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갈 - 오정희(吳貞姬, 1947∼) 수샘♥국어
[줄거리]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아들 둘을 두고 무난하게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40대 부부이다. 그렇게 무난하게 일상을 영위하던 어느 날, 남편은 승진을 전제로 한 아프리카 오지 근무를 자원한다. 이를 두고 그녀는 남편이 자신과 같이 그동안의 권태로운 일상에 지쳐 떠난 것이라 생각한다. 이후 1년간의 오지 근무를 마치고 남편이 귀국한다는 연락을 받게 되는데, 그녀는 한편으로는 기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심경에 휩싸인다.
[핵심 정리]
*성격 : 성찰적, 전지적 작가 시점
*특징 : 특별한 사건이나 갈등이 보이지 않음.
*주제 : 권태로운 일상에 매몰되어 삶의 활력을 잃어버린 현실에 대한 반성적 성찰
*오정희(吳貞姬, 1947∼) 1947년 서울에서 출생했으며, 이화여자고등학교와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대학 2학년 때인 19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완구점 여인]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오정희 소설은 치밀한 문체와 구성을 바탕으로 삶의 불구성(不具性), 왜곡된 가족 관계, 불완전한 성장 등을 여성적 시선을 통해 그리고 있다. 소설집으로 [불의 강], [저녁의 게임], [유년의 뜰], [바람의 넋], [야회], [옛우물], [불꽃놀이], [새] 등이 있으며, 많은 작품이 영어·독일어·프랑스어 등으로 번역되었다.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오영수문학상, 동서문학상, 독일 리베라투르상 등을 수상했다.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일상의 권태(倦怠-게으름, 싫증)에서 벗어나려는 40대 부부의 내면을 통해 일상과 결혼의 의미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보여 준다.요컨대 나날의 삶을 무력하게 하고, 삶의 환상조차 허락하지 않는 근대적 일상과 그러한 일상 속에 놓인 부부의 삶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드러내고 있다.
[지문 분석] 벽을 타고 내려오는 동안, 상대(주인공인 그녀)가 다만 놀란 듯 크게 열린 눈으로 바라볼 뿐 무방비 상태라는 것을 간파해 버린 전갈(全蠍-전갈과의 절지동물, 배 끝에 독침, 그녀는 사냥이 취미인 남편의 옷이나 짐에 딸려 들어왔을 거라고 여김, 남편이 출장을 가자 나타난 전갈은 불안, 두려움, 공포를 상징)은 꼬리를 쳐들어 둥글게 머리 위로 구부렸다.(전지적 작가 시점) 적이(다소) 위협적이고 도전적인 자세였으나 1초와 1/2초까지 계산되어 이어지는 기계 체조 선수의 굴신(屈伸-팔·다리·몸을 굽혔다 폈다 함) 동작처럼 유연한 몸짓이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그 여자가 젖어 있던, 이별 뒤의 허탈함과 해방감, 불분명한 가슴 에임, 애상 따위를 비웃듯 벽과 책상 사이의 좁은 틈서리로 천천히 사라졌다. 방은 남편이 사용하던 물건, 기거하던 흔적들로 가득했다. 책상, 책장, 엽총, 배낭, 옷걸이에 걸린 채로인 옷가지들이 곳곳에서 그의 존재를 증거하고 있었고 그 사이에서 전갈을 찾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여자가 혼자 힘으로 — 설사 자고 있는 아이들을 깨워 그들의 힘을 빌린다 해도 — 들어 옮길 수 있는 짐은 몇 가지 되지 않았다. 기껏 그날 밤 그 여자가 한 일이란 바퀴벌레를 죽이기 위해 늘상 해 왔던 방법, 즉 붕산 가루를 뿌리고 마른 쑥을 태워 연기를 피우는 일뿐이었다. 그것만이 전갈로부터 아이들과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이었다. 그 작은 독충의 위협, 환상 앞에서 그 여자는 무력했다. 밤새 그 여자는 전갈이 소리 없이 기어 다니며 아이들의 연한 살을 찌르고 재빨리 달아나는 환상에 시달려 역시 한 마리 전갈처럼 어둠 속에서 서성였던 것이다.
