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가고픈곳이었건만
멀다는 이유 하나로 차일 피일 미루다가 드뎌!~ 결심합니다.
8월 31일
아무 생각없이 출근했다가
문득 생각이 나기에 Y모여인에게 떠나게 짐챙겨 놓으라고 폰하고
퇴근 후 곧장 집으로 와서 번개불에 콩볶아 먹듯이 짐 싣고 길을 나섭니다.(16:20i)
길이 넘 복잡하게 뚫려서 헷갈리니 오직 믿는것은 내비게이션뿐,
김양(내비게이션)이 시키는대로 기아IC를 진입해서 달립니다.
남군포T/G에서 정산(\1,900)하고 나와(16:57i)
중부내륙고속국도(45번)를 따라 달리다가 경부고속국도(1번)로 갈아타고
가다가 삼랑진T/G에서 요금 정산(\21,700)하고 나옵니다.(20:25i)
삼랑진읍내에서 저녁을 해결하려고 이곳 저곳을 기웃거려보지만
지방에서의 20시30분이라는 시간은 문닫을 시간이니...
우리 이대로 굶는건가?
다행이 '삼랑진숯불갈비'에서
차돌된장찌개백반(6처넌)으로 저녁을 해결합니다.(20:32i~20:00i)
다시 길을 재촉해서 만어산 주차장에 도착합니다.(21:30i)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를 접했으니 텐트는 생략하고
사찰 주차장에서 간단하게 한잔(?)하고 불편하지만 차박을 합니다.
9월 1일
새벽 5시에 잠을 깨긴 했는데 비가 내리니 움직일수도 없고...
한참 지나니 다행이도 비가 잠잠 해지는 틈을 이용해 복장 갖추고 움직입니다.
산행 시작합니다.(06:05i)
좌측이 만어산 정상으로 가는길이고, 우측길이 만어사와 주차장 가는 길
만어산 정상을 향해 걸어갑니다.
이곳이 이동식 화장실도 있고 주차도 가능하기에 야영을 생각했던 곳입니다.(06:37i)
정상 옆의 통신기지(?)
Y모여인이 찍은 사진입니다.
위 사진의 바위 위에서 찍은 주변 풍경
작은 소나무의 강인한 생명력에 박수를...
오신채중의 하나인 무릇
통신기지에서 몇걸음 걸으면 만어산정상(670.4m)입니다.(06:51i)
정상주변의 풍경
이제 내려가야지여~(07:20i)
20여분 걸었을까? 싶은데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버섯같지 않고 빵같아서 담아봅니다.ㅎ
'사단법인 대한불고 선교종 개창주'라는 비석이... 선교종은 첨보는데 나만 그런가?
만어사에 원점회귀하여 암괴류를 배경으로
멀리 보이는것이 미륵전
종각
만어사를 올라와 왼쪽을 담은 사진
이번엔 오른쪽을
만어사 삼층석탑)萬魚寺 三層石塔)
고려 시대에 만어사와 함께 세워졌다고 전하는 삼층석탑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만어사는 1181년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삼층석탑 뒤편의 넓은 터가 원래의 법당 자리인 것으로 확인.조사되어,
탑은 만어사가 세워질 당시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으며, 현재의 법당은 위치를 옮긴것이다.
기단부는 고려 시대의 석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층 기단으로,
기단이나 몸돌은 비교적 완전하나, 상륜부(相輪部)는 없어졌다.
후대에 별개의 석재를 다듬어 보주(寶珠)를 얹어 상륜부를 대신하고 있다.
신라 시대 석탑에 비해 조형미는 다소 떨어지는 감은 있으나,
전체적으로 균형과 안정적인 비례를 보여 주는 우수한 작품이다.
-상륜부(相輪部): 쇠붙이로 된, 원기둥 모양의 장식이 있는 불탑의 꼭대기부분.
-보주(寶珠):탑이나 석등 따위의 맨 꼭대기에 얹은 구슬 모양의 장식.
라고 써있네여.
대웅전
상성각
미륵전
현재 이 미륵전 안에 있는 5m 정도의 뾰족한 자연석이
바로 용왕의 아들이 변해서 된 미륵바위라고 전해오는데,
이 바위에 기원하면 아들을 얻을 수 있다 하여,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미륵전 아래에 첩첩이 깔려 있는 돌 너덜의 어산불영은
고기들이 변해서 된 것이라 하여 만어석(萬魚石)이라 부르며,
두드리면 종처럼 맑은 쇳소리가 나기 때문에 종석(鐘石)이라고도 부른답니다.
