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업입국을 내세우며 기계나 전자학과에 학생을
수백 명씩 뽑던 때가 있었습니다.
너도나도 앞다투어 그 과로 몰려들었고 그때
재수를 했던 저도 기계 전공에 줄을 섰습니다.
세부 전공은 선박용 기계였습니다.
기계 공부의 시작이랄 수 있는 역학 과목을 배우는
2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앞두고 연일 데모로 학교가
어수선했고, 5.18이 되며 휴교령이 내려지고 교문이
닫혔습니다.
주요 역학과목들은 리포트로 대체되었고, 우리들은
부실 기계학도들이 되었습니다.
졸업을 하고 군대를 갔더니 전공을 살려준다고
주특기 630 윈치운용을 부여해 주었습니다.
큰 배에서 화물을 내릴 때 긴 팔처럼 생긴 붐대로
들어서 부두로 내려주는 그 기계가 윈치입니다.
후반기 특기교육 3개월을 더 받고 배치받은 수송부대에
갔더니 배는 없고, 복서차와 화물운반차들만 잔뜩 있었어요.
저에게 부여된 보직은 구난차(견인차) 조수였습니다.
구난차에 붙어있는 붐대 이름도 윈치였습니다.
제대를 하고 11개월의 사투 끝에 기계 전공자를
뽑는 회사에 취직을 했습니다.
의료기계 수입 공급을 하는 중외제약 계열사인
중외상사였습니다.
의료기계도 기계입니다.
제가 맡은 의료기는 생화학 혈액분석기였지요.
피검사하면 간기능이 어떻고 콜레스테롤이 높다
낮다 말해주는 그 의료기입니다.
군 제대까지 기다려주고 다시 취업되기를 손꼽아
기다려준 아내와 취업 3개월 만에 결혼해서 부천에
신접살림을 차렸기에, 필사적으로 생화학과 임상병리
공부를 했고, 분석기계 다루는 법도 배웠고, 석 달에
한 켤레씩 구두가 닳도록 서울 길을 익히며 영업을 했지요.
2년 후, 고 정주영 씨와 김우중 씨를 롤모델로 삼아
꿈이 컸던 저와 제 직장 선배, 고등학교 친구 둘,
대학 친구 하나. 도합 다섯 명이 모여 기술 오퍼상을
차렸습니다.
한국 사람 다섯.
회사 이름을 '한오무역'이라 지었습니다.
취급품목은 네덜란드에서 수입하는 혈액분석기와
전자공학을 전공한 고등학교 친구들이 할 영국에서
수입하는 전자계측기였지요.
1년 후, 흑자가 났고 합의 하에 혈액분석기와
전자계측기로 회사를 분리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친구들을 택했고, 그 결과로 다시
전자 공부와 전자 계측기 공부를 새로 해야 했지요.
새 기술 공부에는 사용설명서 번역이 최고의 공부입니다.
그 기술로 그 후 이십 년을 전자 계측기 기술영업
엔지니어로 미국으로 오기 전까지 살았습니다.
전공한 기계와 관련된 일은 한 번도 못해봤지만
여하튼 엔지니어라고 우기며 살았습니다.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기계다운 기계를 한국에서
수입해서 미국에 공급하고자 했으나 그 일도 처음엔
한국 기술에 대한 의문으로 시간이 흘렀고, 우여곡절을
거쳐 그런 점을 간신히 극복했더니 코로나가 덮치고...
그래서 엉터리 엔지니어가 되었습니다.
이젠 이 의욕 저 욕심 다 버리고 그저 멈춤 없는
생각 즐기며 더 넓은 대륙에서 길 달리는 재미로
살아갑니다.
가끔 이렇게 새벽이에게 뻥을 치면서요.
"새벽아, 아무 걱정하지 말고 맘껏 달려라.
아재가 기계 엔지니어 아이가. 어떤 고장이라도
다 고쳐준다. 아무 걱정하지 마라~"
제가 그러거나 말거나 시크한 새벽인 그저 제 흥에
겨워 크릉크릉 콧김을 뿜으며 앞만 보고 달립니다.
첫댓글 와우~마음자리님 준비된 고급인력이시네요!
전.화.기 지금도 전도유망한 학과이지요.
그래도 지금 하시는 일 도 달리는 기계이니 아주 관련없지는 않네요?ㅎ
무슨 일이든 보람되고 신나게 하면 그게 최고인거같아요!
늘 건강 최우선으로 하시고 안전운전 되세요~
멋진 인생, 멋진 싸나이~~
맞습니다. 이제야 그걸 압니다.
하고 싶은 일 보람차고 신나게
하면 사는 일 최고라는 걸. ㅎ
엔지니어군요
몰랐어요.
엔지니어가 글도
잘써요.
문과출신인줄 알았다니깐요. ㅎㅎ
ㅎㅎ 글 보단 이야기 뻥이 센 거지요.
아~5.18 때의 학생 이셨군요 엔지니어...
전공이 미국에서도 크게
성공하셨다면? 동화작가
마음자리님을 만날 수
있었을까요?ㅎ
그곳은 멋진구름이 많아요
넓은곳이라?
엔지니어보다 글 쓰는
18 wheels Driver가
저에겐 더 맞는 것 같습니다. ㅎ
엔지니어 였다는게 놀랍습니다.
작가 수준의 글솜씨에...
이과, 문과에 다 능하시군요.
호기심이 많아 이거저거 다
조금씩만 할 줄 압니다. ㅎ
지금 새벽이와 광활한 대지를
달리시는 맘자리님이 제일 친근감 있고
딱 어울리시는것 같아요.^^
저도 지금하는 일이 일생 중 가장
행복한 일입니다. ㅎ
가끔씩
내가 새로 태어난다면
나는 집짓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좀 더 젊었었더라면
나는 다시 집을 한채 짓고 싶다는 꿈.
꿈은 꿈으로만.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