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5장 1-13절
1-3.『이 날에 드보라와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노래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의 영솔자들이 영솔하였고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여호와를 찬송하라 너희 왕들아 들으라 통치자들아 귀를 기울이라 나 곧 내가 여호와를 노래할 것이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5장은 4장과 같은 내용인데 시와 노래로 드보라의 승리를 표현했다. 이날은 야빈의 철병거 무기 앞에서 승리하고 적장 시스라를 헤벨의 아내 야엘이 장막 말뚝으로 죽이는 통쾌한 승리를 가졌던 날을 이른다. 드보라와 바락, 둘을 나란히 쓸 때는 앞에 나오는 사람을 강조하는 것이다. 3인칭 여성 단수라서 드보라가 쓴 시로 본다. 드보라는 백성의 지도자답게 먼저 백성들을 격려 칭찬하면서 이 시를 시작하고 있다. 이방왕에게도『여호와께서 어떻게 승리를 주셨는가』를 들으라고 노래한다.
이 노래는 드보라의 저작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두 사람이 노래한 것으로 언급되는 것에서, 드보라는 야빈 왕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사실을 기념하여 바락은 물론이고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미하는 일에 동참하기를 원했었다. 그리하여 히브리 노래의 한 유형인 화답송의 형태로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성경에는 여인들이 지은 노래로 미리암의 노래'(출15:21), 한나의 노래(삼상 2:1-10), 마리아의 노래(눅1:46-55) 등이 있다. 오늘날 교회에서 시편으로 교독문을 읽는 것은 함께 화답하여 그리스도를 찬미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영솔자들이 영솔하였고” 히브리어 성경은 '비페로아 페라오트 베이스라엘'이다. 히브리어 비페로아와 페라오트의 동사형 파라는 석방시키다, 머리카락을 풀다 등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곧 상징적 의미로서, 그 정확한 뜻은 헌신하다, 힘을 과시하다 이다. 이에 따라 본문을 다시 번역하면 '이스라엘의 힘 있는 자들이 힘을 다해 헌신했고'란 의미가 된다. 즉 이 말은 이스라엘의 영솔자들, 방백들이 힘을 다해 충성했음을 가리킨다. 더욱이 이러한 해석은 이스라엘 시문서의 한 특징인 평행법과도 잘 조화된다. 왜냐하면 본절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에서는 지도자들의 헌신과 대비되는 백성들의 헌신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의 두 가지 해석중 그 어느 쪽을 취하여도 상관은 없는데, 그 까닭은 둘 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헌신과 솔선 수범적 행위를 잘 드러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헌신은 히브리어로 나다브이다. 기본어근은재촉하다, 따라서(군인으로)지원하다, 자발적으로 바치다, 아낌없이 드리다, 기꺼이 하다(주다, 만들다, 자신을 바치다)등의 의미를 갖는다. 백성들이 지도자들의 말을 따라 기꺼이 헌신하여 전투에 참가한 것을 가리킨다.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전쟁에 참가하는 자로서 헌신하는 자인 것이다.
이는 바락이 군사를 모집하자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 일만명이 지원한 것과 그외 여러 지파도 적극 조력한 사실에서 잘 나타난다. “여호와를 찬송하라” 전체의 내용은 언뜻 볼 때 전쟁에 참여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헌신과 용기 그리고 연합에 대하여 노래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이와 같이 이스라엘의 배후에서 친히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는 데 진정한 목적이 있었다.
“너희 왕들아 들으라 통치자들아 귀를 기울이라” 왕들과 통치자들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지칭한 말이 아니다. 그 근거로는 당시 이스라엘에는 왕이나 방백이 없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왕이란 단어가 복수 형태를 취하여 여러 나라의 왕들을 암시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따라서 본절은 열방의 통치자들에게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된 신이시며 두려워하고 경외해야 할 유일하신 최고 통치자이심을 선포하는 것이라 하겠다.
“나 곧 내가 여호와를 노래할 것이요” 여호와를 위한 나, 그 내가 노래한다는 것이다. 노래하다(찬송하다)에 해당하는 자마르는 연주하다는 뜻이다. 이는 곧 단순히 노래할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악기를 사용하여 찬송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스라엘인들은 일찍부터 하나님을 찬앙함에 있어서 여러 가지 악기를 연주하며 그에 화답하여 노래 부르는 예배법이 발달되어 있었다.
