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335-초끈이론과 10차원, 11차원우주 및 숨겨진 6차원 또는 7차원에 관하여 2편 설명
아인슈타인에 의하면 에너지가 고도로 응축된 것이 바로 물질이라고 말한다.
초끈은 바로 그 에너지가 진동하는 마이너스 35자승cm크기의 상상을 할 정도로 작은 선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들이 열리거나 닫히기도 하면서 현재 알려진 물질의 가장 미시적 단위인 쿼크나 전자를 만들고 그 쿼크는 중성자나 양성자를 만들고 그들이 결합하여 원자핵을 만들고 이온 상태인(전자가 없는 상태)원자핵은 전자와 결합하여 원자를 만든다.
바로 이러한 수천조개의 원자들의 거시적발현상태가 님이나 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산이나 바다나 나무나 우리 주변의 자연도 이러한 원자의 거시적 현현 상태로 에너지라는 같은 것의 다른 존재형식이며.. 스치는 바람도 자동차의 경적도... 이러한 에너지의 흐름이며 초끈이 추는 춤이라 할 수 있다.
물리학자들은 이를 과학적 애니미즘(精靈信仰)이라 칭하기도 한다.
세계와 자연은 가이아적 일체로 이루어진 유기체이며 그것은 우주와 如一한 것이다...라구요. 그래서 브라만들이 본 찰나와 모래 한알속의 시공이 억겹과 무한한 우주의 시공과 등치되는 것은 굳이 서구적 환원(reduction)이 아니라도 우리 무의식 안에 응축되어 있는 우주의 역사를 불러내는 섬광적 통찰인 intuition의 당연한 귀결인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double slit(토머스 영이라는 물리학자가 행한 두구멍을 통한 통과실험=빛의 파동적성격을 말한다)실험에서 아원자적 단위에서 우주적 결단과 선택이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즉 아원자적 수준에도 의식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한다.
물리학 저널리스트 G 쥬커브는 말한다. 비존재도 존재한다. 비존재, 존재 모두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 심지어 빈공간 조차 존재한다는 것이다. 존재하는- 그것이 아닌 것은 없다고 말한다. 우주는 춤추는 물리이며 아주 극미에서 초거시적인 장까지 어우러지는 초끈들의 무도회장이라 할 수 있다. 너울너울 일렁이는 에너지 끈들의 춤이 보이지 않습니까?
스티븐 핑거는 인간은 본성을 타고 태어나는가라는 저서에서 명쾌하게 답변한다.
마음 또는 영혼, 정신이란 오랜 진화과정에서 형성된 일종의 전기신호적 복잡계
혹은 생물학적 컴퓨터의 일종인 뇌의 정보처리과정일뿐이며 그것들은 유전자들을 통해서
컴퓨터의 도구상자처럼 처리신호체계를 매뉴얼화하여 생물학적 생식에 의하여 다음세대에 다운로드시킬 뿐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흔히 오류를 범한다. 인간 수준의 의식만이 진정한 의식이라고, 하지만 그건 아주 무지한 인식이다.
생물학적 연구결과에 따르면 식물들도 고통과 기쁨 등의 희로애락을 느낀다고 한다.
식물적 차원에서의 의식의 존재는 거의 인간의 의식수준과 다를 바 없다.
동시에 분자단위나 원자나 아원자단위(전자 광자 쿼크 등등의 소립자)에서도
그들이 선택가능한 수천조개의 역사적 경로가 그들 소립자 앞에 펨토단위로 상시적으로 놓여 있으며 그들은 또한 상시적으로 그 수천조개의 경로 중 특정의 것을 선택하는 분기점에 직면하며 인간의 의식에 버금가는 형식으로 초이스를 한다.
그것이 바로 쌍슬럿 실험에서 광자하나가 슬럿이 1개가 열려 있으면 입자형식으로 그 구멍하나만을 선택하지만 슬럿이 두개가 다 열려있으면 그 입자였던 광자가 갑자기 파동처럼 변하여 그 두 슬럿(구멍)을 연기처럼 동시에 모두 통과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이런 것들을 물리학자들은 아원자단위의 의식이라 한다.
그러한 미시적단위에서 아원자적 결단들이 모여 바로 님의 거시적 의식수준을 발현시키는 것이다. 거시적 고등생물인 인간의식의 기저에는 저러한 수천조개의 의식의 순간적 선택이
오랜 진화의 기간 하나의 프로세스 처리절차로 매뉴얼화한 것, 그것이 바로 정신이고 마음이다. 따라서 그러한 전기적신호를 보내는 아원자 수준에서의 미세한 정보들이 뉴런이라는 신경세포를 통하여 게슈탈트 효과처럼 도약하며 정보처리를 끝낸 것을 우리가 소쉬르적 랑그로서 정신이라 부르는 하나의 상으로 관념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선험하는 이러한 아원자적 결단에 의한 전기적 신호와 정보 그 생물학적 프로세스로서 뉴런의 역할은 뿌리 깊은 그리스이래의 형이상학적 폐해와 히브리적 절대론의 영향으로 그저 생물학 교과서에 나오는 화석화한 지식으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즉 메를로 뽕띠의 유명한 언명처럼 감각은 관념에 선험함에도 불구하고 그 반대로 알고 있는 무지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형이상학은 그에 합당한 대우로 하향 조정되어야 한다는 뽕띠의 지적은 정당한 것이다. 마음이나 정신 영혼에 관해서는 현대에서는 인지과학 복잡성과학 생물진화론의 분야에서 이미 규명이 완결되어 새로운 생명체와 사이보그 그리고 의식을 가진 로봇을 만드는 단계에까지 진전되었다.
