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어제는 기생 진홍과 시인 백석의 사랑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은 길상사 경내를 두루 둘러 보도록 합니다.
스님이 입적한 길상사는 본래 ‘밀실정치의 현장’ 요정 대원각이었지요. 그러나 법정스님의 대표 산문집 ‘무소유’ 가 다리 역할을 해 이후 길상사가 됐습니다. 대원각 소유주였던 김영한(1916∼1999)씨는, 16살 때 조선권번에 들어가 진향이라는 이름의 기생이 되었고, 월북시인 백석(1912∼1995)과 사랑에 빠져 그는 한국전쟁 이후인 1953년 중앙대 영문과를 졸업해 ’백석, 내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 ’내 사랑 백석’ 등의 책을 내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그가 지금의 길상사 자리를 사들여 운영하던 청암장은 제3공화국 시절 대형 요정 대원각이 되었습니다. 김영한씨와 법정스님의 인연은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요. 법정스님의 ’무소유’ 를 읽고 큰 감명을 받은 김씨는 1987년 미국에 체류할 당시, 설법 차 로스앤젤레스에 들른 법정스님을 만나 대원각 7000여평(당시 시가 1000억원)을 시주하겠으니 절로 만들어달라고 요청하게 됩니다. 하지만 법정스님은 줄곧 시주를 받을 수 없다고 사양하다가 1995년 마침내 청을 받아들여 법정스님의 출가본사인 송광사 말사로 조계종에 ‘대법사’ 를 등록하게 됩니다. 이후 1997년.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 로 이름을 바꿔 12월14일 창건법회를 갖게 되구요, 길상사 창건법회 날 김영한씨는 법정스님으로부터 염주 하나와 ’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을 받았습니다. 당시 그는 수천명의 대중 앞에서, “저는 죄 많은 여자입니다. 저는 불교를 잘 모릅니다만… 저기 보이는 저 팔각정은 여인들이 옷을 갈아입는 곳이었습니다. 저의 소원은 저곳에서 맑고 장엄한 범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김씨는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인 1999년 11월14일, 목욕재계 후 절에 와서 참배하고 길상헌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습니다. 유골은 49재 후 유언대로 길상헌 뒤쪽 언덕에 뿌려졌고 길상사는 유골이 뿌려진 자리에 조그만 돌로 소박한 공덕비를 세우고 매년 음력 10월7일 기재를 지내고 있습니다.법정스님은 길상사 창건 후 회주(법회를 이끄는 스님)를 맡아 정기법회에서 법문을 들려줬습니다. 2003년 12월 회주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길상사에서 열리는 대중법회에 참석해 법문을 해왔습니다. 이어 생의 마지막 시간도 길상사에서 보내게 됩니다. 솔잎 사이로 파고드는 여름 햇살이 그늘진 응달을 드문드문 차지한 곳에 대원각을 시주한 김영한(법명 길상화) 님의 공덕비가 고운 꽃다발을 베고 폭염과는 단절된 채 긴 휴식속에 빠진 듯 합니다.
길상사 경내 돌아보기으리으리한 주택이 늘어 선 성북동 샛길 따라 올라가다 보면 길상사길을 만나는데 얼마 가지않아 길상사 입구에 다달으면 기와담장 위로 하얀 바탕에 까만 글씨로 쓴 작은 현판 하나가 수줍은 듯 고개 올려 보입니다.
출입문으로 들어와서 돌계단을 밟고 서면 옛 요정 본채가 "ㄷ 자형"으로 앉았는데 사찰이 아닌 일반 양반집 풍체를 지녔으니 다가서도 친근함을 느낌니다.
유난히 많은 늙은 느티나무 아래 종각은 길상사가 세워둔 것 같은데 사찰에 울려퍼지는 불경소리 대신 바람소리 물소리만 귓가에 와 닿습니다.
기생들이 이 문을 통해 오갔을 법 한 아치형 통로 위로 능소화가 피어났는데 한 무리는 이미 땅으로 낙화되고 다른 무리가 다시 피어나니 애잔합니다.
