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22~29 / 주께서 보이신 생명의 길
(행 2: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행 2: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행 2:24)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행 2:25)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행 2:26)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행 2:27)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행 2:28)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
(행 2:29)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22, 23절 베드로는 이스라엘 백성 여러분에게 자신의 말을 들어달라고 합니다.
비겁했던 베드로는 성령을 받은 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합니다.
성령이 하시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보고들은 바와 같이,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께서 능력과 기이한 일과 표적을 가지고 하나님의 그리스도로 그들에게 증언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통하여 그들 가운데서 이 기이한 일과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소경을 고치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하나님은 구약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예수님을 세상 만민을 위하여 내어 주셨습니다.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로 보내셨습니다. 육신을 입고 친히 이 땅에 내려오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종교지도자들은 그들이 기대하는 정치적인 경제적인 메시아가 아니라고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시기심으로 예수님을 율법이 없는 로마인들의 손에 내어 주었습니다. 그들은 로마인의 손을 빌려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들은 시기심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24절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이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다시 살리사 예수님이 우리의 그리스도요 왕이심을 다시 한번 증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 우편에서 영원히 살아계십니다. 다시 오셔서 영원히 왕 노릇할 것입니다. 다윗은 bc1000년 전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언하였습니다.
25절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그리스도는 그 앞에 계신 하나님을 항상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태초에 말씀으로 계셨고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도 하나님 우편에 항상 앉아계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바라보므로 요동하지 않습니다.
요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바라보므로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에 흔들립니다. 상한 갈대처럼 흔들립니다.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고 정욕의 유혹에 흔들립니다. 상황과 조건에 흔들립니다.
이리저리 비틀거립니다. 이단의 말에 흔들립니다. 불안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항상 우리 앞에 계신 하나님을 보는 자는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여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됩니다.
26,27절 예수님은 살아계셨을 때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고 혀도 즐거워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육체도 부활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희망에 거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기뻐하고 희망에 거합니다.
죽음은 우리에게 슬픔을 줍니다. 특히 요즘에 우울증이 극성을 부리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가을이 되어 떨어지는 낙엽만 보고도 슬퍼합니다.
비만 내려도 쓸쓸해합니다. 찬 바람이 으스스 불면 마음도 으스스해집니다.
우리가 어떻게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기쁨이 충만할 수 있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부활할 것을 믿을 때 기쁨이 충만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거룩한 자신을 음부에 버리지 않으시고 그 육체로 썩을 당치 않게 할 것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신도 부활하여 다시 살아날 것을 믿었습니다. 이를 믿을 때 그는 26절에 있는 것처럼 희망에 거했습니다.
우리가 절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가 죽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려도 결국은 죽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무상한 것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다 무로 돌아가야 합니다. 대통령을 한 사람도 흙으로 돌아갑니다.
청소부를 한 사람도 흙으로 돌아갑니다. 늙은이도 흙으로 가고 젊은이도 흙으로 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희망에 거합니다.
우리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을 육체를 가질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의 희망에 거합니다. 부활의 희망에 거합니다.
28절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생명의 길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을 때 부활할 것을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앞두고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생명의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부활하여 그리스도가 되실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을 확신했을 때 예수님은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나인성 과부는 아들을 잃고 슬피 울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울지 말라고 위로하시고 아들을 살려주셨습니다. 슬퍼하는 그녀에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29-31절 다윗은 죽어서 장사되어 다윗의 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맹세하여 다윗의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왕 위에 앉게 하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따라서 음부에 버리지 않는다고 한 것은 다윗이 아니라 그리스도입니다.
본문에 거룩한 자는 다윗이 아니라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다윗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않을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여 음부에 버림받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이 영생하심같이 영생할 것입니다. 영생의 소망으로 이기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