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뜨거운 지구/조선을 이끈 명문가 지도>
이번에 소개할 책은 <뜨거운 지구/브라이언 페이건/예지>, <조선을 이끈 명문가 지도/이성무외/글항아리>이다. 우선 소개할 <뜨거운 지구>는 기후 변화, 조금 더 상세히 이야기한다면 기후 온난화에 대한 역사서이다.
현재 온난화가 ‘인류의 무분별한 개발에 의한 것’인가 아니면 ‘지구의 자연스러운 변환과정인가’를 놓고 서로 논쟁 중이다. 지구의 기온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빙하기, 간빙기 또는 소빙하기 같은 단어들은 지구의 기온이 일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의 생은 그런 수억 년의 역사를 경험하기에는 너무 짧다보니 기후변화가 피부로 와 닿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2-30년 동안 과거와는 달리 급격한 기후변화를 겪다보니 이제 기후변화가 우리에게 심각한 문제로 다가선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예전 겨울에 서울시내에서 스케이트를 지치던 것이 이제 한강물 어는 것도 뉴스가 될 정도가 되었으니 과거보다는 많이 더워진 것은 사실이다. 그런대 이런 급격한 온난화가 과연 자연적인 주기냐 아니냐하는 문제이다.
현재 많은 사람들은 온난화가 산업화로 이산화탄소 배출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이산화탄소에 의한 온실효과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각 국은 탄소배출을 제한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앞서 언급하는 것처럼 지구의 기후변화는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현재 어느 학설이 맞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은 없지만 기후 변화가 인간의 생활에 많은 변화를 주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이 책은 지구에 온난화가 있었던 900-1300년 사이 지구에 어떤 일이 있었고 그것이 인류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서 쓴 책이다. 기후변화는 특히 농업이나 어업 같은 일차산업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예를 들어 900-1300년대에는 온난화로 그린란드에서도 밀재배가 가능했다고 하며, 영국북부와 노르웨이에서도 포도 생산이 가능했다 한다. 이처럼 농업과 어업이 주된 산업이었던 과거에는 기후 변화가 우리에 미친 영향은 무엇보다 컸다.
특히 유럽은 온난화로 작황이 좋아져 인구가 늘어나고 부가 축적되어 고딕성당과 같은 대규모 건축이 가능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이때 쌓은 부로 유럽은 변방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나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한다. 또한 온난화로 유라시아 대륙의 초원에 유목민들이 목축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줌으로써 몽골의 침략으로부터 유럽을 구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만일 유라시아 대륙 환경이 좋지 않았다면 몽골은 계속 서진하여 유럽전체를 정복했을 수도 있을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온난화가 좋은 결과를 남긴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 유럽에서는 기후가 안정되었지만북아메리카와 중부아메리카 지역은 오랫동안 가뭄에 시달리면서 문명의 기반을 흔들어 놓았다. 또한 아프리카도 가뭄과 홍수가 반복되면서 문명이 파괴되었고, 이 시기에 중국의 황하유역은 엄청난 기후재난에 시달렸다. 이로 인해 당나라가 기근에 시달리면 망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하는 것은 온난화시기동안 전 지구는 엘리뇨 현상 또는 라니냐 현상으로 기후가 요동쳤다는 것이다.
저자는 엘 고어에 의해 지구온난화의 문제가 이슈화 된 것은 매우 바람직한 것이지만 그러나 온난화에 대한 대처가 미흡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온난화에 의한 피해는 가공할 정도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앙코르 와트도 13세기까지 번성했지만 가뭄으로 도시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지금 우리는 가뭄하면 한두 해로 그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온난기의 가뭄은 수십 년 동안 지속되었고 이로 인해 문명이 사라질 정도로 엄청난 재앙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이런 극심한 기후변화가 있었음에도 당시 인류는 소규모의 단위로 생활했기 때문에 환경이 좋은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그럭저럭 적응하며 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인구가 도시에 집중될 경우 그에 대한 대처 능력이 심각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기후변화로 인해 엄청난 참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온난화에 대한 대처는 바로 이런 가뭄에 의한 식량 감소 등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이지 탄소배출감소 등과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1천 년 전의 온난기가 깨우쳐진 것은 우리가 자연의 주인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책을 보면서 우리현실을 보면 참 아득하기만 하다.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30%를 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전 세계가 이상기후에 시달리면 우리는 직격탄을 맞게 된다. 지금과 같은 식량자급조건이라면 우리는 식량문제로 끔찍한 기근에 시달릴 수 있다. 현재 기근을 못 벗어나는 북한의 식량자급률이 70%를 상회한다고 하니 우리의 식량상황이 얼마나 끔찍한지 알 수 있다.
