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도 무속신앙 전승 양상
AD20188902 류진옥
1. 조사계획 점검
본 조사는 우도의 조상신 신앙을 중심으로 무속신앙 전반에 대한 전승 양상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그러기 위하여 사전 자료 조사에서 확인한 우도 10대 성씨 집안의 조상신 신앙과 특히 하우목동 손씨 가문의 조상신 관련 추적 조사를 계획하였다. 사전 조사 결과, 기존 무가 채록본 10여 권에서 우도 조상신 본풀이에 대한 전승은 확인되지 않는다. 또한 현재 우도의 경우, 칠머리당 영등굿보존회에서 진행하는 ‘영등제’ 외의 마을제는 없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약 ‘하우목동 손씨 집안’에 대한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면 소중한 전승이 될 것이며, 김녕 지역과 근거리에 위치한 우도가 김녕의 조상신 신앙을 공유한 전승 양상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또한 조사 과정에서 마을제 축소와 변형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면 무속신앙의 변천이라는 차원에서 의미있는 작업이 될 것이라 판단하였다.
2. 1차 조사 결과
1차 조사에서 크게 세 가지 정도의 방향으로 조사가 진행되었다. 첫째는 우도의 지도층 인사 중 하나로 판단되는 김ㅇㅇ씨의 우도에 대한 개괄 설명이다. 둘째는 비특정 해녀와의 인터뷰이다. 셋째는 우도 출신으로 현재 활동 중인 고ㅇㅇ 심방과 부인 김ㅇㅇ과의 인터뷰이다.
첫째, 김ㅇㅇ씨의 강의를 통해서는 아주 흥미로운 제보를 한 가지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김ㅇㅇ씨 집안에 전승하는 미륵조상에 대한 것이다. 자신의 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이며, 실제 집안에 미륵조상을 모신 터를 알려주기도 하였다. 조상신을 모시게 된 내력은 다음과 같다. 김ㅇㅇ씨 집안의 선대 조상이 터우를 타고 고기를 낚으러 갔는데 어느 날 먹돌이 올라와서 버렸다. 그런데 다시 먹돌이 낚아지는 것이 여러번 반복되어 이상히 여긴 선대 조상이 그 먹돌을 배에 모셨더니 ‘바작’으로 고기를 낚게 되었다. 그 후 집에 모시고 와 케상(옷장)에 보관했는데, 이 말을 들은 옆집 할아버지가 몰래 훔쳐가다 들켜서 시비가 붙었다. 서로 차지하겠다고 싸우는 바람에 돌이 깨졌고, 깨진 돌이라도 우엉팟에 모셔놓았다. 노람지로 덮어두고 제사나 명절 때 따로 상을 올려 모셨다는 이야기다. 이는 제주시 화북 지역 현씨집안에서 전승하는 ‘선씨일월본’의 앞머리 내용이 유사하다. 제보자 또한 화북 선씨일월본의 내용을 알고 있었다. 후반부가 다른 조상본과 견주었을 때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이고는 있지만, ‘조상신’의 관념이 있다는 것 자체로 의미있는 제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전 조사에서 확인된 ‘손씨 집안’의 조상신은 확인할 수 없었다.
둘째는 비특정 해녀와의 인터뷰이다. 비양도 해녀의집, 전흘동과 서천진동 등의 해녀를 인터뷰하였다. 먼저 손씨 집안에 대한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으며, 이제 우도 내에 손씨 집안이 살고 있지 않은 것이라는 제보를 들을 수 있었다. 이는 확인이 필요한 지점이다. 또한 칠머리당이 진행하는 ‘영등제’ 외의 마을제가 없는 것으로 파악된 것은 전혀 사실과 다른 것임을 확인하였다. 칠머리당의 ‘영등제’는 온전히 면에서 진행하는 ‘행사’의 개념이며, 해녀들은 이와 관련한 정보를 거의 갖고 있지 않았다.
