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어전쟁/221115/박찬석
보어는 농민이란 뜻이다. 포르투갈 다음으로 아프리카에 진출한 네덜란드인은 아프리카 남단에 정착했다. 화란동인도회사(Dutch East India Company) 직원들이다. 17세기부터 정착한 네덜란드인 후손들을 보어(Boer)인 이라 한다. 아프리칸스어를 쓴다. 들어보면 독일어 네덜란드어 영어가 섞인 언어 같다. 남아프리카 지방에서 쓰는 언어이다. 보어 전쟁은 대영제국 전성시대 일어났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120년 전에 전쟁이 있었다. 앙글로 보어(Angle-Boer War)전쟁이다. 케이프 영국식민지(Cape Colony)와 보어 국(South African Republic과 Orange Free State)간의 전쟁이다. 1889년-1902년 3년간이다.
나폴레옹 전쟁(1814년)이 끝이 나고, 네덜란드가 혼란했던 시기 영국이 진출했다. 영국 동인도회사(British East India Company)를 설립했다. 대영제국이 아프리카 남단으로 진출하자, 케이프에 살던 화란인은 힘에 밀려 동북쪽, 발(Vaal)강과 오렌지(Orange)강 유역으로 나갔다. 그 지역에 살던 줄루(Zulu)족은 더 열악한 환경으로 밀려났다. 잡혀 노예가 되었다. 보어인은 농사를 짓고 목축을 했다. 영국인은 케이프 지역을 차지했다.
1886년에 보어인이 살던 킴벌리(Kimberly)에서 다이아몬드와 비트바테르스란트에서 금이 발견되었다. 유럽인들이 전 세계에 금을 찾아 헤매던 시절이다. 소문을 듣고 외국인(Uitlanders)이 대거 들어왔다. 주로 영국인이다. 금을 찾아 국경을 넘어 들어오는 영국인이 보어인 보다 더 많아졌다. 수가 늘어난 이방인이 원래 살던 보어인과 같은 권리를 요구했다. 영국인과 보어인 사이 갈등이 일어났다. 평화적 해결(Bloemfontein Conference)을 시도했다. 실패했다.
보어국 대통령, 쿠루거(Kruger)는 영국 군대는 48시간 이내로 떠나라고 최후통첩을 했다. 영국은 No 했다. 영국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했다. 1899년 12월이다. 런던의 언론, 더 타임스(The Times)지와 가디언(Guardian)지는 코웃음을 쳤다. 당시 대영제국은 지금의 미국이다. 보어군대는 정식 군대도 아니고 민병대 수준이다. 제복도 없고 집에 입던 옷이 군복이고, 장교가 없어 투표로 지휘관을 뽑았다. 전쟁이 시작되자 예상외로 모든 전선에서 영국군이 밀렸다. 대소 20회 전투에서 영국 정규군이 모두 참패를 당했다. 보어군은 농민들이지만 가축을 보호하기 위하여 집집마다 성능 좋은 모젤(Mauser)총을 갖고 있었다. 맹수 찾아다니는 사냥꾼이고, 매복하고 조준사격을 하는 명사수들이었다. 방향만 보고 대충 쏘아 대는 군인과는 달랐다. 평균 사상자가 영국군대 보어군이 10:1이었다.
10만 영국 정규군은 2만 여명의 민병대에 당하고 있었다. 체면을 잃은 대영제국은 총동원령을 내렸다. 식민지에서 병력을 차출했다. 영국 본토는 물론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인도에서 병력을 보냈다. 50만 대군이 되었다. 군수품도 지원을 받았다. 영국군은 반격을 하여 보어군의 수도 프레토리아를 점령했다. 보어 족 쿠루거 대통령은 망명가고 전쟁은 끝난 것처럼 보였다. 보어군은 게릴라전으로 저항했다. 군수창고를 방화하고, 철도를 폭파했다.
영국의 대응은 기가 막힌다. 게릴라의 근거지가 되는 농촌 마을을 모두 불 질렀다. 초토화(scorched to earth)작전이다. 마을에 남아 있는 보어의 유가족 부녀자와 아이들을 집단수용소에 가두었다. 수용소 민간인은 대부분 영양실조와 병들어 죽었다. 영국에 대한 국제적 비난이 쏟아졌다. 게릴라의 근거지를 잃은 보어군은 저항하다가 1902년 항복했다. 오렌지자유국, 남아프리칸 공화국과 나탈(Natal)을 영국 식민지로 편입시켰다. 1910년 남아연방(Union of South Africa)이 되었다가 1961년 남아프리카공화국(Republic of South Africa)이 되었다.
영국군은 1856년 세계대전 급인 크리미아 전쟁 전사자 1만7천명 보다 더 많은 2만6천명이 죽었다. 보아군 희생자 6천명보다 4배가 더 많은 숫자이다. 수용소 굶어 죽은 보어인은 4만6천명이다. 전쟁을 건 보어군도 전쟁에 이긴 영국군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은 죽고 재산은 불탓다. 영국은 이겼지만, 희생이 커서 전쟁에 진 것 보다 못한 승리였다. 피로스(Pyrrhic Victory) 승리라고 한다.
어떤 전쟁에서나 교훈은 있다. 남아공 보어전쟁은 금과 다이아몬드를 두고 백인들 간의 전쟁이었다. 금은 백인이 가졌다. 평화적으로 해결 할 수 있었다. 애국자들 때문에 전쟁을 해야 했다. 국가를 만들면 전쟁을 하고 싶어 하는 본성이 생기는 모양이다. 모든 국가는 나쁜 국가이다. 좋은 국가는 없다. 미하일 바쿠닌(M. Bakunin)은 무정부주의자(Anarchist)이다. 어떤 형태든 국가를 만들면 전쟁을 하게 된다. 국가가 있는 한 국제 간 전쟁은 피할 수 없다. 명언이다. 대한민국도 나쁜 나라이다. 쿠르드족을 보호하기 위하여 이라크에 파병했고, 쿠르드족을 토벌하는 튀르키예에 K9 자주포를 팔았다. 병 주고 약주고 했다.
그림 Cape 영국식민와 동북쪽 Orange Free State와 Transvaal 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