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 동방, 동국, 해동 등 동을 쓰고 있으면서도 폄하하고 있는 사림들은 한국내, 강단사학자고 뭣도 모르고 동해하고는 윤치호와 이승만은 영어를 안다고, 동해를 "East Sea" "Eastern Sea"라고 해서 요꼬라지가 되엇다.
동방, 동국의 바다가 동해로, 동녁 동이 아니고 동이의 바다, 동방의 바다라는 것으로 동이는 대제국 천자의 천지라는 뜻으로 東方禮儀之國으로 東方이 東夷로 夷는 족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천지, 천자의 나라라는 이/리, 선 등으로 뿌리라는 뜻으로 불이, 뿌리입니다, 즉, 동방은 오리엔탈[Oriental] = Original Land, 동방의 횃불, 문명의 시작땅이라는 개천, 첫나라, 문명의 시작나라, 땅 랜드라는 탈로 랜드로 方입니다, 國은 하국으로 나라는 천자지천지로 朝鮮이고 그 아래 고조선은 韓, 나라이름 한, 그 아래, 하국, 제후국이 1자 舜, 禹, 夏, 商, 殷, 周,,, 입니다, 진시황은 서이로, 중화인이 아닙니다, 전부 이상하게 이야기하여 그 본류에 대한 왜곡으로 약간씩 빗나가 있습니다.
문자의 이해가 잘못된 것으로 중국의 문화, 사상보다 고조선, 고는 마고지나부터 우리를 말하는 천부 부명의 고리로 古입니다, 天皇은 당나라 황제칭으로 처음으로 쓴 것은 당나라 이세민입니다, 도교로 당나라 이가 노자의 도교로, 도교의 수장이 천황인데 이는 뭐가 잘못된 지도 모른체, 산놈이 황이라고 하는 쪽발이들의 아우성입니다, 신칭을 가지고, 추존, 즉 황은 삼황, 삼신이 전부고 성인이 돌아가신후 추존의 예지, 비인격신칭 황 삼황, 삼신 등을 황제칭이라고 쓰는 것은 東方禮儀之國에서는 "후례자식"이라고 합니다.
내용을 보고 간단하게 코멘트합니다, 물론 전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고 원 의미와 달리, 잘못 사용된 부분을 간단하게 코멘트하겠습니다. 은연중 계속 신라를 비하하고 고구려-대진-고려/금-후금/청으로 고구려 동북공정의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환단고기[고구려-대진국-고려/금-청]에 의한 국통맥의 절단으로 이 또한 식민사관으로 심히 우려가 됩니다.
배달겨레, ‘동이東夷’
고대 동북아에서 수천 년 동안 위엄을 떨친 치우천황왕은 우리 역사에 또 다른 자취를 남겼다.
예로부터 중국인들이 동방 배달민족을 '동이'라 부른 것은 배달국 14세 치우천황왕이 큰 활을 만들어 쓴 이후이다.
치우천황왕이 큰 활을 만들어 쓴 이래 중국인들이 동방 배달민족을 동이東夷라 부르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동이를 '배달 동이'라 불러야 옳다.
큰 활[大弓]의 위엄을 대단히 두려워한 한漢족은, 배달민족을 가리켜 '큰 활을 잘 쏘는 동방 사람'이란 뜻으로 동이라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과연 '동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산] 우선 삼신오제본기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天國一𥛠三位一體上帝
천국일신삼위일체상제
曰天國一𥛠天祖上帝也位乎至上之上而无始无終極乎至中之中而无端无倪是宇宙之一大皇神也形乎无形之形而有眞性有大德曰天一謂造化之主也言乎无言之言而有眞命有大慧曰地一謂敎化之主也爲乎无爲之爲而有眞精有大力曰太一謂治化之主也三位之神渾然一體而分爲三用名有三神而實爲一神故曰一而三三而一也
이르기를 天國의 一𥛠이고 天祖의 上帝라 하였다. 位는 높고 높은 곳에 이르므로 처음과 마지막이 없으며, 極은 한 가운데 이르므로 끝이라는 것은 찾아 볼 수 없다. 이것이 우주에 있는 하나의 大皇神이다. 形에 대해서 말하자면 형체가 없는 형체니 참된 성품과 큰 덕이 있다. 그래서 이르기를 天一이라 하는데 造化의 주인이라 하였다. 言에 대해서 말하자면 말이 없는 말이니 참된 명령과 큰 지혜가 있다. 그래서 이르기를 地一이라 하는데 敎化의 주인이라 하였다. 爲에 대해서 말하자면 爲가 없는 爲이므로 참된 精과 큰 力이 있으니 이르기를 太一이라 하였다. 이는 治化의 주인이다. 三位의 하느님은 혼연일체가 되어 나누어 셋으로 쓰고 이름하여 三神이라 하는데 사실은 하나이다. 그래서 이르기를 하나가 셋이고 셋이 하나라고 하였다.
太古天地鴻濛陰陽混沌日明堆雜星辰錯綜水火相盪壤海渾融宇宙只是光明一塊而已三神一體上帝一𥛠有統治宇宙之无量智无量能而不現其形體坐於最上之天所居千萬里所爲千萬(䑒)恒時放大光明發大玄妙降大吉祥呵氣以包萬有射熱以滋萬種行神以理萬機三神麾下有五帝五帝傘下有五靈使之分職攝理萬彙之所以藉生也
태고에 천지가 鴻濛하고 음양이 혼돈되고 日明이 堆雜하고 星辰이 錯綜하고 水火이 相盪하고 壤海가 渾融하고 宇宙가 단지 광명은 한 덩어리더니 이미 三神一體上帝一𥛠가 있어宇宙를 통치하였는데 그 智를 헤아릴 수 없고 그 能을 헤아릴 수 없었다. 그 形體를 나타내지 않고 最上의 天에 앉아 살았는데 천만리는 이른바 천만䑒이다. 항상 큰 光明 내놓고 大玄妙를 발하고 大吉祥을 내려보냈다. 氣을 불어 萬有을 감쌌으며 熱을 쏘아 萬種을 번성시켰으며, 神을 행하여 萬機를 다스렸다. 三神 깃발麾 아래에 五帝가 있다. 五帝의 傘下에 五靈이 있는데 五靈으로 하여금 그 직분을 나누어 萬彙의 藉生을 攝理하게 하였다.
天國一𥛠三位一體上帝
一𥛠
삼신[삼황, 삼주, 삼위]일체 일신, 하나님, 신
삼황상제 일신 : 신칭으로 神위의 삼신일체 일신입니다.
𥛠在, 𠘩上一位. 有大德, 大慧, 大力. 生天. 主𠘩數世界. 造甡甡物, 纖塵𠘩漏, 昭昭𢩙𢩙, 不敢名量, 聲氣願禱, 絶親見, 自性求子, 降在爾𠜶
일신 신에 대한 삼일신고의 "신"입니다, 이 일신은 삼위일체 일신, 상제로 상제는 오제위로 삼황상제를 의미합니다, 즉 천제는 천하를 다스리는 오제로, 흑제, 적제, 청제, 백제, 황제로 마고지나의 천하대장군이고 그 아래 지하는 오령으로 태수, 태화, 태목, 태금, 태토 오령의 지하여장군입니다.
이에 환국은 하늘의 하늘 마고에서 내려와 이 땅의 하늘로 환국으로 天國, 이 땅의 하늘로 하늘 3계가 아니고 이 땅의 하늘로 그 하늘을 천하로 보고, 이의 임금을 天帝로 즉 천하 오제 대신 환국의 임금님을 桓, 우리 전부를 환국에서는 "환"이라고 불렀고 그 령부로 임하신 분을 仁으로 桓因이 초대 桓仁이 되셨습니다, 天帝라고 칭합니다.
배달나라 신시로, 檀 조선이라는 단국, 배달나라에 강림하신 거발환 환웅으로 桓雄[大雄]은 天帝의 子로 天王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고조선은 천제의 손자로 손으로 天孫으로 天君입니다.
