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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논쟁을 하지 않으려 했는데 '조한경'님께서 답글을 주셨네요. 저는 괜찮지만 아무래도 답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 글을 올립니다. 많은 분들께 분란을 일으켜 죄송하다는 말씀드립니다. '미운오리새끼'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우선, ‘합하세’의 오랜 회원으로, 그리고 깨어있는 기독교인으로서 처음으로 같이 나누고 싶은 글을, 즉 반드시 공론화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을 올린 것뿐인데 결국은 이 ‘합하세’의 대부분 회원들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쓸데없는 분란만 일으킨 제 생각 없음을 먼저 밝히고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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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이라함은 모두가 함께 논의해보고 생각해보는 장이 되는 것인데 유재철님께서는 이미 본인의 결론이 내려진 상황 - 즉, 다른 의견이 받아들여지거나 그 의견들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는 태도로 일관하는 것이 이미 "공론"의 정도를 지나쳐버렸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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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논의든 그 논의를 펴는 이는 자신의 주장을 먼저 던져 놓고 반대 의견을 듣는 식으로 논의를 진행합니다. 이 부분에서는 제가 큰 잘못이 없는 듯 한데요?
이 논의에서 대부분 댓글을 다시거나 코멘트를 주시는 분들의 성향이 음악 전공자시거나 아니면 그들의 입장에 서 계신 분들일 것이라는 생각을 제가 왜 못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쉽게 말해서 고양이 앞에서 “고양이에게 생선주지 말자”고 했던 것이죠. 남의 밥그릇 차는 일인데 제가 겁도 없이 덤벼들었던 것입니다. 비유가 제대로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또 음악 전공자들을 ‘고양이’로 폄훼했다는 비난을 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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폄훼하는 것을 잘 아시면서 일부러 그런 논지를 전개해나가시는 이유는 무엇인지 저의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론에서 굳이 다른 사람들을 적으로 만들면서 그렇게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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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전공자들을 폄훼할 저의는 전혀 없었습니다. 제게는 음악 전공자들의 ‘집단 이기주의’의 성격이 그렇게 보였기에 제 나름대로의 표현을 했을 뿐입니다. 여러분들도 제가 이단이니, 교인이 맞느니 하시면서 막말(?)을 서슴지 않으셨잖습니까?^^ 아무튼 사실이 그렇더라도, 혹은 저도 인정하는 극히 일부의 예외적인 분들에게는 죄송하다는 사과말씀을 드립니다.
하지만 저는 적어도 공론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기대 했더랬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분들이 거의 단 한 줄로 요약될 수 있는 편협한 논리 딱 한가지로만 무차별 공격하시는 통에 공론화는 물론, 제가 도리어 몹쓸 놈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순진했던 저는 공론화만 되면 양심적인 음악 전공자들 사이에서 잘못된 관행에 대한 고민과 대안을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적어도 무엇이 문제인지 물음표 정도는 던지는 분이 한 분 정도는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었기도 했습니다. 물론, 침묵하시는 다수가 그들이라고 저는 미련스럽게 아직도 확신합니다. 여기 밑, 많은 분들이 저의 글에 득달같이 달려들어 사냥개가 포획물을 물어뜯듯 하시는 모습에도 제가 희망을 놓지 않는 이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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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의 유재철님의 인류학에서 이야기한 자문화중심주의에 해당됩니다. 본인이 우선시되는 태도는 남들에게 뿐만아니라 본인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잣대 아닙니까? 무차별적으로 펼친 논리에는 당연히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당할 만 하지요. 본인이 먼저 달려들어 물어 뜯고서는 다른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물어 뜯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어폐가 있어 보입니다. 이는 논지의 문제가 아니라 존중의 문제입니다. "가장 보수적인 예장 합동의 깨어 있는 기독교인"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일방적 태도를 보인다던가, 이중적 잣대가 적용이 된다면 BBK와 다를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또한 절대로 다수의 의견이 소수의 의견에 우선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소수의 의견도 다수의 의견과 동일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양적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유재철님도 다른 의견들에 대해서 본인의 의견과 동일한 무게를 배려해줬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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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이 부분은 님께서 뭔가 큰 오해를 하신듯 합니다. ‘다른 사역자들은 페이를 안받고 유독 음악 전공자만 페이를 받는 사실’이라는 객관적, 사실적 상황에서 ‘형평성’의 문제를 제기한 것이 어떻게 ‘자문화중심적’ 사고인지 이해가 안되네요. 위에서도 언급드렸지만 문제제기는 문제를 제기한 사람의 의견을 먼저 제시한 후 그에 대한 반론과 반론이 이어지면서 토론이 이뤄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최초의 글에서 ‘음악 전공자만이 페이를 받는 것이 형평성에 맞는 것인지’를 불특정 다수에게 물었고 대부분 그런 사실을 수긍하는 이들에게 제 생각을 펼친 것 뿐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글에서는 ‘다른 사역자들처럼 음악 전공자들도 (형평성에 맞춰) 페이없이 사역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견을 물었던 것이고요.
그런데 토론이라 함은 대부분 논리에 의거해 자신의 주장을 펼쳐야 하는 것인데 제 경우 형평성 문제를 집중적으로 부각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은 이 부분이 아니라, 밑의 글에서처럼 ‘옛날부터 그리 해왔으니 문제없다’거나 ‘음악인도 사역자다’라는 두 가지 순환논리(이런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던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만으로 일관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좀 짜증이 났던 것이지요. 솔직히 ‘형평성’을 들고 나오니 할 말이 없으신 듯한 많은 음악 전공자님들께서 더 짜증나셨겠지만요.
이제 이 글 이후에는 이곳에서 어떠한 글도 쓰지 않을 것이며, ‘합하세’ 역시 탈퇴할 것을 조심스레 고민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이곳에 남아있을 당위도 없을뿐더러 우리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은커녕 오히려 우리 사회를 더 부패하게 만들고 더럽히는 추악한 작금의 교회의 단면을, 이곳에서 확실하게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조금 손해 본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기득권을 놓칠 수 있다하더라도 잘못된 부분의 수긍과 함께 전체의 발전과 더 성숙한 방향에 대해서 마음을 열수 있는 단 한사람의 응원군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단순하게 의견을 듣고 싶어서 올린 글이 이처럼 첨예하고 민감한 반응이 나올지 몰랐습니다. 그러다보니 제 스스로의 ‘승부 게이지’가 더 고양되어가는 느낌입니다. 이곳이 아니라 앞으로 공식적인 논의를 자유롭게 펼 수 있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곳으로 나아가 더 신중한 방식으로 싸워 볼 작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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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 곳이 추악한 교회의 단면이라고 하는 것도 역시 문제가 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공론화 시키고자했던 "페이"의 문제가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여러가지 이유들로 유재철님과는 다른 긍정적인 생각들을 이야기 할 수 있는데, 그 것에 관계없이 "기득권을 놓치기 싫어하는"으로 바꿔놓는 것은 유재철님이 펼친 논지 중에서 가장 큰 오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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큭큭큭. 이젠 헛웃음만 나옵니다.
중세 교부들도 “‘면죄부’를 판 것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느냐” 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 분명히 형평성에도 맞지 않고 그냥 그런 전통이 내려오니 페이 주는 걸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왜 맞는 건지, 그래서 문제제기도 못하는 건지 제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갑니다.
