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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련은 다시 등장하며 그야말로 천하를 들쑤셔 놨다. 덕분에 대부분의 정파가 흔들렸고, 사파들이 그 기회를 틈타 고개를 쳐들었다.
그것은 무림맹이 사도련과의 직접적인 싸움에 가담하지 못한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
무림맹주의 집무실, 맹주인 독고운과 군사인 제갈중천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요즘 군사의 손녀가 성화라더니 좀 어떻소?"
독고운의 말에 제갈중천이 쓴웃음을 지었다.
"어제도 전서구를 받았습니다. 서두르라고요."
"허허, 그것 참 답답한 일이오."
"그러게 말입니다."
정말로 답답한 일이었다. 제갈중천도 이번 사도련과의 싸움이 얼마나 중요한지 충분히 안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 정천맹이 얻어갈 수 있는 이익이 얼마나 큰지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을.
"조금의 여유도 없소?"
"있긴 하지만 그저 생색만 낼 바에는 차라리 안 하니만 못합니다. 그냥 그런 여유들까지 모조리 사파를 제어하는데 쓰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끄응, 어렵군."
독고운은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무림맹에서 갈라져 나간 정천맹이 힘을 얻으면 결국 무림맹이 더욱 약화된다.
그리고 그렇게 정파가 둘로 갈라지면 차후 무림에 큰일이 벌어졌을 때 제대로 대응하기가 어려워진다.
지금처럼 고작 사도련 정도라면 차라리 이렇게 둘로 나뉜 것이 나을 수도 있지만,
간신히 신강과 청해로 몰아넣은 마인들이 들고 일어선다면 하나로 뭉치지 않으면 큰 낭패를 볼 것이다.
"그나저나 정천맹이 사도련을 물리쳐도 문제고, 그렇지 않아도 문제입니다."
제갈중천의 말에 독고운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 말일세. 그나저나 사도련에서 철강시를 쓴다는 것이 사실인가?"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황금련의 피해는 어느 정도인가?"
"상당합니다. 하지만 심각할 정도는 아닙니다. 사도련만 사라지면 금방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독고운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군. 황금련이 무너지면 천하가 혼란에 빠지지 않겠는가."
독고운은 다행스런 표정을 지었지만 제갈중천을 그럴 수 없었다. 황금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급격히 안색이 어두워졌다.
"황금련이 정천맹에 붙은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그들도 어쩔 수 없지 않았는가. 정천맹이 발 빠르게 움직이기도 했고, 아마 정천맹도 꽤 돈이 필요할 테니 그랬겠지."
제갈중천은 그 일에 대해서도 뭔가 냄새가 났지만 굳이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다. 지금은 그런 걸로 맹주의 심기를 어지럽힐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벌어진 일이고 결정된 거나 다름없는 일이다. 무림맹이 나서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차라리 알아서 대응책을 찾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그나저나 구대문파는 어쩌고 있나?"
"그들 역시 사파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강력합니다. 잘 움직이지 않아 그렇지 일단 움직이니 믿음직합니다."
"그럴 테지. 구대문파라는 이름은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니까."
"그나저나 지금쯤 싸움을 시작했겠군."
독고운의 말에 제갈중천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대답했다.
"부디 일이 잘 풀려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걱정하지 말게. 다들 무사할 게야. 자네 손녀가 어디 보통 아이인가. 그리고 같이 있는 사람들이 어디 보통 사람들인가. 검왕과 검마일세."
독고운의 말에도 제갈중천의 안색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검왕이 아무리 십대고수라 하지만 상대는 철강시들입니다."
제갈중천의 말에 독고운이 빙긋 웃었다. 제갈린이 그곳에 있으니 걱정이 큰 것도 당연했다.
"십대고수는 겪어 보지 않으면 그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없는 법일세. 그들은 인간의 범주를 넘어서는 자들이야."
"그렇게 말씀하시는 맹주님께서도 십대고수십니다."
