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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호 이야기
내가 태어난 곳은 울주군 상북면 소호라는 아주 시골이다.
이곳은 예로부터 아주 깡 촌의 대명사로 동부경남에서는 잘 알려져 왔다.
서부경남의 함안, 산청이나 함경도의 삼수, 갑산과 같은 맥락의 오지라 생각하면 틀림없다.
소호는 겸상남도에 위치하고 있어도, 행정구역 상으로는 주변은 온통 경상북도로 되어 있어 경북 속의 섬처럼 지도에 나와 있다.
왜정시절에 일본 관리들이 밀주를 담아 놓은 것을 단속하러 나오면 개천 하나를 사이에 두고 경북에서 나오면 경남 쪽으로 술 항아리를 옮겨놓고, 경남쪽에서 나오면 경북쪽으로 개울하나를 두고 옮겨 놔서 일인들의 감시를 피할 수도 있었다 할 정도이다.
옛날의 지역 경계가 주로 산과 하천을 두고 경계를 삼은 것을 두고 볼 때 이 소호의 지리적 특징을 지도를 통해 살펴보면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따라서 이곳 사람들은 주로 경북쪽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자리잡고 살았던 것 같기도 하다.
우리집안 또한 따지고 보면 고조부 위쪽은 경북쪽에서 삶의 터전을 가졌던 것 같다.
이러한 소호의 지형적인 여건은 주변을 살펴보면 더 잘 알 수가 있다.
소호는 북으로는 막다른 태종이라는 자그마한 마을이 있고 동으로는 옛날 김유신 장군이 신검을 얻었다는 백운산, 남으로는 영남알프스의 마지막 줄기인 고헌산이 자리잡고 있다
또한 이곳은 북쪽이 휑하니 튀어서 이 주변의 어느 곳 보다 겨울이 길고 눈과 바람이 많다
울산에서는 겨울철이 되어도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눈을, 이곳에 오면 쉽게 볼 수 있다.
따라서 이곳은 농산물의 수확량이 다른 곳 보다 적게 나며 논과 밭도 척박하여 이 주변에서는 이 마을을 농사가 잘되지않는 대표적인 오지로 손꼽는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작물은 겨우 자가소비나 할 수 있는 약간의 논농사와 감자를 중심으로 한 밭농사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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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리 마을 어귀의 정겨운 동구밖
소야풍년(所也豊年)
상북면 소호리의 옛 이름을 소야(所也)라 하였다. 원래 두서면에 속했던 소야(所也)와 경주시 산내면의 동골(東谷)을 합쳐서 흔히 <소야동골>이라 하였으며 이것이 줄어 <쇠동골>이라고도 불러왔다.
이전에 들마을(野村)에 살던 어떤 사람이 소야(所也)를 찾아 첫길을 나섰다. 고헌산 아래에 있는 삽재(揷峴)라는 마을을 지나 북쪽으로 넘어가는 길은 지금은 포장이 잘된 도로지만 옛날은 10리가 넘는 험한 산길이었다. 외롭고 또한 불안한 산길인데, 곧 외항재(瓦項峴)로 넘어가는 길이다.
길손은 마침내 광바위(廣巖)에 이르렀으나 근근이 바위틈을 넘어다니는 좁은 길이었다. 길손이 문득 앞을 보니 지게를 진 한 사나이가 나타났다. 엉겁결에 길손의 입에서는 "당신 어딨소?" 하는 말이 터져나왔다. 이 때 그 사나이는 불쑥 바위 위로 길을 비끼면서 "쇄동골 사오" 하며 답하였는데 매우 신이나서 의기양양한 모습이었다.
길손은 다시 묻되 "어데를 가는 길이오?" 하며 이제는 매우 정중하게 물었다. 사나이는 답하되 "나락 구하러 가는 길이오" 하는 것이었다.
길손은 지난 해의 농사가 고냉지(高冷地)에서는 풍작을 이루었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었다. 그러므로 다시 말을 이어 "신나락은 무슨 신나락이오?" 하니 그 사나이 말이 "나락 등이 터져 못쓰게 되었소" 하며 길을 비켜 가벼렸다.
이 대화에서 나타나는 것 가운데 나락이 등이 터져 못쓰게 되었다는 말에는 함축성이 있는 하나의 풍자가 섞여 있다.