그럼 다른 사역자들처럼 페이를 안받고는 사역을 못하시는 겁니까? 꼭 페이를 받아야 하는 겁니까? 그렇게 생각하시면 당연히 ‘기득권’ 아닐까요? 제 말이 틀리나요?
2000년 전 예수의 사역 이후 고대 로마의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래로 역사 속에서 벌인 기독교의 죄악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그리고 그런 죄악들을 기독교인 스스로는 모른 체하거나 적어도 당연한 듯 여기는 분위기 속에서 교회의 개혁과 예수가 지향했던 삶의 자리 찾기는 2000년이 지난 후에도 아직도 요원한 듯 보입니다.
중세의 마녀사냥, ‘아전인수’격의 십자군전쟁, 히틀러의 아우슈비츠의 수십 배에 달하는 유럽 기독교인들의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과 청교도들의 미국 인디언들에 대한 무자비한 살상 등의 패악은 이제 지금 현대인들의 뇌리에서는 이미 멀리멀리 떠나가고 있습니다.
사회적 진보와 민주주의가 계속적인 발전을 보이는 와중에서도 교회는 남녀의 성차별, 인종차별이나 성적소수자 차별, 빈부의 차별 등 온갖 비민주적인 봉건적 프레임 안에 갇혀 있으며 오직 ‘성경적’이라는 이유로 온갖 비논리와 비민주를 합리화하고 있기도 합니다. 흡사 중세의 음울한 분위기처럼.
여성 신도에 대한 성희롱, 교회재정의 유용 등 최근 매스컴을 통해 밝혀지는 목회자들의 범죄는 비단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라 지난 기독교 역사 2000년 동안 계속되어 왔던 비극들일 것입니다.
장로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논리로 대통령을 뽑고 그 대통령이라는 자가 개인의 영달을 위해 국정을 개판으로 농단해도 아무런 책임의식도, 느낌도 없는 집단이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 집단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외적, 내적, 거시적, 미시적인 교회의 비민주성 등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합하세’의 성격에 어울리지 않거니와 더는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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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유재철님께서 이야기한 내용들은 모두 "역사적 사실"들이며 "지금도 반복되는 교회의 타락상"들 임을 저 또한 인정합니다. 그렇다고 우리들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대속하신 것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기독교의 진리를 거부하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비유하자면 맞을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병원에는 아픈 사람만 있습니다. 교회역시 죄인들만 모이는 곳입니다. 제가 드리는 이 말이 범죄나 불법을 인정하는 말이 아님은 아시리라 믿습니다. (설마 제가 그리 생각하고 있다고 여기는 어리석은 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그런 부분들이 있음을 인정하고 "더 좋은 나아갈 길 구하기를 힘써야 한다는 것" 입니다. 이 부분은 유재철님과도 생각이 일치하리라 봅니다. 다시 말해서, 그런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것으로 끝나면 안됩니다. 화두를 던지는 사람은 마땅히 다음 나아갈 단계도 함께 이야기 해줘야 합니다. 그게 바로 공론의 목적 아니겠습니까. 그냥 생각하기에 문제있는 것을 이야기하고 던지고 나서 그 뿐이라면 아니한만도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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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대속하신 것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기독교의 진리를 거부하지않는’ 분들이 그간 기독교의 패악들을 고치려는 노력과 마음이 제대로 있었습니까? 한낱 불공평한 ‘페이’ 문제에도 침묵하시는 분들이? “더 좋은 나아갈 길 구하기”를 어떻게 힘썼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에게 “나의 기득권과 관련된 문제는 꺼내지마”라고 말씀하고 계시잖아요? 여기계신 대부분의 분들이. 제 말씀이 틀렸나요?
저는 약 40여년 가까이 가장 보수적이라 할 수 있는 교단의 교회를 다닌 교인입니다. 어떤 분은 저를 밑의 댓글에서 ‘신○○’ 같은 최근 발흥하는 소위 ‘이단’의 전도자쯤으로 생각하시는 모양입니다. 무조건 자신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말하거나 보이면 가차 없이 이단으로 매도하는 것이 현재 우리 교회의 수준이자 한심한 현실입니다. 현대판 ‘마녀사냥’이죠. 어처구니도 없고 참 가소롭기도 하지만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정말로 서글퍼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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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은 댓글 다신 분이 하도 답답하셔서 과하게 이야기하신 것 같습니다. 물론 이단시비는 조심해서 이야기해야 합니다. "나랑 맞지 않으면 이단이다"라는 말은 "마녀사냥" 맞습니다. 하지만, 유재철님의 어조나 논지 역시 서글퍼지는 것을 금할 수 없습니다. 지극히 논리적이고 깨어 있는 기독교인과 건설적인 대화를 하지 못하고 있으니 슬플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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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은 뭘 말씀하시려는지 도통 이해가 안가는군요. 아무리 답답해도 자신의 의견에 반대자들은 모두 이단이라는 발상. 참 무섭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당히 정통교단의 교인이라고 밝힌 것 뿐입니다. 말 그대로 어처구니없고 가소로울 뿐입니다. 님께 제가 제 생각과 틀리다고 해서 이단이라고 몰아붙이면 님도 아마 같은 반응을 보이셨을 것 같은데요?
군대복무 기간을 포함해 저는 햇수로 25년 동안 성가대 봉사를 했으며 약 15년간 초등부, 고등부, 대학부 교사로 봉사했습니다. 현재는 역시 우리나라의 가장 보수적 교단인 ‘예장 합동’측 교회를 아직도 나가고 있고 성가대 봉사를 하고 있는 40대의 평범한 교인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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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제 소개를 합니다. 저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에서 신학과를 졸업했고, 그 후 중앙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를 졸업했습니다. 제 신학은 신본주의이며 음악은 교회음악만이 전부입니다. 신학과 음악을 공부했더니 오직 예배 한 시간 안에 그 두 가지가 모두 있는 것을 깨닫고 예배를 드리는 것에 공부하고 몰두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유재철님께서 이야기한 고양이에 속하는 인물입니다만 출발점이 다르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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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님은 제가 인정한 소수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자신의 소개를 자세히 해주신 부분은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공론화하고 싶었던 생각은 ‘지휘자, 반주자, 솔리스트 등 음악 전공자들에게 페이를 주는 것이 온당한가’라는 문제였습니다. 제가 제기한 이 문제에 대해 댓글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신 분들은 100%가 음악 전공자들에게 페이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반응하셨습니다. 반대 의견이 하나도 없으셨죠. 당연한 결과입니다. 물론,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제가 상대를 잘못 고른 것입니다. 연목구어(緣木求魚)였죠. 차라리 광화문 네거리에서 허공에다 외치는 것이 더 나을 뻔 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음악 전공자들에게 페이를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하신 많은 분들의 논리는 몇 가지로 압축됩니다. “예전부터, 심지어 구약시대부터 음악을 하는 이들에게는 페이를 줘왔다”는 논리. “목회자처럼 음악 전공자들, 특히 교회음악 전공자들도 사역자”라는 논리. 그리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페이 문제로 왜 들쑤시냐”는 식의 논리. 이 논리들에 제가 더 이상 일일이 논리적인 답을 드리진 않겠습니다. 염치불구하고 자기 밥그릇 지키려고 두 눈이 벌게져 있는 분들에게는 그럴 가치조차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문제보다 더 중요한 문제들이 우리 교회 내부에 즐비하게 늘어서 도사리고 있음에도 분명 잘못된 관행이면서 동시에 소수 부류의 교회 내 사람들에게만은 포기할 수 없는 기득권으로 자리 잡은 ‘페이’ 문제로 아까운 시간들을 낭비하며 입씨름하는 현실이 엄청 짜증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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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분의 의견처럼 이 문단의 첫 문장처럼 이야기 하셨으면 진정한 공론의 장이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신학을 하고 음악을 한 사람으로서 남들보다 이런 저런 고민을 참 많이 했다고 여깁니다. 이렇게 치열하게 이야기하는 문제에 대해서 다른 분들께서 답변해 주신 1. 구약시대 부터, 2. 음악도 사역, 3. Case by case(들쑤신다 보다는 이 표현이 더 맞는 듯 합니다)의 세 가지 경우 모두 스스로 자문도 해보고 해답도 찾아보고 했으나 딱히 맘에 드는 답은 찾지 못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계속 그 의미를 찾아나가는 과정입니다. 제가 성화의 길을 걷고 있는 동안은 늘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공론화에 대한 제 생각은 좀 더 뒤에 피력해 보겠습니다.
