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전령사, 하동 쌍계사
전라남도와 경상남도의 경계가 되는 섬진강 물줄기는 지리산 계곡에서 흘러나오는 수많은 물이 합쳐져 엄청난 크기의 강이 된다. 섬진강은 옛부터 우리 조상들의 삶의 터전이 된 곳으로 구례읍과 하동읍 한가운데를 관통한다. 물은 인간 생명에 없어서는 안 될 자원이기에 섬진강을 따라 수많은 마을이 형성되었고 구례와 하동이라는 큰 고을이 생기는 건 필연적인 일이었다. 높은 산들이 경계인 곳과는 달리 강은 상대적으로 통과하기가 쉬워 전라도와 경상도 사람들은 섬진강을 통해 쉽게 교류할 수 있었다. 하동의 화개장터는 옛부터 서로 다른 두 문화가 융화되는 삶의 터전이었다.
남해에서 출발해 섬진강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면 화개장터가 나오는데, 화개장터에서 황장산 능선을 오른쪽으로 따라 걸으면 어느새 구례로 들어오게 된다. 도의 경계라고 보기엔 너무나 불명확하지만 황장산의 능선이 끝나는 시점에서는 섬진강이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가 된다. 화개장터에서 곧장 지리산으로 향하면 쌍계사가 나오며,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가다 지리산으로 가면 화엄사가 나온다. 화엄사와 쌍계사는 지리산의 대표적인 두 사찰이지만, 각각 전라도와 경상도에 속해 있어 마치 누가 더 아름다운 절인지 경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지리산 쌍계사
황장산 능선을 사이에 둔 지리산의 두 탐방로 또한 똑같은 지리산 국립공원이지만 서로 다른 매력을 뽐내고 있다. 피아골 계곡은 가을철 지리산의 단풍을 보기 위한 최적의 장소이며, 쌍계사 계곡은 녹차밭과 어우러진 벚꽃이 장관인 봄에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준다. 비록 피아골의 단풍은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쌍계사의 봄은 제대로 감상할 거라는 다짐하에 벚꽃이 절정인 시기에 하동으로 여행을 떠났다.
국립공원 이야기 11 - 수난을 겪은 지리산 노고단
사람의 접근이 용이하면 자연의 훼손은 시간 문제일 수밖에 없다. 이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음에도 덕유산 국립공원은 군사독재 시절 결정된 무주리조트 건설으로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케이블카 건설이 자연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목소리 또한 낭설에 불과하다. 케이블카가 지어진 설악산 권금성과 내장산의 봉우리를 보면 자연 훼손이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다. 개개인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은 적을지 몰라도 한국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합쳐진다면 막심한 피해를 입기 마련이다.
1930년대 선교사 휴양지가 지어졌던 노고단 부근 (출처: 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 노고단은 수많은 사람들로 인해 눈뜨고 볼 수 없을만큼 훼손되었다 (출처: 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 노고단은 인간들이 생태계를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지리산 봉우리 중 가장 많은 고초를 겪은 곳은 노고단이다. 노고단에서 1km 정도만 가면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861번 국도 위 성삼재가 나온다. 차도가 가까워 접근이 용이해 지리산 노고단은 현재도 수많은 방문객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리산 국립공원은 노고단 탐방객 수를 제한해 노고단의 식생을 복원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군부대의 건설과 사람들의 발길로 인해 노고단 부근은 돌과 흙밖에 남아있지 않은 허허벌판이 되었다
하지만 노고단의 현재 상황은 과거에 비하면 훨씬 나아진 모습이다. 일제강점기부터 노고단은 인간으로부터 온갖 고초를 겪어왔다. 노고단의 아름다운 풍경은 오히려 노고단을 해치는 요인이 되어 온 것이다. 노고단에 쉽게 오르기 위해 차도가 건설되고 외국인 선교사들은 아름다운 풍경을 벗삼기 위해 노고단 주변에 휴양지를 건설하였다. 한국전쟁 때는 방화와 폭격으로 피해를 입었으며 초소와 방공호가 건설되고 1974년부터 정식으로 군부대가 주둔하기도 했다. 군부대 야영지와 훈련장으로 사용되며 훼손된 노고단은 일반인들의 야영장으로도 쓰여 돌과 흙밖에 없는 허허벌판이 되어버렸다. 수천년동안 자연의 터전이었던 노고단이 인간의 발길이 닿은 수십년동안 원래 모습을 되찾기 힘들 정도로 훼손되어 버렸다.