[중략 부분의 줄거리] 1년이 지나 남편이 귀국한다는 전갈(傳喝-사람을 시켜 말을 전함)이 오자 그녀는 음식을 장만하며 바쁘게 시간을 보낸다. 남편의 귀국 전날 그녀는 잠자리에 들지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지난 시간을 회상한다.
아침나절의 외출과 오후의 긴 산책으로 피곤했지만 그 여자는 잠들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차라리 남편의 물건들이 유품처럼 보존되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방의 청소를 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일 듯했다. 전갈(全蠍-전갈과의 절지동물, 배 끝에 독침이 있음)을 발견한 후 그 여자는 남편의 방 청소를 벼르기만 할 뿐 엄두를 내지 못했다.(전갈에 대한 두려움, 공포)
1년은 긴 시간이 아니오, 지난해와 또 그 지난해, 살아온 시간을 생각해 보오. 세월이 얼마나 빠른지. 임지(任地-근무지)로 떠날 때 남편은 말했었다. 그 여자가 아이에게 말한 대로, 모든 것이 잘될 것이다. 그가 그곳의 새로운 생활과 일, 사귄 사람들과 풍속에 대해 간간 써 보내듯 그 여자도 아이들의 자라남에 대해, 그가 없는 가정의 쓸쓸함에 대해 편지를 써 보냈다. 그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승진을 보장받는다는 명분(名分-표면상의 이유, 명목)이긴 했지만 모두가 내켜 하지 않는 아프리카 오지의 지사 근무를 그는 거의 자원(自願)한 것이라고 그 여자는 믿고 있었다.(그녀는 남편이 아프리카 오지를 선택한 것은 일상의 권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원이라고 믿음)
그 무렵 똑같이 마흔 살 동갑내기인 그들 부부는 일종의 권태(倦怠-게으름, 싫증)로움에 빠져 있었다. 단순히 결혼 생활에 대한 것이라고 말해 버리기에는 복잡한, 무언가 지쳐 가고 있다는 분명치 않은 무력감이었다. 마흔 살이란, 자기의 시절이 지나고 있다는 초조감과 함께 인생이 그에게 새로운 계기와 자극을 요구하는 나이였지만 또한 무엇을 새로이 시작하기에는 늦은 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마추어 엽사(獵師-사냥꾼)인 그는 아프리카의 신생국에 냉장고, 세탁기 따위를 팔러 가면서 말라리아와 독충의 위협보다 분명 더럽혀지지 않은 초지(草地)와 밀림, 야생의 동물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 여자 역시 살아온 세월의 부피와 경륜이, 시간이 아이들을 자라게 하고 젊은이를 늙게 하듯이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교훈을 그 여자에게 가르쳤으나 그것은 구원도 위안도 되지 못했다. 남편과 떨어져 있게 될 1년간의 시간은 아마 그 여자의 전 생애와 맞먹는 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혼자 있게 됨으로써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성찰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고독이 만성적인 권태와 무위(無爲-아무 일도 하지 않음)한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리라는 기대와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던가. 원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을까.
남편이 떠난 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하루가 시작되었고 그것이 쌓여 한 달 두 달이 흘러갔다. 그 여자는 한 달에 한 번씩 남편의 봉급을 지급받기 위해 정해진 은행의 창구를 찾아갔고 또 가끔 아이들을 데리고 영화 구경을 가거나 갈나무 숲으로 산책을 나갔다. 뚜렷하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때때로 자정 넘어, 새벽 2시, 3시쯤에도, 술 취한 사람이 함부로 운전하는 자동차와 경비원의 플래시 불빛을 피하여 펄럭이며(치마를) 아파트의 빈 광장을 돌아다니기도 했다.(일상에서 겪는 외로움이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그러는 동안 마음의 외로움이나 불안은 조금씩 스러졌다.
[문제]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앞부분의 줄거리] 경상도 안동 땅에 사는 백선군의 꿈에 숙영이 나타나 자신이 백선군과 천생의 연분이 있음을 말한다. 이후 선군과 숙영은 부부의 연을 맺어 남매를 낳고 행복하게 8년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 백상군은 선군에게 과거 시험에 응시할 것을 요구한다.
“당신은 내가 과거를 보고 돌아올 때까지 부모를 잘 모시고 애들과 함께 기다리시오.”
