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 눈쌓인 수원화성을 거닐다1](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8%2F22%2F20220822012801105_thumb.jpg)
급하게 휴가를 내고 수원화성으로 가다
창덕궁의 설경을 보러 급하게 휴가를 낸 것처럼, 수원화성의 설경을 보러 간 날도 딱히 계획이 있던 건 아니었다. 경기도에 눈이 많이 내리긴 하지만 진눈깨비에 그칠지 폭설이 내려 눈이 무릎까지 쌓일지는 실제로 눈이 온 뒤에만 확인이 가능하다. 겨울에 설경을 보러 가자고 약속하는 건 사실상 무의미하기 때문에 아껴둔 휴가를 눈이 오면 쓰기로 결정하고 당해 겨울에 창덕궁과 수원화성의 설경을 보러 간 것이다.
![제11화 - 눈쌓인 수원화성을 거닐다2](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8%2F22%2F20220822013333572_thumb.jpg)
![제11화 - 눈쌓인 수원화성을 거닐다3](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8%2F22%2F20220822013333648_thumb.jpg)
일기예보에 눈이 온다는 소리를 듣고 아침 일찍 일어나 창 밖을 내려다 보았다. 예보대로 성남시 곳곳은 눈이 쌓여 온통 하얀 색으로 변해 있었다. 수원까지 가는 광역버스가 아침 일찍 있었으므로 휴가를 신청한 뒤 곧장 수원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제설이 잘 된 데다 교통량도 많지 않아 40분 만에 수원역에 도착했다. 눈이 쌓이면 걷는 것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체력 보충이 필수다. 수원역 주변 식당에서 순대국밥으로 아침을 해결한 뒤 화서문으로 향하는 시내버스를 탔다.
한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이야기 11 - 수원시 (水原市)
권선구 서둔동 여기산 일대에서 토기·쇳조각·돌화살촉조각 등 청동기시대 전기로부터 초기철기시대에 이르는 유물들이 다수 발굴되었다. 이로써 청동기시대에 사람들이 집단생활을 영위했던 주거지로 밝혀졌다.
특히, 광교산과 꽃뫼의 산신제의 유습이 이 사실을 증명해 준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모수국(牟水國)이 수원 일대였다고 한다. 삼국시대에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점유하고 있던 5세기 말엽에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때까지 고구려의 매홀(買忽)로 불렸다.
수원(水原)이라는 이름은 모수국이라는 데서 연유해, 볼물·벌물이라는 뜻으로 지금까지 내려온다. 통일신라 때인 757년(경덕왕 16) 9주를 두고 군현으로 명칭을 고칠 때 수성군(水城郡)이라고 개칭하였다.
태조가 후백제를 치기 위해 남정(南征)할 때 군인(郡人) 김칠(金七)·최승규(崔承珪) 등 200여 명이 귀순해 왔다. 그 공으로 940년(태조 23) 수주(水州)로 승격되었다. 그 뒤 995년(성종 14)에는 도단련사(都團練使)를 두었다가 1005년(목종 8)에 혁파하였다. 이때 이름을 한남(漢南) 또는 수성(隋城)이라 하였다.
1018년(현종 9) 지수주사(知水州事)를 두었고, 안산(安山)·정송(貞松)·용성(龍城)·영신(永新)·쌍부(雙阜) 등의 현(縣)이 내속되었다. 1271년(원종 12) 몽고병이 대부도에 쳐들어왔을 때 섬사람들이 몽고병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키니 부사 안열(安悅)이 이를 평정하였다. 그 공으로 수원도호부로 승격되었다. 뒤에 인주(仁州)에 붙였다가 곧 수주목으로 고쳤다. 1310년(충선왕 2) 목의 지위에 있는 모든 고을을 폐할 때 수원부로 강등되었다. 그 뒤 1362년(공민왕 11) 홍건적이 침입했을 때 고을사람들이 이를 맞아들여 양광도에서 가장 먼저 항복하였다. 그래서 다시 군으로 강등되었다. 이에 고을사람들은 재신 김용(金鏞)에게 뇌물을 바쳐 다시 부로 승격되었다.
