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야마 상징인 오카야마성
일본 교통의 요충지 오카야마(岡山)
혼슈 남서쪽에 있는 오카야마(岡山)는 철도와 도로가 사방으로 뻗어 있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더구나 1988년에는 시코쿠를 연결하는 세토(瀨戶)대교가 완공되었으니 일본 교통의 중심이 된 것이다.
히로시마 역에서 히카리호를 타고 도착한 오카야마역 앞에는 모모타로(桃太郞) 동상이 서있었다. 알고 보니 오카야마는 그 유명한 일본 동화 모모타로 전설의 고향이란다.
모모타로 전설은 복숭아에서 태어난 아이 모모타로가 여행 중에 만난 말하는 개와 원숭이, 꿩과 함께 나쁜 일을 일삼는 도깨비를 퇴치한 이야기인데, 오카야마 서쪽 외곽에는 모모타로 전설의 고향으로 알려진 일본 고대왕족을 모시는 기비츠(吉備津) 신사가 있다.
오카야마 관광은 오카야마 상징인 오카야마성부터 돌아보기 시작했다. 오카야마성은 우키다 히데이에(宇喜多秀家)가 8년간의 공사 끝에 1597년에 완공한 복합성곽으로 창문 주위의 바깥벽을 검은 판자로 둘러싸놓아서 까마귀성(烏城)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 후 고바야카와(小早川) 및 이케다(池田) 가문이 약 300년간 거주하다 메이지유신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파괴되었던 것을 1966년에 텐슈가쿠를 복원한 것이다.
오카야마성에서 쓰키미바시(月見橋)를 건너가면 바로 고라쿠엔(後樂園) 남문으로 이어졌다. 고라쿠엔은 가나자와(金澤)의 겐로쿠엔(兼六園), 미토(水戶)의 가이라쿠엔(偕樂園)과 함께 일본 3대 정원으로 국가의 특별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고라쿠엔은 오카야마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아사히카와(旭川) 가운데 있는 섬에 조성해 놓은 정원이다. 이케다 쓰나마사(池田綱政公)가 13년 공사 끝에 1,700년에 완성한 이 정원은 넓은 동산과 연못을 만들고, 매화와 벚꽃, 철쭉 등 다양한 화초와 나무를 조화롭게 배치해 놓아서 계절에 따라 아름다운 경치를 즐길 수 있다. 작은 동산 주위에는 몇 개의 연못이 물길을 따라 연결되어 있고, 연못 안에 작은 섬을 만들어놓아서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원래는 오카야마성 뒤에다 조성한 정원이어서 고엔(後園)으로 부르다가 처음 만들 때의 목적이 ‘먼저 근심하고 나중에 즐거워한다(先憂後樂)’는 것이었으므로 1871년부터 고라쿠엔(後樂園)이라 고쳐 불렀다.
이 정원은 번주가 휴식을 취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었으나 가끔 날짜를 정해서 일반 사람들에게도 공개했다. 설날에는 두루미를 정원에 풀어놓아서 놀게 하여 상서로움을 조장하기도 했고 고라쿠엔 구경을 마치고 길을 걷다가 물길 옆에 서 있는 초라한 비석 하나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조선인수난비(朝鮮人受難碑)’였다. 岡山市 北区 駅前町 2丁目에 있는 이 비의 비문은 한일합병을 기점으로 조선을 식민지배하면서 태평양전쟁을 위해 조선 사람들을 강제로 연행하여 군수산업 등에 혹사했는데 전쟁 후에 조선인의 시체 78구가 발견되었으나 대부분 신원을 알 수 없어서 한국의 자주통일을 지지하며 현민들의 힘을 모아 이 위령비를 세운다는 내용이었다.
그러고 보면 일제 36년 동안에 우리 동포들은 규슈탄광이나 군수공장이 많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뿐만아니라 이곳 오카야마에도 많이 끌려와서 혹사를 당하다가 희생된 모양이다.
초라한 비석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핑돌았다. 그리고 다시는 이와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루 속히 우리도 국력을 길러서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가슴 가득히 밀려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오카야마역 안에는 모모타로(桃太郞) 상
오카야마역 앞에있는 모모타로(桃太郞) 동상
오카야마성 안내도
오카야마성 입구
오카야마성
고라쿠엔(後樂園) 입구 안내
고라쿠엔(後樂園)
오카야마 심포니 홀
오카야마 시가지
우체통-다른지방에는 원형이 대부분인데 이곳은 그렇지 않았다
조선인수난비(朝鮮人受難碑)
조선인수난비(朝鮮人受難碑)
교외에 있는 시고쿠를 연결하는 세토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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