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설 조선 인조 대왕시절에 한양 안국방에 한 명사가 있으니, 성은 이요, 이름은 득춘이요, 자
는 문채니, 대대 명문 거족으로 일찍이 영문에 올라 벼슬이 이조참판 홍문관 부제학에 이르니, 공
의 위인이 충효공겸하고 인후 활달하니, 명망이 일국에 진동하더라. 그 부인 강씨는 집금오 강창
문의 딸이라. 소년 결발로 부부화락하여 금슬지락은 지극하나 성찬한 지 사십년에 일점 혈육이
없음을 매양 근심하여 명산대척에 기도하나 종사 사속이 없으니, 공이 부인을 대하여 탄식하여
가로되, " 우리 팔자 기박하야 늦도록 후사를 이를 자식이 없으니, 일후 지하에 돌아가나 무슨 면
목으로 선조를 뵈오리로. " 말을 마치매, 눈물이 옷깃을 적시니, 부인이 사죄하여 가로되, " 첩이
존문에 들어와, 우흐로 구고의 총애하시니, 감사무석이오나, 다만 슬하 적막함은 첩의 죄오니, 군
자는 첩의 불민함을 용서하시고, 명문거가에 요조 숙년를 재취하사 요행이 귀자를 얻으시면 첩의
몸이 칠거지약을 면할까 하나이다. " 공이 듣기를 다하고 위로하여 가로되, " 이는 다 나의 박복
함이라. 어찌 부인의 허물이라 하리오. " 부인과 의논한 후, 공이 금강산 명월암에 들어가 칠일
기도에 정성을 다하고 돌아왔더니, 하루는 공이 책사에 의지하여 조을새, 한 노인이 죽장망혜로
점잖이 들어와 손을 잡아 예하고 가로되, " 그대 전생에 죄 중하므로 세존이 밉게 여기사 무자이
게 하였더니, 그대 기도가 정성이 지극함을 하늘이 감동하사 귀자를 점지 하시나니 귀히 길러 문
호를 빛내라. " 하고, 소매 안으로서 한 기이한 구슬을 내어 주거늘, 공이 받아들고 치하하고자
하였더니, 문득 노인은 간데 없고, 그 구슬이 변하여 청의 동자가 되어 내당으로 들어가거늘, 공
이 문득 깨니, 남가 일몽이라 마음에 기이히 여겨 내당으로 들어가니, 부인이 맞아 좌정하매, 공
이 웃어 가로되, " 내 오늘 일몽을 얻으니, 여차 여차하기로 신기히 여겨 부인께 전하노라. " 부인
이 또한 미소하며 가로되, " 첩의 몽사와 일호도 다름이 없사오니, 신기하여이다. " 공이 기꺼 가
로되, " 우리 양인의 몽사 이 같으니 , 이는 하늘이 우리의 무자함을 불상히 여기사 귀자를 점지
하시도다. " 하고, 서로 기꺼하더라. 과연 그 달부터 태기 있어 십삭이 차매, 일일은 부인이 피곤
하여 자리에 누으니, 인하여 복통이 급하며 일개 옥동자를 낳으니, 이 떄 공이 부인의 산기가 급
함을 보고 황망히 약을 준비하여 마루 위에 거닐더니, 홀연 서기 반공에 영롱하여, 한 선년 나려
와 아기를 씻겨 누이고 부인께 고하여 가로되, " 이 아기는 하늘의 태백성이 인간에 나려와, 부인
슬하를 빛내거니와, 이 아깅의 배필은 금강산에 있으니, 부대 천정을 어기지 말으소소. " 하고 문
득 간데 없거늘, 공의 부부 기꺼하여, 아이를 보니 꿈에 보던 동자와 일호도 다름이 없는지라. 이
때는 갑진 사월 삽칠일 진시라 공이 크게 기꺼, 이름을 시백이라 하고 자를 명선이라 하여 장중
보옥같이 사랑하여 기르더니, 세월이 여류하여 시백의 나이 삼 세에 이르매, 총명이 뛰어나 온갖
서책을 보고도 아니, 공이 그 너무 숙성함을 염려하더니, 그 이듬해 춘삼월에 부인이 또 태기 있
어, 십이월 초순에 일개 옥녀를 낳으니, 공이 더욱 기꺼하여 여자를 자세히 보니, 요요작작 한 용
모 세상에 짝이 없을레라. 이에 이름을 시화라 하고 자를 선옥이라 하여 금지옥엽같이 기르더니,
점서에 모를 것이 없느지라, 이십 일 세에 이르매 옥안화용이 절승하고 숙덕이 겸비하니, 공이 거
문거족에 어진 낭재를 널리 구하여, 슬하의 재미를 보고자 하더라. 세월이 여류하여 시백은 나이
십육 세요, 시화 소저는 나이 십삼 세라. 이 때에 상이 공의 위인이 충후함을 아름다이 여기사,
특히 강원감사를 재수하시니, 공이 천은을 숙사하고, 삼일 후 발정할 새, 다만 아들을 다리고 부
인과 시화 소저를 작별 후, 수일 만에 감영에 도임하여, 정사를 밝게 다스리며 아들을 다리고 시