결국 우리가 이제부터 준비해야 할 것은 기후변화에 대한 대비이다. 그것은 바로 농업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농업이 공업과 같이 탄력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영국이 1차 세계대전 때 해상봉쇄로 엄청난 식량난을 경험한 후 식량자급의 중요성을 깨닫고 농업에 많은 투자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식량자급이 이루어진 것은 1970년대 중반이라고 한다. 결국 식량자급을 이룩하는데 60년이 걸렸다는 것이다. 1,2년 만 기후재앙이 와도 끔찍한 참사가 발생하는 농업특성상 우리는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 한다. 지금이라고 늦었지만 적극적으로 농업에 투자하며 식량비상사태에 준비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기후변화에 대한 더 읽어볼 책 :
<기후는 역사를 어떻게 만들었는가/브라이언 페이건/중심>
1300년에서 1850년까지의 소빙하기로 인한 세계 역사의 변화에 대해서 기술한 책
<대기근 조선을 뒤덮다/김덕진/푸른역사>
1600년대 소빙하로 인한 흉작으로 조선이 겪었던 끔찍한 기근에 대해서 기술한 책
다음으로 소개할 책은 <조선을 이끈 명문가 지도/이성무 외/글항아리>라는 책이다.
나는 한옥에 대한 관심 때문에 집구조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양반사회에 대해 나름 많은 책을 읽어왔다. 그렇지만 그런 책들은 주로 사회사社會史에 관련된 책이거나, 종가宗家를 소개한 책이어서 계보에 대한 내용은 빈약했던 편이다. 나는 가문의 계보에 대해 관심이 있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서 신분이 어떻게 변화했는가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과연 신분상승이라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에 의문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신분상승이라는 것이 쉽지 않은 만큼 과거 계급사회였던 왕조시절에는 더욱 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생각해봐도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성씨들을 조선왕조 때 권력을 잡은 집단이었고 고려시대에도 권력 집단을 이루고 있었다.
예를 들어 내 본관인 해주 최씨 역시 고려시대 유명한 귀족집단이었고 조선조에 들어와서도 고려시대 만큼은 권세를 누린 것은 아니지만 양반집단에 속했다. 결국 혁명이나 그와 비슷한 상황이 아니고는 신분의 변화가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관심이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였다고 할 수 있다.
조선은 고려와 달리 양반兩班이라는 지배집단이 조선을 지배해왔다. 양반은 국가를 운영하는 집단으로 문반文班과 무반武班으로 구성되며 이를 합하여 양반이라고 부르던 것이었다. 문반이든 무반이든 나라를 지배하는 세력이다. 이런 지배계급 중 계속 대를 이어온 집안을 우리는 가문家門이라고 한다.
요사이는 家門이라는 말을 쉽게 쓰지만 家門이라는 말은 예전에는 쉽게 쓸 수 없는 말이었다고 한다. 원래 ‘家’라는 말은 제후의 나라에서 대부大夫가 되어야 형성할 권리가 주어졌다고 한다. 그러므로 조선양반 중에서도 고급관료에만 해당되며 원칙적으로 ‘선비가문’, ‘중인가문’, ‘평민가문’이라는 말을 성립될 수 없는 것이라 한다. (9쪽) 그만큼 가문을 형성한다는 것은 대단한 권력층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시대에서 가문의 존재가 부각되고 영향력이 강화된 것은 17세기부터라 한다. 이런 변화가 나타난 것은 결혼제도와 상속제도의 변화 때문이라고 한다. 즉 1600년 이전 결혼하면 처가에서 생활하던 남귀여가혼男歸女嫁婚에서 여자가 시집오는 친영제親迎制로 바뀌고, 상속이 자녀균분상속에서 봉사조 강화를 통한 장자상속으로 바뀌면서 장자 중심의 가족제도로 바뀐 것이라 한다.(10쪽)
봉사조奉祀租 : 제사를 올린다는 조건으로 별도로 나누어주는 재산
