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주 "안전 안내문자는 재난 아니다", 누리꾼들 "온대도 말려야 할 판에"
충남 공주시 다세대 주택 침수, 보트 이용해 구조작업 벌이는 119 대원들 (서울=연합뉴스) 15일 많은 비로 침수 피해가 발생한 충남 공주시 옥룡동 다세대 주택 단지에서 119 대원들이 보트를 이용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2023.7.15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공주=연합뉴스) 이주형 기자 = 심각한 호우로 예약했던 펜션을 갈 수 없게 된 소비자가 황당한 이유로 환불을 거절당한 사연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한 온라인커뮤니티에는 '충남 펜션 호우 재난 사태에 환불 불가라는 업주'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게재됐다.
17일 게시글에 따르면 지난 15일 충남 공주의 한 펜션을 이용하기로 했던 A씨는 전날 악화하는 기상 상태를 보고 업주 B씨에게 예약취소와 환불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B씨는 '이용 전날 전액 환불은 불가하다'고 안내하며 당일 천재지변으로 못 오게 되면 환불해주겠다 약속했지만, 하루 만에 말을 바꿨다.
15일 오전부터 공주 옥룡동, 금성동 등 곳곳이 물에 잠겨 50대 주민 1명이 숨지고 수백 명이 대피할 만큼 긴박한 상황이 이어졌다.
이틀간 500여㎜의 물폭탄이 쏟아지며 금강교에는 홍수경보가 발효돼 도로 곳곳이 통제되고 농지 침수, 시설 피해, 공산성·무령왕릉 등 세계문화유산마저 곳곳이 물에 잠기고 토사 유출 피해를 겪었다.
폭우로 침수된 공주 공산성 내 만하루 (공주=연합뉴스) 15일 새벽 충청권에 쏟아진 폭우로 충남 공주시 공산성(사적 12호) 내 만하루가 물에 잠겨 있다. 지난 13일 오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 공주시에는 현재 호우경보가 발효 중이다. 2023.7.15 [공주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sw21@yna.co.kr
A씨의 계속된 환불 요청에도 B씨는 "펜션으로 오는 모든 방향의 길이 정상 진입할 수 있어 이용에 전혀 지장이 없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면서 "자꾸 천재지변이라고 하는데 정부가 보내는 문자는 안전에 유의하라는 '안전 문자'"라며 오히려 A씨를 나무라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A씨는 "3시간 이동해서 공주까지 가야 하는 상황에 아침부터 금강 홍수경보, 주민대피, 교통통제 등을 알리는 재난 문자가 10개 이상 왔는데 이게 천재지변이 아니면 무엇이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A씨의 사연이 알려지자 누리꾼들은 "제가 공주 사는데 지금 침수돼 아주 위험한데…", "오늘만 장사하고 마는 거냐", "손님이 온다고 해도 말려야 할 판에 조만간 문 닫겠네"라며 분노했다.
충남 공주에 쏟아진 물 폭탄 (공주=연합뉴스) 이주형 기자 = 15일 오후 충남 공주시 옥룡동 주택가가 이날 새벽부터 쏟아진 폭우로 물에 잠겨 있다. 2023.7.15 coolee@yna.co.kr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해 숙박시설 관련 소비자 피해구제를 신청한 건수는 모두 1천428건으로 이 중 40%가량이 여름 휴가철과 장마·태풍이 겹치는 7∼9월에 집중됐다.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분쟁해결기준 규정상 호우, 대설, 태풍 등의 이유로 숙박·오토캠핑장 시설예약을 취소할 경우 전액 환급할 수 있다.
다만 법적 구속력이 없다 보니 환불을 놓고 여전히 소비자와 업주 간 갈등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공주시 관계자는 "15일 공주는 호우경보가 발령 중이어서 전액 환불이 가능한 상황이었다"며 "업주들이 규정을 알면서도 환불을 안 해주는 경우가 종종 있어 소비자 대신 찾아가 설득하고 중재하기도 한다. 1372소비자상담센터를 통해 문의하면 피해구제를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밝혔다.
물 폭탄에 보트까지 동원했지만 (공주=연합뉴스) 이주형 기자 = 15일 오후 충남 공주시 옥룡동 주택가가 이날 새벽부터 쏟아진 폭우로 물에 잠겨 있다. 2023.7.15 coolee@yna.co.kr
도로 끊어지고 집 사라져... 희망 잃지 않은 주민들, 수해 복구에 힘 보태
[조정훈 backmin1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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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3일부터 내린 집중 호우로 산사태가 나면서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의 한 주택이 무너져 내렸다. |
ⓒ 조정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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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3일부터 내린 집중 호우로 산사태가 나면서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마을의 한 집이 무너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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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내린 집중 호우로 경북 예천에서는 9명의 사망자와 8명의 실종자가 발생했다.
산사태가 발생한 예천군 감천면 진평리와 벌방리에서도 사망자가 발생하고 실종자가 나왔다.
소방당국은 소방인력과 군, 경찰 등을 동원해 실종자를 찾고 있지만 17일 오후까지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곳곳에는 도로가 끊어져 있고 차량이 뒤집혀 종잇장처럼 구겨져 있으며 계곡 상류에 있었던 집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곳 주민들은 마을이 생기고 수백 년 만에 처음 겪는 수해라며 구멍 뚫린 하늘을 쳐다보며 눈물을 흘렸다.
윤석열 대통령은 17일 오전 감천면 벌방리 노인복지회관을 찾아 빠른 피해 복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주민들을 위로했다.