즉 천황이란 신칭으로 삼황은 천황, 지황, 인황으로 일체 삼황상제로, 신, 일신으로 조화주, 교화주, 치화주, 조화황, 교화황, 치화황으로 삼황일체입니다, 추존의 예로 한국의 삼황은 환인천제-환웅천왕-왕검천군으로 천제-천왕-천군의 천손의 계보를 말합니다.
皇[光], 三神上帝在最高至上一位. 創宇宙, 主全世界, 造無量物, 蕩蕩洋洋, 無物不包, 明明靈靈, 纖塵弗漏.
帝[明], 桓國天帝桓因, 首出萬民, 庶物之上, 用御天宮, 啓萬善, 原萬德, 群靈諸嚞護侍, 大吉祥, 大光明, 處曰桓國.
티우[치우] 천왕입니다, 물론 추존칭으로 천황이라고 하나, 이는 추존이나, 삼황에서 빠지졌습니다, 즉 배달나라 제14대 천왕, 티우천왕은 단군 왕검전까지 치화황으로 추존되어, 3황으로 환인천제-환웅전왕 -티우천왕이셨다가, 왕검천군이 치화황으로 추존되시고 삼성각, 삼성에서 빠졌으나, 군신으로 독시나, 천독신사에 별도로 티우천왕을 모신 것입니다, 그래도 삼황으로 천황은 쓰지 않습니다. 천황은 천주와 같은 의미로 천주교의 천주와 천황이라는 쪽발이 왜왕칭은 당나라 황제칭으로 이는 기원후 8세기이후에나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이에 皇은 ㅎ왕[흰왕의 ㅎ왕=황]입니다, 이 발음을 노[奴]로 하는 이유는 후례자식이라는 뜻입니다, 왕, 천자를 칭하는 놈과 삼신의 삼황을 칭하는 자는 倭奴라고 凶奴로 [노]로 칭합니다, 그게 예법입니다, 덴노라고 하는 것으로 봐서는 동이계가 아니고 노예계로 부용인으로 倭族은 황, 중국어도 후앙인데, 덴노라고 하는 것은 이미 경고가 된 말입니다, 천황이 아니고 [덴노, 天奴]로 읽어주면 됩니다.
東夷라는 말은 배달나라 14대 티우씨 좌오지 천왕시가 아니고 배달나라 초부터 티우씨는 主刑을 담당한 천손씨로 티우씨는 벌레, 짐승 등 적의 침입을 방어하고 공격하는 병권, 군신족으로 티우씨의 좌오지가 제14대 천왕으로 즉위하십니다, 기원전 2707년, 동이는 티우천왕시가 아니고 배달나라의 티우씨족의 청동기 등의 무기와 함께 활을 잘 쏜다는 뜻도 있지만, 본 뜻은 따로 있습니다, 이는 아래에서 설명하고 우선 제5대 천왕 포의씨 태우의 천왕 등 5가의 임무와 활동 그리고 동이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부분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且以畜紀官者盖牛馬狗猪羔羊之稱皆屬之於當時民衆生養之科, 而賴以爲業者也. 又以表官職之性性也. 高矢氏世掌主穀之職占居東南之地, 神誌氏世掌主命之職占居東北之地, 蚩尤氏世掌主刑之職占居西南之地, 皆桓國九族之後而異支同祖也. 皆三氏之系不甚相遠. 而蚩尤氏作刀戟大弩以後狩獵征伐戰鬪賴以神功, 中土漢族甚畏大弓之用聞風膽寒者久矣. 故謂我九族曰夷. 夷之爲言大弓之稱, 而說文所謂夷卽古之𡗝字𡗝從大從弓東方之人是也.
가축의 이름으로 벼슬을 이름하였으니 무릇 소 말 개 돼지 양 등의 칭호는 대개 모두 당시에 백성들이 기르는 것으로서, 이에 의지하여 생업을 삼았던 것이다. 또한 이러한 관직의 표는 그 성격을 나타낸다. 고시씨는 대대로 주곡의 직분을 맡았고 동남의 땅에 살았다. 신지씨는 대대로 주명의 직을 행하였고 동북의 땅에 살았다. 치우씨는 대대로 주형의 직을 맡았고 서남의 땅에 살았다. 모두 환국 9족의 후예는 같은 조상은 다른 가지들이니 모두 삼씨의 계통은 서로 멀지 않다. 치우씨는 칼 창 큰 쇠뇌를 만들어 이후로 수렵 정벌 전쟁에 있어 이러한 것을 신공(神功)에 의뢰하였는데, 중토의 한족(漢族)은 큰 활을 쓰는 것을 두려워하여 그 기풍을 듣고 담이 서늘한지 오래되었다. 그래서 우리 구족을 이(夷)라 하는데 이는 큰 활을 칭하는 말이며 설문에서는 이(夷)를 옛날에는 𡗝자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큰 대(大)자와 활 궁(弓)자를 따르며 동방의 사람을 나타낸다.
동東은 태양이 떠오르는 광명의 방향이다.
동방은 생명, 탄생, 시작을 의미한다. 그래서 옛 책에서는 동東 곧 동녘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동녘은 움직임인데 양기가 움직일 때 봄이 된다. 동녁은 나무인데, 봄을 맡았다. 동녘은 간방艮方인데 그곳 임금이 태호, 곧 한밝이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동東은 생명, 탄생, 시작을 담은 광명사상의 발원지로 동방 한민족 사상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산] 우리 구족을 이(夷)라 하는데 이는 큰 활을 칭하는 말이며 설문에서는 이(夷)를 옛날에는 𡗝자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큰 대(大)자와 활 궁(弓)자를 따르며 동방의 사람을 나타낸다.
九族, 즉 환족으로 桓이라고 했고, 이는 구족을 夷라고 불렀다, 이는 東方의 사람[夷]로 이는 그 자체가 동방이고 동방인을 말하는 것으로 桓의 별칭으로 동으로 간 사람, 즉 동녁 동이 아니고, 東은 桓중 환웅천왕의 무리로 태양성인의 무리로 배달나라 桓의 배달신불의 사람이 동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
東 日木
나 일
목, 셋/숫, 성인, 목지도의 三 목/셋, 雄
목/셋/숫 雄
태양성인 雄으로 태양성인 배달인군의 사람들을 동이라고 하고 夷는 九族 丸[桓]의 東方[동이].
나, 하나의 나로 日日 나〮ᅀᅵᆯ〮 衆陽之宗人君之表
桓 木日 二 즉 천지의 나로 전일 즉 광명자체로 木亘이고 東은 木日로 太一로 알로 셋, 숫의 무리다, 즉 셋으로 움직임 태극의 숫으로 목지도의 태극, 무한창조의 삼, 세움의 밝음이라는 광명으로 온 세상을 비친 선인들로 이는 동방의 빛으로 배달 일대황조의 광휘를 사방에 비춘 사람으로 東方의 뿌리, 夷로 그 이후에 동이가 간 쪽을 북신[桓]의 배달[檀]으로 동은 동녁이라는 뜻은 그 이후다, 기원전 3897년후에 우리를 동이라고 한 것으로 동대신 夷[이, 리]가 바로 동방의 사람으로 우리 환족의 배달민족을 지칭하는 夷로 동방의 사람들이라는 민족칭이면서 東方이라는 천지/나라칭으로 사용된 문입니다.
이夷는 또한 ‘신을 대신하는 사람’과 ‘어진 사람’을 뜻한다.
은나라 갑골문에서 이夷는 시尸, 인人과 똑같이 ‘사람이 똑바로 서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데, 시尸는 제사 때 신이 응감하도록 세워 놓은 신상으로 ‘신의 대리인’을 뜻한다. 이렇게 이夷를 ‘신의 대리인’을 뜻하는 말로 사용한 것은 당시 동이족이 신성한 종족으로 간주되었음을 보여준다.
이夷를 어진 사람으로 해석한 것은 “이夷는 뿌리이니 어질고 살리기를 좋아하여”라고 한『 후한서』「 동이열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후한서」 115권에는 "동방을 이夷라고 한다[東方曰夷]"하면서 이夷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이夷란 것은 저柢이다.[夷者柢也]
여기서 저柢란, 노자의 「도덕경」 59장에 나오는 "깊고 단단한 뿌리[深根固柢]"란 말에서 보듯이 일반적으로 근저, 근본, 근기, 기초 등의 의미로, 다시 말해서 뿌리라는 뜻으로 쓰인다.
