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토1서 말씀을 따라가는 여정 : 성서못자리 강의자료중애서 –김덕재신부
신부님은 서울교구 성서못자리담당
*** 공동체에는 각자 맡은 역할이 있다. 그리이스에 있는 고린토지역은 큰도시에 속한다.
여기에는 오늘날 우리들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여러사람들 중에 한부분에 속할것입니다
공동체를 이루면서 각자 역할을 맡아서 주님의 일을 하려는 것인데 사도 바오로는
고린토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한 영에서 나오는 다양한 은사들과 그 첫째인 사랑(12,1~13,13)
본문 이해
1. 한 영과 여러 가지 은사 (12,1~31)
2. 사랑 (13,1~13)
우리의 지평-그리스도인은 저마다 함께 나눌 선물을 지녔다.
본문 이해
12~14장-성령의 은사들에 대해서 또 그것들이 공동체안에서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코린토인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음.
성령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인 은사는 신자 개인의 성화를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성령의 인도로 성장하는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것임을 강조함.
코린토 교회는 성령께서 주신 선물 중 신령한 언어로 말하는 현상을 최고의 은사로 말함.->다른 신자들도 이 은사를 받고 싶어 했으며 그 때문에 서로 위험한 경쟁을 불러 일으킴.(이방인 종교들이 지냈던 주신제에서 볼 수 있던 광적인 흥분 현상과 비슷했기 때문)
12장-성령의 은사들의 다양성과 단일성에 관해서
13장-가장 중요한 덕목인 사랑에 관해서
14장-두 가지 성령의 은사, 예언과 신령한 언어에 관해서 씀.
한 영과 여러 가지 은사
(12,1~31)
성령을 통한 참 은사와 거짓 은사 식별
➢ 예수님의 정체에 관한 신앙고백이 동반되면 참 은사(3절)
➢ 교회 공동체 이익에 기여하면 참 은사, 교회 공익과 일치를 해치면 가짜 은사라고 할 수 있음.(7절, 12~31절)
1~3절-하느님의 영과 악령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함.-> 이 기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다는 것은 고백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또 자기 자신이 고백하는 분의 종임을 선포하는 것임.
바오로는 말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내용이 판단기준임을 말하고 있음. 이는 구약 성경의
본보기를 따른 것임. (신명기 13,2~6)
➢ 2 너희 가운데에서 예언자나 환몽가가 나타나 너희에게 표징이나 기적을 예고하고, 3
그가 말한 표징이나 기적이 일어나더라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라가
그들을 섬기자.’ 하고 그가 말하거든, 4 너희는 그 예언자나 환몽가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
님을 사랑하는지 알아보시려고 너희를 시험하시는 것이다. (신명기 13,2~4)
➢ 3절의 성령을 입어야지만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은가?
➢ 마르코 5,1~9을 보면 군대라는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예수님께서 주님이시라고 말했을 때, 그는 믿는 이의 마음으로 그 사실을 말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주님이시며 만물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자신이 안다는 사실을 고백한 것일 뿐입니다.-가빌라의 세베리아누스(믿음의 차원이 아님)
4~11절-주님의 영에 대한 여러가지 은사의 다양성과 그 다양성안에서의 단일성의 원칙
을 이야기함.
바오로는 같은 성령이 모든 다양한 은사를 베풀어 주시며 그 성령은 여러가지 은사들을 일
치시킨다고 말함.
이 일치는 궁극적으로 은사들을 주시는 한 분 성령 안에서의, 봉사를 받으시는 한 분
그리스도 안에서의 그리고 모든 과정을 가능하게 해 주시는 한 분 하느님 안에서의 일치임(4~6절)
그리고 성령의 은사는 자연적인 것,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거나 유산으로 물려 받은 것
이 아니라 교회의 특별한 삶에 적합한 선물이며 성령께서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베풀어 주
시는 선물임.(7절)->그래서 이것들은 개인의 만족을 위해서 쓰여서는 안 되며 하느님께 봉
사하는 데 사용되어야 하는 것임.
8~11절-여러가지의 은사들의 예를 나열하고 있으며 이러한 모든 은사들이 같은 성령에서 나옴을 강조함.