박우락 벌방리 이장은 "500년 마을 역사에 이런 큰 상처는 처음"이라면서도 "새로운 마을을 만들 기회"라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마을 주민들도 자신의 피해보다도 이웃의 피해를 더 걱정해주며 빠른 복구를 위해 함께 힘을 보태자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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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3일부터 집중 호우로 산사태가 나 피해를 입은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의 한 주택 창고가 무너져 내리면서 창고 안에 있던 승용차가 뒤집어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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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중 호우로 산사태가 난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에 자동차가 종잇장처럼 뒤집혀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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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중 호우로 피해를 입은 경북 예천군 감천면 지평리의 한 창고가 무너져 지붕이 내려앉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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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3일부터 내린 집중 호우로 경북 예천군 감천면 지평리에서 사망자와 실종자가 나오자 소방당국이 실종자를 찾기 위해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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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3일부터 내린 집중 호우로 피해를 입은 경북 예천군 감천면 지평리 계곡에서 50사단 장병들이 실종자를 찾기 위해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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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3일부터 내린 집중 호우로 산사태가 난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마을의 한 집안에 토사가 가득 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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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중 호우로 피해를 입은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에서 한 주민이 밀려내려온 토사를 삽으로 퍼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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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중 호우로 피해를 입은 경북 예천군 감천면 지평리의 도로가 막히자 17일 포크레인으로 정비를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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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마을 모습. 김영동 기자
17일 오전 찾아간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는 마을 전체가 폐허였다. 종이처럼 구겨진 승용차, 곳곳에 나뒹구는 흙 묻은 벽돌과 기와 파편들이 외신 사진 속 폭격 맞은 우크라이나 마을을 떠올리게 했다.
“그저께(15일) 새벽이었다. ‘꽝꽝’ 하고 마을 전체가 울리는기라. 깜짝 놀라가 잠을 깼는데, 현관문이 사라지고 없드라. 그라더니 집 안으로 흙탕물이 막 쏟아져 들어오는기라. 밖으로 뛰쳐나가 보니 담벼락하고 창고가 사라져삣드라. 저기쯤 있던 수로에서 물이 막 억수로 솟구쳐 오르는데, 사방은 칠흙처럼 어둡제, 와, 정말로 무서벘다.” 흙더미에 쓸려 나간 집터를 바라보며 산사태 상황을 설명하던 윤제순(69)씨의 표정에선 이틀 전 공포가 고스란히 되살아나는 듯했다.
84가구 146명이 살던 벌방리에선 지난 15일 새벽 3시쯤 마을 뒷산이 무너져 내려 맨 위쪽에 살던 주민 2명이 실종됐다. 폐허로 변한 마을은 구조당국이 사흘째 굴착기 등을 동원해 실종자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소방관 임아무개씨는 “실종자가 토사에 휩쓸려 내려갔을 가능성도 있어 마을 아래 흐르는 하천에서 탐침봉 등으로 수색 작업도 함께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17일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마을 모습. 김영동 기자
산사태에 실종된 윤아무개(62)씨 아들은 “어제 오후부터 엄마한테 전화하면 연결음이 한번 울리고 끊어진다. 마을 위쪽 집 근처를 한번만 더 수색해줬으면 좋겠다”고 울먹였다. 실종된 윤씨는 2년 전 경기도 안양에서 이곳으로 귀농했다고 한다. 윤씨보다 4년 앞서 귀농했다는 안춘모(71)씨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 집을 빠져나왔는데, 순식간에 물과 흙더미가 밀려왔다고 한다. 흙더미에 쓸려 가던 남편은 나무줄기에 걸려 목숨을 건졌는데, 아주머니는 그러지 못했다. 바르고 친절한 사람이었는데 가슴이 미어진다”고 했다. 벌방리 이장 박우락씨는 “마을 역사가 500년이 넘는데, 이런 난리는 처음이다.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오후에 찾아간 예천군 은풍면 은산리는 마을 앞 왕복 2차로 도로의 일부 구간 1개 차로가 옆을 흐르는 한천의 거센 물살에 유실된 상태였다. 이곳에선 지난 15일 새벽 3시쯤 차를 타고 가던 주민 2명이 무너진 도로와 함께 한천에 휩쓸리며 실종됐다. 구조대원들이 드론을 띄워 한천 주변을 살피는 가운데, 경찰관들이 천변을 탐침봉으로 훑으며 실종자 수색을 벌이고 있었다.
17일 경북 예천군 은풍면 은산리 모습. 김영동 기자
“불어난 냇물에 아래쪽 흙이 쓸려 나가고 도로에는 아스팔트만 남아 있었던 거 같아. 그 밤에 그게 보이겠나? 그러니 암것두 모르고 지나가다가 한천으로 떨어져 급류에 휘말린 거겠지.” 주민 장용지(82)씨의 설명에 또 다른 마을 주민이 말을 이어받았다. “그 냥반들 몸이 아파가 대구서 요쪽으로 요양 왔다카드라. 온지 두달밖에 안 됐다카던데.”
예천읍의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아무개(69)씨 빈소에선 남편 등 유족이 슬픔을 가누지 못했다. 김씨는 효자면 백석리에 살다가 산사태에 희생됐다. 김씨의 여동생은 “구조됐을 때는 언니가 살아 있었다. ‘너무 아프다, 아프다’ 하다가 숨이 끊겼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번 폭우로 경북에서는 19명이 숨지고 8명이 실종됐다. 현재 870여가구 1350여명이 임시 대피소에서 생활하고 있다. 구조당국은 1500여명을 투입해 실종자 수색 등 구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17일 경북 예천군 감천면 진평리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는 모습. 경북소방본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