하고 과거 길을 떠나게 되었다.
[A] 【 그러나 숙영과의 이별이 슬퍼서 한 걸음에 돌아서고 두 걸음에 돌아보며 연연한 정을 금하지 못하므로 숙영도 중문 밖까지 나와서 먼 길에 몸조심하라고 재삼 당부하면서 슬픔을 금치 못하였다. 선군은 수심에 찬 기색이 얼굴에 가득하여 발걸음이 무거워 그날은 종일토록 삼십 리밖에 가지 못하였다. 주막에 들러서 저녁상을 받고도 오직 숙영 생각만 간절해서 음식을 먹어도 맛을 느끼지 못하여 두어 술 뜨다가 상을 물리치니 하인이 민망히 여겨서
“식사를 그렇게 안 하시면, 앞으로 천 리 길을 어떻게 가시렵니까?”】
하니 선군이 / ㉠“아무리 먹으려 해도 입맛이 없으니 어쩌겠느냐.”
하였다. 선군은 적막한 주막방에 앉아 있노라니 마음이 산란하였다. 숙영이 옆에 있는 듯하되 보이는 듯 보이지 않고, 소리가 들리는 듯하되 귀를 기울이면 들리지 않았다. 바늘 밭에 앉은 것처럼 마음을 진정치 못하다가 마침내, 이경 끝에서 삼경 초에 신발을 들메고 집에 돌아와 담을 넘어서 숙영의 방으로 들어갔다. 잠을 깬 숙영이 깜짝 놀라서,
“낭군님, 이 밤중에 어쩐 일입니까. 오늘 길을 떠난 분이 다시 돌아오셨으니 어찌 된 일입니까?” / 하니 선군이 대답하기를,
“종일토록 가다가 겨우 삼십 리를 가서 숙소를 정하였으나 다만 그대 생각뿐이라, 첩첩이 쌓인 비감한 생각을 금치 못하여 밥도 먹히지 않고 도중에서 병이 될까 염려되어 한 번 더 그대를 보고 외로운 심회를 풀려고 왔소.”
하고 숙영의 손을 이끌어 금침 속으로 끌어들여서 밤이 새도록 정회를 풀었다.
이때 부친 백 공(白公)이 아들을 과거 차 서울로 보내고 도적을 살피려고 청려장을 짚고 담장 안을 돌아다니며 사방의 동정을 보다가 동별당에 이르니, 숙영의 방에서 문득 남자의 말소리가 은은히 들리니 백 공이 가만히 듣다가 혼자 생각에
“며느리는 빙옥지심(氷玉之心)과 송죽지절(松竹之節)의 여인인데 어찌 외간 남자와 사통하여 음행한 짓을 할까. 그러나 세상일이란 알 수 없는 것이니 한번 알아봐야겠다.”
하고 가만히 사창 앞으로 다가서서 귀를 기울이고 엿들으니 이윽고 숙영이 낮은 음성으로,
“시아버지께서 밖에 와 계신 듯하니 당신은 몸을 이불 속에 숨기세요.”
하며 또 잠이 깬 듯한 아이를 달래면서,
“너희 아버지는 장원 급제하여 영화롭게 돌아오신다.”
하고 어루만지거늘 시아버지 백 공이 크게 의심을 품고 침소로 돌아왔다. 이때 숙영은 시아버지가 밖에서 엿듣는 기척을 미리 알았으므로 선군에게 말하기를,
[B] 【 “시아버지께서 창밖에 와서 엿보고 가셨으니 이미 낭군이 온 줄을 아셨을 것입니다. 그러니 낭군은 제게 연연하지 마시고 어서 서울에 올라가 성공 여부를 헤아리지 말고 과거를 보아 부모님이 바라시는 바를 저버리지 마시고 또 제게도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하십시오. 생각건대 낭군께서 저를 생각하여 여러 번 왕래하게 된다면 그 죄가 크니, 그것은 장부의 도리가 아니요, 또 부모님께서 그 사실을 아신다면 결단코 제가 화를 당할 것은 뻔하니 낭군은 전후 사리를 현명하게 헤아려서 속히 상경하십시오.”】
하고 길을 재촉하였다. 선군이 숙영의 말을 옳게 여기고 곧 작별하고 다시 주막집 숙소로 달려갔다. 그때까지 하인은 아직 잠을 깨지 않고 자고 있었다.
