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화(본명 이화국) 9번 째로 신앙시집 (상)
<깊은 눈길 하나를> 2012년 10월에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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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을 낸 관계로 종이책이 아니어서 선배 선생님들과 사랑하는 문우님들께 책을 개별로 발송치 못하고 이곳에 책을 올리게 됨을 혜량하여 주십시요. 시간 내어 읽으주시면 영광이겠습니다..
*********************************************************** 이국화 9번 째 시집 신앙시 모음 (상)
깊은 눈길 하나를
작가 소개
이름 이국화 (본명 李 花 國)
서울 진명여자고등학교 졸업 수도여자사범대학(현 세종대) 국문과 졸업 1990년 월간 『현대시』 신인상으로 등단 한국문협 한국시협 한국여성문학인회 한국작가회의 펜클럽 회원
설악문우회 <갈뫼> 동인 경기도문인협회 자문위원 역임 고양작가회 부회장 역임
시집에 『꽃나라 잠언』 『등대』『엄마 내 귀가 이상해』 『참지 않을 거야』 『무스탕을 입고』 『알전구 켜진 방』 『모래는 바다가 좋다』 『이슬 방울』(e-book) 8권
장편소설 『꿈꾸는 수레』 출간
1988년 5월 한국문화예술인선교회 신앙시 공모 특선, 경기도문학상, 경기예총문학대상, 고양시 문화상, 국민편지쓰기대회에서 금상과 은상 2회 1994년 11월 희곡『늦깎이』창작 경기농협단막극대회 작품상
주소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주교동 564 금산주택 207호 핸드폰 : 010-2758-3227 e-mail : 38hwakook@hanmail.net
머리말
국민소득 2만 불이 넘는다는 시대 잘 먹고 잘 살아 평균수명이 83세라니 인생 칠십 고래희는 옛말입니다. 고래희를 넘긴 나는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은 나이에 이르렀습니다. 잘 살아온 인생인가? 행복했던가? 세상에 남기고 갈 것은 있는가?
자문하는 가운데 여기 까지 흘러온 작은 존재를 발견하고 놀람을 금할 수 없습니다. 내가 한 일은 하나 없고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왔다는 생각 뿐입니다. 잘한 일도 있겠지만 잘못한 일이 많은데 이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손가락 한 마디 다침 없이 넘어왔는지 놀랍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머리카락 까지 센다고 하신 복의 근원이시며 용서와 사랑의 신이 이 시점에서 떠올라 오랫동안 써온 신앙시들을 한데 묶을 생각이 났습니다. 삶을 이끌어 온 때로는 믿음이었고 때로는 불신과 항의였던 글들입니다.
언제나 내 기도와 불평의 저쪽에는 분명이 하느님이 계셨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그를 향하여 입을 열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용서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길이며 진리며 생명을 넘어 늘 나의 친절한 대화자로 계시면서 반성의 등불이 되었고, 외로움을 달래주신데 대해 더욱 감사합니다. 전자시집 출판비를 선물로 주겠다는 이룻 권사님의 독려로 일정을 당기게 된 일조차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표하며 시 몇 편은 이전의 글을 손보아 다시 올렸음을 밝힙니다.
2012년 10월 1일 좋은 날씨에 원당 한켠에서 이국화(본명 李花國) 씀
글의 차례 1부
빛의 님 새벽기도 금 그어놓았습니다 가을 하늘 잘 견딘다 그대 있어 바다만큼 깊고 넓은 생명나무 당신 아니 계시면 새벽으로 오시는 접시물 깨달음 예수 종신 허원 크신 이에게 '네'라는 대답이 그리 마셔요 천국과 지옥
글의 차례 2부
하늘이십니다 다음 번엔 심장을 모기향 타는 밤 체머리 할머니 깊은 눈길 하나를 뜻대로 하옵소서 예수 나랑 같이 지팡이가 되어주세요 고맙습니다 주인의 얼굴이 나의 기도는 함께 가셔요 어디를 괴롭혀드릴까요 눈 온 날 아침 최후의 한 마디 믿기로 작정한 마음의 풍경 두 다리 아침 묵상
글의 차례 3부
눈 내리는 밤 지옥과 천당 길이 되는 것 따졌습니다 슬픈 실존을 위하여 제가 전능한 것이 아니잖아요 아까워 아까워 죄의 생쥐 포도나무 즐거운 하루 되게 주님 다시 한 번만 눈물의 기도 넘치옵니다 맴돌기 나의 아버지 이왕지사에 힘 주옵소서 순종(順從)
글의 차례 4부
그분 뜻이리 같은 점 다른 점 파리 열쇠를 당신께 쓸개 네 번째 기도 떫지만은 않게 새로 이사한 집 답안지 o x 하늘에 빌어 내가 죽게 되었나이다 라일락 핀 5월 마지막 용서 공개 고해성사 모시고 삽니다 빌고 빕니다 믿는 은혜 삼 장 변화 주소서
차례 1 부
빛의 님
님이시여 내 손 놓으면 두 발 있어도 걸을 수 없고 누워도 잠들 수 없으니
사랑 안고 돌아오시어 사랑의 끈을 이으시어 잠들지 못하는 밤이 길게 마옵시고 한낮의 즐거움이 쉬이 저물게 마옵소서
님과 함께면 밤은 짧고 낮은 영원하리니 사랑 가운데는 빛과 즐거움 님은 빛이기 때문입니다.
새벽기도
새로 이사한 집 가까이 밭 가운데 있는 교회 눈 비비며 일어나 찾아가 앉으면 키 큰 옥수수 창앞으로 슬금 다가와 내 기도 엿들어요
해바라기 넓적한 얼굴이 날 향해 웃으면서 저처럼 해님만 보고 살래나 저 넓은 하늘 향해 가슴 펴보래나...
“회칠한 얼굴에 열 뿔 난 사람 안 같은 사람이 내 길 막아요” 한참 고자질 하고 가슴 두드리다 나오면
풀섶에선 밤새운 미물들의 성가 합창 ‘기리에 엘레이션’ 초롱초롱 빛나는 새벽 별이 내려다 보며 웃는다.
