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이곳에서 많은 귀신의 불신자 사후존재론에 대한 글을 읽었으나 이방인들의 잘못된 사상을 뒷받침하는 증거에 몰두한 자료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성경은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고 말씀하시며
요한복음 10: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고 하셨고
요한복음 10: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하셨고
요한복음 5:39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하셨다.
하나님의 사도인 베드로는
베드로후서 3: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고 말씀하셨다.
-작성중-
--------------[권능있는 예수제자 님이 쓰신글]------------------
이방인은 누구에게 제사하는가- 고전 10:14-22를 중심으로 기획특집
윤형식
1. 들어가는 글
교회사적으로 볼 때 귀신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귀신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귀신의 정체에 대해서도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귀신의 정체에 대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견해가 주를 이룬다.
첫째, 타락한 천사설. 이는 마귀와 함께 타락한 천사 중 일부가 귀신이 되었다는 견해다. 둘째, 아담 이전 인류설. 아담 이전의 인류는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었는데, 그때 육체가 없는 무형적 영혼의 존재가 귀신이 되었다는 견해다. 셋째, 악인의 영혼설(불신자의 사후존재설). 이는 ‘필로’와 ‘요세푸스’ 등의 초대 기독교 저술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귀신의 정체에 대해 위와 같은 다양한 견해가 제기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에서는 유독 ‘타락한 천사설’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다른 주장은 철저히 배격해 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사단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의 산하기관인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가 1년 동안의 심혈을 기울여 발간한 좬정통과 이단좭1)이라는 종합연구서가 한국 기독교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특히 그 책에 할애된 베뢰아의 귀신론에서는 ‘귀신은 불신자의 사후존재’라는 베뢰아의 주장과 견해가 실려 있어 교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2)
그런가 하면 조상 제사에 대한 최근의 연구 논문들은 제사가 귀신, 곧 죽은 자의 영혼에게 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총신대 구약학 교수인 김정우는 좬구약해석 논문집I좭(1995: 219-48)에서, 구약 때 행해진 이방인의 제사는 죽은 조상에게 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또 침신대 구약학 교수인 우택주도 좬기독교사상 논단좭(1999: 97-129)에 게재한 “구약성서의 조상 제사”라는 논문에서, 이스라엘을 포함한 고대 근동의 제사는 죽은 조상에게 한 것이라 주장한다. 이 논문들은 이방인의 제사가 귀신에게 하는 것이라는 점(고전 10:20)과 그 귀신의 정체가 죽은 자, 곧 불신자의 사후존재라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 이는 귀신의 정체에 대해 줄곧 불신자의 사후존재설을 주장해 온 김기동의 주장과 맥을 같이한다.
이에 본 소고에서는 고린도전서 10장 14-22절을 중심으로 이방인의 제사가 귀신에게 한 것이며, 그 귀신이 죽은 자의 영혼이라는 것을 증명코자 한다.
2. 점하는 귀신은 죽은 자의 영혼
2.1. 점하는 귀신들린 여종과 바울의 접촉 사건
사도행전 16장에서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전도 여행중에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을 만나게 된다. 그 여종의 주인은 점하는 여종으로 말미암아 큰 이익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성경은 여종에게 점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여종에게 ‘점하는 귀신이 들려’ 그 귀신의 능력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귀신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을 크게 이하게 하는 자라”(행 16:16)
이에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에 명하여 ‘그에게서 나오라’고 하자, 귀신이 그 즉시 여종에게서 나왔다. 이 일이 있고 난 후부터 그 점하던 여종은 점하는 능력을 상실하여 더 이상 점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주인들에게도 경제적 이익을 줄 수 없게 되었다. 이 일로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감옥에 갇히게 된다.
이 사건은 평범한 여종에게 점하는 귀신이 접신했으며, 그때로부터 여종은 점하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점하는 능력이 있는 귀신이 그 여종의 몸에서 나올 때 자기의 점하는 능력을 소유한 채로 나왔기 때문에 그 여종은 귀신 들리기 이전의 평범한 상태로 되돌아갔다.