1395년(태조 4)에 수원부가 양광도에서 경기도로 편입되었으며, 1413년(태종 13) 도호부가 되었다. 1456년(세조 2) 진(鎭)을 설치하고 판관을 두어 서울의 수호를 튼튼하게 하는 보제도(輔制度)의 한 곳이 되었다. 1526년(중종 21) 고을사람이 부모를 죽인 사건이 일어나서 군으로 강등되었다. 그리고 진이 혁파되어 인천으로 옮겨졌다가 1535년에 다시 진으로 복구되었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1789년(정조 13) 양주 배봉산(拜峯山)에서 수원 읍치의 진산인 화산(華山)으로 옮겼다. 그런 다음 이곳에 있던 읍치를 모두 지금의 팔달산 밑으로 옮겼다. 이때 수원향교도 봉담면 와우리에서 옮겨 왔다. 그리고 1793년에는 수원부를 화성유수부(華城留守府)로 승격시키고 유수로 하여금 장용외사행궁정리사(壯勇外使行宮整理使)를 겸하게 하였다. 또한 정약용(丁若鏞)이 활차(滑車)로 거중기(擧重機)를 만들고 녹로(轆轤)를 사용해 각종 시설을 고루 갖춘 수원성을 쌓았다.
1895년(고종 32)에 지방관제가 바뀌어 군이 되었다. 이듬해 경기도관찰부의 소재지가 되었다가 1910년에 서울로 이전되었다. 이때 화령전(華寧殿)에 모셨던 정조의 진영도 서울로 옮겨가니 군민들은 땅을 치며 통곡하였다. 『수원군읍지』에 따르면 1899년의 호구 수는 1만 2579호, 4만 9708명(성내 956호)에 40면 449리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섬을 제외한 남양군을 폐합해 수원면이 되었다가 1931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1949년 8월 15일에 시로 승격됨에 따라 수원군의 다른 지역은 화성군으로 개칭되었다. 1963년 1월 1일 화성군의 20개 리를 편입하였다. 같은 해 서울에 있던 경기도청의 이전이 결정되어, 1964년 10월 15일 도 청사를 신축에 들어가 1967년 6월 23일 완공하였다.
1983년 2월 15일 용인군 수지면 이의리와 하리를, 1987년 1월 1일 화성군 매송면 금곡리와 호매실리를 편입하였다. 1988년 7월 1일 권선구와 장안구를 설치했으며, 1993년 2월 1일에는 팔달구가 신설되었다. 1994년 12월 26일 화성군 반월면 일부와 태안읍 일부, 그리고 용인군 기흥읍 일부를 편입하였다. 그리고 1995년 4월 20일에는 화성군 태안읍 신리·망포리 일원을 편입하였다. 도청의 이전과 함께 각종 기관·단체의 이전으로 도 행정의 중심도시가 되었다. 2003년 11월 24일 영통구가 신설되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수원시(水原市)
수원화성의 문화재와 화성행궁
버스를 타고 화서문에서 내린 뒤 가파른 언덕길을 따라 팔달산 꼭대기에 있는 서장대로 향했다. 서장대는 수원화성 뒤편으로 솟아오르는 해를 보기에 좋은 일출 명소다. 수원화성문화제 기간에도 이 곳에서 일출을 보았는데, 눈이 왔을 때의 일출은 또 다른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여 다시 오게 되었다. 역시나 수원화성의 일출은 경기도 최고의 일출이라 해도 될 정도로 멋지고 장엄하다. 일출의 빨간 빛이 밤새 쌓인 눈을 비추자 마치 화가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듯한 느낌도 난다. 서장대에 앉아 새빨갛게 떠오른 해를 한참을 바라보다가 팔달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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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 눈쌓인 수원화성을 거닐다6](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8%2F22%2F20220822013309442_thumb.jpg)
수원화성은 전체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수원화성 성곽을 이루고 있는 몇몇 건축물들은 보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수원화성의 남문인 팔달문은 여러 건물 중 가장 크고 화려해 수원화성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름은 서쪽에 있는 팔달산에서 따 왔다. 문루는 앞면 5칸·옆면 2칸의 2층 건물이며 다포 양식으로 지어졌다. 문의 바깥쪽에는 문을 보호하고 튼튼히 지키기 위해 반원 모양으로 옹성을 쌓았다. 팔달문 양 옆은 도로 때문에 성곽이 끊어져 있는데, 창경궁과 종묘가 다시 연결된 것처럼 지하에 차도를 내어 성벽을 다시 연결하는 것이 좋아보인다.