서를 강론하더라. 차설 금강산 상상봉에 한 처사가 있으니, 성은 박이요, 이름은 현옥이요, 별호는
유점대사라. 도학이 유명한 선비니, 그 부인 최씨로 동주한 지 삼십 년에 유점사 근처에 비취정을
짓고 세월을 보낼 새, 세상 사람이 존칭하여 비취선생이라 하며, 혹은 유점처사라 일컫더라. 일찍
두딸을 두었으니, 장녀는 십칠 세로되, 용모 박색인고로 출가하지 못하고, 아우는 일찍 출가한지
라. 박 소저 용모는 비록 추악하나, 천성이 현숙하고 도학이 무량하여 불러 앞에 앉히고 고금지사
를 의논하니, 소저의 대답이 대수 같아야 오히려 처사가 모를 일이라도 능히 해석하니, 처사 격절
히 탄상하야 가로되, " 이 아이는 세상에 기이한 재조라. 저와 같은 해석하니, 처사격절히 탄상하
야 가로되, " 이 아이는 세상에 기이한 재조라. 저와 같은 명헌 군자를 구하여 여아의 배필을 삼
으리라." 하더니, 마침 이공이 본도의 감사로 나려옴을 듣고 부이더러 가로되, " 생이 감영에 나
아가 이공을 보고 청혼하리이다." 부인인 웃어 가로되. "이 감사는 조정에 유명한 재상이라, 어찌
하여 촌부의 하염없이 딸과 연흔하고자 하리이까." 처사 웃어 가로되. " 부인은 염려말라. 이 두
아이는 천정한 연분이니, 부인은 두고 보소서." 부인이 처사의 신명함을 아는 고로 묵묵히 말이
없더라. 처사 이에 의관을 정제하고, 한 필 청려를 채질하여 감영에 이르러 통인을 불러 명함을
주며 가로되, "너의 사또께 드리라." 통인이 명을 듣고 들어가 명함을 드리고 처사의 말씀을 고하
니, 공이 의아하여 즉시 청하니, 처사 갈건포의로 천천히 들어오거늘, 공이 황망히 땅에 당나려
맞아올려, 예를 마치고 좌정한 후, 처사 무릎을 도사리고 가로되, "비인은 금강산에 거하는 박현
옥이라, 산야에 묻혀 있는 천한 몸으로 외람한 상공께 뵈옵은, 깊은 소회있어 감히 이르렀나이
다." 공이 눈을 들어 처사를 살펴보니, 선풍도골이 갈건아래 더욱 빛나니, 가히 범인이 아님을 알
지라. 공이 공경하여 대답하되, "복은 용렬한 필부로 외람히 성은을 입사와 일도 방백의 중임을
당하여 주야 누리더니, 이제 선생이 왕림하사 우매한 위인을 교훈하고자 하시니, 복이 알도 만민
의 시비를 면할까 하나이다." 처사 공경히 사례하여 가로되, "상공이 너무 포장하시니, 비인이 심
히 황감하오나, 소생의 천견으로 천리를 궁구하온즉 영랑이 소녀와 천정 배필이오나, 다만 부끄러
운 바는 용모 박색이 옵고 자질이 천한지라 감히 옥인군자의 배필됨이 외람하오나, 하늘이 정하
신 배필을 어길 길이 없는 고로, 감히 상공께 이러한 사연을 고하나이다." 공이 듣기를 마치매,
처사의 거동을 보고 말을 들으니 범인은 필경 아니라, 저의 말이 맹랑하지 아님을 알고, 이에 흔
연히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의 고명하신 지취와 영녀의 빼어난 자질로 용렬한 필부의 속된 자식
의 배필을 삼고자 하시니, 이는 복의 얻지 못할 영광이라 어찌 사양하리이꼬, 바라건대 존명을 받
드리이다." 처사 기꺼 가로되, "상공의 존귀하심으로써 비인의 말씀을 더러이 여기지 아니하시고,
한 말씀에 쾌히 허락하시니, 감격함을 이기지 못하리로소이다." 공은 또한 기꺼하여 아들을 부르
니, 이윽고 한 소년이 청포흑건으로 앞에 나아오거늘, 공이 명하여 처사께 뵈오라 하매, 공자 부
친의 명을 따라 처사를 향하여 공손히 재배하매, 처사 답례하고 눈을 들어 보니, 짐짓 만고영웅이
요 일대 호걸이라, 후일에 출장입상하여, 명망이 일국에 떨칠 기상이 은은하거늘, 처사 크게 기꺼
공을 대하여 기인한 아들 둠을 치하하니, 공이 너무 과도히 칭찬함을 사례하더라. 처사 이공을 향
하여 가로되, "아조 길일을 정함이 어떠하니이꼬?" 공이 허락하되 크게 기꺼하여 즉시 길일을 택
하니 명년 말월 이십 일이 대길한지라 그 날로 정하고, 주객이 기꺼하여, 술을 나아가 즐기다가
날이 저물매, 처사 몸을 일어 하직하고, 공자의 손을 잡고 후일 다시 봄을 이르고, 표연히 당하에
나려 돌아가니, 그 행보 경첩하야 진짓 신선이라. 이공이 아들로 더불어 그 간 곳을 바라보며 그