2.2. 점하는 귀신의 정체 : 죽은 자
모세의 율법에서는 신접한 자의 활동을 엄격하게 금지한다(레 19:31). 신접한 자란 ‘점하는 귀신’이 들린 자를 말하는데, 하나님은 신접한 자에게 물으러 가는 것을 금하셨다. 신접한 자에게 묻는 것은 곧 죽은 자에게 묻는 것이기 때문이다.
“혹이 너희에게 고하기를 지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사 8:19)
위 구절은 ‘신접한 자에게 묻는 것’이 ‘죽은 자에게 묻는 것’임을 보여준다. 이는 신접한 자가 죽은 자라는 의미는 아니라, 그에게 들어간 귀신이 죽은 자라는 의미다. 사람이 살아 있을 때는 영혼과 육체가 있어 생명을 가지고 활동한다. 그러나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면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다만 육체로부터 분리되어 나오는데, 이를 죽음이라 한다. 육체로부터 분리되어 죽음의 상태에 있는 그 존재를 ‘죽은 자’라 할 수 있고, 그 ‘죽은 자’를 다른 말로 ‘귀신’이라 한다.
2.3. 신접한 자와 사울 왕의 접촉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신접한 자에게 묻는 것을 금했다. 그뿐 아니라 이스라엘 땅에서 신접한 자와 박수를 쫓아냈다. 그런 사울이 다시 신접한 자를 찾은 것은 사무엘이 죽은 이후로 하나님께서 사울을 떠났을 때다.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셨기 때문에 선지자로도, 꿈으로도 사울에게 계시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사울은 더 이상 하나님께 묻지 못하고 다른 존재에게 장래 일을 물으러 가게 되었다.
사울은 엔돌이라는 곳에 있는 신접한 여인을 찾아갔다. 신접한 여인은 신접한 술법을 통해 점하는 능력을 발휘한다. 신접한 술법이란 접신되어 있는 귀신을 불러내어 그 귀신의 능력으로 점을 치는 것이다. 사울은 이미 신접한 술법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고, 신접한 자에게 술법을 통해 자기가 요구하는 인물을 불러내라고 요청했다.
사울이 신접한 자에게 불러내라고 요구한 인물은 사무엘이었다. 그러나 사무엘은 하나님의 사람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다. 사무엘은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신접한 자의 신접한 술법을 통해 불러 낼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그런데도 사울은 사무엘을 불러내라고 요구했고, 성경은 신접한 자가 신접한 술법을 통해 사무엘을 불러낸 것처럼 말하고 있다(참조. 삼상 28장).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사울을 버리셨고 꿈으로도 선지자로도 우림과 둠밈으로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사무엘이 하나님의 뜻과 정면으로 대적하여 사울에게 나타나 사울의 요구에 응답할 수 있는가? 또 하나님이 가증하게 보시는 신접한 여인이 하나님의 선지자를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불러낼 수 있는가? 그것도 하나님의 방법에 따른 것이 아니라 신접한 귀신들린 수법으로 불러낼 수 있는가?