금 그어 놓았습니다
님이 정하신 길이면 피할 수 없음이니 발이 부르터도 따르겠습니다
길 가운데 돌이 있어 넘어졌다기로 쓰다듬고 어루만져 주시는 손길을 뿌리칠 자 누구입니까
엄마의 무릎에 안긴 아이처럼 님의 품안에서 살게 하여주십시오
님의 눈길 머물고 님의 음성 들리는 곳 까지가 저의 세상이라고 옛날에 옛날에 금 그어 놓았습니다.
가을 하늘
하늘이 시퍼런 눈 부릅 뜨고 있어 이런 날엔 죄 짓지 못한다
확대경 같은 저 눈에 먼지 티끌이 드러날까봐 이런 날엔 죄 짓지 못한다
숙제 안 한 날 재수 없이 공책 검사하는 선생님 같아
이런 날엔 절대로 절대로 죄 짓지 못한다.
잘 견딘다
세상에 억울하고 분한 이 있으면 앞으로 나와 보라 한다
누명만으로 가슴 찢기거늘 옆구리에 대창 손발엔 대못 십자형틀 위 저 사람
젊은 나이에 죄없이 모함 받아 죽은 자기 좀 보라 한다
이 땅 위 내 삶 가시밭에 구를 때 피 흘려 아프고 억울한 그를 보며 안 아프다 안 억울하다 참을만 하다면서 잘 견딘다.
그대 있어
꽃도 그대 있어 피어 아름답고 새 울음도 즐거운 노래 되고
앓아 눕던 수평선도 우쭐우쭐 일어나 춤 추고
소나무 가지도 그대 향해 푸르르고 옹달샘도 그대 있어 고이고
항아리 술도 그대 있어 익어오르고 벼이삭도 그대 있어 패어나오고
눈발도 그대 있어 내려오고 계절도 그대 있어 가면 다시 오고
사랑하는 그대가 있어 사랑이신 당신이 계시어.
바다만큼 깊고 넓은
나는 큰 바다 너는 하얀 눈송이 되어 나풀나풀 내리거라 험한 장대비로 꽂히거라
내게로만 이르거라
아무 상채기 없이 사랑의 푸른 치마폭에 가만히 싸 안을 걸
억만 년 가도 넘쳐보지 못 할 너를 향한 사랑 아직 더 넓고 더 깊을 수 있다는
바다의 목소리에 젖어 나는 없고
바다만큼 깊고 넓은 그 분 사랑의 품에 안긴다.
*생명나무
가슴 속에 나무 한 그루 자란다 남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뿌리 깊어 뽑히지 않는다
자나 깨나 자란다 구근류도 아닌 것이 뿌리에 열매 달려 날 먹이고 바깥 세상 가믐 들면 더 잘 자란다
재 넘어 한눈 팔면 돌아 앉아 우는 나무 둥치에 살 오르고 키 커서 이름 모를 새떼 모여든다
가슴에 심었기에 저승까지 안고 갈 행복 근원 신비의 나무
에덴에 또 하나 있었다는 생명나무라 이름 한다.
*생명나무 -- 성서에 에덴동산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생명나무가 있었다 함
당신 아니 계시면
나는 북입니다 당신의 손으로 가만히 튕기면 비로소 소리 내는 북입니다
나는 둘레가 작은 향기입니다 당신의 민감한 코끝으로 가까이 와야 맡아지는 희미한 향기
나는 투명한 이슬방울입니다 푸른 잎엔 푸르게 붉은 꽃엔 붉은색 옷을 입어
멀리에선 없는 듯 지나치고 말 투명 이슬
당신 아니 계시면 모습도 향기도 소리도 없는 허무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새벽으로 오시는
밤 사이 잃어버린 사물을 하나하나 찾아 돌려주는 이는 누구십니까
손때 묻어 희미한 것들을 환한 빛살로 닦아 반짝이는 얼굴을 만드는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가시나무 불타는 길에서 막무가내 몸부림한 흔적을 털고 회의의 병균 가득한 이불을 개켜 선뜻 일어서게 하는 당신의 힘은 어디서 솟습니까
창문 두드려 열게 하시고 시든 영혼에 보혈의 주사액을 흘려 넣는 부드러운 손을 가진 당신은 어디서 오십니까
찬란한 새 하루를 축복으로 안겨주며 오시는 이여 그림자 등져 빛쪽으로 서서 빛만 보며 살라고 살라고 이르십니까.
접시물
접시에 담겨진 물의 깊이가 깊으면 얼마나 깊을까요 하지만 그 온 둘레만큼 내려오는 하늘 있습니다
조물주는 나를 남들처럼 사려 깊은 우묵한 항아리로 빚지 않아 숱한 날 목 마르고 배고프지만요
하늘 하나 받들고 살라는 은총의 넓이 주셨음에 토를 달지 않습니다 주신대로 감사뿐입니다.
깨달음
주여! 나의 아픔에서 불려지는 이름 고통의 장소에서만 만나는 당신
나의 모든 기쁨이 당신을 빼고는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내가 앞문으로 총총 뛰쳐 나갔을 때 소리 없이 들어오셔 빈 자리 지켜주시는 배려
정면에서 만났다기로 세상 일에 눈 어두워 알아 뵈었을 리 없음에
당신은 쓸쓸히 저의 등 뒤에서 서성이십니다 그 크신 나의 그림자
목마른 영혼이 어느 날 쓰러져 당신 옷 한 자락 붙든 후에야
태양보다 빛나는 빛이심을 알았습니다.
예수
삼삼히 좋은 나이 더 늙지 않는 사나이
가시밭길 피 흘리며 말 없이 떠난 그대
붉은 십자 나무못을 내 가슴에 박고 간 그대
이름 한 번 스친 인연으로
신발 두 짝 벗어놓고 도망 갈라치면
꿈의 끝까지 따라와 수절을 바라시는 당신.
종신 허원
죽으라면 죽으리라 살라면 살리라
가라면 가리라 오라면 오리라
그대 내 사랑 주인으로 섬겼으니
스스로 택한 종의 길 기꺼이 가리
골 백 번 다짐하여 피에 새기는 종신 허원
오늘도 새기고 내일도 새길 것입니다.