신기함을 탄복하더라. 처사 공의 부자를 청하여 좌정하매, 이윽고 시녀 석반을 올리거늘, 처사 저
를 들어 자시기를 권하니, 공이 흔연히 상을 나와 보매, 찬품이 정결하고 소탈하여 인간의 진수성
찬에서 나옴이 있거늘, 공의 부자 식사를 마치매 상을 물치고, 처사로 더불어 고금을 의논하여 이
윽고 담화하다가 밤이 깊으매, 처사는 내당으로 들어가고 공의 부자는 인하여 쉬니, 이튿날 공의
부자와 한가지로 조반을 파하매, 처사 흔연히 웃어 가로되, "날이 늦었으니, 영랑은 길복을 갖추
어 전안을 행하게 하소서." 공이 얼굴에 기쁨을 무르녹아, 아들을 명하니 길복을 입히고 내실에
들어가 행례함을 명하니, 처사 공자의 손을 이끌어 내당에 들어가, 교배석에 인도하니, 공자 천천
히 걸어나가 옥상를 마치매 공자 몸을 돌이켜 외당으로 나오니, 공이 기쁨을 못 이겨 아들의 손
을 잡고 처사를 향하여 사례하여 가로되, "선생의 고명하심으로, 자식의 용렬함을 불고하시고 천
금옥녀로 하여금 기례를 이루니, 복의 부자는 복이 손할까 두려워하나이다." 처사 사례하여 가로
되, 영랑의 선풍도골로써 여아의 추한 자질을 대하니, 비인의 마음에는 몸둘 바를 아지 못하오니,
다만 천정 연분이니 인력으로 면하지 못할 바를 아지 못하오니, 다만 천정 연분이니 인력으로 면
하지 못할 바를 아는 고로, 오늘 길례를 치름이라. 바라건대 존공은 하해같은 은덕을 드리우사,
여아의 추한 용모를 용서하시고 슬하에 양육하심을 바라나이다." 공이 흔연히 웃어 가로되, "선생
의 말씀이 너무 겸양하시는도다. 영녀의 용모 선생 말씀같아야 비록 불미한 곳이 있을지라도, 여
자의 도는 현숙함이 으뜸이요, 용색이 미려하며 옥안박명이 쉬우니, 선생은 조금도 염려하지 말으
소서."
그 후 수삭을 지내되, 공자 한 번도 소저의 숙소에 옴이 없으니, 공이 크게 성내어 공자를 불러
꾸짖어 가로되, "옛날 제갈 무후의 부인 황씨는 인물이 박색이로되 공명의 대접이 후하고, 필경
나와 별슬하며 유황숙을 도와 설계할 때에 황 부인이 팔문둔갑법과 호풍환우하는 술법을 무후에
게 전수하여, 삼국에 이름이 진동하였으니, 어찌 아름답지 아니하리오. 그런고로 황 부인의 이름
은 삼국에 떨쳐, 별호를 절홍부인이라 일컬었으니, 이는 천하의 뛰어난 부인이라, 네 옛 일을 미
루어 나의 어진 며느리를 박대하지 말라." 공자 부명을 거역치 못하고 박 소저 침소에 들어가되,
한편 구석에 옷 입은 채 누었다가 밝기를 기다려 나가 뿐이요, 한말도 접어하지 아니하니, 어찌
한심하지 아니하리오. 하루는 박 소저 아침 문안을 당하여 무슨 말을 하려다가 주저하거늘, 공이
물어 가로되, "현부 무슨 소회 있느뇨?" 소저 부복하여 여짜오되, "소부용렬하고 누추한 자질로
존문에 들어와, 모셔 구고께 불민한 일이 많사오니, 존전에 아뢰기 황송하오나, 소부의 본성이 정
히 유벅함을 즐기고 번화한 곳이 심히 괴로운 고로, 천한 소회를 고하옵나니, 후원에 한 초당을
이루어 거처함이 소원이오니, 대이은 허하심을 바라나이다." 공이 듣기를 다하고, 그 정지를 가긍
히 여겨 흔연히 허락하고, 즉시 가인을 명하여 후원에 십여 간 초옥을 이루고 기화요초를 많이
심어 소저의 많은 지취를 도우니, 소저 공의 은혜를 감격하여 다만 사례하더라. 이 때 국가 태평
하여 만민이 즐기니, 상이 성묘에 배알하시고 경사 과거를 배설하야 인재를 가리실새, 이시백이
과거에 응하고자 제구를 갖추어 과장에 나아가려 하더라. 이날 밤에 박씨 일몽을 얻으니, 후원 연
못 가운데 화초 만발한 중, 봉첩이 날아들고, 백옥연적이 홀연 변하여 청룡이 되어 노닐다가 여의
주를 얻어 물고 채운을 타고 옥경으로 향하여 오르거늘, 놀라 깨달으니, 침상일몽이라. 심히 괴이
히 여겨 밝기를 기다려 연못가에 나아가 보니 과연 연적이 놓였거늘, 자세히 보니 몽중에 보던
연적이라. 갖다가 간수하고, 즉시 계화를 불러 이르되, "소서헌에 나아가 상공께 잠깐 들어오심을
고하라." 계화 즉시 소서현에 나아가 공자께 소저의 말씀을 고하니, 공자 좋지 않아 가로되, "무슨
