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오르다 산에서 내려오다
김하임
이번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 반복되는 데모와 휴교령으로 자주 교문을 닫는 것이 힘들었던 우린 낭만보다 아픈 청춘이었다.
은하다방에 갔다. 약속하지 않아도 친구들을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동네 아지트였다. 쌍화탕에 엄지손톱만 한 달걀노른자를 넣어주던 한복차림의 마담은 몰려다니는 우리에게 친절했다.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이장희, 양희은, 박인희의 노래를 틀어주었다. 그들은 청바지와 통기타로 청년 문화의 상징이었다.
다방에 앉아 얘기하던 중 세 명이 산에 가기로 했다. 조금 먼 치악산이다. 차비, 쌀, 부식은 각자 준비물이고 함께 준비할 것도 나누었다. 버너와 코펠은 서웅이, 텐트는 승운이, 배낭과 회계는 나. 지금처럼 유명한 브랜드의 아웃도어를 입거나 편리한 등산 용구 없이도 산을 누비고 다녔다. 우린 젊었고 현실은 암울했다. ‘상아탑은 우골탑’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부모님은 힘들게 자식을 대학 보내며 미래에 희망을 걸었다. 그런데 최루탄, 보안사, 경찰서 연행, 군대 강제 입대라는 불확실성 시대에 청춘들이 방황하며 살아갔다. 산은 어쩌면 그런 우리들의 도피처였을지 모른다.
산세가 깊어 울창해서 좋았다는 서웅이의 기억을 믿고 그 장소를 찾아 떠난 산행이었다. 완행열차에서 내려 많이 걸었다. 온종일 산등성이를 누볐는데 그의 기억 속에 있는 멋진 장소를 찾을 수 없었다. 초가을의 해는 이내 지고 불빛 하나 없는 숲속에 어둠이 내려앉은 것이 한참 되었다. 나침판도 없이 기억만 믿고 따라나선 것이니 어련하겠는가. 새벽부터 청량리역에서 출발하여 기차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했을 뿐 몹시 허기졌다. 온통 새까만 숲속에서 적당한 장소를 정했다. 잠자리 밑에 펼치고 잘 낙엽을 모으고 서로의 목소리로 위치를 확인하며 텐트를 쳤다.
석유 버너를 펌프질하여 밤참 같은 저녁 식사를 겨우 마쳤다. 사방은 어둠속에서 깊음을 더해간다. 하늘에 떠 있는 조각달은 불빛이 되기에는 너무 멀었고 작은 손전등 한 개가 텐트 안에 있는 서로의 얼굴을 비춰 주었다. 그래도 무사히 이렇게라도 온 것이 대견하다며 기타를 꺼내 음을 맞추더니 낮은 소리로 노래 부르기 시작했다. 연가, 모닥불, 고래사냥, 아침이슬, 긴 머리 소녀, 한사람 등등 떠오르는 대로 마냥 불렀다. 이제 와 돌이켜보니 그때는 드러내놓고 하는 말들이 너무 조심스러워 노래 가사에 마음을 실어 담았을까. 정과 사랑과 반항을 산과 바다 어느 곳이든 모이면 기타 리듬에 자신들을 얹어 위로하고 위로받고 싶었던 것 같다. 기타 치는 한 사람만 있으면 부족한 게 없었다. 산속 어둠 속에서 우리는 흑석동 은하다방 DJ에게 하듯 신청곡을 청하며 노래를 불렀다.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이 자장가 되어 하루의 노곤함을 꿈속으로 연결해주었다.
꿈속에서 누가 텐트 자락을 젖히고 흔들어대며 내게 하늘을 보라고 했다. 제대로 떠지지도 않는 눈으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새까만 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들이 영롱했다. 돛대도 없이 흐르는 은하수가 유유했다. 지금 우리가 만나고 있는 별빛은 몇 광년의 시간을 지나 이곳에 도착한 것이라는 서웅이의 너스레를 들으며 밤하늘을 넋 놓고 쳐다봤다. 꿈이 아니다. 순간 움츠리며 산에 오르던 그 무엇이 확 펴지는 듯했다. 지금의 암담한 시간도 분명히 선명하게 보일 때가 올 것이라고 별들이 전하고 있었다.
몇십 년을 훌쩍 넘은 이야기이다. 얼마 전 책꽂이의 책을 정리하려고 이것저것 빼내며 들척이다 읽은 ‘영초 언니’가 지난 시대를 회상시켰다. 70년대는 본회퍼의 책을 읽으며 몸으로 앞장선 민주화의 헌신자들, 80년대는 무자비한 총격에 젊은이들의 절규를 돌멩이로 맞선 민주화 항쟁. 대중의 촛불로 이어지기까지 그 대가는 너무 컸다. 그 시대를 넘어 살아남은 이가 제주 올레길을 만들고, 사회 곳곳에서 뜻을 품고 활동하고 있음을 본다. 그러나 나와 동시대를 살며 고민하던 사람들이 때때로 매스컴에서 막 나가는 언행을 하며 탐욕에 추해진 인품을 보기도 한다. 굳어버린 땅처럼 권력에 메마른 완고함을 볼 때 안타까운 연민이 느껴진다. 이제 태극기와 촛불은 방향이 다를지라고 열정이 들끓고 애국심으로 정의를 토론하던 그 풋풋함은 기억할 것이다.
산에서 내려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눈앞에 보였는데 얼마나 돌아서 온 것일까. 그때 올랐던 산을 나는 의식 속에서 이제 내려온다. 기차에서 내려 걸으며 보았던 마을은 낮은 지붕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길을 묻는 친구에게 두터운 손을 들어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가리키던 노인은 미소가 없어도 따스하게 느껴졌다. 그 손은 우리 부모님의 손과 닮았기 때문이다.
잊은 줄 알았는데 대한민국이 그 손가락을 따라온 것이 자랑스럽다. 그렇게 가고 있었구나! 건강한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고 있구나.
첫댓글 암흑기에 학생이셨군요. 하지만 청춘은 어둠 속에서도 아름다워야겠지요.
부끄럽지 않은 선택이 자기라는 것을 알면 어디 있든 떳떳할텐데......
하임 샘의 글에 등장하는 추억의 다방과 쌍화탕,
그 시절에 유행하던 노래들이 반갑네요. 캠핑도구를 챙겨서 산행하는 모습도 친근해요. 그 시절에 '상아탑은 우골탑'이란 용어가 있었지요. 암울했지만 옛 시절의 낭만이 있었네요. 손길 따라 의식 속에서 내려오는 산길, 밝은 미래로 나아가는 긍정의 글, 잘 감상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