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두사람의 서투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Ordinary : 평범한, 흔한, 보통보다 조금 못한...-
여름이 되었다. 곧 방학을 기다리는 아이들. 기말고사도 끝나서 많이 어수선한 분위기가 계속되는 나날이다. 그래도 어수선하지 않은건 나와 그 아이의 관계. 아마 서로 알고 지낸지 이제 두 달이 조금 안됐을 거다. 처음 만나서 열흘쯤 뒤면 내게서 떨어져 나갈꺼라 생각했던 그 아이는 내 예상을 뒤엎고 여전히 나와 함께 하교를 하거나, 점심을 먹거나, 가끔 과학실에 가거나 한다.
" 방학때 계획 있어? "
" 음... 글쎄. "
" 갈꺼야? 여행. "
" 아. 신청 안했어. "
" 왜?, 아이들하고 같이 한국에 놀러갈 수 있는 기회잖아. "
" 글쎄... 별로 가고싶지 않아서. "
" 아깝다, 갔다오면 이것저것 말해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
" 넌 안가? "
" 응. 가게일 돕고, 또 유스케도 돌봐야지. "
" 아, 동생은 어때? "
" 글쎄... 몰라. "
" .................. "
그 아이의 동생. 아이바 유스케. 4살 터울이라고 했으니까 지금... 중학교 2학년이다. 워낙 몸이 약했는데 최근엔 더 힘들어져서 다니던 학교를 잠시 쉬고 있다고 했다. 얼마전엔 병원에 입원했다가 다시 퇴원했다던데. 어디가 어떻게 얼마나 아픈지는 모르겠다. 어쨌건, 별로 동생에 대해 깊이, 자세히 말하려고 하지 않는 아이다.
" 그만 돌아갈까? "
" 그래. "
각자 도시락 가방을 챙겨 교실로 걸어올라갔다. 그러고보니, 며칠 전부터 기운이 없어보이는 그 아이는 점심을 먹으면서도 말을 별로 하지 않는다. 신경이 쓰인다. 음... 신경.
" 거북, "
" 왜. "
" 정말 안갈꺼야? "
" 뭐... "
" ' 뭐- '가 아니잖아. "
" 안간다니까. "
" 쳇, 마지막 여행인데 추억같은거 만들고 싶지 않아?! "
" 추억... 추억? 글쎄. "
" 둔감한 거북이로군. 됐어. 너 없으면 신경쓰이는 사람 없고 좋지. "
" 신경... "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날 불러세운 요시모토군. 얼마전 짝꿍을 바꾸면서 다시금 짝이 되어버린 요시모토군은 여행에 참가하는 것을 두고 어제부터 쭉- 내게 물어온다. 수업시간에도, 또 쉬는시간에도. 안가겠다는 대답을 해도 끈질기리만치 물어오는 요시모토의 성격이 신기하다. 그러면서도 내게 거슬린 단어 하나. 신경쓰인다...
" 저기, 요시모토군. "
" 뭔데- "
" 신경쓰인다는거. 무슨뜻이야? "
" 무...뭐? "
" 조금전에 신경쓰이는 사람 없고 좋지- 라고 했잖아. 그 뜻이 뭐야? "
" 바보아니야? 그러니까 신경쓰이는 사람이 없으니까. "
" 그 신경의 의미가 뭔데? "
" ... 바보에 느리니까 잃어버리진 않을지. 워낙 눈에 안띄니까 무리에서 빠졌는지 모를 수도 있고. "
" 아... "
" 반장인 나로선 널 챙겨야하니까 제대로 관광할 수 없을거 아냐! "
" 그래? "
" 그래! 아무튼, "
챙겨야한다. 챙기지 않으면 안된다. ' 반장이니까- ' 라고 요시모토군이 말한 의미의 신경인걸까... 내가 그 아이에게서 느끼는 기분. 그치만 난 반장도, 또 그아이의 보호자도, 그렇다고 친구- 라고 하기에도 적절한 사이는 아니다. 그러니까... 잘 모르겠다. 친구란걸 사귀어 본적도 없고,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번호라곤 담임선생님과 가족들뿐이다. 선생님과의 관계에서 친구를 찾는것은 무리이고, 또 딱딱하지 않은 사이이지만 그런 기분보다는 그아이에겐 조금 뭔가 다른 기분이 든다. 그러니까 딱- 신경쓰인다. 는 말이 가장 적절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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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자. "
" 잠깐, 근데 어딜? "
" 어디긴. 따라와 이 거북아. "
" ..................... "
방학식이었다. 일찍이 수업도 없이 방학식만 하고, 집에 돌아가려는데 요시모토군이 나를 불러 청소구역인 5층 실습실로 데리고 갔다. 청소라면 늘상 빼먹을 생각만 하면서. 오늘 같은 날 청소를 하려고 한다니... 아무튼 나보다 더 요상한 애다.
