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거꾸로 헤아리면서 살아온
松羅 朴敬用 선배께
송라(松羅)의 시 세상 반세기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이 아름다운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하고 구차하게 이런 글로 즐거운 심상에 그늘을 지우면서 흩뜨러 놓게 되지 않을까 심히 저어되고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그 행복에 넘친 자리에 가 있어서 그 자리의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 그리운 마음을 참지 못하고 이 글을 쓰면서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이 글은 김용희 씨를 통하여 부탁 받은 글도 아니고, 그저 단순한 축하의 글도 아닙니다.
제가 읽지 못한 ‘청자수병(靑瓷水甁)’ 이래 반세기 동안 선배가 생산한 태산 같은 시의 재산의 언저리에서 얼쩡대기만 한 형편에서 선배의 시 세계를 이러쿵저러쿵 읊조린다는 것이 정말 주제넘은 노릇일 것입니다.
하긴 연전에 장인지 오물인지도 구별하지도 못하는 처지에서, 무식한 것이 용감하다는 식으로 겁도 없이 얇은 입술과 끝 무딘 펜을 휘저어 향기로운 시의 세계에 상처를 입힌 실수의 경력이 있는 터라 입을 놀리는 것은 더욱 삼갈 수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오직 이 순간에 송라(松羅)의 시력 반세기를 접하면서 뭉클하게 떠올라 정리되지 않는 감개를 며칠 동안 갈아 앉혀 갈피를 잡는 동안 대충 그려지는 소회의 이미지를 선배님께 어수선하게나마 들려드리고 싶었고, 이로써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한 허물의 한끝이나마 씻어보려고 할 따름입니다.
그 소감은 그야말로 시의 태산의 그 한쪽 끝자락 언저리를 얼쩡거리면서 장님 코끼리 만지듯 만지작거려 본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느낌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무슨 타당성이나 보편적 진실을 찾으려 한다면 그야말로 어불성설이 될 것입니다.
50년전 1958년은 이 땅에, 나라의 정신과 이념에 변혁을 시도하고 권력의 칼자루를 잡고 휘둘러서 꿈꾸던 새 질서를 실현하겠다고 분탕질한 386 세대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입니다. 말하자면 세상을 휘젓는 세대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이미 시인이 되어 이 나라 국민이요 시민이요 인민이면서 겨레요 나아가 인간들에게 정서와 가치관을 노래로 뒤집어 놓은 세월이라는 거지요.
‘확실히, 산다는 것은 영원 밖의 일이다1)’를 풀밭에서 읊조릴 적엔 세상 구경을 할 꿈도 못 꾸었던 그들 세대.
범상한 이십 미만의 젋은 시인이라면 어떻게 그들 치기만만한 인류들에 의해서 반세기도 안 되는 기간에 이 나라 이 백성들을 혼줄을 뒤흔들어 놓을 줄을 상상인들 하겠습니까. 그런데 젊은 시인 송라는 바로 그 이십 미만에 오히려 영원 밖의 삶을 구름 위에 그려 놓았습니다. 마치 무슨 주술 어린 예언처럼.
그래서 송라(松羅)의 시 세월 반세기는 그런 의미에서 무서운 세월이요, 감동의 세월이요, 새 질서의 세월이었습니다.
-등단 초기
다음 두 개의 작품은 한 젊은 시인의 같은 시기의 의식에 공존하던 정서입니다.
익은 감 따서는 / 하늘에 던지자.
잔잔한 호수에 / 물결이 퍼지듯
하늘 하나 가득히 / 맴을 돌면서
풀밭에 누워 있는 / 내가 어지러웁게
익은 감을 따서는 / 하늘에 던지자.2)
자, 누구든지 대뜸 맘내키는 대로 대봐라. 무엇이라도 좋다. / 이는 언뜻 果實(과실)의 그 綿密(면밀)한 組織(조직)과도 같은 것이다. 아니면, 우리들 腦裏(뇌리)에 스민 思念(사념)의 그 복잡한 細胞(세포)와도 恰似(흡사)한 것. / 이들에게는 각기 주어진 하나씩의 位置(위치)가 있다. 이들은 서로가 宗敎(종교)인 함께의 宇宙(우주)를 마련하고 있다./ 지금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란 이것 뿐인 것이다.3)
앞의 시는 그 앞에 한 구절 언급된 ‘풀밭에서’가 보여주듯 역시 풀밭에 누워 올려다 보는 시인의 눈길에 잡힌 정서입니다. 아마 소싯적 송라 선배는 풀밭을 좋아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사춘기 소년다운 정서에 ‘익은 감을 따서’와 같은 시정은 잘 어울릴 법하지만 바로 그 나이의 그 시인에게서 나중의 시와 같은 시적 의식이 있었다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참으로 엉뚱하여 믿어지지 않을 법합니다. 이는 ‘나비야’나 ‘산토끼’ 동요와 율동이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되는 어린 아이가 반나체로 요상하게 몸을 비틀고 흔들며 춤추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가사로 빽빽 소리지르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황당해지는 노릇과 방불합니다.