크신 이에게
당신이 좋다가도 불만의 씨 한 톨로 돌아서던 변덕
당신을 모른다고 날리던 배반의 입술로 세찬 비바람 맞을 때 당신께 떼 많이 부렸지요
어리광 애교도 부려보았지요 길고 긴 당신의 침묵에 가슴 무너지다가 나도 모르게 자라 있는 인내를 보았습니다
제가 당신께 충실한 시간에 세상 뜨는 은혜만은 꼭 허락해 주십시오
내가 크면 작아지는 행복 작아지면 커지는 당신의 관심 지금 이대로 감사케 해주소서
크신 이여! 당신 사랑한다는 고백이 세상에서 제일 떳떳하게 해주십시오
안 그러면 빛 잃어 덧 없는 생명 썩은 검불입니다.
‘네’라는 대답이
당신이 말씀 하시면 짧고 쉬운 “네” 로 대답하게 하소서 시키는 일엔 몸 재게 일하는 종이게 하소서
썩을 양식 위해 낡은 그믈을 기워 디베랴 바다로 나가는 발걸음 초라하고 때절은 옷 버리라 하시면 “네” 한 마디로 발가벗게 하소서
변명이 길어 하루 해가 짧고 이유가 많아 밝히는 긴 밤 매듭 못지운 얘기 짜다 만 베틀엔 가위질 서슴 없이 하고 열린 문엔 빗장 꽉 질러 놓고 떠나게 하소서
그러나 세상에서 제일 짧고 쉬운 “네” 그 한 마디 왜 이리 어렵습니까?
그리 마셔요
세상에서 배울 게 없어 나보다 나이 적은 총각 아버지 모셔 살아요 날마다 배우며 살아요
그분은 하늘 사랑 이웃 사랑 사랑만 가르쳐요 어려운 것 없는데 실천이 부족한지 아버지 웃지 않으셔요
흰 눈 소담히 내리지 않고 이 겨울 다 가는데 뜨뜻 미지근한 날씨 같다시며 뱉아버리겠다 하셔요
책 펴놓은 채 어제 혼이 났어요 오! 그리 마셔요 갈 곳 없는 불쌍한 사람인걸요.
천국과 지옥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날마다 드나드는 수퍼마켙처럼
포르릉 날아갔다가 앞마당으로 날아오는 참새처럼
마음 위로 여우비 내려 하루 열두 번 오르내리는
천국과 지옥.
차례 2 부
하늘이십니다
먼지 때 숯검댕이 묻어 손발 씻고 세수만 하다가 주님 손으로 목욕하는 날입니다
소꼽장난에 취해 울다 웃다 얼굴에 얼룩 옷에 흙 묻혀 집에 오면 나무람 속에 씻어주고 안아주던 어머니는 큰 산에 들어 누워계시지만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는 이스라엘의 하느님 불꽃 같은 눈으로 지키시는 하느님
어머니 사랑은 아무리 크다 해도 테두리 금 그어지는 바다시지만 주님 사랑 밑도 끝도 없는 하늘이십니다.
다음 번엔 심장을
하느님의 뜻을 내 뜻에 맞추려다 번번히 KO 패 합니다
엉겅퀴 가시손톱이 보이지 않게 자라 할퀴려 드는 나날
야곱이 씨름한 천사와 싸우고 있습니다
믿음의 발목만 잡은 하느님 다음 번엔 심장을 겨눠 일격에 믿음 안으로 쓰러지게 하소서.
모기향 타는 밤
마지막 남은 소음(騷音)이 죽고 고요한 바다에 잠긴 듯 눈 감아 누을 때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는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소리 없이 타들어가는 모기향처럼 빨간 눈 뜨고 온 밤을 지켜주신다
파란 쑥향기 날리며 모기향이 고요히 탄다 편한 잠자리 천사 만나는 꿈을 꾼다
독침으로 나를 훼방하던 악의 세력이 물러나는 잠의 평안이여!
체머리 할머니
계속 가로 젓는다 세상 일 도무지 마땅치 않은가보다
모든 일이 모두가 마땅찮아 아니라고 싫다고 끊임 없이 가로 젓나보다
주일 예배 앞자리 앉은 할머니 한 분
목이 쉬는 목사님 설교에 아멘을 노멘으로 응답하는가 계속 머리를 가로 젓는다
기왕이면 아래 위로 끄덕이게 하느님이 할머니 체머리 병 고쳐주셔요 노멘보다 아멘이 좋아요.
깊은 눈길 하나를
건드리지 마라 병든 짐승이라 아픔 뿐이다 손대지 마라 상처마다 곪아 아리 쓰리다
필요한 약처방은 사랑 뿐 소리나는 말은 싫다 정을 담아 지긋이 바라보는 따뜻한 눈길이면 해
말의 가시 생살 후비는 데만 사람 *엘리바스 저 바리새주의 나아만 사람 *소발 저 자신을 자부하는 자
수아 사람 *빌닷 닮은 그도 바리새주의 부스 사람 *엘리후 저 젊은이는 옳은 말만 한다지만 귀에는 이명(耳鳴)이 가득하고
영혼 사이에 안개는 켜켜로 쌓이고 말로써 말 대응할 기력이 없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 아닌 무관심
미움이 이웃을 사람으로 여길 때 무관심은 이웃을 사물로 여겼거늘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관심이거늘
따뜻한 연민의 눈길에 관심 가득 담아 바라만 보아 다오
스스로 자리 털고 일어설 그 날을 오래 기다린다는 신뢰 하나만 보여 다오.
* 인명 지명 : 성서 욥기 인용
뜻대로 하옵소서
슬픔에 기쁨 섞어 감사할 줄 알기 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요
알곡인가 쭉정인가 키에 얹어 까불 때 원망 불평 낙담 많이 했어요
인생이란 교과서 독학으로 파고들면서 당신 앞을 떠나진 않았지요
시력이 자라 멀리 보는 지금 더위 추위 번갈아 겪으며 견디게 되었어요
아궁이 쏘시개 거리 들플이 무성히 자랐거늘 언 땅 헤쳐나온 밀보리싹 같은 나
생긴대로 여기 있사오니 살리시던지 죽이시던지 뜻대로 하옵소서.