다양한 은사 분류
8절-가르침의 선물; 9절-활동의 선물, 10절-식별의 선물
사람들이 받는 은사들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선택에 따라 내려 주시는 것이지 그것을 받는 사람의 능력이나 성덕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님.->그 은사들은 개별의 자랑거리가 아니라 공동체의 공익을 위해서 사용되는 것임.
4절- 은사(χάρισμα[charisma])=1절에서의
영의 은사(πνευματικa [pneumatika])와 비슷함.->교회는 은사로써 살아가고 선교의 사명을 수행할 수 있음.(로마 12,6~8)
6 우리는 저마다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에 따라 서로 다른 은사를 가지고 있
습니다. 그것이 예언이면 믿음에 맞게 예언하고, 7 봉사면 봉사하는 데에 써야
합니다. 그리고 가르치는 사람이면 가르치는 일에, 8 권면하는 사람이면 권면
하는 일에 힘쓰고, 나누어 주는 사람이면 순수한 마음으로, 지도하는 사람이면
열성으로,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면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로마 12,6~8)
성령께서는 각 사람에게 당신을 맞추십니다. 각 사람의 의향을 보십니다. 우리의 추론과
양심을, 우리가 하는 말과 생각을, 우리가 무엇을 믿는가를 보십니다.-
예루살렘의 키릴루스
6절-하느님은 창조주로서 그분의 권능이 우주 각자 안에서 일하시는 분이심. 바오로는 하
느님께서 모든 이 안에서 일하신다(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고 말함
으로써 영을 독점하려는 이들을 견제하고 있음.
7절-자신이 받은 은사를 개인적인 특은으로 간주해서는 결코 안됨. 은사의 목적은 봉사임.(예: 사적 계시와 공적계시-사적 계시는 공적 계시를 더 잘 보여주기 위함임. 어느 한 개인의 특별성이 아님)
예: 나주 율리아 문제
나주 메시지는 성모님의 잘못된 신심을 보여줌.(성모님 또한 예수님의 제자일 뿐임-마치
예수님이 성모님의 대변인 보조자에 머물러서는 안됨)
성경 말씀이나 교회의 가르침에 충실하기 보다는 개인적 성모님의 메시지에
더 큰 중요도를 둠.
교회의 순명의 자세가 아닌 자신의 체험을 인정하라는 불순명적 자세
7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2코린 5,7)->그리스도인들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임.
8~10절의 9개 은사
지혜의 말-지혜의 말은 속세의 지혜로운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신비, 하느님의 심오하고
감추어져 있던 지혜, 곧 하느님의 구원의 업적을 깨닫는 것임. 특히 십자가에 처형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깨닫고 선포하는 말임.(교리적 진리를 볼 수 있는 통찰력)
지식의 말-세상에 우상이란 없다는 것, 그리고 한 분 외에는 그 누구도 하느님일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임. 즉 신앙의 사리를 따지는 능력임.(교리적 진리들을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
믿음-하느님의 구원 계획과 그리스도의 구원의 역사 안에서의 사건들을 깊이 깨달은 요지부동의 믿음임.
치유의 은사-병자들을 치유해 주는 은사
기적의 행위-신체적 치유뿐 아니라 마귀를 내쫓는 구마기적, 자연에 이변을 일으키는
자연 기적을 포함함.
예언-하느님의 계시를 받아서 청중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은사임.
영들의 식별-참 예언과 거짓 예언, 참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를 식별하는 은사임.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무의식의 상태에서 하느님과 나누는 말.->천사들의 언어라고
생각함.
신령한 언어를 해석하는 은사-알아들을 수 없는 영적 언어를 알아 들을 수 있는 말로
통역 해설하는 은사임.
코린토 신자들은 자신들이 신령한 언어를 말한다는 것을 자랑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는
은사의 종류를 나열하면서 제일 나중에 가서야 이 은사를 꼽습니다.-요한 크리소스토무스
10절-식별하는-분별하다(διακρίσεις[diakriseis])-올바르게 판단하다, 잘 가늠하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음.
10절-영은 당신이 원하는 대로 은사들을 나누어 주는데, 이는 타인과의 허영어린 비교나 타인의 사기를 꺾는 부질없는 비교를 종결시킴.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받아야 하는 은사를 성령에게 지시할 수 없음.
12~26절-은사들은 다양하지만 그 원천은 같은 성령이라는 가르침을 사람의 몸을 예로 들어 설명함.
