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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그 경계에서, 따스하면서도 다채로웠던 그 순간들을 사진과 글을 통해 기록해 보고자 한다. 꽃샘추위로 억눌려 있던 벚꽃 팝콘이 삽시간에 전국을 뒤덮었다. 하지만 그만큼 만개의 순간도 짧았으며, 서울의 경우 주말에 불현듯 찾아온 강풍과 비 소식으로 인해 예견됐던 그 짧은 순간이 너무 아쉽게 다가왔다. 하지만,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서울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장소들 중 한 곳에서는 이제 막 그 차원이 다른 벚꽃들이 산을 가득 물들이고 있었는데, 찬란하게 흩날리던 벚꽃의 기억이 지금껏 서울에서 경험해 본 그것들 과는 결이 달랐다.
석촌호수를 다녀온 뒤, 그 순간을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몰입하고자 서울 N타워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맡겼다. 저 멀리서부터 그 군락의 규모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는데, 버스가 오르기 전부터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만개한 벚꽃 나무들을 보고 버스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둘레길을 오르던 버스 안에서 연신 탄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서울 N 타워에서부터 이어진 서울 남산 주변 마실은 마치 몽환의 숲을 거닐 듯 매 순간이 경탄의 연속이었다.
1. 남산둘레길
유난히 날씨가 좋은 하루였다. 저 멀리서부터 불어오는 스산한 바람이 벚꽃나무를 자극해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충분했고, 덩달아 더위에 지쳐 있는 내 육신을 달래줬다. 서울에 살면서 정말 남산을 자주 오르내렸지만, 남산에서 한강 따라 롯데타워를 본 건 처음이었다. 남산 자락에 자리한 송신 타워와 함께 프레임에 담았다. 바라만 봐도 기분 좋아지는 장면을 뒤로한 채 남산 타워 쪽으로 한 걸음 씩 오르기 시작했다. 평일 오후에 찾았어도 여전히 남산은 사람들로 붐볐다.
서울 N타워를 중심으로 봄의 숨결을 즐기러 가는 방법은 참으로 다양하다. 백범광장 공원을 통해 남산 봉수대 방향으로 오르거나 주변 하는 트래킹을 많이 추천한다. 하지만 그 대신, 좀 더 이 공간을 체력을 비축한 채 편하면서도 순간을 더욱 만끽할 수 있도록 순환버스를 활용할 것을 추천한다. 이태원과 명동 그리고 동대문 등 과 같은 곳에서 서울 N타워로 향하는 순환 버스를 탄 뒤, 올라왔던 길을 내려가면서 남산의 봄을 즐기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둘레길 주변에 마련된 데크를 통해 서울의 도심을 더욱 여유롭게 즐길 수도 있으며 줄곧 내리막길이 이어지기 때문에 힘 좀 덜 들이고 매력적인 순간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N 타워 주변을 돌며, 서울의 다른 곳들과는 다르게 이곳은 이제 막 봄이 시작 됐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남산에서 부터 시작된 벚꽃 나무 군락들은 다리를 형성해 도심으로 시선을 이끌었으며, 주변을 꾸며주는 녹색빛깔 나무들의 몽환적인 분위기에 편안함을 더했다.이번 벚꽃 시즌은 생각보다 여의치 않을 수 있겠다 싶었지만 그 염려를 한 방에 보상 받는 기분이었다. 파란 하늘 아래 햇빛을 머금은 채 영롱함을 띄던 봄날의 세레나데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유혹하기 충분했다.
버스를 타고 올라왔던 그 길을 발과 눈을 활용해 천천히 밟아가 본다. 저 멀리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 일렁이는 바람에 수백 년의 시간을 머금은 채 우두커니 이곳을 지키고 있던 나무들이 절정을 순간을 가져다줬다. 오래전부터 남산의 별칭은 '청학동'이라 불렸다. 즉, '신선이 사는 곳'이라 불릴 만큼 경관이 뛰어나기로 유명했었는데, 그 소문을 증명이라도 하듯 보란 듯이 내 앞에서 그 시간으로 다져진 관록을 한껏 뽐내는 중이었다.
