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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연희의 수필세계
- 흔들리기 그리고 바로서기 -
권 대 근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수필은 자외선과 같은 섬세한 부분이자 영혼의 가장 은밀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음의 상태와 동경을 그려내려는 욕구가 만들어낸 그림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수필가란 바로 고독한 정신의 움직임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볼 수 있다. 수필은 무엇보다도 작가 자신의 섬세한 내면 풍경을 진솔하고 자유분방하게 드러낼 수 있는 자조문학이라는 특성을 가짐으로 해서, 중년 여성이 느끼는 일상의 무료함과 심리적 압박감을 극복하는 데 안성맞춤인 장르다.
우리네 삶은 너무 가변적이다. 특히 여성들에게는 더욱 그 정도가 심하다. 삶의 중심에 서면 쉽게 흔들리고 절망하기 일쑤다. 우리네 삶은 곧잘 여성들을 위기로 몰아 간다. 송연희 수필은 이런 여성의 심리 변화와 그 앞에서 겪는 갈등을 솔직하게 보여준다고 하겠다. 중년의 위기 속에서도 작가는 항상 자신을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또는 비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은 송연희 수필이 주제화 전략에서 성공하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송연희 수필의 풍경은 앞으로 전개될 분석적 틀에서 잘 드러나겠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고독한 정신의 사유가 호수 위를 스쳐 가는 바람처럼 잔잔하게 그려져 있고, 자외선 같은 섬세한 서정이 물결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문학성을 안겨 주기 위해 내출혈에 가까운 진한 고백을 진솔하게 펼치는가 하면, 내면의 풍경을 그림을 그리듯이 감각적으로 구체화한다. 이렇듯 우리의 전통 미학을 현대적 감각으로 감싸안는 특유의 표현 기법은 독자에게 산뜻하면서도 시원한 정감을 안겨 준다. 그녀의 수필은 진한 문학성을 생명으로 하고 있기에 현대 여성수필의 걸작으로 평가받을 수 있으리라는 점에서 분석적 가치가있다.
그녀의 수필에 나타나는 그림자 형상은 진한 모성애라는 것이다. 작가는 아들을 둔 어머니로서 큰 아들을 처음으로 군에 보내는 경험을 한다. 군에 갔다온 경험이 없는 여자이기에 아들을 군에 보내는 어머니의 심정은 어떻게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수필의 생명은 문장에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수필을 꼽으라면, 평자는 당장 송연희의 <아들의 방>을 들겠다. 이 수필은 작가의 뛰어난 문장술에 힘입어 문학적 향취를 강하게 느끼게 한다. 문장은 정서와 상상과 사상 등의 표현을 총결산한다. 아무리 훌륭한 정서와 상상과 사상도 그 표현이 서투르면 기대했던 바 소기의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송연희는 이미지 연출은 무형적이고 추상적인 것에 어떤 형태를 주어 보이게 한다. 한결 명확하고 참신한 이미지를 안겨주는 것이 이 수필 문장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천둥 번개 치는 밤이 너무 무섭고, 칠흑 같이 어두운 달 없는 밤은 긴장으로 다리가 뻣뻣해진다고 실토하는 아들. 전에는 비가 오면 오는가보다, 천둥이 치면 치는가 보다 싶었다. 그런데 요즘 비라도 거칠게 오는 날은 밤새 뒤척거리느라 잠을 이루지 못한다. 해안 초소의 보초병을 아들로 둔 엄마는 밤마다 하늘을 보며 보초를 선다.
- <아들의 방>에서 -
수필의 문장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문장을 사상의 의미화로 표현하는 것이다. 위 인용된 두 번째 단락의 마무리 문장에서 그녀는 "해안 가 초소의 보초병을 아들을 둔 엄마는 밤마다 하늘을 보며 보초를 선다"고 하였는데, 군대에 아들을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겪는 어머니들의 근심과 걱정을 함축적으로 잘 상상화시키고 있다. "군데군데 멍든 자국처럼 푸릇푸릇한 구름 낀 하늘이 내 마음 만큼이나 우울해 보였다"인데, 여기서도 작가는 불안한 마음에 하늘을 보는데, 푸릇푸릇한 구름을 멍든 자국으로 비유한 부분 역시 혹시나 잘못하여 고참들로부터 맞지나 않았을까 하는 염려가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보름 만에 아이의 방문을 열었다"와 마지막 문장, "웃음소리도 말소리도 방 구석 구석에 배여 벽을 툭 치면 와르르 쏟아질 것만 같았다" 는 부분도 그렇다. 아이는 없지만 그 존재의 흔적을 소롯이 인지하는 엄마의 모정을 이렇게 멋지게 형상화할 수 있을까.