잠시 다른 이야기이지만 제가 실제로 겪은 일입니다. 어머님 모시고 가기 위해서 연신내에서 기다리고 있던 중, 가만히 있는 저를 취객이 와서 쳤습니다. 그래서 몸싸움이 벌어졌었습니다. 근처에 은평경찰서가 있어서 경찰이 바로 와 경찰서 가서 조서도 쓰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시간도 뺏기고 어머님은 모시지도 못하고 오히려 가족이 다 경찰서로 출동하고 그랬습니다. 유재철님 생각에도 제가 무척 화가 나고 억울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시죠? "입씨름"은 유재철님께서 시작하신 겁니다. 유재철님만 짜증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짜증날 겁니다. 왜냐하면 "건설적"이지 않기 때문이죠. 이 것이 유재철님께서 범하신 오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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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님의 지적 감사드립니다. 제가 표현에 있어서 더 숙고하지 못한 점은 이 지면을 빌려 사과드리겠습니다.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내 죄송한데 인류학에는 인간의 문화를 바라보는 대표적인 두 가지 시각이 있지요. 바로 ‘문화상대주의’와 ‘자문화중심주의’가 그 것입니다. 모든 문화가 상대적이며 어느 것도 우월하거나 비천한 것이 없이 서로의 특이성이 있으며 단지 다를 뿐이라는 시각이 바로 ‘문화상대주의’이고, 자신이 속한 문화를 우월하다고 단정한 뒤 자신의 문화를 중심 프레임으로 다른 문화를 판단하거나 정의하는 경우가 ‘자문화중심주의’입니다.
교회에는 여러 가지 사역이 있습니다. 예배를 위한 사역, 선교사역, 친교사역, 이웃을 위한 실천을 보여주는 구제사역 등등. 그 가운데 어떤 사역이 가장 중요하다 생각하십니까? 그 가운데 음악을 통한 사역이 차지하는 비중과 가치는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어떤 사역이든 모두가 똑 같은 비중이며 우선 순위로 나눌 수 없을 만큼 모두가 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돈 들여 음악을 전공을 했고 음악 사역은 남들이 할 수 없는 사역이니 특별하다?” 이는 전형적인 ‘자문화중심주의’적 시각입니다. 지난 2000년 기독교 오욕의 역사를 만든 것이 바로 서구 권력자들과 그들과 야합한 ‘서구 기독교’의 ‘자문화중심주의’였지요.
한 번 따져 봅시다. 문학을 전공한 교인이 있다고 합시다. 그는 평일에는 일반직장에서 열심히 일해 생계를 꾸리고 주일에는 교회에서 학생을 가르치며, 매주 하루는 오후 6시부터 저녁 10시까지, 교회에서 운영하는 노인대학에서 글과 작문을 가르칩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회계사’이시며 이 전공을 활용해 교회의 재정을 보고, 연말이면 결산과 예산문제로 자기 시간을 투자하시고 계십니다. 또 어떤 분은 유아교육을 전공하시고 유치부 교사를 하고 계시면서 동시에 교회에서 운영하는 ‘방과후 아동센터’에서 유아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의사 교인들은 매년 여름이나 겨울이면 낙도나 오지 농촌 같은 곳에서 무료봉사를 하며 예수의 사랑을 전합니다.
이 외에도 방송실에서 봉사하시는 분들, 차량관리하시는 분들, 찬양단 봉사하시는 분들, 성가대에서 악기로 봉사하시는 분들, 미술학과에 다니거나 졸업한 이들은 부활절, 성탄절 등 절기마다 무대 세트며, 그림이며 다양한 봉사를 합니다. 하다못해 배움이 짧으신 연세 많으신 권사님들, 팔 걷어붙이고 금요일마다 청소하시고 식당에서는 밥도 지으시죠.
이 분들 대부분은 자신의 신앙을 성장시킨 교회를 평생 다니며 봉사합니다. 때로는 자신의 시간과 돈을 써가며 ‘사역’을 감당합니다. 큰 문제가 생기거나 교회에서 상처를 받지 않는 이상 그 교회를 떠나지 않습니다.
아래글들에서 어느 분이 표현하셨듯이 모두들 자신의 삶 속에서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다. 음악 하시는 분만 사역의 사명이 가득한 것이 아니라 이 분들 역시 사역에 대한 열정과 마음은 동일합니다.
그런데 그 분들 가운데는 직장이 없거나 수입이 형편없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사역을 하고 싶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들의 사역은 늘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밑에 글을 쓰신 어떤 분처럼 나도 사역자인데, 교회에서 지원을 안해주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음악을 전공하신 분들에게 음악이 하나님의 성스런 사역인 것처럼 이처럼 그들의 사역도 아이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길러내는 성스러운 사역이며 자기 달란트를 들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도록 정성을 들인 사역입니다. 글자를 모르는 노인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그리고 그 기쁨을 글로 나타낼 수 있도록 돕는 게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일이라 생각합니다. 교회에는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달란트’로, 오히려 자신의 일상과 시간, 돈을 들여 사역하는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음악 전공자들에게 ‘페이’를 주고 있다면 당연히 그 분들에게도 ‘페이’를 줘야 한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그게 형평성에 맞다고 생각이 안드시나요? 그러나 이 분들 ‘페이’받지 않습니다. 아니, 현실적으로 줄 수도 없겠죠. 왜 그런 분들은 당연히 ‘봉사’라고 생각하시면서 음악 전공자들은 ‘사역’이라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자기만, 자기 식구만 생각하는 ‘이기주의’ 내지는 ‘욕심’의 혐의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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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만"이 사역이라고 말한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목회자와 교역자, 그리고 교회사무원과 음악하는 사람은 페이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재철님께서 그리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만, 다른 모든 합하세에 계신 분들은 그 분들도 사역하고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서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는 사람들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차이점은 다른 사람은 이야기를 안하는데, 유재철님께서 "페이"를 다른 모든 사역하는 사람들에게도 줘야 "형평성이 맞지 않느냐"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유재철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기득권층"이라고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구요. 그런데 교회에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페이를 지급하지 않으니 음악하는 사람들이라고 다를 것이 무어냐! 그들에게도 안주는 것이 "형평성에 맞다"는 것이 결국 유재철님의 논지인 것이죠. 답은 간단합니다. 그런 모든 사람들에게 교회에서 페이를 지급하면 됩니다. 사실은 교회가 감당을 못하니까 음악하는 사람도 안받아야 맞다는 방향으로 틀어지게 되는 것이죠. 그럼 여기서 그 "형평성"이라는 것을 생각해야만 합니다. 그 것을 적용하는 것이 맞는지 안맞는지. 엄밀하게 말해서 그건 "또 하나의 다른 적용의 문제"입니다. 목회자나 교회의 방침일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음악하는 사람만이 사명에 가득찬 사역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혹 그런 사람은 아직 덜 성장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나아가서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본인의 개인적인 생각과 이유로 음악하는 사람들을 "이기주의", "욕심"이라는 것으로 매도하는 것 역시 그리스도인으로서 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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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어쨌든 제가 제기했던 문제의 팩트(fact)는, 제 생각에 반기를 든 모든 분들도 다 동의를 하고 계신 부분입니다. 목회자, 사무원, 관리집사 등 교회의 전일적 사역을 하고 계신 분들 외에 모든 사역자 가운데 유일하게 음악 사역자들만 페이를 받는 문제 말이죠.