국립공원 관리공단의 노력으로 복원된 노고단의 모습
다행히 군부대가 철수되고 1995년에 정상부 시설이, 2007년에 하단부 시설이 철거되고 자동차가 다니던 길은 사람만 출입할 수 있는 탐방로로 탈바꿈하였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의 노력 하에 여러차례 보완과 보수공사가 이루어졌으며, 현재 노고단은 ‘하늘 위 꽃밭’으로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명불허전, 천년고찰 쌍계사와 하동십리벚꽃길
봄 벚꽃과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대부분의 국립공원이 그렇듯이 주말에는 사람이 미어터져 발 디딜 틈조차 찾기 힘들다. 가을 단풍이 절정일 때 내장산이나 가야산의 해인사에 가면 차로 꽉 막혀 단풍 구경조차 하지 못하고 발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 쌍계사 또한 마찬가지다. 쌍계사에서 섬진강까지 벚꽃으로 가득한 하동십리벚꽃길은 봄에 벚꽃 구경을 하려는 상춘객들로 가득차 조금이라도 늦으면 쌍계사 문턱에 가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내가 쌍계사로 간 날은 날씨가 흐려 허드러지게 핀 벚꽃이 생각보다 아름답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침 일찍부터 쌍계사로 향하는 길은 수많은 차량들로 가득차 있었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나 또한 쌍계사 천왕문조차 보지 못할 뻔했다.
조금씩 내리는 비 속에서 쌍계사로 향했다. 남도에 있는 쌍계사답게 벚꽃과 함께 핀 동백꽃이 바닥을 수놓았다. 쌍계사는 국보 1점과 보물 9점을 보유한 아름다운 절이다. 수많은 화마의 피해 속에서도 쌍계사는 계속해서 복원되었고,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1632년 (인조 10년)에 복구된 것들이다.
국보 제47호인 진감선사탑비 (眞鑑禪師塔碑)
쌍계사가 자랑하는 가장 아름답고 중요한 문화재는 국보 제47호인 진감선사탑비 (眞鑑禪師塔碑)다. 진감선사 혜소 (774~850)는 신라 하대 선종에 큰 영향을 끼친 대승으로, 그가 사망한 뒤 36년이 지난 888년 (신라 정강왕 2년)에 그를 기리기 위해 탑비가 건립되었다. 탑비에는 "도는 사람과 멀리 있지 않고, 사람은 나라에 따라 다르지 않다.(道不遠人, 人無異國)”라는 진감선사의 가르침이 새겨져 있다. 비문의 문장과 글은 신라시대 대문장가였던 최치원이 왕명을 받아 해서체로 작성되었다. 초반부에는 유교・불교・도교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가 다르지 않음을 적었고, 중반부에 진감선사의 생애와 업적을 적었으며, 후반부에는 쌍계사의 명칭 유래, 범패의 전래와 유포, 탑비의 건립 과정 등이 기록되어 있다. 천년이 넘는 세월을 견딘 탑비이다 보니 일부가 훼손되어 있는 상태지만, 1725년 (영조 1년)에 만든 목판에 비문의 내용을 옮겨 적어 탑비의 내용을 온전히 알 수 있었다.