팔달문 동쪽은 수원에서 가장 큰 지동시장이 차지하고 있다. 역사 유적 옆에 이런 번잡한 곳이 있어도 되나 싶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도시는 죽은 문화재가 되어버린다. 최근에 서원이나 향교에서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리는 것 또한 문화재가 죽은 건물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럼에도 팔달문 동쪽으로 유실된 구간이 꽤 긴 건 아쉬운 생각이 든다.
![제11화 - 눈쌓인 수원화성을 거닐다7](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8%2F22%2F20220822013241240_thumb.jpg)
![제11화 - 눈쌓인 수원화성을 거닐다8](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8%2F22%2F20220822013241679_thumb.jpg)
![제11화 - 눈쌓인 수원화성을 거닐다9](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8%2F22%2F20220822013243387_thumb.jpg)
수원화성의 동쪽 성벽은 창룡문이 나올 때까지 다양한 방어시설이 세워져 있다. 봉돈과 포루를 비롯해 적을 퇴치할 수 있게 만든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인다. 서쪽 구간은 팔달산 위에 있어 밖에서 화성을 관찰하기 쉽지 않지만, 동쪽 구간은 바로 옆이 마을이라 밖에서 성벽을 관찰하기 쉽다. 안에서 볼 때보다 밖에서 볼 때 더 아름다울 정도로 수원화성은 방어라는 원래 목적뿐 아니라 건축학적으로도 멋진 작품이라는 생각이든다. 특히 눈 쌓인 성벽은 다른 계절의 모습과 너무나 다른 모습이라 한참을 바라보았다.
![제11화 - 눈쌓인 수원화성을 거닐다10](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8%2F22%2F20220822013221238_thumb.jpg)
![제11화 - 눈쌓인 수원화성을 거닐다11](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8%2F22%2F20220822013221145_thumb.jpg)
![제11화 - 눈쌓인 수원화성을 거닐다12](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8%2F22%2F20220822013225914_thumb.jpg)
창룡문을 지나 방화수류정으로 가는 길 또한 언덕길이다. 북쪽 구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은 북문인 장안문이 아니라 방화수류정이다. 화성의 동북각루인 방화수류정은 조선 정조 18년(1794) 건립되었으며, 전시용(戰時用) 건물이지만 정자의 기능을 고려해 석재와 목재, 전돌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조성된 건물이다. 주변감시와 지휘라는 군사적 목적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주변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조선시대 정자건축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고, 다른 정자에서 보이지 않는 독특한 평면과 지붕 형태의 특이성 등을 토대로 18세기 뛰어난 건축기술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제11화 - 눈쌓인 수원화성을 거닐다13](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8%2F22%2F20220822013203479_thumb.jpg)
![제11화 - 눈쌓인 수원화성을 거닐다14](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8%2F22%2F20220822013204585_thumb.jpg)
![제11화 - 눈쌓인 수원화성을 거닐다15](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8%2F22%2F20220822013205496_thumb.jpg)
수원화성 전체 구간이 6㎞ 정도 되므로 모든 구간을 걷는 대신 일부만 보고 싶은 사람들은 반드시 방화수류정으로 향할 정도로 아름답다. 수원화성 중앙을 관통하는 수원천이 방화수류정 아래를 지나는 모습을 보면 자연과 건물의 조화를 이루고자 했던 선조들의 이상이 드러나는 듯 하다.
![제11화 - 눈쌓인 수원화성을 거닐다16](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8%2F22%2F20220822013146147_thumb.jpg)
![제11화 - 눈쌓인 수원화성을 거닐다17](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8%2F22%2F20220822013148317_thumb.jpg)
![제11화 - 눈쌓인 수원화성을 거닐다18](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8%2F22%2F20220822013146210_thumb.jpg)
북문인 장안문을 지나 서문인 화서문에 도달하기 전에 또 다른 보물이 등장한다. 방어시설로 지어졌지만 건축학적 가치가 뛰어나 보물로 지정된 서북공심돈이 그 주인공이다. 서북공심돈은 화성의 화서문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선 정조 20년(1796)에 건립되었다. 화성 서북측 성벽에서 돌출시켜 남측면의 일부만 성곽에 접하고 나머지 3면이 돌출된 평면을 이루고 있다. 3층 구조로 하부 치성(雉城)은 방형의 석재를 사용하였고 1층과 2층 외벽과 3층 하부는 전돌로 쌓았다. 서북공심돈의 성제(城制)는 현존 성곽 건축에서는 화성에서만 볼 수 있는 것으로 재료의 유연성과 기능성이 우수하며, 치성의 석재 쌓기 기법과 상부 공심돈의 전돌 축조 기법, 현안과 총안, 전안 등의 중요한 시설 등 독창적인 건축형태와 조형미를 가지고 있다.
