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황후의 침실 (빌어먹을, 내가 이번에 궁에서 나가게 된다면 다시는 늙은 갈보를 만 나볼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 두 개의 발을 그녀의 방안에다가 던져 넣어서는 그녀를 반쯤 죽도록 놀라게 해주어야지.) 그리하여 그는 장삼을 꺼내서는 신발이 신겨져 있는 잘린 발을 싸서 창 밖으로 기어나갔다. 그리고는 살그머니 자녕궁 쪽으로 걸어갔다. 자녕궁과 가까워지게 되자 그는 감히 길을 따라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 다. 그리하여 그는 몸을 날려 꽃나무 뒤로 몸을 숨기고는 한 걸음 옮긴 후 귀를 기울이고는 했다. 그리고 내심 생각했다. (만약 잘못하여 늙은 갈보에게 잡히게 된다면 그야말로 스스로 그물에 뛰어드는 결과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한편으로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겁 도 났다. 한 걸음 한 걸음 태후의 침궁과 가까워지게 되자 손바다게 고 이는 땀도 더욱더 많아지게 되었다. (내가 이 한쌍의 암퇘지 발을 문입구 계단 위에 내려놓게 된다면 그녀 는 내일 틀림없이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내가 정원으로 던 지게 된다면 역시 너무나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며서 그는 살금살금 두 걸음 다가갔다. 이때 갑자 기 남자의 음성이 들렸다. "유연은 어떻게 된 것이지? 어찌하여 이때까지 돌아오지 않지?" 위소보는 속으로 크게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방안에 어째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릴까? 이 말하는 사람의 소리로 미 루어 볼 때 태감이 아니다. 혹시 늙은 갈보에게 기둥서방이 있었던 것 이 아닐까? 하하, 하하, 이번에 나는 간통하는 두 남녀를 잡아야겠다.) 그는 속으로 간통하는 사람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간이 십 배나 더 크다고 하더라도 엄두를 낼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호기심이 크게 일어 그대로 잘린 발을 놓아두고 돌아설 생각은 없었다. 그는 소리나는 곳을 향해 발소리를 죽이며서 몇 걸음 다가갔다. 걸음마 다 그는 가볍게 놓았고 메마른 가지를 밟게 되었을 때도 소리가 나지 않도록 했다. 이때 남자가 싸늘히 코웃음 치더니 말했다. "흥, 아무래도 변고가 있는 것 같군. 그대는 그 꼬마가 매우 매끄럽게 잘 도망가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찌하여 유연 혼자서 그를 데려가도록 했지?" 위소보는 생각했다. (알고 보니 너는 나를 이야기하고 있었구나.) 이때 태후는 말했다. "유연의 무공은 그보다 십 배나 고강하고 또한 눈치가 빨라서 매사에 경계를 할텐데 무슨 변고가 나겠어요? 십중팔구 그 불경을 먼 곳에 두 었기 때문에 유연은 그 꼬마를 데리고 불경을 찾으러 갔겠죠." 그 남자는 말했다. "불경을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괜찮지만 그러지 않을 때는 흥!" 그 사람의 어조는 매우 엄했다. 태후에게 그와 같은 말을 하다니 실로 무례하기 이를 데 없었다. 위소보는 속으로 더욱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하에 누가 그녀 앞에서 이와 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 설마하니 노 황제가 오대산에서 돌아온 것일까?) 순치황제가 궁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하니 크게 흥분되었다. 그리고 속으 로 좋은 구경거리가 생겨날 판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부근에 한 명의 궁녀나 태감도 볼 수 없다는 사실 이었다. 아마도 모조리 다 태후에게서 멀리 가 있으라는 분부를 받은 모양이었다. 이때 태후는 말했다. "그대는 내가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잖아요? 내가 자녕궁 에서 한 걸음 나가기만 하더라도 궁녀와 태감들이 한 무더기로 따르게 되니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요?" 그 남자는 말했다. "그대는 날이 어두워진 이후에 그를 앞장 세워서 가면 될 것이 아니겠 소. 그렇지 않으면 나에게 통지하여 나로 하여금 그를 앞장 세워서 불 경을 가지러 가게 하면 되었을 것이 아니오?" 태후는 말했다. "저로서는 그대에게 수고를 끼칠 수가 없었어요. 그대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도 조금도 낌새를 차리게 해서는 안 돼요." 그 남자는 냉소했다. "이와 같은 큰 일에 부딪치게 되었는데 이것저것 따지게 되었소. 그대 가 나에게 통지하지 않은 것은 내가 그대의 공로를 가로챌까봐 두려워 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소." 