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로지향(鄒魯之鄕)인 의성에서 어릴적부터 제례를 배우고 익힌 나는
부친이 돌아가시자 자연스럽게 조상 제사를 이어받았다.
유교 문화의 막내 세대로 충효사상이 몸에 벤 우리들 세대에게
조상을 숭배하는 봉제사는 당연한 의무였다.
2005년 직장생활에서 은퇴한후
40여년간 접고살았던 교회를 다시 나가기 시작하면서도
때가되면 일년에 몇차례씩 조상 제사는 여전히 모셨다.
그러면서 스스로 내세운 명분은
제사는 우상숭배와 다른
교회의 추도식과 같은 유교식 형식이고 양속일 뿐이라고.....
그러다가 성경공부가 깊어지고
이제는 참 그리스도인의 거듭난 삶을 살아야 겠다는
신앙적 깨달음에 따라
작년부터 조상제사를 중단했다.
물론 추도식도 죽은자를 되새기는
제사형식이라는 깨우침과 함께.
따지고 보면 제사는 인류문명과 함께 시작된 예법이 겠지만
유교의 성리학을 개국이념으로 택한 조선이 건국 되면서
불교신앙을 몰아내고
그 빈자리에 조상제례(祭禮)를 들어앉혔다.
말하자면 불교탄압과 함께 백성을 통치하는
이데올로기의 실행 방식이었다.
조선법전인 『경국대전』에까지 제사 규칙을 정해 반포했다.
‘6품 이상은 3대 봉사, 7품 이하는 2대, 서민은 부모 제사만 지낸다’. 라고....
그런데 가문과 문벌의 위세 경쟁이 격화됐던 조선 후기로 들어오면서
봉제사는 문중 대사, 가족의 최대 행사로 변질됐다.
1년 20회 정도 제사를 행하지 않으면 양반이 아니었던 당시의 풍조에서
신분 향상을 열망했던 서민들도 너도나도 제례 경쟁에 뛰어들었다.
제사만 열심히 지내면 모양만이라도 양반이 된듯한 기분에 취해.........
그러나 유교가 종교 기능을 상실하고 조선이 역사에 묻힌 이 마당에도
그때의 통치수단이었던 제례의 유교형식은 소멸되지않고
오히려 기독교안에까지 침투했다.
인터넷 재림마을 싸이트에는 거의 매일이다시피 부고가 실린다.
연합회장 모친상을 비롯해 목사,장로,집사의 사망을 알리며
하나같이 입관예배,발인예배,하관예배라는 제례절차를 진행한다.
안식일교회 신자들이 왜 유교식 제사예법에 이처럼 열광일까?
유교에서의 제사란 죽은 사람의 영혼을 섬기는 예법인데
왜 죽은사람의 시신을
"관에 넣습니다",
"장지로 떠납니다",
"무덤에 내려 놓습니다"라고
누구에게 고한다 말인가?
유교식은 매 과정마다 조상신에게 고한것인데
기독교식은 예배라는 단어가 있으니
매과정마다 하나님께 고하는것인가?
교회에서 이름난 목사님들이 방문할때마다 이 문제를 거론하며
고쳐야할 예법이라고 주장해 봤다.
원로장로님들과 격론도 해봤다.
그리고 안식일교회식 제례법을 새로 만들고
유교식 우상숭배방식은 버려야 한다고 강변도 했다.
돌아온 반응은 없다.
심지어 어떤 목사는
성경에 입관예배,발인예배,하관예배를 하지말라는 말이 없으니
각자가 알아서 결정할 문제란다.
우상숭배라는 나의 주장은 묵살한채.......
그리고 오늘도 부고는 줄기차게 실린다.
입관예배,발인예배,하관예배 통보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