인간의 몸이 다양한 조직으로 이루어져 한 몸을 이루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도
각기 다른은총과 소명을 받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결합체로 볼 수 있음.
사람의 몸은 하나이다.-13절
인간의 몸은 다양한 필요에 따라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음(14~20절)
인간의 몸 각 부분은 하나로서 기능함. 각 부분은 밀접한 상호의존성을 가지고 가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함(21~26절)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몸은 각 부분이 다양하면서도 함께 작용함(27~30절)
여기서 바오로는 다른 사람의 것이 자신이 받은 것과 그 쓰임새가 다르더라도 모두 다 몸
에 필요한 것이기에 멸시하고 경멸해서는 안 된다고 함. 이 모든 것들은 하느님께서 그렇게
마련해 놓으신 것이기 때문.
각 지체는 하느님께서 정해 주신 것은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모두가 한 지체이므로
교회 안의 다른 사람들을 자신과 똑같이 사랑하고 관심을 가져야 함.
이 몸에 대한 비유는 그 당시의 유명한 메네니우스 아그리파의 우화 이야기를 인용함.
기원전 470년 경 고대 로마 평민들이 자신의 개혁을 요구하는 반란이 일어남. 귀족들은
협상대표자인 메네니우스 아그리파를 파견하여 평민들과 협상을 벌일 때 위장에 관한
유명한 우화를 들려줌.
우화 이야기-자신들은 힘들게 일하는데, 편하게 놀고 먹는 위를 골탕 먹이기 위해 몸의
각 지체들은 힘을 합쳐 일을 하지 않음. 그래서 위에 음식이 공급되지 않음.
그랬던 몸의 각 지체들은 자신들에게 힘이 없어진 것을 깨닫고 위에 음식이 공급되지
않으면 안됨을 알게 됨. 그래서 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는 우화임. 이 우화로 귀족들과 평민들이 서로 화해함.
인간 육체의 기능이 그것을 활동하게 자극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을 때 게을러지는 것처럼 영혼도 그렇습니다. 눈은 낮의 빛이나 밝음이 없을 땐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합니다.
귀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는 자신의 임무가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합니다. 콧구멍은 아무 냄새가 나지 않을 때는 자신의 직무를 의식하지 못합니다. 제 기능을 잃어버려서가 아니라 기능을 행하게 하는 원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원인이 있어야 능력을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영혼도 그렇습니다. 영혼이 믿음을 통하여 성령의 은사를 들이마시지 않는다면, 이해력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지식의 빛을 지니지 못합니다. 모든 이에게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사 한 가지가 온전히 주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곳에 있는 그것은 우리가
그것을 받고자 소망할 때에만 주어지며 우리가 그것에 합당한 이가 되고자 소망할 때에만
우리에게 머물러 있습니다.-푸아티에의 힐라리우스
12절-교회는 그분의 몸임을 강조함
4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
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5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
고, (에페소 4,4~5-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일치)-교회는 그분의 몸
은총이 신앙에 선행하듯이 그리스도는 교회의 주인으로서 몸에 선행함. 그래서 그리스도는 몸의 머리이심.(그분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에페소 4,15)
몸과 지체에 관한 바오로의 말은 교회의 지체 낮은 구성들을 무시하지 말라는 뜻으로 하는 말입니다. 본성에서 처지는 이라 할지라도 그도 교회라는 몸에 속하기 때문입니다.-가빌라의 세베리아누스
10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
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마태오 18,10)
그리스도의 몸의 세가지 용법
①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몸: 로마 7,4
② 성찬례의 빵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의 몸: 1코린 10,16; 11,24.27
③ 교회를 이루시는 그리스도의 몸: 1코린 10,17; 12,12.27; 로마 12,4~5
13절-교회 일치는 영의 업적이고 세례를 통해 실현됨. 즉 모든 이가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
께 통합되기 때문.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ἐποτίσθημεν[epotisthemen]->단순 과거 시제이고 반
복되는 행동이 아니라 단 한번의 경우를 가리킴.-세례의 유일회성
또한 성령이 세례의 중요한 부분이며 그분이 우리를 에워쌀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 있음.
① 14~20절-기관의 불가피한 다양성을 강조함.