" 잠깐, 빗자루 안가져왔어. 장갑도. "
" 그런건 됐으니까 빨리!! "
다들 집에 가기위해 계단을 내려가는데, 나는 반대로 올라가고 있다. 그것도 아무도 없는 5층으로.
" 거북. "
" 왜, "
" 잘생기고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데다가 반장인 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
" 어떤 의미로? "
" 그냥, 그 인간자체를 두고. "
" 성격은 어떤데? "
" 그럭저럭... "
" 음... 인기가 많겠네- 정도일까나? "
" 하아?! 그게 다야? 그럼, 만약에 그런애가 너한테 고백하면? "
" 음............ 그런 일은 없어. "
" 어째서?! "
" 난 요상하니까, 니가 늘 그러잖아 요상하고 느리고, 바보라고... 그런데, 그런애를? 평범한 인간이? "
" 그럼 넌 인간이 아니란 말이야? "
" 적어도... 평범한 인간하고는 다른 요상한 인간이니까... "
" 그럼 요상한 사람이 고백하면? "
" 그런 일은 없어. "
" 왜, 또?!! "
" 글쎄... 모르겠어. "
" 하아?!! "
답답하다는 듯 큰소리 치는 요시모토의 목소리가 텅빈 5층 복도에 울렸다. 윙윙- 맴도는 소리에 나는 붕붕- 손끝이 날아가려는 기분이 들었다.
" 카오루! "
" 아... "
" 오카야마 카오루, 좋아해! "
" 아? "
" 요상한데 자꾸 신경쓰여서 안돼겠어! 좋다고 이 둔감한 거북아! "
" 잠깐... 틀렸어. 긍정적인 표현을 할때,「 好き 」가 아니라「 いい 」 겠지. "
"「 好き 」맞아. 다이스키- 라고! "
" 미안, 요시모토군. 아마 더워서 상대를 잘못안게 분명해. "
" 아니야! 오카야마 카오루. 카오루가 좋다고! "
" .......................... "
" 사귀어... 줄래? "
사귄다... 친구가 되어달라는 뜻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럼?... 그럼...
" 내 여자친구가 되어줘. 카오루 "
" 있지, 요시모토군. 미안하지만 친구가 되어달라는 의미라면 몰라도, 그게 아닌 다른 의미라면 아직 나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아마 힘들거라고 생각해. "
" 하아?! "
" 여름방학 잘보내. 요시모토 유우지군. 그럼 나중에 보자- "
뚜벅뚜벅- 계단을 내려가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어떤 잘못을 한 것 같지만 그게 무언지는 잘 모르겠다. 걷다가 잠깐 걸음을 멈췄다. 아마 요시모토의 목소리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더운 여름인데 찬 바람이 나를 지나 5층으로 휘감아 올라가는 것 같았다. 요시모토군의 입술사이로 흘러나오는 바람소리가 요란하게 빈 복도를 울렸다. 그 소리에 난 어깨에 맨 가방을 한번 들썩이고 건물을 빠져나왔다. 텅- 빈 학교의 곳곳은 곧 영원히 잠들것 처럼 고요했다. 지하로 가라앉기라도 할 듯 바람 한점 불지 않았다. 그저 매미만 울어댈 뿐. 그러나 그것도 잠시.
" 카~오~루~짱~! "
저멀리 교문앞에서 손을 흔들며 나를 부르는 그 아이. 분명 밝은 모습이었다. 동생이 건강을 되찾은걸까?
