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두 하는 법 *☆
▒ 화두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아서 하라.
① 화두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아서 하라.
큰스님 : 화두 안 배운 사람 없지?
그 전엔 안 배운 사람 더러 있었거든.
안 배운 사람은 반드시 화두를 배워서 참선을 해야되지.
화두는 다른 것하고 달라서
우리 공부하는 수좌들의 생명이지.생명인데,
참선하는사람을,여러 수백명이 아니라,참 많이 봤는데,
그 중에 어떤 사람이 있느냐 하면,
배우지도 않고 자기 마음대로 뭘 갖다가
화두로 만들어 하는 사람이 더러 있어.
책을 보다가 무슨 의심이 났다든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해서 만들어.
이런 식으로 하는 사람이 더러 있는데,화두라는 것은
반드시 배워서 해야 되지, 책을 보고한다든지,
뭘 보고 생각해서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자기 마음대로 해서는 절대로 안되는 거야.
혹 상식이 좀 있는 사람들이 (책 같은 걸) 보고서
제일 마음에 드는 걸로 (화두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떤 때는 잘 안된단 말이여.
어떤 사람은 보면 하다가 병이 나는 수가 있단 말이여.
그러니 화두하다가 병이 나고 고민이 생기고 하는 것이,
배우지 않고 아무 지도없이
자기 마음대로 하기 때문이다 이 말이여.‘나는 아무 것도
안 배워도 자신 있다’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람은
설사 (화두한지) 몇 해가 됐다 해도 화두를 다시 배워야 되지,
자기 마음대로 뭘 갖다 (화두로 해서 하면)공부가
안된단 말이여.오래오래 하다보면 나중에 고장이 나고 이러거든.
어떤 사람은 큰 병이 나는 경우도 더러 있거든. 하지만
결국 모두 내버리고 (새로) 배워서 하면 괜찮단 말이여.
그러니 제일 첫째로 화두는 배워서 해야 되지,
자기 마음대로 선택하면 못쓴다 말이여.
② 본래부터 참구하던 화두를 바꾸지 말라.
그 다음엔 화두를 배웠으면 그 화두를 (바꾸지 말고)
오래도록 그대로 계속해야 될 것 아니야?
이 화두가 좀 안 되는 듯하면 저 화두 배워서 저 화두 좀 해보고...
(하는 식으로)자꾸 바꾸는 사람이 있단 말이여.
그것도 못쓰는 거야.
화두를 하나 배워서 하다가 보면 잘 안되거든?
또 하나 더 배워서 하면 잘될까 싶어서 (또 다른 걸) 배워서
해본단 말이여. 해보면 처음엔 잘되는 것 같은데 나중에
좀 하다보면 도루묵이여, 안되기 똑같다 그 말이여.
그리고 어떤 사람은 화두를 몇 가지를 배워서는,
이놈 쪼금 해보다 저놈 쪼금 해보다 (그러는데),
그렇게 하면 죽도 안 되고 밥도 안 되고 아무 것도
안 되는 것이여!
그러니까 화두하는 방법이
첫째는 화두를 자기 마음대로 하지 말고 배워서 할 것,
둘째는 하나를 배웠으면 그대로 계속해야 되지,
이리저리 화두를 변경시키지 말라 이거라.
변경시키면 안돼! 그런 사람 흔하거든.
‘아이구 스님, 이걸 해보면 좀 좋을 것 같은데...
이걸 하고 싶은데...’ ‘그래 해봐라’ (그러면)
얼마 안 가서 ‘내나 마찬가집니다.’ 이러거든.
역시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그 말이여.
(뿐만 아니라) 그 전에 배워하던 工夫만
혼동되고 말거든.그렇기 때문에 화두를
이리저리 바꾸지 마라 이거야. 그러면 못써.
③ 공부의 삼단
동정일여(動靜一如), 몽중일여(夢中一如), 숙면일여(熟眠一如)
또 화두를 하다가 깨쳤다고 와서 말하는 사람도
여러 수십 명 수백 분을 봤어. 어떤 수좌는 저기 오대산
그 쪽에 토굴을 지어 살다가 한 해 여름에,
그 천리 길을 세 번이나 왔어. 신심이 참 있어 보이니까,
처음에 와서는 공부를 하다가 자기가 깨쳤다고 그러 길래
그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해줬어.