이튿날 날이 새자 다시 길을 떠나 겨우 오십 리를 가서 숙소를 정하고 달 밝은 객창에 홀로 적막히 앉아 있으니, ㉡숙영의 모습이 눈앞에 삼삼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고 천만 가지로 고민하다가, 결국 울적한 정회를 금하지 못해서 또다시 표연히 집으로 돌아와 몰래 숙영의 방으로 들어가니 숙영이 놀라고 꾸짖어 말하기를,
“낭군은 제가 간곡히 말씀드린 것을 듣지 않고 오늘 밤에 또 돌아왔으니 웬일입니까? 이러다가 천금 귀체가 객중에서 병을 얻으면 어쩌시렵니까? 그렇게도 저를 못 잊어 계속 이러실 바에는 제가 차라리 낭군의 숙소에 찾아가겠습니다.”
[중략 부분의 줄거리] 우여곡절 끝에 선군이 다시 과거 길에 오르게 되나 숙영은 시비 매월의 간계로 간통의 누명을 쓰게 된다.
“닥쳐라! 내 귀로 직접 듣고 내 눈으로 직접 본 일인데, 네가 끝끝내 나를 속이려고 하니 어찌 통해(痛駭)*치 아니하랴. 양반의 집에 이런 해괴한 일이 있기는 드문 법, 실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네가 상통한 놈의 성명을 빨리 대라.”
하는 시아버지의 호령이 서릿발 같았다. 그러나 숙영은 오히려 낭랑하게,
“아무리 시부모님 간택으로 육례*를 이루지 못한 며느리라 할지라도 어찌 그런 끔찍한 말씀을 하십니까? 제가 억울한 누명을 발명(發明)하기도 창피하오나, 아버님께서 자세히 조사해 보십시오. ㉢이 몸이 지금 비록 인간으로 있사오나, 저의 빙옥(氷玉) 같은 정절(貞節)로 이런 더러운 말씀을 듣겠습니까? 이런 더러운 말씀을 들으면서도 영천수(潁川水)가 멀어서 귀를 씻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습니다. 다만 죽어 모르고자 합니다.”
- 작자 미상, 「숙영낭자전」
*통해: ‘통해하다’의 어근. ‘통해하다’는 ‘몹시 이상스러워 놀랍다.’의 의미임.
*육례(六禮):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혼인의 여섯 가지 예법. 납채, 문명(問名), 납길, 납폐, 청기(請期), 친영을 이름.
(나) 벽을 타고 내려오는 동안, 상대가 다만 놀란 듯 크게 열린 눈으로 바라볼 뿐 무방비 상태라는 것을 간파해 버린 전갈은 꼬리를 쳐들어 둥글게 머리 위로 구부렸다. 적이 위협적이고 도전적인 자세였으나 1초와 1/2초까지 계산되어 이어지는 기계 체조 선수의 굴신 동작처럼 유연한 몸짓이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그 여자가 젖어 있던, 이별 뒤의 허탈함과 해방감, 불분명한 가슴 에임, 애상 따위를 비웃듯 벽과 책상 사이의 좁은 틈서리로 천천히 사라졌다. 방은 남편이 사용하던 물건, 기거하던 흔적들로 가득했다. 책상, 책장, 엽총, 배낭, 옷걸이에 걸린 채로인 옷가지들이 곳곳에서 그의 존재를 증거하고 있었고 그 사이에서 전갈을 찾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여자가 혼자 힘으로 — 설사 자고 있는 아이들을 깨워 그들의 힘을 빌린다 해도 — 들어 옮길 수 있는 짐은 몇 가지 되지 않았다. 기껏 그날 밤 그 여자가 한 일이란 바퀴벌레를 죽이기 위해 늘상 해 왔던 방법, 즉 붕산 가루를 뿌리고 마른 쑥을 태워 연기를 피우는 일뿐이었다. 그것만이 전갈로부터 아이들과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이었다. 그 작은 독충의 위협, 환상 앞에서 그 여자는 무력했다. 밤새 그 여자는 전갈이 소리 없이 기어 다니며 아이들의 연한 살을 찌르고 재빨리 달아나는 환상에 시달려 역시 한 마리 전갈처럼 어둠 속에서 서성였던 것이다.