"나는 끝자락에 간신히 이름만 걸치고 있으니 예외일세. 사실 무림맹의 맹주가 아니었다면 내가 십대고수라는 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허허헛."
독고운은 그렇게 말하며 잠시 말을 이었다.
"검왕은 십대고수 중에서도 특별하다네. 게다가 검마는 그런 검왕과 맞먹을 정도고,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독고운이 그렇게까지 말하니 제갈중천도 조금 불안감이 가셨다. 확실히 십대고수는 인간의 범주를 넘어섰다.
눈앞에 있는 독고운만 해도 제갈중천으로서는 감히 바라볼 수도 없는 경지에 이른 고수였다. 더구나 최근에는 더더욱 그 경지가 늘어나 감히 추측할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확실히 십대고수는 무공에 미친 경우가 많지. 그러니 이렇게 계속 강해지는 것이지. 검왕은 맹주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을 테니......'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더 안심이 되었다.
검왕과 검마가 힘을 합하면 그냥 십대고수가 아니라 엄청나게 강한 십대고수가 된다. 그러니 패룡도 허무하게 목숨을 잃은 것 아니겠는가.
제갈중천은 문득 제갈린이 보내왔던 서찰의 내용이 떠올랐다. 서찰에서 자신은 무조건 안전할 수밖에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적혀 있었다.
'그 녀석 참.'
그 서찰을 생각하니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저 꺼낸 말이라 생각한 것이다. 제갈중천은 단형우의 존재를 모르니 당연했다.
만일 제갈린 만큼만 단형우에 대해 파악을 했다면 훨씬 걱정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갈천악은 이를 갈았다.
"으드득! 검왕과 검마가 왜 같이 있는 것이냐!"
소리쳐 봐야 소용이 없다.
이미 함께 있는 것을 어쩌겠는가. 검왕과 검마는 과연 대단했다. 하나만 있어도 무적에 가까울 텐데 둘이 교묘하게 힘을 합하니 훨씬 더 무서웠다.
검왕과 검마 근처에 있는 흑전사들은 거의 힘도 제대로 못 써 보고 당하기 일쑤였다.
흑전사들은 기본적으로 고수를 상대하기 위한 검진을 익힌다. 헌데 검왕과 검마에게는 그 검진을 쓸 수가 없었다.
둘 중 하나만 있거나 둘이 각각 떨어져 있다면 그렇게 했겠지만 아쉽게도 그렇지 않았다.
"미치겠군."
갈천악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이미 갈천악 근처에 있던 정천맹 무사들은 피박살 난 지 오래였다.
십대고수는 아니더라도 그에 근접해 가는 고수였던 갈천악이다.
그런데다 흑전사가 되었으니 훨씬 더 강해졌다. 갈천악 스스로는 십대고수가 와도 이길 수 있다고 믿었다.
당연히 정천맹의 보통 무사들로 갈천악을 어쩔 수는 없었다. 그리고 떨거지 문파들의 고수들도 갈천악에게 무수히 죽음을 당했다.
갈천악은 다시 한 번 이를 갈며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꽤 떨어진 곳에서 벼락들이 쏟아지는 광경을 보고 말았다.
쩌저저저적!
무수히 벼락이 쏟아졌고, 그 벼락들은 사도련의 흑전사들을 유린했다.
"저건 또 뭐야!"
처음 예상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 정도로 고수들이 많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정천맹 정도는 충분히 쓸어 버릴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그 믿음이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그러고 보니 무영도 보이지 않는군."
갈천악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무영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사라졌을 수도 있었다. 아니, 그런 것이 분명했다.
평소에는 잘 돌아가지도 않던 갈천악의 두뇌가 맹렬히 회전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다른 꿍꿍이가 있었단 말이로군."
그 꿍꿍이는 사도련과 정천맹을 충돌하게 만드는 것이 분명했다. 그것으로 무영이 무엇을 얻을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의 의도대로 되고 말았다.
"무림맹도 박살내야 하는데."
갈천악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폐색이 짙어졌다.
철강시들이라도 데려왔다면 이렇게까지 밀리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철강시들은 무영의 말을 듣고 다른 곳으로 보냈다.