이제 곧 50대에 진입할 386 세대에게는 그야말로 느닷없고 낯설어서 저항감이 일 수밖에 없을 한자어들이 마구 섞여 있는 이 작품을 보면서 무슨 조선 시대의 고전 작품인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릴 지도 모를 노릇입니다. 그것이 초현대적 의식으로 무장한 젊은 시인의 작품이라고 한다면 기겁초풍을 하지 않을까요? 그것도 앞의 동시를 빚어낸 바로 그 시인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믿으려고 하기나 할까요?
수십년 도를 닦은 도사같은 의식과 철부지 코흘리개 어린아이와 같은 심성이 일체인 양 조화롭게 존재할 수 있는 불가사이한 정서를 소유한 시인이 송라(松羅) 선배입니다.
송라(松羅) 선배 그대는 이렇게 연령을 초월해서 살아온 초인입니다. 아니 나이를 거꾸로 헤아리며 먹고 살아온 인간이라고 할 것입니다. 고희를 코 앞에 맞은 원로의 시인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죄송한 혈기방장한 젊은이같은 시인이 젊을 때는 늙은 도사처럼 행세했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렇게 설명되어야 합당하겠지요.
정말 부럽지요. 부럽고 시샘이입니다.
-시력 10년 이후
오래 전에 아이들에게 송라(松羅) 선배의 동시를 ‘불빛’의 시인이라고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4) 그런데 선배의 그 빛은 바로 생명이라는 것을 상당히 긴 동시 ‘빛’이 말해줍니다.
빛의 알맹이, / 엄마의 품. / 그 가장자리에
한 오라기 빛으로 / 내가 돋아서
나날이 한치 두치, / 껍질 벗고 / 한치 두치 크는 / 내 작은 빛.
- 동시 ‘빛’5)의 한 연.
그런데 이 무렵 일반시의 시정은 ‘비와 바람’이었습니다.
연작시 ‘南風(남풍)’6)은 그 대표작이 된듯하고, 그 외에 ‘봄비’7), ‘폭설’8) 등이 눈에 띕니다.
그 바람은 처녀의 봄바람 같은 색풍의 의심이 드는 바도 있어 이 순간 모처럼 음흉하게 즐거워집니다. 하기야 막 삼십대에 진입했다고 우쭐대었을지, 아니면 ‘나는 아직 이십대야.’ 하고 억울해 하고 있었을지 모를 애매한 그때 그 왕성한 생식의 젊음이 어디 갔겠습니까?
졸음의 앓음도 없이 / 한두 점 산과 바다의 낮꿈이나 꾸는 / 내내 그을어 있는 내게 / 부러운 것은, 담쟁이의 그 旺盛(왕성)한 / 生殖(생식)이다. 그리고. / 다녀가는 자취 없이 다녀서 가는 / 그 色感(색감)의 바람이다.
-시 ‘南風(남풍) 1’의 부분
라고 했으니까요.
이미 17년전, 저의 졸고 ‘박경용-론’9)에서 이미 ‘송라는 바람’이라고 선배의 개성적 풍모와 함께 시 세계를 규정(?)한 적이 있습니다. 바람처럼 나타났다 종적이 묘연해지는 그 거취 방식과 잘 어울리는 여러 가지 문학적 징표를 짚어 본 적이 있었지요. 사실 이러한 문학적 징표는 그의 초기 동시에서부터 발견되었었습니다.10)
겉머리 빗어내고 / 속머리 빗고 / 막손질로 또 빗질이니 / 솔잎이 반지르르 윤이 날 밖에요. / 솔바람 솔바람인들 / 맑고 고울밖에요.
-연작시 ‘송라 보경사’11)의 3번 ‘솔바람 속에’ 부분
그 맑고 고운 송라 보경사의 솔바람은 필경 어디 머무는데 없이 행선지를 밝힘도 없이 스치고 지나갔을 것입니다.
이 작품들이 발표되던 무렵부터 송라(松羅) 선배는 평소 품고 있던 시문학이 되어야 할 동시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논의를 펼치기 시작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이 무렵 발표한 평론 ‘프라스코 속의 형성’12)은 송라 문학을 직설적으로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정보가 되었었지요. 바로 그 왕성한 생식의 열정으로 인함인지 다소 흥분한 듯한 어조로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는 듯한 선배의 주장이기는 하지만 타당성과 객관성이 인정되지 않을 수 없는 논의였다고 기억합니다.