그래 다시 가서 공부 하다 보니 또 뭔가를 안 것 같아. 아,
이번에는 참말로 바로 깨쳤지 싶어서 또 찾아 왔단 말이여.
그렇게 해서 세 번이나 온 사람을 봤는데,
내가 볼 땐 아무 것도 아니라.그 사람뿐만 아니라 흔히 보면
공부하다가 깨쳤다고 생각하고 와서 묻는 사람 더러 봤거든,
수 십 명, 수 백 명 봤어.
공부하다가 그냥(공부에 대해)의심 난다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무슨 지견이 나고 무슨 경계가 나타나면 깨쳤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도, 아무리 내 몸이 고달프고 아파도 꼭 만나 줬거든.
만나 줬는데, 여러 해를 그렇게 해보니까
그 사람들한테 무슨 얘기를 해봐도 소용없어. 처음엔
‘예, 예’하더라도 (나중엔) 아무도 내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해버려.
그래서 근래 와서는 공부하다가
뭘 깨쳤다는 그런 사람들은 영 안 만나주거든.
그 깨쳤다는 것이 바로만 깨친 것이라면 얼마나 좋노.
바로만 깨치면 말할 것 없는 거라.
중간에 가다가 병난 걸 ‘깨쳤다’ 이러니...
그러니 공부라는 것은, 내가 혼자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종문에 불교근본법칙이 있어. 법칙이 있는데,
한 가지 예를 들어 말하면, 우리가 강당에서 배우는 선요가 있어.
고봉스님 (어록이지),
그 고봉스님이 공부하다가 (자기 생각에) 깨쳤단 말이야.
깨쳤다 생각하고는 설암스님한테 갔는데,
무슨 법문이든지 물어보면 대답을 얼마나 잘하나!
설암스님이 가만히 보니,저놈이 바로 깨친 게 아니고
공부하다가 병이 난 것인데도
아무리 ‘(깨친 게) 아니다’고 해도 소용없거든.
그 땐 부처님이 아니라고 해도 말 안 들어.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는 안 듣는단 말이여.
그래서 설암스님이 한 3년(동안은)그대로(내버려)
둬버렸어, 말을 안 들으니까.
그래서 (고봉스님은) 한 3년 동안은 자기가 천하제일로
깨친 것 같고 자기 스님보다 나은 것 같단 말이여.
한 3년 지나서 설암스님이 보니 어지간히 그 객기가,
그 병증이 좀 가라앉은 것 같거든. 그래서 오라고 해서 물었어.
내가 뭘 물으면 (니가) 대답 못하는 게 뭐 있노?
그러니 지금 무슨 법담을 하려는 게 아니고,
내 그런 걸 물으려는 게 아니라,
니가 실제 깨쳤다고 큰 소리 치는데,니 공부한 그것이,
보통 밥 먹고 옷 입고 활동하고 다닐 때, 그때,
일간호호시적에, 아무리 (분주하게) 활동하더라도
그대로 일여하냐?’ 이렇게 물었거든.
자기가 생각해보니 아무리 그 경계로 설치고 하더라도
자기 공부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거든. 그대로 일여한거라.
‘그럼 꿈에도 일여하냐?’
가만히 생각해보니 꿈에도 일여하거든, 경계가 없단 말이여.
그래 또 물었어.
‘그러면 잠이 꽉 들어서 꿈도 없을 때, 그 때도 니가 일여하냐?’
하니, 그 땐 캄캄하단 말이야. 그래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랬거든.
중생생활이 어떠하냐면, 일간에 잠 안 잘 때 생활하고,
잠이 들어서 꿈꿀 때 생활하고, 잠이 아주 꽉 들어서
꿈도 없을 때 생활하고,그 세 가지 생활이 평생 전체 생활이거든.
그런데 설암스님이 물은 것은 ‘그러면 니가 잠이 안 들어서
보통 활동할 때,아무리 분주하더라도 네 공부가 일여하냐?’
이렇게 물으니까 일여하다 했거든.
‘그럼 더 나아가서 꿈에도 공부가 일여하냐?’
이렇게 물으니까 꿈에도 일여하다고 했단 말이여.