송연희 수필이 거처하는 공간은 자화상이다. 그녀는 수필적 자아의 삶을 꿈꾸고자 한다.수필 쓰기는 곧 자아찾기의 일환이다. 작가가 그려내는 내면 풍경은 자아 성찰을 통한 일상의 행복찾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작가는 때로 흔들리고 방황하는 자아의 세계를 보여주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수필 <바람이 잔다>에는 중년 여인에게 불현듯 닥쳐오는 어두운 그림자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이 수필은 바람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는 여심의 내면 풍경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바람의 모습과 색깔을 다르게 소화해내는 작가의 치밀한 구성력이 돋보인다. 용감하게 자신을 향해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하려는 작가의 자세는 예상치 못한 결과다.
누구에게나 중년은 어떤 갈등 같은 걸 겪는 시기다. 왠지 사는 것이 답답하고 속 시원히 속말을 하고 싶고 이렇게 살아 무엇하지 하는 회의가 가위처럼 눌리는 중년. 알 수 없는 초조감과 불안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바람이 잔물결처럼 수시로 이는가 하면 불순한 욕망은 파도가 되어 가슴을 친다.
- <바람이 잔다>에서 -
<바람이 잔다>는 작품에서 '바람'은 그 이름 값을 톡톡히 한다. 처음에 등장하는 바람'은 자연의 바람이다. '나뭇가지를 흔들던 바람은 잠이 들었는지 고요하다'는 도입 단락의 마지막 문장이 이를 증명한다. 작가는 두 번째 문단에서 특유의 언어 기교를 보여주는데, 이를테면 긴 겨울 밤 뒤란 대숲에선 밤새도록 바람이 부는데, 밖이 잠잠해질 참이면, 어머니가 가만히 '바람이 자는 갑다'라며 속삭이곤 했다는 진술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그 문단의 다음 문장에 담긴 작가의 상상력이다. '그 밤 나는 바람이 잠들만한 곳을 생각했다. 마루 밑일까.광 속일까. 아니면 짚단 속일까. 누가 바람을 잠재우고 깨우는지 궁금했다.'고 작가는 적고 있다. 철학은 회의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내 가슴 안에 작은 독 하나 파묻어 놓았다. 늘 그 곳에다 물을 가득 채우려고 나름대로 열심이다. 독 안에 물이 가득 차 오르면 마음도 덩달아 차 올라 여유로움이 밖으로 넘쳐난다. 그럴 땐 무슨 일에 부딪쳐도 탄력이 붙은 물방아처럼 거침없이 돌아간다. 어쩌다 독 안에 바닥이 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마치 그것이 남의 탓이기나 한 것처럼 작은 일에도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리고속을 내 보이며 샐쭉해지고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해 가슴마저 두근거린다.
- <물 독>에서 -
작은 물 독에 물을 채우려는 작가의 자세는 무엇을 의미할까? 삶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정신적 자유를 구가하고자 함이 아닐까. 송연희는 글을 씀으로써, 또 자기 세계를 견고히 할 수 있는 자신만의 일을 갖음으로써 물 독을 채울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다고 보겠다. 위 인용 예문에서 볼 수 있듯이, 작가는 '늘 그 곳에다 물을 가득 채우려 한다.'고 고백하고 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지나간 자리마다 촉촉한 흔적을 남겨 생명에 활기를 부여하는 속성을 지닌 존재다. 송연희의 수필이 갖는 존재적 가치는 이와 같다. 이는 인간 정신의 내면을 발굴하고 그를 통해 존재에 대한 이해의 폭을 심화시켜 나가려는 노력이다. 이 진지한 단면이 송연희에게는 숫돌에 칼을 가는 일로, 물독에 물을 채우는 일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칼을 갈 듯 나를 어딘가에 쓱쓱 갈고 싶다. 하는 일이 시들해지거나 개운하지 않은 입맛 같은 날이 계속될 때 불쑥 그런 생각이 든다. 부엌칼은 주인의 모습이나 성격을 닮는 걸까. 늘 사용하는 칼들이 하나같이 투박하다. 무엇 하나 제대로 썰 것 같지 않은 뭉툭함은 예리함이란 본분을 깡그리 잊은 듯하다. 가끔 우리 집의 부엌칼을 사용해 본 이들은 무딘 칼을 불편 없이 사용하는 날더러 성질머리가 좋은 건지 미련스러운 건지 모르겠단다. 하다못해 장독 아가리에라도 쓱쓱 문질러 사용하면 될텐데 하는 소릴 듣기도 한다.