태후는 말했다. "가로챌 게 뭐가 있어요. 공로가 있어도 그렇고 공로가 없어도 이 모양 이 아니에요? 그저 평안무사하게 일 년을 더 견딜 수 있기만을 바랄 뿐 이죠." 그 어조에는 원망하는 빛으로 가득차 있었다. 위소보가 만약 태후의 음성을 똑똑히 아는 처지가 아니라면 틀림없이 늙은 궁녀가 그 누구에게 꾸지람과 원망을 듣고 있는 것이라고 여길 판 이었다. 물론 두 사람의 말하는 소리는 음성을 지극히 낮추고 있었으나 거리가 가까웠고 조용한 밤중이며 다른 기척이 들리지 않는지라 결코 잘못 들 을 리도 없었다. 그리고 위소보는 그들 두 사람이 무슨 공로를 가로채느니 하는 말을 듣 고 그렇다면 이 남자는 순치황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다시 일어나는 호기심을 억제할 수 없어 천천히 창가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창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가 이와 같이 창밖에 서서 훔쳐보는 것은 여춘원에 있을 때, 어릴 적 부터 익숙했던 노릇이었다. (옛날 나는 손님이 우리 어머니를 데리고 노는 것을 훔쳐보았었지. 그 런데 오늘밤은 늙은 갈보가 손님을 대접하는 것을 훔쳐보게 되었구나.) 그러고 보니 태후는 비스듬히 의자 위에 앉아 있었고 한 궁녀가 뒷짐을 진 채 방안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밖에 다른 사람은 없었 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 남자는 어디로 갔지.) 이때 그 궁녀가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기다리지 않겠소. 내가 가 봐야겠소." 그녀가 입을 열자 위소보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원래 그 궁녀는 남자 소리를 내고 있었다. 조금 전 바로 그녀가 말했던 것을 똑똑히 알아들 을 수 있었다. 위소보는 창틈으로 들여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저 그녀의 가슴팎까지 는 볼 수 있었으나 그 위의 얼굴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아볼 수가 없 었다. 태후는 말했다. "내가 그대와 함께 가겠어요." 그 궁녀는 냉소했다. "그대는 그저 마음을 놓지 못하는군." 태후는 말했다. "마음을 못 놓을 것이 뭐가 있어요? 나는 유연이 수상한 짓을 하지 않 나 의심하는 거예요. 우리 두 사람이 힘을 합하게 되면 쉽게 그녀를 제 압할 수 있을거예요." 궁녀는 말했다. "음, 그것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군. 그야말로 시궁창에서 배 를 뒤집히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 가 봅시다." 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침대로 가더니 이불과 요를 들쳤다. 그리고 다시 한 조각의 나무판자를 들어냈다. 달빛 아래 푸른 빛이 번쩍였다. 그녀의 손에는 이미 한 자루의 단검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단검을 검집에 꽂더니 품속에다 집어 넣었다. 위 소보는 생각했다. (원래 늙은 갈보의 침대에는 이와 같은 장치가 되어 있었구나. 그녀는 다른 사람이 찔러 죽일까봐 방비하기 위해서 단검을 검집에 꽂아 놓지 않고 있었구나. 그러니까 손을 뻗쳐 잡히는 대로 단검을 들고서는 자기 를 해치려고 하는 사람을 죽이겠다는 것이며 검집에서 단검을 뽑는 시 간을 벌자는 것이겠군. 하기야 매우 다급한 경우에는 눈 깜박할 사이의 오차도 생겨서는 안 되겠지.) 이때 태후와 그 궁녀는 침전에서 걸어나왔다. 그리고는 문을 살짝 닫더 니 자녕궁에서나갔다. 방안의 촛불은 끄지 않은 채였다. 위소보는 속으 로 생각했다. (나는 이 암퇘지의 발을 그녀의 침대에 있는 그 장치 안에 다가 놓아 두어야겠다. 그리하여 그녀가 나중에 단검을 다시 꽂아 넣으려고 했을 때 갑자기 이 암퇘지의 발을 만지게 되어서는 깜짝 놀라 반쯤 죽을 정 도로 혼이 날아갈 것이다.) 그는 자기의 생각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몸을 날려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이불과 요를 들고 보니 침대 윗쪽의 판자 대기 위에 조그만 구리로 만들어진 고리가 있었다. 그는 손가락을 뻗어 잡아당겼다. 그러자 한 조각의 넓이가 약 한 자 정도 되고 길이가 약 두 자 정도 되는 나무판대기가 들어올려졌다. 아래에 있는 장방형의 칸이 들어나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그곳에는 세 권의 불경이 놓여 있었다. 바로 그가 본 적이 있는 사십 이 장경이었 다. 두 권은 그가 오배의 집에서 몰수를 한 것이었다. 원래 불경을 넣어 두 던 옥으로 된 상자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한권의 겉장은 하얀 비단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날 밤 해로공과 태후가 주고받았 던 말로 미루어 볼 때 순치황제가 동악비에게 한 권의 불경을 내렸다고 하지 않던가? 