「후한서」에서 "만물은 땅에 뿌리를 박고 태어난다"라고 하여 저柢를 '~에 뿌리를 두다'라는 뜻으로 썼다.「후한서」에서 '저柢'와 동이의 '이夷'를 같은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나타낸다.
'저柢'와 '이夷'를 동일한 개념으로 보는 고대 중국의 해석에서 동이의 '이夷'는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던 오랑캐 이夷 자가 아니라 뿌리 '이夷' 자 즉 동방의 뿌리라는 숭고한 의미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산] 夷의 한문의 설문을 말씀사신 것이고, 夷는 東方이라는 나라칭으로 나라개념, 조선전에 나라를 이, 뿌리, 즉 천지로 리/이로, 나라로 동이는 대인지국, 성인지국, 등 동은 대인, 성인 등이고 이는 國이나, 국보다는 方으로 東方으로 천자국이라는 국으로 天地의 의미. 뿌리라는 것은 그 핵으로 從大從弓으로 이는 대는 하늘 우주, 무, 하늘의 궁은 하늘의 도, 천도로 활 궁은 하알로 하늘의 알. 一로 대일 알, 중앙 무극이라는 "하나" 하늘의 도로 궁은 하늘의 도, 하알, 활로 하늘의 알.
나, 하나, 무극이 하나다, 무극이 바로 대도로 하나사람의 도로 뿌리입니다, 이는 三辰일체 북국, 북두, 북신을 의미하기도 하는 삼신 일체 신입니다.
辰 별〯신 日月會次又北辰北極也又미르〮진地支屬龍
◀ 한자의 원형이 된 갑골문.
갑골은 완전한 체계를 갖춘 문자로 현재 세계인구의 4분의 1이 사용하고 있다.
갑골문자는 발해연안의 동이족 문화권에서 처음 발생하였다. 그곳에서 서남쪽으로 내려간 갑골문자가 전성기를 맞았던 곳이 상나라의 도읍지인 은허 지역이다.
이 때문에 오늘날 갑골문이 상나라 문자로 인식되고 있지만, 사실은 상고금문上古金文과 마찬가지로 동이족 문자이다. ( 이형구,「발해연안에서 찾은 한국 고대문화의 비밀」, 138~141쪽 )
최근 중국 곳곳에서 상(은)나라 갑골문 이전의 문자로 추정되는 상고금문上古金文이 발견되고 있다. 이것을 연구한 중국 학자 뤄빈지駱賓基는 자신의 저서 「금문신고金文新攷」에서 "상고금문은 한민족의 언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문자"라고 밝히고, 그 문자를 만들어 사용한 주체를 동방 조선족이라 단언하였다.
동이족이 창안한 상고금문이 은나라의 갑골문, 주나라의 대전大篆, 진나라의 소전小篆을 거쳐 지금의 한자로 완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한민족의 문자가 바로 중국 문자의 원형임을 알 수 있다.
[산] 당연한 이야기로 낙빈기의 "금문신고"는 왜곡이 심한 것으로 ㅇ ㅡ ㅣ가 아니고 한자로 가림토 정음의 알일곤, 주일곤이라고 하나, 천지인 3부호로 [● ㅡ ㅣ]로 이는 천지인 합일은? 十이고 古는 천부의 십수고 田에서 수의 一二三四五六七八九十 의 원형이 나온 것으로 이를 小學이라고 합니다, 문과 자, 기본 글소리는 전부 고조선의 음가로 이는 성음의 이치라고 합니다, 1447년 동국정운에서 밝힘. 귤, 귤이고, 契로 글[계는 맺을 계로 그=게, ㄹ 이, 게이 계로], 등등.. 하나에서 한, 韓 一에서 무성 ㅇ 에 알 一 日을 무성 ㅇ으로 정운은 [일] ㅎ왕 皇[황] 등등이 한자는 물론이고 그 문의 제자원리도 이미 동이족 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日本은? 알[●] 丸[알 환], 이는 한 一, 족으로는 한 일의 韓[한], 一本은 心, 태양앙명 등등 철학, 사상이 대학, 하나사람[一人]의 학문.. 한민족의 문과 자가 바로 중국문자의 원형입니다, 예맥, 고구려전 예맥족이 노예가 되어 진나라 한나라 등의 노예로, 이들이 한문을 쓰고 있다? 이 서체가 정자체로 隸書체 즉 노예서체라고 했는데 이는 고구려/신라의 비문 등은 전부 예서체로 노예서체인데 이것이 正字體입니다. 우리는 비하하고 노예로 한 한족, 지나족의 만행입니다.
춘추시대의 공자도 동이를 어진 군자가 사는 나라라 하며 동경하였다.
‘구이九夷에 가서 살고 싶다’는 공자의 말에 어떤 사람이 누추한 곳이 아니냐고 묻자, ‘군자가 그곳에 있는데 어찌 누추하리오’라고 답했다고 한다.(『논어』)
그러므로 동이東夷란, 공자도 동경했던 동방의 뿌리 되는 민족이며 군자의 나라, 신선의 나라이며, 또한 동방에 사는 큰 활을 잘 쏘는 민족을 일컫는 말이다. 중국인의 눈에 비친 동이족은 하늘의 이치에 따라 사는 어진 민족이었던 것이다. 결코 야만이나 오랑캐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명이 먼저 발달한 역사의 주인공이라 하겠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인仁' 사상을 공자가 창시한 것으로 알지만, 실은 공자 이전에 생긴 것이다.
공자의 공헌은 그것을 전면적으로 내세워 혁신한 것이다. 왕셴탕王獻唐은 「산동 고대의 강성 통치집단山東古代的姜姓統治集團」에서 "인仁 자는 인人의 다른 말이다.
인人과 이夷는 같은 글자이다. 인도仁道는 인도人道이며 인도人道는 또한 이도夷道다. 그러므로 진나라와 한나라 이래로 이인인夷人仁과 군자국君子國이라는 기록이 있다.
[산] 인을 환인으로 인이라는 것의 人道로 愛입니다, 즉 愛란 慈心之自然이고 仁性之本質이다.
삼국사기 진흥대왕조에 난랑비서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노사구[공자]의 仁은 종이라고 하나, 간장 종지만한 것이다, 삼신도를 말하나, 겉핣기다, 삼신도 풀류도는 이를 다 포함하는 뿌리다, 천지인으로 천일 일, 지일 이, 인일 삼으로 이는 일체 하나다, 삼위일체 일신, 하나로 삼즉일, 일즉삼으로 삼일신으로 誠信愛는 일체 하나로 무극 하나다, 그것이 대도다, 하나사람의 도다, -동학
夷는 大弓으로 천일 一로 하알이니, 무극 하나다.
하늘의 뿌리, 하늘의 도는 천일로 一로 無識이요 무선악 대덕이니 이것이 하나다, 성명성의 性이라고 합니다, 진선미 진으로 일체 하나다. 그것이 뿌리 大弓으로 궁은 하늘의 도, 弓이니 알, 一로 圓이고 수지도라고 합니다.
本은 역시 뿌리로 從大從十이니 무시무종 0110이 역시 하나니, 뿌리 本은 뿌리 夷로 하나가 열인 이유는 무시무종 하나로 생생지생 하나 열, 열 하나인 조화경의 천부경에 그 답이 있다.
仁은 人二로 地一은 二로 둘이다, 둘은 궁을 궁을로 천지도로 땅의 이치다, 궁궁, 을을 弗 弓二로 이는 바로 佛이다, 인은 하나둘의 합일한 사람의 도로, 하나둘셋 삼도의 합일, 일체인 하나다.
