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시승] 제네시스 GV70 3.5T AWD
강준기 입력 2020.12.17. 08:00 수정 2020.12.17. 14:22
제네시스의 5번째 라인업, GV70을 시승했다. D 세그먼트 중형 SUV로, 앞으로 제네시스 브랜드를 이끌 차세대 주역이다. 경쟁 상대는 BMW X3, 볼보 XC60, 메르세데스-벤츠 GLC 등 프리미엄 SUV. GV80은 부담스럽되 현대 싼타페‧팰리세이드는 끌리지 않는 소비자를 위한 선택지다. 과연 GV70은 제네시스의 4번 타자가 될 수 있을까?
글 강준기 기자
사진 제네시스, 강준기
2008년, 현대차의 대형 세단으로 나왔던 제네시스. 2015년 브랜드로 독립하며 라인업을 하나씩 늘려왔다. 에쿠스에 뿌리를 둔 G90, ‘중심’ G80, 스포츠 세단 G70 등 세단 3인방으로 메뉴판을 꾸렸다. 지난해 첫 SUV 모델인 GV80을 선보였고, G80과 G70은 나란히 신차로 거듭났다. 그러나 경쟁 제조사와 비교하면 여전히 식구가 빈약했다. 특히 SUV는 더더욱.
바야흐로 SUV 시대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신차 판매 가운데 SUV 비중이 50%를 넘었다. 이제 2명 중 1명은 SUV를 산다. 제네시스가 GV80을 선보이긴 했으나 덩치고 크고, 가격도 비싸다. 6천만 원대부터 시작하는 가격은 욕심 조금 부리면 금세 7,000만 원 이상 솟구친다. 반면 GV70은 4천만 원대부터 시작하는 가격으로 소비자를 유혹한다.
먼저 외모 소개부터. 제네시스가 GV80의 ‘동생’을 만든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투싼 정도의 덩치를 예상했다. 그러나 빗나갔다. 투싼보다 길고, 싼타페보다 살짝 작다. 차체 길이와 너비, 높이는 각각 4,715×1,910×1,630㎜. 메르세데스-벤츠 GLC와 비교하면 45㎜ 길고 10㎜씩 넓고 낮다. 휠베이스는 2,875㎜로 공교롭게 같다. 작지 않은 체구를 지녔다.
표정은 얼마 전 부분변경 치른 G70 ‘판박이’. G80 & GV80과 다르게 눈매 가장자리를 매끈하게 굴려 순해 보인다. 화려한 크롬 라인과 그릴 패턴 등이 신선하진 않지만 확실히 고급스럽다. 핵심은 옆태. 두 줄기로 나눈 사이드 캐릭터 라인과 매끈하게 호를 그리는 윈도 라인이 쿠페처럼 멋스럽다. 시승차는 21인치 휠과 255/40 R21 타이어를 네 발에 신었다.
사실 이미지로 봤을 때 뒷모습이 영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러나 실물은 ‘훈남’이다. 가령, G80과 GV80은 램프와 머플러 모양이 자로 잰 듯 ‘딱딱’ 맞았다. 예쁘긴 한데, 계속 보니 금세 질린다. 반면 GV70은 개성이 물씬하다. 눈매와 마찬가지로 테일램프 역시 가장자리를 곡선으로 빚고, 머플러 팁은 세로로 붙였다. 단, 투싼처럼 와이퍼를 스포일러 속에 숨겼으면 어땠을까.
실내 역시 ‘형님’보다 젊다. 고급스럽지만 정형화된 GV80의 인테리어와 달리, 길쭉한 타원형의 공조장치 터치 패널이 신선하다. 시원한 크기의 디스플레이와 3D 디지털 계기판도 포인트. 특히 앞좌석의 착좌감이 현대‧기아차 SUV와 결이 다르다. 방석 길이를 조절할 수 있고, 사이드 볼스터도 몸에 맞게 조일 수 있다. 다이얼 방식의 기어레버도 이제 제법 손에 익는다.
호기심 끄는 편의장비도 가득하다. 세계 최초로 심은 지문 인증 시스템이 좋은 예다. 부부가 번갈아 차를 운행할 때, 지문 인증을 통해 시트 포지션과 운전대, 헤드업 디스플레이 위치, 인포테인먼크 음량 등을 한 방에 맞출 수 있다. 또한, 제네시스 카페이와 연동해 결제도 가능하다. 발레 모드 설정 및 해제 시에도 지문 인증으로 한층 쉽게 조작할 수 있다.