태후는 동악비를 죽인 이후 자기의 것으로 만든 것이 이 불경인가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불경은 도대체 어디에 쓰려는지 모르겠군. 모든 사람들이 그토록 중시하니 내가 슬쩍 가져가야겠다. 나중에 이 불경이 없어진 것을 알고 늙은 갈보는 울화통이 터져 죽으려고 할테지.) 그리하여 그는 즉시 세 권의 불경을 품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유연의 잘라진 발을 장포에서 꺼내서 침대에 만들어 놓은 칸에다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나무판대기를 덮고 이불과 요를 제대로 펴 놓았다. 그리고 장 포를 아랫쪽으로 차 넣고는 몸을 돌려 바깥쪽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런 데 갑자기 바깥쪽의 문이 스르르 하고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누가 문을 밀고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되자 그만 그는 혼비백산할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그로서는 태 후와 그 궁녀가 이토록 빨리 돌아오리라고는 생각치 못했던 것이다. 미 처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고개를 숙이고 바로 침대 아래로 기어들어갔 다. 그리고 속으로 야단났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저 태후가 무슨 물건을 잊고서 돌아와 그 물건을 찾아 내어서는 다시 자기를 다시 자기를 찾아가기를 바랬다. 그리고 또 그녀가 깜박 잊은 물건은 결코 침대의 아래에 만들어진 칸에 들어 있는 물건이 아니 었으면 하고 바랬다. 이때 발걸음도 가볍게 한 사람이 안으로 달려들어왔는데 뜻밖에도 한 여인이었다. 발에는 엷은 녹색 신발을 신고 있었고 바지 역시 엷은 녹 색이었다. 그 바지의 모양으로 보아 궁녀임에 틀림없었다. (원래 태후를 모시고 있는 궁녀구나. 그녀의 몸에 무공이 있는 것을 보 면 예초는 아니다. 그녀가 만약 즉시 나가지 않으면 그녀를 죽일 수밖 에 없다. 될 수 있으면 그녀가 침대 앞으로 다가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는 가볍게 비수를 뽑아 들었다. 궁녀가 침대 앞에 다가오기만 한다면 아래에서 그녀의 아랫배를 찌를 참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그녀 는 누구의 손에 죽었는지도 모르게 목숨을 잃고 멀 것이리라. 이때 그녀는 서랍을 열고 또 장농문을 열기도 했다. 그리고 이리 뒤적 저리 뒤적 무슨 물건을 찾는 듯했으나 시종 침대 앞으로는 다가오지 않 았다. 곧이어 찍찍 하는 소리가 났다. 무슨 예리한 것으로 두 개의 상 자를 찢는 것 같았다. 위소보는 깜짝 놀랐다. (저 사람은 보통 궁녀가 아니구나. 태후 방으로 들어와 무엇을 훔치려 고 하는데 혹시 사십 이 장경을 훔치려는 것이 아닐까? 그녀의 손에 칼 이 들려 있는 것을 보면 무공 또한 나보다 못하지 않은 것 같구나. 내 가 만약 나가게 된다면 그녀를 죽이기는커녕 오히려 그녀에게 죽음을 당하고 말 것이다.) 이때 그녀는 상자 안을 마구 뒤적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서쪽에 있는 세 개의 상자를 찢어서는 물건을 찾는 것 같았다. 위소보는 속으로 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네가 더 지체하고 가지 않는다면 늙은 갈보는 곧 돌아올 것이다. 네가 목숨을 잃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나에게까지 누를 끼쳐 이 위소보가 너 와 함께 하늘나라로 가게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너의 얼굴을 크게 세워 주는 꼴이 될 것이다.) 그 여자는 찾는 물건을 찾지 못하게 되자 매우 초조한 듯 상자를 더욱 더 빨리 뒤적였다. 위소보는 이제 투항하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차라리 불경을 그녀에게 던져 주어 그녀가 빨리 이 자리를 떠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바로 이때였다. 문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고, 태후의 나직이 속삭이 는 소리가 들렸다. "틀림없이 유연이라는 계집년이 불경을 손에 넣고는 멀리 떠난 거예 요." 그 여자는 사람소리를 듣게 되자 미처 도망칠 수가 없는 것을 알아차린 듯 옷장 안으로 뛰어들더니 옷장의 문을 닫았다. 그 남자의 음성을 가 진 궁녀가 말했다. "그대는 정말 유연이 불경을 가져갔다고 생각하오? 그대가 거짓말을 하 고 있는지 아닌지 내가 알 수 있단 말이오?" 태후는 노해 부르짖었다. "그대는 무슨 말을 하는거예요? 내가 유연에게 불경을 갖고 오도록 보 내지 않았단 말인가요? 그렇다면 그녀를 무슨 일로 보냈겠어요?" 그 궁녀는 말했다. "그대가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지 내 어떻게 알겠소? 