이건 실지로 하는 소리야.
‘그래 꿈에 일여하다면, 그럼 잠 꽉 들어서는?’
잠이 꽉 들면 꿈도 없단 말이야,그 때는?하고 물으니,
아이고 그 때는 캄캄하니, 아무 것도 없다 그랬거든.
그러면 그게 바로 깨친 게 아니다 이 말이여.
그래서 ‘니 공부가 바로 깨친 게 아니니까 오늘부터
무조건 다시 발심을 해서 공부가 잠이 꽉 들어서 일여한
거기에서 깨쳐야 되지,꿈에 일여한 그것 가지고는 안돼!
그거 공부 아니니까 다시 공부해라!’ 그랬어.
그때 (비로소) 미친 기운이,
병난 기운이 많이 가라앉아 설암스님 말을 믿었거든.
그래 또 3년을 죽자고 했어.
죽자고 해 가지고 그 때 가선 바로 깨쳤단 말이여.
잠 꽉 들어서도 일여한 것을 실지 오매일여라 하는 거야.
꿈에 일여한 건 몽중일여라 하고
잠이 꽉 들어서도 일여한 건 숙면일여라 하는 거여.
깨치고 보니까 그때선
몽중일여 들어가고 숙면일여 들어가서 자기가 바로
깨쳤거든. 그래서 설암스님이 인가를 했단 말이여.
그렇게 돼야만 (비로소) 바로 깨친 거여, 언제든지.
(그런데)요새 깨쳤다는 사람들 보면 말이여,
(공부하다가) 뭣이 훤한 것 같고,
(자기가) 부처님보다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 석가 그까짓,
똥 덩어리만도 못한 거고 내가 천하제일이다’ 이러거든.
‘그래, 석가가 똥 덩어리만도 못하든 금 덩어리만도 못하든
그런 소리하지 말고,
그런데 니 공부한 것이 보통 생활할 때도 일여하냐?’
하고 물으면, ‘아, 그건 안됩니다.’ 이러거든.
‘아니 그럼 보통 생활할 때도 일여하지 못한 그걸 갖고
부처님보다 낫다는 생각이 드나?’
‘그럼 뭘 갖고 아는데요?’
‘그래 工夫란 것이 동정에 일여해야 되.
동할 때나 정할 때나 일여해야 되고, 몽중에도 일여해야 되고
숙면에도 일여해야 해. 숙면에 일여해도 거기서 깨쳐야 공부지,
바로 깨친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병이지 공부가 아니야.’
‘아 그럼 난 큰일 났네.
난 꿈에는 고사하고 일상생활에서도 잘 안됩니다.’
그 천하제일이라는 게 안 된다 이거야.
‘그럼 니 어쩔래?’ ‘그럼 스님 말 믿고...’
‘이놈아, 내 말이 아니여!
이건 예전 조사스님도 다 말씀하신 거지.
이 도둑놈아, 내가 뭐 잘났다고 내 법 내세우면 되나?
자고로 어떤 큰스님이든지,
잠 꽉 들어서도 일여한 거기서 깨쳤어야 그게 참으로
바로 깨친 거지 그러기 전엔 절대 깨친 게 아니라고 (말씀하셨어),
부처님도 그렇게 말씀하셨고 조사스님도 다 그렇게
말씀했단 말이여. (그런데) 잠 꽉 들어서는 고사하고
또 꿈에서는 고사하고 동정에도 일여하지 않는 그것 갖고
니가 뭘 깨쳤다 할거고? 그건 순전히 병 난 거지 깨친 게 아니야.’
그래 (그 사람이) 가만히 들어보니 자기 공부는 틀려버렸거든?
‘아이고 이전에 잘못 배운 것 같습니다.
그럼 그걸 표준삼고, 몽중에도 일여하고 숙면에도 일여한
거기서 깨쳐 가지고 오겠습니다.’
아, 그런 사람 더러 봤는데,동정일여 이건 또 보통 보면
쉬운 것 같지만 그것도 참 어려운 거여.
뭐 (이리저리) 오고가고 쫓아다닐 때 화두가 일여하든가?