4-5.『여호와여 주께서 세일에서부터 나오시고 에돔 들에서부터 진행하실(야짜) 때에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물을 내리고 구름도 물을 내렸나이다. 산들이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니 저 시내 산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였도다』
“야짜”는 행진하다 라는 의미이다. 세일, 에돔 들은 광야에서 도우시는 하나님을 상징한다.『땅이 진동하고, 산들이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니(나짤)』나짤은 골짜기에서 물이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천지가 하나님 앞에서 흔들린다는 뜻이고, 산들이 폭우 앞에서 흘러내렸다는 말이다. 기손강은 와디인데 건기 시에 하나님이 번개와 비, 폭풍우를 보내 900승의 철병거를 완전히 무력화시키고 쓸모없는 고철덩어리로 만든 승리를 노래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바락은 처음에 두려워하며 떨었지만 요단강에 발을 내딛고 나갔을 때 갈라졌던 것처럼 행동하고 바락이 순종하며 나아갈 때 아무도 예상치 못하던 엄청난 폭우를 쏟아 부어 기적 같은 승리가 이루어졌다. 이스라엘의 상황을 보면 더 이 승리가 놀랍게 다가온다.
『저 시내산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였도다 הָרִ֥ים נָזְל֖וּ מִפְּנֵ֣י יְהוָ֑ה זֶ֣ה סִינַ֔י מִפְּנֵ֕י יְהוָ֖ה אֱלֹהֵ֥י יִשְׂרָאֵֽל 』저 시내산의 그 분 앞에서,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였도다 라고 번역된다. 시내산의 그 분 앞에서 산이 녹아 내렸다는 말이다. 시내산이 진동한 것이 아니라, 시내산의 그 분 앞에서(מִפְּנֵ֣י יְהוָ֑ה זֶ֣ה סִינַ֔י ) 산들이 흘러내렸다(הָרִ֥ים נָזְל֖וּ )는 말이다. 여기에서는 시내산의 그 분이 참 하나님이라는 말을 표현한 것이다. 시내산의 그 하나님이 산들에게 흘러내리겠끔 하셨다는 것이다. 백성들은 바알이라는 신이 그렇게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6-9.『아낫의 아들 삼갈의 날에 또는 야엘의 날에는 대로가 비었고 길의 행인들은 오솔길로 다녔도다. 이스라엘에는 마을 사람들이 그쳤으니 나 드보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되기까지 그쳤도다. 무리가 새 신들을 택하였으므로 그 때에 전쟁이 성문에 이르렀으나 이스라엘의 사만 명 중에 방패와 창이 보였던가. 내 마음이 이스라엘의 방백을 사모함은 그들이 백성 중에서 즐거이 헌신하였음이니 여호와를 찬송하라(바라크)』
대로가 비었고 행인들은 오솔길로 다녔다. 철병거가 대로로 지나갈 때 이스라엘 백성은 큰길 가에 나갈 수가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그쳤다. 생업조차 어려워졌다는 말이다. 드보라는 그 전쟁의 원인을 죄 때문이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하나님을 경배한다고 하면서 혼합하여져서 가나안 신들을 함께 섬겼던 이스라엘의 이야기이다. 점차적으로 처음의 작은 배도에서 큰 배도로 떨어져 나간다. 그러나 변변한 무기조차 없을 때 하나님이 놀라운 승리로 이끌어주셨다. 그래서 이방 앞에서도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할 정도로 감격에 차서 하나님을 자랑하고 있다.
『나 드보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의 어머니(엠)가 되기까지』엠은 어머니 외에 말씀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통치자가 없었는데, 말씀으로 이스라엘에 통치자가 일어났다는 것이다.『무리가 새(하다쉬) 신들(엘로힘)을 택하였으므로』하다쉬 엘로힘은 우상을 의미한다.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므로 영적으로 피패해진 것을 보여준다. 백성들이 영적으로 싸울 힘이 없었으나, 하나님이 드보라와 함께 하시므로 전쟁을 이기게 하셨다. 드보라의 헌신하는 마음이 백성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백성들이 처음부터 헌신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신다. 바라크는 “축복하다 무릎을 꿇다” 라는 의미다. 하나님이 백성에게 축복한다. 개역개정은 찬송하다 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하나님이 백성에게 축복하므로서, 백성들은 하나님께 찬송하는 것이다.