어쩌면 그대는 유연이라는 눈의 가시를 뽑듯 그녀를 해쳐 죽였겠지." 태후는 노해 코웃음쳤다. "흥, 사형이 되는 사람이 그와 같이 의리없는 말을 하다니, 유연은 나 의 사매예요. 나에게 어찌 그와 같이 큰 담이 있겠어요?" 그 궁녀는 냉랭히 말했다. "그대는 평소부터 대담한 편이 아니오? 그리고 손 씀씀이가 악랄하여 무슨 일이든 못 해낸 적이 없지 않소?" 두 사람의 말소리는 무척 나직했으나 조용한 밤이라 여전히 똑똑히 들 을 수 있었다. 위소보는 태후가 그 궁녀를 사형이라 부르고 유연 또한 그녀의 사매가 된다는 말에 더욱더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녀들 두 사람은 이야기하는 사이에 내실로 들어왔다. 그런데 방안의 상자가 마구 찢어진 것을 보고 도 잡다한 물건들이 땅바닥에 마구 흩어져 있는 것을 보자 동시에 아 하며 놀라 부르짖었다. 태후는 부르짖듯 말했다. "그 누가 불경을 훔치러 왔어요." 그리고 그녀는 침대로 다가서더니 이불과 요를 들치고는 나무판자를 들 어올렸다. 그러나 이미 불경은 사라지고 보이지 않자, 부르짖었다. "어머!" 곧이어 그녀는 유연의 그 잘라진 발을 발견하고 놀라면서 물었다. "이게 뭐지?" 그 궁녀는 손을 뻗쳐 집어들더니 말했다. "여인의 발이군." 태후는 놀라며 말했다. "이것은 유연의 발이군요. 그녀는..... 그녀는 남에게 해침을 당해 죽 었군요." 그러자 그 궁녀는 냉소했다. "나의 말이 틀리지 않았겠지." 태후는 놀람과 분노에 휩싸여서는 되물었다. "어떤 말에 잘못이 있다는 거예요?" 그 궁녀는 말했다. "책을 숨기는 비밀 은닉장소는 천하에서 그대 한 사람밖에 모르는 일이 아니오? 유사매를 그대가 해쳐 죽인 것이 아니라면 그녀의 잘라진 발이 어찌하여 이곳에 와 있지?" 태후는 노하여 부르짖었다. "아직도 그같이 터무니없는 말을 지껄이고 있는 거예요? 불경을 훔친 사람은 얼마 가지 못했을 거예요. 빨리 뒤쫓아가 잡도록 해요." 그 궁녀는 말했다. "맞아, 어쩌면 아직도 그 사람은 이 자녕궁 안에 있을지 모르지. 그 대.... 그대가 혹시 수작을 부린 것은 아니겠지?" 태후는 대답하지 않고 몸을 돌리더니 옷장을 바라보며 한 걸음 두 걸음 다가갔다. 마치 그 옷장에 대해서 이미 의심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위소보는 심장이 쿵쿵 뛰었다. 아니 금방이라도 목구멍으로부터 튀어나 올 것 같았다. 촛불이 어른거리는 가운데 검광이 번쩍 번쩍 땅바닥에 비춰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태후가 왼손으로 옷장의 문을 열고 오 른손으로 단검을 뻗쳐 옷장 안으로 찌른다면 옷장 안에 몸을 숨긴 그 궁녀는 반드시 피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태후는 다시 한 걸음 다가섰다. 이제 옷장과는 두 자도 되지 않는 간격이었다. 별안간 와르르 하는 소리가 나면서 그 옷장이 태후 쪽으로 쓰러졌다. 태후는 너무나 느닷없이 일어난 일이라 급히 뒤로 물러서려고 했다. 그 런데 옷장 안에서 몇 가지 알록달록한 옷들이 날아와 그녀의 머리를 휘 감았다. 태후는 재빨리 손을 뻗쳐 그 옷들을 낚아채려고 했다. 그런데 다시 한 무더기의 옷이 그녀의 앞으로 던져졌다. 다음 순간 그녀가 처참한 비명 소리를 내질렀다. 옷자락 속에서 한 자루의 시뻘건 피가 묻는 단도가 들어올려졌다. 원래 그 한 무더기의 옷자락 속에는 사람이 숨어있었던 것이었다. 옷장 속에 숨어 있던 궁녀가 옷장을 쓰러뜨리면서 옷을 던져 태후가 손 발을 어지롭게 놀리는 사이에 일격으로 태후를 찌르는 데 성공했던 것 이다. 그 남자 목소리를 가진 궁녀는 처음 그와 같은 광경에 놀라 어리둥절해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태후의 처참한 비명소리를 듣고서야 손을 들 어 그 한 무더기의 옷을 향해 일장을 후려쳤다. 위소보는 그 한 무더기의 옷이 즉시 옆으로 재빨리 굴러 피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궁녀가 그 흐트러진 옷자락 속에서 뛰어나왔다. 손에는 피가 묻 은 단검을 들고 그 남자 목소리를 가진 궁녀에게 덮쳐들었다. 그 남자 음성의 궁녀는 손을 들어 다시 장력을 격출했다. 녹의 궁녀는 비스듬히 몸을 날려 피하고는 재차 적에게 덮쳐 들었다. 위소보는 침대 아래에서 두 사람이 어지럽게 옮겨 놓는 네 발을 볼 수 있었다. 남자 음성의 궁녀가 입고 있는 것을 잿빛 바지에 검은 비단신 발이었다. 녹색의 신발을 신은 두 발은 재빨리 앞으로 달려나왔다가 재 빨리 뒤로 물러서곤 했다. 검은 신발을 신은 두 발은 간혹 한 걸음 앞 으로 내딛었다가 뒤로 한 걸음 물러서고는 했다. 두 사람은 매우 격렬하게 싸웠으나 무기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없었 다. 아마도 그 남자 음성의 궁녀의 손에는 무기가 없는 것 같았다. 위 소보는 눈길을 돌려 태후 쪽을 보았다. 그녀는 땅바닥에 쓰러져서는 꼼 짝하지 않는 것이 이미 죽은 모양이었다. 이때 장풍 소리가 휙휙 하니 들리면서 한동안 싸우는 기척이 들리더니 갑자기 눈앞이 어두워졌다. 세 개의 촛대 가운데 어느덧 한 자루의 촛 불이 장풍에 꺼진 것이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다른 두 개의 촛불도 빨리빨리 꺼라. 그렇게 된다면 나는 어둠을 틈타 서 도망을 치겠다.) 