산 중턱 계곡을 낀 요정이었으니 산림은 울창하고 물소리 새소리로 무척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이곳에서 음주가무가 이루어졌다니... 그냥 한 시절의 풍류라고 생각해야겠습니다.
숲을 비집고 내려온 햇살에 비친 작은 계곡 돌다리 건너 또 다른 별채 한 곳은 참선 정진중인지 문은 굳게 잠기어 있었는데 내 키로는 내부를 불 수가 없으니
담장 위로 카메라만 올려 겨우 안을 엿보았지만 파인더 속으로 들어온 건 댓돌위에 정갈하게 놓인 하얀 고무신 한 컬레와 무거운 침묵뿐,
숲이 만들어놓은 응달을 타고 내려오는 계곡수 흐르는 소리가 참 요란합니다.
곳곳이 세월 그 풍상의 흔적이 역역히 나열되어 있네요.
물소리 바람소리 사이를 비집고 푸른 산책길을 들어서면 "청향당" 묵언이 보이는데
계곡 물소리가 청아하고 푸른 향기를 머금은 곳이니 딱 "청향당"입니다.
그림자 조차 자신을 사뿐히 밟고 지나가야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대나무를 꺾어만든 정겨운 울타리가 세속과의 경계를 이루는 순간에는 숙연해집니다.
대나무 울타리 안을 기웃거리니 작은 연못속 수련조차 묵언수행 중이라 고요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검푸른 이끼가 낀 돌계단을 밟고 일어서면 만나는 "길상선원" 역시나 느티나무가 내려놓은 침묵속에 앉아있으니 자연 숨소리를 죽이게 되네요.
물 흐르는 소리, 숲을 지나온 소슬바람, 묵언의 긴 그림자 속에서 여성불자 한 분이 불교신문을 읽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정갈합니다.
동정녀 마리아로 착갈할 뻔 했던 하얀 대리석 보살상(象)으로 혼자 웃기도 합니다.
경내 곳곳에 넉넉히 놓인 의자에 앉아 느긋한 휴일의 오후를 맞이하는 분들로 대원각의 추억이 길상사로 이어지는 그 흠모의 연(戀)은 참 색다릅니다. 또한 스님의 낭낭한 독경소리 대신 클래식 선율이 아름답게 흐르는 곳입니다.
느티나무 고목과 앉아 쉴 수 있는 의자가 유난히 많은 길상사 뜨락이니 대원각 여주인의 조건없는 이 엄청난 시주가 내리는 보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장구 장단 가락과 팔폭 치마에 휘청거렸던 요방은 극락전으로 탈바꿈되어 묵언참선으로 업보를 벗어버리려 하는 야릇한 회한속에서 대원각의 여주인 길상화의 넋을 잠시 생각하게 되는데 길상사 법당 앞에 서면 돈도 재물도, 부귀영화 권세도 다 공(空)이었다는 생각을 아니 가질수 없습니다.
길상사를 나오면서 조금 전 계곡 옆 고사목에 걸려있던 팻말에 새겨진 "행복이란 구하거나 노력한다고 얻는것이 아니라 불만을 없애고 욕심을 절제함으로 얻을수 있다." 는 글귀가 머리속에 남는데 역시 사람은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우치게 됩니다.
성북동 부촌 담벼락에는 오래 된 담쟁이가 유난히도 많이 흘러 내렸는데 길상사길를 조금 비켜서면 "학의 바다길", "꿩의 바다길" 같은 샛길 이름이 여기 저기로 붙어있으니 성북동에 괜한 궁금증을 낳게 하기도 합니다. 비둘기 한 마리 날아들지 않는 성북동엔 바다가 있다?
수백 년 느티나무가 흘려놓은 그림자 위로 숲속 계곡을 타고 내린 냉기 머금은 청풍(淸風)이 몰려다닐 것 같은 길상사 경내 그늘이 몹시도 그리워지는 무더운 여름날이었으니 마음따라 발길이 닿습니다.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길상사 응달진 골짜기를 타고 흐르던 개울물과 매미 울음소리의 합창으로 여름날을 식혀주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물소리, 매미소리, 바람소리는 아예 숨을 죽여버린 날입니다.