" 카오루짱, 한참 기다렸어. "
" 아. 어째서? "
" 같이 집에 가려고. "
" 그래? "
" 응. 근데 뭘하느라 그렇게 늦게 나온거야? "
" 아니... 그냥... 갈래? "
" 그래! "
밝게 웃는 얼마만인지 모를 그 아이의 얼굴에 나는 오히려 더 기뻐졌다. 돌계단을 천천히 내려가며 동생 유스케군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 예상이 맞았다. 유스케군이 몸이 많이 좋아졌다고... 다행이다.
" 파티 하기로 했어. 엄마가 카오루짱도 초대하자고 해서. "
" 헤에... "
" 유스케도 보고싶어 했으니까- "
나는 그렇게 점심식사에 초대받았다. 넓은 정원을 감싸고 있는 올록볼록한 돌담이 참 아늑하고 파래서 꼭 바닥에 깔린 잔디. 그보다 더 촉촉한 흙이 된 기분이었다. 금새 난 요시모토에 대한 그 어떤 기분을 잊고 말았다.
" 어서오렴, 카오루짱. "
" 네, 안녕하세요. "
" 며칠동안 더 예뻐졌네~ "
" 아... 감사합니다. "
" 아직 좀 준비가 덜 됐으니까 가서 유스케 좀 보고오렴, 궁금해했단다. "
" 네... "
아주머니와 간단한 인사말을 나누고, 거실의 아저씨께 인사드리고, 난 그 아이와 2층으로 올라갔다. 약간 삐걱이는 소리가 나는 반질반질한 나무계단을 올라 작은 거실이 있는 2층에서 나를 왼쪽 문으로 안내하는 그 아이를 따라 노크를 하고 살며시 들어갔다.
" 유스케, 카오루 왔어. "
" ... 아. 안녕하세요. "
힘이 없는 얼굴인데다가, 어디가 얼마나 좋아진지 나는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동그란 눈과 갸름한 턱이 그 아이와 무척 닮은 동생 유스케군은 그 아이만큼이나 편안하고 밝은 미소로 나를 맞아 주었다.
" 안녕... 유스케 "
" 형이 늘 누나이야기를 해요. "
" ...그래? "
" 응. 그치만 조금 더 작고 아이같은 얼굴일 줄 알았는데... "
" 의외로 키가 크거든. "
" 헤헤... "
" 몸은 많이... 좋아진거지? "
" 어제부터는 호흡기 없이 숨 쉴수 있게되었어요. "
" ...정말? "
그 동그란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는 유스케의 얼굴에 천사의 미소가 보였다. 의지도, 또 희망도 함께 내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얼른 나아서, 함꼐 토노시타에 가자. "
" 네. "
" 조용하고 좋은 곳이야... 가면 유스케가 텔레파셔인지도 알 수 있게 될꺼야. "
" 큭큭... 형이 말해준거죠? "
" 응, "
" 텔레파시... 있어요. 나도. "
" 정말?! "
엉뚱한 곳에서 텐션이 오른 나는 꽤나 오랜시간, 유스케와 이야기를 나눴다. 아마 그날 잠시동안 나눈 대화는 2달동안 그 아이와 했던 대화보다 더 많았으리라고 생각한다. 조금 늦은 점심을 먹고, 유스케의 건강을 기원하고, 아주머니와 아저씨께 인사를 하고, 나는 그 아이와 집을 나섰다. 오후 2시 반쯤. 햇볕은 참으로 쨍쨍하게 머리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대문 앞에 와서 나를 배웅해주는 그 아이.
" 유스케가 널 무지 좋아하는 것 같아. "
" 좋아한다... "
" 응. 아, 데려다 줄까? "
" 아니... 괜찮아. 그보다... 뭔가 물어보고 싶은게 있는데... "
내 말에 대문 밖으로 나온 아이는 문을 닫고 내 앞에 가까이 섰다. 우물쭈물 하는 나를 알아채고, ' 천천히 걸을래? ' 라고 물어주는 아이 덕분에 나는 휴으- 하고 한숨을 돌렸다. 천천히 걷는 내내 그 아이는 뭔데?- 같은 물음같은건 하지 않았다. 걷고 걸어 우리집을 지나치고, 또 한참을 걸어 역앞에 도착했을때, 나는 멈춰서서 심호흡을 했다.