일이 있관대, 아녀자 장부의 과거길에 지체하게 하는다?" 계화 돌아가 그대로 고하니, 박씨 한참
잠잠하다가 다시 계화를 보내어 가로되, "여자의 도리에 가부를 앉아서 청함이 당돌하오나, 잠깐
들어오시면 장중제구에 드릴 것이 있으니, 한 번 수고를 아끼지 말으소서 하여라." 계화 마지못하
여 소저의 말씀을 자세히 고하되, 시백이 크게 노하여 큰 소리로 꾸짖어 가로되, "요망한 계집이
장부의 과거길을 이렇듯 방자하니, 어찌 통분하지 아니하리오." 말을 마치매, 분기 더욱 치밀어
노복을 호령하여, 계화를 잡아 나리와 수죄하여 가로되, "너의 주인이 향곡에 생장하여 비록 사체
를 모르나, 여자되어 장부의 거래를 마음대로 하니 어찌 해괴하지 아니하리오, 오늘에 너를 치죄
함은 너의 주인을 대신함이니, 이대로 전하라." 하고 말을 마치매, 매 삼십 도를 때려 물리치니,
계화 울며 들어와 지낸 말을 고한다. 박씨 낙루하며 가로되, "이는 나의 죄를 너에게 연좌함이니,
여자의 몸이 구차함을 알리로다." 말을 마치매, 길이 탄식하여 연적을 주며 전하여 가로되, " 이
연적의 물로 먹을 갈아 글을 지어 써 바치면 장원급제하여 입신양명하온 후 부모전에 영화 뵈고
문호를 빛내오리니, 첩 같은 사람은 군자에게 불과하오니 생각지 말으시고, 고문 귀족에 요조숙녀
를 택하여 평생을 화락하옵소서 하라." 계화 다시 나와 연적을 드리고 소저의 말씀을 고하니, 공
자 듣기를 다하고 연적을 받아 보니, 천하의 기이한 보배라, 자기가 너무 과도하게 하였음을 후회
하여, 이에 계화를 불러 앞에 세우고 얼굴빛이 화평하여 이르되, "너의 소저께 고하라. 생이 천성
이 급하여 소저의 말씀을 미안히 여겨 계화를 엄중히 다스리되, 소저는 심지 온순하여 연적을 보
내 고거 기구를 도우시니 심히 부끄럽사오나, 생의 행사를 분히 여겨 타문에 재취하라는 말씀은
너무 과도한가 하나이다 고하라." 계화 명을 받들고 들어와 공자의 말씀을 일일이 고하니, 소저
잠자코 대답이 없더라. 공자 그 날 고거 제구를 갖추어 장중에 들어가, 글제를 보고, 즉시 용연에
그 연적물로 먹을 갈아 일필휘지하니, 문부가점이라. 일천에 선장하고 방나기를 기다리더니, 이윽
고 방을 걸새, 장원은 서울 사람 이시백이니, 부는 이조판서 득춘이라 하였거늘, 공자 일변 놀라
며 일변 기뻐하더니, 이윽고 대 우흐로서 신래상이 장원을 보시매 만고 영중호걸이라, 용안에 희
색이 가득하사 이 공이 귀 자를 두어 국가의 보필이 됨을 찬양하시고, 어화와 청삼을 주시니, 장
원이 천은을 사례하고, 풍악을 거느려 궐문을 날새, 금포옥대에 표연한 풍채 만인총중에 뛰어나더
라. 장안 대로상으로 나아가 옥면 봉안에 어주를 반취한 거동이, 진짓 진세의 선랑이더라. 행하여
안국동 동구에 이르러, 서당에 올라 배례하고 부모께 뵈오며 일가친척에 예를 마치매, 외당의 치
하온 손들이 사래를 부르는 소리 진동하니, 공이 아들을 거느려 외당에 나오매 공의 친구 가득하
여 신래를 머물러 기꺼하며 치하하더라. 이 때 명나라 남경이 요란하여, 가달 등이 변경을 침노하
매 분분한 소문이 탑전에 이르니, 상이 깊이 근사하사 이시백으로 상사를 제수하시고 가라사대,
"경의 가합한 사람으로 군관을 정하여 택일 발정하라." 하시니, 시백이 임경업으로 정함을 아뢰니,
원래 임경업은 충주 사람으로 여력이 무리에 뛰어나고 지략이 광원한 지라, 일찍이 무과에 장원
을 하매, 벼슬이 마침 철마산 중군으로 있더니, 시백이 임경업으로 상사군관을 삼아 한가지로 남
경에 이르니, 이 때 명 처낮 소선 사신이름을 듣고 황자명으로 접빈사를 삼아 영접하는지라, 상
사 경업으로 더불어 접빈사를 따라 궐내에 들어가 탑전에 사배하고 표문을 올리니, 천자 보시고
좌우를 명하야 조선 사신을 다리고 예부에 나아가 연향하라 하더라. 마침 북방 호국 사신이 이르
러 표문을 올리거늘, 상이 보시니 대강 하였으되, "가달이 강성하야 호국 지경을 침노하매, 군사
강하야 거의 패망지경을 당한 고로 상국에 급함을 고하오니, 급히 인마를 조발하사 일국의 생명
을 구하여 주옵소서." 하였거늘, 천자 깊이 근심하야 호국에 보낼 장사를 택하고자 하시니, 접빈