현대 인문학의 위기는 바로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그리스이래의 터무니없는 관념과
레토릭 우위의 허상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과학적 성과들을 자연과학자들이 주도해나가는 현실을 인문론자들이 따라 잡지 못해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특히 복잡성과학에서 논의되는 사항이지만 우리 인간사회나 자연계의 여러 현상이나 또는 미시적단위의 분자, 원자, 아원자 단위의 계의 움직임에서는 단순함-자기조직화-캐오스-그리고 재조직화의 사이클이 발견된다.
즉 단순한 구조로부터 점차적으로 상호적응과정과 경쟁을 통해서 그냥 그 수준에서 고정되지 않으며 또한 무질서 속에 빠지지 않고 항상 보다 높은 수준의 질서를 창조해나가는 것이 밝혀진다 이를 자기조직화과정이라고 하는 것이다.
알튀세가 말한대로 모든 구조는 해체를 지향하지만 그 해체의 과정 속에서 단순히 그 혼돈 속에서 빠져 허우적대지 않고 새로운 질서를 창조해나간다고 인문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것은 그대로 칼 융이 말한대로 물리는 심리라는 테제처럼 인간내부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전기적신호라는 물리적과정을 통하여 그 소산인 심리가 생성되는 과정이며 동시에 이 심리는 바로 마음 정신 또는 영혼이라고 보통 통칭되는 것들이다.
엔트로피가 증가할 수밖에 없는 우주의 산일구조 속에서 어떠한 계든 즉 무기물의 아원자단위의 계든 수돗물의 움직임이든 담배연기나 사회집단의 움직임이든 인간심리의 움직임이든
제2열역학 법칙에 의해 소진되어가는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정당하게 레지스턴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단백질분자는 생물학적으로 말하면 살아 있지는 않다. 분자자체로는 생물학적으로는(물리학적 그 안의 운동과는 달리)죽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집합체인 단백질분자는 모여서 생명체를 형성한다. 즉 우리가 의식이 있다고 부를만한 수준인 생물로서 실존하게 된다.
이렇게 생명의 하부구성요소인 단백질이 개별적으로 가지지 못한 특성이나 행동이 구성요소를 함께 모아 놓은 전체구조(유기체)에서 돌연히 출연하는 것을 과학적으로 창발성(emergence)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창발성은 전체가 부분을 합쳐 놓은 것보다 크다는 시너지효과를 말한다.
게슈탈트의 빛이라는 토픽으로 미세한 전기적신호들이 뉴런을 통하여 돌연 게슈탈트적 도약을 한 후에 관념화하는 과정을 설명한 바 있다. 자연은 그 자체로 자족적이며 그 자체로 거대한 에너지순환의 고리이며 이 과정에서 아인슈타인의 에너지 응축을 통해 물질이 생성되고 그 물질들의 유기적 우연적 그리고 질서적산물의 소산이 바로 생물이라고 카우프만은 우주의 안식처에서 말한다.
1987년 랭턴은 인공생명이라는 새로운 컴퓨터 과학을 발족시켰다. 여기에서 랭턴은 구성요소가 완전히 고정되거나 완전히 무질서에 빠지면 무생물의 집단에서 생명이 솟아날 수 없다는 곳을 발견한다. 즉 질서와 혼돈이 완전하게 평행을 이루는 가장자리에서 생명은 탄생한다고 말한다.
환언해서 심리나 마음이나 영혼의 생성과정이라는 것은 우리가 오감이나 육감 수준에서 아원자적 결단으로 이루어진 캐오스적인 무한한 양의 정보를 전기적 신호로 포착하고 이를 자기조직화한 뉴런이라는 신경세포로 동시적으로 보내면 그 뉴런이라는 구조와 무한한 양의 전기적 신호라는 캐오스가 만나는 가장자리에서 창발적으로 양자도약을 하며 게슈탈트효과처럼 현현하는 것이다. 그것이 오랜 기간 일정한 매뉴얼화를 거쳐서 생물학적 복제(생식)를 통해 다운로드된 정보처리 과정이 바로 마음과 정신의 생성과정인 것이다.
레이니에서 08.11.2
슈뢰딩거의 고양이(현대물리학의 양자론에서 중요한 언명으로서 확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패러독스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