대나무 담장으로 둘러싸인 묵언참선의 도량으로 폭염을 토해내는 햇볕,
처마끝 빗물 받침대로 이어놓은 학의 머리 끝에서 신기루 같은 열기가 뻗쳐나옵니다.
오늘따라 길상사 느티나무 숲은 바람 한 점의 보시에도 인색하기 그지없습니다.
바람이 끊어진 경내 뜨락 한 켠에 서있는 보살상을 쳐다보고 있는 수녀님 두 분의 모습에서 그나마 무더위 속의 한 점 정겨움으로 눈에 들어올 뿐 길상사 어느 곳에 서더라도 시원한 바람을 만날수 없는 희안한 날입니다.
느티나무 쉼터에 앉아 더위를 피하면서 경내 이곳 저곳을 관찰하던 중에 지난번 방문때 보지못했던 황토빛 샛길을 발견하게 되니 궁금증이 유발합니다.
또 하나의길은 오늘 같은 날, 낯선 방문객에겐 피정(避靜)의 길이 됩니다.
한 여름날, 연초록이었던 담쟁이 잎이 처절하게 물들어가는 성북동의 붉은 가을, 성북동 오랜 주택가 외벽에는 유난히 담쟁이가 많으니 운치가 제 스스로 살아납니다.
늙은 느티나무가 흘려놓았을 길상사의 가을뜨락은 어떤 모습일까? 마음이 궁금함으로 가득 차게 되면 발길은 절로 움직이게 됩니다.
길상사 담장을 뛰어넘은 나무 둥지 하나를 타고 오르는 붉은 담쟁이, 그 너머로
주홍빛 애기 감이 가을을 속삭이듯 일주문 안쪽으로 기대어 섰으니 영락없는 추색(秋色)입니다.
대웅전 오른쪽 샛길따라 걷다보면 묵언의 집으로 옅은 가을바람이 쓸려들고
아침 이슬에게 아직도 몸을 기댄 짙푸른 초록은 계절을 올라타지 못하고 하루 하루 깊어가는 가을날을 호기심으로 지켜보기만 할 뿐 제 자리입니다.
걷다가 명상을 하게 만드는 법정스님의 어록이 간간이 눈에 띄니 가을을 걷는 길상사 뜨락과 묵언의 길에는 삶의 사색들로 더욱 풍요롭습니다.
한여름날에 짙은 땀을 흘리던 범종각의 단청 작업도 이젠 말끔히 단장되었고 그 속에 에밀레의 전설을 지녔을 법 한 범종 하나가 거치되어 절간의 모습이 은은하게 배여납니다.
길상사 범종의 울림으로 흑암속 구천을 헤매는 영혼이 구제되길 기원해 보는데 언제고 이 범종이 울려내는 깊은 소리를 꼭 한번 들을 수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범종각 기둥에 기대어서 뜨락을 내려다 보면 하늘 자락을 살며시 가린 느티나뭇닢에서 깊은 가을을 토해내지 않으니 아직은 희미한 가을색만 보입니다.
낙엽 한 점 뒹굴지 아니하는 길상사 뜨락에 가을 코스모스가 몸을 기댄 채 가을바람과 살랑거리며 조우에 빠져드니 이곳의 가을은 무척 더디게 오나봅니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인심이 넉넉한 길상사이니 단정히 쓸어놓은 마당 위로 어느날 빛 고운 느티나무 단풍잎이 우수수 떨어지면 바람이 훔쳐가도록 가만히 놔둘 것도 같은데, 내가 아는 길상사라면 아마 그렇게 할겁니다.
옛 대원각 본채 축담에 놓인 하얀 카틀래야는 마치 이곳을 시주한 길상화의 넋으로 속세의 무상함을 해탈로 비워버린 뒤 무욕의 향기를 풀어내고 있는 듯 합니다.
지난번에도 보지못했던 목어(木魚)와 운판(雲板)이 처마에 매달리니 묵언참선의 도량 길상사도 범종과 함께 서서이 중생의 무거운 짐을 벗어내게 할 깨우침의 소리를 울려내려 합니다.
