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한강 장편소설)/1부 새(5.남은 빛, 6. 나무) 발제자 : 윤경미
5. 남은 빛 : 내가 잘못 들어서서 미끄러져 내려왔고 지금 누워 있는 이 길은, 길이 아니라 건천인 것 같다. 우묵하게 파인 지형에 살얼음이 얼어 있었고 그 위로 눈이 쌓인 것이다. 이 건천을 경계로 원래는 마을이 나누어졌다고 인선은 산책길에 말했었다. 내너머로 사십호 안팎의 집들이 모여 있었다고, 1948년 소개령 때 모두 불타고 사람들이 몰살되며 폐촌되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때까진 외딴집이 아니었던 거지. 내 하나 건너면 마을이 있었으니까. 새는 어떻게 됐을까. 오늘 안에 물을 줘야 살릴 수 있다고 인선은 말했다. 그런데 새들에게 오늘은 언제까진가. 무엇을 생각하면 견딜수 있나. 가슴에 활활 일어나는 불이 없다면. 기어이 돌아가 껴안을 네가 없다면. 모른다. 새들이 어떻게 잠들고 죽는지. 남은 빛이 사라질 때 목숨도 함께 끊어지는지. 전류 같은 생명이 새벽까지 남아 흐르기는 하는지. 저 너머에 뭔가 있다. 빛을 발하는 무엇인가가. 덤불숲을 가로질러 나가자 길게 휘어진 검푸른 눈길이 이어진다. 숲을 끼고 도는 그 길은 점점 밝아져, 모퉁이의 끝에 이르러서는 선명한 은빛을 발하고 있다. 나는 필사적으로 속력을 낸다. 허벅지까지 쌓인 눈을 가르며 숨차게 나아간다. 모퉁이에 이르렀을 때 다시 눈언저리를 닦는다. 눈을 바로 뜨고 멀리 있는 불빛을 본다. 인선의 목공방이다. 눈부신 빛을 내쏘는 눈가루들이 함께 공방 안으로 빨려들어간다.
6. 나무 : 아마. 갈라진 내 목소리가 정적 속에 울린다. 내가 살리러 왔어. 움직여봐. 내가 구하러 왔어. 부드러운 것이 손 끝에 닿는다. 더 이상 따스하지 않은 것이. 죽은 것이. 아무것도 소리를 내지 않는다. 내 숨소리, 떨리는 패딩 코트 소매가 철망에 스치는 소리뿐이다. 인선이라면 어디 묻으려 할까. 마침내 나무 아래에 다다른다. 밑동앞에 쌓인 눈을 삽으로 퍼낸다. 조금씩 언땅을 비집고 들어가는게 느껴진다. 팔과 다리가 떨린다. 알고 있다. 뜨거운 죽을 먹어야 한다. 더운물로 몸을 씻고 누워야 한다. 하지만 새를 묻기 전엔 그럴 수 없다. 나는 생각한다. 내가 건천으로 미끄러지지 않았다면 그전에 물을 먹일수 있었을까. 그 순간 제대로 길을 택해 내처 걸어왔다면, 아니, 그전에 터미널에서 더 기다려 산을 가로지르는 버스를 탔다면. 이제 더 할 일이 없다. 몇시간 후면 아마는 얼어붙을 거다. 2월이 올때까지 썩지 않을 거다. 그러다 맹렬히 썩기 시작한다. 깃털 한줌과 구멍 뚫린 뼈들만 남을 때까지. 새들이 건강해 보이는건 믿을수 없어. 경하야. 끝까지 고개를 들고 횃대에 매달려 있다가. 떨어지면 이미 죽은 거야. 부서질 듯 문과 창문들이 덜컹거린다. 바람이 아닌지 모른다. 정말 누가 온 건지도 모른다. 집에 있는 사람을 끌어내려고, 찌르고 불태우려고, 과녁 옷을 입혀 나무에 묶으려고. 톱날 같은 소매를 휘두르는 저 검은 나무에. 죽으러 왔구나. 열에 들떠 나는 생각한다. 죽으려고 이곳에 왔어. 베어지고 구멍 뚫리려고, 목을 졸리고 불에 타려고 왔다. 불꽃을 뿜으며 무너져 앉을 이 집으로. 조각난 거인의 몸처럼 겹겹이 포개져 누운 나무들 곁으로.
느낀점 :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 내가 맡은 과제를 간단하게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처음 이 소설을 읽고 잘이해할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더 읽었다. (5.남은 빛, 6. 나무)는 경하가 인선의 연락을 받고 제주에 내려가 새를 돌봐주려고 인선의 공방을 찾는 장면. 죽은 새를 묻는 장면이 나온다. 이 소설은 제주 4.3 학살의 본질에 대해 물음을 던지는 것 같다. ‘5월 광주 학살’의 본질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 것일까? 한강 작가의 문제의식은 무엇일까? 한강 작가의 생각을 이 소설을 통해 엿볼수 있었다. 제주 4.3사건을 일으켰던 박헌영의 오른팔이였던 사람을 만난적이 있다. 한마디로 김일성과 박헌영의 권력투쟁이 제주 4.3사건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그 사건으로 김일성이 권력투쟁의 승자가 된 것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우리들이 알고 있는 본질은 진실이 아닐 가능성이 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