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늘푸른모녀의 인도기행기 1/ Delh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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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IA, 그 첫 번째 도시 DELHI
어느 해 여름, 서울 시내 건물에 크게 걸려 있던 현수막의 글이 인도 여행 내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 그대를 사랑한다며 나를 사랑했다. 이웃을 사랑한다며 나를 사랑하고 말았다. 가만히 푸른 하늘이 내려다본다. -
2003.07.17.목요일 인천공항/ 늘... 마음으로만 품어왔던 India를 만나게 해 준 아시아나 여객기를 배경으로...
떠나는 날, 인천공항에서 두 명의 여대생을 만나 합류했다 . H대에서 디자인을 전공한다는 졸업반 여대생 진과, 첫인상이 매우 인도틱해 보이는 영문과 졸업반 여대생인 또 다른 한 친구는 어학연수와 여행 두 가지 목적으로 6개월간 인도에 머물 예정이라는 sunrise-india였다. 진이와는 거의 보름동안의 루트가 같아서 함께 움직였고 sunrise-india는 델리에서 2박 3일간 함께 동행하다가 그녀는 어학연수 장소인 푸네로... 우리는 다음 여행지인 암리차르로... 여행 세 쨋날 새벽, 우리는 뉴델리 기차역에서 sunrise-india와 헤어졌다.
델리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두운 밤! 우리는 델리의 위험한 밤을 피해 우선 하룻밤을 공항 내에서 수다(?)를 떨며 밤을 지새우기로 하고 이번이 인도여행 두 번째라는 sunrise-india의 인도 경험담을 들으면서, 인도에 관한 책자와 프린트 해 온 자료들을 찬찬히 살펴가며 새벽의 긴 시간들을 보냈다. 공항대합실엔 우리 일행뿐 아니라 각국의 여행객, 여러 팀들이 우리처럼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공항에서 우선 30불을 환전한 후, 델리공항을 나서려는데 번개를 동반한 비가 우리 일행을 제일 먼저 환영(?)해 주는 듯 했다. 그 복잡한 느낌 사이로 삐끼들을 겨우 피해 택시를 잡아탔는데, 택시기사의 몸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 순간, 우리 모녀는 일순 숨쉬기를 멈추어야 할 만큼 그 냄새는 고약했다. 그 이후, 우리 모녀는 인도남자들의 그 특유의 냄새(암내 비슷한...)에 자주 숨을 멈추곤 했다. 특별히 발달한 내 후각은 인도를 여행하는 내내, 나를 무척이나 힘들 게 했다.
택시를 타고 뉴델리를 향해 달리는 새벽의 도로는 쏟아지는 폭우로 인해 순식간에 물바다가 되었고, 물살을 가르고 경적을 빵빵 울리며 달리는 인도 기사의 첫인상은 한 마디로 무법자들이었다. 어쨌거나, 큰 탈 없이 뉴델리 역 앞까지 데려다 준 기사에게 우리는 200루피와 서울에서 준비해 간 가스라이터와 볼펜을 선물이라며 함께 건넸다. "넌 좋은 기사다. 너의 운전은 매우 흥미가 있다. 그러나, 항상 조심하라." 고 말했던 내게 돌아온 그의 반응은 역시, "노 프러블럼"
파하르간지에서부터 골든카페, 그리고 첫 숙소로 잡은 나브랑까지의 거리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개, 고양이, 소는 물론이고, 자전거와 오토릭샤, 남녀노소가 엇갈려서 제 멋대로 움직이는 거리. 얼마쯤 걸었을까? 골목 어귀에 죽은 듯 누워있던 앙상한 가슴이 다 드러난 여인네의 얼굴위로 수없이 꼬이던 파리떼들. 거의 벗다시피한 행색에 뼈만 남은 새까만 육체. 그러나, 곧 죽어갈 것 같은 그녀에게 어느 누구 하나, 관심을 나타내주는 행인들은 없었다. 당장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여행객인 늘푸른의 시선에 잡힌 그녀는, 내 가슴에 '쿵' 하는 절망감과 함께 '이게 인도구나'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건네 주었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풍경들은 여행 도중에 자주 만나게 될 모습의 시초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기 까지는 그렇게 긴시간이 요구되지 않았다. 