예수 나랑 같이
그의 받은 모욕이 나보다 많고 그의 받은 상처가 나보다 깊어
괴로울 때 아플 때 그를 기억했다
가난이 뼈아픈 날은 벤츠 타고 달리는 목사가 아니라
성부의 아들이면서 말구유에 난 그를 떠올렸다
나를 위로 하시는 주 예수 나랑 같이 살아요.
지팡이 되어주세요
빌지 않을 때에도 좋은 것을 주셨고 빌 때도 나쁜 것을 거두지 않으셨지요
할 수 없이 기쁘고 슬픈 날에 순종으로 주시는 대로 받아 살았어요
당신 아니고는 먼 길 같이 할 이 없었기 때문이죠
눈 먼 나에게는 바람벽이며 그믐밤이며 메아리 빗겨가는 빈 하늘이시며 산중 계곡에 홀로 물소리시지만
길 많아 길 없는 길 가노라 허둥대는 내 손 잡아 지팡이 되어주세요 길잡이 꼭 되어주세요.
고맙습니다
하느님, 저의 잘못에 꾸짖을 건 꾸짖으시고 잘못 가운데도 상 줄 건 상주시던 하느님 고맙습니다
이 하루도 동행해주심과 내 입으로 하는 기도라고 나만 위하지 않고 나와 이웃을 위해 어제와 그제처럼 잊지 않고 기도 올리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낙심 없는 인내와 아버지께 기대야만 살 수 있는 믿음 주신 것 정말 고맙습니다.
주인의 얼굴이
내가 물 위를 걸어도 예수가 아니다 발밑의 돌을 밟고 섰기 때문
남의 죄를 용서해도 성자가 아니다 용서함을 먼저 받은 빚이 있기 때문
남을 사랑해도 빛나지 않는다 더 큰 사랑 받아 되쏘는 반사일 뿐
험한 세상 헤쳐 살아도 용기 인내 아니다 내 겨드랑이 밑 받쳐준 손길 있음이니
드러나지 않아도 좋다 누가 나를 이리 도와주나
그림자인 내가 주인의 얼굴 보고 싶다.
나의 기도는
불쌍히 여기소서 남루한 죄의 옷 입었습니다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다고 철없는 행복에 젖어 산 때 있었지만
철 들어라 따끔한 매를 맞은 후 저의 기도는 "불쌍히 여기소서" 고장난 음반처럼 한곳에 멈춰 돕니다
누가 봐도 옳은 것은 옳다 그른 것은 긇다 말한 일도 죄가 된다는 그 사실 알기까지 한 생애 다 갔습니다
이제 오래된 죄의 옷이 살과 함께 자라 살갗이 되어 생명과 바꾸지 전 벗을 수 없음에 자꾸 아룁니다
불쌍히 여기소서 불쌍히 여기소서.
함께 가셔요
죽음 뒤의 세계는 주님 차지 당신 관장하시는 일 저는 잘 모르옵고 살아있는 세계는 제게도 시공간 조금 허락하셨으니 손잡고 함께 가셔요
졸거나 한눈 팔다 당신 손 놓칠 때라도 졸지 않고 주무시지도 않는 전능이시여!
큰 강 나오거든 손잡아 건네주시고 태산이 있어 앞을 막거든 바람 슬쩍 보내어 떠서 넘게 해주소서
강자에 약하고 약자 앞에 강한 세상 사람 중 못난 저는 약자에 더 약한 사람으로 기대야 할 곳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당신 부르심일 터이지만 좋고 많은 것 중에 당신을 선택하였습니다
나의 선택이 현명하였음을 일러주소서 그리하여 후회 없는 찬양을 드리며 어린애 같이 뛰고 노래하며 춤추게 해주소서
철부지 욕심이며 소망인 이 한가지로 당신 탄생한 날을 기리고 당신 부활하신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세월이 흘러 백발이 휘날리는 나이로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서서 부르심을 받을 그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무리 죄가 많아도 버리지 마옵소서 씻고 또 씻어주소서
죄없이 흘린 당신의 깨끗한 피의 사랑 힘입어 세상이 메말라도 내 가슴 메마르지 않고 사랑의 샘이 고이고 있슴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랑 손잡고 함께 가셔요.
어디를 괴롭혀 드릴까요
하느님 근심 걱정 눈물 탄식 없는 편하고 아름다운 저 천국에서 이 세상 일 깜빡 잊고 계실까봐 제가 가끔 트집 잡고 시비 붙어요
하느님 발바닥에 불침 놓고 종아리 털 뽑아요 놀라 일어나 저 좀 봐주시라고요
왜 이리 외로운가 버린 자식 같은가 껌뻑 숨 넘어가 물 켜는데 생살 지지직 타들어가는데
하느님 어디를 더 괴롭혀 드려야 눈 돌리실 건가요 관심 기울이실 건가요.
눈 온 날 아침
눈 온 날 아침 약수터에 간다 산이 두른 치마폭에 빛 바랜 물감으로 발자국 그려 넣는다
때묻은 내 얼굴 눈 덮인 산처럼 맑갛게 씻어주십사 기도하고 싶어 야호! 대신 야훼에에에에! 소리 내어 부르면
나뭇 가지 사이로 기웃거리는 사랑의 형상 인적 없는 곳 은밀히 만나는 나의 주님 프라스틱 통에 마음 뿌듯 차오르는 생수
다 우 망 안 부 살 간 도 거 탐 십 계명 첫자로 열 모금 물마셔 속죄의 마음으로 금식한 배를 채운다
내장도 하얗게 청소하고 싶은 눈 온 날 아침.
최후의 한 마디
하느님
내 마음에
평화 하나만 주시고
다 가져 가셔도 좋습니다.