보물 제1378호로 지정된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
보물 제500호 쌍계사 대웅전
보물 제500호인 쌍계사 대웅전은 1632년 쌍계사가 복원될 때 벽암대사가 고쳐 지은 것이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으로 팔작지붕을 가진 다포 양식의 목조 건물이다. 기둥의 우아한 곡선은 조선시대 발전한 건축 기술을 잘 드러내고 있다. 대웅전 내부로 들어가면 보물 제1378호로 지정된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을 만날 수 있다. 아미타불・석가보니불・약사불로 구성된 삼세불좌상 사이에 일광・월광・관음・세지보살로 추정되는 사보살입상이 있다. 중앙에 모셔진 석가모니불은 본존불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으며 가장 크고 건장한 신체를 가지고 있다. 본존불 오른쪽은 약사불, 왼쪽은 아미타불이 앉아있으며, 약사불과 아미타불 좌우를 지키고 서 있는 사보살입상은 조각수법이 매우 자연스럽고 사실적이어서 작품성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조선 17세기 전반 경에 제작된 불상으로 추정되며 다른 절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배치라 그 신비함을 더한다.
보물 제380호인 쌍계사 승탑 또한 연곡사의 승탑처럼 미적 가치가 높지만 시간 제약으로 인해 둘러보지는 못 했다. 나머지 보물들은 탱화 5점과 동종 1점으로 쌍계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지만, 당시 박물관의 문이 굳게 닫혀있어 승탑과 마찬가지로 감상할 수 없었다. 피아골 단풍을 보러 왔을 때는 연곡사가 아쉬운 내 마음을 달래줬지만, 쌍계사에서는 반대로 보지 못한 문화유산이 많아 사찰에서 나와 벚꽃길을 향해 걸어갈 때 착잡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쌍계사에서 섬진강으로 향하는 하동십리벚꽃길은 완만한 내리막길이라 걷기 편하다. 차 (茶)로 유명한 하동답게 쌍계사 계곡을 옆으로 녹차밭이 가득하다. 하동십리벚꽃길을 따라 걸으면 녹차밭 위로 핀 벚꽃을 감상할 수 있다. 녹차밭과 어우러진 벚꽃은 전국의 유명한 벚꽃 명소도 쉽게 보여줄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벚꽃터널을 이룬 길은 지방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벚꽃잎이 휘날리는 녹차밭은 하동을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다.
쌍계사에서 섬진강 바로 옆의 화개장터까지 거리는 5km 정도로 빨리 걸으면 1시간 정도 걸린다. 하지만 봄철에 핀 벚꽃을 옆에 두고 걸으면 발걸음을 수시로 멈출 수밖에 없다. 푸르른 녹차밭 위에 내리는 벚꽃비는 화(花)려하며 황홀할 수밖에 없는 풍경이다. 지리산이 마치 사람인 것처럼 계절이 바뀔 때다마 옷을 갈아입으며 색다른 아름다움을 뽐낸다.
화개장터에서 하동읍으로 향하는 길은 편도 1차선의 좁은 도로이며 십리벚꽃길과 마찬가지로 벚꽃터널로 이루어져있다. 화개장터에 주차한 뒤 쌍계사에 올랐다가 천천히 걸으며 벚꽃을 감상하고 드라이브하며 벚꽃터널을 통과하는 것이 봄철 하동여행의 진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돈의 유혹을 참지 못해 대한민국의 아름다운길로도 선정된 하동포구 팔십리길이 넓혀지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지리산의 아름다움은 계절마다 바뀌며 지리산의 모든 모습을 담아내려면 평생을 허비해도 모자를 것이다. 아쉽게도 지리산의 절들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에 포함되지 못했지만 누구도 그 가치를 폄하하지는 않는다. 화엄사・쌍계사・연곡사・실상사 등은 지리산과 더불어 살아간 우리 선조들의 흔적이며, 어머니와 같은 지리산의 넉넉함을 상징하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지리산에 세 번이나 갔지만 아직도 지리산의 아름다움을 온전하게 설명할 수 없다. 다른 국립공원과 달리 지리산은 수십번 가야 그 매력을 알 수 있는 곳이며, 나 또한 기회가 되면 다시 한 번 지리산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