佛로 궁을궁을 궁궁을을의 十十이 大道로 하나도 삼신일체 삼신도이니, 이로써 다스림하는 것이 어짊의 근본이니 父道이니, 어렵게는 일변위칠이고 이변위육을 천지도와 지지도로, 사람을 다스리니 이것이 어짊의 기본이니, 사랑, 사람의 도이니 愛다, 誠信, 천지도로 사람의 도인 愛를 행하니, 참전계경의 誠信愛 삼리훈으로 다함이 어짊이다, 공자의 仁은 읽어도 읽어도 뱅글뱅글 요리요리 간장종지에 도는 간장 같다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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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본래 동방의 전통 인도仁道 사상을 받아들여 유가의 핵심 이론으로 한층 더 발전시켰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공자가『 춘추』를 지을 때 이夷를 융戎, 적狄과 함께 오랑캐의 칭호로 사용함으로써 이夷의 뜻이 변질되었다.
그 후 한대漢代에 이르러 동서남북의 각 종족을 멸시하여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이라 부름에 따라 동이는 ‘동쪽 오랑캐’를 뜻하는 말로 그 의미가 완전히 변질되어 버렸다.
공자가 주창한 유교는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요 그 밖의 민족은 중국에 예속된 오랑캐에 불과하다는 중화주의를 내세운다. 유학을 국가 통치 이념으로 삼은 고려와 조선의 존화尊華 사대주의자들이 이 중화주의 사관을 그대로 답습하여 우리 역사에 끼친 해악은 너무나 심각하다.
[산] 유교의 儒는 본 모슴비 雨而人으로 우사에서 말미암은 사람으로 벼슬하여 다스림하는 우사다, 태호 복희씨의 우사의 직분과 같다, 신인, 선인 그리고 무인으로 巫로 종선백, 종선무의 巫로 무를 모르는데 어찌 仁을 안다고 하리요, 천지, 음양 이원이 아닌데, 태극을 이야기하니, 까마득하여 황당무계한 노자의 주역이로다, 주주사 나부랭이 유교로 인해 2000년간 음양 오행의 재앙[禍]가 끊이지 않으리라.
동아시아 문명의 종주, 동이족
중국인들이 동방 한민족을 지칭해 온 말로 고대 갑골문이나 「설문해자」, 「후한서 동이전」, 「역대신선통감」, 「예기」, 「논어」 등 초기 중국문헌을 보면 '이夷'는 오늘날처럼 '오랑캐'의 뜻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중원대륙에 진출하여 동아문명을 창시한 한민족에 대한 극존칭이었음을 알수 있다.
충효의 나라, 어진 군자의 나라, 군자가 죽지 않는 나라, 신선의 나라, 오직 큰 것을 따르는 대인의 나라, 큰 활을 쏘는 민족( 夷 =大 + 弓 ), 금속문명을 창조한 민족( 銕 = 夷 + 金 )이었음을 알 수 있다.
리바이펑李白鳳은 "동이는 원래 황하 하류에서 살았고 문화가 매우 발달하였으며, 도자기와 문자를 처음으로 만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고대에는 '철鐵' 자를 '철銕'이라 썼는데 동이가 가장 먼저 철을 사용하였기에 이夷자를 넣었다.( 리바이펑李白鳳,「동이잡고東夷雜考」, 53쪽, 60쪽, 65쪽 )
[산] 동이라고 하는 것은 구환, 환족의 배달나라, 즉 단국으로 개천한 배달인을 부르는 말이고 夷란 東方의 人으로 仁에서 雄으로 太一의 태극을 말하는 땅 리, 민족 리이나, 민족은 환/한이라고 하는 말이고 이는 리로 麗로 羅라고 하는 배달의 達이니, 너무 그 말에 얽메여서 "오랑캐"라고 하는 말은 이가 아니고, 類似犬으로 개같은 놈이다, 즉 이는 쪽발이 한자어로 말한 것으로 되 놈이지 오랑캐란 오랑은 類似라는 말이고 오랑우탕, 유인원, 오랑지, 유사사과, 오랑지, 열매 지로 오렌지다,
구리란 구리족이 만든 쇠로, 청구 구리는 청동기라고 하고 쇠는 金夷 銕 쇠 철로, 알타이, 太金의 白帝로 日족이니, 日 4. 白帝 9. 太金의 알타이족 티우씨족의 구리족이 쇠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쇠와 같다, 銅 동으로 동이의 구리다, 청동기는 브론즈로 청구의 구리족의 이름이 청구 동/구리로 청동구리다, 쇠 金으로 夷로 鐵로 이는 철[텰/틸]로 쇠틸, 스틸[Steel]의 말뿌리 어원이 됩니다, 즉 알타이산, 금산족으로 스키타아라고 하는 금족은 알타이족의 중심 日 4. 白帝의 자손이고 9, 太金이다, 이것이 易으로 天干 10수리의 9환족의 主刑족 알타이 티우/鬪로 그리 만만하게 말할 족이 아니다, 漢族을 규정하더라도 전혀 맥이 없다, 누구냐? 객가족인가? 한나라 선비족 劉邦인가/ 수나라 양제? 당나라 이세민은 전부 선비족, 연족, 연나라, 제비족이 아닌가? 도대체 모택동의 호남족이전에 누가 중국인인가? 광동인? 누구냐? 아무도 모른다, 그냥 중국어하면 중국인이다 90% 漢族??? 인가?? 과연 2000년동안 누가 한족인가? 송나라? 남송, 북송의 송인가? 송도 은나라 동이족이 아닌가?? 아니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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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易과 역曆, 상형문자(갑골문자), 천자天子 제도, 조세 제도, 윤리도덕 규범 등 모든 문물 제도의 시원이 모두 동이에서 출발하였고 이것이 중국에 그대로 전수되어 황하문명을 이루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음양오행, 팔괘, 상수철학, 삼강오륜 등 사상과 철학, 윤리규범도 동이에서 나온 것이다.
이처럼 고대 문화는 동이족이 창달하여 중국인에게 전한 것이다.
[산] 易을 아니, 曆法을 아니, 누가? 하나민족말이여, 자신의 선조가 만든 천문력법, 60갑자력을 아나, 그저 위조, 위작이란다, 무진년 기원전 2333년? 위작? 무진년 기원전 1733년, 오성취루, 이도 위조? 과연 배달나라 개천 갑자년 기원전 3897년, 갑자월 상달 음 11월 갑자일 초사흘 3일의 개천은 아는가? 역이 뭐냐고? 누가 역리의 시조냐고? 배달나라 제5대 천왕 포희씨 태우의천왕으로 한국의 5제로 태호복희씨가 아닌데 아는가? 알긴 개코로 알아,
천자가 천왕이다, 천제-천왕-천군을 아나, 차차웅, 거서간, 마립간 등 天干이 天君임은 아는가? 雄이 王인 것은 아는가? 왜 신라가 쓰면 전부 흉노냐? 신한조선 고조선의 핵심 태자국에서 말하면 왜 그렇게 씹어서 버리는가 말이다. 화랑이 천왕랑, 천자랑이 아니고 뭐냐고? 왜 그리 신한-신라는 없어지라고 하는지.. 삼한, 신한 신라가 핵심인데 말이다, 중국 중국 해봐야, 가운데 낀 나라? 누가 유위자선인이 중국이라고, 가운데 끼인 나라, ㅎㅎㅎ 알고서 이야기해야지요, 음양오행은 재앙이다, 왜냐고? 삼신 7정의 7정으로 달랑 음양 일월 수화목금토를 목화토금수로 하고는 삼신 천일, 일, 지일 이, 인일 삼, 삼황일체 상제론을 없애 먹은 아이들, 맛있냐? "오행의 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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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허(殷墟) 유적의 원경. 36㎢의 넓은 지역에 은(상)나라 말기 궁전과 제사터, 왕릉 등이 조성돼 있으며 15만편의 갑골이 확인되기도 했다.
상나라의 왕통은 동이족이다.
상나라의 시조인 설契의 어머니가 제비 알을 삼키고 설을 낳았다는 난생설화는 전형적인 동이족 탄생 설화이다. 동이족이 세운 나라인 상나라는 동북방을 존숭하였다. 상나라 말기의 도읍이였던 하남성 안양시 은허 유적에서 출토된 궁전, 성벽, 무덤 등 모두가 동북방을 향하고 있다. 왜냐하면 동북은 삼신이 머무는 땅(『태백일사』「신시본기」)이고, 상나라의 동북방에 고조선이 위치하였기 때문이다.