사울이 사무엘을 요구했을지라도 하나님은 사울을 버리셨고, 그에게 응답하지 않기로 정하셨다. 그러므로 사울에게 나타난 자는 사무엘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는 바로 신접한 자에 의해서 불려 나온 ‘죽은 자’다. 이사야 8장 19절에서도 신접한 자를 죽은 자라고 규정한다. 역대상 10장 13절 이하는 사울이 죽게 된 것이 하나님께 범죄했기 때문이며, 하나님께 묻지 않고 신접한 자의 가르침에 따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3. 이방인의 제사와 귀신숭배
3.1. 메소포타미아 파키두의 조상숭배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죽은 자의 영혼인 귀신을 신성시했다. 귀신은 신성을 가진 존재로서 사람에게 화를 가져오는 무서운 존재로 알려졌다. 메소포타미아인은 가족 묘지에 죽은 조상과 가족과 친척을 다 묻었으며, 그 죽은 자의 영혼들에게 제사를 드렸다. 이들은 여행 중에 객사한 죽은 자들의 영혼도 귀신으로 표현한다.3)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죽은 조상의 영혼을 돌보는 자를 ‘파키두’(paqidu)라 호칭하며, 보통은 죽은 자의 친척이 ‘파키두’의 역할을 담당했다. 메소포타미아인은 ‘파키두’가 죽은 조상의 영혼을 제대로 숭배하지도 돌보지도 못하면 그 죽은 조상의 영혼인 귀신이 세상을 떠돌며 살아있는 사람에게 따라 붙는다는 보편적인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길가메쉬 서사시 중 일부분(길가메쉬 서사시 토판 12:145-154)을 보면, ‘파키두’로부터 관리가 되지 않는 귀신, 곧 제사를 통한 조상숭배나 돌봄을 받지 못하는 떠돌이 귀신의 비참한 상태가 묘사되어 있다.4)
‘파키두’가 죽은 조상의 영혼을 달래고 숭배하기 위해서 제사 제물과 마실 것을 부었으며, 죽은 조상의 생전의 이름을 부르기도 했다. 이는 바벨론 토판의 쐐기문자 본문 CT 16, 10:5-14에 남겨진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5) 제사를 통해 조상을 숭배해야 하는 ‘파키두’의 직임은 죽은 자의 직계 아들이나 가까운 친척들에게 주로 맡겨진다. 그 가정과 친척들 중에서 남자가 없다면, 여자라 할지라도 조상을 숭배하는 ‘파키두’가 될 수 있었다.
메소포타미아의 ‘파키두’ 직분은 이스라엘의 ‘기업 무를 자’의 직분과 유사한 면이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기업 무를 자’의 직분은 죽은 자의 영혼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의 살아 있는 가족을 돌보는 것이다. 이것은 죽은 자를 섬기는 메소포타미아의 조상숭배 사상과는 전혀 다른 측면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3.2. 메소포타미아의 조상숭배 의식
메소포타미아인은 죽은 조상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여러 종류의 음식을 제물로 바쳤다. 조상숭배에 대한 김정우 교수의 연구 논문에서는6)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각 시대별로 죽은 조상의 영혼을 숭배하면서 드렸던 제물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고대 바벨론시대 사람은 물소 우유와 버터기름, 바다거북과 민물거북 등 여러 종류의 음식을 죽은 조상의 영혼을 숭배하는 제물로 드렸으며, 중세 바벨론 시대에는 맥주와 소금까지도 죽은 조상의 영혼을 숭배하는 제물로 사용했다.
그 논문에서는 핑켈스타인(Finkelstein)의 연구 자료7)를 근거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바벨론에서는 제삿날이 거의 고정되어 정기적인 관습으로 못박아져 있었다. 죽은 조상의 영혼에게 드리는 제물에 관한 내용으로 죽은 자와 산 자의 상호성이 강조되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내가 살았을 동안 내가 너에게 먹을 것을 주었으므로, 내가 죽었을 때 너는 나를 위해 제사 음식을 바칠 것이니라.”
3.3. 우가릿에서의 조상숭배 의식
우가릿 비문에 나타나는 ‘러파임’이라는 단어에는 여러 가지 뜻이 담겨있는데, 우가릿 사람들은 이 단어를 ‘죽은 조상의 영혼’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이것은 드무어(DeMoore)가 자신의 연구 논문에서 밝힌 것이다.8) 그는 바알 신화가 기록되어 있는 CTA 6, 6:41-48의 내용9)을 인용하여 ‘러파임’이라는 뜻을 도출해냈다. 우가릿에서 죽은 조상의 영혼을 숭배하는 의식은 술을 취하도록 마시는 ‘마르제아’라는 제사의식이었다.