시인의 시론은 이후 계속 이어졌었습니다. 오늘까지 산문집으로 엮을 생각도 않고 버려두고 있는 선배의 주장들은 그 뒤를 이은 후배들에게 금과옥조가 되고 한국 동시문학을 완전히 개혁하여 한 차원 높은 시대로 이끌어냈습니다.
-시력 20년 이후
당나라 시인은 도원경에서 노닐었다고 합디다만 송라 시인은 사차원에서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 범인의 눈으로는 도무지 늙어가는지 젊어지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그만의 세월이기 때문입니다.
응달로만 뻗기 삼년/ 허릴 펴기도 힘겹더니
세밑 눈오는 날, / 문득 걷히운 주름살
열린 해 / 나의 새 하늘엔 / 태양도 달도 둘러릴레
-‘서시-어떤 고비’13)
섣달 그믐날 썼다고 꼬리표를 단 이 작품이 읊조리는 사연은 해를 넘기면서 늙어간다는 것인지, 주름살 펴지면서 젊어진다는 것인지 헷갈리 것은 비단 저의 시를 읽는 눈 어두운 탓만은 아닐 것입니다.
젊어지는지 늙어가는지 알 수 없는 초인적 삶이 바로 松羅(송라) 선배인 것은 사실이니까요. 그런가하면 새나라의 어린이처럼 자립 정신을 키우며 무럭무럭 자랍니다.
해마다 엄마 손잡고 가던 / 바닷가 모래밭 오릿길을 / 올해는 나 혼자 간다.
-‘오월 외갓길’ 제1련14)
-시력 30년 이후
1990년대 이후의 송라 선배는 동시조와 ‘쪽배’를 갈라놓고 생각할 수 없게 되지요. 그런데 그것은 애당초 낯선 풍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낯 익은 울타리를 뒤덮은 넝쿨장미로 하여 낯설듯이 거함의 함장이 쪽배의 노를 젓고 앉았으면 긴가민가 다시 보며 확인해보지 않을 수 없겠지요. 그래서 시인도 짐짓
눈 감고서도 만만한 / 우리 집 뜰이 낯설다
울타리를 지워버린 / 넝쿨장미 탓이다.
처마 끝 마알간 하늘 / 숲에 잠긴 여울 간다.
-‘낯선 까닭’의 부분15)
하고 읊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아닌가요, 선배님?
이렇게 낯선 시는 끝없이 생산하는 낯익은 시인이 늙을 줄 모르고 마침내 시력 반세기를 헤아리라고 턱 버티어 섰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낯섭니다. 그 선 모습이.
도도하기 이를데 없는 송라 선배답지 않게, 그러나 진정 쪽배 한 척 물가에 정박시켜 놓고, 참으로 조촐한 소반을 차려놓은 후배들에게 둘러 싸여 있는 모습 말입니다.
-시력 40년 이후
선배의 반세기를 기리는 이 잔치가 펼쳐진 이 때는 아직 질긴 사월이지만 내일 모레면 눈부신 오월입니다. 그렇다고 이 날 아침인들 눈부시지 않겠습니까만 이왕이면 선배가 사랑하는 오월에 마련되었더라면 생각이 듭니다.
송라 선배는 오월을 기리는 시편이 유난히 눈에 띕니다. 그야 동심을 기리고 누리는 시인이시니 당연히 어린이달인 오월을 기리는 것은 다른 모든 동시인과 함께 당연하고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학교 길에서 되풀이된 / 꽃필 때의 빛부심
갓 핀 듯한 짝의 눈에 / 내 눈빛이 닿는 순간,
터트린 / 번개 불꽃에 / 풀섶 이슬이 굴렀다.
-연시조‘오월 아침’ 4~6연16)
그러나 일반시편에서 보는 오월은 새벽 하늘에서 샛별을 보는 느낌입니다.
탓 많고 까닭 많아 잠 못드는 내 뜨락에
아, 놀라워라, 네 낱낱이 되살아 오는 아침,
마치도 네게 접순(接脣)하듯 이 느꺼움 새긴다.
-연시조‘오월 아침’ 제4수17)
이른바 새천년이요, 밀레니엄이요, 2천년대라고 하는, 그 떠들썩 시끌벅적 우리 앞에 열린 이른 바 새 시대입니다. 우리 범인(凡人)의 눈에는 20세기 오월이나 21세기 오월이나 다를 바 없고, 어릴 때 느낀 오월이나 지금 이 나이에 맞는 오월의 눈부심, 그 밝음의 정도나 즐거움에 달라진 것이 없는데, 선배 시인은 꼭 같은 제목으로 쓴 시가 이토록 다른 정서로 그려질 수 있다는 데 매우 황당할 정도로 놀랍습니다.