미륵전을 끝으로 만어산을 떠나 얼음골을 찾아 이동합니다.(09:30i)
가는중 삼랑진읍에서
콩나물국밥으로 늦은 아침을 해결(10:30i~11:00i)하고 나오는데
차 왼쪽 전조등 아래에 이넘이 붙어있기에 담아봤습니다.
얼음골을 향해 길을 재촉하는데
표충사 이정표가 눈에 들어오기에 본능적으로 표충사 방향으로 핸들을 돌립니다.
표충사 입구에서 티켓을 구입하고 들어갑니다(11:40i)
표충사(表忠寺)
지금으로부터 약 1320여 년 전 (서기654년)
신라 진덕여왕8년 원효대사께서 창건하시어 사찰이름을 죽림사라 하였다.
그 후 서기 826년 인도스님 황면선사께서
석가여래진신사리를 지니시고 동방으로 수려한 강산을 찾으시던중
이곳 신록의 오색서운을 보시고 삼층석탑을 세워 석가여래진신사리를 봉안하였다.
당시 신라흥덕왕 셋째왕자께서 나병으로 고생하시며
영산약수를 두루 찾아서 다니시다가 이곳 재약산 죽림사에 거유하시게 되었다.
이 때에 황면선사의 법력으로 영정약수를 복음하시어 왕자께서 곧 병이 완쾌되었다.
이 때에 또한 고려충렬왕 12년 삼국유사저자이신 일연국사(一然國師)께서
천여명의 대중 재기하여 불법을 중흥하시니 국왕으로부터 동방 제일사찰로 승격되었으며,
서산, 사명, 기허 삼대선사님의 충령을 표위하시고자 현종임금께서(기유년)표충사라는 휘호를 하사하시므로 표중사라 하였다.
라고 써있습니다.
영사각
걸어가는데 왠지 정리가 안된듯한 어수선한 느낌은 나만의 생각일까?
경내로 들어가는데 공사중...표충사 현판이 어렴풋이 보이긴 함니다.
원래 표충사의 정문인 수충루(酬忠樓)라고
우측옆에 조그맣게 보이는데 나무에 가려져서 樓자만 보입니다.
들어서자마자 좌측부터 담아봅니다.
경내로 들어서며 이번엔 우측을 담아봅니다.
사천왕문 역시 보수 공사중이네여.
밀양 표충사 3층석탑
이 탑은 통일 신라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높이 7.7m의 3층 석탑이다.
1995년의 해체.보수 때에 나온 많은 유물은 탑과 표충사의 역사를 밝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석탑은 기본적으로 신라 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기단이 단층이고, 지붕돌의 주름도 한 개가 줄어든 네 개라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상륜부에는 여러 장식과 함께, 아직도 찰주가 높이 솟아 있고, 지붕 모서리에는 작은 풍탁을 달 수 있는 구멍이 뚫려 있다.
지붕돌에는 근년의 것이긴 하지만, 2개의 풍탁이 달려 있다.
기단과 지붕돌에서 보이는 특징으로 보아 통일 신라의 늦은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생각된다.
균형 잇는 전체적 비례와 우아한 모습은 같은 시기의 석탑 중에서도 뛰어나다.
라고 써있네여.
좌측을 담아봅니다.
산영각과 독성전이 한지붕아래에 있네여.
이번엔 우측을 담아봅니다.
범종루
우화루
맨 위로 올라가서 담은 사진입니다.
관음전
수박 겉핥기로 대충 둘러보고 나오는데 베짱이가 눈에 들어옵니다.
표충사를 나와 얼음골을 향해 이동합니다.12:58i)
얼음골입구에 도착해서 주차하고 올라갑니다.(13:30i)
(이곳도 입장료를 받네여1人=\1,000)
올라가다가 계곡의 작은 물줄기들을 담아봅니다.
천황사의 대광명전
산신각
밀양 천황사 석불 비로자나불좌상(密陽 天皇寺 石佛毘盧舍那佛 坐像)
이 불상은 천황산 얼음골의 천황사 경내에 모셔져 있는 통일 신라시대의 석불 좌상이다.
머리 부분은 새로 만들었으나 몸의 비례가 인체와 아주 비슷한 편이다.
부드러운 어깨에 당당한 가슴, 날씬한 허리에 얇은 법의(法衣)는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불상의 우아하고 사실적인 표현은 8세기 중엽의 것과 비슷하지만, 얇은 주름의 세련된 표현은 8세기 후반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대좌는 위에 연주문을 두르고 아래에 2겹의 연꽃무늬를 새긴 상대(上臺),
21줄 띠를 새긴 원형 받침이 있는 중대(中臺),
복판 연화 무늬위에 11마리의 사자를 새겨 돌린 하대(下臺)의 세 부분으로 되었다.