‘마르제아’는 조상 숭배자들이 만취된 상태에서 신전의 여종들과 성적으로 문란한 행위를 하는 난잡한 의식이었다. ‘마르제아’에 나타난 중요한 내용은 죽은 조상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음식과 술을 드린다는 점이다. 우가릿에서는 죽은 조상의 영혼이 모두 ‘러파임’으로 간주되어 민족적 수호신의 성격을 띠고 있었으며, 초월적인 신적 대상으로 숭배를 받았다. 또한 죽은 조상의 영혼을 위해 묘비를 세우고, 제사에 필요한 각종 음식과 술을 바쳤으며, 향을 피우기도 했다.10)
메소포타미아와 우가릿에서의 죽은 조상의 영혼에 대한 숭배 의식과 절차에는 지역적, 시대적 차별성이 있지만, 죽은 조상의 영혼을 공경하며 섬겼다는 공통점이 있다. 죽은 조상의 영혼은 분명한 인신(人神)이지만, 그로 인해 후손들의 숭배 차원이 격상되었다. 죽은 조상의 영혼을 단순한 인신(人神)의 차원이 아닌 그들의 민족과 나라의 수호신으로 여겼으니, 이미 종교 차원의 신적대상으로 올라선 것이다. 이것은 메소포타미아와 우가릿 지방에서 행해진 죽은 조상의 영혼 숭배 의식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4. 귀신 숭배에 대한 구약성경적 조명
4.1. 민수기 25장에 나타난 모압인들의 바알브올 숭배
구약성경은 메소포타미아와 우가릿 지방에서 행해진 죽은 조상의 영혼 숭배 사상을 전혀 용납하지 않는다. 여호와 하나님은 죽은 조상의 영혼을 숭배하는 제사의식과 제물을 싫어하시며, 이스라엘에게도 조상숭배를 위한 제사의식을 엄격히 금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사해 동북쪽에 있는 모압 평야의 싯딤에 머물러 있을 때의 일이다. 모압 여인들의 유혹의 덫에 걸려든 이스라엘 백성은 그 여인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했다(민 25:1).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우상숭배의 죄까지 범하고 말았다. 모압인들의 이스라엘에 대한 유혹의 목적은 1차적으로는 음행에 빠지게 하는 것이었으나, 이러한 음행은 2차적 유혹의 목적을 성공시키려는 교묘한 덫이었다.
모압인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유혹한 궁극적 목적은 ‘우상숭배’였다. 모압인들은 그들의 신들에게 제사하여 우상숭배를 행했으며, 여인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청하여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도록 하고 제사한 음식을 함께 먹도록 했다. 모압인들의 유혹에 빠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십계명 중 제2계명을 범하게 된 것이다(민 25:1-2).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모압의 신인 바알브올에게 귀속되었다.
혹자는 모압인들이 숭배한 신 ‘바알브올’이 귀신이 아니라 하늘에서 쫓겨 내려온 천사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시편 106편 28-29절은 “저희가 또 바알브올과 연합하여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서 그 행위로 주를 격노케 함을 인하여 재앙이 그 중에 유행하였도다”라고 했다. 이는 민수기 25장에서 언급된 ‘바알브올’의 정체가 ‘죽은 자의 영혼인 귀신’임을 명백히 밝히는 것이다. 모압인들이 숭배한 신은 타락한 천사들이 아니라 죽은 자의 영혼인 귀신이었다. 메소포타미아의 죽은 조상의 영혼숭배 사상이나 우가릿(가나안)의 귀신숭배 사상과 마찬가지로, 모압인들은 죽은 조상의 영혼을 신적 대상으로 승격하여 조상의 신들을 우상으로 숭배했던 것이다.
앞에서 ‘점하는 귀신’에 대해 살펴보면서 확인했던 것처럼, 귀신은 죽은 자의 영혼이다. 이사야 8장 19절에 “혹이 너희에게 고하기를 지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고 하신 것처럼, 신접한 자에게 찾아가서 묻는 것은 죽은 자에게 묻는 것이다.
4.2. 선지서에 나타난 죽은 자의 영혼숭배에 대한 경고
에스겔 24장 15절 이하에는 ‘죽은 자들을 위하여 슬퍼하지 말고 사람의 부의하는 식물을 먹지 말라’고 했다(겔 24:15-17). ‘부의(賻儀)하는 식물’이란 상가집에 보내는 식물, 곧 죽은 자를 위로하기 위한 식물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그런 식물을 먹지 말라고 하신다. 또 죽은 자들을 위하여 슬퍼하지도 말라고 하셨다. 이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이다.