증강현실 내비게이션도 진화했다. 좌우 방향만 띄웠던 기존과 달리 안내 지점과 진출 방향 등 세세하게 표시한다. 또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연계해 앞 차와의 거리 단계도 가상으로 띄운다. 아울러 어드밴스드 후석 승객 알림 기능은 2열에 앉은 어린 자녀의 팔과 다리, 심지어 호흡까지 감지해 부모에게 알린다. 나만의 시간이 필요한 중2는 싫어할 기능이다.
GV70은 남자 성인 4명이 앉기에 충분하다. 2열 무릎공간은 싼타페보다 조금 작지만, 시트 품질이 좋아 더 안락하다는 느낌을 준다. 머리 공간도 넉넉하고, 등받이도 꽤 뒤로 누울 수 있다. 시원한 크기의 파노라마 선루프와 높지 않은 윈도 벨트 라인 덕에 개방감도 좋다. 게다가 통풍 기능까지. 단, 뒷바퀴 굴림 태생으로 센터터널이 봉긋 솟아 3명이 앉긴 힘들다.
트렁크는 와이퍼에 있는 버튼을 눌러 연다. 기본 용량은 VDA 기준 542L. 622L까지 확보한 신형 투싼보다 80L 작다. 그러나 좌우 너비가 넉넉해 체감 상 차이는 크지 않다. 이사(?) 수준의 캠핑 다닐 게 아니라면 이 정도 공간도 충분하다. 한 가지 아쉬운 건 2열의 폴딩 방식이다. 6:4로 나눠 접을 수 있는데, 프리미엄 브랜드인 만큼 4:2:4로 구성했으면 어땠을까.
굽잇길보단 고속도로가 즐거운 GV70
GV70의 보닛 아래엔 V6 3.5L 가솔린 터보, I4 2.5L 가솔린 터보, I4 2.2L 디젤 터보 등 3가지 엔진이 들어간다. 시승차는 3.5T AWD 사양. 8단 자동기어와 맞물려 최고출력 380마력, 최대토크 54.0㎏‧m를 뿜는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가속을 5.1초에 끊는 ‘화끈이’다. 그러나 G80이 그랬듯, 폭발적인 가속력보단 넉넉하고 풍요로운 감각에 초점을 맞췄다.
굽잇길에서도 마찬가지. ‘70’이란 숫자와 GV80보다 다부진 체격 덕분에 민첩한 반응을 기대했지만 나긋나긋 움직인다. 특히 운전대도 제법 돌려야 한다. 코너 안쪽으로 예리하게 찔러 넣는 반응 역시 없다. 즉, GV70은 운전이 즐거운 SUV는 아니다. 다만 기본기가 좋다. 선회 시 뒷바퀴 한쪽에 하중이 걸릴 때, 진득하게 밀고 나가는 감각이 후륜구동 SUV답다.
그러나 에어 서스펜션 없이 21인치 휠을 끼우는 건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다. 승차감이 불편하진 않지만, 노면의 작은 굴곡까지 엉덩이로 제법 느낄 수 있다. 차체의 자잘한 상하 움직임도 안락한 느낌을 방해한다. ‘예쁜’ 겉모습을 조금 양보할 수 있다면, 이보다 작은 휠이 더 나은 선택이다. 아쉽지만 영하의 기온 탓에 꼬부랑길에서 화끈하게 몰아붙이진 못 했다.
GV70의 핵심은 고속주행 능력이다. 안정감이 좋다. 차분하게 눌러 붙이는 감각과 탄탄한 차체 강성 덕에 속도감이 희미하다. 사륜구동 시스템도 한몫 톡톡히 보탠다. 특히 고속도로 주행보조 시스템(HDA 2)의 완성도는 G80보다 높다. 자동 차선변경 지원 기능도 한층 매끄럽게 작동한다. 어지간한 기능은 헤드업 디스플레이에 띄워, 운전 중 계기판 볼 일이 별로 없다.
지난주 GV70 공개 기사 댓글에 일제히 이런 댓글이 달렸다. ‘조선의 마칸’. 한국형 포르쉐 마칸이란 뜻이다. 그러나 스포티한 외모 덕분에 짜릿한 운전재미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 있다. 포근하고 안락하며 고급스러운 중형 SUV다. 따라서 G80이 그랬듯, 차의 성격상 2.5L 가솔린 터보 엔진을 선택해도 후회하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전동화 파워트레인이 없어 아쉽다.
GV70의 가격은 4,880만 원부터 시작하며, 3.5L 터보 엔진에 넣을 수 있는 모든 옵션을 더하면 7,598만 원까지 오른다. 개인적 추천으론 4,880만 원짜리 2.5T 기본 모델에 AWD(300만 원), 시그니처 디자인 셀렉션Ⅰ(170만 원), 파퓰러 패키지Ⅰ(420만 원), 파노라마 선루프(140만 원) 정도 추가해 6,000만 원 이하에 출고하는 걸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