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 편, 불교성전읽기 유튜브 방송] 김태정의 시 <하행선>
하행선
김태정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
춥고 배고픈 밤일수록 열차는 더디 오고
더러는 바람 부는 길모퉁이
생업의 풀뿌리로 떨고 있거나
더러는 눈도 비도 되지 못한
이 겨울의 진눈깨비로 날릴지라도
약속된 불빛을 기다리며
묵묵히 철로 위의 침묵을 견디어낼 때
잃어버린 집결지를 찾아들듯
녹슨 포복으로 열차는 오고
그 나지막한 흔들림과 흔들림 사이
삶은 또한 서둘러 슬픔의
마지막 한방울까지 지우라 하네
기다림의 끝은 무엇이어야 하나
열차에 발을 올려놓으며
잊지 않았다는 듯 뒤돌아보는
(김태정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창비, 2004)
[감상]
첫 번째 화두 :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
시인은 열차를 기다리면서 ‘우리가 진정으로 기다리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봅니다. 일차적으로는 나를 행선지로 데려다주는 열차이지만, 궁극적으로 기다리는 것은 열차 말고 또다른 것이겠지요?
“더러는 바람 부는 길모퉁이
생업의 풀뿌리로 떨고 있거나
더러는 눈도 비도 되지 못한
이 겨울의 진눈깨비로 날릴지라도”
가야 하는 곳은 어디일까요? 우리 불자들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바로 ‘궁극적인 행복’, 열반의 세계입니다. 그렇게 간명하게 사는 것이 좋습니다. 어디로 갈지 모르고 애매모호한 행선지를 찾아 먼산을 바라보아서는 어디에도 도달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 화두 : 삶이 마지막 한방울까지 지우라 하는 것은?
열차는 마침내 옵니다. “약속된 불빛을 기다리며/ 묵묵히 철로 위의 침묵을” 견디어내다보면, 여행객들이 공항으로 오듯 열차는 ‘녹슨 포복으로’ 옵니다. 그런데 “그 나지막한 흔들림과 흔들림 사이”에서 우리에게 삶은 서둘러 지우라고 합니다. 열차를 타기 전의 슬펐던 일일랑 ‘잊어라’, 아니 ‘지워라’라고 열차는 ‘끼이익’ 굉음을 냅니다.
도대체 우리가 서둘러 지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시인은 ‘슬픔의 마지막 한방울까지’ 지우라고 하지만, 지워야 할 것이 슬픔뿐일까요?
우리는 알아채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때론 더 많은 것들을 지워야 한다는 것을요. 예를 들어 학교폭력 피해자들은 일생을 학창시절의 아픔으로부터 떠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린 시절에 성폭력을 당한 사람도 그 시절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호화로웠던 어린 시절에 사로잡힌 경우도 있습니다.
삶은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가라, 나아가라 하면서 마지막 한방울까지 지우라고 재촉합니다. 삶이 지우라고 재촉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세 번째 화두 : 기다림의 끝은 무엇이어야 하나?
열차에 올라타면서 우리는 떠나게 되는 도시를 한번 뒤돌아보지요. 다시 오겠다는 마음일까요? 긴 기다림 끝에 새로운 길을 나서지만, 기다림은 끝이 아닙니다. 기다림의 끝은 진정 무엇이어야 할까요?
시 제목이 ‘하행선’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봅니다. 마흔여덟에 세상을 달리한 김태정 시인은 투병생활을 하면서 말년을 해남 미황사 아랫마을에서 홀로 살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시는 서울에서 남행열차를 타면서 쓴 것이라고 짐작해봅니다.
시인의 마음을 나름대로 읽어본 후, 우리는 다시 스스로에게 초점을 맞추어봅니다. 오늘이라는 열차에 탑승하면서, 오늘의 화두를 참구합니다.
“내 기다림의 끝은 무엇인가?”
“이 뭣고?”
제86회 동명스님과 함께하는 불교성전읽기
불기 2567년 1월 12일(금) 밤 8시
기도순서
1. 입정
2. 불교성전 읽기(594~600쪽)
3. 경을 읽고 예불할 때의 마음가짐
4. 관음정근(시간에 따라 생략 가)
5. 축원(시간에 따라 생략 가)
6. 불교성전 읽기 모임 발원문
7. 자애경
https://youtu.be/ewSpNldIk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