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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이 좋아서 하나 더 올립니다. ㅎㅎ 10월달 영국 가디언지 기사에요. 뭐 내용은 그다지 새로울게 없지만 Inseperable 이야기도 있고, M&M 이야기도 해서 (가수, 과자 전부) 번역해봤습니다. 즐감하시고 오역은 리플로 피드백 달아주세요.
즐감하세요 ;D
원본기사
http://www.mariahjournal.com/infozone/magazines/2009/oct_guardian_uk/
Guardian
UK, Oct, 2009
못된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정말이에요
정신 나간 디바성 요구들, 불행한
첫 번째 결혼과 에미넴과의 설전
– 솔직한 이 인터뷰에서 머라이어가 모든 것을 밝힌다.
By Emma Brockes
머라이어는 저자세를 취하고 나타난다. – 물론 4인치 짜리 하이힐에, 부풀린 머리와 하키 채만큼이나 반짝거리는 속눈썹을 한 사람 치고는 저자세란 이야기다. 밤 11시 맨하탄 중심가의 이 식당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머라이어는 하루 종일 광고촬영을 하고 자신의 아파트에서 이 골목까지 걸어왔다. (걸었다! 그녀의 어시스턴트에 따르면 이건 예수님이 물위를 걷는 거나 마찬가지란다.) 머라이어는 손목에 커다랗고 웅장한 다이아몬드를 두르고 있었고, 자신의 말을 옮기자면 롱아일랜드의 미용사였던 시절에도 끼고 있으면 스타일을 완성시켜주었을 거라는, 손의 반을 뒤덮다시피 한 나비모양 반지를 끼고 있었다.
“귀여울 거에요” 광고에 대해서 머라이어가 이야기한다. “셰익스피어를 공연하는 건 아니지만……”
빈정거리기는 머라이어와 어울리지 않는다. 2억장의 앨범을 팔아치웠고, 미국에서 가장 많은 싱글차트 1위곡을 보유하고 있는 솔로 아티스트이며 자신의 거의 모든 작업을 공동프로듀싱하고 작사 작곡하는 39세의 이 여인은 20년 동안이나 자신의 영역에서 정상에 서 있다. 머라이어는 분명 빈틈이 없는 사람이겠지만 몇 가지 이유 – 분장실에서의 말도 안되는 요구들에 관한 루머, 토미 모톨라와의 결혼, 변하지 않는 샤방한 표현들 등 – 때문에 머라이어는 지금까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는 물론 머라이어의 작업물에서 나오는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머라이어는 철판마저 구부릴 수 있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녀의 뮤직비디오는 강아지, 고양이, 눈송이와 반짝이들로 가득 차 있고, 이런 과도한 눈부심은 한 자리에서 너무 많이 보게 되면 유니콘에게 난도질 당하는 기분을 느끼게 할지도 모른다. 이런 까닭에 힘든 하루를 보낸 머라이어가 인터뷰에서 쉰 목소리로 빈정거리는 것을 보면 놀라게 된다.
머라이어를 만나기 전, 말도 안 되는 요구사항을 듣긴 했지만, 그녀의 요구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새 앨범에 대한 기밀유지 때문이었다. 몇 주 전, 음반사에 기자들이 하얀 소파에 둘러 앉아 머라이어의 새 앨범을 감상했다. 표정을 어떻게 지어야 적절할는지 결정하기에 굉장히 힘든 순간이었다. (대부분은 눈을 반쯤 감은 채 ‘영혼을 뒤흔드네요’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후에 아일랜드 데프잼 관계자가 내 아파트로 와서는 해적행위를 하지 못하게 내 인터넷 연결을 끊고는 앨범의 나머지 반을 들려주었다. 그 동안 나는 눈을 피하면서 멋진 시간을 보내는 척을 하느라 조심스럽고 민망한 노력을 해야 했다.