"젠장, 되는 일이 하나도 없군."
갈천악은 스러져 가는 부하들의 목숨을 바라보며 분노를 터트렸다. 그대로 분노가 폭발하니 사방으로 기가 휘몰아쳤다.
고오오오!
갈천악의 기세는 십대고수에 전혀 밀리지 않을 정도로 대단했다.
"다 죽여 버리면 그만이다!"
갈천악은 정천맹 무사들이 가장 많은 쪽으로 몸을 날렸다.
염혜미는 단형우 옆에 바짝 붙어서 두려운 눈으로 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차피 앞으로 무림인으로 살아가려고 결심한 이상 피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
처음 염혜미가 싸움터에 가겠다고 했을 때, 검왕의 반대가 극심했지만 검왕도 손녀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러자 검왕은 한 가지 조건을 내걸고 그것을 허락했다.
염혜미는 고개를 살짝 돌려 옆에 있는 단형우를 쳐다봤다. 검왕이 내건 조건은 바로 단형우와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이 사람이 그렇게 강한 걸까.'
염혜미는 검왕이나 검마는 물론이고 다른 일행들의 태도를 솔직히 모두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단형우는 고작해야 스무 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천재라도 시간의 벽을 넘어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십대고수라는 자들 역시 모두 천재들이다.
그런 자들보다 단형우가 강하다고 믿는 것은 쉽이 않았다. 염혜미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그냥 강하다고 믿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신봉한다는 점이었다.
'이 사람이 대체 누구기에?'
하지만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 물어본다면 대답해 주겠지만 들을 수 있는 대답은 염혜미도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
'쟁자수.'
단형우는 그렇게 답할 것이 분명했다. 새삼 하남표국이라는 곳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염혜미는 다시 전장으로 눈을 돌렸다. 일행이 싸우는 모습을 일단 봐 둬야 했다. 그녀의 눈에 제갈린이 들어왔다. 너무나 아름다운 움직임이었다.
제갈린은 얼굴만 예쁜 것이 아니라 움직임도 예뻤다. 그 아름다운 움직임으로 적을 현혹시키고 목숨을 앗아갔다.
하지만 아무리 제갈린이 백봉이라 불릴 정도로 대단하다지만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흑전사의 수가 너무 많았다.
"아......!"
염혜미의 입에서 안타까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흑전사 하나가 가세하는 바람에 제갈린이 순식간에 수세로 몰렸기 때문이다.
제갈린과 싸움에 끼어든 흑전사는 염혜미가 보기에도 엄청난 고수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제갈린이 위험했다.
흑전사의 검이 제갈린의 어깨로 떨어져 내렸다. 염혜미는 그 안타까운 광경에 눈을 질끈 감으려 했다.
번쩍!
염혜미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섬광과도 같은 벼락이 흑전사를 둘로 갈라 버렸다.
그리고 제갈린은 다시 공세로 돌아섰다. 그녀를 위협하던 흑전사가 사라졌으니 싸움이 쉬워졌을 것이다.
염혜미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단형우를 쳐다봤다. 하지만 단형우는 여전히 같은 표정, 같은 자세로 서 있을 뿐이었다.
검집에 검도 그대로 있었다. 결국 염혜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전장으로 눈을 돌렸다.
염혜미는 기의 전장 한가운데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그녀와 단형우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그것을 가장 먼저 의아하게 생각했어야 했다.
어쨌든 그 이후로도 염혜미는 일행을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일행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알 수 없는 벼락이 떨어져 일행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싸움이 거의 끝나갈 무렵 염혜미는 그 벼락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것을 단형우가 만들어 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단형우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천악의 눈에 핏발이 섰다. 주변에 있던 무사들을 또 모두 죽인 것이다.
아직 흑전사들은 남아 있었다. 갈천악은 자신이 조금만 더 열심히 움직이면 전황을 바꿀 수도 있다고 믿었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던 갈천악은 한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그 사내는 처음부터 갈천악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갈천악은 사내의 눈에 어린 비웃음에 또다시 분노를 터트렸다.