예레미야 16장 5-8절에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를 위하여 통곡과 애곡하지 말며, 아예 상가집에 들어가지도 말라고 하셨다. ‘잔칫집’에 들어가 그곳에 있는 자들과 함께 앉아 먹거나 마시지도 말라고 하신다. 여기서 ‘잔칫집’은 상갓집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이해될 수도 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잔칫집’은 ‘the house of feasting’(흠정역)을 가리킨다. 즉 경사가 있는 집이 아니라, 이방인의 풍습을 따라 이방인의 우상을 숭배하는 종교적 의식을 행하는 집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잔칫집에 들어가 그곳에 있는 자들과 함께 앉아 먹고 마시는 것을 금하신 것은 십계명 중의 제2계명에 해당하는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계명을 강조하신 것이다. 예레미야 16장 5절 이하 본문의 문맥에 따라 ‘상가’(喪家)와 ‘잔칫집’은 대조구보다는 유사구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나님은 어떤 형태로든 ‘죽은 자’를 위하여 행하는 것들을 모두 반대하셨다. 성경에 “죽은 자를 위하여 너희는 살을 베지 말며 몸에 무늬를 놓지 말라”(레 28:28)고 했고, 또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밀지 말라”(신 14:1)고 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섬기며 그 제물을 먹는 자들을 패역한 백성으로 판단하시고, 반드시 보응하시겠다는 의지를 보이셨다.
이사야 65장 2-7절에서는 하나님께서 패역하다고 일컬으신 자들에 대한 보응을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그들은 ‘동산에서 제사하며 벽돌 위에서 분향’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을 섬겨야 마땅한 이스라엘 백성이 죽은 자들을 위해 제사를 지내므로 하나님이 진노하셨다. 그들이 ‘무덤 사이에 앉아 돼지고기를 먹으며 가증한 물건의 국을 그릇에 담아’ 먹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죽은 자를 섬기기 위해 무덤 사이에 은밀한 처소를 짓고 지냈으며, 하나님이 율법을 통해 금하고 있는 부정한 짐승인 돼지고기를 먹었다(레 11:7-8). 이것은 죽은 자를 제사할 때 사용한 우상숭배용 음식인 돼지고기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무덤 사이에서 지내며, 십계명을 통해 금하신 우상을 숭배하고 그 제물까지 먹은 것이다. 물론 ‘우상’에 대한 범위 개념이 다양하고 폭 넓게 규정될 수 있지만, 위의 본문에서는 ‘죽은 자’를 섬기는 사건을 말하므로, ‘죽은 자’를 위하는 것은 곧 귀신을 숭배하는 것이다.
5. 귀신 숭배와 고린도교회
5.1. 고린도교회와 우상숭배 제물 논쟁
헬라의 도시 고린도는 상업과 행정의 중심이며 중요한 군사도시다.11) 고린도 사람들은 여러 우상을 숭배하였다. 이들의 모임은 주로 신전에서 이루어졌고, 모임에서는 자연스럽게 우상에게 드렸던 제물을 함께 나누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었다. 당시 고린도 사람들은 우상에게 먼저 제물을 드리지 않고 개인의 가정에서 먼저 먹는 것을 신성모독으로 간주했다.12) 이런 고린도 지역에서 유통되던 고기는 대부분 우상에게 드렸던 제물로써 여러 신전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고린도 지역에서 고기를 먹었다면 십중팔구는 우상의 제물을 먹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고린도교회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인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으니, 그들도 고기를 먹었다면 그것은 먼저 우상에게 드려졌던 제물이었을 것이다.
