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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동물 가운데 가장 기괴한 환상의 세계를 만들어 낸 불가사리는, 괴물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을 더하는 요사스런 기운을 가진 불가항력적이고도 수수께끼 같은 동물임은 틀림없다. 불가사리는 쇠를 먹으며, 악몽(惡夢)을 물리치고 사기(邪氣)와 역질(疫疾)을 쫓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희승의 국어사전에 따르면 ‘곰의 몸에 코끼리의 코, 무소의 눈, 바늘 털, 범의 꼬리를 지녔다’고 설명한다. 기이한 외모 때문인지 불가사리는 병풍이나 부적의 형태로 그려져 벽사용으로 사용되었다.
백수도 8폭 병풍 부분, 개인소장
백수도 8폭 병풍 부분, 개인소장
개 그림을 잘 그리기로 유명한 김두량(金斗樑, 1696년 ~1763년)이 그리고, 현해산인(玄海山人)이 글을 쓴 불가사리 작품에는 “크기가 산악 같은 이름도 모르는 짐승이 코끼리 같이 뛰어왔다. 무게가 천만근 같으나, 그 걸음이 매우 빠르다.”고 기록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불가사리를 맥(貘)이라고도 부르며, 비슷한 상상의 동물로는 맹표(猛豹), 맥표(貘豹)가 있다. 중국의 신기한 신화와 전설을 기록한 [산해경(山海經)]에는 황당하리만큼 다양하고 기이한 형상의 동물들이 나타나는데, 불가사리를 “곰과 비슷하나 털은 짧고 광택이 나며 뱀과 동이나 철을 먹는다.”고 설명하며 “사자 머리에 코끼리 코, 소의 꼬리를 가졌으며 흑백으로 얼룩졌다. 동철을 먹는 동물인데 똥으로는 옥석(玉石)도 자를 수 있다. 그 가죽을 깔고 자면 온역(瘟疫)을 피하고 그림으로는 사악한 기운을 물리칠 수 있다.”고 전한다.
[광지(廣志)]에서는 “맥은 당나귀처럼 크고 빛이 창백하며 천근의 쇠를 핥아서 녹인다. 맥의 이빨과 뼈는 단단하여 철로 내리치면 쇠가 부서지고 불로도 태울 수 없는데 오직 영양(羚羊)의 뿔로만 부술 수 있다.” 또 “쇠를 먹는 짐승으로 안(犴), 교토(狡兎)가 있는데 털이 철처럼 검고 쇠를 먹고 물을 마시며 똥으로 만든 무기는 예리하다. 몸은 칠 척(尺)이고 머리에 뿔이 하나 있으며 늙으면 비늘이 생긴다.”고 하였다. 맥을 비롯한 중국의 철을 먹는 상상의 동물은 우리나라의 불가사리와는 철을 먹는다는 점만 같을 뿐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처럼 불가사리의 형태는 정형화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작가의 상상력에 따라 여러 가지 모습으로 묘사된다. 설화 같은 구비문학이나 소설에서도 지방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보이며, 현재 남아있는 불가사리 이야기만 해도 20여 편이 넘는다고 한다.
이렇듯 불가사리에 대한 다양한 설명들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저마다 어려움을 겪었던 모양이다. 아래 그림에는 작가가 불가사리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과정의 어려움이 기록되어 있다. “맥은 가정에서도 기르지 않고, 동방에서도 출현하지 않으며 그 모양새가 반드시 다른 동물을 닮은 데도 없어서 맥을 화폭에 담으려고 앞에서 본다 해도 형체와 색깔을 묘사하기가 어렵다.”고 하였으며, “톱니 같은 이빨과 바늘 같은 털은 어디로부터 났는지 모호하다.”는 내용도 나온다.
불가사리, 개인 소장
이와 같이 괴물의 형상인 불가사리의 생김새가 체계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은 없다. 하지만 설화마다 조금씩 언급되거나 문헌에 기록된 내용과 그림으로 형상화 된 바를 종합하면, 몸은 곰을 닮았고 머리는 코끼리와 비슷한 모습으로 정리된다. 인간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불가사리의 머리를 왜 코끼리처럼 형상화했을까? 인도에서 코끼리는 모든 짐승 가운데 전생(前生)의 일을 알고 있으며 죽음을 예상할 수 있는 슬기로운 동물로 믿고 있다. 이런 이유로 불교에서는 코끼리를 숭상하고 있는데, 아마도 이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불가사리, 개인 소장
예나 지금이나 괴물에 대한 호기심은 대중문화의 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송남잡지(松南雜識)]에는 “어떤 괴물이 있었는데, 쇠붙이를 거의 다 먹어버려 죽이려고 하였으나 죽일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불가살(不可殺)’이라고 이름 하였다. 불에 던져 넣으면 죽지도 않고 온몸이 불덩어리가 되어서 인가(人家)로 날아들어 집들이 또한 다 불에 타버렸다.”는 기록이 나온다. 더욱 자세한 이야기를 살펴보면 이렇다.