믿기로 작정한 마음 풍경
주여! 마음 아뢸 수 있는 곳에 당신 계심을 감사합니다
많은 사람이 당신을 믿지 않지마는 만일에 당신 아니 계신다면 나는 바위를 새겨서라도 오백 년 늙은 느티나무에 색동 천과 새끼줄을 걸고라도
아니면 내 어머니 하셨듯 앉은 자리서 가장 가까운 곳 뒷마당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놓고라도 마음의 소원을 아룄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 중 누구라도 몇 안 되는 내 소원 들어주지 않음으로…
그러나 주여! 당신은 무소부재 눈에 안 보여도 어디나 계십니다 아무 때 아무 자리에나 나타나시라고
이렇게 내 곁에 빈 자리 마련하여 마음 문을 열어두니 그 문으로 당신이 들어오십시오
덜 외롭습니다 덜 힘이 듭니다 그리하여 주여! 내 마음 아뢸 수 있는 곳에 당신 계심을 감사합니다.
두 다리
하느님, 다리가 하나면 한 곳에 말뚝 박히는 병신 허수아비
하느님, 나는 성한 두 다리 잘 난 사람 한 다리 강 건너 수수밭 언덕에 한 다리 강 이쪽 포도밭에 걸치고 눈치 보다가
풍향 좋으면 수수밭으로 붙고 아니다 싶으면 포도밭으로 도망 치기 잘 하고 있어요
하느님,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면서 제 아무리 부르짖어 기도해도 두 다리 성하다고 죄짓는 자유만은 제발 주지 마셔요.
아침 묵상
새 하루가 문을 엽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새 것으로만 준비하여 저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나태와 낙서와 흠집으로 새 것을 망가뜨렸습니다 수없이 상처 난 잔해가 딩굴며 슬픈 눈으로 저를 보아 부끄럽습니다
앞으로는 새하얀 미지의 곳에 희망과 미소와 꽃과 무지개만 그릴께요 하늘로 비상하는 새를 그리겠습니다 그 새의 날개 위에 올라 함께 날으겠습니다
오! 축복이여! 새로 시작하는 하루는 힘 안들이고 앉아서 받는 하늘의 선물임을…
태양은 힘껏 일어서 중천을 향합니다 눈 감고 앉아서도 알만 합니다 시작부터 힘이 납니다.
차례 3 부
눈 내리는 밤
나는 기도 올리고 하느님 받으시네 어리석게 아뢰어도 분별해 들으시네
손자 응석 받아주시 듯 잘 받아주신다고 너무 많이 아뢴 소원 앞머리 부터 잊어가고
삐뚠 마음은 내가 봐도 미운데 님은 조용히 보고만 계시네
내게 이를 말씀 얼마나 많으셨으면 침묵 일관 하시는지
이번엔 하느님 말씀 내가 들을 차례 입 다물고 귀 기울이네
겨울 밤은 길고 문밖에 눈오는 소리 사르륵
창밖을 보면 그 곳에 하느님 말씀 티 없이 내려
저리 하얗게 무욕으로 바래지라고 이르심을 귀담아 듣네.
지옥과 천당
잘한 일 다섯이고 잘못이 다섯이면 지옥 가나 천당 가나 이 세상에 그대로 남나
시작은 어제고 오늘 끝나려는데 내일? 그런 희망 사항 있었던가 어제와 내일 사이
잘한 일 다섯이고 잘못이 다섯이면 지옥 가나 천당 가나 이 세상에 그대로 남나
생각의 사이사이 잘못과 안 잘못 사이를 오가는 나와 나를 지키는 간수장 사이.
길이 되는 것
내 입술에 소리 나는 모든 것들은 사라지거라
꽃만 활짝 피어나라 곱게 고웁게
기도의 간절함은 눈물방울에 수놓아 묵언으로 올리옵고
신께로 가는 길엔 꽃 같은 감사의 미소와
피 같은 눈물로만 길이 되는 것을.
따졌습니다
보이는 부모에게 효도 안 한 이 하늘에 계신 안 보이는 하느님 아버지를 어찌 사랑한다느냐
주님 말씀 지엄하셔도
보이는 좋은 것 주시지 않는 하느님께서 안 보이는 좋은 것 주신다는 말씀 어찌 믿을까보냐고 따졌습니다
볼라벤 덴빈 산바 태폭풍 세 개가 연달아 몰아쳐간 길목의 밤이었습니다. (2012년)
슬픈 실존을 위하여
떨어진 꽃잎은 비에 쓸리어 나가고 남겨진 시든 꽃잎의 안간힘이 마음을 끕니다 시간과 경주하여 어떻게 이길 겁니까?
근심의 치마폭에 뼈 앙상한 정 추려 안고 절망이 우는 긴 밤을 지샙니다
밤은 오색의 꿈으로 무성한 고향 눈이 다정하게 내려 쌓이는 밤에 소리 없이 우는 이 있습니다
멀리 있는 것들에게 눈만 주어도 그 아픔은 내게 이르고 나는 오지랍이 넓어 내 것 남의 것 미래의 것까지 끌어안고 아픔이 많습니다
신이시여! 내가 한눈 파는 때에라도 내게 꼭 와야 할 것들은 제게 주소서 기쁨도 슬픔도 함께 하겠습니다
바닷가에 널려진 조개껍질 주워와 책상에 놓고 하찮은 껍질에도 연연한 마음을 욕심 많다 꾸짖지 마옵소서
안락을 향하여 아양 떨진 않겠습니다 내가 땅의 젖꼭지에 입을 대고 있음으로 아직 살아있습니다
증명이 안 되는 나의 실존은 방치돌처럼 단단하지 않으나 망국의 황제처럼 한숨을 길게 쉬면서 하늘에 눈을 둘 것입니다.
제가 전능한 것이 아니잖아요
하느님은 자기 켠에서 보시고 나는 내 켠에서 보니 말이 통하지 않아요
말이 통하지 않으니 마음은 더욱 더 아니어요
사춘기 아이 부모 염장 지르듯 가출하는 것은 언제나 내 쪽 세상으로 나가 여기저기 기웃거려요
그러다 뺨 맞고 발길질 당하면 슬그머니 집으로 돌아오지요
하느님 땅으로 내려오셔 문제 많은 말썽꾸러기 손 다시 잡아주셔요 제가 전능한 것이 아니잖아요.