고린도 지역에서는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므로 그 문제가 별다른 쟁점이 될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기독교는 우상숭배를 엄격히 금하므로 고린도전서 8장에서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에 대하여 언급할 정도로 고린도교회 내에서는 이 문제가 커다란 논점(論點)으로 부각된 것이다.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에 대하여 고린도교회에는 두 가지 주장이 있었다. 첫째, 영지주의적 견해로서,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고전 8:4)는 내용을 주장한다. 우상은 실존이 아니므로 우상의 제물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방의 우상숭배 신전에 참여해서 그곳 사람들과 우상의 제물을 함께 나누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13) 전경연은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전제되어 있으며, 그와 같은 지식은 기독교 신앙의 기초적 인식이라고 언급한다.14)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에 대한 두 번째 주장은 고린도전서 8장 8절의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족함이 없으리라”는 내용을 따른다. 우상의 제물이든 아니든 식물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어떤 걸림돌도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주장들을 근거로 고린도교회의 교인들은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을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그들은 어떤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이방 신전까지 찾아가서 우상숭배자들과 함께 그 제물을 먹는 일에 참여하기도 했다(고전 8:10). 그들은 자신들이 우상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여길 만큼 지적교만에 빠져있었다. 우상은 세상에서 아무런 가치가 없으며 실재(實在)하는 존재도 아니므로 그런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디모데전서 4장 3-5절에서 바울은 ‘모든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것으로 받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식물이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진다’고 가르친다. 이러한 바울의 가르침은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이는 마음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에 들어가 뒤로 나감이니라 하심으로 모든 식물을 깨끗하다 하셨느니라”(막 7:18-19)고 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근거한다.
고린도교회 교인의 우상의 제물에 관한 지식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그와 같은 지식으로 교만해져 있으며, 믿음이 연약하여 장성한 분량의 지식과 믿음에 이르지 못한 자를 업신여기며 비판했다. 바울은 그러한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연약한 자들을 비판하지 말며,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한다면 그것 또한 죄를 짓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식물 때문에 다른 연약한 형제가 실족하게 된다면, 자신은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고전 8:9-13).
5.2. 우상숭배 제사와 귀신숭배
고린도전서 10장 14절 이하의 본문에 나타난 바울의 주장은 제물을 먹는 것은 그 제물을 받는 숭배의 대상에게 참예하는 것이라는 견해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드린 제물을 함께 먹게 되면 하나님의 제단에 참예하는 것이며, 우상의 제물을 먹고 마시게 되면 우상의 제단에 참예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이 성찬식의 떡과 잔을 함께 나누게 되면 그리스도의 피와 살에 참예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고린도전서 11장 23-29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잡히시던 밤에 축복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고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라 하시고 식후에 잔을 나누어 주시며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떡과 잔을 나누며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성찬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기념하는 떡과 잔을 먹고 마시며 주의 사역에 참예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방인들의 우상숭배의 제물을 먹고 마시면 우상에게 참예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우상의 제물을 먹거나 마시지 말라는 것이다. 이방인들의 우상숭배 의식을 ‘제사’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고린도전서 10장 20절은 ‘제사는 귀신에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방인의 제사를 받는 주체는 귀신이다. 이택희는 그의 논문에서15) 귀신을 비존재자로 규정하는 헬라적 유대교의 견해를 빌어 고리도전서 10장 20절의 ‘이방인의 제사를 받는 귀신’은 실존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데이비드 프라이어(David Prior)는 이방인의 제사 대상인 귀신과 마귀의 차별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16) 물론 마귀가 단수의 존재라는 것에 대해 별다른 인식이 없다. 그가 ‘마귀들’이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판단하건대, 악한 영적 존재인 마귀와 귀신의 존재에 대한 성경적 지식이 결여된 것으로 보여진다. 또 우상숭배를 통해 귀신과 교제하는 것을 막연하게 마귀적 세력과 접촉하는 것이라 간주하며, 기독교 공동체를 마귀들에게 노출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방인의 제사 대상에 대한 명확한 정의도 내리지 못한 채, 이 상황을 해석하고 있다.
이방인의 제사 대상인 ‘귀신’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그중 전경연은 이방인의 제사 대상인 ‘귀신’에 대해, 실존은 하지만 하나님의 지배 아래 있고 사람을 위협하는 존재라는 견해를 받아들인다.17) 귀신은 죽은 자의 영혼이 아니라 처음부터 신적 존재로 지음받은 하나님보다 하위개념의 신들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전경연이 채택하지 않은 다른 하나의 견해가 오히려 ‘이방인의 제사 대상인 귀신’의 정의에 근접하다. 그것은 ‘귀신은 형상만 있되 생기가 없는 것, 즉 인간의 표상의 투영’을 의미한다는 견해다. 물론 이 주장도 귀신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내린 것은 아니지만, 귀신을 ‘인신(人神)적 존재’로 근접하게 규정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조용기는 ‘이방인의 제사의 대상인 귀신’에 대하여 직접적인 정의를 피한다.18) 그는 귀신에게 제사하는 것에 대한 성경상의 원칙론적인 금지와 충돌하지 않는 무난한 입장을 표명한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0장 20절의 ‘이방인들의 귀신에 대한 제사행위’를 단순히 우상숭배로 설명함으로써 귀신의 존재와 그 정체를 희석시키고 있다.