"죽여 버린다!"
갈천악은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사내, 천영은 그런 갈천악을 보며 기다렸다는 듯 검을 뽑았다.
"하아압!"
천영은 크게 기합을 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쩌엉!
갈처악의 검과 천영의 검이 부딪치며 강렬한 충격파를 만들어 냈다.
콰콰콰콰!
두 사람을 중심으로 바닥이 터져 나갔다.
쾅! 쾅! 쾅!
두 사람의 검이 부딪칠 때마다 거센 폭음이 터졌다. 그리고 사방으로 기(氣)의 파편이 날아다녔다.
갈천악과 천영의 싸움은 주변에서 벌어지는 모든 싸움을 멈추게 하고 말았다. 그만큼 둘의 싸움은 흉험했다.
어느새 어지럽게 섞여 싸우던 사도련의 흑전사들과 정천맹 무사들이 두 패로 갈라졌다. 그리고 양측의 염원을 한 몸에 받으며 갈천악과 천영의 검이 연방 부딪쳤다.
갈천악은 절망감을 느꼈다. 천영은 자신보다 훨씬 윗줄의 고수였다.
내심 십대고수가 와도 이길 수 있다고 믿었는데 천영에게 그 어떤 것도 통하지 않자, 허탈감이 밀려왔다.
천영은 시간을 끌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일 때까지.
모든 사람의 시선을 모았다고 생각한 천영의 검에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화아아악!
천영의 검에 어린 빛이 일순간 엄청나게 강렬해졌다. 사람들은 눈이 부셔 천영을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었다.
장내를 뒤덮은 빛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바닥에 떨어진 갈천악의 목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싸움은 끝났다.
비록 반쪽자리였지만 정사대전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정천맹주의 경이로운 신위를 똑똑히 목격했다.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에 거센 파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렇게 뇌리에 정천맹주의 신위를 새긴 사람들은 그를 새로운 십대고수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는 그럴 자격이 충분했다.
제갈린은 싸움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일행을 모았다. 어차피 서로 멀리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모으는 것은 쉬웠다.
사도련과 그렇게 치열한 싸움을 벌이면서도 단형우를 중심으로 일정 간격 이상으로는 절대 멀어지지 않았다. 단형우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래도 정천맹의 누구보다 많은 공을 세웠다. 물론 사도련주인 갈천악은 정챈맹주의 몫이 되어 버렸지만.
"어디 다친 사람은 없느냐?"
검왕의 질문에 일행은 동료들을 조심스레 살폈다. 아무도 다친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새삼 단형우의 능력에 감탄했다. 비록 가만히 서 있었지만 일행 모두 안전한 것은 전적으로 단형우 덕분이었다.
"다행이구나. 아니, 당연한 거였나?"
검왕은 슬쩍 웃으며 단형우를 쳐다봤다. 검마와 힘을 합해 싸우다 보면 자신을 잊고 만다.
참으로 묘한 일이었다. 검왕과 검마는 너무나 상성이 잘 맞았다. 마치 처음부터 합격술이라도 연마한 것처럼 둘의 움직임은 언제나 유기적이었다.
검왕과 검마는 오랜만에 느끼는 성취감 덕분에 얼굴이 약간 상기되었다. 이런 기분을 다시 느끼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그것도 모두 단형우 덕분이었다.
"이제 우리는 돌아가면 되는 것이냐?"
제갈린은 검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정천맹주와 했던 약속은 모두 지켰다.
그리고 사도련의 힘을 봤다. 이제 남은 것은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물론 그전에 흑전사들의 시체를 처리해야 했다.
사실 제갈린이 사도련과의 싸움에 참여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사도련의 시체를 모두 처리해야 해요. 불에 태워서 완전히 재로 만드는 것이 가장 좋겠지요."
제갈린의 말에 검왕과 검마가 흠칫 놀라 그녀를 쳐다봤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그렇게 판단했다면 그렇게 해야지."