휙 하니 장풍이 뻗치는 소리가 들렸고 다시 한 자루의 촛불이 꺼졌다. 그러나 두 궁녀는 그저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싸웠다. 그 누구도 전혀 소리를 내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았으며 외부의 사람에게 들키는 것을 두 려워하는 것 같았다. 자녕궁에는 본래 태감과 궁녀가 무척 많았다. 이와 같이 한동안 시끄럽 게 소란이 일어나게 된다면 벌써 달려와 살펴보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평소 태후의 엄한 명령을 받드는 몸이라 부르는 소 리를 듣지 않고는 그 누구도 감히 엿볼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때 삭삭 하는 소리가 일었다. 탁자와 의자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들이 사방에서 날아다녔다. 위소보는 놀라 속으로 생각했다. (말하는 소리가 남자 같은 궁녀는 무공이 정말 높구나. 장풍이 이르는 곳에 탁자와 의자가 모조리 박살이 나는군.) 별안간 나직이 부르짖는 소리가 들렸고 하얀 빛이 번쩍 빛나는가 했을 때 콱 하는 소리가 들렸다. 녹의 궁녀의 무기가 손에서 달아나 천정에 꽂힌 모양이었다. 곧이어 두 사람은 땅바닥에 쓰러져서는 한 덩어리가 되어 어울어졌다. 이렇게 되자 위소보는 똑똑히 볼 수가 있게 되었다. 두 사람은 서로 금 나수법을 펼치고 있었다. 그리하여 몇 자 둘레 안은 모조리 공격과 방 어의 초식으로 빈틈이 없게 되었는데 초식마다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다른 무공이라면 아는 것에 한도가 있었으나 금나수법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나날을 연마한 터였고 또한 강희황제와 수 개월을 두고 대련 을 가졌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알아볼 수가 있었다. 그런데 두 궁녀가 쓰 는 초식은 지극히 빨랐고 손씀씀이 역시 매섭고 악랄했다. 눈을 후벼파려고 했는가 하면 가슴을 짓누르려고 했고 뒷쪽을 내리치려 고 하는가 하면 목을 조르려고 했다. 그리고 혈도를 집거나 맥을 자르 려고 하는가 하면 손목을 비틀려고 했고 팔굽으로 상대방을 내지르려고 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어느 일초나 모두 상대방의 급소를 노리지 않는 것이 없었다. 위소보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만약 내가 저런 입장에 놓여 있었다면 벌써 투항이라고 항복했을 것이 다.) 위소보의 마음은 다시 두 사람의 손바닥을 따라서 마구 뛰놀았다.그리 고 다시 행각했다. (어째서 저 촛불은 아직도 꺼지지 않을까?) 그는 두 사람이 한참 싸우고 있을 때 그가 정정당당하게 침대아래에서 기어나와 정정당당하게 걸어나간다 하더라도 두 명의 궁녀는 그저 놀라 워할 뿐 그 누구도 감히 손을 뻗쳐 자기 자신을 막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용기를 낼 수가 없었다. 별안간 촛불이 꺼지면서 한 여인이 나직이 음 하는 소리를 냈다. 이어 촛불이 다시 밝아졌다. 그러고 보니 잿빛 옷의 궁녀가 이미 녹의 궁녀 를 때려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오른손 팔굽을 그녀의 목에다가 갖다대고 누르고 있었다. 녹의 궁녀의 왼손은 적에 의해 바깥쪽으로 젖혀진 꼴이라 좀처럼 적을 공격 할 수 없었다. 따라서 오른손으로 모든 수법을 다해서 공격하고 있었지만 모두 적의 왼손에 의해 해소되고 있었다. 그러데 목이 상대방에 의해 눌려 있는 판이라 숨쉬기 조차도 어려워지게 되었고, 오른손의 초식도 점차 늦추 어지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 두 발을 마구 위로 걷어차고 있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적에게 목을 졸려 죽음을 당하고 말 것 같았다. 위소보는 생각했다. (저 잿빛 옷의 궁녀가 상대방을 목졸라 죽인 이후에는 반드시 침대 아 래로 고개를 내밀고는 불경을 찾고자 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위소보 는 그야말로 죽은 위소보가 될 것이 아니겠는가.) 이때 그는 자세히 생각할 사이가 없었다. 즉시 침대 아래에서 달려나와 번쩍 손을 쳐들었다가 비수를 아래로 내리찍었다. 비수는 잿빛옷을 입은 궁녀의 등심을 찔렀다. 동시에 위소보는 비수를 윗쪽으로 그어 기다란 상처를 낸 이후 떨어져 나갔다. 잿빛옷을 입은 궁녀는 소리내어 크게 부르짖더니 벌떡 일어나 달려왔 다. 그리고 두 손으로 위소보의 머리와 목을 잡고 힘주어 졸랐다. 위소 보는 그녀가 목을 조르는 바람에 혓바닥을 내밀게 되었고 눈앞이 점점 깜깜해 오는 것을 느꼈다. 녹의 궁녀가 몸을 날리더니 오른손을 쳐들었다가 맹렬히 잿빛옷을 입은 궁녀의 왼쪽 손을 내리쳤다. 그리고 왼손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아 당겼다. 그러자 갑자기 팽팽했던 손길이 풀어지면서 잿빛 옷을 입은 궁녀의 온 머리카락이 뽑혀지면서 민숭민숭한 머리가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원래 잿빛옷의 궁녀의 머리카락은 가발이었다. 