사 황자명 아뢰어 가로되, "조선 상사 군관 임경업의 상을 보오니, 비록 외국 인물이오나 용맹과
지략을 겸비하와 가히 가달을 물리칠 만하오니, 이 사람으로 청병대장을 정함이 마땅할까 하나이
다." 천자 들으시고, 이시백을 가까이 인견하고 경업의 위인을 물으시니, 시백이 아뢰되, "경업이
약간 지략이 있사오니, 이런 중임을 당하지 못할까 하나이다." 명 천자 시백의 겸양함을 일컬으
사, 임경업으로 수군병마 대원수를 하시고 상방참마검을 주사, 영을 어기는 자어든 선참후계하라
하시며 삼만 군을 조달하야 주시니, 원수 사은하고 물러 군중에 나와 장졸을 연습하고 대군을 거
느려 여러 날 만에 호국에 이르니, 국왕이 경업의 인물이 웅장함을 보고 크게 기꺼하야, 바삐 맞
아 전상에 올려 상빈례로 대접하고 가달이 강성함을 이르니 경업이 가로되, "대왕은 근심말라. 내
비록 재조 없으나, 가달을 한 번에 파하리라." 하고, 대군을 거느려 적군과 싸워 삼십여 합에 이
르되 승부를 모르더니, 임원수 대갈일성에 원비를 느려 가달을 사로잡아 본진에 돌아오니, 호왕이
문무제신을 거느려 임원수를 맞아 상좌에 앉히고 대연을 배설하야 즐길새, 임원수 장대에 높이
앉아 군사를 호령하야 가달을 잡아들여 뜰 아래 끓이고, 수죄하여 가로되, "네 비록 무지한 오랑
케인들, 군사의 강함만 믿고 남의 지경을 범하는다?" 가달이 땅에 엎디어 사죄하여 가로되, "소방
이 천의를 모르고 호국을 침범하와, 장군께 죽을 죄를 지었사오니, 잔명을 살리시면 다시는 이심
을 먹지 아니하고 호국을 상국으로 복종하오리니, 장군은 용서함심을 바라나이다." 원수 좌우를
명하여 그 맨 것을 풀고, 장대에 올려 잔을 주어 위로 하여 가로되, "그대의 말을 들으니 전사를
후회한 듯한 고로 모든 죄를 사하나니, 다시는 망령된 마음을 먹지 말며 천도를 어기지 말고 일
국의 부귀를 누리라." 하거늘, 가달이 사례하여 가로되, "죽을 죄를 사하고 이렇듯 관대하시니, 은
혜는 백골난망이로소이다." 하고 원수를 향하여 백배 사례하고 호왕과 하직하매 잔군을 이끌어
본국으로 돌아가리라. 호왕이 원수를 향하여 크게 칭찬하여 가로되, "조선에 이런 명장이 있음을
과인이 몰랐도다." 하고 경업의 출중함을 사랑하여 부마 삼을 뜻이 있는 고로 내전에 들어가 왕
비와 의논하고, 공주를 불러 경업의 영걸한 풍도가 있음을 이르며, "부마로 간택하고자 하나니,
네 뜻이 어떠하뇨?" 공주 옥인을 숙이고 부끄러움을 머금고 대답하여 가로되, "부왕의 명교 마땅
하시나, 여자의 백년의탁을 범연히 못하오리니, 소녀 비록 식견이 없사오나 친히 보아 정하리이
다." 왕이 가로되, "그러하라." 하고, 이튿날 외전에 나가 임 원수를 보고 가로되, "과인이 장군을
사랑하여 청할 일이 있으니, 장군은 용납하라." 경업이 가로되, "무슨 말씀을 하고자 하시느뇨?"
호왕이 가로되, "과인이 한낱 공주 있기로 장군으로 과인의 부마를 삼고자 하여 공주에게 물은즉,
제 대답이 제 눈으로 정하겠다고 하니 의향이 어떠하뇨?" 원수 가로되, "삼가 봉해하오리다."하니,
호왕이 크게 기꺼 내정으로 들어가 이 말을 이르고, 높은 누각에 주렴을 드리우고 공주를 그것에
올려 보내니, 원수 벌써 공주의 상법을 짐작하였던지라, 목화속에 세 치 포를 돋우고 기다렸더니,
이윽고 들어오라 하거늘 경업이 들어가더니, 공주 이윽고 보다가 가로되, "키 세 치 더하니, 앞으
로 보면 천일지표요, 뒤로 보면 용봉의 형상이니, 영우은 영웅이로되 와석종신을 못할 것이오니
가히 아깝도다." 하거늘, 호왕이 부마 삼지 못함을 애닮아 하나 할 일이 없어 원수다려 밖으로 나
가라 하고, 호왕이 외당으로 나가 공주의 말을 이르고 놀라나, 부득이 원수를 이별할 새, 금은 보
화를 드려 상사하니, 경업이 받아 여러 장수에게 나누어 주매, 여러 장수하례하며 가로되, "소장
등이 한 사람도 상함이 없사와 원수의 덕택이 하해 같삽거늘, 이제 또 그렇듯 관대하시니 은혜
백골난망이로소이다." 하고 무수히 사례하니, 원수 호왕을 작별하고 대군을 거느려 여러날 만에