모두에게 작은 금액이라도 페이를 줘야 하지만 교회 형편상 그렇게 하지는 못하고 관습상 음악 전공자들만 지급해온 것이죠. 제가 격하게 들릴만큼 ‘이기주의’니, ‘욕심’이니 언급은 했지만(물론, 이 부분도 사과드립니다) 팩트 상 객관적으로 보면 그런 말을 들을 혐의는 다분한 겁니다. 이 부분에 반대의견은 없으시겠지요?
그 분들에게 ‘페이’를 주자고 주장하지는 못할지언정 자신들이 ‘페이’받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이 문제를 끄집어내면 당장이라도 지구가 망할 것처럼 입에 개거품 무는 태도가 온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집단 이기주의’입니다. 가져다 버려야 할 ‘쓰레기 논리’일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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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철님. 음악전공자들이 다른 분들에게 "페이"를 주자고 주장해야만 하는 근거는 없습니다. 이미 말한대로 "교회 혹은 목회자의 방침"에 따른 것입니다. 그런 일들을 위해서 따로 세운 분들이 교회에는 계시지 않습니까? 음악전공자들이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런 식으로 호도하는 논지 역시 우리로서는 할 일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흑백논리가 조금 있으신 것 같습니다. "집단 이기주의"라고 해서 사회 혹은 공익에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여러가지 예를 들어서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흘러가니까 더 이야기하지는 않겠습니다. 즉, "집단 이기주의"라고 합하세에서 이야기하는 바를 "쓰레기 논리"라고 비약하는 것도 전적으로 옳지는 않습니다. 하물며 정답이 나와있지 않은 이런 문제에서 그렇게 쉬이 일반화 시키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실제로 합하세의 여러분들이 게거품을 물었다고 할지라도 유재철님께서는 그리 말씀하시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수차례 언급한 대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페이"만을 바라보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에게도 그렇게 이야기해서는 안됩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는 우매한 일을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설마 주님께서 말씀하신 "지극히 작은 자"라는 것에는 "페이"만을 바라보는 음악전공자를 빼고 이야기 하셨다고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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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이기주의’라는 말이 다시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위에서는 분명, 음악 전공자뿐만 아니라 다른 사역자들에게도 페이를 줘야하는 원칙에 동의하는 듯 말씀하시면서 이 문제는 교회나 목회자들의 방침에 따라 가야 한다는 것은 좀 궁색합니다. 음악 전공자들이 먼저 타 사역자들에게도 작으나마 페이를 지급하자고 제안하거나 무 페이로 순수하게 사역하겠다는 제안을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인가요? 그게 교회 안에서 음악 전공자라는 자존심 때문에 불가능한건가요? 묻고 싶네요. 더구나 ‘집단 이기주의’가 사회 혹은 공익에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에는 거의 경악을 금치 못하겠네요. 그리고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지 않은 것은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라는 예수의 말씀 인용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돈 몇 푼 되지도 않는 거 받는 건데, 뭘 이리도 시끄럽게 구느냐”며 그냥 잠잠해지는 게 좋다고 생각하시고 침묵하시는 음악 전공자들께서는 양심에 호소해 보시기 바랍니다. 혹여 우리는 큰 이득을 보고 있는 건 아닌가, 우리만 좋은 혜택을 입는 건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더불어 부끄러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을 가지십시오.
마지막으로, 오늘 하루 종일 바쁘실 텐데 새벽잠을 줄여 '유재철님께 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주신 KircheMusik님의 진정성에 감동해서 몇 자 더 드리기로 합니다. 님 같은 분들의 고민과 성찰이 썩어질 대로 썩어 냄새나는 기독교 내부의 한 알의 치료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님의 글을 읽고 진정으로 음악을 통해 사역을 감당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봉사‘가 아니라 ’사역‘이라는 지적에 또 한 번 뜨거운 것이 목으로 솟구치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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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rcheMusik 님의 글을 저도 읽었습니다. 얼굴 뵙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지는 글이더군요. 하지만 유재철님은 음악"사역"이라는 말에 매우 큰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을 제가 잘 알겠습니다. 굳이 울컥하실 것 까지는 없을 터인데... 만약 관심이 있으시다면 제가 합하세에 올린 글 몇 가지만 읽어봐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성가대방의 1746번 "우리들은 변하지 않는 것을 '당위'라고 표현합니다"라는 글과 1720번의 "음악적 감동은 절대로 신앙에 선행될 수 없다"는 글입니다. 저는 "사역"이라는 말에 유재철님처럼 부정하지만 긍정도 합니다. 모든 제반 활동이 사역이라는 관점에서 긍정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봉사"라는 말은 절대로 동의할 수 없습니다. 만에 하나 성가대를 "봉사"라고 생각하신다면 조심하셔야 합니다. 예배의 찬양대는 하나님께 "충성"하는 기관이지 "봉사"하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봉사할 순 없으니까요. 말장난이라고 여기실지도 모르시겠지만, 충성은 아래서 위로의 개념이지만 봉사는 위에서 아래 혹은 수평적 개념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찬양대(성가대)들을 "봉사"의 자리로 내려놓아 하나님께 찬양드리는 무게가 이루 말할 수 없이 가벼워 졌음을 저는 개탄합니다. 민수기 16장의 고라의 자손들이 멸망한 것과 같이 잘못되면 하나님으로부터 그렇게 버림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찬양대에 "충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두려움 - 경외감으로부터 출발하는 직책이 바로 성가대입니다.