소호(蘇湖)나 동골처럼 높은 산에 둘러싸여 일조시간이 짧고 찬물이 새어드는 곳에는 가뭄이 와야 풍작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므로 심한 가뭄 때는 벼알의 등숙(登熟 : 곡식의 알이 잘 여물어 익음)이 좋아서 볏껍질이 터지도록 벼농사가 잘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7월 장마가 계속되거나 비가 많은 해는 그만 미발(未發 : 피지 않음)에 그쳐 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이 소호리의 농사 사정인 것이다. <呂川洞 故 金相根(경주시 산내면 출신)의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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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리마을의 밤나무(그네 걸어 마을사람이 함께 타던 그 나무)
소호리(蘇湖里)
상북면 13개 법정동리의 하나이다. 경주군 남면(南面) 때는 소야동(所也洞)이라 하였다가, 정조 때 소야리(所也里)라 하였다. 울산군으로 이속되어 두북면에 속했던 1911년 소호동(小湖洞)과 태종동(太宗洞)으로 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두 동을 합하여 소호리(小湖里)라 하였고, 뒤에 소호리(蘇湖里)로 고쳐 불렀다. 1973년 7월 1일 상북면에 편입되었다. 행정마을도 소호 단일마을로 되어 있다.
소호리의 옛 이름 ‘소야‘는 ‘수리‘를 뜻하는 것으로 보며, 이것은 지대가 높은 산마을을 뜻하는 것으로 본다.
고무들 : 소호리 태종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고무딸(딸기)이 많이 났다.
경남들:정남들: 소호리 새앳들 북쪽에 있는 들로 옛날에 정남사라는 절이 있었다.
기와목:잿목:와리(瓦里): 소호리의 당리 서쪽 마을로 옛날에 기와를 만들었던 곳이라 한다.
느티나무: 소호초등학교에 있는 나무로 수령이 4백년 쯤 되며 높이는 15m 쯤 된다.
당리(堂里):당수말:소호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다.
당수나무가 있으므로 당리, 또는 당수말이라 한다. 이 곳에서 정월 대보름에 당제를 지냈다.
대리(大里):소호리 당수말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옛날에는 이 곳이 소호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었다.
도장곡(道藏谷):소호리 당수말 남쪽 골짜기이다.
내력은 자세히 전해지지 않으나, 골짜기가 길을 감춘다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벌샘:벌천(伐泉):소호리에 있는 샘으로 ‘벌샘‘은 너른 샘이라는 뜻이다.
이 곳에서 모래가 물과 같이 솟아 나온다 한다.
새기바우:소호리 시드미 위에 있는 바위로 이 곳에서 석이버섯이 났다 한다.
소야(所也):소호(蘇湖:小湖)
소호의 옛 이름 소야는 ‘수리‘를 뜻하는 이름으로 본다.
‘수리‘는 높이 솟은 산을 말하는데, 다른 여러 한문글자를 빌려 썼다.
그러므로 ‘소야‘는 높은 산마을, 또는 높이 솟은 분지마을을 뜻하는 이름으로 본다.
그러므로 ‘소야‘는 높은 산마을, 또는 높이 솟은 분지마을을 뜻하는 이름으로 본다.
소야를 소호로 고친 연대는 분명하지 않다.
소똥골
소호리 잿목 서쪽 골짜기로 옛날에 소를 놓아 먹이던 곳이므로 소똥이 많았다 한다.
소호령(蘇湖嶺)
소호리 도장골 동남쪽 고개로 높이 669m이며, 두서면 인보리와 경계가 된다.
백운산(白雲山):열박산
소호리와 두서면 경계에 있는 높이 901m의 산이다. 영남알프스 중 북알프스를 형성하고 있다.
인근 밀양시 산내면에 있는 백운산(885m)과 혼동하기 쉽다. 열박산이라고도 한다.
‘열박‘은 신라의 고유한 말로서, ‘열(咽)‘은 열다는 뜻을 지닌 ‘열‘의 음차(音借)이고, ‘박(薄)‘ 역시 ‘ ‘의 음차로서 신라의 박(朴)과 같은 ‘밝다‘는 뜻을 지닌 것이다.
그러므로 열박산은 환하게 열리고 밝은 산이라는 뜻을 지닌 것으로 본다. 도둑이 많아서 낮에는 열 사람, 밤에는 백 사람이 함께 넘어 다녀야 했으므로 ‘열박산‘(咽薄山, 열백산)이라 했다는 속전도 있다.
열박산이 백운산으로 이름이 바뀐 시기는 분명하지 않다.
열박산이 백운산으로 이름이 바뀐 시기는 분명하지 않다.
여기에 얽힌 김유신 장군에 관한 설화는 두서면 열박산 항에서 소개하였다.
시이드미:싱이드미:
소호리 잿목과 당리 사이에 있는 산으로 모양이 마치 싱이(상여)처럼 생겼다 한다.
천지방우
소호리 당리 남동쪽 들가에 있는 바위이다. 매년 6월 15일(유두)에 풍년을 비는 제사를 지냈다.
혹은 옛날 천군(天君)이 제천의식을 행하던 곳이라 한다.
태종(太宗)
소호리 도장골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태종(임금)과 관련된 내력은 확인할 수 없으며,
크고 높은 마을이라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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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근정 국민학교 소호 분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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