남경에 득달하여 천자께 복명하되, 천자 칭사하여 가로되, "조선에 이런 명장이 있음을 과연 몰랐
노라. 이제 경업의 이름이 삼국에 진동하리니, 가히 아름다운 일이라." 하시고 금은을 많이 상사
하시니 이시백과 임경업이 사은하고 즉시 떠나 여러 날 만에 서울에 도달하여 궐하에 나아가 탑
전에 재배하고 경업의 이름을 아뢰었더니, 상이 크게 기꺼 가라사대, "경업이 남경에 갔다가 이런
대공을 이루어 이름을 삼국에 진동하게 하니, 이는 과인이 고굉지신이로다."하사, 벼슬을 돋우시
니, 경업이 머리를 조아 사례하더라. 각설 박 부인이 공을 청하여 가로되, "기룡대 돌아간 후, 호
국 병세 점점 강성하여 군사를 이끌어 조선에 들어와 임경업을 죽이고, 우흐로 전하를 항복받고
자 하여 용골대 형제를 좌우 선봉을 삼아 북으로 돌아, 납월 이십팔일에 동대문을 깨치고 물밀
듯 들어오니, 부대 그 날을 어기오지 마시고 상을 모셔 광주 산성으로 급히 피하사 급한 화를 면
하옵소서. 그 뒷일을 소첩이 이곳에서 다 방비하리이다." 공의 부자 본래 박씨의 말을 신명히 아
는지라, 이에 응낙하고 그 때를 기다리더니, 십이월 이십사일에 이르러 시백이 상께 아뢰어 가로
되, "신이 처 박씨의 말이, 금월 이십팔일 밤에 호국이 북으로 돌아 동대문을 깨치고 들어오리니,
대전과 왕대비전과 세자대군 삼형제를 모셔, 공주 산성 중으로 피화하시게 하라 하오매, 신이 처
의 신명하옴을 아는 고로 전하께 아뢰옵나이다." 상이 놀라서 산성으로 피난하려 하시니, 영의정
김자점, 좌의정 박운학이 아뢰어 가로되, "도승지 이시백이 태평성대에 이런 패악한 말을 하여 성
심으로 요동하게 하오니, 바삐 이시백을 삭직하사 후일을 징계아옵소서." 상이 유예 미결하시더
니, 홀연 공중으로서 한낱 선녀 앞에 비수를 끼고 선연히 나려와 뜰 아래 배알하거늘, 상히 놀라
물어 가라사대, "선녀는 무슨 일로 이런 누지에 왕굴하느뇨?" 그 선녀 다시 재배하여 가로되, "신
첩은 이시백의 부인 박씨의 시비 계화옵더니, 박 부인이 신첩다려 이르되, 지금 성상이 간신 김자
점의 참소를 들으시고 유예 미결하시려니, 네 급히 들어가 나의 말을 아뢰어 산성으로 동가하시
게 하라 하더이다." 하고, 칼을 집에 꽂고 앞에 망두석을 들어 김자점, 박운학을 겨누며 꾸짖어
가로되, "김자점, 박운학은 들어보라. 너의 벼슬이 일품에 이르러, 일인지하에 만인지하에 만인지
상이 되었으되, 국은을 갚음은 생각지 아니하고, 나라에 직간하는 충신을 참소하야 도리어 모해하
려 하니 너 같은 간신을 어찌 용남하리오마는, 너의 죽을 기한이 아직 멀었기로, 우리 부인 말씀
이 죽이지는 말고 저이 등의 죄과만 수죄하고, 또 조선의 국운이 장원하니, 불칙한 뜻을 품지 못
하게 하라 하시더라." 하고 무수히 질욕하니, 김자점 등이 낯을 싸고 무료히 물러나더라. 계화 다
시 땅에 엎드려 아뢰어 가로되, "만일 이 밤을 지체하시면 대화 당두하리니, 신첩의 부인의 말을
어기지 마옵소서."하고, 표연히 몸을 일어 돌아가거늘, 상이 심히 신기히 여기사 이에 이시백으
로 이조판서 광주유수를 하시사, 내전과 세자 대군을 거느려, 이시백으로 호위하라 하시고 산성으
로 가려 하시더라. 원래 망부석은 태조대왕 즉위시에 일등 석수를 불러 만들고 세운 것이니, 그
무게가 천 근이라, 세상에 드는 사람이 없더니, 조고마한 삼 척 여자 드는 것을 보고 만조 공경이
다 놀라 헤오되 박씨의 시비 저러하니 그 상전의 도량과 용량을 어이 측량하리오 하니, 김자점
등 간신이 다 퇴조하여 나가고, 그 남은 백관은 어가를 호위하여 산성으로 나가더니, 과연 백성의
전언을 들으니, 호병이 도성에 들어와 백성을 살해하며, 궐내에 들어가 수직하는 관원을 베이고
재산과 부녀를 탈취하니, 만성 인민이 병화를 피하여 도로를 메웠거늘, 상이 들으시고 크게 놀라,
창화하신 중에 박 부인의 지감과 충성을 기특히 여기사, 시백을 불러 무수히 찬양하시더라. 이
때 용골대 대병을 거느려 도성에 이르러 보니, 국왕이 광주로 피난하였거늘, 분함을 참지 못하여
용홀대로 도성을 지키고, 스스로 철기 오천을 거느려 물밀 듯 나가 송파를 건너 평원 광야에 진