이제 제가 생각하는 본론을 비로소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른 어떤 직책과 사역도 이러한 경외감을 드러내진 않습니다. 왜냐하면 수평적이기 때문입니다. 즉, 성도와 성도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라는 겁니다. 오직 예배시간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은 절대입니다. 잘 못해서 비난 받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 예배시간에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게 했음을 목숨걸고 두려워해야하는 일이 지휘자의 일입니다. 게다가 지휘자의 역할은 단순히 음악을 조합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자리는 성가대원의 수 만큼의 목회를 하는 자리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찬양대는 발전이 없습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신앙이 채워지지 않고 음악에 종사하여 "페이"만을 바라보고 교회를 나가서 소위 "물이 흐려졌지만" 음악하는 신앙인들은 더 음악을 통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인도하고 나누기를 노력해야 하며, 교회 또한 이력서만 가지고 "스펙"으로 뽑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 최악인 사람은 음악을 잘한다고 해서 음악을 잘 못하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사람들입니다. 음악인들은 하나님께 부여받은 달란트로 다른 사람들을 더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서게 하는 사명을 가졌습니다. 모자란 것이 있으면 채워주고 길러주고 하는 역할이 있는 것이죠. 물론 유재철님께서는 다른 일들도 그렇다고 하시겠지만, 거듭 말씀드립니다. 어디까지나 두 가지 면에서 구분되어집니다. 하나는 예배시간에 이루어진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는 면에서 입니다. 신앙은 "형평성"과 "효율성"으로 대변되는 "경제적 원리"로 이야기 되어지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교회들이 음악전공자들에게 들어가는 돈이 마땅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면이 바로 그 두 가지 입니다. "형평성"은 이미 여태껏 말씀드렸고, "효율성"은 음악전공자들에게 들어가는 일년 예산이면 다른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부의 생각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은 다윗이 발가벗고 법궤를 맞이했을 때 처럼 "비상식"을 옳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지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중요한 관점이지 "경제적 원리"에는 하나님은 관심이 없으십니다. 더 나아가서 유재철님께서 만약 제 말을 "음악전공자에게 주는 '페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라고 이해하신다면 저로서는 아쉽기 그지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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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보니 님께서는 ‘예배 형식주의자’시네요. 단지 주일낮 9시나 11시에 성도들이 모여 하나님께 드리는 형태의 현재 협의의 개념으로서의 예배만이 예배의 모든 것이라 생각하시는 건 아니시지요?
예배를 중시하는 것, 그리고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려 한다는 사실은 존경할 만하지만, 그 외의 것들이 예배가 아닌 것처럼 생각하시는 그 자세는 정말 위험천만합니다. 예배는 그런 형식으로서의 예배도 있지만 하나님을 따르는 하나님나라의 일원들의 삶 자체가 예배입니다.
님들처럼 음악을 전공한 이들은 음악을 수단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 자신의 달란트로 예배를 드립니다. “음악 전공자들이 음악을 통해 하나님께 부여받은 달란트로 다른 사람들을 더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서게 하는 사명을 가졌다”는 말씀처럼 다른 이들도 각자의 달란트로 예배를 드립니다. 전도자들은 더운 여름날 가가호호 방문하며, 혹은 길거리에서 땀 흘려 하나님나라를 전합니다. 오히려 이들이 예수의 하나님나라 사역에 더 가깝다고 생각지 않으세요? 사역기간 동안 예수가 언제 성가대 조직해서 찬양하고 다녔답니까?^^
‘형평성’과 ‘효율성’을 언급하시며 본질에서 멀어지는 우를 범하시지 말았으면 합니다. 지금의 교회음악(클래식과 CCM을 모두 아울러)은 하나님나라 사역의 한정적 수단은 될 수 있어도 근원적 본질은 되지 못합니다. 본질은 오로지 ‘말씀’인 것이죠. ‘복음’인 것이죠.
종교개혁의 화두가 바로 ‘본질로 돌아가자’였죠? 아마도. 중세의 형식적인 겉치레들(교부로 대표되는 기독교 질서들, 그 가운데 음악도 한몫했지만)로 본질(말씀과 복음)이 가려지는 사태에 대한 경종, 말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수단이 오로지 음악 외에는 없는 것 같은 취지의 논리는 상당히 위험하다는 사실을 말씀드립니다. 님의 말씀대로라면 예배를 맡은 모두가 지휘자와 성가대만큼 중요합니다. 예배를 돕는 안내자, 헌금봉사위원, 기도자, 특송자, 간증자, 사회자 등등.
위에 잘 지적해주셨습니다만 ‘봉사’가 아니라 ‘충성’이 맞는다면 ‘충성’하시는 분들이 페이받고 충성한다는 말처럼 우스꽝스런 말이 없을 듯 하네요.
하지만, 감동은 딱 거기까지만, 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음악을 통해 사역한다는 사명감, 그것은 오로지 님의 개인 내적 영역의 테두리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 길이 바른 길이든, 그렇지 않은 길이든 님께서 선택하신 길이죠. 따라서 그 길을 걸을 때 감당해야 할 어려움도 역시 오롯이 님의 몫이라 해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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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일을 걸어가겠다는 사람, 개인 내적영역이라 할지라도 감내하겠다는 사람에게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돌을 던질 수는 없는 겁니다. 네가 선택했으니 네가 알아서 해라라는 말은 역시 할 말이 아닌 듯 합니다. 물론 답글인 줄은 압니다만, 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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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길 걸어가겠다는 사람, 도와주는 것은 개인이 알아서 결정할 일입니다. 그리고 충분히 도와드릴 용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철저히 개인적 차원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런 분들의 사역조차, 기독교 역사와 사회와의 관계와 일정한 연관을 띠며 그러한 맥락 속에서 그 사역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가까운 지인 가운데 지방 오지에서 목회를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벌써 한 30년 가까이 목회하고 계신데 아직 미자립 시골교회여서 대학 다니는 자식들, 학비는 물론 생활비도 제대로 주지 못하는, 조금 심하게 말하면 ‘무능력자’ 아버지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분을 욕하거나 손가락질 하지 않습니다. 그 분을 저는 인격적으로는 존경합니다. 아마 대충 몇 군데 교회에서 지휘하고 돈이나 챙기며 스스로 ‘사역합네’하며 자위질하는 사람들은 전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 치열하게 목회하십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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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인 예의 대조는 좋은 실례가 되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들 역시도 유재철님처럼 인격적으로 매우 존경할 뿐만 아니라 게다가 "무능력자"라고 이야기하지도 않습니다. 서로 다른 부분이 아닌데 이리 각을 세워서 대조해야 하는지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모습들은 기업화 되어가는 대형교회들이 맡아줘야 할 부분들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서로 다른 해결점과 착안점을 가진 문제를 가지고 대조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 무슨 득이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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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집단 이기주의’를 봅니다. 남이 어려운 건 다른 누군가가 대신해주길 바라면서 내가 대우받는 것은 포기할 수 없다는 못된 마음.^^
우리 사회의 디테일한 모습과 교회와의 관계, 그리고 그 속에서의 교회의 역할과 위치. 사실 이런 문제들은 그리 단순하지 않고 복잡합니다. 사역을 위해 개인의 안락한 삶을 버리고 고난의 길을 가고 있다고 모두들 자위하고 합리화합니다. KircheMusik님 역시 그런 길을 위해 음악을 하셨겠죠?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딱 거기까지 만입니다.
도대체 중세 이래 우리 역사에서 패악질만 거듭해 온 기독교의 변화를 위해서, 그리고 개인적으로라도 변화를 위한 자세라도 갖고 있습니까? 기독교가 권력의 하수인으로 몰락했을 때 목숨을 던져 고통스러운 싸움을 싸우다 총살형을 당하신 본 회퍼 목사님이 갑자기 생각납니다. 나치 치하에서 ‘종말론’만을 역설하는 칼 바르트와 벌인 논쟁을 통해 본 회퍼는 죽음을 불사하고 평화 계명 성취와 기독교인들의 둔감해진 윤리 감각을 질타한 바 있죠.