[신] 미힌은 천한, 즉 말갈, 여진, 거란, 예맥으로 대흥안녕산맥 서쪽, 요산산맥/태행산맥 재서가 마한지지. 참고.
[신] 제발 환단고기라도 강역을 제대로 읽고 그려야 합니다, 한반도는 강동주로 마한이 아니고 신한지지.
마한과 신한의 경계는 대흥안녕산맥의 재서와 재동으로 구분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만주평원[송화강,흑룡강, 눈간] 송화강변과 산서성 요서까지 몽골자치구 및 몽골 등 전 재서가 그리 작단 말인가? 왜 마한은 말인데 그리도 한반도가 말인가? 三辰으로 강화도 강동 무궁화 화의 서, 제천단이 있는 무궁화 화, 환화, 江華島인데.. 왜 한반도에 미련이 그리도 많을까? 신한의 어디다 팔아먹고 신라와 신한의 관계단절은 왠 일이니/// 참으로 흉노라고 저 사마천이 사기에 흉노열전이라고 하니, 전 고조선의 마한/북막, 북부여지지인과 신한조선인을 전부 흉노라고 해놨더라, 그러면서 연나라가 흉노를 치고 올라가서 한반도까지?? 과연 유주-심주-료주-계릴-평안도-함경도-황해도까지?? 아예 그려라, 그려, 엉덩이로 그리자!!!
[산] 혈통도..고주몽은 징기스칸의 선조. ㅎㅎㅎ
고주몽이 고무서의 아들인데 원래 성이 해씨? 고씨? 언씨.. 고두막한은 신한조선 대부여, 고열가 단군의 후손, 그 자손은? 파소 등 신한, 신국으로.. 고 주몽은 졸본부여의 사위로 고구려 건국.. 해모수, 해부루의 해씨에서.. 즉 왕보다는 씨족을 중심으로 신한조선의 주류는 신한조선으로 봐야지 왜 마한조선인지/?? 마한세가는 제후국이고, 신한세가는 없고, 단군세기인데, 누가 중심인가? 아직도 그 삼한관경제가 깨져서, 마한조선의 반란으로 삼한관경제가 깨져서, 대부여로, 부여라는 이름을 쓴 삼한은? 신한조선, 대부여, 대부여지지를 북부여가 관심이 있었나? 번한조선지지가 아니고? 왜 우왕좌왕 핵심이 한반도냐고? 저 너른 번한조선 대륙, 남쪽은 놔두고 아직도 한반도 갱상도와 절라도에서 놀고 있으니, ㅎㅎㅎ
고구려는 북부여, 송화강은 안녕산맥 재서지요. 요서, 산서성 하북성 하남성이 더 커보여야 할텐데, 쪽발이 한반도 다이아몬든 광산이 있나, 왠 꿀발라놨나, 날파리가 이리도 한반도에서 놀까???
중국 고대사는 바로 우리 배달, 조선 민족이 직접 현지에서 나라를 창업한 역사라 할 수 있다.
배달국이 도시국가의 차원을 넘어 넓은 중원 땅으로 그 강역이 확장되자 마침내 배달국 10세 갈고葛古 환웅(BC 3070)은 영토를 나누어 동방족 이주민이 세운 염제 신농씨의 나라와 경계를 정했다.
주역의 창시자인 태호 복희씨와 의약과 농경, 교역(시장)의 창시자인 염제 신농씨는 동방 신시배달의 혈통으로서 중원 땅에 분국分國을 세우신 배달의 성황聖皇들이다. 그러나 주周나라 이래로 춘추전국, 진나라에 이르기까지 날로 세력을 확장해 간 서방 한족을 피해 동방족이 원래 근거지였던 동북방면으로 물러나게 되면서 존칭의 뜻이 사라지고 '동쪽 오랑캐'라는 욕설로 변질되었다.
[산] 거짓말도 적절히 잘한다, 주역의 창시자가 태호복희씨? 주역은 주나라 역인데.. 태호복희씨 8괘, 이에 88 상하 88 마방진이 주역...주나라 개들은 은나라 상국을 친 것으로 주나라 희발도 고조선의 신지 우량이 기산에 가서 기국을 그 기국의 자작이 조선을 봉함. 그게 주 무왕, 제후의 제후국이, 번한조선의 쳤다, 그레 주나라 역성혁명.. 천명유신, 천명? 천자의 명? 한 적이 없는데, 기원전 1122년, 그 이후, 은나라 은허는 폐허 3000년간 묻혀서 나오지 못했다, 제자백가이나, 그리 너른 지역이 아닌데, 백제의 강역이 그리 작았을까? 신라의 강역은? 고구려가 당나라에게 호락호락 넘어가? 신라가 당나라와 7년 전쟁에서 날라가지 못했냐? 20만명 군대가 애이들인줄 안다, 매소성 전투에 당나라 군대 20만명, 신라군? 3만명, 그런데 대승, 3만 5천필 말을 노획하는 대전과??? 이건 무슨 약소국이라고 아예 이겨도 욕하니, 이게 어디 당나라사람들이지, 이게 신한-신라-대한인인가? 웃기자 또 웃기자.
왜 '동이'가 변방의 오랑캐로 폄하되었을까?
그 배경으로 화하족과 동이족의 정치적 대결을 들 수 있다.
이른바 화하족이라 불리는 중국 한족의 조상은 밖으로는 북쪽 흉노의 위협을 받았고, 안으로는 살기 좋은 조건을 갖춘 동쪽 황하 유역과 황해에 자리 잡은 동이족과 삶의 터전을 놓고 쟁탈전을 벌였던 것이다.
전한前漢 무제 때의 학자인 공안국孔安國은 동이족이 중국의 삼대(하, 상, 주) 이전부터 중국에 토착민으로 살고 있었는데 진시황이 이들을 축출했다고 했다.
이것은 동이족이 중국의 변방 세력도 아니고 침략 세력은 더더욱 아니며, 중국 땅에 터전을 이루고 산 토착민이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심백강, 「四庫全書中」의 東夷史料 解題 참조)
서양의 트로이 전쟁에 빗대어 일컬어지는 탁록 대전은 동방 종주국 배달의 치우 천황과 이에 대항한 서방 헌원 세력의 대결로 시작되었다. 한민족과 중국 한족의 역사가 갈라진 분기점이 바로 배달 시대이며 지금으로부터 4,700년 전, 두 민족은 처음으로 양분되어 10년 대전쟁의 극한충돌에 이르게 된 것이다.
◀ 탁록 대전
제후의 위치에 있던 헌원이 천자가 되겠다는 야망을 품고 군사를 일으켜 천자인 치우천황에게 도전했다. 10년간 73회의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전쟁은 치우천황의 승리로 끝났다.
치우천황의 쇠로 만든 투구와 갑옷은 서방족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후대에 동두철액銅頭鐵額(구리 머리에 무쇠 이마)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헌원을 사로잡아 신하로 삼은 치우천황은 동방 무신武神의 시조, 병주兵主가 되어 수천 년 동안 동방 배달족은 물론 서방 한족에게까지 숭배와 추앙의 대상이 되었다. 치우천황과 황제헌원 사이의 전쟁에 얽힌 역사의 진실은 바로 이러한 것이다.
그러나 사마천은 「사기」에서 사실과 반대로 기록하였다.
「사기」에는 황제헌원이 난을 일으킨 치우를 죽이고 전쟁에서 승리한 것으로 왜곡시켜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황제헌원과 그 족속(화하족)은 치우천황과 그 족속(동이족)에게 패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물론 그 후손들이 치우와 동이족에 대한 공포와 적개심을 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사마천은 왜 굳이 역사의 진실을 뒤집어 기술해야 했을까?
그것은 중국 역사의 시조인 황제 헌원이 천자天子가 되면 중국은 출발부터 천자의 나라가 된다. 중국을 원래부터 동북아의 패권자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역사적 사실을 정반대로 기록한 것이다.