[중략 부분의 줄거리] 1년이 지나 남편이 귀국한다는 전갈이 오자 그녀는 음식을 장만하며 바쁘게 시간을 보낸다. 남편의 귀국 전날 그녀는 잠자리에 들지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지난 시간을 회상한다.
아침나절의 외출과 오후의 긴 산책으로 피곤했지만 그 여자는 잠들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차라리 남편의 물건들이 유품처럼 보존되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방의 청소를 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일 듯했다. 전갈을 발견한 후 그 여자는 남편의 방 청소를 벼르기만 할 뿐 엄두를 내지 못했다.
1년은 긴 시간이 아니오, 지난해와 또 그 지난해, 살아온 시간을 생각해 보오. 세월이 얼마나 빠른지. 임지로 떠날 때 남편은 말했었다. 그 여자가 아이에게 말한 대로, 모든 것이 잘될 것이다. ㉣그가 그곳의 새로운 생활과 일, 사귄 사람들과 풍속에 대해 간간 써 보내듯 그 여자도 아이들의 자라남에 대해, 그가 없는 가정의 쓸쓸함에 대해 편지를 써 보냈다. 그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승진을 보장받는다는 명분이긴 했지만 모두가 내켜 하지 않는 아프리카 오지의 지사 근무를 그는 거의 자원한 것이라고 그 여자는 믿고 있었다.
그 무렵 똑같이 마흔 살 동갑내기인 그들 부부는 일종의 권태로움에 빠져 있었다.단순히 결혼 생활에 대한 것이라고 말해 버리기에는 복잡한, 무언가 지쳐 가고 있다는 분명치 않은 무력감이었다. 마흔 살이란, 자기의 시절이 지나고 있다는 초조감과 함께 인생이 그에게 새로운 계기와 자극을 요구하는 나이였지만 또한 무엇을 새로이 시작하기에는 늦은 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마추어 엽사인 그는 아프리카의 신생국에 냉장고, 세탁기 따위를 팔러 가면서 말라리아와 독충의 위협보다 분명 더럽혀지지 않은 초지(草地)와 밀림, 야생의 동물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 여자 역시 살아온 세월의 부피와 경륜이, 시간이 아이들을 자라게 하고 젊은이를 늙게 하듯이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교훈을 그 여자에게 가르쳤으나 그것은 구원도 위안도 되지 못했다. 남편과 떨어져 있게 될1년간의 시간은 아마 그 여자의 전 생애와 맞먹는 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독이 만성적인 권태와 무위한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리라는 기대와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던가. 원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을까.
남편이 떠난 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하루가 시작되었고 그것이 쌓여 한 달 두 달이 흘러갔다. 그 여자는 한 달에 한 번씩 남편의 봉급을 지급받기 위해 정해진 은행의 창구를 찾아갔고 또 가끔 아이들을 데리고 영화 구경을 가거나 갈나무 숲으로 산책을 나갔다. 뚜렷하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때때로 자정 넘어, 새벽 2시, 3시쯤에도, 술 취한 사람이 함부로 운전하는 자동차와 경비원의 플래시 불빛을 피하여 펄럭이며 아파트의 빈 광장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마음의 외로움이나 불안은 조금씩 스러졌다.
- 오정희, 「전갈」
1. (가)의 내용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한 것은?
① 백 공은 숙영에 대한 의심을 풀고 자신의 침소로 돌아온다.
② 백 공은 숙영의 방을 찾은 남자가 선군임을 알고 있었다.
③ 숙영은 선군의 신변에 탈이 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④ 숙영은 여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 현실을 분하게 여긴다.
⑤ 숙영은 자신의 결백을 죽음으로 입증할 것임을 내비친다.
2. ㉠~㉤을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 과거 시험으로 인한 심리적 부담을 떨쳐 내지 못하고 있는 선군의 곤혹스러운 내면이 드러나고 있다.
② ㉡: 숙영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이기지 못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선군의 심리가 드러나고 있다.