![제11화 - 눈쌓인 수원화성을 거닐다19](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8%2F22%2F20220822013124487_thumb.jpg)
![제11화 - 눈쌓인 수원화성을 거닐다20](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8%2F22%2F20220822013124649_thumb.jpg)
아침엔 어두워 제대로 보지 못한 화서문이 다시 보인다. 화서문 또한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화성의 서쪽문으로 문의 모든 시설과 크기는 동쪽의 창룡문과 거의 같은 구조로 되어있다. 네모 반듯한 큰 돌을 높이 쌓아 만든 축대 위에 1층의 건물을 세웠는데,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기둥 사이는 모두 개방되어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 건물이고, 축대의 가운데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과 문의 앞쪽에 벽돌로 쌓은 반달모양의 옹성이 있다. 옹성은 성문을 보호하고 성을 지키기 위한 구실을 하며 2중의 방어 효과를 갖는다.
![제11화 - 눈쌓인 수원화성을 거닐다21](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8%2F22%2F20220822013055300_thumb.jpg)
![제11화 - 눈쌓인 수원화성을 거닐다22](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8%2F22%2F20220822013055382_thumb.jpg)
![제11화 - 눈쌓인 수원화성을 거닐다23](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8%2F22%2F20220822013055396_thumb.jpg)
![제11화 - 눈쌓인 수원화성을 거닐다24](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8%2F22%2F20220822013055785_thumb.jpg)
눈쌓인 수원화성을 둘러본 뒤 화성행궁도 마저 둘러보았다. 화성행궁은 서울의 궁궐보다 작은 규모인데다 복원된 느낌이 너무 강해 별 생각없이 둘러보곤 했는데, 눈이 쌓이니 너무나 아름다웠다. 경복궁의 근정전이나 창덕궁의 인정전 같은 거대한 건물은 없지만 기와건물이 옹기종기 연결되어 있는 모습이 설경을 이루어 단아한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제11화 - 눈쌓인 수원화성을 거닐다25](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8%2F22%2F20220822013033753_thumb.jpg)
![제11화 - 눈쌓인 수원화성을 거닐다26](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8%2F22%2F20220822013032209_thumb.jpg)
![제11화 - 눈쌓인 수원화성을 거닐다27](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8%2F22%2F20220822013033637_thumb.jpg)
화성행궁 주변의 행리단길은 맛집에서 식사를 즐기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기 좋은 곳이다. '운멜로'에서 파스타를 먹고 '우리의 20세기'에서 아인슈페너 한 잔을 천천히 즐긴 뒤 수원화성에서의 마지막을 장식할 '플라잉 수원'으로 향했다.
![제11화 - 눈쌓인 수원화성을 거닐다28](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8%2F22%2F20220822012958603_thumb.jpg)
![제11화 - 눈쌓인 수원화성을 거닐다29](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8%2F22%2F20220822013003296_thumb.jpg)
![제11화 - 눈쌓인 수원화성을 거닐다30](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8%2F22%2F20220822012959725_thumb.jpg)
![제11화 - 눈쌓인 수원화성을 거닐다31](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8%2F22%2F20220822012959702_thumb.jpg)
'플라잉 수원'은 30명이 탑승 가능한 헬륨 기구를 타고 상공에서 수원화성을 볼 수 있는 기구다. 10분 정도 하늘에 뜬 상태에서 주변을 둘러볼 수 있다. 특히 해질녘에 타면 팔달산 뒤편으로 넘어가는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진다. 나 또한 해질녘에 하늘 위에서 수원화성의 노을을 감상했다. 18,000원이라는 싸지 않은 가격이지만 화성에 온 사람들에게 반드시 추천해주고 싶은 관광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