5.3. 고린도의 제사 대상인 귀신은 죽은 자의 영혼
김기동은 이방인의 제사 대상인 귀신은 불신자의 사후존재라고 주장한다. 김기동의 주장은 성경적 증거를 받으므로 안정적이다. 앞서 논의한 시편 106편 28-29절은 민수기 25장의 사건에 대한 정의와 같다. 민수기 25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싯딤에 머물러 있을 때 모압 여인들과 음행을 했고 또 그들의 신인 ‘바알브올’(민 25:1-3)에 대한 제사행위에 참여했다. ‘바알브올’의 정체에 대해서는 성경의 언급을 찾기 어렵지만, 시편 106편 28-29절의 본문을 통해 ‘바알브올’이 ‘죽은 자의 영혼’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성경적 근거는 귀신의 정체에 대한 김기동의 ‘불신자의 사후존재설’을 강력히 지지해 준다.
그리고 메소포타미아와 우가릿의 조상숭배를 통해, 고대 근동지방의 제사 행위가 그들의 조상들, 곧 죽은 자들의 영혼에게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방인들의 제사행위가 귀신에게 하는 것이라는 고린도전서 10장 20절 역시 고대 근동의 조상제사행위와 전혀 무관하지 않다. 고린도 지역의 제사행위도 막연한 관념적 신들에게 한 것이 아니라 죽은 자들의 영혼에게 한 것임을 인지한다면, 귀신이 죽은 자의 영혼임을 쉽게 알 수 있다.
6. 나가는 글
오늘날 기독교계에서는 귀신을 관념적 존재일 뿐 실존이 아니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혹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더라고 ‘타락한 천사’로 주장한다. 그렇게 하여 귀신의 존재와 활동을희석시키며, 귀신숭배의식과 그 제물에 대하여 경각심을 잃게 한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메소포타미아와 우가릿 등의 고대 근동지역에서 행해진 제사의식은 귀신이 불신자의 사후존재로서 실존임을 증거한다. 그 제사의식은 죽은 조상의 영혼을 달래고 섬기기 위한 조상숭배임이 여러 문서와 그 문서들을 근거하여 쓰여진 논문들을 통해 밝혀지고 있다. 성경적 근거로도 구약에서 시작하여 전 시대에 걸쳐 죽은 자들을 신격화하며, 그들을 숭배하는 제사 의식이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일련의 귀신숭배 의식과 그 제물을 금하셨으며, 이러한 하나님의 의지는 모세의 율법과 선지서들을 통해 표출되었다.
신약시대에 와서도 이방인의 세계에서는 귀신숭배 의식이 두루 행해졌다. 특히 헬라파 그리스도인들은 초대 기독교회의 일원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방인의 제사의식에 참예하는 것과 그 제물을 먹는 것에 대한 죄의식이 없었다. 그들은 성찬을 통해 주님의 잔에 참예하는 동시에 이방인의 제사의식에 동참하여 귀신의 잔과 상에도 참예하였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의 본문을 통해 주의 잔과 귀신의 잔에 겸하여 참예할 수 없음을 고린도교회의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강력히 경고한다. 제사를 통한 귀신숭배 의식에 참예함과 그 제물을 먹는 것을 금지하며, 이를 어길 경우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다고 명시한다.
