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이 이상해
류 근 만
잘 뚫린 국도를 시원스레 달린다. 차창 안으로 꽃향기가 밀려든다. 언제나 이맘때면 아카시아 꽃 향에 취해 가슴이 설렜다. 양봉장에 가면 벌 날아다니는 소리에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마치 헬리콥터가 돌아다니는 것처럼 웽웽거리는 소리가 귀를 때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적막강산이다. 내가 꿀벌과 결별 한지도 어언 삼 년이 흘렀다. 양봉장을 철수한 자리는 을씨년스럽게 노송 몇 그루가 장승처럼 서 있을 뿐이다.
나는 아지랑이 아른거리던 그 들길을 지나 양지바른 산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짙은 아카시아 향을 기대했는데 거무죽죽한 꽃잎이 힘없어 나뒹군다. 예감이 좋지 않다. 나와 함께 꿀벌을 키우던 지인을 찾아가는 중이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의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였다. 낯선 손님이 오면 ‘웽 웽 ’거리면서 당장 침을 꽂을 듯 기세를 부리던 벌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좀 의아스러웠다. 벌통을 지켜보던 우리는 아름드리 느티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았다. 우선 벌 상태가 궁금하여 물어봤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올해 채밀은 망한 수준’이란다. ‘올 초 꿀벌 월동 상황이 좋지 않았다’ 고 한다.
실패 원인이 궁금했다. ‘아카시아 개화기가 예년보다 빨랐다’라는 것이다. ‘개화초기에 봄비가 연속해서 내렸고, 설상가상 저온이 이어져 꿀벌 활동이 여의치 못했다’ 고 한다. 그는 올해로 양봉을 시작한 지 11년째다. 나와 다정하게 꿀벌을 키우던 동지로서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무슨 말로 위로를 할지 난감했다.
잠시 후 나는 지인의 어깨를 툭 치면서 ‘힘내! 농사는 올해 망치면 내년에 잘 지면 돼, 건강이 우선이야, 건강 잃으면 세상을 다 얻어도 소용없어’ 하면서 위로했다. 나는 지인의 손을 잡고 봉정을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놔두고 나올 수가 없었다. 싫다고 우기는 그를 끌다시피 인근 마트로 향했다. 시원한 막걸리 한잔 씩 따라 놓고 한동안 대화를 나눴다. 함께 양봉을 배우던 지난 일들을 회상하면서 많은 얘기를 했다. 양봉을 처음 시작할 땐 꿀벌 한 통을 놓고 실습을 하면서 열심히 익혔다. 그런 덕에 이제는 어엿한 대규모 양봉 전문가다. 그러나 인생사가 그리 녹록지 않음을 실감했다. 하늘이 돕고 운이 따라줘야 한다는 ‘운칠기삼(運七技參)이란 말이 새삼 떠올랐다.
지인과 헤어져 집으로 오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그가 고생했던 나날들, 알게 모르게 투자한 경제적 부담, 가족의 응원도 받지 못하면서 꿀벌과 함께한 시간들, 그에게는 분명 단 꿀맛이 아닌 소태맛이었을 것이다. 나는 재미로 시작했지만, 그는 업(業)으로 시작했다. 나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일찍 접었지만, 그는 끈을 놓지 않았다. 동지의 힘들었던 나날들이 내일 같아 마음이 아련하다.
나도 처음엔 한 통 두통 늘리다가 십여 통이 넘었고, 꿀 따는 재미에 살만한 세상이라고 자랑스럽게 너스레를 떨기도 했었다. 그러나 날로 심해지는 생태환경 변화에 8년 만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청정 환경을 고집하는 꿀벌이 살아남기가 쉽지 않음을 깨달은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벌들과 결별을 선언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잘한 것 같다.