머라이어가 말하길, 새 앨범 “불완전한 천사의 회고록”은 처음으로 자신의 화내는 면을 대중에게 보여주는 앨범이라고 한다. 이 앨범은 퉁명스러운 반박과 간결한 모욕으로 가득 차 있다. 머라이어는 “Up Out My Face”라는 곡에서 이별을 고하며, “심지어 엄청 많은 젤과 아크릴을 가진 손톱관리사도 이를 고칠 수 없어”라고 노래한다. “여성들이 크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 거에요, 왜냐면,” – 크게 눈을 굴리고는 – “손톱관리사들은 웬만한 건 다 고칠 수 있거든요.” 머라이어의 목소리는 숙취에 시달리는 메이 웨스트(20세기 초 여배우; http://en.wikipedia.org/wiki/Mae_West )같이 들렸다. 물론 칭찬으로 한 말이다.
이런 태도의 변화는 그녀의 말에 따르자면, 18개월째가 되는 그녀의 가수 겸 연예인 닉 캐논과의 결혼 생활이 자신이 불필요하게 조심스러워 하면서 침묵할 필요가 없게 해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머라이어는 현재 에미넴과의 공공연한 싸움을 하고 있다. 에미넴은 머라이어를 적나라하게 욕했고(b****/shut the **** up), 머라이어도 자신의 싱글에서 그에 대해 답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머라이어가 정말로 화가 나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 빼고는 굉장한 공동 홍보 수단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 사람은 저와 제 남편에 대해서 경멸적이고 유치한 방식으로 노래를 썼어요. 그 사람의 다른 노래보다 수준도 떨어지고요.” 머라이어의 새 앨범의 첫 싱글, “Obsessed”는 자신의 침실에서 힙합퍼 차림을 하고 머라이어를 따라다니며, 후드를 뒤집어 쓰고 머라이어를 훔쳐보는 불쌍한 남자에 관한 노래다. “전 이 노래가 그 사람에 대한 거라고 한번도 말한 적이 없어요. 그 사람을 막연하게 알긴 했지만, 8년 전에 완전히 플라토닉한 수준의 관계였고 더 이상 제 친구도 아니에요. 전 그냥 ‘그래, 뭐라든지’ 이런 거죠. 8년 전 이야기를 가지고 노래를 쓰다니요. 아무 이유도 없이요, 아무 이유도 없이.”
머라이어는 자신의 남편이 아직도 “자기 눈에 띄면 그 사람을 패버릴 거래요. 복싱도 하거든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보세요, 차이점은 제 노래는 라디오에서 나오지만 그 사람 노래는 들으려면 찾아 다녀야 한다는 거에요.” 아야.
머라이어의 태도가 날카로워졌다면, 그녀의 보컬스타일은 언제나처럼 강박적으로 음(喑)사이를 날아다니고, 아무런 경고도 없이 박쥐만이 들을 수 있다는 “호루라기 음역대”로 뛰어오른다. 그녀가 지닌 음역대를 생각하면 자랑하지 않기도 어려울 것이다. 머라이어 조금은 조심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그런가요……”
앨범유출을 막기 위해서 그렇게 애써야 했을까?
“제가 유출을 막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제가 너무 심했다고 보세요?
아니. 그럴지도 모르지. 조금은. 새 앨범에는 머라이어가 갑자기 5옥타브를 뛰어 오르는 노래가 하나 있었다.
"I Want To Know What Love Is요?" (새 앨범은 끝내주는 포리너곡의 리메이크로 끝난다.)
아니다.
“아, Inseparable을 말하는 거군요. 뭐 그냥 한 대목이 딱 끝나고 바로 높은 음역대로 올라가는 거에요. 그냥 하나 있는 오르막일 뿐이에요. 저는 그냥 듣고 나서 바로 가거든요. 제가 오버했냐고요? 그럴지도 모르죠. 전 백보컬을 자주 고음역대에서 하곤 해요. 언제나 그래왔고요. Dreamlover때도 그랬고요.” 머라이어는 몇 마디를 부르고 나서는, “두 옥타브 높게 부르되, 묻혀있어야 해요. 그러면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죠.”라고 말했다. 머라이어는 그게 팬들이 듣고 싶어하는 불꽃같은 화려함이라고 말했다. 그런 걸 가라앉혀도 좋을 것이란다.