어쨌든 확실하게 처리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제갈린 때문인지 검왕도 왠지 정천맹주에게 믿음이 가지 않았다.
"서두르는 게 좋겠구나."
검왕의 재촉에 제갈린이 서둘러 정천맹주에게 다가갔다.
"대승이네요. 축하드립니다."
제갈린의 말에 천영이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맞이했다.
"하하, 모두 그대들이 힘써 준 덕분이오. 정말로 대단한 분들이오."
천영은 사심 없는 표정으로 제갈린 일행을 칭찬했다.
제갈린은 감사를 잠시 표한 후, 서둘러 본론으로 들어갔다. 정천맹 무사들이 움직이려 하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흑전사의 시체는 불에 태워 버리는 것이 좋을 듯해오. 저희도 돕겠습니다."
제갈린의 말에 천영이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지만 그것은 모두 우리가 알아서 하겠소. 그런 일까지 폐를 끼칠 수야 없지 않겠소. 하하하, 그대들은 어서 돌아가 편히 쉬도록 하시오."
천영이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제갈린도 빙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폐가 될 것이 뭐 있나요? 그저 시체를 모아 태우기만 하면 되는데, 저희는 아직 여력이 남았으니 괜찮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갈린은 그렇게 말하고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알아서 일을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표한 것이다.
천영의 얼굴이 미약하게 굳었다. 거의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제갈린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가졌다. 정천맹주는 흑전사의 시체를 분명히 이용할 생각이었다.
"자, 서두르세요. 할 일이 모두 사라지기 전에요."
제갈린이 일행을 보며 재촉하자 일행 역시 좋지 않은 낌새를 눈치 채고 서둘러 움직였다.
정천맹 무사들이 시체를 나르기 시작했지만 제갈린이 나서서 그들을 통솔했다.
어찌 보면 정천맹을 무시하는 듯한 처사였지만 아무도 그녀를 제지하지 못했다.
흑전사와 수많은 시체가 산처럼 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체의 산에 불이 붙었다.
흑전사의 시체는 잘 타지도 않았다.
피부에 특수한 처리를 해서 단단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불에 내성이 있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태우니 결국은 타닥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갔다.
일단 타기 시작하니 재가 되는 속도도 빨랐다. 순식간에 불길이 커지면서 재가 되어 사방에 흩날렸다.
흑전사의 시체가 타는 모습에 천영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원래대로 되돌렸다.
흑전사의 시체는 모두 태웠지만, 사로잡은 사도련 무사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들도 철강시로 만들 수 있는 좋은 재료아닌가. 물론 죽은 흑전사들에 비해 그 수가 적긴 했지만 말이다.
거대한 불길이 반쪽짜리 정사대전의 마지막을 알렸다.
정천맹은 사로잡은 사도련의 흑전사들을 압송해 장사로 돌아갔고, 단형우 일행은 허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여행이 모두 끝난 것이다.
"정말로 여우같은 계집이군."
천영의 중얼거림에 옆에서 큭큭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큭큭큭, 천하의 천영이 한낫 계집에게 휘둘릴 때도 있었군. 큭큭큭큭."
천영은 무영의 비웃음에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두 사람은 마차 안에 앉아 있었다.
원래는 흑전사의 시체를 싣고 가려고 준비한 마차였지만 모두 태워버렸으니 쓸 곳이 없어졌다.
그래서 그것을 약간 개조해 천영을 비롯한 정천맹 수뇌들이 타고 가게 되었다.
"백봉을 한낱 계집이라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
"그래 봐야 계집은 계집이지."
천영은 무영의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무영의 시기심을 잘 알고 있었다. 무영이 시기하는 사람은 세 명이었다. 혈영, 월영, 그리고 자신.
혈영과 월영, 자신의 공통점은 회주의 얼굴을 직접 알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회주로부터 가장 신임 받고 있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무영은 항상 그 자리를 탐냈다.
"백봉이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마음에 드는 여인이로군. 내 짝이 되기에 손색이 없어."