바로 이때 잿빛옷의 궁녀는 두 손으로 위소보를 놓더니 머리와 목을 몇 번 비틀었다. 그러더니 땅바닥에 쓰러져서는 웅크린채 움직이지 않았 다. 그의 등에서는 새빨간 피가 샘물처럼 흘러나오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살아날 가망이 없는 것 같았다. 녹의 궁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소공공, 고마워요. 나의 목숨을 구해 주셔서 고마워요."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놀란 가슴은 아직 진정하지 못해 손 을 뻗쳐서는 자기의 머리와 목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왼손으로 그 잿빛 옷의 궁녀의 민숭민숭한 머리를 가리키며 말을 하였다. "그녀는.... 그녀는....." 녹의 궁녀는 말했다. "이 사람은 남자가 여자로 분장하고서 궁 안으로 잠입한 거예요." 그러자 갑자기 문밖에서 누가 부르짖었다. "게 누구 없느냐?" 그 소리가 반은 남자이고 반은 여자인 것으로 미루어 태감인 것이 분명 했다. 녹의 궁녀는 오른손으로 위소보를 끌어안더니 창문을 부수며 달려나갔 다. 그리고 왼손을 한번 휘둘렀다. 콱 하는 소리와 함께 악 하는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 태감은 몸에 암기를 맞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녹의 궁녀는 왼손으로 위소보의 허리를 안고 그를 비스듬히 들어올리더 니 북쪽으로 질풍과 같이 달려갔다. 서삼소(西三所)를 지나 양화문(養華門)으로 들어갔다. 위소보는 처음 궁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을 때보다 키가 많이 컸고 무게가 더 많이 불 어났다. 그리고 키가 녹의 궁녀와 거의 비슷했다. 그러나 몸매는 녹의 궁녀가 훨씬 가늘은 편이었다. 그래도 녹의 궁녀는 위소보를 들고서 재 빨리 달려가는데 마치 갓난 아기를 들고 가는 듯 조금도 힘들어 하지 않았다. 위소보는 칭찬의 말을 했다. "훌륭한 재간이군." 그 궁녀는 그를 들고 소로를 따라 우화각(雨花閣)과 보화전을 돌아서는 복건궁(福建宮)옆에 있는 쓰레기를 태우는 곳에 이르러서는 그를 내려 놓았다. 이 쓰레기를 태우는 곳은 서철문(西鐵門)과 가까웠다. 즉 궁 안의 쓰 레기와 폐물들을 태우는 곳으로서 저녁이면 지극히 조용했다. 녹의 궁녀는 물었다. "소공공, 그대의 이름은 뭐지?" 위소보는 말했다. "나는 소계자라고 합니다." 그녀는 아 하더니 말했다. "알고 보니 오배를 잡고 황상으로부터 가장 총애를 받는 계공공이시 군." 위소보는 미소를 지었다.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는 태후의 침전에서 이 궁녀와 총총히 얼굴을 맞대게 된 셈인데 그 당시에는 자세히 살펴볼 겨를이 없었으나 그저 어렴풋이 그녀는 이미 나이가 사십쯤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그리하여 입을 열고 물었 다. "누님은 또 어떻게 되십니까?" 그 궁녀는 약간 주저하더니 말했다. "그대와 나는 화복을 함께 한 셈이니 속일래야 속일 수가 없지. 나의 성은 도(陶)이고 궁에서도 나를 도궁아(陶宮娥)라고 부르지. 그런데 그 대는 태후의 침대 아래에서 무엇을 했지?" 위소보는 그저 나오는 대로 주워넘겼다. "나는 황제의 성지를 받들어서는 태후의 간통하는 현장을 잡으려고 했 지요." 도궁아는 약간 놀라는듯 물었다. "황상께서도 그 궁녀가 남자인 줄 아시고 계시나?" 위소보는 말했다. "황상께서는 그저 조금 짐작만 하실 뿐 확실히는 모르고 있답니다." 도궁아는 말했다. "나는.... 나는 태후를 죽였다. 이 일은 순식간에 궁 안을 발칵 뒤집어 놓게 될 것이고 궁문을 닫은 채 크게 수색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나는 즉시 궁에서 떠나야겠다. 계공공, 우리 다음에 다시 만나기로 하 지."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늙은 갈보가 저 세상으로 가서 갈보짓을 하게 되었고 나는 궁안에서 태평무사하게 되었다. 그러나 궁문을 잠그고 대수색을 벌이게 된다면 방이와 목검병 두 소저는 야단나게 되니 어떡하면 좋지?) 그러다가 마침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말했다. "도누나, 저에게 한 가지 방법이 있어요. 내가 즉시 가서 황상에게 태 후가 바로 그 가짜 궁녀와 싸우다가 서로 죽고 죽이게 되었다고 말씀을 드리지요. 어찌 되었든 태후는 이미 죽었으니 대질을 할 수 없을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누님도 궁에서 도망칠 필요가 없습니다." 도궁아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그 계책이 그럴싸 하군. 그러나 그 태감은 또 누가 죽인 것이지?" 위소보는 말했다. "저는 그 태감 역시 그 가짜 궁녀가 죽였다고 말씀을 드리지요." 도궁아는 말했다. "계공공, 이 일은 매우 위험해요. 황상께서는 그대를 좋아하지만 십중 팔구 역시 그대를 죽여 입을 봉하게 될걸?" 위소보는 소름이 쭉 끼치는 것을 느끼고 물었다. "황상께서 나를 죽인다구요? 