그런 고음들은 머라이어가 어렸을 때 장난으로 헬륨을 마신 것처럼 어머니에게 말을 했을 때 발견한 재능이다. “거기다 작은 부엌에서 – 제가 살던 집은 정말 작았어요 – 그런 식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때가 있었어요. 목소리가 나오는 곳이 완전히 달랐거든요.”
그녀의 어머니는 줄리아드에서 공부하고 링컨 센터에서 데뷔를 한 오페라가수다. 자신의
딸의 비범한 재능을 당연히 알아챌 수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뭐라고 했을까? 머라이어는 웃으며, ”그러다 목을 다친다고 하셨어요.”라고 말했다.
머라이어가 아직까지 10대였을 때, 소니 뮤직과 계약할 당시 토미 모톨라는 그 회사의 사장이었다. 1993년 머라이어는 그와 결혼한다. 머라이어의 표현에 따르면 토미 모톨라와 결혼한다는 것은 유명세를 타게 되었을 때 갖고 가야 할 조건들과 굉장히 비슷하게 들렸다. 어린아이 취급, 통제, 부유함과 끔찍한 압박들 말이다.
그들은 1998년에 이혼하고 과거에 대한 상호간의 이해에 도달하긴 했으나, 여전히 끊임없이 머라이어를 괴롭히는 것들이 남아있다. 단적인 예로 머라이어는 아직까지 그녀의 친구들이나 가족들 중 누구도 자신을 위해 나서지 않은 것에 화가 나있다. “아무도 이게 저에게 맞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지 않았어요. 전 정말 결혼을 그렇게 원한 건 아니었거든요. 그렇지만 그 사람은 원했던 거죠. 마치 우리가 결혼을 해야만 한다는 것처럼요. 전 결국 결혼식이나 드레스 같은 것들 때문에 결혼을 하고 만 거에요”
둘의 나이차는 21살이나 되었다. 머라이어가 페미니스트적 원칙대로 그들의 저택의 반에 대해서 돈을 내겠다고 주장했다는 게 사실일까?
“그럼요. 굉장히 어리석은 소녀였죠.” 머라이어는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왜 그런 말을 하게 되었을까?
“그게 정말 미친 듯이 비싼 집이었기 때문이죠. 전 어느 정돈지 생각조차 못했어요. 제가 그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들, 그러니까 결국은 이만큼을 내야 한다고 들었다고 해도 전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을 거에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사람이 갑자기 노래를 좀 만들어서 반년에 백만달러를 벌게 되었으니…… 전 그냥 ‘와우, 좋아요. 이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면 그 돈의 반을 낼게요.’ 이런 거죠. 왜냐면 제가 자랄 땐 제 물건이란 건 하나도 없었고 전 절대 쫓겨나고 싶지 않았거든요.”
토미 모톨라는 그렇게 하도록 했을까?
“그 사람은, ‘좋아, 알았어’라고 대답했어요. 그리고 나서 엄청난 청구서를 받게 된 거죠. 조명비까지 전부 다였어요. 전 그렇게 하고 싶었고요. 그렇지만 좋은 끝을 보진 못했죠. 악. 우리가 낸 돈보다 더 적게 받고 팔았거든요. 누가 뭘 가졌는진 모르지만 제가 뭘 가졌는지는 알아요.”
토미 모톨라가 더 유리한 조건으로 재산을 가져간걸까?
머라이어는 웃으며, ”그런 말은 안 했어요.”라고 말했다.
머라이어의 부모님은 그녀가 어렸을 때 이혼하긴 했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가끔씩 찾아와서 머라이어를 데리고 하이킹이나 경주장 같은 곳으로 여행을 다녔다. 머라이어는 성인이 될 때까지 아버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그녀는 레스토랑에서 두 번째 콜라를 시킬 때마다 아버지가 생각난다고 했다. “아버지랑 레스토랑에 가면 그럴 수 없었거든요. 언제나 음료수는 딱 한 잔 뿐이었어요. 배부르지 않게 조금씩 마셔야 했거든요. 아버지는 그런 분이셨어요. 터프한 군인이셨죠. 아버지가 정말 그리워요. 돌아가시기 직전에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내면서 친가 쪽 가족들에 대해서 많은 걸 알게 됐어요.”