지금껏 서울숲과 여의도 윤중로를 포함해 벚꽃 명소들에서 경험해 본 그것들과는 또 다른 차원의 절정을 보여줬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벚꽃 나무 그 아래로 굽이 친 길들은 불확실한 앞으로의 상황들을 기대감으로 치환시켜 줬다. 더욱이 이 너른 공간을 여유롭게 눈에 담을 수 있다는 그 사실로도 너무 행복했던 순간의 연속이었다. 몽환의 숲을 지나 전망이 탁 트인 곳에 도착하면 남산의 정상에서 봤던 그 풍경들과 다른 매력의 남산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산 중턱에서 남산 타워와 함께 바라봤던 주변 풍경들은 급작스레 찾아온 봄의 그 따스했던 숨결들을 머금은 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이 물들인 색으로 계절의 매력을 더해가고 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마천루와 그 사이로 각자들의 목적지를 향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아련함을 간직한 채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남산의 둘레길은 그 경사가 완만해졌다. 여전히 그 아래에서 사람들은 벚꽃에 취해 그 몽환적인 매력을 담으려 분주히 움직이던 와중이었다.
보통 이 길은 버스 또는 트래킹 그리고 서울에서 자전거를 즐기는 분들에게 명소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특히 밤이 되면 서울 시민들이 많이 찾는 명소라는 건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둘레길 마실은 가장 익숙했던 곳에서 예기치 못했던 새로운 매력들을 발견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어느 따스했던 봄의 밤, 야간 조명을 간직한 채 황홀하게 흔들리던 그 모양새는 너무 매력적이었다. 지금은 시간의 뒤안길로 사라진 채 그 흔적을 사진에서 밖에 볼 수 없지만 별 일이 없다면 매년 이곳을 찾을 듯싶다. 그 순간은 이 세계와 단절된 듯 몽환적이었고 둘레길 끝 자락에서의 순간은 아쉬움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2. 백범광장공원
버스를 타고 올라간 길 그 반대편으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주요 임시정부 요인들의 동상들 그 한가운데 휴식을 취하기 위한 광장과도 같은 장소가 자리했다. 저 아래에서부터 시작된 성곽길은 건너편에 위치한 힐튼 호텔을 휘감은 채 예스러움을 더했는데, 그 시간의 흐름이 현재와 맞닿아 오직 서울에서만 즐길 수 있는 순간을 제공했다. 도처에 깔린 벚꽃 나무들은 분위기를 고조시켰는데, 지난날 벚꽃들로 점철된 그 길과는 사뭇 다른 편안함이 참으로 매력적인 순간이었다.
남산 가장 높은 곳까지 오르지 않아도 중턱에서 한가로이 휴식을 즐길 수 있었기에 누군가는 반려동물들과의 산책을 위해 누군가는 일몰의 그 순간 뒤 펼쳐질 서울의 야경을 담기 위해 주변을 거닐며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물론 이곳을 찾았을 때 별도로 삼각대를 지참하지는 않았지만 이곳까지 와서 그냥 내려가기에는 날씨도 좋았고 아쉬움이 커서 해가 넘어가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한참 후, 성곽길과 마주했던 야경의 순간은 입이 절로 벌어질 정도였다.
