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을 넘으면서
조 흥 제
강릉에 눈이 많이 온다는 기상대 발표다. 대관령에 29cm, 미시령에 30cm가 넘게 온다고 했다. 서울은 맑은 하늘인데 강원도에는 그렇게 눈이 많이 온다니 실감이 안 난다. 서울과 대관령은 멀리 떨어져 있으니 그렇기도 하지만 가까운 거리이면서 확연히 다른 기후를 며칠 전 경험했다.
지난달 동계 청소년 올림픽이 강원도에서 개최됐었다. 14세부터 18세까지의 세계 청소년이 참가하여 얼음 위에서 하는 경기로 이번 대회에는 78개국 1800여명이 참석하였다는 언론 보도다.
아들이 시간이 있다면서 갑자기 청소년 동계 올림픽을 보러 가자고 하여 준비도 없이 따라 나섰다. 2시에 갔는데 영동고속도로를 탔다. 70년대에 개통한 영동고속도로는 벽촌 강원도를 서울에 가까이 오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원주를 지나서는 700~800m의 높은 지대를 가는데 대관령에서는 동해바다를 바라보면서 강릉에서 오르는 99고비를 힘들게 내려갔었는데 요즘은 굴을 뚫어 힘 안 들이고 간다. 대관령에만도 7개의 굴이 있다.
강릉 하키센터에 갔다. 8시에 미국과 체코의 아이스하키 결승전이 열렸다. 5명의 선수가 지팡이 같은 막대기를 들고 석탄 조개탄만한 새까만 물체를 지팡이로 때려서 골에 넣는 경기다. 텔레비전에선 많이 봤으나 실제로 보기는 처음이다. 선수는 3분마다 전원 교체하는 것이 특이했다. 골키퍼는 무릎에 청사초롱 같은 보호대를 댔다. 20분 경기하고 15분 쉬었다. 그렇게 3쿼터까지 1시간30분을 하였다. 미국이 4-0으로 이겼다. 결승전이어서 시상식을 보았다. 선수가 많아 시상대에 올라서지 못하고 얼음판에 그대로 서서 수상식을 거행하였다.
10시40분에 끝나 저녁도 못 먹고 자러 갔다. 슈퍼에서 먹을 거를 사서 차에 싣고 간 곳은 속초 바닷가에 있는 ㅍ자로 생긴 큰 호텔이다. 텔레비전에 많이 나오던 새로 지은 호텔이다. 그 호텔 19층에 들었다. 아침에 베란다 창문을 여니 동해바다가 끝없이 펼쳐지고 파도는 철썩철썩 호텔 밑을 때린다. 인근에 등대가 있는 1급 관망지다. 아쉬운 것은 날이 흐려 해 뜨는 것을 보지 못한 것이다.
아침은 컵라면으로 먹고 다시 강릉으로 갔다. 강릉 아이스 아레나 경기장에서 피겨 스케이팅 결승전을 보기 위해서였다. 미국, 중국, 프랑스, 캐나다, 한국 등 5개국이 경기를 하는데 남녀 함께 하는 경기, 남자와 여자가 각각 따로 하는 경기였다. 김연아를 세계적 선수로 만든 방식의 경기였다. 그 경기에서 우리의 여자선수가 영상 기록에 3위로 기록되었던 한국을 1위로 바꿔 놓았을 때 장내에선 박수가 그치지 않았다. 그때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관중석에서 수천-수만의 반딧불이 같은 불이 켜진 것이다.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축하방식이었다. 사진을 찍으려고 했더니 사진에는 안 잡혔다. 3위였던 우리의 순위를 1위로 끌어 올린 선수는 연보라색의 운동복을 입은 여자 선수였는데 신지아라고 했다. 들어 본 이름이다. 그들은 시상대에 올라서 시상식을 했다. 한국 선수 4사람이 시상대에 오르자 태극기가 가운데 있고 양쪽에 2, 3위 국기를 단 가로대가 위로 올라갔다. 평창 올림픽인데 강릉에서도 했다. 평창에서 청소년 올리픽이 열린다는 것만 알았지 내가 구경하러 가리라는 것은 생각도 못했는데 중요한 경기 결승전 두 차례나 보다니 꿈만 같다.
시상식이 끝나니 3시30분이다. 밖에 나오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큰 일 났다. 어떻게 태백산맥을 넘어 안전하게 서울까지 가나. 그것도 함박눈이 아니라 싸래기 같은 눈이 녹으면서 내렸다. 함박눈은 많이 안 오고 싸래기 같은 눈은 많이 온다. 차를 타고 속초 쪽으로 갔다. 서울~양양고속도로를 탄다고 한다. 도로 양쪽 나무에 눈이 쌓여 장관을 이루었다. 좋은 구경이었지만 서울 갈 생각을 하니 걱정이 앞선다. 눈 치우는 제설차 두 대가 앞길을 열어 준다. 차가 해안을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었다. 헌데 차가 산길로 가는 게 아니라 굴속으로 간다. 눈 때문에 멀리는 안 보인다. 굴도 하나, 두 개가 아니라 수도 없다. 도로표지판에는 서면이라는 글자가 있다. 설악산 남쪽이다. 어느 굴로 들어가서 한참 갔는데도 끝나지 않아 으아해 했더니 굴 끝까지 7㎞가 남았다는 안내판이 나온다. 전체는 10㎞도 넘을 것 같다. 놀라운 길이다. 그 굴을 벗어나자 눈이 안 온다. 눈이 쌓여 있기는 하지만 오늘 온 눈은 아니다. 큰 굴을 나와서도 작은 굴의 연속이다. ‘와!’하는 소리 없는 함성이 나왔다. 우리나라의 토목기술이 발달되었다고 하지만 이렇게 굴을 많이 뚫고 길을 만들 줄은 몰랐다. 그저 감탄할 뿐이다.
전망이 트이자 좌측에 큰 산이 있다. 큰 산인 설악산은 우측에 있어야 하는데 좌측에 있다니 예상 밖이다. 지도를 보니 설악산과 오대산 사이로 길이 났다. 굴들을 완전히 벗어나자 눈이 안 올 뿐 아니라 햇빛이 쨍쨍 난다. 태백산맥 이쪽저쪽에 눈-비 오는 것이 다르다는 기사를 많이 보았지만 실제로 느끼기는 처음이다. 태백산맥은 지도를 영동과 영서로 나눈다. 그런 지명을 붙인 것은 기후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고 생활방식도 다르기 때문이리라.
눈을 감고 어제 오늘을 떠올린다. 우리나라가 굉장한 나라다. 강릉이라는 벽촌에 실내 빙상경기장도 종목에 따라 여러 경기장을 만들고 세계적인 운동 경기를 개최하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2018년 동계올림픽 때 건설한 경기장들이지만 다시 활용하여 세계적인 체육대회를 다시 여는 것은 축하할 일이다.
대한민국을 말한다면 '굉장한 나라'다. 굉장한 구경을 오늘 했다. 차는 쌩쌩 달려 3시간도 채 안 걸려서 집에 왔다. 영동고속도로보다 시간이 덜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