② 21~26절-이에 필요한 연대성을 역설함.->몸을 구성하는 각 부분들이 다양하기는 하지만 각 부분들은 밀접하게 서로 의존하고 있음. 몸으로부터 분리된 지체는 그것이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할 것임.
18절-지체의 다양성과 그 기능의 다양성은 하느님이 원하신 바임. 비교와 경쟁의 대상이 아닌 것임.
하느님께서는 몸의 각 부분을 당신께서 정하신 자리에 두셨습니다. 그러니 그분께서 왜
그런식으로 두셨는지 따지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닙니다. 설명을 생각해 낸다 하더라도, 창조주께서 당신생각대로 짜 맞추신 형태가 그분께 흡족했다는 것보다 더 나은 설명은 결코 찾아내지 못할 것입니다.-요한 크리소스토무스
21절-우월한 지체들이 다른 지체들의 기능을 불필요하게 생각하는 불합리성을 비판함.
교회에는 진짜 눈이 있습니다. 거룩한 성경에서 하느님의 신비들을 보는 교회의 교사와 지도자
들이 그들입니다. 교회에는 손도 있습니다. 효과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이들은 눈이 아니고 손입
니다. 그들이 성경의 신비들을 헤아립니까?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은 일에 아주 뛰어납니다.
교회엔 발도 있습니다. 온갖 종류의 공무로 여행을 다니는 이들입니다. 발이 달리는 것은 손이
제 할 일을 찾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눈은 손을 업신여기지 않으며, 이 셋은 배가 하는 일 없이
논다는 듯이 배를 업신여기지 않습니다.-히에로니무스
23~24절-불평등한 은사들을 평등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좀더 품위 있는 은사와 가장 볼품없는
은사들 간의 평등을 인정하고 이를 보호하는 일임.
23절- ‘점잖지 못한 지체’->하느님께서 만드신 아름다운 것인데도 바오로 사도가 몸의 이 지체들을 “점잖지 못한”지체들이라고 한 것은 욕망의 추함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24~25절-하느님을 몸의 지체들 간의 관계를 관장하는 법칙을 만드신 분으로 지칭함. 공동체와 그 구성원 각자에게 요구되는 행동 모델임.
26절-몸 지체들 간에 경쟁심이나 시기심이 솟아날 수 없는 이유는 그들 중 하나에게 일어난 일이, 다른 모든 지체에게도 불가피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때문임. 그들의 고유한
이익에 따라 모든이는 서로 연대하고 몸의 생명과 복지에 기여해야 함.
26절-여러분이 손가락 하나가 삐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사지가 다 떨리지 않습니까?
손가락뼈를 맞추려고 의사에게 달려가지 않습니까? 이 일에서 보듯, 모든 지체가 서로 잘
조화되어 있어야 몸상태가 좋은 것입니다. 그래야 건강한 것이고 진짜로 안녕한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27~31절-다시 또 몇 가지 은사들을 언급함.
27절-그리스도께 받은 이 몸 안에서 각자는 그 지체로 존재하고 일치를 이루며 저마다
해야 할 역할을 가지고 있음. 이 역할은 받은 은사와 각자의 소명에 따라 제한되고 또 모든 이에게 상호 보완적임.
28절-은사들이 교회에 유익한 정도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됨을 보여줌.
그런 의미에서 사도들은 복음을 전파하고 도 그들 자신의 삶을 통하여 교회를 세우고 발전에 힘쓰기에 첫째로 꼽음.
사도들 (ἀπόστολος[apostolos])-부활하신 그리스도로부터 복음 선포 사명을 받은 이들임.
두번째는 예언자(προφήτης [prophetes])들인데, 예언자들은 교회의 창립자의 사업을
이어가면서 교회에 덕을 세우고 위로하고 힘을 주는 사람들임.
세번째는 교사들(διδάσκαλος [didaskalos])로서 그들은 그리스도교적 신앙의 의미와 도
덕적 내용을 가르침으로 해서 교회를 세우는데 이바지함.->특히 예수님 전승을 가르치는
사람들. 또한 그들은 구약 성경의 그리스도교적인 의미를 설명하였던 사람들.
그 밖에 기적의 은사, 병을 고치는 은사, 도와 주는 은사, 지도하는 은사가 나열되어 있으며
신령한 언어의 은사가 마지막에 나옴.->바오로의 의도 신령한 언어의 은사를 코린토 교회
가 과장했기 때문에 일부러 맨 뒤에 배치함.