아까워 아까워
나자렛 동네에 살던 사랑에 약했던 분 발 부르튼 사막의 방황에도 속으로 끓던 사랑 식히지 못하셔서
돕는 손 뿌리치고 혼자 잘 났다고 자유로 걷겠다는 철 없는 인생들 위해 귀한 목숨 던진 일 생각사록 아까워 아까워
쓰레기통에 버려져서도 자존심 세우는 빨간 장미인 나는 한 사내 위한 인육(人肉)사랑에 눈 멀어 가진 것 쏟아 부어 물불 가리지 않는다지만
청맹과니인 이 인생들 위해 손발에 대못도 마다 않은 거룩한 그 분의 그 사랑 그 목숨은 아까워 아까워
벌레 걸레 그만도 못한 나같은 것 위해 돌아가셨다면 더 아까워 더 아까워.
죄의 생쥐
죄의 생쥐 내 속에 들어와 성장을 목표로 운동이 활발합니다
생쥐 잡는다고 독은 깨지 마소서 내 몸이 많이 아픕니다 주여!
어쩌면 좋습니까? 생쥐가 내 몸 갉으니 괴로워요
주가 미워하는 죄의 생쥐 내가 미워하는 죄의 생쥐
쫓아낼 길 없다면 길은 단 하나 독을 깨부셔야만 하는데
질그릇이라도 쳐부수라 쉽게 말을 못하니 이런 부끄러움이 또 없나이다.
포도나무
포도씨 한 개엔 포도나무 한 그루 포도 한 알엔 우주가 들어있다
포도알 내가 삼켰음으로 우주가 내속에서 출렁인다
포도나무 내 속에서 뻗어간다 터를 넓히라는 아우성 함성소리
함성들이 손과 발을 쳐들어 어딘가로 나를 실어나른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한 그 분의 울타리 안쪽이다
나는 없고 포도나무 무성하다 포도나무 넝쿨가지 튼튼하다.
즐거운 하루 되게
새날이 밝아옵니다 이 하루 살 동안 생각과 말과 행동 하느님 허락하신 것만 골라 하게 해주십시오
미래의 허황된 꿈속에 현재를 사랑하는 일 놓치지 않게 해주시고 하찮은 먹잇감에 욕심 내지 않게 해주십시오
위장이 피곤하다 호소하는 소리 경히 여겼더니 날마다 명치가 아파 고통입니다 주여! 귀를 잘 기울여 내 신체의 각 부분이 괴로워 하는 소리 듣게 해주소서
미련하고 악한 일을 반복치 않게 붙들어 주소서 나를 운전하는 이는 당신이오이다
도와주소서 그리하여 하루가 보람되고 즐거운 하루들이 쌓여 한 생애 잘 다녀간 흔적이 남게 해주소서.
주님 다시 한번만
뜨겁지도 차지도 않으면 뱉어버린다 하신 당신 뜨겁게 살지 못 하였습니다 점점 식어 돌이 되고 있습니다
당신 발등에 기름 붓고 긴 머리채로 닦지 못하였습니다
언제 까지 기다리실 겁니까 미지근한 삶을 당신은 경계 하셨습니다
너무 오래 기다리진 마십시오 기름이 졸아붙어 때가 멀지 않음을 압니다 목숨은 이미 내놓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에 불침을 놓아 얼음 속을 헤치고 나오는 불새 되게 해주십시오 주님 다시 한번만.
눈물의 기도
입을 열면 세상의 때묻은 말만 나옵니다
단말마의 비명 이 오열(嗚咽)을 기도의 말로 받아주소서
이 눈물은 당신께 드리는 예물 이 예물만이 말보다 진실하여 보태고 빼는 치장을 모릅니다
양심에 발 담그고 살던 눈물 오늘의 기도는 말 대신에 눈물을 드리옵니다.
넘치옵니다
돌아보니 저희에게 좋은 것을 많이 주셨습니다 밤에는 잘 자고 아침에는 잘 일어났습니다 온갖 곳 하늘과 땅에 풍요가 넘치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오는 겨울에 잠시 쉬며 사유할 시간도 갖겠습니다 봄에는 저희에게 일자리를 또 주실 터이니 생각사록 은혜에 가슴 뿌듯합니다
낙엽과 뜬구름이 하는 말조차 놓치지 않으려 애쓸 것이며 우리도 조금은 당신을 닮을 것입니다
신이여 우리가 당신을 의지하오니 앞으로도 이런 계절 주시리라 찬미합니다 노래하는 두 눈에 눈물 또한 넘치옵니다 이 추수의 감사절에.
맴돌기
부끄럽기 끝 없어 나 걸어온 발자취 나보다 더 잘 알 이 나 말고는 없고
혼자 부끄러워 감당할 수 없는 분량 어깨 무거히 눌릴 때
입으로는 고죄(告罪) 못합니다 그 가벼운 말들로는
그래서 이리저리 떠돕니다 갈 곳 없을 때는
정수리 위 하늘을 이고 제자리서 맴돕니다 별 몇 개가 떨어질 때까지.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는 이런 분이시다 전능하셔 못하시는 일 없고 전지하셔 모르시는 일 없고 자비하셔 용서 안하시는 일 없다
일 저지르고 급할 때 불러대는 전용 전화 예레미야 33국 3번
해 뜨면 나가 놀다가 친구 잃고 돈 잃고 다리 삐고 해 질 때 돌아와 불러대는 33국 3번
내 전화 거절 하신 일 없으시고 아프고 쓰린 심경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시는 아버지.
이왕지사에
각본 쓰신 작가님 그리고 연출가님 이왕지사 무대에 올랐으니 물에 빠지고 불구덩이 들어가는 어려운 역일랑 주지 마셔요
잘못 하다간 정말로 죽을지 몰라요 내 맘 아닌 악역에선 나를 빼주셔요
악역 자꾸 연습 하다가 참말로 악의 악인 될지 몰라요
잠시 무대 위에서나마 공주 되고 싶어요 사랑 받고 싶어요 연기 끝나면 막이 내릴 걸 이왕지사 두 번 없는 이 한 번의 연기에서.