천영은 검왕 일행과 함께 따라온 여인들을 떠올렸다.
비봉 당문영은 역시 아름답고 뛰어나긴 했지만 어딘가 모자라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우문혜의 미모는 압도적이었다. 세상 누구도 그녀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검왕의 손녀인 염혜미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제갈린은 다른 누구와도 달랐다. 그녀는 아름답고 지혜로웠다. 그리고 자신에게 모자란 뭔가를 채워 줄 수 있는 여인이었다.
"정말로 마음에 들어."
천영의 중얼거림에 무영이 인상을 찌푸렸다.
"허튼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허튼 생각? 그게 왜 허튼 생각이지? 정천맹이 제갈세가의 힘을 얻으면 회의 일에 도움이 되면 되었지, 해가 되지는 않아."
"흥, 어디 그렇게 되나 두고 보지."
말을 마친 무영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천영은 무영이 사라진 자리를 보며 비웃음을 머금었다.
"흥, 천박한 것. 방해할 생각이로군."
하지만 자신 있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원해서 이루어지지 않은 일은 거의 없었다.
그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은 회주뿐이었다. 천영의 얼굴에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일행은 하남으로 향했다. 더 이상 할 일도 없었고, 하남표국 일도 걱정되었기 때문에 조금 서둘렀다.
강서 백운산 자락에서 하남 허창까지 가야 하니 상당히 먼 길이었지만, 그들이 신법을 발휘해 서두른다면 생각보다 빨리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그들의 계획은 그랬다.
"다시 표국에 돌아간다고 생각을 하니 기분이 묘해지는군."
검왕의 말에 염혜미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하남표국은 어떤 곳인가요?"
"대단한 곳이지. 저런 놈이 쟁자수로 있는 곳이니 오죽 하겠느냐, 허허헛."
검왕의 말에 모두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하긴 정말로 대단한 표국이긴 했다. 단형우 정도 되는 고수가 쟁자수다. 물론 이름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뿐인가, 검왕 검마를 표사로 쓰고 있었다. 천하의 어떤 표국이 십대고수를 표사로 쓸 수 있겠는가.
"그나저나 너는 이제 슬슬 무림맹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느냐?"
검왕이 제갈린에게 물었다. 제갈린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직 괜찮아요. 그리고 할 일도 많이 남았는걸요."
제갈린은 그렇게 대답한 후, 염혜미를 쳐다봤다. 정확히는 염혜미가 들고 있는 천섬을 쳐다봤다. 아직까지 천섬에 얽힌 비밀은 무궁무진했다.
그것을 모두 밝혀내기 전에는 절대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물론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지만.
"그나저나 흑전사들을 정천맹에서 모두 데려간 것이 마음에 걸려요."
"걱정 하지 말거라. 그들도 보는 눈이 있으니 함부로 뭘 어쩌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아직 믿지는 못하겠지만 그들이 다른 일을 꾸민다고 확신할 수도 없는 일 아니냐."
"그건 그렇지만......"
검왕의 말이 옳다. 하지만 그래도 제갈린은 마음속에 이는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이대로 그냥 묻어 두면 나중에 정말로 큰일이 되어 돌아올 것만 같았다. 그런 불안감을 안고 있으니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일행들이 각자 그렇게 대화를 하고 있을 때, 단형우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가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한 번 더 해 볼 생각 있나?"
단형우의 말에 검왕과 검마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더 하다니? 뭘 말이냐?"
검왕은 그냥 태연히 받아들였지만 나머지 일행은 결코 그럴 수 없었다. 그들은 이미 한 번 겪어 보지 않았던가.
게다가 여기서 허창까지는 예전 유가장에서 남창까지에 비할 바가 아니다.
"고, 공자님, 그건 좀 무리일 것 같은데요."
우문혜가 말까지 더듬을 정도로 놀라며 반대했다. 당문영과 제갈린도 하얗게 질려서 급히 입을 열었다.
"맞아요. 단소협이 참으세요. 그냥 빨리 달려가면 되잖아요."