도와 주는 은사-궁핍한 자들을 돌보는 이들, 관리하는 일(감독들)-교회일을 관장하는 순회
활동가(사도들)가 아닌 지역 활동가들임.
바오로는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은 은사를 받을 수는 없으며, 이런 저런 은사들을 받지 못
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못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도 아님.
그리스도인들이 원해야 할 가장 큰 은사는 공동체의 유익에 가장 잘 봉사할 수 있는 은사
임.
그래서 바오로는 공동체의 공익에 가장 잘 봉사할 수 있는 더 큰 은사들을 구하라고 촉구
함.(31절)->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사랑임.
바오로가 보여주자 하는 길은 사랑에 의해 지배되는 삶의 양식임.
사랑(13,1~13)
바오로는 다양한 지체가 있어야 함을 이야기하면서 모든 지체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근본
적인 사랑의 덕목을 이야기함.
사랑은 몇몇 사람들에게 특별히 주어지는 은사의 하나가 아니라 그리스도 신앙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없어서는 안 될 내적인 하느님의 선물이며 모든 그리스도 신앙인들이 걸어야
할 인생의 길임.
① 13,1~3-사랑의 우위성
② 4~7절-사랑의 본질
③ 8~13절-사랑의 영속성
13,1~3-바오로는 어떤한 은사일지라도 사랑으로 실천되지 않으면 아무런 가치도 지니지
못함을 가르침.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다가 아니라 가
치가 없다는 것을 말함.
4~7절-사랑의 특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음. 사랑을 의인화 하고 있음.
여기서 강조되고 있는 사랑의 특성들 중 부정적인 표상은 코린토인들에게서 나타난 잘못들
을 염두에 두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임. 즉 지혜와 지식, 예언 능력과 신령한 언어를 말하
는 자신의 능력을 뽐낼 수 있는 능력에는 높이 평가를 하지만 인내, 친절, 겸손과 서로에
대한 관심에서는 낮게 평가했음.
1절-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황홀경의 형태에 따라 사람이 말하는 신령한 언어의 두가지 수준을 가리킴.
‘징’- Χαλκὸς[chalkos]-구리->여기서는 징으로 번역됨.
꽹과리- κύμβαλον[kumbalon]->신의 주의를 끌기 위한 것이든, 귀신을 쫓기 위해서였든 종교적인 관행에 사용되던 것임.
무속신앙과 계시신앙의 대표적 차이
➢ 무속신앙-일관된 메시지가 없음. 계시 신앙-일관된 메시지가 있음.
➢ 무속신앙-정성을 이야기 하지만 계시 신앙은 실천을 강조함.
◆ 천사의 언어-귀가 아니라 마음으로 들어야 하는 언어입니다.-키루스의 테오도레투스
2절-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기적의 능력을 암시하는 것임.
3절- ‘내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ψωμίζω[psomizo]->조금 먹다를 의미함. 즉 금욕
주의적 방식을 의미하는 내용임.
‘내 몸까지 자랑스럽게 넘겨 준다’- 이런 행위가 아주 좋은 것이지만 그는 자선 행위가 저
급한 동기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도 간과하지 않음.(자랑하기 위해서 함.)
‘자랑스럽게’- καυχάομαι[kauchamai]-직역: 불사르다도 됨.
‘불사르다.’-순교로 볼 수도 있음.->헐벗음과 마침내 생명을 바치는 것도 사랑에서 비롯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님을 말함.(사랑의 강조점)
4절-사랑을 인격화함. 4절에서 나열되고 있는 것 중에 몇가지는 성령의 열매들 중에서
발견됨.
참음(μακροθυμεῖ[makrothumei])-부당한 일을 당하고서도 보복하지 않는 것임.
시기와 자랑-코린토 교회에서 몇몇 문제를 발생시킨 주요 원인임. 분열(1,10; 3,3), 은사
(12,14~25)에 있어서 더 크게 드러남.
사랑은 시기하지 않는 이유는 사랑은 자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만하면 시기가
따릅니다. 교만은 시기의 에미입니다.-아우구스티누스
5절-사랑에 대해서 네 가지 부정적인 술어를 사용함.
