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그립니다
아버지를 나직이 불러봅니다. 얼마 만인가요.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저세상으로 떠나신 이후로 소리 내어 불러본 적이 없네요. 어쩌면 아버지와 나눈 소중한 추억을 일부러 외면했는지 몰라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죠. 언젠가 꿈속에서 뵙고 반가웠는데 아버지는 등만 보인 채 곧 떠나셨어요. 그때는 제대로 나누지 못했지만, 여전히 제 곁에 계시는 건 확실해요. 아버지의 모습을 자주 떠올리며 기억하니까요.
저희가 자랄 때는 바깥일로 바쁘신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더 자주 불렀어요. 항상 뒷전에 서 계시던 아버지. 직장에서 받은 월급으로 학교 등록금이나 용돈을 챙겨주실 때마다 당연하게 생각했어요. 저희를 온상의 화초처럼 보호해 주신 아버지의 그늘막이 얼마나 크고 넓었는지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키가 훤칠하고 멋쟁이였던 아버지는 자주 외출하셨지요. 아버지가 나들이하실 때 제 손을 꼭 잡고 다니셨어요. 시내 중심에 있는 다방에서 계란 노른자를 띄운 쌍화차를 사주셨지요. 다방 벽면에는 커다란 동양화 액자가 걸려 있어서 고풍스러운 분위기였어요. 아버지는 왜 어른들의 사교 장소에 나를 데리고 다니셨을까, 지금도 궁금한데 여쭤보진 않았어요.
"가끔 비상금이 필요할 테니 잘 간직했다 필요할 때 꺼내 써라" 책가방에 챙겨주신 파란 지폐는 지금까지 마음에 저축해뒀어요. 답답한 현실에 부딪칠 때면 그 지폐를 꺼내보며 위안 삼기도 해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제게 사주신 커다란 '왕자표' 크레파스를 아직도 기억해요. 새 크레파스를 처음 펼쳤을 때의 기분을 어떻게 표현할까요. 지금도 다른 어느 것보다 새 물감 샀을 때 마음이 더 뿌듯해요. 지금까지 그림과 친해진 이유라 할 수 있지요.
초등학교 여름 방학 때였어요. 언니, 오빠와 함께 아버지가 계신 해수욕장에 간 기억이 나요. 아버지는 하계 연수 중이었는데, 우리를 부르셨어요. 어머니는 어린 동생 돌보느라 과일과 함께 우리만 버스에 태워 보냈어요. 아버지와 만난 우리는 해수욕장의 분위기에 한껏 들떴지요. 뜨거운 백사장에 사람들이 가득했고 텐트도 즐비해서 여름 축제 분위기였어요.
해수욕을 위해서 모두 물가에 갔는데, 저는 갑자기 열이 올라서 숙소에 머물렀어요. 아버지가 제 이마에 손을 올려보시더니 모든 일정을 접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갔어요. 제가 아픈 것이 어머니 탓인 양 화를 내셨는데, 어린 나는 가족들에게 미안했어요.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때의 장면들이 선명하게 남아있어요.
아버지는 아내보다 자녀가 우선이었어요. 막내로 자란 아버지는 부모님을 일찍 여의셨고 형제들의 보살핌을 받고 자라셨지요. 저희에게 무한정의 사랑을 주고 싶었으리라 짐작합니다. 형님들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지만, 부부의 사랑 법은 잘 모르셨나 봐요. 사실 저희는 부모님이 서로 화목하게 지내길 더 원했거든요. 아버지의 사랑보다 더 높은 곳을 향해 종교에 몰입하신 어머니 마음도 헤아려집니다.
아버지가 직접 가꾸신 정원에서 계절의 정취를 누릴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그에 비해 우리가 말썽 피우거나 기대에 못 미칠 때는 어머니 탓을 하며 회를 내셨어요. 자녀는 주로 아버지의 앞모습만 보게 되지요. 언니 오빠는 아버지가 무서워서 피해 다녔대요. 셋째 딸인 저는 아버지 사랑을 많이 받고 따라다닌 기억밖에 없어요. 다른 형제가 용돈이 필요할 때면 제가 중간 역할을 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큰언니가 시집갈 때 혼수를 더 많이 해갈 수 있도록 아버지를 조르기도 했대요. 저는 잊고 있었는데 여고 친구가 그때를 기억하며 말해줬어요.
아버지 형제는 오 남매였는데, 형제간의 우애는 동네에서 소문날 정도였대요. 아버지가 형님들께 받은 사랑이 한 분 계신 누님께로 향했나 봐요. 남편과 일찍 사별하신 고모님 댁 가장 역할을 기꺼이 하셨어요. 고종사촌들은 외삼촌인 아버지를 따르며 의지했지요. 그 덕분에 어머니의 생활비는 항상 부족했어요. 아버지가 존경하고 따르던 형님이 돌아가셨을 때, 등 돌리고 눈물 흘리시던 모습이 떠올라요. 부모님 같은 세 분의 형님과 작별할 때마다 등을 돌리셨어요.
어머니가 큰 병에 걸리셨을 때 최선을 다해서 지켜주신 분은 아버지였어요. 어머니는 출가한 아들딸 대신 뒤늦게 남편의 보살핌을 받게 되었지요. 평소에 다정하고 따뜻한 남편을 갈구했던 어머니를 자상하게 돌보셨어요. 그러고 보니 아들이 없던 외할머니를 돌보시며 응급실에 드나들었던 기억도 떠오르네요. 어머니가 떠나셨을 때 아버지의 외롭고 힘없는 등을 보았어요. 제가 아버지를 잘 돌봐드리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는데, 결국 지키지 못했어요.
지금도 제 안에 살아계신 아버지, 미처 몰랐던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아버지가 제 손을 잡고 다니신 것처럼, 아버지의 손을 잡아드리지 못한 회한이 밀려옵니다. 지난날을 돌아보니 아버지의 외로운 등이 그려지네요. 그 등을 따뜻한 손길로 감싸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그동안 하지 못한 말을 이제라도 전하고 싶어요. 아버지, 정말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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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버지를 향항 절절한 사랑을 느낄 수 있네요. '아버지'의 큰 마음을 어찌 우리가 헤아릴 수 있겠어요.
다채로운 색깔의 크레파스 선물이 지송 선생님을 화가의 길로 인도했군요. 아버지를 존경하는 그 마음,
따사롭게 다가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