" 무슨 일인데? "
" 그게... "
" 좀 더 걸을래? "
" ... 응... "
더운 그 땡볕에서 나를 따라 걸어주는 아이는 이미 흠뻑 땀에 젖어 있었다. 나는 두리번두리번 마땅히 들어갈 만한 곳을 찾았다. 그치만 그런곳을 찾긴 힘들었다. 걷던 도중에 자판기에서 음료수 하나를 뽑아 그 아이에게 건네고 나는 자판기 옆 나무 아래에 생긴 그늘을 찾아 숨어들어갔다. 조금 떨어진 곳의 벤치에 앉은 그아이가 딸깍- 음료수캔을 따서 마시는 소리가 들린다. 청량한 그 소리가 매미 울음소리와 겹쳐 내 이마에 맺혔던 땀방울을 날려주었다.
"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카오루짱. "
" 있었어... 음... "
" 왜? 유스케가 혹시 말실수라도 했어? "
" 아니. 전혀. "
" 그럼? "
" 고백... 받았어. "
" 유스케한테?! "
" 아니. 같은반 친구한테... "
" 혹시 요시...무슨 그 아이? "
" 응. "
" 늘 괴롭히는 아이였잖아. "
" 응. "
" ..................... "
" 내가 신경쓰인대, 그래서 좋아졌대... 근데 좋아진다는 말의 의미를 난 모르겠어. "
" 그래? "
" 신경쓰이는건 손톱의 양쪽 옆이 일어났을때나 하는 말인줄 알았는데 그게 어떻게 좋아진다는 말이랑 같아질 수 있는지 그걸 모르겠어. 손톱의 양쪽 옆이 까실까실 올라오면 무척 따갑고, 신경쓰이잖아... 아마 그런건줄 알았는데... "
고개를 끄덕이던 그 아이는 별말 없이 이마의 땀을 훔쳤다. 그리곤 캔에 담긴 음료수를 마셨다. 어떤 말을 해줄까...
" 넌 어땠는데? "
" 이해못했어. "
" 어떤 의미야? "
" 신경쓰인다와 좋아한다의 관계랑, 좋아한다의 의미를 아직 이해 못했어. "
" 그래서? "
" 미안하다고 했어... 잘 모르겠다고. "
" 그럼 찬거야? 그 요시... "
" 그건 모르겠지만. 울고 있었어 요시모토군... 잘못한거지? "
" 큭큭. 너답다고 해야해? "
그 아이는 살며시 지은 웃음을 꽤나 오랫동안 머금고 있었다.
" 사실,... 나도 잘 몰라. 그런거. "
" ................... "
" 물어볼래? 오노 선생님께. "
" 정말? "
" 응. 나도 물어보고 싶었거든. 뭐... 그 요상한 선생님이 어떤 말을 해주실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물어볼래? "
" 언제? 지금은 안계실텐데? "
" 언제든... 것보다. 난 너무 더운데. "
" 아. 미안... 이쪽으로 와, 여긴 시원해. "
나무그늘 아래 들어 온 그 아이를 올려다 보며 나는 조금의 동질감을 느꼈다. 함께 모르고, 함께 알고. 어떤 것을 공유한다는 그런 기분이 들어서 나는 뭔지 몰랐던 마음속의 작은 돌멩이를 내려 놓을 수 있게 되었다. 바닷가를 등진 나무의 아래. 바다내음을 담아 불어오는 바람에 섞인 그 아이의 땀내음마저 친숙하게 느껴져 나는 푸시시- 실없이 웃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보고 따라웃는 그 아이의 얼굴엔 동그란 순수함이 매돌았다.
첫댓글 과연 요상한 오짱 선생님이 우리 밥이와 카오루에게 어떤 명쾌한 답을 주실지 기대되네요^^ 오늘도 마요님글 잘 읽고 갑니다~
카오루짱 정말 쿨하게 요시를 거절하는군요...ㅎㅎㅎ 요상한 오노선생님 어떤 답을 주실런징...ㅎㅎㅎ
음...역시 카오루는 어려운 아이네요.. 맘에 신경쓰이는 마사키가 있었기 때문이겠죠?? 오노 선생님이 그걸 알려주실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