를 교묘하게 파고들 책략을 세워놓았다. 기업을 하는 사람치고 자산 규모와 담보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 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이것을 간파한 이슬람의 수쿠크(sukuk)는 기업의 장래성과 사회에 대한 기여도와 공헌도를 중시하여 담보 없이 파격적으로 저렴한 금리의 금융을 지원해 주는데 향후 많은 한국의 기 업들이 여기에 넘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대표적인 이슬람 금융기법인 수쿠크(sukuk)는 코란의 가르침인 샤리 아(Sharia) 법에 의거하여 이자나 담보를 받지 않고 자금을 조달하도록 설계된 채권이다. 예를 들면 개인이 집을 살 때 원금과 이자를 대신 수 수료로 상환을 받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교묘하게 이슬람 법망을 넘어 간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수쿠크(sukuk)가 발행되는 형태도 다양하다. 무라바하 : 이슬람 채권으로 집을 구입한 후에 채무자에게서 수 수료를 받고 빌려주는 형식을 취한다. 혹은 물건을 구 매자에게 넘긴 후에 수수료와 원금을 나누어서 받거나, 아니면 수수료만 먼저 받고 만기일에 물건을 매각한다. 무샤라카 : 이슬람 금융 기관과 기업이 사업에 공동으로 투자한 후에 일정부분의 수익을 나누어 갖는 방식이다. 무다바라 : 이슬람 금융 기관이 기업의 사업에 투자를 한 후에 배 당금을 받는 방식이다. 이 지 라 : 이슬람 금융 기관이 시설을 구입하여 임대료를 받고 설 비를 빌려주는 방식이다. 일종의 임대계약이다. 이상의 다양한 수쿠크(sukuk) 금융기법은 기존의 일상적인 이익 추구 와는 달리 이슬람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한국 사회에 침투해 들어온다 는 점에서 우리는 그 배후에 한국 사회를 이슬람화 하려는 의도가 숨 어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수쿠크(sukuk) 채권도 이미 인간사에 만연되어 있는 다양한 경제기법의 일환이지만 그 배후세력이 이슬람이기에 경계해야 한다. 문제는 당장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오 일 머니는 달콤한 유혹이 될 수 있다. 더구나 “외상이라면 소도 잡아먹 는다.”는 속담처럼 외상값을 돈으로 갚는 대신에 자기 집이나, 땅이나, 부인이나, 딸자식들을 종종 채권자들에게 넘긴 사례들이 빈번하였다. 이슬람 사회에서는 당장 먹을 것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거저 주다시 피 막대한 돈을 대주다가 기간이 만료될 때 원금과 수수료를 갚을 능 력이 없으면 돈 대신 부인이나 딸자식들을 강탈해 가는 이른바 인신매 매하는 일들이 많다. 더구나 이슬람은 일부다처제이기에 수쿠크(sukuk) 법에 의해 이자를 받지 않는 대신 그보다 엄청난 값에 해당하는 인신 매매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일들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누가 처음부터 자기 부인이나 딸자식들을 내놓을 아비가 있겠는가? 그러나 수쿠크(sukuk) 법이 이러한 것을 사실상 방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당장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담보 없이 거대한 돈을 빌려주고 만 기가 되었을 때 원금과 이자를 갚을 길이 막막해지면 빌린 돈의 대가 로 부인이나 딸자식들을 넘겨줄 수 있다는 점에서 수쿠크(sukuk) 법은 오늘날도 인신매매를 방조하는 폐단을 낳고 있다. 오늘날의 수쿠크(sukuk) 법은 기업이 사업용 자리를 마련하면서 막대 한 자금을 담보도 없이 사용하였다가 만기일에 사업이 어려워져서 모 든 기반이 송두리째 이슬람의 손에 넘어가게 되면 그 만큼 한국사회에 서 민족자본이 침식되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일제 강점기에 왜 독립투사들이 일본인들의 돈을 마다하고 비록 영세하지만 민족 자 본에 철저히 의존하였는지를 우리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통해서 깊이 깨달아야 한다. 일제 강점기에 독립 운동자금의 대부분은 독실한 기독 교인들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간이 돈에 매이는 것처럼 비굴한 것이 또 있을까? 우리 한민족의 문화적 가치와는 다른 이질적인 옷을 입고 다가오고 있는 것이 이슬람 의 금융기법인 수쿠크(sukuk) 채권이다. 당장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이슬 람 채권에 손을 대어서는 안 된다. 블룸버그 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적 으로 이슬람 채권인 수쿠크가 전년에 비해 75%난 급증했다. 이는 고유 가 시대에 오일 머니가 상당수 그 위력을 행사하였다는 증거이다. 이제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도 이미 이슬람 국가가 된지 오래되었 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와 같은 나라들이 아시아 국가들이지만 이 미 중동 문화의 옷으로 갈아입은 지 벌써 오래다. 최근 3년 동안 아시 아에서 수쿠크(sukuk) 채권의 3/4가 말레이시아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무 엇을 말하는가? 일본도 재무부 국제협력은행과 같은 국책 기관에서 G7 국가 최초로 수쿠크(sukuk) 발행을 선언하기도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누구 든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겠다는 결심을 새롭게 하여 야 한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리이다. 예수님께서는 맘몬 을 섬기든지 하나님을 섬기든지 선택하라고도 말씀하였다. 과거 한국의 기독교는 공산주의와 맞서서 싸웠다. 이제 이와 병행하 여 이슬람과 맞서서 싸워야 한다. 이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 을 부인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도 거부하는 이단적 정치적 경 제 집단이다. 오늘 이 시대에 검은 돈인 오일 머니를 쥐고 있는 이슬람 의 정체를 바로 알고 우리 모두 이슬람의 금융제도인 수쿠크(sukuk) 채 권에 맞서서 나가야 한다. 진리는 삶 속에서 불의와 맞서서 진실한 힘 을 발휘할 때 그 가치가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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