무례하지 않음-예의나 품위가 결여되어 있음을 의미함. 관습을 무시하고 기본적인 도덕마저 지키지 않는 경향을 지닌 것임.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음-받을 자격이 있는 것 조차 다른 이들을 위해서 포기할 각오가
되어 있음을 말함.
성내지 않음-심한 논쟁을 의미함.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남몰래 음모를 꾸미지 않음을 의미함.
6절-불의에 기뻐하지 않음-남을 흠잡거나 혹은 우월감에서 즐거워하지 않음.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함-사랑은 잘못을 들추어내고 지적해서 그 자체를 구별하려고 하지
않음.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의로운 것에 대해서 기뻐함.
7절-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사랑을 지속하다는 의미임.
모든 것을 믿습니다.-이것은 사람들에 대해 언제나 가장 좋게 생각하다가 아니라 결코 믿
음을 잃지 않다라는 뜻임.
모든 것을 바라고-희망을 잃지 않다라는 뜻임.
모든 것을 견딥니다.-곤경이나 거절 때문에 사랑이 사랑이기를 그치지는 않는다라는 뜻임.
사랑은 인내심이 지극하여 힘든 일이든 슬픈 일이든, 모욕이든 채찍질이든, 나아가 죽음까
지도 견뎌 냅니다.-요한 크리소스토무스
8~13절-사랑을 다른 은사들에 비교함으로써 사랑의 영원성에 관해 이야기함.
즉 예언, 언어, 지식, 인식의 은사들은 성령께서 현세 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해 주시
는 것이기에 하늘 나라에서는 그 구실이 없어지고 쓸모 없게 됨. 그러나 사랑은 다른 어떠
한 은사도 반영할 수 없는 하느님의 본성을 반영하므로 하느님의 본성 자체에 속하며 사랑
은 하느님에 관한 온전한 진리를 의미하기에 영원함.
코린토 인들이 사랑안에서 성숙해진다면 그들은 지금 자신들의 자랑하고 있는 허상의 자
기 과시가 믿음과 희망과 사랑에 뿌리박고 있는 그리스도교적 본질에 얼마나 어긋나는지
를 깨닫게 될 것임.
믿음-지식과 같은 것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또 신실하게 하느님 자신을 영접하는 것임.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온전하고 참되신 하느님은 믿음으로 알 수 있음. 그리고 신자들이
하느님 앞에서 믿음 안에서의 인내인 희망을 가질 때 그분이 미래의 주님이시라는 사실과
그들이 현재 현재 그분을 의지하듯이 앞으로도 항상 의지할 것임을 인정하게 됨. 즉 인간의
희망은 하느님의 영원하심과 그분의 주권을 증거함.
사랑-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것과 같이 하느님께 이르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
께서 존재하시는 그대로 하느님께 이르는 것임. 즉 사랑은 사라지지 않음.
이 믿음과 희망 사랑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것은 사랑임. 왜냐하면 믿음과 희망은 사랑 없
이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
곧 하느님께서 외아들을 보내 주심으로써 인간은 사랑을 알게 되었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믿음과 희망을 갖게 되었으며, 사랑은 믿음의 열매요 희망의 근거임.
8절-지식도 없어집니다.->하느님에 대한 감추어진 지식을 말함.
모든 은사는 교회를 성숙케 하는 것과 관계가 있음. 그래서 교회가 완전해지면 이러한
은사들의 목적은 성취되고 따라서 이 은사들은 쓸모없이 됨. 그러나 사랑만은 영원함
.->모든 은사는 사랑안에서 비롯되지만 사랑을 성장시키고 사랑을 남김.
10절-부분적인 것은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히 사라지는 방식이 아니라 불완전한 것이 완전하게 되는 방식으로 없어질 것입니다. -암브로시아스테르
이 구절에서 담긴 뜻은 우리의 지식이 모두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부분적인 것들은 한계
를 지닌 것으로 보이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지금 부분적으로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포함하여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 우리는 하느님께서 모든 곳
에 계시다는 것은 알지만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는 모릅니다. 그분께서 무에서 창조하셨
다는 것은 알지만 그것이 어떤 식이었지는 전혀 모릅니다. 그리스도께서 동정녀에게서 나
셨다는 것은 알지만 그 방법은 모릅니다. 그 외에도 많은 예를 들 수 있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11절-바오로는 코린토 신자들이 어린 아이 같았기 때문에 신령한 언어를 과대평가하고
사랑을 과소평가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임.