돌담 사이로 파고드는 스잔한 바람이 담쟁이를 애태우며 벌써 가을 끝단에 몸을 내밀게 하는것을 보니 느티나무 보다 더 빠른게 담쟁이의 가을행보입니다.
길상사 묵언의 사잇길을 걷다보면 이 계절 역시나 깊은 침묵속에서 하루를 수행하듯 계절의 깊이를 타고 내려오니 가을조차 적막을 느끼는데
옛 추억의 쓸쓸함이 묻어나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윤회로 향하는 길은 때론 허기지지만 한편으로는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나의 발길이 여지껏 닿지못했던 지장전 으로 향하고 보니 길상사에는 보았어도 가슴에 담아내지 못했던 부분이 아직도 남아있음을 알게됩니다.
지장전 윗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원형으로 조성해놓은 윤회의 뜨락이 고운 선으로 나타나 보는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 안아 편안합니다.
기와담장 토벽 사이의 뒷뜰은 찾는 이가 없어 어쩐지 스잔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그나마 몇 송이 코스모스와 구절초가 계절을 타고 놀아 다행입니다.
지장전 안을 기웃거리니 여느 법당과 달리 단정하면서 현란하지 않아 길상사는 뭔가 다른 사찰의 색채를 가진 곳이란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됩니다.
능소화가 화사하게 피었던 그 자리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대신 키 작은 느티나무 여린 잎사귀가 전해주는 옅은 가을색 몇 개를 품으며 마당을 지나 건너편 쉼터로 자리를 옮겨봅니다.
캔커피 자동판매기와 개숫대까지 겸비한 또 한 곳 쉼터인 이곳에는 석구(石具)속에 아담한 수련이 맑은 물속에 담겨져 가을을 만나고 있고 햇살과 바람이 많은 곳이라 그런지 가을채비가 조금은 빠르게 진행됩니다.
아직은 완연한 가을색을 풀어내지 않고 있는 길상사에는 오로지 담쟁이들만 성급히 만추의 길을 걷고 있는데, 느티나무 깊은 뜨락은 이 계절을 안단테, 안단테로 이어가고 있으니 느림의 미학을 엿보게 됩니다.
"꽃들은 자기 자신과 남을 비교하지 않는다. 매화는 매화, 진달래는 진달래..." 비교는 비굴과 욕심으로 이어질테니 길상사에서 가을날의 잔잔한 에세이 하나 가슴에 새겨두며 발길을 돌리게 됩니다.
2백년 거목을 자랑하던 경내 느티나무 푸른빛이 모두 사라진 뒤에도 붉은 정염을 끝까지 토해내던 단풍잎이 이제서야 몸을 움추리기 시작하는 길상사 뜨락을 회색빛 구름이 가득한 날에 나홀로 걸어봅니다.
바깥의 사바세상과 사찰 안의 극락정토 사이를 연결해 놓은 단풍색으로 겨우 연(聯)의 끈을 잡고 있지만 머잖아 이 끈도 놓치고 말겁니다.
지난번에 왔을 땐 푸른 잎사귀 속의 작은 열매가 살구인줄만 알았더니 이제보니 살구 크기만한 앙증맞도록 작은 감이었습니다.
측면에서 보는 일주문의 기와가 차갑게 느껴지는 성북동의 초겨울, 키가 큰 빈 겨울가지는 모두가 느티나무인데 얼마나 빨리 잎을 떨구었는지 경내 곳곳에는 쓸어놓은 느티나무 낙엽 천지이니 추측컨데 바람부는 어느날에 비처럼 바람처럼 꽃잎같이 떨어지고 흩어졌을게 틀림없습니다.