안 일여하단 말이여. 좀 지견이 났다 하면,
화두는 있건 없건,(화두를) 하고 안하고에 관계없이
(동정에) 일여한 경우가 더러 있어. (하지만) 난 이때까지
몽중에 일여한 사람은 아직 못 봤어.몇 사람 이제 몽중에
좀 일여할라 하는데, 그만 아이구 ‘깨쳤다!’ 싶어서
공부를 (더 이상) 안 해버린단 말이여.
그러면 나중에 (가서는) 도루묵이 돼버리는 거야.
여기 있는 우리 대중들 한 번 생각해 봐라.
그까짓 法問[법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고 법문을 알고,
그건 문제가 아니야.그건 무슨소릴 해도 아무소용없는 것이고,
실지 내 공부가, (어떤지는) 돌아다니다 보면 알 것 아니야?
동정일여라 하는 것은,
얘기할 때 밥 먹을 때뿐만 아니라 아무리 분주하고
또 아무리 바쁘게 몸뚱이를 움직인다해도
그대로 간단없이 일여한 그런 경계를 말하는데,
(그런) 동정일여가 여간해서 되는 게 아니야.
그런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몽중일여라 하면
그건 참- 어려운 거야. 그건 참말 어려운 거야.
그래 몽중에 話頭 들어서 되는 사람 있거든
한 번 손들어 봐! 그게 참 어려운 거야.
④ 양심을 속이지 말라.
그전에 (내가) 어디 갔는데, 그곳 조실스님이 점잖으신 분이야,
사람으로 치면 말할 수 없이 좋은 사람인데,
그 조실스님하고 이것저것 얘기하다가,
‘실지 공부란 것은 동정에 일여해야 되고 몽중에 일여해야 되고
숙면에 일여해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되는데, 스님 어떻습니까,
꿈에도 좀 뭐[일여]합니까?’ 이렇게 물으니,
아이구 참! 꿈에도 꿈에도 안 된다 하거든? 그런 이 여럿 봤어.
‘아니 꿈에도 안 되는 그걸 갖고 조실이라 하면 어디 되겠나?’
‘그걸 말했다. (하지만 주위에서) 조실해라고 자꾸 이러는데...’
그 말도 옳거든.
아무리 안 하려해도 자꾸 와서 조실해라 하니 할 수 없는 게지.
꿈에도 안 되는 그런 사람, 큰스님들 중에도 보면 더러 있거든?
어떤 사람은 또 안 그래. (물어보면) ‘그걸 말이라고 해?
난 숙면(일여의 경계)는 벌써 지나갔어!’
(하지만 실지) 내용은 안 그렇거든.
내용은 안 그런데 벌써 지나갔다고 한단 말이여.
그러면 (그 사람과는)더 이상 말도 못해.
하지만 자기 양심은 안 있겠어? 예전 사람들이 다
그렇단 말이 아니라, 예를 들면 그럴 수가 있다 그 말이라.
양심 있는 스님들은 꿈에도 안 된다고 해. 그런 말씀 많이 들었어.
깨친다는 것은 (표준이 있는데도),가다가 무슨 한 생각나면
‘한 소식했다’하고 ‘그까짓 것 다 알아 버렸다’하고,
무슨 경계가 나타났다하면 ‘부처나 달마보다 내 법이 더 깊다’
그러고, 그런 쓸데없는 망상을 가진단 말이야.
(그러면) 내 그런 사람들한테 뭘 말하느냐?
‘그러면 그 경계가, 그 깨친 것이 동중에도 일여하냐,
몽중에도 일여하냐,잠 꽉 들어서도 일여하냐?’
이렇게 물어보면, 다 그만 무너져 버리거든.
언제 한 번은 큰 법당에서 법문을 하고 내려오니까,
웬 수좌하나가 나를 보고 절을 자꾸 해.
‘와? 절을 와 하노?’ 이러니까,
‘아이구 스님 법문하시는데 그만 일언지하에 확철대오했습니다.’
‘허 참 반갑네, 이 초단법칙이로구만.
그래 일언지하에 뭘 깨쳤길래 깨쳤다 하노?’
‘온 1700공안이 환합니다.’
‘그래 그래 1700공안이 환하고 뭐고 그건 그만두고
지금 니 얘기할 때 지금도 공부가 그대로 되나?’
가만히 생각해 보더니, 얘기할 땐 없다고 그래.