그녀의 어머니는 중서부에서 자랐다. “어머니는……음……” 잠시 표정을 찡그리더니, 이내 밝아지며 말했다. “미국의 중심이 어디더라? 일리노이!” 다시 얼굴을 찌푸린 채로 말했다. “제가 아는 사람들 중 피부가 가장 하얀 사람들 사이에서 자랐어요.” 그녀의 아버지는 아프리카 계 미국인/베네수엘라 인이다. “전 피부색이 매우 옅은 흑인 여성이에요.” 그녀가 어렸을 때, 머라이어는 미국을 포함해서 전세계에서 아직도 문제가 되고 있는 자신의 혼혈 인종에 대해 알고 있었다. 머라이어는 일상적으로 한 인종에 속하려고 “굉장히 노력”한다는 비난을 받는다.
“백인들은 혼혈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요. 저희 어머니는 백인에요. 정말 제대로 된 아일랜드 인이고 아일랜드를 사랑하시죠. 막 아일랜드, 예! 이러시고요. 아일랜드 국기를 흔들고 “When Irish Eyes Are Smiling”을 부르세요. 그것도 좋아요. 저도 그런 면을 존경하니까요. 그렇지만 저를 이루는 다른 한 부분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해요. 저희 아버지는 흑인 남성으로 인식되었어요. 누구나 보면 아니까 아무도 아버지께 여쭈진 않았죠. 그렇지만 저한테는 항상 물어봐요. 아버지랑 함께 있으면 사람들은 절 굉장히 이상하게 쳐다보곤 했죠. 굉장히 안 좋았어요. 어렸을 때 전 금발이었고, 절 한 번 봤다가 아버지를 한 번 보고는 기분 상해했어요.”
머라이어는 오바마 대통령과 이 이야기를 “해야 된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선출되었을 때, 머라이어는 감격과 기쁨에 차올랐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린 이게 현실이 될 거라고 믿지 않았어요. 언제나 이런 걸 이루지 못하고 이루고 싶어하지 않는 그룹이 있어요. 그런 사람을 지지하려면 두 인종 모두의 지지를 잃게 되고, 어떤 사람들은 정말 그런 걸 원하지 않거든요. 전 일단 자신의 아이들이 다른 인종의 사람들과 같이 집에 오는 걸 원치 않는 게 옳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신들의 뿌리를 지키려는 사람들을 이해하지만, 저 같은 경우는 그것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아마도 그게 제 성공의 열쇠였는지도 몰라요. 성공하면 인정받을 테니까요.”
지금은 어떨까? 머라이어는 비꼬며 말했다. “보그에 그게 실렸어요. 그래서 전 여기 앉아서 이제 좋네, 괜찮네 이렇게 생각하고 있죠.”
머라이어의 아버지는 유언장에 머라이어에게 아무런 돈도 남기지 않았다. “아버지께서는 제가 독립적으로 부유하다고 생각하셨어요. 놀랍게도 꽤나 재산이 많으셨지만, 돈을 남기시진 않으셨어요.” 머라이어의 아버지가 머라이어에게 물려준 것은 그의 차였다. “아버지의 차는 아버지께 굉장한 의미가 있는 거였어요. 37년 형 포르쉐인가 그럴 거에요. 아버지는 그 차를 타고 어머니를 만난 브루클린 하이츠에 가곤 하셨죠.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항상 차를 만지고 계셨던 게 기억나요. 이젠 제가 차를 가졌으니 제가 고치고 있어요. 아름다운 차에요.”