요는 현재의 기독교가, 기독교의 예배가, 그 예배를 돕는 교회음악이, 나아가 오늘날의 교회 윤리가 과연 우리 사회를 얼마나 정화하고 리드하고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전혀 그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며 오히려 더 악화시키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교회 음악을 예로 들어 볼까요? 요즘 교인들, 음악이 예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 크다고 말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위에서 언급했지만, 예수의 제자의 길을 걷겠노라고 떠벌이는 이들이 예수의 사역을 제대로 치열하게 공부하거나 이해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겠습니다. 교회가 걸어야 할 길과 방식에 대해 얼마나 고민하고 부딪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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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과 신학자, 교회와 목회자가 감당해야할 문제들을 너무 멀리 나아가서 음악에 빗대어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사회를 리드하지 못하는 것은 음악과 비교해야할 문제가 아닙니다. 찬양은 찬양대로 예수의 사역은 사역대로 다 가치있는 일이며 공존해야하는 중요한 부분들인 것입니다. 유재철님께서 지체인 것 처럼 저도 합하세의 다른 사람들도 다 지체란 말입니다. 예수의 사역을 제대로 치열하게 공부하거나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은 그대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이거 아니면 저거라는 논리는 여기에는 맞지 않습니다. 부족한 것이 있다면, 좋은 신학자와 목회자가 사회를 리드해야 하는 것처럼 좋은 교회음악가가 교회의 음악을 높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 역시도 개선해야할 점이지 없애야 할 문제가 아니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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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논리는 기독교가 ‘독선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여실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사역한다는 분이 기독교 역사의 패악을 짐짓 외면하시는 모습은 볼썽사나워 보입니다. 사회를 리드하지 못하는 기독교임을 알면서도 이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고 개혁하려는 고민이나 움직임없이 그냥 나는 음악하는 사람이니까 음악이나 해야겠다는 이기심. 그런 모습으로 인해 우리는 기독교 내의 풍성한 다양성을 잃었고 아리우스와 존 후스를 죽였으며, 마이스터 엑카르트를 정통기독교에서 몰아냈죠. 요컨대 반대하지 않거나 무관심한 것은 바로 동조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음악? 중요하겠죠. 하지만 저에게는 하나도 안 중요하며 오히려 중요한 문제를 가리는 존재로 전락한 것이 오늘날의 교회 음악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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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하난도 안중요하며' 개인적 의견이 전체적 가치를 대변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오롯이 유재철님의 생각입니다. 제가 아는 다른 목사님은 음악전공자를 써서 찬양대를 자리잡게 할 뿐만 아니라 레슨을 할 수 있는 장을 열어줘서 10년 뒤, 20년 뒤의 교회의 음악을 생각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지금은 부족하지만 점점 나아져서 하나님께 좋은 것으로 드릴 수 있다는 소망. 참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같은 것을 보아도 혹시 '음악전공자에게 돈 몰아줄 일 없다'라고 받아들이시지는 않으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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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오롯이 제 생각만이라고 말씀하시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아, ‘합하세’에서는 제 의견이 소수겠네요. 이 방에서 논쟁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음악 전공자이거나 전공자의 편에 서 있는 분들이실테니. “제가 아는 다른 목사님..운운”하시는 대목이야말로 개인적인 생각과 입장을 일반화하시는 모습 같아 안타깝습니다.
제게는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면 안된다는 취지로 말씀하시면서 님께서는 그리 하시면 됩니까? 요사이 우스갯소리로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입니까?
오늘날 교회의 음악은 제대로 된 예배의 구성물이 되지 못합니다. 수많은 폐해의 기독교 죄악사를 옹호하고 찬양하며 한 지면을 장식한 부산물일 뿐입니다. 이민족과 유색인종들을 착취하고 탄압한 이면에 침략자들을 옹호하고 칭송하는 데 사용된 것이 중세의 음악이고 현재의 교회음악 역시 그 시대 음악의 후손들입니다. 현재도 소수 권력을 지닌 집단의 엘리트 문화를 지향하는 계급 음악으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교회는 더 이상 변화의 촉매제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음악 역시 아무것도 아닌 게 됐지요. 예배를 위한 사역? 영성의 고양? 교회 외부에서 보면, 그리고 엄밀히 따져보면 다 ‘그들만의 리그’일뿐입니다. 아무리 클래식한 음악으로, 아무리 성스럽게 연주해봤자 엘리트 계급에 의해 편집되고 그들의 구미에 맞는 이데올로기를 내재한 노래들일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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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떤 교회음악을 접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25년간 성가대를 해오셨다면서요? 헨델의 메시아와 바흐의 마태수난곡이 아무런 영감을 주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수많은 시어들이 유재철님 가슴에 남아있지 않나요? 다윗의 시편이 없었다면 초대교회의 예배도 없었으며, 중세의 음악들이 없었다면 종교개혁의 코랄도 생겨나지 않았을 겁니다. 클래식한 음악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내재된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의 부재가 문제인 겁니다. 어떻게 이렇게 음악에 편중된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유재철님에게 의하면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온 힘을 다하라는 루터의 메세지도 휴지통으로 버려져야 할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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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이후 근대에 이르는 기독교음악이 철저히 교부를 위시한 지배계급의 논리를 대변했던 음악이었음은 고등학교 정도의 학력만 가져도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요. 물론, 가사는 성경에서 따왔거나 성경의 내용을 소재로 삼았지만 그야 서구 세계가 근대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세계였기에 당연한 것이었죠. 중세음악은 교부들의 권위를 드러내거나 십자군전쟁 등 명분 없는 전쟁을 찬양하거나 합리화하는 도구였습니다. 더구나 비대중적인 음악적 기교나 접근 등 대중들이 참여할 수 없는, 소위 일부 음악 엘리트와 그 음악 엘리트들에게 패트런(patron)의 역할을 한 지배계층만이 향유하는 고급문화에 불과했습니다. 하긴 중세에 일반 대중들은 성경책조차 읽지 못했는데, 그리고 지금은 상상할 수조차 없을 만큼 빈궁한 생활을 했을 텐데 기독교음악을 향유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겠지요. 중세 그레고리오 성가나 근세 이후 기독교 음악의 본질은 바로 왕족, 귀족, 교부 등 당시 지배계급만이 향유할 수 있었던 노리개였을 따름이죠.
더불어 그레고리오 성가를 만들었다고 알려진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가 ‘스콜라 칸토룸’이라는 성가대를 조직해 당시는 주변국이었던 영국과 아랍지역에까지 들어가 로마의 위대함을 성가형식을 빌려 가르치는 등 제국주의의 첨병으로 활용된 것이 교회음악이었습니다.
게다가 지금으로서는 말도 안되는 ‘카스트라토’제도 같은 반인권적 관습 같은 것도 존재했었던 점을 생각해보시죠.
16~18세기 제국주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침략주의에 편승한 교회음악이 타 민족의 고유한 음악과 정신을 말살하는 데 앞장섰던 것을 모르시나요? 제발 공부 좀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지 않다’는 말로 모든 것 중심에는 인간이 있다는 의미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중세 이후 교회 음악은 그 사람을 소외시키는 대표 주자였던 셈이죠. 이것이 중세 이후 타락한 교회와 교회 음악의 실체적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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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교회 = 암흑의 시대 = 타락한 음악이라는 아직도 그런 무지몽매한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나요? 본인이 잘 모르는 것들에 대해서는 일방적으로 치부해 버리면 발전이 없습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음악은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큰 선물들 중의 하나입니다. 중세의 소외시키는 대표주자는 그릇된 신학과 잘못된 가르침들이었습니다. 참 이 새벽시간이 아깝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제 일에 종사해야하는 시간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이 밤을 새워서 이 장문의 글들을 일일이 남기는 것은 진심으로 유재철님께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즐거움을 맛보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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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참 안타깝고 이 시간이 아깝습니다. 중세 이후의 기독교음악이 잘못된 기독교를 칭송하고 합리화하는 도구로 사용된 역사가 엄연히 존재했고 그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음악인들에 의해 이뤄져야함에도 음악인들은 수탈과 야만의 역사에서 시중 노릇한 음악을 감싸안는 데만 치중하니 미칠 노릇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 있어 그런 서구의 과거 기독교음악만이 유일하다는 잘못된 생각을 제발 좀 버려주십시오.