‘허허 이 도둑놈의 자식아, 니 공부 깨치는 게 그런 건 줄 아나?
쌍놈의 새끼 말이여!’
그러니까 당장 잘못했다는 거라. 그래서 몽둥이로 탕! 탕! 때려줬어.
‘임마, 그런 게 공부 아니야. 어떻게 가다보면 망상이 좀 생기고,
어떻게 하다보면 경계가 조금 비친다 해서 그게 깨친 게 아니란 말이여!
동정일여해 가지고 몽중일여․숙면일여한데서 깨쳐야지
그렇지 않으면 깨친 게 아니여.
(이건) 내(가 주장하는) 법이 아니고 우리 불법의 근본이
거기에 서 있단 말이여.’그리고 나서 공부 열심히 하는 것 봤어.
⑤ 선방밥을 먹으려면
그래 공부란 것은, (겉으로) 공부하는 체 하고, 묵언을 하고,
장좌(불와)를 하고,뭐를 하고 해도, 속을 보면 동정일여도 안되거든.
뭘 알았다고 한 사람 더러 봤지만 몽중에도 되는 사람,
그게 참 드물다 그 말이여. (하지만) 아무래도 우리가 이제 그래도
선방밥을 먹으려면 몽중일여는 되야 선방밥도 먹을 수 있는 것이지,
그러기 전엔 뭘(갖고) 공부라 할거고? 아무리 가사를 입고
앉았다 해도 속으로는 아무것도 아니면, 수좌라 할 수 없거든?
그러니 동정일여․몽중일如․숙면일여가
공부의 표준이 되야 한다 이 말이야.이게 내 법이 아니고,
우리 불법․선가의 근본생명이 되어 내려오는 것이야.
이렇게 된 뒤에야 이제 화두(에 대한) 얘기를 해야 돼.
(그런데) 보면 선방에 나온 지 한 두 철 안되서 말짱 다 깨치고는,
모두 자기 所見은 하나씩 다 있어 가지고 자기가 뭐 석가
․ 달마보다 낫다는 그런 생각, 그런 망상 가진 사람 쌨거든.
그런 병 가진 사람 쌨다 그 말이여!
여기도 깨친 사람 안 쌨나?
속으로, 자기 속[생각]으로 깨쳤다 그 말이여,바로 깨친 게 아니고...
그러니 동정일여한지, 몽중일여한지, 숙면일여한지
그걸 한 번 생각해 보란 말이여.
그 세 가지 조건에 안 들었으면, 깨친 게 아니고 병이여!
그러면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는 거거든?
그러니 동정일여되고, 몽중일여되고, 숙면일여되고 하려면,
참 애를 많이 써야 돼.
⑥ 올바른 화두참구법 : 항상 ‘어째서?’를 넣어라.
(그리고) 화두하는 방법이 잘못되면 또 안된단 말이여.
역사적으로 보면 ‘無’자(를), 그냥 ‘무(無)-’ 이렇게 하는 사람이 쌨거든.
‘불성이 있나 없나, 무-, 무, 무-,무’ 자꾸 ‘무-’하면 된다 이거라.
한 가지 (예를 들면) 어떤 원로스님이, 웬 나이 많은 노인 하나가
참선한다고 앉았는데, 이리 꾸뻑 졸면서 ‘무-’, 저리 꾸뻑 졸면서 ‘무-’,
자꾸 ‘무’만 하면서 이리 꾸뻑 저리 꾸뻑 (졸더라면서) 흉내를 냈는데,
그런 식으로 해서는 만년을 해도 안돼! 자꾸 ‘무, 무’ 하면서
꾸뻑 꾸뻑 졸기만 하는데 그 병이 제일 큰 병이라.
자고로 ‘무-’ 이렇게 하라는 조사스님네가 하나도 없었어.
‘무-하면 그만이지 어디 딴 거 뭐 있나’하는 그런 소리 더러 들었는데,
(예전)스님들이 다 말씀하시기를, ‘조주인심도무?’ 조주는 어째서 無라 했나?
조주가 어째서...?(하는 식으로) ‘어째서’를 장[늘] 넣으라고 했어.
(화두에) 정전백수자니 마삼근이니 무슨 무슨 화두, 화두가 안 쌨어?