내가 양봉을 시작할 때만 해도 아카시아 꽃을 찾아 이동 양봉이 가능했지만, 나는 수량이 얼마 안 되어 고정식 양봉을 했다. 꿀벌은 가까이에 꽃이 없으면 2~3킬로를 비행한다. 제 몸이 상하는 줄도 모르고 억척스럽게 일만 한다. 소비 한 장에 벌 5천 마리 정도가 붙는다고 한다. 벌통 안에서 내부를 청소하고 새끼를 키우는 내역봉이 있고, 아침 일찍부터 늦도록 꽃술에 머리를 처박고 꿀을 빨아오는 외역봉이 있다. 제 몸이 부서지는 줄도 모르고 주인을 위해 헌신한다. 여건이 좋을 때는 소비 한 장에서 보통 꿀 한 병이 나온다. 벌 한 통에 소비가 열 장이면 꿀이 열 병, 즉 한 말이다. 벌 2십 통만 되면 한 드럼의 꿀을 딸 수 있다. 그 가녀린 벌들이 입으로 빨아오는 꿀이 한 병, 한 말, 한 드럼, 상상이 안 될 정도다. 그런데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다. 벌들이 죽을 각오로 빨라온 꿀을 빼먹고, 먹이는 고작 설탕으로 대체한다. 순수한 아카시아 꿀만 받을 때는 설탕 먹은 찌꺼기가 섞이지 않도록 채밀한다. 전문용어로 ‘정리 채밀’이라 한다. 양봉가도 꿀벌만큼은 아니어도 일말의 양심은 있어 다행이다.
최근엔 꿀벌을 키우는 양봉가가 줄고 있다. 이유는 앞서 밝힌 그것처럼 기후변화, 즉 생태환경의 변화가 주요인이다. 꽃피는 시기가 남과 북이 거의 비슷하다. 꽃이 너무 일찍 피었다가 늦서리나 낮은 기온으로 냉해를 입기도 한다. 잦은 비도 꿀 생산에 큰 타격을 준다. 올해도 그랬다. 지난해 18억 마리가 사라졌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벌이 사라지는 이유도 분명치 않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한다. 벌이 사라지면 인간이 여러모로 큰 타격을 받는다. 우선 과일이나 딸기 같은 채소는 수정이 안 된다. 식물도 동물과 같이 암수가 따로일 때는 수정을 해줘야 한다. 벌이 없으면 인공수정을 해야 한다. 비닐하우스 안으로 수정시키러 팔려나간 벌들은 수명이 짧다. 꿀벌 숫자가 주는 이유에 포함되기도 한다. 나도 인신매매하듯 팔아넘긴 적이 있다. 아인슈타인은 ‘벌이 없으면 4년 이내에 인류가 멸망한다.’라고 했다. 유익한 벌들이 사라져 가고 있으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아카시아 꽃이 필 무렵이면 지난날이 더욱 생각난다. 백수가 집을 탈출하는 출구가 되기도 했다. 겨울잠을 자는 벌을 이른 봄에 깨우던 일, 혹시 춥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포장 이불을 조심스레 벗기던 일, 알을 많이 낳으라고 공간을 확보해 주던 일, 코끝을 향긋하게 간지럼 피우던 순수 아카시아 꿀맛, 말벌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라켓으로 허공을 가르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맴돈다. 꿀벌은 참으로 영특하다.
나는 양봉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벌은 부지런하다. 잠시도 쉴 틈 없이 일을 한다. 꿀을 저장하는데 질서 정연하다. 소비에 알을 낳아 새끼를 탄생시키는데도 질서가 확실하다. 여왕을 지극정성으로 보호한다. 여왕은 한번 교미로 일생 알만 낳는다. 해를 끼치는 적에게는 공동대처한다. 이물질은 말끔하게 청소한다. 맡은 일은 확실히 처리한다. 한 치의 빈틈도 없다.
잠시나마 벌을 키우던 경험자로서, 동고동락했던 동지로서, 사라져가는 현상만을 바라보고 있자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의술이 발달하고 인간이 달나라 가는 세상인데 생태환경을 지키지 못해 사라져 가는 벌들에게 무엇이라 변명을 해야 할지 답답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