③ ㉢: 자신이 맞닥뜨리게 된 상황을 두고 억울해하는 숙영의 한스러운 심정이 드러나고 있다.
④ ㉣: 남편이 부재한 현실에서 느끼게 된 여자의 쓸쓸한 심정이 드러나고 있다.
⑤ ㉤: 일상에서 겪게 된 심리적 불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여자의 행위가 드러나고 있다.
3. [A]와 [B]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A]의 ‘숙영’과 [B]의 ‘숙영’은 모두 이별의 슬픔으로 인하여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다.
② [A]의 ‘숙영’과 [B]의 ‘숙영’은 모두 ‘선군’의 행위가 자신에게 미칠 영향을 경계하고 있다.
③ [A]의 ‘선군’은 [B]의 ‘숙영’과 달리 주어진 상황을 해결하고자 하는 단호한 결단을 드러내고 있다.
④ [B]의 ‘숙영’은 [A]의 ‘선군’과는 달리 자신의 안위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⑤ [A]에서는 ‘숙영’과의 이별에 연연하는 ‘선군’의 모습이, [B]에서는 ‘선군’의 마음을 돌리려는 ‘숙영’의 사려 깊은 행위가 드러나고 있다.
4. (나)의 ‘여자’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남편과의 이별 뒤 자신의 일상이 획기적으로 변화함을 느끼었군.
② 세월의 경륜이 주는 일상적 교훈에서 구원을 받지 못하고 있었군.
③ 자신이 삶의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나이에 이르렀음을 자각하고 있었군.
④ 남편이 아프리카 오지 근무를 자원한 이유가 승진만이 아닌, 다른 이유도 있을 것이라 믿고 있었군.
⑤ 남편과 떨어져 있게 될 시간 동안의 고독이 삶의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여겼군.
5. <보기>를 바탕으로 (가)와 (나)를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우리 소설사에서는 부부간의 애정 성취와 사랑의 의미를 묻는 ‘부부 서사’가 시대를 초월하여 창작되어 왔다. 이들 서사의 주인공들은 결혼 단계에서부터 애정 성취를 가로막는 기존의 질서나 제도로부터 벗어나 인간 본래의 마음에 따른 선택을 한다. 물론 결혼 생활 동안에는 부부의 미숙한 행위가 드러나기도 하고, 위기가 닥쳐오기도 한다. 이러한 서사적 얼개를 통해 자기를 성찰하고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부부상이 창출된다.
① (가)에서 ‘선군’이 과거 길에 올랐다가 ‘몰래 숙영의 방’을 찾는 것에서, 사려 깊게 행동하지 못하는 ‘선군’의 미숙한 행위가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군.
② (가)에서 ‘숙영’이 자신을 ‘시부모님 간택으로 육례를 이루지 못한 며느리’라고 말하는 것에서, ‘숙영’의 애정 성취가 기존의 결혼 예법으로부터 벗어나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군.
③ (나)에서 ‘그들 부부는 일종의 권태로움에 빠져 있었다’고 한 것에서, 부부에게 결혼 생활의 위기가 닥쳤었음을 알 수 있군.
④ (나)에서는 ‘여자’가 ‘남편과 떨어져 있게 될’ 시간의 의미를 생각하는 것에서, ‘여자’가 자신의 삶의 의미를 성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군.
⑤ (가)에서 ‘동별당’, (나)에서 ‘남편의 방’은 두 부부의 사랑이 반성적으로 성찰되는 공간임을 알 수 있군.
<정답> 1⑤-(가)의 “다만 죽어 모르고자 합니다.”라는 서술 내용을 보면 숙영은 자신의 정절을 죽음으로 입증하고자 함을 미루어 알 수 있다.
2①-(가)의 ‘숙영이 옆에 있는 듯하되 보이는 듯 보이지 않고, 소리가 들리는 듯하되 귀를 기울이면 들리지 않았다.’라는 서술 내용을 보면, 선군은 과거 시험에 대한 심리적 부담을 갖고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숙영과의 헤어짐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고 있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3⑤-[A]의 ‘그러나 숙영과의 이별이 슬퍼서 한 걸음에 돌아서고 두 걸음에 돌아보며 연연한 정을 금하지 못하므로’라는 서술 내용을 보면 선군이 이별에 연연하고 있는 모습이 드러난다. 그리고 [B]의 “그러니 낭군은 제게 연연하지 마시고 ~ 과거를 보아 부모님이 바라시는 바를 저버리지 마시고”라는 서술 내용을 보면 남편인 선군이 과거를 보아 부모의 바람을 이루는 것이 자신과 다시 재회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길임을 상기시켜 선군의 마음을 돌리려는 숙영의 사려 깊은 행위가 드러나고 있다.