이른 봄날에 꽃을 피웠던 능수매화도, 여름날에 애절한 원혼으로 피어났던 능소화의 자태도 지금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대신 스잔한 바람만 옮겨다니지만 험상궂은 얼굴로 눈을 부릅 뜬 사천왕사 문(門)이 없는 만큼이나 길상사는 찾아오는 그 때 마다 늘 내게 마음의 평안을 안겨다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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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락에 남겨진 것이 굳이 까치밥이라고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은 애초부터 감을 따낼 생각을 하지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름이면 범종각 지붕위로 초록 그림자를 내리웠던 그 무성한 느티나무는 한여름 내내 나뭇가지를 부여잡고 목놓아 울어댔던 매미의 한해가 가버리듯 마지막 잎새조차 남기지 않은 채 스스로를 완전히 벗어버렸으니 계절을 비켜서기 위한 늙은 거목의 지혜가 곧 자연이니 경이롭습니다.
극락전은 그 옛날 대원각이란 이름의 영욕의 세월을 이제 다 벗어버린 걸까요? 바람이 불어오고 낙엽은 떨어지지만 길상사 앞 뜨락은 낙엽 한점 흘리지 않은 채 유난히 깔끔하고 단정하니 불가(佛家)의 정진에는 티끌의 흐트림도 없어보입니다.
숲은 더 이상 싱그런 초록숲이 아니니 매마른 산새들 울음소리만 귓전을 맴돕니다.
동토의 계절을 맞이하기 위하여 철저하게 자신을 비워내는 수목의 가피,
나뭇잎을 떨구어 내어 윤회의 길을 걷게하니 이 또한 자연의 섭리입니다.
쓸어내려도 끝이 없는 길상사의 낙엽이라 대빗자루를 잡은 손길인들 어떻하겠나요?
길상사 가장자리 한쪽 둔덕을 차지한 스님들의 수행 거처인 정진실, 만행실, 인목실, 보살실 등은 이미 낙엽과 묵언으로 두텁게 둘러 싸여있어 길상사도 머잖아 시작될 동안거(冬安居)를 차분히 준비하게 됩니다.
극락전 앞마당처럼 누군가의 손에 의해 깔끔하게 쓸어놓은 황토색 사잇길을 걸어가면서 낙엽 뒹구는 자연의 모습을 보고 싶기는 하지만 가랑잎 굴러가는 소리조차 수도자에겐 천근같은 무게로 다가설테니 그 누를 감당치 못할 것 같아 마음을 급히 접고 맙니다.
아직도 단풍색을 띈 채 찬바람 앞에 선 나무들도 몇 날 안 있어 새벽 찬 이슬속에 모두를 말끔히 벗어버릴테면 길상사의 정적이 더욱 깊어만 갈것 같습니다.
스님의 처소인 청인당 화단 가장자리를 막아놓은 기왓장 사이로 날바람이 흐르고
참선의 장(場)은 계절의 변화에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 언제나 정갈하며 조용한데 길상선원을 볼 때 마다 느끼는 것은 참선정진을 위해서는 주변의 청결과 정돈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는 점이니 이곳을 지나갈때면 자연 숨소리도 죽이게 됩니다.
산새가 지저귀는 마른 나뭇가지 사이로 회색빛 겨울방문객의 얼굴도 보입니다.
죽림당과 능인당 길을 따라 내려오는 동안에도 찬바람을 업은 낙엽은 쉼없이 흘러내리고 또 흘러내립니다.
그러다가 법정스님의 청빈한 어록 한 구절을 마음으로 담아내기도 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살아있는 우주의 호흡이며 율동이니 가는 세월을 아쉬워말며 오히려 오는 세월을 잘 쓸 줄 아는 지혜를 터득하라."
솔바람이 지나가던 송풍각 아래로 가을이란 계절이 뚝뚝 떨어져 버리니 어느새 안거를 위해 몸을 낮추어가는 담쟁이의 몸부림이 애처롭기 까지 합니다.
지장전 앞 뜨락, 수련 두어 송이를 소담하게 피워내던 석구속으로 낯선 살얼음이 파고 들었고, 여름날에 자태 고운 연꽃으로 향을 피워내었던 작은 연못에는 빈 연대만 허공으로 솟아있으니 참 허허롭도록 고독합니다.
담벼락에 기댄 단풍나무가 이른 봄날의 홍매화를 닮아 가지 사이로 보는 길상사 일주문이 홍매화에 잠기니 그냥 곱습니다.