그것은 무엇 때문이죠?" 도궁아는 말했다. "그의 어머니가 남과 좋지 못한 일을 했는데 만약 조금이라도 누설이 된다면 황상의 체면이 서겠어? 설사 그대가 입을 병처럼 봉하고 있다 하더라도 황상께서 매번 그대를 볼 때마다 마음속으로 꺼림칙한 생각이 들게 될 것이니 조만간 반드시 그대를 죽이고 말걸." 위소보는 놀라 부르짖었다. "그가.... 그가 그토록 악랄할 수 있나요?" 그러나 그는 도궁아의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같은 일들은 절대로 황제에게 말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바로 이때 남쪽에서 징소리가 몇 번 들려왔다. 곧이어 사방팔방에서 징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것은 궁 안에서 불이 나거나 혹은 어떤 변고가 있게 되었을 때 긴급함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렇게 된다면 전 궁의 시 위나 태감들이 즉시 출동하게 되어 있었다. 도궁아는 말했다. "우리는 이제 도망을 칠 수가 없게 되었군. 그대는 시위나 태감들을 도 와 주는 것처럼 가장을 하고 나는 내 방으로 돌아가 잠을 자는 척해야 겠어." 그리고 왼손을 뻗쳐 위소보의 허리를 안더니 다시 그를 데리고 질풍과 같이 달려갔다.그리고 서쪽으로 영화전(英華殿)옆에 이르러서는 그를 내려놓더니 나직이 말했다. "조심해요." 그리고 몸을 돌리더니 담장 뒷쪽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위소보는 방이와 목검병이 걱정되어 급히 그녀들 두 사람이 몸을 숨기 고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징소리가 더욱더 급하게 울려퍼지고 덩달아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 리자 그는 죽어라 하고 그 방안으로 달려들어가면서 부르짖었다. "나외다." 방이와 목검병은 물었다. "왜 징을 치는 거예요? 우리를 잡으러 오는 것인가요?" 위소보는 말했다. "아니오. 늙은 갈보가 죽었소. 그야말로 지화자 좋구나외다. 역시 우리 는 나의 처소로 돌아가는 것이 비교적 좋겠소." 목검병은 말했다. "그대의 처소로 되돌아간다구요? 우리들은... 우리들은... 사람을 죽였 잖아요...." 위소보는 말했다. "두려워할 것 없소. 그들은 모르고 있으니 빨리 갑시다." 그리고 그는 몸을 굽혀 방이를 부축했다. 그리고 왼손을 뻗쳐서 보따리 를 들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세 사람이 헐레벌떡 한참 달려가게 되었을 때 옆으로 몇 명의 시위가 달려왔다. 앞장을 선 시위는 횃불을 높이 쳐들고 호통쳐 물었다. "거기 누구냐?" 위소보는 부르짖었다. "나외다. 그대들은 빨리 가서 황상을 보호하도록 하시오. 혹시 불이 난 것이 아니오?" 그 사람은 위소보인 것을 알아차리고는 재빨리 횃불을 옆에 있는 사람 에게 건네어 주고는 두 손을 공손히 내려뜨리고 말했다. "계공공, 말을 들으니까 자녕궁에 사고가 났다는군요." 위소보는 말했다. "좋소. 그대들 먼저 가시오. 내 곧 뒤따라 가리다." 그 시위는 허리를 굽혔다. "네." 그리고 그는 뭇사람들을 이끌고 달려갔다. 목검병은 말했다. "그들은 매우 그대를 두려워하는 것 같군요. 나는 방금 일이 잘못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러면서 연신 가슴을 쓰다듬었다. 위소보는 몇 마디 우스개의 말을 하고, 몇 마디 큰 소리를 치려고 했 다. 그러나 태후가 살해된 일이 시끄러워지게 되면 나중에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당황하고 어지러워 우스개 의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길을 오는데 다시 또 한 떼의 시위를 만났다. 그런 연후에 그들은 위소 보의 거실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다행히 방이와 목검병은 이미 태감의 옷차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뭇시위들은 어지러운 형편이라 그 누구도 그들을 유의해 보지 않았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들은 바로 이곳에 있도록 하시오. 결코 옷차림을 바꾸지 마시오." 그리고 그는 보따리를 옷상자 안에 집어넣고는 거실에서 나왔다. 그리 고 문에다 다시 자물통을 채우고는 급히 건청군 강희황제의 침전으로 달려갔다. 강희는 징소리를 듣고 옷자락을 걸친 채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한 명 의 시위가 달려와 자녕궁에서 사고가 생겼다는 것을 보고했다. 그러나 무슨 일인지 제대로 설명을 하지 못했다. 그가 정히 초조한 판인데 위 소보가 달려와 재빨리 물었다. "태후께서는 무사하시냐? 무슨 일이 났느냐?" 위소보는 말했다. "태후께서는 소신에게 오늘밤 먼저 저의 처소로 돌아가 잠을 자라고 했 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궁에서 사고가 났군요. 무슨 일인지 모르 겠으나 소신이 곧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강희는 말했다. "내가 가서 태후에게 문안을 여쭈어야 겠다. 