세를 이루고, 이에 산성 남문을 에워싸고 크게 외어 가로되, "죽기를 두리거든 빨리 문을 열어 항
복하라." 하거늘, 수문장이 황망히 들어가 문을 열라 하니, 전하는 바삐 군졸을 내어 도적을 방
비하소서." 상이 놀라 가라사대, "이는 하늘이 망함이로다. 사백 년 왕업을 과인에게 이르러 망할
줄 어찌 뜻하였으리오."하시고, 용루를 흘려 소매를 적시거늘, 이시백이 아뢰어 가로되, "전하는
과히 근심 말으소서. 이는 다 천수라 인력으로 어이하오리까. 제 아무리 강성하여도 산성 사문이
견고하니 간대로 범하지 못하오리이다." 하고, 백관이 호위하야 성심을 위로하더니, 문득 방포 소
리 천지 진동하여 무수히 철기 사면으로 철통같이 에워싸고 사다리를 놓고 일시에 올라 성중으로
향하여 총을 놓으니, 철환이 비오듯 하거늘, 만성 인민이 자상 천답하여 달아나고 호곡하는 소리
성중에 들리는 지라, 상이 경황하사 아모리 할 줄 모르시더니, 홀연 공중으로서 크게 외어 가로
되, "성상은 과히 근심하지 말으시고 적군과 화친하소서. 용골대 필연 세자대군 삼 형제 분을 볼
모 잡아가오리니 망극하오나, 사직의 위태함을 면하게 하소서. 국운이 불길하와 호국의 침해를 바
다사옴은 다 운수라 면할 수 없나이다. 신첩 다른 사람 아니오라, 광주 유수 이시백의 처로소이
다. 신첩이 한 번 나아가 칼을 들면, 용골대의 머리와 호병 삼만을 풀 베듯 할 것이로되, 천의를
어기지 못함이오니, 신첩의 죄를 사하옵소서." 상이 신기한 여기사, 들에 나려 공중을 향하여 무
수히 칭사하시고 적군과 화친을 청하니 용골대 화친을 하고, 세자대군과 왕대비전을ㄹ 다려 광주
를 떠나가니라. 이 때 박 부인은 모든 친척과 충신열사의 집에 통기하야, 피화정으로 피신하게 하
니라. 화설 전 영의정 김자점이 이시백과 임경업을 시기하야 해하고자 할 새, 먼저 경업을 해하리
라 하고, 어명이라 거짓 일컬어 경업을 형벌을 중히 하야 전옥에 가두고 장차 죽이기를 꾀하니,
세자, 경업이 자점의 해를 당함을 아시고 참연히 여기사, 전옥으로 가려하사 전지를 나리오니, 전
옥 문 앞에 홍살문을 증수하야 세우고 거동하기를 대령하였더니, 만조간하야 가로되, "조정 신하
를 보시려 전옥에 친행하심이 없사오니, 바라옵건대 전하는 깊이 살피소서." 세자 그러히 여기사
중지하시니, 이 때에 경업은 형벌을 별도로 더하야 기묘삼월 이십육일에 명이 다하니, 나히 삼십
이세라. 하루는 상이 침석에 의지하야 계시더니, 비몽사몽간에 경업이 일시에 피를 흘리며 걸어오
며 고하야 가로되, "신이 생전에 지성으로 성상을 섬기고자 하였더니, 시운이 불길하야 김자점의
해를 만나, 일신이 성한 곳이 없이 중상을 입어 몸을 망하오니, 어찌 통분하지 아니하리이꼬, 바
라옵건대 선상은 신의 일신을 애휼하사, 역적 김자점을 죽여 원수를 갚아 주옵시면, 신은 죽은 혼
백이라도 충성을 다할까 하나이다." 하고 울며 가거늘, 상이 놀라 다시 듣자고 하시다가 번드쳐
깨치시니 남가일몽이라. 상이 몽사를 의심하사, 이시백을 명초하사 경업의 일을 물으시니, 시백이
복지하야 눈물을 흘리며, 자점이 음흉하야 경업을 따려 전옥에 가두매, 장독이나 원통히 죽음을
아뢰니, 상이 크게 노하사 자점을 금부로 나려 엄중히 문초하시매, 전후 죄상이 드러나는지라, 상
이 더욱 노하사, "자점을 군기신전에 처참하야 머리를 각 읍에 돌리고, 경업의 가속에게 자점의
일신을 내어 주어 임의로 복수하게 하며, 처자를 교하고 가장집물 적몰하라." 하시니 가히 원통하
다. 자점이 일국의 여의정으로 부귀가 족하거늘, 흉모를 꾀하다가 몸을 온전히 못하니, 혼백인들
어데가 용납하리오. 이 때 이시백이 전교를 받자와 자점의 죄목을 나타내고, 일신을 결박하야 신
전에 세우고, 먼저 목을 버히고 몸을 찢으니, 경업의 권솔이 따라들어 지점의 살을 씹으며, 간을
내어다가 영위에 제사하야 설원하니라. 이 때 상이 경업을 애연히 여기사, 예부에 전지하야 충신
문을 세우라 하시고, 벼슬을 추증하야 대광보국의 정부 영의정 세사자를 하시고, 시호를 충렬공이
라 하고 국구의 예로 장사하라 하시며, 그 자식에게 벼슬을 주어 기복출사하게 하시고, 제문을 친