귀신의 정체와 관련하여 ‘불신자 사후존재설’은 초대교회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유지되는 견해다.19) 그중 김기동은 성경적, 신학적, 현상학적으로 귀신의 정체를 확실하게 밝힌다. 그는 ‘점과 귀신에 관한 증거’, ‘제사와 귀신에 관한 증거’, ‘복음서에 나타난 증거’ 등의 성경적 증거를 바탕으로 귀신의 ‘불신자 사후존재설’을 증명한다.20)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목회사역의 경험을 바탕으로 귀신과 교제하는 것의 해악을 분명히 밝히고 귀신에 대한 철저하고도 강력한 대처를 당부한다.
각주
1) 조성훈 편, 좥정통과 이단좦(서울: 사단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이단 사이비대책위원회, 2004).
2) Ibid., pp. 161-67.
3) 김정우. “조상숭배에 대한 비교 연구,” 좥신학지남』통권 제235호(서울: 신학지남사, 1993), p. 42.
“떠돌이 귀신이든, 방랑 귀신이든, 벌판에 던져진 (시체의) 귀신이든, 물에 빠진 자의 귀신이든, 우물에 빠진 자의 귀신이든, 혹은 태양 빛에 쓰러져 죽은 귀신이든 간에…”
4) Ibid., p. 43.
“갑작스러운 죽음을 당한 자를 보았느냐?“
“나는 보았다. 그는 침대에 누워 깨끗한 물을 마시고 있다.”
“전쟁터에서 죽은 자를 보았느냐?”
“나는 보았다. 그는 머리를 들고, 그의 아내는 애곡하느니라.”
“그의 시체가 평원에 던져진 자를 보았느냐?”
“나는 보았다. 그의 혼이 저승에서 쉴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느니라.”
“아무도 돌보아줄 자가 없는 혼을 보았느냐?”
“나는 보았다. 그는 그곳에 남은 찌꺼기와 빵부스러기와 길거리에 흩어진 찌꺼기를 먹고 있느니라.”
5) Ibid., p. 44.
당신이 장례되지 않은 귀신이든
혹은 당신이 아무도 돌볼 자 없는 귀신이든
혹은 당신에게 아무도 제사 음식을 드릴 자가 없는 귀신이든
혹은 당신에게 아무도 마실 물을 부어줄 자 없는 귀신이든
혹은 당신이, 자기 이름을 불러줄 자 없는 귀신이든 간에…
6) Ibid,. pp. 44-45.
7) J. J. Finkelstein, “The Genealogy of the Hammurapi Dynasty.” JCS 20:95-118, 1966
8) J. C. DeMoor, “Rapiuma-Rephaim” ZAW 88:323-345, 1976.
9) “샤파쉬여, 당신은 러파임을 다스리며, 샤파쉬여, 당신은 귀신들을 다스리나이다. 신들이 당신을 따르며 죽은 자들이 당신을 따르게 하소서.”
10) J. C. DeMoor & M. Dijkstra, “Problematical Passage in the Legend of Aqhat.” UF 7:171-215, 1975.
11) 전경연, 『고린도서신의 신학 논제』(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88), pp. 27-34.
12) Mettew Henry, 『고린도전서 주석』 문창수 역 (서울: 백합출판사, 1982), p. 124.
13) W. Baird, “The Corinthian Church - A. Biblical Approach to Urban Culture,”(New York: Abingdon Press, 1964), pp. 94-95.
14) 전경연, 『고린도전서』(서울: 성서교재간행사, 1989), p. 175.
15) 이택희, “고린도전서에 있어서의 우상숭배 금지에 대한 연구: 고전 8:1-11을 중심으로,”(감리교신학대학대학원, 1993.2), p. 39.
16) David Prior, 『고린도전서 강해』 정욱배 역(서울: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2000), p. 233.
17) 전경연, 『고린도전서』 (서울: 성서교재간행사, 1991), p. 211.
18) 조용기, 『고린도전서 강해』 (서울: 서울서적, 1992), p. 211.
19) 조성훈 편, 『정통과 이단』, op. cit., p. 165.
20) 김기동, 『성서적 신학적 현상적 마귀론』(서울: 도서출판베뢰아, 1988), pp. 213-22
[2009-04-21 10:22:14] iesu 님에 의해서 '귀신론 토론 광장' 게시판에서 이동되었습니다.
첫댓글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꾸뻑~
바보와 천재도백지 한장차이듯 이단과 정파도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른 것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