설법전(說法殿)앞의 화단에 인동초 처럼 돋아난 산사나무의 붉은 열매가 눈을 시리게 하느가 하면,
관세음보살상의 맨발 위로 삼각산 날바람이 스치니 보는이의 마음도 시려옵니다.
11월에 들어서서 재빨리 갈색으로 옷을 갈아입은 길상사는 붉은 단풍색을 보완색으로 품은채 동토의 계절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바람결에 떨어지는 것은 낙엽이고 차가운 대지에 몸을 누이는 것도 낙엽이니 낙엽이 끌어안은 여운이 길기도 합니다.
수목이 한여름날의 따가웠던 햇살로 피로에 지치게 되면 이제는 좀 쉬었다 가면 되는 겨울 안거,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우리 곁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쉬는 동안 잠시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11월에 뿌려지는 빗방울은 찬 서리를 서둘러 불러낼테니 동안거를 준비하는 길상사의 발걸음도 점차 빨라질 것 같은 스잔한 휴일 늦은 오후가 젖기 시작합니다. 내가 다섯번째로 길상사를 찾는 날은 아마 잠자는 낙엽 위로 흰눈이 곱게 덮힌 성북동 길상사의 차가운 겨울 설경이 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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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송운사랑방
글쓴이"종이배
첫댓글 하하하하하하하하! 가슴이 촉촉해집니다.
그야말로 맑고 밝고 훈훈한 덕화만발의 세상이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덕산 거사님 .날씨가 그야말로 찜통입니다.
건강에 더욱 유의 하셔서 건강한 여름 나시기를...
이제 조금만 지나면 "이 또한 지나 가리니" 의 명언이
증명이 되겠지요 ㅎㅎㅎ
덕화만발의 세상을 꿈꾸시는 거사님의 간절한 발원이
꼭 이루어지시기를 저도 기원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귀중한 자료 잘 읽었습니다.
다만 백석이 월북시인이라는 말씀에 이견을 제시합니다.
백석은 평북 정주 출신으로 그 곳의 오산고보를 나왔고, 시인 김소월의 후배이기도 합니다.
해방후에는 은사이신 고당 조만식 선생의 영어 통역 비서로 일하다 남으로 넘어오지 오지 못한체
재북작가로 남게된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월북과 재북의 차이가 별것 아니라고 여기실수도 있겠지만......
그린108님 안녕하십니까
제가 옮겨 온 글이라 본문을 작성하신 종이배님의 뜻을
헤아릴 길은 없습니다.
그러나 님께서 지적하신 월북이냐. 재북이냐의 문제는
님께서 조사하신 자료가 바른 것으로 다른 자료에서도
기록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본문을 수정할 권한이 저에게는
없음을 말씀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요지경이요 아수라장이었던 곳이 지장전 극락전으로 변해
부처님이 계시는 신성한 사찰로 탈바꿈한 길상사!
아마 전세계에 이러한 역사를 지닌 사찰은 처음이자 마지막이겠군요.
길상화의 시주 또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사례일 것이며
잠간 스첬다 가는 이승의 참 도리를 사심없이 베푼 김영한 씨야말로 진정한 도인이셨군요.
이분이 법공부를 많이해서 도리를 깨달았겠습니까?
삶속에서 스스로 얻은 체험으로 깨달은 것이지요.
꼭 한번 시간을 내어 가 보겠습니다.
지당선생님 안녕 하십니까
선생님의 말씀처럼...
관계속에서. 삶속에서 얻은 그 체험으로 증득한
깨달음 이겠지요.
옆에서 지켜 보았을 권력 돈 명에 사랑의 무상함을...
세속의 법리보다 참다운 행복을 가져다 줄 불법으로
귀의한 길상화 보살님이 아니겠습니까.그의 보살행에
머리숙여 경의를 표합니다. 고맙습니다
귀한글 감사히 읽어봅니다.
고맙습니다.
김경희 시인님. 반갑습니다
더위 지혜롭게 지나시도록...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