제갈린이 이렇게 당황하는 모습은 보기 드문 일이었다. 검왕과 검마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세 여인을 살폈다.
당호관과 영사는 단형우의 말이 떨어진 순간부터 뭔가가 떠오른 듯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두 사람은 아직도 생생했다.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내동댕이쳐졌던 그 절박한 기억이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단형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손을 꽉 잡으면 된다."
단형우의 말에 우문혜가 난감한 표정으로 일행을 쳐다보다가 냉큼 달려가 단형우의 오른손을 꽉 쥐었다.
어쨌든 최대한 단형우와 가까운 곳에 있어야 조금이라도 더 안전하다는 것을 지난번의 경험으로 깨닫지 않았던가.
우문혜의 행동에 일행이 깜짝 놀랄 틈도 없이 제갈린이 몸을 날렸다. 그리고 단형우의 왼손을 꽉 잡아 버렸다.
당문영은 그 광경을 보며 발만 동동 굴렀다. 이번에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지난번에도 손을 놓치지 않았는가.
영문을 알 수 없는 것은 경험이 없는 검왕과 검마, 그리고 염혜미였다.
"이게 지금 뭐 하는 겐가?"
검왕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제갈린은 손을 꼭 잡은 상태로 지난번의 일을 설명했다.
제갈린의 설명을 들은 검왕과 검마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이렇게 모두가 그렇다고 하지 않는가. 그리고 검왕은 예전 소주에 갔을 때의 일이 기억났다.
'그때 내가 잘못 느낀 게 아니었군.'
보면 볼수록 신기한 사내였다.
일행은 결국 단형우의 고집대로 단번에 이동하기로 했다.
제갈린은 일행 모두가 좀 더 안전하게 갈 수 있는 묘안을 짜냈다.
모두 단형우의 몸 한 곳을 꽉 잡고 이동하기로 한 것이다.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우문혜가 손을 놓고 단형우의 목을 끌어안았다.
남아 있는 여인들이 그 모습을 보고 얼굴을 붉혔지만 단형우도 우문혜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제갈린은 단형우의 손을 놓지 않으면서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그렇게 일행은 단형우의 몸에 매달렸다. 영사는 단형우의 다리를 붙잡는 치욕적인 자세를 취해야 했지만 전혀 불평하지 않았다.
떨어져 나가지 않는 것만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일행이 모두 몸에 달라붙은 것을 확인한 단형우가 슬쩍 미소를 지었다. 이건 또 이것대로 즐거운 일이었다.
갑자기 조설연이 보고 싶어졌다. 단형우는 제갈린이 계산해서 알려준 거리를 속으로 가늠했다.
"간다."
단형우의 말이 떨어지자 일행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이윽고 단형우가 한 발 앞으로 걸어갔다.
신강(新疆)의 끝 천산(天山).
천산에 우뚝 솟아 있는 천마성은 언제나 고요하다. 근처로 다가가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마치 아무도 살지 않는 것처럼 인간의 움직임을 볼 수 없었다.
천하 각지에 퍼져서 패악을 일삼던 마인들이 신강과 청해로 쫓겨난 지도 벌써 엄청난 시간이 흘렀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마인들은 항상 기름진 중원의 땅에 돌아가고 싶어 했다. 대부분의 마인들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천마성은 사실 그 때문에 만들어졌다.
천마는 오늘도 그 꿈을 가슴에 안고 천마성 가장 높은 곳에서 드넓게 펼쳐진 천산산맥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천맹? 이젠 별 떨거지 같은 놈들이 다 설치는구나."
천마의 말에 혈도객이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맞장구 쳤다.
"맞습니다. 하나로 뭉쳐도 시원찮을 판에 둘로 갈라졌으니 이제 더욱 쉬워졌습니다. 흐흐흐흐."
혈도객이 음흉하게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그 옆에 서 있던 환마(幻魔)가 고개를 저으며 끼어들었다.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닙니다. 정천맹은 뭔가 꺼림칙한 구석이 많습니다."