(하지만 어떤 화두를 하든지, 예를 들어) 정전백수자를
화두로 하는 사람은 ‘정전백수자’ 이러지 말고,
정전백수자(라고 한 이유)를 모르니까 의심이 있는데,
그러니 ‘어째서 庭前柏樹子(정전백수자)라 했는고?’
또 마삼근을 하면, ‘어째서 麻三斤(마삼근)이라 했는고?’
無字를 하면, ‘어째서 無라 했는고?’ (이런 式으로) ‘어째서? 어째서?’
이걸 장 붙여서 해야 된단 말이여.
(어떤 사람은) ‘어째서’를 할 필요가 있나?이러지만, 그런 게 아니야.
그냥 ‘무-’하거나, 그냥 ‘정전백수자’하거나, 그냥 ‘마삼근’하면,
그건 話頭(하는 방법)이 잘못된 거라.그렇게 해서는 깊이 못 들어가,
절대 깊이 못 들어가! 그런 사람 더러 있거든.
⑦ 잘못된 공부법으로 인한 병의 사예
그 처사 나이가 40 넘은 사람인데, 공부하다가 딱 앉아서는
정에 들어버리는 거라. 화두는 ‘無’자를 했는데,
(공부가 어떠했냐면) 처음에 ‘무-’ 하면서 이렇게 떡 앉아 있으면
모든 생각, 모든 번뇌망상이 다 떨어져.그냥 ‘무-’(하면) 그만
정에 들어가 버린단 말이여,
정에. 그리고는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있다 이거야.
‘그래, 니 그게 공부가? 공부하는 방법이 잘못됐어.’
처음엔 말을 잘 안 들으려고 해. 그러니까 그냥 ‘무-’하지 말고,
‘어째서 無라 했는고? 어째서 無라 했는고?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해야지,
그냥 ‘무-’하면 결국 무기에 빠지고 말아. 그런 일이 많이 있어.
또 어떤 처사는, 한 20년 전에 김용사 있을 때 찾아왔었는데,
지금 살아있으면 80 넘었을 거라. 도리사에 가서 6년을 공부했고
어디 가서 공부를 많이 했어. 나중에 돌아다녀 보니까 자기보다
더 잘 아는 사람도 없고, 자기보다 더 크게 깨친 사람도 없어.
그래서 중[僧]도 상대하지 않고 자기가 천하제일이라.
그래 자기 어록을 만들어서 이 만큼 책을 가지고 다녔는데,
누구의 말이든 안 들으려 한단 말이야. (그러다가) 누가 ‘그러지 말고
성철스님을 한 번 찾아가 보라’고 그러드래. ‘그분도 별 수 있을까?
하지만 한 번 가보지.’ 그렇게 해서 (나를 찾아) 왔는데, 만나보니 아만이
충천하고... 그 처사가 딱- 이렇게 앉았는데, (말하기를) 이렇게 앉으면
定에 드는데, 定에 들면 한 일곱 시간 여덟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언제 지나가는지 몰라.
그런 자기 경계를 가지고 큰 스님네한테 가서 물어봐도
아무도 모른다거든? 그럼 자기가 최고다 이거야,
자기 경계를 모르니까. 그래 가지고 자기가 바로 견성했고,
신선인들 이렇게 좋을 수 있으며,대통령인들 이렇게 좋을 수 있나?
무엇보다 자기가 定에 들었을 때 定에 든 경계 그건 다 할 수도 없고,
또 어디 물어보니 잘 모르고,이러니까 (남들이) 자기보다 못하다 이거라.
그래 내가, ‘그 참 공부 많이 했구먼,
(그런데)그 경계가 꿈에도 있나, 없나?’ 가만히 있더니 꿈에는 없다고 그래.
(定에 드는) 그것 갖고는 꿈에(는 工夫가) 안되는 거라.
‘에이 도둑놈의 자식! 그게 定에든 病이지,
꿈에도 없는 그게 무슨 工夫라고 니가 工夫라고 그래?
니 생각해 봐라. 공부라면 動靜(동정)에든지, 夢中(몽중)에든지,
熟眠(숙면)에든지 一如(일여)해야지 꿈에도 없는 그것 갖고
그게 무슨 공부라고, 천하제일이라 해?’’