과연 하나님이 이런 음악을 인정하실까요? 소리의 아름다움, 조화로운 음악적 완성도를 위해 교회가 돈을 처바르고 있을 때 예수는 교회 문밖에서 소리 없이 ‘린치’ 당하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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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사리 아무데나 그리스도의 이름을 남발하지 마십시오. 이런 당신의 조악한 논지로 '린치' 당하셔야 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인정하실지 아니하실 지는 음악을 주신 하나님께 여쭤보십시오. 소리의 아름다움과 조화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등돌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기에 돈을 사용하는 것을 아까워 하신다면, 헌금은 왜 하십니까? 강단에 꽃들은 왜 가져다 놓습니까? 그걸 처바른다고 말하고 싶으십니까?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위해 최소 일주일~한달을 고생해서 하나님께 노래하는 자들이 그렇게 가벼이 보이십니까? 실수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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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부하셨으면 합니다. 소리의 아름다움과 조화만으로 하나님과 예수님이 흡족해 하실거라 생각하는 그 단순함을 부끄럽게 여기십시오. 당신들이야말로 이기적인 욕심을 합리화하기 위해 하나님과 예수를 끌어들이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기에 돈을 사용하는 것을 아까워 하신다면, 헌금은 왜 하십니까?’라고요? 정말 서글퍼 집니다.
거기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게 바로 음악 전공자들의 알량한 ‘이기주의’입니다. 자신들의 치부를 들켰다고 화내거나 흥분하기 전에 진실로 스스로가 신앙인이라고 생각하시면 뜨겁고 치열하게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깟 돈 받고 안 받고의 문제에 혈안이 되어있는 우스꽝스런 자신에게서 무엇이 느껴지시나요? 자기 밥그릇 빼앗길까 두려워, 전전긍긍하고 그 밥그릇에 손대는 이에게 공격적으로 돌변하는 스스로의 모습,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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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그릇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생활비 활동비 도서구입비 판공비 자녀교육비 등등 사적인 금액까지도 다 나오는 목회자들처럼 음악하는 사람들도 그 문제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교회음악은 옛날 바하가 그랬던 것 처럼 매 주 하나님께 얼마든지 훌륭하고 아름다운 곡들로 좋은 목소리와 울림으로 온 교인이 함께 감격과 하나님에 대한 열망으로 예배드릴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우리의 최선을 다해 드려야만 합니다.
이런 마음을 품어보지 못한 사람은 이를 "이기주의"라고 치부해버리고 말겠지만 말입니다. 유재철님께서 다른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마음을 품어보지도 못했냐고 하시면서, 정작 본인은 어렵게 어렵게 하나님을 노래하고 찬양하는 사람들에게 그 "무엇인가"를 베풀어 보셨습니까? 본인도 그러지 못하면서 왜 남의 밥그릇 타령을 하십니까? 당신이 무시하고 멸시하는 그 "페이"받는 음악전공자들은 적어도 남의 밥그릇을 깨지는 않습니다. 오죽하면 우리나라 말에 "산통을 깬다"라고 하겠습니까? 유재철님. 거듭말씀드리지만 산통깨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사람들에게도 그렇거니와 지극히 작은 자에게 더 잘하시고, 가장 중요한 하나님 앞에서 산통깨지 않는 분이 되길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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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음악 전공자들의 ‘밥그릇’ 앞에서 앞으로는 산통 안 깨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고 계셔야 합니다. 그 알량한 ’밥그릇‘ 지키려 상식을 버리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밥그릇‘ 때문에 잘못된 관행과 제도를 외면하는 자들의 추악함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2000년간 기독교가 썩어 문드러진 이유가 바로 그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 분의 뜻을 기다리는 게 현명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비겁한 기회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침묵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비되어 있다는 섬뜩한 말이 문득 생각납니다.
어쨌든 교회의 잘못된 관행과 제도에 대해 공론화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진지한 논의를 통해 바꿀 수 있는 문화를 만들지 않는 한, 교회는 더 이상 희망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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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거듭 강조해서 이야기하지만, 본인의 생각과 주장에 이미 "그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논지와 결론을 지어 놓고 공론의 장이 없다느니 그런 문화가 없다느니 이야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서로 논의해서 결정된 것이 최종 결론이지 이미 결정지어진 이야기를 가지고 과정을 도출해가는 것은 작금의 검찰이 하는 일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교회의 잘못된 관행과 제도에 대해서 이야기 하시려거든 당회앞에서 목사님과 장로님들에게 이야기 하십시오. 왜 정책과 방향성의 문제를 힘도 없고 상황 어려운 유재철님보다 어려운 사람들의 앞에서 이야기합니까. 바꾸시려거든 유재철님의 "사역"의 정의에 맞는 모든 사람들에게 혜택이 주어지게 바꾸시길 부탁드립니다. 그게 어려울 경우 담임목사님을 만나서 논의해 보십시오. 돈으로 도배하는 것인지 린치를 가하는 것인지 사람을 키워서 하나님과 교회에 충성하는 사람을 만들 것인지. 그리고 원하건대 본인이 하나님을 찬양으로 만나보십시오. 돌아온 탕자처럼 반겨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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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글에도 명시했지만 저는 제 방식대로 이 문제에 대해 싸울 겁니다. 그러니 걱정 안하셔도 되고요.
그리고 풋... 마지막까지 대단히 교만하시네요. 저야 뭐,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하나님이 돌아온 탕자처럼 반겨주실거라고요? 하하하. 제가 졸지에 탕자가 되었네요. 우리 기독교 역사를 더럽힌 패악자들의 마인드와 어찌 그리 닮아 있는지, 참. 서글플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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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절대 안들어 오겠다고 했놓고선 또 들어와선 분란을 일으키는 그대는 진정 참 그리스도인 인가?
안티와 이단들이 즐겨사용하는 반 교회적인 글을만 올리시네요.
어디서 이런글들을 사용함에 있어서 교육을 받으셨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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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글쓴이의 의도는 그것이 아닌데요, 내게 불편한 소리라해서 이상하게 몰아가는 것은 정당하지 못한것 같습니다. 위엣 분은 분명 그리스도인이 맞습니다.
참 답이 없네요 ^^
저도 더는 지면을 할애해서 이 분과 나눌 이야기가 별로 없습니다.
다만 필요한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메일로 나눌 생각입니다.
유재철님을 한번 개인적으로 뵙고 싶군요.
어떤 분이신지. ㅎㅎ
맞는 의도도 다분히 있으나 비뚤어진 모습이 덕이 되지 않네요.
덕을 세우는 데 더 힘을 쓰시길 진심으로 기도하고 바랍니다.