순간적인 정서의 변화요, 마술사처럼 순식간 정서 갈아입기라고 해야 할 듯합니다.
그것은 1999년 12월 31일 자정을 수초 앞두고 새해를 카운터다운 하던 때의 순간, 그 몇초의 외침 끝에 어마어마한 세기의 변화를 느껴야 했던 그 변조를 우 두 편의 시조에서 만나면서 온몸의 살갗에 소름을 돋게하고 부르르 떱니다.
-시력 50년 맞이
그 젊어지는 모습은 끊임없는 변신에서 확인하게 됩니다만 그 변신이 손오공의 둔갑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몸을 감추기 위한 파충류의 변색도 아닙니다.
선배의 변신은 조류의 거역이요, 시대의 저항이었습니다. 적어도 시력 50년이 되기 이전까지는.
그런데 지금 시력 반세기의 선배는 자신의 본질을 변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깁니다. 그것은 거역이나 저항과는 전혀 상반된 ‘조화’를 꿈꾸고 있는 듯하기 때문입니다.
로큰롤이 솔바람 풀벌레소리 새소리에 살 섞으며 차분한 배경 음악으로 숲의 노래를 살찌우듯이.18)
앞서 말한 ‘박경용-론’에서 끝을 이렇게 마무리 한 적이 있습니다.
송라(松羅) 박경용. 그는 오늘 또 무슨 바람이 되어 나타났는가?
90년대가 시작되면서 20세기가 저무는 이 마당. 비록 그의 문학적 연령은 이미 한 세대를 채운 바이지만 그렇다고 칩거하여 잠들기에는 아직도 원기왕성하고 여전히 치기만만하며, 유아독존적 독설이 팽팽하도록 살아뛰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이미 지천명에 들어서 있는 박경용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그의 바람은 봄 기운 도는 산천에 마지막 기를 써 보려는 시들어버린 겨울바람의 안간힘 정도로 치부해 버려도 상관없겠는가? 그러한 그가 펼칠 새로운 바람을, 우리는 손가락에 침을 묻쳐 치켜들고 그 방향과 세기를 점쳐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무튼 두고 볼 일이다.
송라(松羅) 선배.
나는 지금 이 글을 20년전의 글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여기 연대나 햇수를 나타내는 숫자들에 20년씩 보태어 바꾸어 놓으면 하나도 달라진 상황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월은 두 번 세상을 바꾸어 놓고, 우리의 정권도 네 차례를 보내어 다섯 번째 새 정권을 맞은 터이지만 ‘송라 박경용’은 달라진 게 없이 여전히 청청한 현역이요, 그때 가졌던 물음은 오늘 그대로 유효한 상태 아닙니까?♠
1) 1959. 연시조 ‘풀밭에서’ 2/3연 중 종장(현대문학 7월호)* 3연중 제2연은 이렇다.
순간을 다스리는 지혜는 슬기롭다./ 이렇게 잠시나마 자신을 잊고 보면 / 확실히, 산다는 것은 영원 밖의 일이다.
*각주에서, 발표 지면과 연대 표시는 작품집 뒤쪽에 시인 스스로 정리해 놓은 자료에 의거한 것임. 이하 모두 같음
2) ‘익은 감 따서’(1959. 10. 25 동아일보) 3) ‘位置(위치)’(1959. 현대문학 7월호)- 앞의 시조 ‘풀밭에서’와 동일한 지면에 함께 소개된 작품으로 확인된다. 4) 1986. ‘어른은 모르는 불빛과 빛깔‘(월간 아동문예 10월호)8) 1970. 현대문학 6월호
9) ‘박경용론-송라(松羅) 시의 무애한 공간’(아동문학평론 61호/1991겨울)
-‘언니는 모를거야’(1959. 5. 30 동아일보)의 제2연.
11) 1977. 11. 3 소년한국일보. 4편의 동시로 구성된 연작동시(1. 솔비단 고장 2. 보경사 3. 솔바람 속에 4. 볕과 바람 짝하듯)
12)「아동문학」16집(1968.5.6), p.p39~49
13) 1980. 시집<枕流集(침류집)>(서문당)의 서시
15) 2수씩 묶어 3편을 구성한 연시조(동인지 <쪽배>창간호 ; 1997, 가람출판사)
16) 6연 2수로 구성된 동시조로서의 연시조 ‘오월 아침’(여덟번째 동시집<낯선 까닭(선우미디어,2001) 나중 수(제2수=4~6연)에 해당하는 부분.
17) 4수로 구성된 연시조 ‘오월 아침’’(시조선집<도약-우리 시대 현대시조 100인선(태학사 편,2000)> 중 제4수
18) 2008. ‘사로잡고 사로잡혀’-연작 동시조 <속편 음악 둘레 내 둘레-10번>(쪽배 6호, 가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