그대는 나를 따라오게나." 위소보는 말했다. "네." 강희는 모후(母后)에 대해서 퍽이나 효성심이 강했다. 미처 옷을 입기 도 전에 장포를 걸친 채 서둘러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리고는 재빠른 걸음으로 달려가며 물었다. "태후께서는 너에게 시중을 들라고 했는데 너는 어찌하여 내가 있는 곳 으로 달려왔느냐?" 위소보는 말했다. "소신은 징소리를 듣고 자객이 나타났는가 하여 걱정이 되었습니다. 오 직 황상만이 걱정되었기 때문에 황망히 달려오다 보니 이렇게 되었군 요. 정말......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강희가 침궁에서 나서자 좌우의 태감들과 시위들이 떼를 지어 뒤를 따 랐다. 십여 개의 등롱이 주위를 비쳤다. 그는 위소보의 옷차림과 머리카락이 흐트러진 것을 보고 위소보가 바로 태후의 침대 아래로 기어들어갔다 나왔다하는 바람에 그렇게 된 줄을 모르고 그저 충성심을 다해 주군을 지키려고 오로지 한마음 한뜻으로 황제를 근심했기 때문에 미처 옷을 제대로 입지 못하고 달려와 보호하려고 했기 때문으로 여기고 퍽이나 기뻐했다. 수 장 정도 나가게 되었을 때 두 명의 시위가 달려와 보고를 했다. "자객이 자녕궁으로 뛰어들어 한 명의 태감과 한 명의 궁녀를 해쳐 죽 였습니다." 강희는 재빨리 물었다. "혹시 태후는 놀라시지 않았느냐?" 그 시위는 말했다. "다총관께서는 이미 사람들을 데리고 자녕궁을 겹겹히 에워싸고서 엄중 히 태후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강희는 약간 마음을 놓은 듯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가 설사 십만 명의 군사를 데리고 자녕궁을 보호한다 하더라도 이때 쯤은 이미 때가 늦었다.) 건청궁에서 자녕궁까지는 얼마 되지 않는 거리였다. 양심전과 태극전을 돌아가면 곧 도달할 수 있었다. 이때 등롱과 횃불이 대낮처럼 밝혀져 있었고 수백 명의 시위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자객은 커녕 한 마리의 쥐새끼라도 기어들어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뭇시위들은 황제를 보자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강희는 손을 흔들어 보 이고 재빠른 걸음으로 궁 안으로 들어갔다. 위소보는 문의 휘장을 들쳤고 강희는 문안으로 들어섰다. 그러고 보니 침전의 상자들이고 고리짝이고 할 것 없이 마구 잡다한 물건들이 어지 럽게 널려 있었고 피가 곳곳에 흘려있지 않은가. 그리고 두 구의 시체가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강희는 그만 놀라 가 슴을 크게 두근거리게 되어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태후, 태후!" 그러자 침대 위에서 한 사람이 나직이 말했다. "황제이신가? 걱정하실 것 없네. 나는 아무 일도 없다네." 바로 태후의 음성이었다. 위소보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알고 보니 늙은 갈보는 죽지 않았구나. 나는 정말 일하는 것이 멍청하 다. 애당초 내가 왜 그녀의 몸에다가 일검을 더 찔러 주지 않았을까? 그녀가 죽지 않았으니 이번에는 그야말로 내가 죽게 되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서 그저 도망을 치고 싶은 생각뿐이었으나 문밖에 겹 겹이 서 있는 시위들을 볼때 세 걸음을 도망치기도 전에 잡히고 말 것 같았다. 그만 두 발에 맥이 빠지고 머리가 어질어질 해져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강희는 침대 앞으로 다가서더니 말했다. "태후께서는 놀라셨군요. 제가 제대로 보호해 드리지 못한 점 정말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 밥통 같은 시위들을 하나하나 벌을 주어야겠습니 다." 태후는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별.... 별것 아니다. 한 명의 태감과 궁녀가 서로 다투다가..... 서로 손찌검을 한 끝에 죽게 되었으니 시위들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네." 강희는 말했다. "태후께서는 별일 없으신가요? 혹시 어르신께서 놀라시지나 않으셨습니 까?" 태후는 말했다. "아닐세, 나는 그저 저 태감들이나 시위들을 보면 화가 나는군. 황제, 그대는 가 보게나. 그리고 모두들 흩어지도록 하게나." 강희는 말했다. "빨리 태의를 불러 태후의 맥을 진맥하도록 하여라." 위소보는 그의 등뒤에 웅크리고 서서 감히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태후 에게 발견될가봐 두려웠고 입을 열게 된다면 태후가 자기의 음성을 알 아듣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런데 그녀는 재빨리 그 말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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