비양도 해녀의집에서는 인터뷰를 시도하는 첫 질문에서 비양도 해녀 중 당에 가는 경우가 하나도 없다는 답을 들었다. 당에 가는 해녀는 없고, 모두 교회에 다닌다는 제보였다. 해녀의집에서 일하고 있는 2~3명 정도 해녀에게 조사한 결과라 물론 좀더 심층적인 확인이 필요하겠으나, 제보한 해녀들 모두 동일한 대답을 하고 있어 전혀 틀린 내용은 아닐 수 있다고 본다.
전흘동의 경우는 7년 정도 전까지 마을 당굿을 지냈으나 현재는 없어진 상태이다. 전흘동의 주된 제보자는 1957년 생으로 현재 62세이다. 천진리 출신으로 오봉리에서 살다 23살에 전흘동으로 시집을 와서 24살부터 당에 다녔다. 당굿을 모실 때는 1년 3회, 신과세(1/14), 백중(7/14), 영등굿(2/15)을 지냈다. 점차 당굿에 참여하는 인원이 적어지면서, 대략 30여 가구가 참여하여 각 호당 1만원씩 명쒜를 내다 보니 그 금액이 너무 적어 심방을 불러올 상황이 되지 못하고 결국 당굿은 없어지는 상황이 되었다. 현재는 1년에 2회, 신과세와 백중 때 개인적으로 당에 제를 올리고 바다에 지드리는 것으로 의례를 대신한다. 이렇게 제를 지내는 해녀가 전흘동에 대략 7~8명 정도 있다고 하였다. 천진리 출신의 제보자는 ‘손씨 집안’을 알고 있었다. 천진리에 손씨 집안이 있었는데 이제는 거의 본섬으로 나가고 없다는 것이다. 천진리 조사에서 좀더 확인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서천진동은 이제는 전승이 끊어졌지만 요왕굿을 3월에 날을 받아서 3년에 1회, 3일굿으로 해왔다고 한다. 천막 치고 호얏불 싸서 굿을 진행하였으며, 심방들 잠자리나 식사 등 모두 부녀회에서 준비하였다. 제보자는 요왕굿을 당굿과는 다른 것으로 관념하고 있었다.
동천진동은 영등신(1/15~2/15)이 우도를 떠나는 날 송별제를 한다. 현재 영등신의 경우 2월 1일에 제주도에 들어오는 것으로 관념되고 있어, 칠머리당의 경우 그날 환영제를 하고 있는 것과 다른 관념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이 우도 다른 곳에서도 그런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영등 송별제에서는 배방선을 가장 중요한 제차로 인식하고 있었다. 동천진동 차원에서 배방선은 한 척을 하는데 그 안에 우뭇가사리, 미역 등의 해녀 채취물과 각 집안에서 올렸던 메를 싼 각 집안별 지, 장닭 한 마리를 넣어 띄웠다. 예전에는 배방선을 띄우기 전에는 도항선을 띄우지 못하였다고 한다. 도항선이 배방선 하는 것을 기다렸다가 그 후에야 출발하는 것이 엄격하게 지켜졌는데, 현재는 많이 변하였다. 이제는 도항선과 함께 띄우기도 하고, 도항선과 상관없이 배를 띄워서 배방선을 한다는 제보였다. 우도에서 배방선을 하는 곳은 동천진동이 유일하다고 한다. 영등굿은 동천진동에서만 모시던 의례였다고 한다. 