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박완서 장편소설/웅진지식하우스 2022년판
그녀와 그녀들이 일구어가는 나라
1
박완서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 줄 안 것은 작품 중반을 넘어서 ‘지섭’이라는 또래 친구를 만나 그의 집을 보고난 부분에서 자신의 작품 <나목>을 거론하는 문장을 읽고 난 후였다.
주인공이 서울의 미군 피엑스에 취직한 부분이라든지, 화가 박수근을 그 안에서 만난 일이라든지 등이 그의 또 다른 장편소설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처럼 내용이 똑같이 겹쳤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흥미롭게, 어쩌면 소설이라서 재미있게 읽어온 이 작품 안의 대부분의 내용들은 진실이라는 점에 이르게 되는데, 이제 약관의, 그것도 여성의 몸으로 전쟁이 주는 그 모든 고난을 극복하며 자신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가는 작가의 젊은 날 노정에 일말의 경악과 아울러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그 동안 ‘박완서’ 선생을 잘못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의 명성과 작품 일부, 그리고 사진의 모습을 보고 판단한 바로는 지적이지만 대단히 유약하고 감성적인 여성으로만 여겼던 것인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 그런 선입견을 싹 정리하면서 사람 보는 눈의 형편없음을 처절하게 반성했다.
박완서 선생이 처음 작가로 데뷔하던 당시를 회고한 글을 인터넷에서 읽고 알게 되었는데, ‘화가 박수근’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리고 싶다는 순수한 취지에서 출발되었다고 한다. 당시 ‘신동아’라는 월간지의 논픽션 부문에 응모하기 위해 ‘화가 박수근’에 대한 기억을 더듬으며 원고를 써 나가기 시작했는데, 응모 제한인 사백 매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에 이르고는 체념에 이르렀다가 곧 자신의 상상력을 가미해 써 나간 원고는 얼마든지 쓸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하고 소설가로의 출발을 다졌다고 한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그의 작품 대부분에서 엿보게 되는 그녀의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와 순수한 열정 때문이다.
일부 문학 비평가는 그녀의 작품들을 두고 역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당시 사회의 적나라한 모습을 기록물의 차원에서 진정성 있는 시각으로 세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대작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2
소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작가 자신의 처절한 자전적 소설이어서 더더욱 마음에 와 닿는다. 당시 세기말 전 세계적으로 요동친 격동의 역사의 한 현장을 살아온 세대뿐 아니라 이후 그 역사를 공부하며 그 세대의 손에서 자라난 우리들도, 이어지는 새로운 세대에게도 모두 공감될 수 있는, 저마다 가슴 한 가득히 따스한 공명이 가득한 한 편의 대하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작가가 쓴 대부분의 작품 군들을 보면 이 땅에서 우리 어머니와 그녀의 딸들이 살아가는 강인한 면모를 찾을 수 있게 된다. 즉, 이 땅의 여성들의 면모를 세세하게 알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이다.
여성들의 삶에 대한 시각과 의지는 세계 어느 지역의 여성들과 다름없이 대부분 보편적이고 한결같이 비슷하다는 것을 각종 문학작품들을 들여다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각 나라와 지역이 지형과 기후에 따라 다소간 차이가 나는 것처럼 이 땅의 여성에 대한 고유한 면모를 작가의 힘으로 잘 살려내어 독자들로 하여금 큰 공명과 감명을 자아내게 했다는 점에 존경을 표하고 싶은 것이다.
이 작품은 좌우 이념의 극한 대립적인 상황에서 일어난 전쟁의 틈바구니를 헤집고 살아남기 위해 그 어떤 행위도 불사하는, 마치 화염 속에서 몸부림치는 인간 군상들의, 특히 작가 자신의 처절한 체험을 우선으로 하는 이야기다.
당시 우리 사회에 뿌리 깊었던 가부장적 질서 체계 속에서 이념에 깊이 물든 오빠(인민군으로 갔다가 탈영하며 다리에 총상을 입어 운신이 불가능한)를 가장으로 엄마, 올케, 그리고 내가 조카 둘을 데리고 일사 후퇴 후 모두가 빠져나가 인적이 끊기다시피 한, 적막강산과도 같았던 수도 서울에서 인민군을 맞아 이념 선택의 여지도 없는 채 국군이 다시 수도를 탈환할 때까지 긴박하게 살아냈던 시간들이 작품 전편을 이룬다. 그 후 먹을 것이 곤궁해 외국의 구호품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무기력하고 특히 비참했던 서울 생활 중에서 미군 피엑스에 직원으로 채용되어 근무하며 가족들의 가장 노릇과 엄마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까지 이르는 고난에 찬 여정들을 담담하게 구술하듯 밝히고 있다.
3
여성은 사회를 이루는 커다란 한 축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잠시 잘못 보기에 따라서 남성 위주의 문화 산물에 현혹되어 제대로 된 시각을 갖추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런 시각으로서는 빠르게 변화하는 지금의 현실에 제대로 대처하기는커녕 자칫 삐뚤어지거나 잘못된 인식의 뿌리로 말미암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시각으로,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삶을 못 살아보는 불행한 우를 범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과 위기감이 자주 엄습하는 것을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여성들의 이야기에 더 자주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매사에 희망보다는 절망적인 상황이 더 자주 의식되는 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것이기를 바란다. 이런 비유를 들먹이는 것이 다소 불합리한 것처럼 느껴지기는 하지만,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지금까지 역사의 진보나 발전은 문화 변방 세력권에서 나온다고 했다. 이 논리가 지금껏 역사의 변방이자 비주류였던 ‘여성’에게서 그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면 잘못된 견해일까. 요즘 들어 각계 여성들의 저작이나 문학작품들을 눈여겨 읽게 되는 이유이다.
박완서 선생의 작품들을 보면 그녀와 그녀들이 지금껏 일구어왔고 일구어가는 나라의 면면들이 잘 들여다보인다. 이 작품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도 그런 맥락에서 읽혀진 소설이다.
(202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