힘 주옵소서
이럴 땐 이렇게 해야 하고 저럴 땐 저렇게 해야 하고 철 나며 배워서 잘 압니다
다만 내 안에 뭐가 있는지 이렇게 하려면 저렇게 저렇게 하려면 이렇게
생각 따로 말 따로 행동 따로... 훼방꾼 내 안에 살고 있으니 어찌합니까?
모르는 일은 젖혀두고라도 주님 바른 길 가도록 힘 주옵소서.
순종(順從)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기독(基督)의 말씀이 귀에 못 박혀서인지 아무 것에나 순종하려 든다
이 기회를 타서 세월이 들어왔다 지금은 세월에 순종만 하고 앉았다
제발 바라노니 세월에 순종함이 믿음으로 가는 길이었으면...
차례 4 부
그 분 뜻이리
그곳은 버림으로 갈 수 있다지 그곳은 비움으로 얻을 수 있다지 끌어안으려다 도리어 잃으며 온 세월이 나 철들게 하네
눈물주머니의 끈을 쥐고 저 세상 먼저 가신 어머니가 나 철들게 하네
순한 양처럼 고요히 끝내 들어가고 말리 흙으로 돌아가 꽃으로 솟으리
별도 몇 개 따서 색갈 곱게 칠하고 기도와 정성으로 기둥 세운 곳 용서와 사랑으로 가슴 넓은 이가 나를 기다리리
가시 떼고 비뚠 가지 자르면서 곧은 나무 세우려 피 흘림도 그 세월 얼마 남지 않았으리
그림 붓과 물감통 던지고 그림 그려진 대로 얼룩 번진 대로 어서 액자속으로 들어가 앉아야 하리
그 그림 보기 싫어 창고에 넣던지 벽위에 걸던지 그분 뜻이리.
같은 점 다른 점
당신과 다른 점은 우리는 순간의 사랑을 하고 당신은 영원한 사랑을 한다는 점입지요
우리는 살갗으로 사랑하고 당신은 피를 흘려 사랑한다는 점입지요
우리의 사랑엔 계산이 딸리지만 당신의 사랑엔 진실 뿐이라는 점입지요
우리는 주고받는 사랑을 하지만 이 점에선 당신도 우리와 같았습니다
우리게 사랑을 주신만큼 당신도 받으려 하셨습니다
당신을 잊고 세상에 눈 돌릴 때마다 당신은 우리를 잡아 끌어
저 세상 사랑하지 못하게 훼방 놓으셨습니다
당신만 바라보아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당신도 우리가 드리는 사랑을 받고 싶었던 것이지요 이 점은 우리와 같았습니다.
파리
다시는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빌면서 어머니께 꾸중 많이 들었습니다
지금도 다시는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주님께 빌고 있습니다
파리 목숨으로 생겨나서 빌고 살아야 할 일 뿐이라니
다시는 다시는 잘못 없는 그 날이 언제입니까 나의 주님.
열쇠를 당신께
자유를 버린 뒤에 얻는 더 큰 자유를 원합니다
당신은 옛날부터 내 방의 주인이셨는데 많은 열쇠를 내가 쥐고 흔들었습니다
이제 내 방의 열쇠를 당신께 맡기고자 합니다 언제나 자유로이 들어오세요
도둑 맞을 보물도 숨겨야 할 비밀도 없슴을 부끄러워 하면서
몰래몰래 감춘 죄의 보따리 들킬 일 그도 부끄러워 하면서.
쓸개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신 이가 쓸개 하나 못 떼어내겠습니까 아니면 이 쓴 물 나오지 않게 해주십시오
호랑이 꼬리를 잡은 듯 쥐지도 놓지도 못하는 삶을 향해 나는 사랑한다고 말했는데
그는 도무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었습니다 쓸개를 떼버리고 두 팔로 힘껏 매달렸습니다 그래도 그는 내게 마음을 돌리지 않습니다
그 때 쓸개란 놈이 얼굴을 쳐들었어요 없애버리고 싶은 이 쓴 샘물 사랑에도 생활에도 늘 훼방을 놓으니 부디 떼어버려주십시오.
네 번째 기도
내 기도의 첫 번은 주십시요로 가득했다 해주십시요 일색이었다
바라는 것 주지도 원하는 것 해주지 않을 때 왜 왜냐고 따지는 것이 내 기도의 두 번째였다
고아처럼 버려져 아픔으로 철들었다 생각하며 다시 시작하는 기도는 좋은 것 궂은 것 주시는대로 감사합니다 내 기도의 세 번째다
보잘 것 없어 불면 날아가는 먼지인 존재 먼지 속의 고통이 크면 얼마나 크랴
진흙밭에 굴러도 죽음이 생명보다 귀하랴 무조건 살아있음의 감사를 노래하는 지금 내 기도의 네 번째입니다.
떫지만은 않게
이 죄인 아니면 당신 이름 누가 부르겠습니까
세상 사는 일에 잡초를 뽑듯 죄악을 뽑고 꽃을 가꾸듯 가꾸어는 왔어도
저는 여전 고염나무이오니 사랑의 당신 가지에 접붙어 단물 배게 해주십시오
적게 받아도 많이 주시는 내리사랑의 당신
성 바렌타인 데이에 초콜렛 만큼 달지 않더라도 떫지만은 않게 해주십시오 나의 주님.
새로 이사한 집
달랑 방이 두 개 달랑 아궁이도 두 개
아들은 아버지와 자고 딸은 어머니와 자고
아들 딸 나간 후 그 어미 아비 만나 사는 집 그래도 그들은 웃고 산다네
예수님은 방이 없어 말구유서 나셨다는 것
예수님은 집이 없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일 그들은 알기에 감사 뿐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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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어느 날
"너희는 먼지요 티끌이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너희는 잠깐 보이다 사라지는 안개다 인생은 풀과 같고 영화는 꽃 같으나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진다”말씀 하셨지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라고 대답했을 때 주님께서는 말씀을 바꾸셨습니다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이요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니”라시니 우매한 저 헷갈립니다
저의 존재가 천한 건지 귀한 건지 주님 말씀에 o를 해야 할지 X를 해야 할지 몰라 눈 감고 볼펜만 굴리다 말았습니다.