환마의 말에 혈도객이 인상을 찌푸렸다. 혈도객은 천성적으로 환마와는 전혀 맞지 않았다.
직선적이고 기분에 따라 행동하는 혈도객과 달리 환마는 마인답지 않게 항상 이성적으로 판단하려 노력했다. 물론 마기가 들끓으면 그도 어쩔 수 없었지만.
그런 환마의 말이니만큼 천마도 가볍게 넘기지 않았다.
"그래? 뭔가 좀 알아본 것이 있나?"
천마의 질문에 환마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정천맹주라는 자가 너무 수상합니다.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졌습니다. 게다가 실력이 상당합니다."
천마는 그때까지 창밖을 내다보다가 천천히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마기가 넘실거리는 눈으로 환마를 쳐다봤다. 환마는 천마의 기세에 눌려 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아는 것이 많구나."
"성의 정보 조직을 제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환마의 대답에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런 것에는 관심도 없었다.
누가 뭘 맡아서 어떻게 하든 천마가 알 바 아니었다. 천마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였다.
"그래도 정천맹에는 금마공은 없겠지?"
천마의 말에 환마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럴 것이라 생각됩니다."
"훨씬 낫군."
천마의 말에 포함된 의도는 명확했다. 환마는 더욱 깊이 고개를 조아렸다. 천마는 그런 환마를 지그시 내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검마는 뭘 하고 있지? 연락은 좀 있었나?"
"정천맹과 사도련의 싸움에 끼어들어 큰 공을 세운 모양입니다."
환마의 대답에 천마의 눈썹이 크게 휘어졌다.
"그놈이 미쳤군."
혈도객도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벌렸다.
"뭐 하는 짓이야? 표사가 된다고 하질 않나. 정사대전에 끼어들질 않나."
생각하면 정말로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검마가 누구인가. 천마성에서도 적수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강자다.
마인인 탓에 평가절하(平價切下) 되긴 했지만 십대고수나 다름없는 마인이다.
천마가 스산한 눈빛으로 환마를 쳐다봤다.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나?"
"허창에 있다고 합니다."
환마의 대답에 천마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건 뭔가 계산이 맞지 않는다.
"계산이 맞지 않는데? 정사대전에 참여했다고 하지 않았나?"
천마도 정사대전이 언제 어디서 벌어졌는지 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곳과 허창은 멀어도 너무 멀다. 하루 만에 오갈 수 있는 거리가 절대 아니다.
환마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어제 연락을 받았습니다. 강서성에서 순식간에 허창으로 간 모양입니다."
천마가 어이없다는 눈으로 환마를 쳐다봤다.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천마의 목소리에는 진득한 살기와 마기가 뒤섞여 있었다. 환마가 견딜만한 기세가 아니다.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전 사실대로 보고를 했습니다. 그리고 검마가 추가로 보낸 보고가 있습니다."
"검마의 보고?"
천마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검마는 보고 따위를 할 사람이 아니다. 방금 환마가 보고한 내용은 허창에 있는 세작들이 알아낸 정보를 받아서 정리한 내용일 뿐이다.
"말해 봐라."
"검마의 보고에 따르면 금마공에서 벗어나다고 합니다."
환마의 말은 천마와 혈도객의 표정을 대변에 바꿔 버릴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다, 다시 말해 봐라. 뭐라고?"
"금마공에서 벗어낫다고 합니다."
"어떻게?"
천마의 질문은 간단했지만 많은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아직 비밀은 밝혀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남표국이 있음이 분명합니다.
마지막 말은 환마의 추측이다. 하지만 천마는 그 추측이 옳다고 판단했다.
"큭큭큭. 금마공에서 벗어날 수 있단 말이지."
음산한 웃음소리가 방 안을 채워 갔다.
"크하하하핫!"
천마는 크게 웃었다. 웃음소리에 실린 극심한 마기가 방을 뒤흔들었다. 한참을 웃던 천마가 마기로 물든 눈을 빛내며 나직이 말했다.
"하남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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