- <숫돌>에서 -
수필 <숫돌>은 자기 성찰의 각오와 모습을 '숫돌'에 '칼을 간다'는 말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수작이다. 칼을 가는 일은 일상의 권태를 전지해 내는 일과 같을 것이다. 이 작품의 서두는 '칼을 갈 듯 나를 어딘가에 쓱쓱 갈고 싶다. 하는 일이 시들해지거나 개운하지 않을 입맛 같은 날이 계속될 때 불쑥 그런 생각이 든다.'라고 적고 있다. 서두 첫 문장에는 매너리즘에 빠져 자신이 도태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작가의 강한 의지가 묻어난다. 다음 단락은 왜 칼을 갈아야 하고, 칼을 갈고 싶어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말한다. 부엌칼은 자신을 닮아 하나 같이 칼날이 투박하다는 것이다. 부엌칼을 한 번 사용해 본 사람들이 하는, '성질머리가 좋은 건지 미련스러운 건지 모르겠다'는 말을 소개하며 자신이 하는 일이 예리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서두 부분이 갖추어야 할 전개 예고 기능을 잘 소화해낸 서두다.
그녀의 글이 가지고 있는 특징 중의 하나는 건강함이다. 여성다운 섬세함과 사고의 건강함은 그를 아름다운 여인으로 만들고 있다. <바지랑대>는 작가의 견고한 도덕적 관념, 스스로 흐트러지지 않으려는 견고한 주관을 발견할 수가 있다. 문학의 존재적 가치는 삶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확보하는 일이다. 그 기준을 설정해 의미를 구축하고, 내재된 것에 대한 정신적 토양을 견고히 하는 일이 문학의 사명이다. 이런 차원에서 송연희의 글은 견고한 바탕을 구축하고 있다.
사는 날들이 축축한 빨래를 잔뜩 걸치고 있는 빨래줄처럼 늘어질 때가 있다. 숨이 가쁘고 무릎이 당기고 입에서 훅훅 단내가 나는 그런 날이 있다. 세상살이 참 마음 먹은 대로 안 되는구나 싶은 날, 내가 서 있는 곳이 깊이를 알 수 없는 둠벙 속 같이 느껴질 때 바지랑대를 떠올린다. 축쳐진 빨래줄을 탱탱하게 받쳐주는 바지랑대처럼 내 중심을 턱 하니 고아 줄 사람이 내 옆에 있었으면 싶다.
- <바지랑대>에서 -
위의 글은 자신이 흔들린다 싶을 때, 바지랑대처럼 중심을 잡아 줄 사람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문학적으로 잘 형상화한 글이다. 글은 자기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기 위한 것일 때, 이런 유형의 글은 나름의 역할을 한다. 우리의 삶은 많은 시련을 통해 완성된다. 바위 위에 균열이 생기듯 우리의 삶에도 그런 것들이 만들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송연희는 직장과 가정의 양축을 오가느라 늘 숨이 찼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녀는 자신의 삶을 더욱 견고히 하기 위해, 자기 안에 세워야 될 '바지랑대'를 그리워 한다. 송연희는 자신의 삶을 견고하게 지탱해주는 '바지랑대'가 있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이곳 저곳에서 느끼고 부딪히게 되는 수많은 위기를 물리칠 수가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송연희 수필의 문학적 성과를 짚어 보았다. 한 작가의 내면 풍경을 살피기 위해 평자는 그녀의 글을 자세히 감상하였다. 그녀의 수필이 보여주는 내면 풍경은 한마디로 '흔들리기 - 바로서기'로 압축할 수 있다. '흔들리기 그리고 바로서기'를 틀로 하고 있는 송연희 수필의 특징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송연희 수필은 구체어에 의한 인상적인 묘사가 주종을 이룬다는 것이다. 이는 주로 내적 심리를 표현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즉 송연희의 글은 체험적 사실을 바탕으로 직조되며 섬세한 서정이 내면적 삶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기 때문에 단순히 '읽는' 수필이 아닌 '느끼는' 수필을 지향한다는 것이 특별하다. 송연희가 정서유발을 촉발하는 수단으로 객관적 상관물을 동원하는 것도 다른 작가와 다른 점이다. 송연희는 추상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치환시키기 위해서나 감정을 거칠게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마음이나 감정을 빗대어 표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상을 찾는다. 그것을 내적인 감정을 구체화시키는 데 이바지하도록 만들려 한다는 것이다.
송연희 수필은 서정성을 특징으로 한다. 그 특징들이 여성성과 교류되고 있다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이미지를 창출한다는 것, 그러한 이미지가 특정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상징이나 암시로서의 기능을 한다는 것, 이런 기능으로 인해 심리 변화나 정서적 반응이 감각화되어 표출된다는 것 등의 확인을 통해서 대상의 서정화를 도모한 것은 송연희 수필의 문학성을 더욱 확고히 했다고 볼 수 있다. 송연희는 이러한 서정적 글쓰기를 통해 중년이라는 특정 연령에 달하는 여성의 심리적 갈등을 가을 풍경화처럼 잘 보여주었다고 본다. 서정성의 확보나 여성문제의 접맥은 송연희의 작가적 인식을 견고히 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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