그런데 현재는 ㅇㅇ리 육지 무당이 이 마을의 당굿을 집전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이후 ㅇㅇ리 무당을 만나 확인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세 번째는 고ㅇㅇ 심방과 부인인 김ㅇㅇ과의 인터뷰로 이루어졌다. 고ㅇㅇ 심방은 고심방의 증조부가 제주도로 귀양살이를 왔으며, 조부 때에 산신요왕이 들어 ‘ᄆᆞᆯ도 백바리 쉐도 백바리’를 이룰 만큼 집안이 경제적으로 번성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부친이 병에 걸려 그 많은 재산을 탕진하였다. 모친이 ㅇㅇ동 상단골이었고, 조상 중에 심방 조상은 없었다. 즉 ㅇㅇ동 상단골 집안에서 심방이 난 상황인 것이다. 심방이 되고 난 후 형제들과는 연락이 끊겼고, 여동생하고만 왕래를 하고 있다. 제주 심방일을 배우기도 하고, 육지에 가서는 ‘선녀 왕대를 심어 19살에 신장을 받았다’고 하였다. 7~8년 전까지 ㅇㅇ동 당 매인 심방으로 있었으나 단골들과의 불화로 당굿은 끊겼고, 제일이 되면 혼자 가서 제를 지내고 있다. 고심방의 멩두 조상은 3벌인데, 27~28세에 자작멩두로 한 벌을 만들었다. 고심방의 당주에는 제주 멩두, 8선녀, 동자, 산신 등 다양한 신이 함께 모셔져있다. 당주제는 단골을 부르지 않고, 제물은 풍성히 준비하여 크게 치루고 있고 올해도 당주제를 지냈다. 부인인 김ㅇㅇ은 무구로 신장칼을 갖고 있다. 정월에는 각 집의 문전 액막이로 여러 집을 다니고, 이제는 본섬에 치병굿을 많이 다니고 있다고 한다. 이 두 부부가 굿을 맡아 하는 경우는 제주굿의 제차 안에 오방신장기를 놀리는 육지굿이 결합되는 양상이라 한다. 제주굿이 변형되는 양상을 보이는 사례로 좀더 심층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3. 2차 조사
2차는 하우목동 부녀회장과 우도에서 해녀문화를 다양한 측면에서 조사하고 사진 작업을 하는 고ㅇㅇ 작가 인터뷰를 중심으로 진행하였다. 그런데 하우목동 부녀회장의 경우 물질 나가는 날이라 차분히 인터뷰를 진행하지 못한 문제가 있었다. 고ㅇㅇ 작가의 경우, 그간 작업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하우목동의 경우, 정월 12일, 7월 14일 등 1년 2회 당굿을 지낸다. 제일에는 물질이나 밭일을 하지 않고 당굿에 참석한다. 당굿의 경비는 잠수회에서 공동작업으로 진행하는 톳 채취 수익금을 공동모금으로 하여 쓰고 있다. 보통 20여 명 정도의 해녀가 현재까지 참석하며, 제물로는 당 할망, 하르방 몫으로 과일, 계란, 생선 1마리, 소지 올릴 종이, 산 받을 쌀 등을 각자 개인적으로 준비한다. 제보자의 경우는 시아버지가 남녕호사건으로 돌아가셔서 시어머니가 당굿에 반드시 참석하면서 시아버지를 위했던 걸 보고 배워서 지금까지 그만두지 못하고 참석하고 있다고 한다. 하우목동의 경우는 천진동과 달리 ㅇㅇ리 강ㅇㅇ심방을 모시고 제주굿 형식으로 진행한다.