또한 사마천은 자신의 주군인 한 무제가 고조선의 서쪽 땅의 위만정권을 어렵게 항복시키고 고조선 북쪽 땅의 북부여를 침공하였으나 고두막한에게 무참히 패배하고 만 수치스러운 역사를 숨기고자 하였다.
위만정권은 손자 우거왕 때에 이르러 밖으로는 한 무제의 침입과 안으로는 지도층의 분열로 인해 결국 망하게 된다(BCE 194~BCE 108). 한 무제는 그 여세를 몰아 고조선의 뒤를 이은 북부여로 쳐들어온다. 그런데 당시 북부여의 4대 고우루(高于婁) 단군은 워낙 심성이 유약하여 제대로 맞서 싸워보지도 못하고 도중에 병사하고 만다. 그리하여 우리 조선 민족이 다 넘어가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하는데, 이를 지켜보고 있던 고조선 47대 고열가 단군의 후손 고두막한(高豆莫汗)이 마침내 군사를 일으켜 한 무제의 군대를 물리치고 나라를 구한다.
중국 한 무제가 고두막한을 죽이려고 덤벼들었다가 참패를 당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마천의 기록을 보더라도, 결코 한나라가 승리한 전쟁이 아닌 패전인 것이다. 사마천(BCE 145년~ BCE 86년)은 그 전쟁의 목격자였음에도“이로써 드디어 조선을 정벌하고 사군(四郡)으로 삼았다”라고만 적고, 사군의 개별적 이름도 적지 않았다.
사마천은 왜 한사군의 이름도 적어 놓지 않은 것일까?
한사군의 이름은 고조선과 한나라의 전쟁이 끝난 200여년 후에 반고(班固)가 편찬한 <한서(漢書)> ‘무제(武帝) 본기’에 처음 등장한다. 낙랑·임둔·현도·진번이란 명칭이 이때 나타나는 것이다. 전쟁의 목격자 사마천이 적지 않았던 이름을 200여년 후의 반고는 어떻게 적을 수 있었을까?
반고는 흉노 정벌에 나섰던 두헌(竇憲)을 따라 종군했던 데서 알 수 있듯이 중화(中華)사관이 강한 인물이었다. 이처럼 사마천의 <사기史記>와 반고의 <한서漢書>와 같은 고대 역사서가 의문투성이로 기록하고 있는 한사군을 한반도 내에 있었다고 확고하게 각인시킨 세력은 물론 일제 식민사학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국사 교과서에서는 한반도 내에 낙랑, 임둔, 진번, 현도의 한사군이 있었다고 일제에 의해 조작된 역사를 그대로 가르쳤고 한국인은 이것을 어린 시절부터 외우고 다녔다. 한국사의 시작을 식민지로 만들려는 의도였다. 이를 한국 주류 사학계가 현재까지 정설로 떠받들자 중국은‘이게 웬 떡이냐’하고 동북공정에 그대로 차용해 ‘한강 이북은 중국사의 영토였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무제가 패퇴한 대사건, 이것은 중국 역사상 최대의 수치였다.
중국 5천년 역사에서 당태종이 안시성에 와서 양만춘 장군한테 화살을 맞아 눈 빠진 것보다 더 부끄러운 사건이다. 그래서 중국의 역사가들과 국내 사대주의자들이 이 북부여 역사를 완전히 뿌리 뽑아 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민족 역사의 맥, 사통의 허리가 잘려버렸다. 그래서 국통 맥이 연결이 안 된다. 지금 역사학자들은 이를 알지 못하고 부여의 역사를 중국의 사료에 맞추어 꿰매고 있다. 그러니 너덜너덜하다.
이렇게 꿰매면 이런 작품이 나오고, 저렇게 꿰매면 저런 작품이 나오고, 전부 애꾸눈이처럼 찌그러져 버렸다. 그 결과가 예전에 방영했던 주몽이야기다. 이 드라마에서는 고주몽이 해모수의 아들로 나온다. 그게 다 중국 측 사료를 보고 만들어서 그렇다. 해모수와 주몽은 무려 120여년 이상 차이가 난다. 해모수는 북부여의 초대 단군이고 주몽은 6대 마지막 단군 고무서의 사위인데, 어떻게 주몽이 해모수의 아들이란 말인가 !
중국 화하족은 2,300여 년 동안 황하 중, 상류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진시황에 이르러 강력한 힘을 길러 동진을 거듭하여 중원 전체를 화하족의 확실한 터전으로 만드는 통일을 달성하였다. 동이족을 변방으로 밀어내거나 무자비하게 숙청하고 동화시켜 통일제국을 이룬 것이다. 이 진秦나라의 유래를 살펴보면 동이에 대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주쉐위안朱學淵은 "영贏씨 부락에서 기원한 진秦, 안추 부락에서 창업한 금金, 애신각라愛新覺羅가 건국한 청淸, 이 세 글자의 독음은 각각 qin(친)-jin(진)-qing(칭)인데, 건국 시점을 서로 달리하는 이 세 나라가 어떻게 해서 서로 비슷한 발음의 국명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역시 진일보한 연구가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 「진시황은 몽골어를 하는 여진족이었다」, 159쪽)고 하여 진나라 이름이 동이족 언어와 무관하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다.
화하족은 동이를 대인大人으로 우러러보면서도 계속되는 동이족의 정복정책에 시달려 나중에는 동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두려움에 떨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히 동이족에 대한 적개심이 쌓여 동이東夷의 뜻을 오랑캐로 바꾸어 해석하게 되었을 것이다.
특히 한 무제 때 사마천은 중국 최초의 정사인 「사기」를 저술하면서 동이족 역사를 뿌리부터 왜곡하였다.
중화사관의 핵심인 중화의식을 처음 표방한 것은 주周나라였다.
이 주족은 자신들의 국토를 '시하時夏'라 칭했다.
후에 '하夏' 자 앞에 '화華' 자를 더하니 이로써 '화하'라는 민족 명칭이 생겨난 것이다.
이 명칭은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중국인의 자부심의 상징이 되고 있다.
「사서석지四書釋地」 3속續권 하에는 "3 대(하, 상, 주)이후에는 화華와 이夷를 구별하였지만 3 대 이전에는 화와 이가 정해진 구분이 없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이것은 중화와 동이를 구분하여 존화양이를 내세운 것은 후대의 일이고, 본래 중국에 화와 이의 구분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이처럼 서쪽에 위치해 있던 주나라 세력은 이夷족을 몰아내고 중국의 집권세력으로 등장하면서 자신들의 정통성을 내세우기 위해 화이華夷 개념을 만들어 냈다. 이후 화이 개념은 춘추시대 공자에 의해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중국사회에서 통상적으로 말하는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이 서로 다른 별개의 종족이 아니라 본래 하나의 이夷족이 발전하여 동서남북에 위치한 네 방위의 이夷 즉 사이四夷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이東夷는 원래 어느 한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중국에 걸쳐 골고루 분포되어 살았는데 나중에 화하華夏족(주나라)이 중국의 집권세력으로 등장하면서 동방에 사는 이夷를 동이東夷, 서방에 사는 이夷를 서융西戎, 남방에 사는 이夷를 남만南蠻, 북방에 사는 이夷를 북적北狄이라 오랑캐로 폄하하여 부르게 된 것이다.