그녀의 부모님이 이혼한 이후에, 머라이어와 그녀의 어머니는 어머니가
여러 일을 다녔던 롱아일랜드 동네에 정착하기 전까지 13번이나 이사를 다녀야 했다. 머라이어의 어머니는 머라이어가 노래를 할 수 있도록 격려했고, 자신의
딸의 목표를 위해 “만약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하게 될 때를
생각”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머라이어는 어머니가 강요하는
분은 아니라고 말했다. “전 정말 권위에 반항하거든요. 제가
맺어왔던 몇몇 관계를 생각해보면, 좀 아이러니하긴 하지만요.” 그녀의
아버지는 머라이어에게 수학숙제에 집중하라고 했고, 그녀의 선생님들은 그녀의 꿈이 “몽상”이라고 말했다. 10대
시절의 머라이어는 낮에는 식당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스튜디오로가서 노래를 작곡하고 오전 7시까지 녹음을
하고, “한, 두 시간을 눈을 붙였다가” 다시 시작했다. 20대 중반이었던 뮤지션 친구들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거야?”라고 묻자 머라이어는
백주대낮에 빈둥거리는 그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너희들처럼 되고 싶지 않으니까.”
그녀의 데뷔 앨범 “Mariah Carey”는 4곡의 넘버원 싱글을 기록했다. 두 번째 앨범의 첫 번째 동명 타이틀 싱글 “Emotions”도 1위를 기록하면서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데뷔 후 연속 다섯 곡의 싱글 차트 1위곡을 배출한 첫 번째 아티스트가 되었다. 그렇지만 머라이어는 유명세를 “느낄 수 없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토미 모톨라가 교외의 집에 자신을 “가둬놓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결혼했을 때는 더욱 심해졌다. “갑자기 전 부인이 되고, 적절하게 행동해야 했어요. 그치만 전 그러기엔 너무 어렸죠.” 주말마다 그녀는 “나뭇잎장식을 바라보느니” 친구들과 시내로 놀러 나가길 원했다. 머라이어는 웃으며 말했다. “이제야 나뭇잎장식을 감상할 수 있게 됐어요. 그렇지만 그 때 당시엔 뮤직비디오를 촬영한 다음에 그냥 그렇게 감상만 하고 싶진 않았던 거죠. 나가서 놀고 싶기도 하잖아요.”
그녀를 그저 보호하려던 건 아니었을까?
“그랬을 거에요. 딴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저한테 일어났으면 전 아마 엉망진창이 되었을 거에요. 그게 [그 사람이] 피하려던 거기도 하구요.” 머라이어는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 들게 되었다. “이리 와라, 저기로 가라, 여기로 가라. 가끔 친구가 놀러 올 수 있긴 했어요. 두 달에 한 번쯤? 그건 그냥 맛보기에요. 그건 저의 – 뭐라고 부르지? – 그 당시 제 인생에 대한 추억의 한 조각이에요.”
결혼이 파경을 맞은 이후, 머라이어는 몇 년 간 호텔에서 살았다.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결혼 당시의 집을 가졌던 그녀는 새로운 집을 만들만한 심적 여유가 없었다. 그 집에서 가지고 나온 거라곤 “어렸을 적 사진 같은 자잘한 것들”뿐이었다. “바로 그게 멍청했던 거죠. 아니면 순진했던가. 전 그냥 ‘아 그저 날 자유롭게 하면 돼’ 이렇게 생각했던 거에요.”
새 밀레니엄이 밝아오고, 탄탄했던 성공의 10년이 지나자, 머라이어는 자신의 경력의 첫 재앙을 겪게 된다. 동명의 앨범과 함께 세상으로 나온 전기적 영화 “Glitter”는 개봉된 영화 중 가장 비웃음을 당한 영화 중 하나가 되었다. 그 때 당시 머라이어는 자신에게 실패란 단어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 솔직하게요? 실패작이었죠. 그렇지만……” 머라이어는 자신이 지나친 공격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앨범이 9월 11일에 발매되었고, (관계없는)어둠의 세력이 머라이어를 이제 한 물 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많은 가수들이 영화를 개봉했다가 바로 DVD매장으로 들어갔는데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은 걸 봐왔어요. 그저 그 사람들 팬이 사면 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저한테는 너무나 많은 관심이 있었고, 저를 향한 부정적인 기사를 내보내고 싶어했던 익명의 사람들이 있었죠. 그 전까지는 언론이 절 물어뜯은 적 없이 잘 지내왔었거든요.”