또 얼마를 걸었을까? 죽은 쥐 한 마리가 하늘을 마주하고 드러누워 내장을 다 헤집고 있던 모습. 그런데, 이건 또 무슨 냄새인가? 오픈 된 남자 화장실에서 볼 일을 버젓이 보는 남자들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현기증이 날 만큼 지독한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찌른다. 질퍽거리는 거리,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여러개의 똥무덤, 시큼털털하고 고약한 시장통에서의 냄새. 이른 아침이니 이 정도겠지? 한 낮의 파하르간지 풍경은 또 어떻게 변할까? 상상만으로도 어지러웠다. 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해. 이 속에서 조금씩 인도를 느껴가야 되는 거야. 못 볼 걸 본 양으로 바닥에서 시선을 들어 올리자, 너무나 생경한 풍경이 눈 앞에 들어왔다. 아... 이 아이들은 어디에서 쏟아져 나오는 무리들일까? 단정하게 머리를 땋아 내리고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초등학생들의 깔끔한 모습은 내가 한 달여간 인도를 여행하는 내내, 내 얼굴에 자주 미소를 짓게 했주었던 풍경이기도 했다.
우리 일행은 게스트 하우스 나브랑(더블룸 120루피)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이 층 숙소로 오르는데 103호 현관문 앞에 작은 도마뱀이 기어 다니고 있었다. "은비야, 생각보다 도마뱀이 되게 작고 귀엽게 생겼네." 허름한 더블침대, 천장에 낡은 팬 하나, 작은 테이블. 그게 객실내의 시설물 전부였다. 배낭의 짐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침대패드를 준비하지 못한 우리 모녀는, 아시아나 기내의 모포 한 장을 한 달간 빌리기(?)로 작정했다. 이 모포는 찝찝한 숙소의 침구 위에 깔아 놓고 자기에 적당한 크기를 하고 있어서 무척 요긴하게 쓰였다. 돌아오는 비행기편도 아시아나였기에 한 달간 잘 사용한 모포를 아웃하는 비행기 시트 위에 조용히 올려 놓고 내렸다. 모포 한 장을 한 달간 허락없이 빌려 요긴하게 잘 사용한 점, 이 자리를 빌어 아시아나항공에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잠시 숙소에서 짐정리를 하고, 간단하게 샤워를 한 후 우리는 다음 행선지인 암르차르행 열차표를 예매하기 위해 우선 뉴델리역으로 향했다. 외국인여행자를 위한 2층 예매소에 가면, 외국인은 물론 한국인 여행자를 어김없이 만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린 그곳에서 아무런 준비없이 인도여행을 왔다는 자연의학에 관심이 많은 대철씨를 만났다. 그는 환전할 때부터 왕창(?) 사기를 당했으며, 여행에 필요한 모든 것을 현지 조달했다는 서른넷의 노총각. 그는 델리에서 스리나가르까지 우리 일행과 함께 움직이면서 은비에게나 내게 많은 힘이 되어주었다. 사연많은 어린시절을 보낸 그는 요가학교와 명상에 관심이 많아서 그랬을까? 평범한 우리네 시선으로 볼 때, 참 독특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저 도시명이 마음에 와 닿은 '다람살라'가 그의 여행의 주요 목적지라고 했을거야.
뉴델리에서 예매를 끝낸 우리 일행 다섯(나, 은비, 진, sunrise-india, 대철씨)은 오토릭샤 두 대에 나누어 타고 올드델리 일주(?)에 나섰다. 랄 킬라, 찬드니초크, 자마 마스지드, 간디기념관(라지 가트), 인디아 게이트, - 정보 하나, 국립기념박물관 입장료는 Rs 100 이다. 그러나, 국제학생증을 제시하면 Rs 1에 입장할 수 있다.- 드라이브를 하는 동안, 갑자기 쏟아지던 폭우로 우산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옷이 흠뻑 젖는가하면, 또 금새 쨍쨍한 햇빛을 해바라기 하고 서 있자니, 젖은 옷이 순식간에 말랐다.
