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마라톤 홈페이지 대회 후기란에 올리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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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반. 서울 상암동 하늘공원에는 아직 어둠이 내려 앉아 있다. 서산으로 가는 버스는 이미 도착해
있다. 우리 클럽(하늘과노을)은 매년 봄 지방대회 하나를 선정해 야유회 겸해서 참가한다. 서산에 가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지방대회에 다녀온 후에 회원들 사이에 평이 좋으면 다음해에도 그 대회를
찾는 것이 그동안의 관례였다.
서울에는 미세먼지 주의보가 내렸는데, 검색해보니 다행히 서산이 전국에서 가장 미세먼지 농도가 낮
다. 서울이 114, 서산이 75에 불과하다. 개인적으로는 동아마라톤을 뛴 후에 연습을 제대로 못한 데다,
독감까지 걸려 고생했기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제대로 풀을 뛸 수 있을까 싶지만, 현장에
가서 결정하기로 했다.
새벽 공기를 가르면서 서산공설운동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7시 40분. 단체 팀 가운데 우리 클럽이 가
장 먼저 도착했다. 마라톤 대회 준비를 마친 깨끗한 운동장을 보니 중간에 걷더라도 풀코스를 뛰기로 마
음먹는다.
오전 9시 풀코스 출발. 페이스메이커를 자청한 남편과 함께 서산 운동장을 힘차게 달려 나간다. 작년에도
느꼈지만 코스는 결코 쉽지 않다. 초반 얼마 안가서 나오는 오르막과 내리막부터가 만만찮다. 그래도 거리
곳곳에서 여고생들의 응원과 풍물놀이패의 징과 꽹과리 소리가 정겹다. 사실 요즘 지방대회에 가더라도
풍물놀이패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13km를 약간 지난 지점에서 우회전으로 턴. 여기서부터 다시 13km 가까이국도로 들어갔다 돌아나와야
한다. 기억을 되짚어보면 긴 언덕이 두개 쯤. 그 중에서도 풀코스 반환점인 21km 지점의 큰 언덕을 올라
가는데 헉헉 숨소리가 난다. 하프 기록이 1시간 53분이면 그다지 나쁘지 않다.
그래도 힘을 얻는 것은 고개를 넘을 때 양쪽에 보이는 벚꽃들과 여고생들의 하이톤의 응원 목소리, 풍물
놀이패의 꽹과리 소리다. 자원봉사하는 분들이 모두 고생이지만, 단연코 서산여고생들의 응원은 전국에서
최고다. 완벽한 교통통제로 조용한 시골국도를 달려가는데 하이톤의 여고생 목소리가 몇 km를 뒤따라오
는지 모르겠다. 여기에다 정겨운 풍물소리까지.
두 개의 긴 언덕을 이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넘는다. 서브4를 목표로 했지만 이것보다는 조금 더 당길 수
있을 것 같다. 몇 주일 간 연습을 안 한 다리가 ‘데모’를 하려는데 살살 달래가면서 뛰어간다. 그래도 전력
질주를 하지 않아서인지 국도 양쪽의 벚꽃이 눈에 들어온다. 서울 여의도의 벚꽃은 모두 졌다는데, 서산은
벚꽃이 만개하기 전이라서 그런지 진분홍색이다. 공기가 의외로 맑은데다 햇빛이 구름에 가려서 뛰기에도
적당한 날씨다.
서산마라톤의 특이한 점 가운데 하나는 하프를 지나면서부터 ‘지금 몇 km’라는 표지판보다 ‘몇 km 남았다’
는 표지판이 대부분이었다. 다른 달림이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표지판이 훨씬 덜 힘
들게 느껴졌다. 하프 무렵부터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던 3명의 주자들을 2km를 남겨놓고 뒤로 제쳤다.
마지막 1km는 거의 신음소리가 날 정도였지만 억지로 참으면서 골인지점으로 달려갔다. 3시간 54분 완주.
동아마라톤에서 3시간 49분을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만족스러운 결과다.
지난해처럼 샤워장에서 샤워를 하고 따뜻한 국수를 먹으러 갔다. 샤워장 운영은 단체 참가자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로 고마운 일이다. 시간과 비용이 동시에 절약되기 때문이다. 참가자 별로 먹거리코너를 따로
운영한 덕분에 국수가 남아 있었다. 굳이 아쉬운(?) 점을 들라면 풀코스 먹거리코너가 운동장에서 가장
멀다는 것? 하긴 먹고 바로 나가야 하는 달림이들이라면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올해 봄은 서산 벚꽂과 함께 보냈다. 해마다 우리 클럽은 여의도 벚꽃축제에 맞춰서 일요정모 때
여의도까지 ‘벚꽃달리기’ 이벤트를 벌였다. 올해는 공교롭게 여의도 벚꽃축제와 서산마라톤 날짜가 겹쳐
서 여의도 벚꽃을 보지 못했다. 그 아쉬움을 서산에서 충분히 달랬던 것 같다.
서산에 다녀온 후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진분홍색 벚꽃 무더기에 눈이 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