고ㅇㅇ 작가의 경우는 그간의 작업 과정에 대한 이야기와 작업 결과물인 사진집을 함께 보면서 작업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고ㅇㅇ 작가가 기록으로 남긴 ‘개인당’에 대한 것이었다. 이후 제주학연구소 등에서 확인해 보니 이런 형태가 특별한 것은 아니며, 제주 본섬의 경우에도 이러한 경우는 일반적으로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러나 사진자료로 남겨진 것으로 의미가 있어 보인다. ‘개인당’과 관련한 조사의 가능 여부를 파악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4. 조사 정리와 이후 계획
1, 2차 조사 결과를 정리하면서 조사 계획의 방향을 다소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조상신 신앙의 경우 상당히 한정적인 전승이라는 것을 확인하였고, 사실상 전승에 대한 조사 자체가 어려울 수 있겠다는 판단이다. 특별한 경우로 김ㅇㅇ씨 집안의 추가 조사가 가능할 수 있겠지만, 다른 해녀들의 조사에서는 조상신의 관념 자체를 거의 확인하지 못하였다. 천진리에 살았던 손씨 집안이 현재 어디로 이주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겠다. 이와 함께 각 동의 경로당에 대한 추가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사전 조사에서는 파악하지 못하여 계획서에 들어있지 않은 내용이 실제 조사 과정에서 부각되었는데, 현재 당굿을 전승하고 있는 두 마을-하우목동과 천진동-의 굿 양식의 차이이다. 우도의 본향당은 하우목동(본향당 목지당/ 신과세, 영등, 백중/ 강복녀 심방), 천진동(천진동 본향 종달잇당/ 육지무당, 육지굿), 전흘동(전흘동 본향 뜬당 목지당)으로 세 곳이다. 이 중 당굿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곳은 하우목동과 천진동이다. 하우목동은 ㅇㅇ리에 거주하는 강ㅇㅇ 심방이 매인 심방으로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천진동은 ㅇㅇ리에 거주하는 육지 무당이 당굿을 책임지고 있다. 전흘동은 우도 태생이면서 현재까지 우도에 거주하는 고ㅇㅇ 심방에 의해 당굿이 집전되어 왔으나 단골들과의 갈등이 생겨 7~8년 전에 그만 두고 현재 개인적인 비념 이외의 당굿은 진행되고 있지 않다. 고ㅇㅇ 심방은 육지굿을 하는 부인과 함께 굿을 다니는데, 제주굿을 중심으로 하지만 굿 중간에 부인인 김ㅇㅇ의 신장기 놀림이나 신장기 뽑기를 결합하여 진행하고 있다. 우도 내 많은 집안의 조왕제, 성주풀이, 푸다시 등을 맡아 집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규모의 개인집 굿은 외부에서 심방을 빌어오는 것이 아니라 근방의 심방을 청하는 것이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하우목동의 경우는 제주굿의 형식을 보존하고 있고, 천진동의 경우는 육지굿의 형식으로 수정하여 전승하고 있다. 2차 조사에서 하우목동의 경우 현재 전승하는 당굿의 형태에 대하여 소략하게 조사가 가능했으나, 천진동 조사는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먼저 해녀들의 인식을 조사하고 각 마을의 당굿을 집전하는 심방과 무당을 추가로 조사하는 과정에서 두 마을의 당굿 양식의 차이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를 추적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고ㅇㅇ 심방과 김ㅇㅇ이 함께 집전하는 제주굿과 육지굿의 결합양식의 굿을 위 두 마을의 상황과 연관하여 분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제주굿의 양식이 육지굿의 무당에 의해 변형되는 가장 큰 이유가 경제적인 것이라 짐작할 수 있겠으나 그것의 실체적 양상에 대한 파악이 필요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11개 마을의 잠수회를 조사하면서 기존의 무속신앙이 현재 어떤 방식으로 변화되어 전승하고 있는가 살펴보고자 하며, 변화의 근거가 무엇이었는지 확인해보고자 한다. 당굿이 이루어지는 하우목동과 천진동을 제외한 마을의 경우, 단골들이 당에 가서 비념을 하면서 자신들이 기억하는 당굿의 제차를 각자가 하는 경우들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양상 또한 무속의례가 쇠퇴해가는 과정 속에서 단골 개인들이 지속하고 있는 신앙의 양태를 확인할 수 있는 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도라는 한정적인 지역에서 진행되는 무속신앙 양식의 변형에 대한 조사와 분석을 제주도 전체의 대표적 사례로 인정할 수 있는지 아직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하나의 사례 스터디로서는 의미있는 작업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이 방향으로 조사와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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