무굴 제국 시대의 힘을 과시하는 빨간 성, 랄 킬라 무굴 왕조 제 5대 황제인 샤 자한에 의해 1639~1648년에 건축된 성으로, 빨간 사암으로 만들어진 굳건한 성벽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사진으로 보기엔 더없이 평화로워 보이지만, 주위를 둘러 보노라면 역사의 흔적이 역력히 느껴졌다.
1948년 1월 30일 테러로 죽은 마하트마 간디가 화장된 곳. 유해나 유골을 안장한 묘는 아니지만 간디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장소로, 참배행렬이 끊이지 않고 모여드는 장소. 주변에 잘 가꾸어 놓은 깨끗한 녹색공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 녹색공원은 참배를 끝낸 가족, 친구, 아베크족들의 산책코스로도 손색이 없었다.
높이 42M의 인도 문은 제 1차 세계 대전 때 전사한 9만 명의 인도 병사를 위한 위령비이다.
하루 종일 올드델리, 뉴델리를 돌아다니면서 인도와의 첫 만남을 무사히 치루어냈다. 온 종일 주린배를 채우기 위해 여기저기 음식점을 둘러 보았지만 마땅한 먹거리가 없어서 결국 몇가지 과일과 군옥수수를 사서 숙소로 돌아와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했다. 알람을 05:00에 맞추어 놓고 피곤하고 지친 몸을 허름한 침대에 누인 채, 천정의 후덥지근한 팬 바람을 쐬며 무거운 눈꺼풀을 내리 감았다. 내일 새벽, 열차를 타고, 새로운 도시 '암리차르'와의 만남을 갖게 되겠지? 암리차르, 그 도시의 첫 느낌은 어떨까? 새로운 도시에 대한 기대감이 밀려온다.
피곤한 내 꿈 속으로 낯익은 필체가 들어왔다.
"도대체 인도의 뭐가 그렇게 좋은 거요?" 그러자 여행 전문가는 조금 치의 망설임도 없이 흡사 나에게 언짢은 물건이라도 건네는 듯한 어투로 대답했다. 아니, 좋다, 나쁘다 하는 경계를 넘어선, 생명의 원형질이라고나 할까요?" 어쩌면 그로서는 나의 물음이 다분히 호사가의 심심풀이로 여겨졌던 것인지도 몰랐다. 그리하여 처음 맞는 어떤 해방감과 또 그만큼의 허탈감에 대해 흡사 오랜 굶주림 끝에 욕심껏 먹어치운 음식물처럼 숫제 소화불량증마저 느끼고 있을 때, 불쑥 뇌리에 떠오른 것이 바로 그의 경구와도 같은 몇 마디였다. 그리고 나는 기이하게도 그의 몇 마디 경구가 나의 소화불량증에 무슨 소화제라도 되는 듯이 청량하게 작용하는 것을 깨달았다.
- 송기원의 <안으로의 여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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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진 정말 이쁘게 잘 찍으셨네요.(모델이 좋아 그런가? ^^*) 여행기 잼나염~! 또 올려주세요.-그런데 뉴델리역 기차표 예매하는 장소는,, 정말 예매하는 곳인가요? 무슨 여행사 한 구석.. 정도로도 안 보이는데 ㅡ.,ㅡ; (인도 말만 들었지 상상 그 이상일것 같네요.
담에 정모 나오시오.........인도 애기 많이많이 해주시오...
은비엄마!!! 스리나가르의 허니문 하우스보트에서 한집 살림한 기억에 새삼 가슴이 떨리오. ^^
부럽네여..이런 저도 이넘의 재수 끝나고 올 수능 대박내서 인도로 떠날랍니다...
답글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수원씨, 정말 그렇게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 오해합니다. 어제 좋은 시간 보내셨는지요? 함께 하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요?
^^
아아.....뉴델리역의 기차표 끊어주는 시크아저씨... 넘넘...보고싶당....ㅠ.ㅠ 난 영수증없어두 표끊어주든데.... 지난 여름의 기억으로 한 1년 버티나 했는데 또다시 병이 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