그만 몽둥이로 두들겨 줬어.
보통들 보면 定에 들었든가,
7, 8시간이 눈 깜짝할 새 넘어가 버리면 천하제일이라고 (생각하지),
자기도 그렇게 알고. 하지만 (그래도 이 처사는) 공부를 많이 하고
애쓴 사람이라 머리는 영리해.
(그리고) 양심이 있으니까, 이해타산이 없거든?
속인이다보니 어디 가서 조실 앉을 그런 생각도 없는 사람이고.
만일 조실이나 그런 데 생각이 있었으면 또 ‘꿈이 뭐꼬, 내가
숙면일여 되는데!’하고 꿉뻑 쎄울끼라, 안된다고 하면
조실 안해야 되니까. 그런 이해관계가 없으니까, 양심적으로 ‘잘못됐다’고
그래서 결국 내게 절하고 (전에 하던 話頭를 버리고) 話頭를 새로 배워서
공부 열심히 하고 있는데, 그 사람도 보니까 (잘못된 원인이)
話頭하는 방법이 잘못됐어.
그래 ‘어째서 無라 했는고? 어째서 無라 했는고? 어째서, 어째서?’하고
‘어째서’를 붙여서 (화두를)하니까 자기가 말한 定이 안 나타난단 말이야.
자꾸 話頭만 성성해서 ‘어째서 無라 했는고? 어째서, 어째서?’ 하게 되지
定이 안 나타나거든.
그러니까 話頭하는 방법이 잘못되면 그만 딴 길로 들어가 버린단 말이여.
영 잘못돼버린단 말이여.
그럼 아무리 죽자고 애를 써도 헛일이여. 헛일이기만 하면 괜찮지,
도리어 病만 생기고 만다 그 말이여.
아까 내 말한 그 고봉스님도 처음엔 그냥 ‘무-’했거든.그냥 ‘무-, 무-’
이렇게 3년을 해도 아무런 진척도 없고, 공부가 안된단 말이여.
그래서 자기가 출세한 뒤에는 도대체 無字를 못하게 했어,
(사람들이) 자꾸 ‘무-, 무-’ 하고 앉아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 수제자인 중봉국사(말씀)이 (無字를 못하게 할 게 아니라)
無字(를 參究하는) 방법을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無라 했는가?’(라고) 고치면 된다 이거라.
그래 이 ‘趙州因甚道無(조주인심도무)?’하는 것이,(비록) 그전
[中峰스님 以前]에는 (그렇게 했다는) 특별한 기록은 없지만
그전에도 다 그런 식으로 했는데, 거기서 내려 온 거라,
내가 특별히 하는 소리가 아니야.
그래서 천하선지식․조사스님들이 공부하셨던 방법이,
‘정전백수자’나 ‘마삼근’이나 (그 밖의 다른) 무엇이든 할 것 없이,
언제든지 話頭할 때, ‘어째서’가 들어가야지
안 들어가면 工夫가 안된다 이거라, 이게 (工夫하는) 根本요령이거든.
⑧ 참의와 사구라는 오해
또 흔히 그냥 ‘무-’라고 하든지, 그냥 ‘정전백수자’라고 하든지,
이렇게 하면 참구가 되고, ‘어째서’를 넣으면 참의가 된다고 하는데,
그건 미친 소리구먼. 참의니 참구니 하는 것은 나중에 깨친 사람이
깨친 분上에서 이런 말 저런 말 한 것이지,
工夫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면 못쓴다 이 말이여.
그리고 또 그냥 ‘무-’하면 활구고
‘어째서’하면 사구라고 하는 소리도 듣는데,
이건 사구고 활구고 참으로 꿈에도 모르고 하는 소리야.
그럼 조주 無字 같은 건 (예전의) 여러 큰스님들이 그걸 몰라서
‘어째서 無라 했는고?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했을까?
그럼 대강의 요점은 내 얘기했으니까,
개별적으로 의심나는 사람 있으면 간단하게 얘기 해.
*유익한 나날 되십시요!*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happywuri.com.ne.kr%2Fflower%2Ffs00.gif)
2009.01.17,☆법 해 무 명☆
☆좋은인연 좋은福 많이 지으시고 성불 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