사자를 새긴 하대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것으로 정면에는 향로를 끼웠던 것으로 보이는 구멍받침이 있다.
이 불상은 8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가장 우수한 석불의 하나로, 사자좌(獅子座)의 대좌를 갖춘 유일한 예이다.
신라 조각의 역사에서 반드시 다루어져야 할 귀중한 불상이다.
라고 써있네여.
(밀양 남명리 얼음골(密陽 南明里 얼음골)
밀양 얼음골은 밀양시 산내면 남명리에 있는
재약산 북쪽 중턱의 해발600~750m에 이르는 약 9,000평 넓이의 계곡이다.
이 곳은 3월 중순부터 바위 틈새에서 얼음이 얼기 시작하여 더위가 심해질수록 냉기가 더 많아지는데,
삼복 시기가 되면 그 절정에 이르게 되고, 반대로 한 겨울에는 얼음이 녹아 물에 더운 김이 오른다.
이 계곡 때문에 "밀양의 신비"라고 불리고 있다.
라고 써있네여.
위의 원을 크게 찍어봤는데 얼음은....?
호기심에 얼음골을 힘들게 600m나 올라가서 구경을 했는데...
왠지 허전하고 또 단돈 천원이지만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지 나만의 생각일까?
얼음골을 나와 식당을 찾아 이동하는데
Y모 여인이 이곳까지 왔는데 언양의 갈비구락부에 들르지 않으면 모독이란 발언을 하기에 찾아 이동합니다.(14:27i)
언양의 갈비구락부에 들어갔는데
아무리 오후3시가 넘은 시간이라지만 손님이 한팀도 없다는게 좀 찝찝...
한식대첩4와 서민갑부에 출년했고 또 강호동 사진을 크게 붙어 있기에 혹시 했건만 먼길 괜히 왔다 싶네여.
우리님들은 가지마세여!
암튼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순창 회문산자연휴양림을 찾아 무려 275km를 이동합니다.(15:35i)
힘들게 고속국도를 타고
회문산청소년수련장을 찾아갔건만 여름 영업 끝났다고 야영객을 안받는답니다.
순창T/G를 나와 회문산청소년수련장으로 오다가 본
구림면 지천유원지로 옮겼는데 아무도 없으니 정자에 텐트를 칩니다.
닭볶음에 곡차 한잔 해야지여!~
9월 2일
공기가 맑아서인지 아님 나이탓인지..?
암튼 일찍 눈이 떠지기에 조식 해결부터 하고
주변을 담아봅니다.
느티나무(9-12-5)
소재지:전북 순창군 구림면 금천리 치천마을
수량: 약 610년
이 나무는 전국에 자생(自生)하며,
크게 자라는 나무로서 우리나라와 아시아 지방에 분포하고 있는 장수목(長壽木)입니다.
고려말엽 치천마을이 생기고 나서
항상 물이 넘쳐 마을을 침범하므로 나무를 심고 제사를 지내므로서 재앙을 막았다고 하며,
또한 당산나무의 기가 강해서 여름이 되어도 나무주변에는 뱀이나 개미가 전혀 접근하지 않는다는 전설이 있답니다.
(2015.11)
주변정리하고 호정소를 찾아 이동합니다.(07:20i)
호정소라는 곳이 잘못들었는진 몰라도 공룡알 화석지..?
암튼 궁금해서 찾아갔건만 호정소가든앞에서 내비게이션종료를...흐미 당황스러버라~
가든도 휴가철이 지나서인지 사람이 보이지 않으니 물어볼사람이 없고..
길가에 핀 꽃이 상사화인줄 알았는데 "백양화"입니다.
물가를 산책하다가 담은 사진인데 흔들렸네여.
이번엔 20km 거리에 있는 요강바위를 찾아갑니다.(08:35i)
예전에 뉴스를 통해 요강바위를 도난을 당했다던 뉴스를 접했던 기억이 있기에
얼마나 멋지게 생겼으면 훔쳐갔을까? 싶었는데,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김양(내비게이션)의 멘트에 차에서 내립니다.(09:10i)
원 안에 있는게 요강바위 입니다.
이넘이 그넘?
뭐~ 그리 잘났지도 않았구먼 이걸 훔쳐가고 지롤이여!~
근데 왜이리 허전한겨~
먼길왔건만...
아쉬움만 남는 순창의 요강바위를 뒤로하고
260km 거리에 있는 삶의 터전을 향해 올라갑니다. 꾸뻑!~~ *^^*
첫댓글 산에가서 기더열심히하세요 잘보고갑니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