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전쟁이 끝난 후, 또는 불경기를 겪고 난 후 사회가 안정되면 다른 시기에 비해 출생률이 급격하게 증가한다. 이 시기에 태어난 이들을 베이비붐 세대, 즉 베이비부머라 부른다. 미국의 경우 세계2차 대전이 끝난 후인 1946~1964년에 태어난 이들을 베이비부머라 하고, 일본은 1947~1949년에 태어난 이들을 단카이(團塊) 세대라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1955~1963년에 태어난 이들을 베이비붐 세대라 한다. 현 시점에서 한국의 베이비부머 대부분은 50대이다. 이들은 굴곡 많은 한국의 현대사 곳곳에서 변화를 주도했지만, 갑작스런 사회경제적 변화로 인해 비교적 이른 나이에 일터를 떠나야 하면서 ‘사오정’ ‘오륙도’와 같은 신조어 등장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변화의 근간이 된 인구구조
지난 6월 기준 주민등록인구 자료에 따르면, 1955년생(61세)은 70만3863명으로 1954년생(55만4450명)보다 15만 명이나 그 수가 더 많다. 자료에서 1959년생(57세) 현재 인구수가 97만858명, 1960년생(56세)은 90만9924명임에서 베이비부머들은 당시 한해 100만 명에 가깝게 태어났음을 알 수 있다.
베이비부머들은 50대가 되면서 ‘파피붐 세대’라고도 불린다. 파피붐이란 베이비붐과 반대되는 뜻을 지닌 용어로 노인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현상을 뜻한다. 결국 베이비부머들이 나이가 들면서 파피부머로 정의되고 있는 것이다.
파피부머로 불리게 된 베이비부머들은 이른 퇴직 등으로 사회의 뒤편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러나 퇴직과 함께 뒷방 노인으로 물러나거나 사회로부터 격리되었던 앞선 세대와는 달리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살아갈 날들에 대한 삶의 주체가 되고자 하고 있다. 그러기에 ‘실버’ 또는 ‘시니어’라는 용어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한 투자 또한 아끼지 않으며, 그동안 미뤄왔던 꿈을 향해 또는 사회 환원 활동에 열심이다.
이처럼 사회의 중심에서 밀려남에도 여전히 꿈을 꾸는 세대, 세상의 변화에 무관심하지 않으면서 희망을 버리지 않는 세대, 아직도 할 일이 많기에 열정적인 세대. 이들은 ‘50+ 세대’로 분류되고 있으며, 그렇기에 이들에 대해 새로이 조명할 필요가 있다.
변혁기를 헤쳐 온 50+ 세대
50+ 세대로 분류되는 이들이 겪은 사회적 변화는 엄청나다. 가난을 겪으며 자랐지만 성인이 된 후 풍요를 누려보기도 했고, 반공(反共)을 주입식으로 교육 받으며 자랐으나 반미(反美)를 외치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군사독재 체제에서 민주주의로, 또 계획경제 시대에서 시장경제로 이어지는 삶을 둘러싼 급격한 변화의 시대를 온몸으로 겪어낸 이들이 바로 50+ 세대이다.
이들은 학창시절을 콩나물교실에서 보내야 했고, 일부는 입시전쟁을 치렀지만 대다수는 ‘뺑뺑이’로 중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한 달에 두 번씩 새마을 대청소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오후 여섯시가 되면 그곳이 어디든 들려오는 애국가에 발걸음을 멈추고 국기 하강식에 참여해야 했다. 또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 전에도 애국가를 들으며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해야 했고, 대한뉴스 관람도 필수였다.
이처럼 통제된 분위기에서 성장해온 50+ 세대는 개인적으로는 개성보다는 안정과 출세를, 사회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복합적인 면을 보이기도 했다. 이는 성장기에 부모의 바람과 국가의 통제를 따랐던 이들이 1980년대 중반에 맞이한 시대상황에서 비롯되었다. 여기에는 이들이 식민지와 전쟁을 겪지 않았으며, 또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은 세대라는 점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낀 세대이자 세대의 중심에 선 50+
100세 시대를 맞이해 50+ 세대는 이제 겨우 절반을 넘어섰을 뿐이다. 나이로 볼 때 전 연령층의 중간에 위치해 있고, 삶의 변화로 볼 때도 앞선 세대와 뒤따르는 세대를 반씩 섞어놓았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적 경험도 그렇고, 개인적 경험도 그렇다.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이 엇비슷하게 남은 50+ 세대들은 앞 세대의 경험과 분위기를 지켜보면서 공감하고 따랐지만, 뒤따르는 세대에게 똑같이 느끼고 행하기를 바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로 대변되던 학교생활의 변화가 그렇고, 상사가 자리를 지키면 약속이 있어도 퇴근을 하지 못하던 직장생활과 대중교통에서의 자리양보, 연장자 대우 등 일상생활에서의 변화 등 모든 면에서 50+ 세대는 앞 세대와 뒤따르는 세대의 중간에 낀 샌드위치 형국이다.
이는 가족관계에 있어서도 확인된다. 자녀의 양육과 보살핌, 그리고 효도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부모를 모시는 문제 등 스스로는 부모로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하면서, 자식에 대해서는 개별 인격체로 인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스스로도 자식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 50+ 세대이다. 사회적 환경적 변화에 따른 상황이라 하더라도 50+는 분명 낀 세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연령적 사회적 중간자의 위치는 50+를 사회의 중심에 놓이게 한다. 급변하는 격변기를 거치며 성장한 탓에 다양한 경험을 쌓은 것이 오히려 자산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50+ 세대는 앞선 세대에 비해 보다 건강하기에 앞으로 수십 년을 더 활동할 수 있다. 여기에 경제력과 사회 환원이라는 열정까지 겸비하고 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일선에서 물러난 50+에게 가장 큰 고민과 과제는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살아갈 날들에 대한 비전(What)과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방법론(How)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실천으로 새 인생을 준비하는 50+
한편에서는 ‘젊어서는 바빠서 못 놀았으니, 늙어서라도 놀아보세’를 외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대다수의 50+는 새로이 주어진 ‘제2의 인생’을 알차고 보람 있게 살고 싶어서 다양한 준비를 하면서 새로운 삶을 개척한다.
일단 목표와 방법론을 찾으면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실천에 옮긴다. 새로운 경험을 좋아하는 50+는 취미와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커뮤니티 활동 또는 사회봉사와 나눔에 거침없이 뛰어든다. 혹은 그동안 자신에게 인색했던 것에서 벗어나 ‘자신을 위한 교육’에 투자하기도 한다. 지역의 도서관이나 주민센터를 비롯한 각종 기관에 개설된 다방면의 강좌 참여는 물론이고, 가족 부양을 위해 제쳐두었던 꿈을 향해 전문훈련기관이나 대학에 진학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삶에 쫓기던 시절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공부를 시작해 여러 분야의 학위를 취득하는가 하면, 작은 취미로 시작한 것이 건전한 여가활동은 물론 직업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왕왕 있다. 어린시절을 농촌과 어촌, 산촌에서 뛰놀며 지냈던 이들은 귀농귀촌을 통해 성공적인 새로운 삶을 살고 있기도 하다.
지난 봄, 새로이 출범한 서울50플러스재단은 ‘50+ 세대는 경험이 많고, 교육을 잘 받고 전문적인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는 세대’라 규정하고 있다. 재단은 ‘이들의 잠재력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 마련이 우리 사회의 새로운 힘’이 될 것이라면서, ‘50+ 세대가 후반부 인생을 어떻게 사는가 하는 것이 곧 우리 사회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