필로 지으사 예관을 보내어 치체하시며, 죽은 후 십년까지 영의정의 녹을 누리게 하시니, 성덕이
하해 같더라. 이 때 어후 미녕하사 추구월 초순에 승하하시니, 재위 삼십 이년이라. 만조 상사를
발하고, 세자 즉의 하시니, 시년 이십 구 세라. 세상이 태평하야 길에 빠진 것을 줍지 않고 산에
도덕이 없고 밤에 문을 닫지 아니하며, 거리거리 격양가를 부르더라. 시백이 이러한 태평 시절에
일국 재상이 되어 음양을 다스려 사시를 순하게 하며 백성을 인의로 인도하니, 공의 이름이 일국
에 진동하고, 그 아들 희인 형제 다 급제하야, 하나는 평안감사를 하고 하나는 송도유수를 하매,
양인의 정사 청백하고, 자손이 각각 십여 인이되, 개개 옥수 기린 같아서 노승상 안전에 있어 재
롱으로 세상을 보내더니, 노승상이 우연히 병을 얻어 알지못하고 인하여 별세하니, 승상 부부 호
천망극하야 주야로 애통함을 마지 아니하더니, 대부인이 이어 별세하니, 시년이 팔십삼 세라. 공
의 부부 일시에 천붕지통을 당하매, 더욱 애통하야 혼도하였다가 겨우 음식을 나와 기운을 진정
하고 상인이 다다르매 예로써 선산에 장사하니라. 상이 들으시고 비감함을 마지 아니하사, 예관을
보내어 치제하시고, 인하야 공을 편전으로 부르시어 용모 쇠로함을 보시고 심히 근심하사 위로하
시니, 승상이 천은을 황공하야 부복 사은하니, 상이 공이 너무 비창하야 함을 보시고 가라사대,
"경의 괴로운 직책을 갈아 봉조하를 하이나니, 조회에 참례하지 말고 고당에 한가히 있어 자손의
영효를 받으라." 하시고, 회인의 벼슬을 도도와 이조판서를 하시고, 희기로 도승지 형조참판을 하
이사," 불일 상경하야 과인의 바람을 저바리지 말라."하시니, 양공이 궐하에 나아가 사은하온대,
상이 가로되, "경 등은 충성으로 직책을 다하라." 하시되, 양공이 즉시 퇴좌하야 집에 돌아와 공의
부부께 뵈옵고, 일가 친척을 청하야 여러 해 그리던 정회를 펴니라. 이 때 , 이 공 부자 나라에
충성을 다하고 자손을 교훈하야 부귀를 누리더니 이러구러 공의 나이 팔십이 지나되, 기운이 강
건하야 강장한 소년을 당하더니, 추구월 망간에 이르러 월색이 명량하니, 공이 부인으로 더불어
완월대에 올라 남녀 자손을 좌우에 앉히고, 수작을 열어 즐길 새, 공이 스스로 잔을 잡알 두 아들
을 주어 가로되, "내 소년 적 일이 어제 같더니 어느 사이 팔십이 지나니, 세상사 일장춘몽이라
어찌 한심하지 아니리오. 우리 부부 세상 연분이 다하매, 장차 너희들을 영결하고자 하나니, 너희
두 사람은 조금도 설워 말고 자손을 거느려 길이 영화 부귀를 누리라." 두 아들이 망극한 말을
받아오매, 황황망조하야 슬픈 눈물이 앞을 가리오니, 잔을 받아 마시려 하나 가슴이 막혀 잔을 놓
고 울기를 마지 아니하거늘, 공의 부부 정색하고 꾸짖어 가로되, "사람이 세상에 나매, 일생 일사
는 면하지 못할 일이요, 네 아비 나이 팔십이 지나고, 관록이 일품에 이르고, 자손이 번성하야 문
호를 빛내니, 지금 죽은들 무엇이 원통하리오. 너희 등은 무익한 슬픔을 일으켜 자손의 민망한 정
지를 돌아보지 아니하느뇨?" 말을 마치매 안색이 심히 좋지 않거든, 두 아들이 황공하야 안색을
고쳐 사죄하고 다시 모시니 공이 모든 손자를 면면이 가차하고, 인하야 상을 물리라 하고, 부부
양인이 침석을 바로하고 세상을 버리니, 이 판서 형제 발상하야 애통함을 마지 아니하고 슬픈 기
운이 온 집에 진동하더라. 상이 들으시고 또한 비감하사 예관을 보내어 치제하고, 부의를 두터이
하시매, 시호를 문충공이라 하시고, 박씨부인으로 충렬비를 봉하야 추증하시더라. 계화도 이에 죽
으니, 이 판서 형제 더욱 설워하나, 상례를 차려 입관 성복하고 길일을 가려 선산에 안장하고, 판
서 형제주야로 여막에 거하야 효성으로 삼년을 지낸 후에, 상이 그 충효를 아름다이 여기사 다시
이조판서의 중임을 맡기시니, 공의 형제 기특한 충성으로 임금을 섬겨 벼슬이 일품에 이르고, 자
손이 대대로 충효를 다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