반격은 거셌다. 머라이어의 무대 스타일과 빛나는 물건들에 대한 열망, 귀여운 요소들까지 모두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저한테 왜 그렇게 나비에 집착하냐고 물어요. 전 집착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거라고 대답하죠. 사람이 뭘 좋아하지도 못하나요?” 머라이어가 분개하며 말했다. 머라이어는 4살 때 눈에 모래 한 줌이 들어갔을 때와 비슷한 방법으로 그 시기를 잊었다. “다 극복했어요.” 그리고 비평적으로 성공한 10번째 앨범, “The Emancipation of Mimi”도 이를 도왔다.
머라이어는 이제 다시 연기에 도전한다. 곧 개봉될 “프레셔스”에서 그녀는 할렘의 사회복지사 역을 맡았다. 이 역할은 전혀 세련되지 않은, “글리터”의 기억과는 전혀 딴판의 모습이다. 사파이어가 쓴 소설, “Push”를 영화로 옮긴 “Precious”는 학대당하는 비만 10대 청소년이 문맹퇴치 프로그램과 그녀를 둘러싼 사회복지사의 노력으로 도움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이미 지난 달 토론토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했으며, 오프라가 홍보를 하고 있다. 머라이어를 캐스팅했다는 것이 미심쩍을 수도 있지만, 힘없는 머리카락과 액세서리가 없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충격에서 벗어나게 되면 머라이어의 연기가 훌륭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머라이어는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는 지친 사회복지사 연기를 꽤 잘해낸다. 머라이어는 스타일과 눈물에 대한 여배우 같은 반응들을 보였다. “진짜 완전 못생기게 나왔어요! 그 앞머리를 하고서는 감독(리 다니엘스)이 내 눈 밑에 다크서클을 그렸다니까요.”
그건 진짜 머라이어의 콧수염이었을까?
“아뇨, 리 다니엘스가 붙이라고 한 거에요.” 머라이어는 정말 충격을 받은 듯 했다. “리는 정말 그걸 즐겼어요. 전 계속 거울을 피해 다녔고요. 이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서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니까요. 몰래 블러셔를 바르려고 했던 때가 있었는데, 딱 걸리는 바람에 제가, ‘프레셔스도 분장했잖아요!’라고 했죠. 어쨌든 전 항상 대중들에게 보여지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제 외모에 정말 자신이 없거든요.”
영화 속 어머니의 역할은 모니크가 맡았고, 프레셔스 역에는 무명의 가버니 시디비가 캐스팅되었다. 머라이어에게 가장 어려웠던 씬은 이 둘과의 상담을 하면서 서로 소리를 지르는 씬이었다. “전 금욕생활을 하려고 했어요. 촬영 중간에 껴안고 울었거든요. 제 머리 속에서는 ‘와이스는 이들 앞에서 울 수 없어. 그러면 이들이 이기는 거고 일을 할 수 없게 되잖아’ 라고 생각했어요.” 감독은 머라이어에게 와이스 역에 헬렌 미렌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말했다. 헬렌 미렌이 그 역을 맡은 것을 상상하기가 어렵다고 하자 머라이어가 대답했다. “아무 역이나 다 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쨌든 굉장히 벅차오르는 말이었어요.”
한 씬에서, 머라이어에게 영화가 지닌 인종적 이슈에 관한 질문이 의도적으로 날아든다. 감독은 프레셔스가 자신의 사회복지사에게 그녀는 정확히 “어떤 인종의 사람인지” 묻는다. 그리스 인, 유대인, 히스패닉? “맞아요. 그런 질문 받은 적 있어요.” 다르게 보였던 어린 시절의 머라이어의 연약함이 그대로 남아있다.
머라이어가 더 성공할수록, 그녀 자신은 다른 사람에게서 정직한 의견을 얻기가 힘들어진다. “음. 맞아요. 음악하는 친구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있긴 해요. ‘내가 진실을 말해주는 사람이 돼야지.’ 그러면 좀 짜증나기는 해요.”
머라이어가 못되게 굴면 누군가 그녀에게 그렇다고 말해준다는 건가?