하늘에 빌어
기습처럼 달려드는 죄책에 변명이 설 자리 없다
타의라고만 주장하고픈 염치 혈관의 피는 탁류로 흐르리라
정수리에서 발끝 까지 씻을 물 어디 있느냐 한 번의 생이 소지(燒紙) 같아도
죄로 도금하면 죽지도 썩지도 타지도 않는 것을
병 아닌 병 죄악에 깊이 들어 기도(氣道)에 가시 박힌 듯 호흡이 단절되는 생사의 기로에서
회개라는 상습에 절은 단어로는 생명을 주사할 수 없구나
목숨의 경각에서 신의 은총은 보이지 않게 임하여 서산에 진 해가 동산에 오르는데
모기 한 마리 살에 침 꽂고 흡혈하거늘 난 어디에 입을 대고 생수를 마실까
오! 하느님 당신께 기대어 가겠습니다 생수의 근원이신 하느님 허락해 주소서 내치지 마옵소서 하늘에 빕니다.
내가 죽게 되었나이다
내 영혼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합니다 노동의 거룩한 이 두 손이 주를 찬양합니다
성전을 향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달려가던 이 발이 주를 찬양합니다
사랑하며 그리워 주야로 이 눈이 당신 보기 원하고 코로는 당신 향내음 맡기 소원입니다
주님의 생명 말씀 되새기려 조개껍질 같은 두 귀 쫑긋 세웠나이다 부드러운 그 음성 듣기 원하여…
진노 아니신 단죄 아니신 눈길로 님이여! 돌아보시고 한 말씀 하소서
자승자박이랄지라도 궁핍에 든 내 영혼 육신 내가 지금 죽게 되었나이다. (1983. 10. 11. 화)
라일락 핀 5월
제가 잘 나서 살아온 듯 싶사오나 돌아보니 주님이 그으신 금 위를 따라온 것 뿐
라일락 만발한 5월 연록색 잎사귀가 저희게 쏟아주신 희망의 말씀임을 알겠어요
뻐꾸기는 왜 먼 산에서 산으로만 도망 다니며 피울음 울까 주님 몰라 외로운 덫에 걸렸던 옛날의 나처럼
이제 헌 옷 벗고 새 옷 입는 때 뭇 손들이 던진 돌 쌓인 가슴에서 돌조차 깃털 달고 날기 시작합니다
라일락 핀 5월에는.
마지막 용서
비단 보에 쌓인 것들을 많이 가지고도 감사를 몰랐을 때 주님은 다 거두어 가셨습니다
작고 낮아져 엎디어 있을 때 주님은 익은 포도송이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나는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였지요 하지만 지금은 포도원 안에서 포도나무 가지 단단히 붙잡고 매달립니다 뿌리치지 않으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나를 해코지 한 이들 내 마음문 열어 마지막 용서하고 나도 마지막으로 주님의 용서 받고 싶습니다.
공개 고해성사
어려서는 나이 먹은 남자 오빠 선생님 아버지 같아 좋더니
지금은 젊은 사람 풋내 맡으면 가슴 뛰어 음란죄 그 죄목 하나
밑 끝없이 누워 사는 병자 남편 두 번 불쌍할 새 한 번 미워지는 마음 그 죄목 둘
좋은 혼처 마다 하는 노처녀 딸에게 “부모가 가라는데 시집 안 가고 서양 민주 자유 주장할 양이면
30살 먹어 부모 함께 사는 서양처녀 있더냐? 방 빼" 사랑 없는 어미 노릇 그 죄목 셋
있는 것 감사 않고 좋은 것 더 주세요 거지근성 매달린 죄 그 넷
등단 해놓고 빼어난 시 못 쓰는 죄 그 다섯입니다
하루 해 짧아 더 아뢰지 못함 살피소서 더 있습니다 아멘. (91. 6. 11.)
모시고 삽니다
그가 받은 모욕이 나보다 많고
그의 상처가 나보다 깊었으며
머리 둘 곳 없던 무소유를 알기에
그 앞에 서면 위로 되고 힘이 납니다
그래서 모시고 삽니다
예수님 한 분.
빌고 빕니다
함부로 물을 들였습니다 곱지 않은 색갈 많이도 칠했습니다
흔적 지우기 이렇게 어려운 걸 문신처럼 자리 잡아 지우개 다 닳아도 깨끗해지지 않습니다
벽에는 잘못 박았다 뺀 못자국 널려 있습니다 추해서 눈 둘 곳 없습니다
하늘을 보면 전능하신 분이 그 곳에 계시어 깨끗게 해주십사 빌고 빕니다
빌고 또 비노라면 막힌 숨이 트이고 멈춘 심장이 쿵덕이며 뛰기 시작합니다 비는 길이 살길임을 알았습니다.
믿는 은혜 삼 장
저 하늘 믿고 이 땅 기꺼이 뜰 수 있으니 믿는 은혜 첫 째여요
역경 고난 잘 참아 넘길 수 있으니 믿는 은혜 둘 째여요
용서와 사랑 마음의 화평 얻으니 믿는 은혜 셋 째여요
이보다 더 많은 은혜 살면서 깨달아가겠어요.
변화 주소서
전능 하신 분이시여! 죄 받으시고 용서 주소서 교만 받으시고 겸손 주소서 욕심 받으시고 무욕 주소서
불안 받으시고 평화 주소서 분열 받으시고 통일 주소서 거짓 받으시고 진실 주소서 병 받으시고 건강 주소서
추함 받으시고 고움 주소서 절망 받으시고 소망 주소서 증오 받으시고 사랑 주소서 죽음 받으시고 생명 주소서
불신 받으시고 믿음 주소서 변화 되어 흠 없는 삶이고자 하나이다.
------ 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