고려를 지칭하는 송도(松都) 말년에 기종랑이라는 중이 있었는데, 우연히 점쟁이에게서 ‘아들 백 명을 낳을 상’이라는 점괘를 들었다. 그 후 그는 자식을 얻기 위해 절에 기도를 하러 오는 여인들과 관계를 맺어 99명의 아들을 얻게 되었다. 중은 마지막으로 정승부인을 겁탈하려다 이를 들켜서 쫓기는 몸이 되었는데, 여동생의 집에 찾아가서 숨겨달라고 부탁했으나 여동생은 오히려 오빠를 관아에 고발해 상금을 타려고 하였다. 이 사실을 안 여동생의 남편은 인륜을 저버린 아내를 죽이고 처남인 중을 살려준다. 그 보답으로 중은 매제에게 밥풀을 비벼서 만든 알 수 없는 짐승을 주고 떠난다. 작은 벌레처럼 기어 다니는 이 짐승은 처음엔 집 안에 있는 작은 바늘을 먹기 시작해 젓가락, 숟가락, 가위 같이 집안의 작은 쇠붙이를 먹기 시작하더니 호미, 괭이, 솥 등과 같은 큰 쇠붙이까지 닥치는 대로 먹고 점점 자라서 결국은 온 나라 안에 있는 모든 쇠붙이를 다 먹어 치워 집채보다 더 큰 괴물로 변했다. 그러자 나라에서는 이 짐승을 잡으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했지만 이 짐승은 절대로 죽지 않았다. 그래서 이 짐승을 불가사리(不可殺伊)라 불렀다. 나라에서는 최후의 방법으로 불가사리를 불에 태워 죽이려 했으나, 불가사리는 죽지 않고 온 몸에 불이 붙은 채 온 나라 안을 돌아 다녀 전국이 온통 불바다가 되었다. 나라에서는 불가사리를 없애는 사람에게는 벼슬과 큰 상을 내린다는 방을 붙였다. 그러자 그 남자는 처남인 중에게서 받은 부적을 불가사리의 몸에 붙였고, 불가사리는 그 동안 먹은 쇠를 모두 쏟아내고 사라졌다. 그 후 그는 큰 벼슬을 받고 잘 살게 되었다고 한다. 별주부전과 함께 불가사리 설화 역시 불교를 통해 인도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여지며, 이 이야기에는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종교적 색채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짧은 기록이지만 쇠를 먹는다는 점, 죽일 수 없다는 점, 이 때문에 민가(民家)가 불탄다는 점 등 구전설화에 등장하는 불가사리에 대한 대개의 화소(話素)들이 모두 들어있다. 지금의 ‘가살 불가살(可殺 不可殺)’이라는 말은 이 이야기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책거리 8폭 병풍 부분, 계명대학교박물관 소장
불가사리의 가장 특징적인 점은 혼란한 시기에 세상을 개혁하려고 등장하는 영웅적 속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혼란스러웠던 고려 말기나 조선 초에 등장하여 지배층을 무력화시켰다는 점이 이에 해당하는 것이다.또한 그 전승양상 속에는 철기문화에 대한 부정적 심리, 호불적(護佛的) 존재, 부도덕한 인간의 탐욕을 드러내는 기능 등 교훈적 사고가 내포되어 있으며, 다른 상상의 동물과는 달리 식성(食性)과 성장(成長)과정, 인간의 정(情)이 나타나 있는 독특한 특징을 지닌 상상의 동물이다.
불가사리, 자경전 담장 굴뚝에 새겨진 불가사리 부조
불가사리는 조선시대 후기에 더욱 다양한 의미와 형상으로 변화되어 벽사적 축귀(逐鬼) 부적으로 나타나는데, 대표적인 유물로는 경복궁에서는 경회루 난간 장식과 아미산의 굴뚝 밑 장식용 벽돌이 있다. 경회루에 세워진 불가사리 석상은 불가사리가 불을 잡아먹는다고 믿었기 때문에, 화재를 예방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세운 것이며, 경복궁 아미산의 굴뚝 밑 부분에 새겨진 불가사리는 굴뚝을 통해 사악한 것들이 침입하는 것을 막으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 글
- 윤열수 / 가회민화박물관장
- www.gahoemuseum.org
- 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동대학교 미술사학과를 비롯하여 여러 대학에서 강의활동을 하였고, 현재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에밀레박물관, 서울특별시 박물관협의회 회장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했다. 가회민화박물관 관장, 한국민화학회 회장, 문화재위원 일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민화이야기》(디자인하우스, 1995),《龍, 불멸의 신화》(대원사, 2)《KOREAN ART BOOK 민화 Ⅰ,Ⅱ》(예경, 2000),《꿈꾸는 우리 민화》(보림, 2005) 《신화 속 상상동물 열전》(한국문화재보호재단, 2010) 등이 있다. 현재 월간 문화재(한국문화재보호재단 발행) 고정 필자이다.
- 자료 제공
- 한국문화재보호재단 (http://www.chf.or.kr/)
- 공식블로그
- http://blog.naver.com/fpcp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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