여기서 어린이는 생각을 잘못하거나 이치를 잘 못 따진다고 말하는 것은 아님. 자기 처지
의 한계 안에서 그리고 자기 세계의 범위안에서 그렇게 생각한다는 뜻임.
(자기 중심적 생각)
12절-거울의 은유는 고대 문학 작품안에서 흔히 나타남.
① 거울은 선명함의 상징임.
② 거울은 자기 자신을 아는 도구임.
③ 플라톤의 이상주의 전통에서 거울은 현실의 이부, 그 이미지만을 지각하는 간접적인 봄을
바오로는 인간이 현재 가지고 있는 하느님에 관한 지식은 현재의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지
식과 미래에 인간이 갖게 될 하느님에 관한 지식에 비교할 때 그 불완전함이 드러남. ->즉
하느님을 아는 인간의 지식은 불완전함.
그러나 하느님께서 인간을 아심. 그래서 그분은 언제나 인간을 위해서 당신이 먼저
행동하심.
구약은 하느님의 온전한 계시가 드러났지만 인간이 그것 밖에 알아듣지 못함.(법적 계
명)->신약은 인간의 알아듣지 못하기에 직접 말씀해 주로 내려오심.(예수 그리스도)->끝
까지 않아 듣지 못함(십자가의 죽음)->부활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제자들에게 전해
줌.(온전한 계시)
요한 복음->처음부터 예수님의 정체가 드러남. 그분을 믿는가 믿지 않는가에 대해서
명확하게 밝혀줌. 받아들일 것인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인가? 신앙을 고백할 것인가?
고백하지 않을 것인가?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하느님께서 인간의 편이심을 믿고 그분의 사랑을 받아들여야 함.
13절- ‘계속됩니다’-즉 방언과 예언과 기적과 다른 영적 은사들이 하느님에 관한 부분적인 지식만을 전달하는 것으로 사라지게 될 때, 이 세가지는 남아 있어서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완전한 구원의 관계를 나타낼 것임.
사랑이 으뜸입니다. 믿음은 지금 이곳에서 전해지고 희망은 미래의 삶과 관계되는 반면
사랑은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요한 1서에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 내놓으신
그 사실로 우리는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1요한 3,16)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셋 가운데에서 사랑이 으뜸입니다. 사랑으로 인류가 새롭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암브로시아스테르
정리-코린토인들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에 따라 각자에게 알맞게 나누어 베풀어 주신 은
사들에 대해서 잘못 이해함. 은사들은 한 성령에게서 오는 것이기에 각기 받은 은사가 다
르다고 분열하거나 마찰이 있으면 안됨.
바오로는 사랑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으며 그리스도인의 토대가 되는 덕이므로 이에 터전을
두고 은사들과 그 사용을 평가하도록 가르침을 주면서 이 사랑의 길이 구원의 길임을
알려줌.
하느님께서는 이 구원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당신의 사랑하는 외아들 그
리스도를 사람의 아들로 보내셨고, 그 아들의 삶을 통해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보여
주신 것이 바로 인간에 대한 이 사랑임.
우리의 지평-그리스도인은 저마다 함께 나눌 선물을 지녔다.
그리스도께 믿음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아 교회의 일원이 된 그리스도인에게 주님은 성령을
보내 주셨음. 그리고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공동체와 더불어, 공동체에 봉사함으로써 신앙인
공동체를 활기차게 건설하고 자기 안에 심어진 하느님의 생명을 성장시켜 나가라고 신앙인
각자에게 각기 다른 은총의 선물을 주심.
그 은총들은 내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선물을 잘 활용하고 모자라는 점은 서로 협력하고 보완하여 완전함을 이루는 모습이 바로 주님께서 바라시는 교회임.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 사람이 모든 일을 하기를 원하시지 않음. 만약 한 사람만이 이
일을 하길 원하셨다면 하느님께서는 온 세상에 그렇게 많은 사람을 창조하실 까닭이 없었
을 것임.
공동체 안의 역할 분담이 바로 성령이 주신 은사와 직무의 다양성임.->다양성안에서의 일
치가 이루져야하며 일치 속의 다양함을 보이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임.
즉 그분의 사랑이 있었기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어 나갈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