이 질문에 머라이어는 놀란 표정이었다. “못되게 굴지 않으려고 해요. 정말이에요 언제나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려고 하죠. 저도 정말 디바 같은 행동들을 봐오긴 했지만, 제가 그런 사람인 것 같진 않아요. 이런 신발을 신고 뛰어다니는 그런 버릇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제가 유명해지기 전에도 이러고 다녔거든요. 정말이에요.” 머라이어는 웃음을 터트렸다.
마지막 질문은 분장실에서의 소문에 관한 질문이었다. 정말 머라이어는 백스테이지에서 액세서리악 고양이나 강아지를 요구한 적이 있었을까? “아뇨. 뮤직비디오에선 그랬을지도 모르죠.” M&M이 가득 찬 그릇? “전 M&M은 먹지도 않아요.” 카페트는? “맞아요. 제가 호텔 바닥에 꽃잎이 뿌려져 있지 않으면 들어가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하더군요. 전, ‘제가 정말 새벽 3시에 내가 뭘 밟고 걸어가는지 신경이나 쓸 것 같은가요?' (would give a s***) 라고 했죠.”
머라이어는 그 엄청난 힐을 신고 일어서서는 식당 안을 돌아다녔다. 다른 테이블에 그날 저녁 있었던 생일파티의 흔적을 발견하자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정신이 나간 것처럼 식당을 둘러보며 말했다. “정말 예쁘네요. 전 샴페인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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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됴타됴타 ㅠㅠㅠㅠㅠㅠㅠ
머라이어는 자신의 남편이 아직도 “자기 눈에 띄면 그 사람을 패버릴 거래요. 복싱도 하거든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보세요, 차이점은 제 노래는 라디오에서 나오지만 그 사람 노래는 들으려면 찾아 다녀야 한다는 거에요.” 아야. <<<<<<<<듣던 중 반가운 소리............상루저 m&m씨리얼 닉군한테 말근육으로 대갈통을 허리케인처럼 몰아쳐져야 할텐데
퍼가요~_~
아 진짜 잘 읽었습니다 감사해요 ㅎㅎㅎ 그나저나 중간에 "그랬을 거에요. 딴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저한테 일어났으면 전 아마 엉망진창이 되었을 거에요. 그게 [그 사람이] 피하려던 거기도 하구요" 이 부분이 인상에 남네요...... 어쩌면 머라이어도 어린시절 갑작스런 성공으로 흥청망청대다 추락하고 마는 다른 가수들처럼 될 수 도 있었겠지만, 토미의 보호(??)가 있었기에....그러나 그게 너무 심했다는게 문제였겠죠 ㅠㅠㅠ 머라이어라는 사람에 대해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려용!
으아..ㅠㅠ 잘읽었습니다..ㅠㅠ
정말 인터뷰 중 단연 최고네요,
번역 감사요^^ 완전!!! 능력자님 ㅋㅋㅋ 이얍!! 감사요 ㅋ
번역하느라 고생하셨어요... 유머러스하고 대단하지만, 여전히 여리기도 한 머라이어... 그렇게 크게 성공했는데도 위축되있는 느낌이 들어 조금은 씁쓸하네요... 교만한것보단 낫지만-ㅋㅋ
와..뒤늦게 봤네요..정말 잘 읽었습니다^^ 정말 쉬크범님 처럼 무슨 무릎팍 도사같았어요 ^^
좋은 인터뷰 잘 봤습니다. 머라이어는 인터뷰가 진국인 것 같아요.
ㅠㅠ 감사합니다 ^^ 오랜만에 정말 새로운 정보들도 얻을 수 있었는 것 같아요 ^^
i love this!
와우 좋아용! ㅋㅋㅋ
으아 이런 능력자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덕분에 시간 가는지도 모르고 스크롤 압박도 안받은 채 다 읽었어요! 감사드려요
정말 무릎팍 같네요! 본역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 덕분에 재밌게 봤어요! 머라이어가 참.. 저랑 비슷한 점도 많군요! 호홓[.....]
최고!!!! 머랴언니 정말 제가 생각한것과 비슷한느낌이야ㅋㅋㅋㅋㅋ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