[산] 일본 왜족은 폴리네시안어 쓰는 백제 부용국의 왜족, 즉 남만족 월족, 왜족을 찾아라. 알타이족이 아님, 어족이 다르다, 민대머리, 상투를 튼 적이 없다, 왜족은 일본열도 동이족계 배제, 신라, 임나, 가라, 진한, 모한과는 다른 倭 외자의 남만족이다, 신한조선-부여 그리고 신한, 삼한일통 신라가 대한미국 국통맥에서 사라졌다, 너무한다, 이 여진족 이성계와 이씨조선아, 도대체 얼마를 받아먹고 고구려-발해-고려/금-후금/천으로 마한, 말갈, 여진, 예맥이 9한이나, 현 대한민국의 주맥이 아닌데, 치맥, 맥한, 마한족으로 하자고??? 이런 것을 보고 도와달라고? 미쳤냐? 내가 후금, 천나라 만세, 하게... 대한민국은 엘족에게 주고 신한 6부족과 신라는 어디로 가야하나, 또 백정하라고? 천민.. 저런 개새끼들을 봤나, 맨날 지네 좃나라 좃가가 무슨 9한의 장땡족이라고? 쏭나라 쏭가< 놋나라 놋까 당나라 있가가 무슨 신한의 주종?? 고구려 여진족이라고????? ㅎㅎㅎ 알아서 놀아라, 그런데 저런 쓰레기 계통도 그린 놈은 구구냐? 부여어-고구려어-백제어-왜어? 신라는? 신라가 대부여 신한이라고 신한 6부복이 모여서 박혁거세 모시고 신라 건국했다고 신한이 떡 하고 나오는데도 그건 찐한이냐고?
요기까지.. 아무리 허레이 해도 싫다, 마한이 되기 싫어, 없어진 족에 흡수동화되고 몽골/말갈할래, 청나라 만주족 여진족, 발해사 할래? 내가 왜 저런 쓰레기 계통도를 위해 여진 이씨? 중화의 개똥집안을 위해 허레이.. 정말 싫다..
- 산
" 정신멀 없는 이런 쓰레기 동이족 고구려 개똥지바퀴 국통맥을 그리고 놀려거든 동북아역사재단, 고구려역사재단에 가서 고씨하고 놀아라.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다. 잉건 원 장골라-고구려 말갈만세 사학이다. 더 나쁘다고 한다, 없어진 부족이 대한민국을? 그게 북한인이냐고? 다 줘? 왜? 고구려가 뭔데? 정알 청나라는 무슨 저 멀리 뭐식긴가/ 말갈, 여진이 주종이 아닌가? 고구려-발해-고려/금-청이라니.. 에잇 다 줘라.. 아래는 읽을 필요도 없겠다.
갑골문 '夷'의 변천
예로부터 동이족은 매우 어질고 군자다운 민족으로 알려져 왔다. 때문에 동이족을 나타내는 글자는 인류 전체를 나타낸는 사람 인人자와 인간의 기본 덕성을 말하는 어질 인仁자로 발전했다.
이夷는 '활을 쏘는 동쪽 사람'이란 뜻이다.
夷자는 큰 사람이 큰 활을 매고 있는 모습을 상징한다.
장푸샹張富祥은 '이夷'에 대한 최초의 기록을 상나라 갑골에서 찾고 있는데, '시방尸方'이 곧 '이방夷方'이며 '시尸'는 동이족을 칭하는 본래 글자라 하였다. 그리고 '시尸' 자는 '인人' 자의 하반부를 살짝 구부려 웅크린 모습이라 하였다. 그 모습은 고대 이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쭈그리고 앉는 습관을 바탕으로 글자를 만들었기 때문이며, 그렇게 앉는 자세는 현재도 한국, 일본에서 습관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이인들의 뚜렷한 표징이라는 것이다. ( 장푸샹張富祥, 「東夷文化通考」, 2쪽 )
동방 천자문화의 출원을 말해 주는 네 글자, 자기동래紫氣東來
산동성 태산의 첫 문턱에서 마주치는 문구, 자기동래의 '자주빛 자紫'는 천자의 별인 자미원紫微垣의 자紫로 천자를 상징한다.
자기동래紫氣東來는 '천자문화의 기운이 동방에서 왔다'를 뜻하는 말로서, 중국 천자문화의 출원이 동방 한민족임을 그들 스스로 밝힌 것이다. 이 네 글자는 한민족의 역사를 되찾아 주는 천하의 명구이다.
자기동래(紫氣東來) 현판은 심양의 고궁인 봉황루, 서태후 때 재건된 이화원 등에도 있다.
본래 노자가 함곡관을 지날 때 문지기에게 써 준 문구라 전해 온다. 노자는 원래 성이 한韓씨 였으나 자신이 동이족임을 강조하기 위해 성을 이李( 木 + 子 = 동방의 아들)로 바꾼다. 이것은 노자가 본래 동방 신교 문명의 정통을 계승한 자랑스러운 동방 사람임을 암시한다.
공자에게 예禮를 가르쳐 주었다는 노담老聃이 바로 노자이다.
노나라와 초나라는 중국의 동쪽 땅에 자리잡아 신교문화가 다른 지역보다 강성하였고, 유교와 도교는 이 신교의 토양에서 자라난 것이다. 노자가 태어난 초楚나라도, 치우천황을 조상으로 섬기는 삼묘三苗족이 세운 동이의 나라이다.
중국 왕들이 천자를 자칭한 것은 진나라 영정贏政이 춘추전국 시대의 혼란기를 끝내고 중원을 하나로 통일한 후 삼황과 오제에서 황皇과 제帝를 따서 스스로 황제라 칭한 이후이다.
고조선이 진조선의 멸망으로 혼란해진 틈을 타, 진나라 왕이 삼신사상의 천자 칭호를 차용해 간 것이다.「초사楚辭」에는 동황태일東皇太一이란 구절이 나오는데 이는 동방의 임금(태일), 즉 단군을 말한다. 이유립은 '중국은 왕 위에 태왕太王(진왕辰王)이 있는 것을 몰랐다'고 주장한다.
중국은 고조선의 삼한제도를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역사기록에서 제거하였다.
동방 역사의 주인공, 동이
어느 민족이 동방 역사를 주도하였는가?
이 물음은 동북아 역사 속에서 한민족사와 더불어 풀어야 하는 하나의 수수께끼이다.
대만과 중국학자들은 동방 역사의 주류가 중국 한족이 아니라 '동이'라는 공통된 의견을 내놓았다. 대표적으로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를 쓴 대만의 쉬량즈徐亮之와 북경대학의 고고문박학원考古文博學院 교수인 옌원밍嚴文明이다.
두 사람이 대담을 한 일이 있었는대, 그 대담과 저서, 논문에도 분명히 '중국은 동이문화'라고 밝히고 있다.
▲ 『환단고기』에 의하면, 태호복희씨는 배달의 신시(지금의 백두산)에서 태어나 지금의 산동성 미산현에 묻혔다.
복희씨는 대륙의 북쪽에서 아래로 남하하면서 동방 신교문명을 일으켰던 것이다.
신교神敎는 '신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다스린다'는 것이다.
신교에서 모시는 신이란 인간과 천지만물을 모두 다스리는 통치자 하나님인 삼신상제님을 말한다.
환국, 배달, 고조선 시대 이래 우리 조상들은 삼신상제님께 '천제天祭'를 올려 그 은혜와 덕을 칭송하고 상제님의 가르침 속에 살아왔다.
결론적으로 중국이 회양현의 복희 사당을 내세우는 것은, 복희씨의 출생지와 활동 지역을 날조하여, 중국 본토에서 태어나 평생 그곳에서 살다 간 완벽한 중국인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중국은 '동북공정東北工程'으로 동방 문명의 주인공인 한민족의 북방역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려는 정치공작을 벌이고 있다. 이것은 문화적 열등감을 덮으려는 어리석은 행위이고, 남의 조상을 자기네 조상으로 삼는 환부역조換父易祖의 죄를 범하는 일이다.
중국 현지를 가 보면, 오늘의 공산당 정부에서도 동이족 출신 제왕들을 하늘같이 섬기는 것을 볼 수 있다. 태호복희 사당이 진시황, 한 무제 등 중국 역대 황제의 사당보다 더 웅대하고, 그분을 더 존귀하게 모시는 것이 그 예이다. 특히 '천하제일사당天下第一廟'이라 불리는 하남성 회양현의 복희 사당에는 북경의 자금성 못지않게 참배객이 몰려 날마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감출래야 감출 수 없는 자신의 뿌리, 동이의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동북아 창세 역사와 중국 창세 역사 그리고 역대 왕조사를 만든 주류를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동이'인 것이다.