안타깝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쓴글들 다 관심 갖고 읽었는데 글을 보면 볼수록 정체가의심됩니다 개인적으로이야기 하자하고 이단으로 유인하는 미끼일수도있어요 조심하셔요
한경 형님 말씀듣고 와봤더니 가관이네요..ㅎㅎ 의도와 용기는 좋으나 한 장로님이 말씀하신대로 꼬일대로 꼬여서 댓글다는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보단 "비꼬기에 능숙한 네티즌"이라는 말밖에..ㅎㅎ 어떤말을 논리정연하게 해주더라도 유재철님의 귓속에는 "밥그릇지키기"라고 밖에 들리지 않도록 그 마음이 정해져있으니 말해도 소용없는 노릇이에요,그 분 섬기시는 교회에 보고 경험한 것에서 나온 생각일터이니 그냥 두세요. 음악이 예배의 도구로 쓸 필요없다는 예배자들이 많아지고 있는것 같아요..그러니그 분들의 머릿속엔 예배의 음악에대한 투자가 형평성이라는 잣대로 들어가버린게 아닐지.그런분들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그리고 그런분들을 볼때마다 우리가 더욱 마음을 다해 찬양해야 그 분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반성도 하게 됩니다. 책임을 통감합니다.
러블리 썬님! 오해는 푸세요...한경님이 조금 흥분하셨었어요ㅋㅋ 의심하실만한 그런분은 아닙니다요!
앗...이렇게 언급하면 저도 의심받나요??ㅎㅎㅎ 저는 소망교회 시온찬양대 홍민섭이라고합니다.
그리고 초온싸아라암(목사님?)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필요"
교회는 예배의 도구인 '음악'을 목회자가 전적으로 감당할수 없는 "필요"에 의해서 음악 사역자가 세워진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예배에 말씀을 전해야할 목회자가 없다면 외부에서 청빙하는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유재철님은 목회자와 음악사역자가 어떻게 동등하냐 형평성을 논하겠지요.ㅋ암튼)
다만,예배에 굳이 음악이 도구로 왜 필요하냐, 감정적인수단일뿐이다,말씀과 기도로 충분하지 않느냐라는 예배자라면 저는 그저, 그 교회음악담당자가 마음을 다해 찬양하지 못했을뿐이다라고 밖에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예배가 음악으로, 찬양으로 인해 얼마나 큰 변화를 일으키는지 보여주어야할 책임을 다하지 못한 이유일것입니다.
조금만 더 배려한다면 좋은 내용들은 많은데...참 한가지만 말씀드릴께요...저는 전공자는 아니지만 재정감사를 담당하는 자로서 교회음악하는 사람이 기득권자는 아닌 것 같아요...^^..언제든지 교회에서 예산을 계획하지 않는다면 바람앞에 등불일수 있거든요...^^...교회예산을 짤때 예배에 대한 예산, 찬양에 대한 예산, 선교에 대한 예산, 전도에대한예산,봉사에 대한 예산, 친교에 대한 예산, 교육에 대한예산등을 크게 나누어 계획합니다...
찬양에 대한 예산에 지휘자와 반주자의 사례비 문제가 나오는는데...찬양에 대한 예산을 찬양대원 수대로 나누어 찬양대원 각자에게 동일하게 사례를 하는게 형평성이 맞느냐 아니면 지휘자와 반주자에게만 주는게 형평성이 맞느냐....교육에 대한 예산을 교사들에게 사례비를 주는게 형평성이 맞느냐 아니면 아이들을 위해 쓰는게 형평성이 맞느냐...?...
전도에 대한 예산을 전도 대상자들을 위한 물품대금으로 쓰는게 형평성이 맞느냐 아니면 전도대원들에게 사례를 주는 게 맞느냐...?...봉사에 대한 예산을 짤때 봉사대상자들에게 지원하는게 맞느냐 아니면 봉사를하는 성도들에게 사례로 주는게 맞느냐?....
친교에 대한 예산을 짤때 교회마다 각각 친교(선교)단체들이 있는데 이러한 단체들의 친교를 위해 사용하는냐 아니면 선교단체를 끌고가는 수고하는 임원들의 사례비로 지급하는게 형평성이 맞느냐...?..^^...
제가 결론은 내지 않겠습니다...왜냐하면 저의 결론도 완전하지는 않기때문입니다...사례를 받는 자들이 사례를 받아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면 사례를 받는자에게도 복이고 함께 영광을 드리는 자들도 또한 영적인 도전을 받지요...^^..
교회의 사정에 따라 누가 사례를 받든 그 사례받는 것이 신앙적으로 문제 된다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그 사례받는 자일 것입니다...^^...
설교에 관심 있는 자는 목사의 설교가 이렇다 저렇다 말이 많지요, 먹는 것에 관심 있는 분은 오늘 교회 점심이 짜다 싱겁다 말씀이 많구요. 옷에 관심이 있는 분은 오늘 목사님 넥타이가 좋다 후졌다 말씀하구요. 돈에 관심이 많은 자는 지휘자가 사례를 받느냐 마느냐에 말씀이 많구요, 하나님에 관심이 많은 분은 하나님과의 교제에 집중을 하지요. 찬양대 대원 반주자 지휘자는 그 찬양에 관심이 많아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일에 집중을 한답니다. 사례를 받고 안 받고는 생계에 필요할 수는 있겠지만 관심과 집중의 대상은 아닌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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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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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이 불어넣는 생각에 올인하지 말고 성령을 사모하고 지혜를 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저에게도 부디 지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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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창부리"님 3595번 글(본문과 댓글) 부터 읽어 보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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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하신 분은 하나님외에는 없으니 이런 사람들의 말과 행동은 어찌보면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살아가다 보면 하나님께 조금씩 더 가까이 갈수 있을 것이고, 그날에 부르시겠지요.^^감사함으로 "제가 여기있나이다 주여. "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전공자는 아니지만 목회자 세미나 찬양봉사와 반주로 오전10-3시까지 일주일에 2일을 3년째 무보수 봉사를 하고 있읍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기억 하시고 그날에 말할수 없는 영광과 상으로 보상해 주실걸 확신 합니다 주님을 찬양 합니다~~^^
아멘~~ 상급이 크실겁니다. 부럽습니다. 저도 피아노 칠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찬양대에 있습니다. 그리고 더욱 사모하고 있구요.
한가지 확실한 건, 페이문제로 교계를 뒤집으시려면 전세계교계를 뒤집으셔야 할 겁니다. 교사, 안수집사, 차량안내, 식당봉사 다 하나하나 귀한 일이죠. 허나, 페이를 받는다고 해서 양심이 없다거나 그런 식의 논린 정말 답이 없는 것 같네요...; 그리고 조한경님의 글도, 유재철씨의 글도 다 읽었지만, 유재철씨는 뭔가 새로운 걸 받아드리려는 마음이 없이 이 글을 쓰신 것 같아요. 마치 양귀 다 꼭 닫고 큰 소리로 외치는 사람 같달까요. 상당히 불쾌합니다. 교회에서 반주한다고 지휘한다고 페이받고 양심에 찔리지 않으면 무조건 깨어있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소리인가요? 전공은 하셨나요? 저도 피아노 전공하고 있지만 어느 전공
못지않게 기도하며, 어느 때는 정말 영감이 필요해서 절실하게 매달리고 기도합니다. 또 이런 말씀까지 드리긴 그렇지만, 다른 전공보다 더 재정적으로 투자하고 시간적으로 투자해야 좋은 결실(?)을 맺는 전공이라 더 기도하고 매달리지 않으면 버틸 수 없어요. 꼭 마치 "난 교회에서 돈 안 받고 일하는데 왜 반주자/지휘자들은 돈 받고 일하느냐" 투정하는 분 같으세요.
돈받고 지휘하고 피아노 연주하는거와 돈 안받고 봉사한는 거와 뭐가 다른 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