이런 변화에는 임진왜란이라는 끔찍한 전쟁도 큰 역할을 하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전쟁으로 경제가 피폐해지고 사회가 불안정해지면서 가족 간의 유대로 불안정한 사회를 대처해가려던 것은 아닐까 한다. 또한 전쟁으로 신분사회가 흔들리면서 신분세습을 공고히 하기 위해 가문을 확고히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런 변화는 더욱 공고한 신분제도를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이 책에서도 지적하듯이 16세기 이전만 해도 인재를 등용하는데 개인 역량을 중요시하는 측면이 있었지만 그 이후에는 개인 역량도 가문의 틀 속에서 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즉 그가 어느 가문출신인가에 따라 개인의 대우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런 가문 중심의 사회는 혼맥을 통해 더욱 공고화되어갔다고 한다. 또한 가문의 유대의식을 고양하기 위해 문계門契나 종계宗契를 조직하여 결속을 도모했다는 것이다. 특히 불천위를 모신 집안은 이런 의식이 더욱 특별했다고 한다. 이런 가문 의식이 높아지면서 종손에 대한 대우도 달라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가문의 역할이 증대되면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가문에서 찾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이 심화되는 것은 가문을 통하는 것이 자신의 인간적 가치와 사회적 입지를 향상시키는 가장 본질적이고도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5쪽)
이 책은 자료에 가까운 책이다. 이 책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열 곳의 가문을 소개하고 있다. 소개된 가문은 정몽주의 영일 정씨, 명종때 영의정을 지낸 이준경의 광주 이씨, 퇴계 이황의 진성 이씨, 부자가 동국 18현에 배향된 사계 김장생, 김집의 광산 김씨, 인현왕후를 배출한 연안 이씨, 남명학파의 맥을 이은 진양 하씨, 안동 권씨, 양명학을 세운 정제두의 영일 정씨, 충남 외암마을의 예안 이씨, 의병활동의 기초를 만든 척화의 선두자 이항로의 벽진 이씨가 소개되었다.
이 책은 양반 가문을 조명한 책이다. 책이 학문적 가치보다는 자료적 가치가 더 있는 책이고 가문에 대한 참고자료로 활용이 가능한 책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아쉬운 점은 족보학적 관점이 미진하다는 것이다. 가문의 대표인물 소개에 치우쳐 그 가문이 어떻게 연결되어 왔고 어떤 변화를 겪어왔는지에 대해 설명이 부족하다. 이런 점을 더 세밀하게 살펴주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우리는 예전보다는 덜하지만 지금도 가문을 찾는다. 예전과는 달리 정신적 가치와는 전혀 관계없이 돈이 많고 적음에 따라 좋은 가문과 나쁜 가문을 나누고 있다. 가문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은연 중 자부심을 가지게 한다. 지금은 덜하지만 예전에는 청송 심씨, 안동 김씨라고 하면 양반가문이라고 하면서 은연 중 주눅들곤 하였다. 그리고 족보도 없는 집이라고 하면 예전에 쌍놈에 집안이 아니었냐며 놀림을 받던 때도 있었다.
이런 계급사회에 많은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종가宗家를 돌아보면 돈에 매어 사는 사람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기품이 있다는 것을 자주 느끼게 된다. 가끔 집을 지키고 있는 노종손 내외에게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권위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것은 하루 이틀에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천박한 돈놀음에서 벗어나 이런 가문의 기품을 다시 배워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사대부 : 중국 고대의 봉건제도에서는 그 신분층이 천자(天子)·제후(諸侯)·대부(大夫)·사(士)·서인(庶人) 등 5계층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이 가운데 천자와 제후는 황제 및 왕을 뜻하고, 이들 군주를 제외하면 대부와 사가 지배계층이었으며, 피지배자인 서민과 구분되는 계층이었다. 주(周)나라 때는 사의 상층(上層)에 있는 자를 사대부라 했으며, 이들은 신하이면서 동시에 서민 위에 서서 그들을 지배하는 계층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 신분은 세습되었다. 진(秦)나라 때 군현제(郡縣制)가 성립됨에 따라 관료 지배제가 확립되었고, 사대부의 신분은 일대(一代)에 한정되기 시작했다. 육조(六朝) 시대에는 관리를 뽑는 가문이 고정되어 서민에 대해서 상류 특권층인 문벌 귀족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러나 송대(宋代)에 이르러 과거제도가 실효를 거두어 관원 중에서도 특히 과거출신의 문신 관료들을 구별하는 데 사용했고, 사회적으로 농업·공업·상업 이외의 독서인(讀書人)·지식 계층을 의미하게 되었다. (출처 : 다음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