동이 문화의 중요한 상징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태호복희가 만든 팔괘이다. 복희씨는 간단한 부호로 음양陰陽 두 기운의 이치를 밝혀내어 부족 중 장로長老와 무인巫人으로 하여금 이 지식을 전수하고 응용하게 하였다. 이 사상은 마치 오늘날 민간 종교처럼 신속하게 동이족에서 다른 족속으로 전파되었으므로 중국 대부분 지역에서 복희씨와 관련된 역사 문화 유적이 나타난다.
동이족의 발달된 문화는 양자강 남쪽 험준한 산악지역의 소수민족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양자강 이남의 월越족 일부는 스스로를 풍이족인 태호복희씨의 후예라고 칭한다.
복희의 팔괘사상은 후세에 끊임없는 발전을 거쳐 동북아시아의 가장 특색 있는 사상이 되었다.
동이 옛터에서 싹튼 유학 사상은 비록 팔괘사상을 중점적으로 물려받지는 않았지만 효제孝悌(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에게 공손하다)이론을 매우 중요시한다.
유사儒士들은 사람들의 경조사 과정과 인정세태에서 인문사상을 도출해 내어 윤리이념으로 발전시켰다. '유儒'는 원래 경조사에서 전문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를 뜻한다.
공자도 젊었을 때 유사儒士를 한 적이 있다. 그러므로 인문시조人文始祖(인류 문명의 첫 조상) 복희씨는 천추만대를 이어 후세에 끊임없는 혜택을 주고 있는 것이다. ( 리우푸징劉付靖,「광서민족연구廣西民族硏究」, 1999년 제1기 70쪽 )
태호복희의 팔괘 그림에서 진震괘는 동녘과 북녘 사이를 차지한다.
우리 배달 나라가 동아시아의 동북에 있는 까닭에 아득한 옛적부터 배달 나라를 진괘를 따라 진震 또는 진단震旦이라 하였다.『송사宋史』 「인도전」에 의하면, 옛날 인도 사람들이 ‘진秦’을 그 음에 따라 ‘지나支那’라 하고 진시황을 ‘지나 황제’라 하였는데 이를 따라서 외국 사람들도 중국을 ‘지나’라 불렀다.
불교의 여러 책에서도, 진나라는 지나로 기록되어 있는데, 진나라를 ‘진단국’ 혹은 ‘진단 나라’라 일컫기도 하였다. ( 안호상, 「배달, 동이는 동아문화의 발상지」, 260~261쪽 )
이를 통해 진나라 사람들이 배달, 동이겨레의 후손이므로 아득한 예로부터 자기네 조상들이 살던 ‘진’ 또는 ‘진단(眞檀, 震旦, 眞丹)’을 따서 나라 이름을 ‘진秦’이라 하였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진晉의 황보밀皇甫謐이 편찬한「제왕세기帝王世紀」에는 "태호복희는 진방에서 출생하였다"라고 하였는데, 8괘에서 진방震方은 동방이므로 태호복희가 배달 동이 출신임을 입증한다.
「이하동서설夷夏東西設」을 주장한 중국학자 푸쓰녠傅斯年도 "태호복희가 동이족이라는 것은 고대부터 공인되어 온 일이다"라고 못 박고 있다.
『환단고기』에 배달국의 5세 태우의 환웅은 아들 열 둘을 두셨다. 이분은 묵념청심默念淸心과 조식보정調息保精을 기본 정신으로 하는 장생의 근본이 되는 수행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쳤다.
이 5세 환웅의 막내아들이 바로 태호복희이다. 복희씨는 신시에서 출생하여 우사 관직을 세습하였고, 후에 청구, 낙랑을 지나 진陳(하남성 회양)으로 옮겨갔다. 그 서쪽에는 수인씨가 정착해 있었는데 복희씨는 신시배달의 선진 문화를 전수하고 수인씨를 이어 왕이 되었다. 그리고 풍산風山에서 살게 되어 성을 풍風씨로 하였다.
인류 최초의 성씨인 풍씨는 뒤에 패佩, 관觀, 임任, 기己 ,포庖, 이理, 사姒, 팽彭이라는 여덟가지 성으로 갈라졌다. 풍씨 성은 15대 만에 끊어지고 다른 성씨로 분파되었다.
동이와 한민족
우리 한민족은 과연 동이족인가?
한민족이 동이라면 동이의 원류인가 지류인가, 핵심세력인가 주변세력인가?
「우공추지禹貢錐指」 4권에는 "요임금 때의 우이嵎夷가 현재의 산동성인 등주登州, 청주淸州에 있었는데 조선 땅이었다"라는 견해가 실려있다. '우이'라는 말은 『서경』 「요전堯典」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요堯가 희중羲仲에게 명하여 우이에 거주하도록 했는데 바로 양곡暘谷이라는 곳이다."
우이는 바로 요 당시에 존재하던 이족夷族으로서 동양 고전의 기록상 최초로 등장하는 이夷의 명칭이다. 그런데 이 우이가 바로 고조선에 속했다면 우리 한민족이 동이구족東夷九族의 뿌리요 원류라는 이야기가 된다.
대만 역사학자 쉬량즈徐亮之도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에서 "은나라, 주나라의 앞 시대부터 주나라가 망할 때까지 동이족의 활동영역이 사실 지금의 산동성과 하북성의 발해 연안, 하남성 동남 지역, 강소성 서북 지역, 안휘성의 중,북부 지역, 호북성의 동부, 요령성의 요동반도 지역, 조선반도 등으로 광대하다"라고 적었다.
신석기 시대 말기부터 동이족은 회수와 황하 유역, 산동반도에 걸치는 중국 동해안 일대, 남만주, 발해만 일대, 한반도에 걸쳐 거주하면서 고조선이라는 강대한 국가를 세워 동이문화권의 중심을 형성하였다.
환국에서 발원한 배달의 동이족은 고대 동북아의 문화를 창조하고 꽃피운 주체 세력이었던 것이다. 그 결과 중국 문명의 발원과, 한족漢族인 화하족을 형성하고, 그 왕조사에서 주축을 이룬 주인공이 다름 아닌 동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환국의 마지막 임금 지위리智爲利 환인께서 백두산은 '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한 곳'이라 하고, 거발환 환웅에게 종통과 국통 계승의 상징으로 천부天府와 인印을 내려 주고, 문명개척단 3,000명을 붙여 주셨다.
거발환 환웅은 도읍을 신시神市(신의 도시)에 정하고 백두산의 신단수神檀樹 아래에서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올려 나라 세움을 고하였다. 배달국은 18세 거불단 환웅까지 계승되었으며 1,565년( BCE 3897~BCE 2333 )동안 존속하였다.
배달 시대 이후로 동이족이 동북아시아를 주름잡을 때, 서남아시아에서는 천산을 넘어간 수메르인이 서양 문명을 일구었다. 동이족과 수메르인이 모두 환국의 환족에서 나비의 날개와 같이 동과 서로 분화된 것을 생각할 때, 수메르인을 '서양의 동이'라 정의할 수 있다.
배달은 밝음을 뜻하는 '배(밝)'와 땅을 뜻하는 '달'을 합친 말로서 '광명의 동방 땅'을 뜻한다.
동방 한민족사에서 최초의 나라 이름이 배달倍達이며, 그 수도가 신시神市였음을 『환단고기』「삼성기」 상上에서 처음으로 밝혀주고 있다. 우리 한민족을 '배달'이라 불러온 까닭은 배달이라는 국가가 실제 존재했으며 배달의 건국과 함께 동방 한민족의 기틀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배달국은 도읍의 위치에 따라 전기 신시 시대와 후기의 청구 시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청구靑邱는 우리나라의 별칭으로 원래 배달국을 지칭하는 말이다.
초대 환웅 천황이 백두산의 신시神市에 도읍을 정하였고, 14세 치우천황 때 청구로 옮겼다.
청구의 위치는 '고구려하(지금의 요하)의 서쪽 대릉하大陵河'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교의 오행철학에서 동방은 청靑색을 상징하므로 동방에 위치한 우리 배달국을 '동방의 나라'라는 뜻으로 청구국이라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