힐튼 호텔과 어우러진 성곽길을 시작으로 가지런히 나열된 서울의 마천루가 상당히 가깝게 느껴졌다. tvN에서 방영됐던 '이태원 클라쓰' 촬영 장소로도 활용됐을 정도로 봉수대 길 쪽으로 천천히 내려와 보니 그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주변 지인들과 편하게 오려고 밝은 단렌즈 한 가지만 들고 온 게 아쉬울 정도였다. 선선했던 날씨와 더불어 데크길 따라 올라오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카메라가 모여 있는 곳에서 멈출 정도로 굳이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바쁘게 잠실과 명동을 오간 뒤, 하루의 끝자락에서 마주했던 이곳에서의 야경은 장노출이 돌아가는 그 찰나의 순간에 희망과 위안감을 동시에 가져다줬다. 함께 온 친구들이 결과물을 바지런히 살피며 뷰파인더에 온 신경을 가져갈 때, 더불어 도란도란 들려오는 찰나의 수다로부터 비롯된 여유로운 분위기가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조금 더 날씨가 더워지기 전, 삼각대 지참 후 이곳을 다시 한번 찾아가 봐야겠다. 다시 오지 않을 그 순간을 곱씹으며 말이다.
3. 남산예장공원
4호선 명동역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공간. 얼핏 보면 길목 좋은 곳에 자리해 있는 녹지 공간이구나 싶지만, 그야말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로 한가득 담긴 공간이 자리했다. 위, 아래로 나뉜 공간은 각각 독립운동가와 대한민국의 현대사의 한 장면을 각각 간직했다.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마천루를 옆에 두고 유려하게 휘어진 곡선에 이끌려 간 곳에, 짙은 빨간색에 잠망경 같은 건물의 형태가 눈에 들어왔다. 군사정권 시절 자행됐던 중앙정보부의 고문실을 그대로 재현해 뒀다. 안으로 들어가 보면 당시의 시대상을 담은 영상이 적나라하게 상영되고 있었는데, 잊어서는 안 될 더불어 되풀이돼서는 안 될 그 순간을 곱씹을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공원 아래로 내려가면, 신흥 무관학교를 설립했던 분으로도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의 기념관이 자리했다. 당시 모든 재산을 급히 처분한 뒤 오늘날의 시세 수백억 가량의 돈을 남김없이 신흥 무관학교 설립을 비롯해 독립운동에 쏟아부으신 분으로 당시의 그 흔적들을 전시관에 잘 담아내고 있었다. 전시 막바지에 담긴 내용들 중, 6형제 중 오직 1명 다섯째 이시영 선생만 김구 선생과 함께 광복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내용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 다양한 감정을 가져다줬다.
마지막으로, 남산 둘레길 가장 낮은 곳에 조선 침략의 첨병 역할을 했었던 통감부의 통감 관저가 자리했다. 당시 관저가 있었다는 내용은 덩그러니 놓여있는 안내문구를 통해 알 수 있었고, 공터는 오늘날 예전에 벌어졌던 비극적인 일을 잊지 말자는 차원에서의 '기억의 터'가 자리했다. 일제 강점기 그 시절 억울하게 끌려가 위안부로 희생된 분들의 흔적을 이곳에서 마주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었지만 불현듯 명동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표기된 '기억의 터'라는 문구가 스쳐 지나갔다.
통감관저 터 바로 그 앞에 마련된 비석이 반대로 고꾸라져 있었다. 과거 일본의 외교관으로 조선 통감부를 통해 한일합방에 앞장섰던 인물을 나타냈던 동상이었는데, 이를 통해 공간의 의미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역사적 과오들과 정확히 대척점에 있는 이슈들이 공간을 가득 채우며 그 강렬한 인상을 통해 강력한 의지 또한 확실히 보여주는 듯했다. 때마침 하늘에서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몽환적이었던 남산에서의 시작은 의미심장한 채로 모든 코스의 여정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남산 자락을 따라 걷다 만난 수많은 장소들은 동시에 우리나라에서 서울이 갖는 그 상징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았다. 거대한 규모와 랜드마크의 그 상징과도 같은 서울 N 타워, 더불어 백제 위례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와 조선시대를 거쳐 오늘날 대한민국까지 이어진 수도로서의 시간 까지. 단순히 매력적일 뿐 아니라 내면적으로도 충분히 그 순간의 의미들을 곱씹으며 나름의 결론들을 통해 충만한 시간들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이 큰 도시의 매력은 정말 양파와도 같다. 까면 깔수록 그 새로운 매력들의 끝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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