10-11.『흰 나귀를 탄 자들, 양탄자에 앉은 자들, 길에 행하는 자들아 전파할지어다. 활 쏘는 자들의 소리로부터 멀리 떨어진 물 긷는 곳에서도 여호와의 공의로우신 일을 전하라 이스라엘에서 마을 사람들을 위한 의로우신 일을 노래하라 그 때에 여호와의 백성이 성문에 내려갔도다.』
흰 나귀를 탄 자는 최상위급 지도자이다. 양탄자에 앉은 자는 부유한 상인들이다. 길에 행하는 자는 일반백성들을 의미한다.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을 전파하라는 것이다. 학업, 업무, 우리의 입술, 손과 발,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일들을 노래하고 전파하라는 것이다.
『활 쏘는 자들(하짜즈חַֽצְצִ֗)의 소리(콜קֹּ֣ול)로부터 멀리 떨어진(마샤브מַשְׁאַבִּ֔)(מִקֹּ֣ול מְחַֽצְצִ֗ים בֵּ֚ין מַשְׁאַבִּ֔ים ) 물 긷는 곳에서도』 하짜즈는 “분리되다, 끊어지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우물의 물깃는 곳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를 의미한다. 활쏘면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는데, 마치 그런 소리들이 물깃는 곳에 들린다는 표현이다. 이전에는 우물에 사람들의 인적이 끊겼는데, 전쟁 후에는 생기가 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찬양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장소에 불문하고 전해져야만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12-13.『깰지어다 깰지어다 드보라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너는 노래할지어다 일어날지어다 바락이여 아비노암의 아들이여 네가 사로잡은 자를 끌고 갈지어다. 그 때에 남은(샤리드) 귀인(아디르)과 백성이 내려왔고(라다)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용사를 치시려고 내려오셨도다』
바락이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드보라가 노래하는 것이다. 드보라 개인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에 대해 일어서서 헌신할 것을 영적각성을 촉구하는 것이다.
『남은(샤리드) 귀인(아디르)』에서, 샤리드( שָׂרִ֔יד )는 남은 자를 의미한다. 로마서 9장 27절에서『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르아디림(לְאַדִּירִ֖ים 기본형은 아디르)은 아름답다, 존귀하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시편 16편 3절에서『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아디르)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그래서 샤리드 아디르는 남은 존귀한(아르다운) 백성이라는 의미가 된다. “라다”는 내려오다 라는 의미가 아니라 다스리다 라는 의미다. 문법적으로 사역형(피엘동사)을 사용하고 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영적으로 세상을 다스리게 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용사를 치시려고 내려오셨도다』드보라로 하여금 용사를 다스리게 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백성들도 다스리게 했다는 것이다. 킹제임스 흠정역을 보면 유사하게 번역된 것을 알 수 있다.『그 때에 그 분께서 남아있는 자로 하여금 백성 가운데 있는 귀족들을 지배하게 하셨으며, 또 주께서 나로 하여금 용사들을 지배하게 하셨도다』 라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말씀을 통한 다스림이다. 성도 역시 다스림에 참여하며, 그리스도의 헌신된 자, 군사라는 말이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왕노릇한다고 표현했다.
성도가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말이다. 성도와 교회에 들어온지 얼마되지 않은 신도와는 차이가 있다. 성도는 물과 성령으로 하늘로부터 난 자가 된다. 단순히 예수를 믿는 신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함을 믿는 자가 성도인 것이다. 이들이 하나님의 전쟁에 참여하는 자가 되며, 헌신하는 자인 것이다. 헌신하는 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노래가 찬양이고 새 노래인 것이다. 전쟁은 다름 아닌 자아와의 싸움이다. 육적 자아와 영작 자아와의 전쟁이다. 육적 자아는 심령 속에 일곱 족속이 있는 것이다. 성도가 영적 가나안에 들어가지만, 이 속에는 일곱 족속이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싸워야 함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