4①-(나)의 ‘뚜렷하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라는 서술 내용을 보면, 여자는 남편이 아프리카 오지로 떠난 이후에도 여전히 전과 다르지 않은 일상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이로 보면, 남편과의 이별 뒤에도 여자의 일상은 획기적으로 변화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오답> ② ‘세월의 부피와 경륜이, 시간이 아이들을 자라게 하고 젊은이를 늙게 하듯이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교훈을 그 여자에게 가르쳤으나 그것은 구원도 위안도 되지 못했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③ ‘마흔 살이란, 자기의 시절이 지나고 있다는 초조감과 함께 인생이 그에게 새로운 계기와 자극을 요구하는 나이였지만 또한 무엇을 새로이 시작하기에는 늦은 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라는 서술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여자는 자신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는 늦었지만, 어떤 식으로든 삶의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나이에 이르렀음을 자각하고 있다.
5⑤-(가)의 ‘동별당’은 선군과 숙영의 자유로운 사랑이 이루어지는 공간임과 동시에 그러한 사랑으로 인하여 두 사람이 위기를 맞는 공간이고, (나)의 ‘남편의 방’은 가족을 위협하는 전갈을 발견하는 공간이란 점에서 두 부부의 사랑이 반성적으로 성찰되는 공간과는 거리가 멀다.
[전문]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그 여자는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햇빛을 쬐러 가자, 방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맞대고 전자놀이판의 자동차 경주 게임을 하고 있던 두 사내아이는 뜻밖의 제의에 의아한 눈빛으로 그 여자를 올려다보았다. 엄마는, 바람이 분다고 감기를 걱정하며 방금 자신들을 밖으로부터 불러들였던 것을 잊은 것일까. 더욱이 지금은 해가 설핏 기울기 시작하는, 결코 해바라기에 적당한 시간이 아닌 것이다.
베란다로 나가는 마루의 커다란 창은 광장이라 불리는 그리 넓지 않은 공터를 향해 나 있어 일조의 차단물은 없었지만 동향인 탓에, 아침결에만 잠깐 드는 햇빛이 물러간 지 오래여서 집안은 젖은 듯 고즈넉했다.
겨울이 오기 전 햇빛을 많이 쬐어 두어야만 해. 겨울은 어둡고 길단다. 여느 때처럼 잠깐의 외출일 뿐이라는 것을, 또한 엄마와 함께 가는 길이 결코 대단한 모험일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들은 순순히 일어나 그녀가 시키는 대로 점퍼 깃을 여미고 양말을 당겨 신었다. 집 밖의 세계란 아이들에게는 언제나 새롭고 낯설며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이다.
아빠에게 제가 만든 비행기를 보여 드리겠어요.
산의 중턱에 자리 잡은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갈나무 숲 골짜기를 지날 때, 얼굴에 와 닿는, 낮게 뻗은 나뭇가지를 피해 휙휙 고개를 젖히며, 어느 새 키가 그녀의 어깨 높이까지 자란 여덟 살 나기 큰 아이는 어른스럽게 말했다. 그러한 자신의 태도를 의식했음인지 좀 거세고 뻣뻣한 목소리였다. 아이들은 물론 내일이면 아빠가 먼 길에서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렴, 좋은 선물이 될 거다. 틀림없이 아빠는 깜짝 놀라시겠지. 그녀는 잎 떨군 나뭇가지 사이로 뿌옇게 서리는 햇살이 그대로 가슴에 불투명한 막을 드리우는 느낌에, 아이의 기다림 속에 깃든, 아마 아이 자신은 의식치 못할 것이 분명한 긴장을 달래기 위해 조그만 어깨에 손을 얹었다. 하지만 집에 가져올 수가 없어요. 전시회가 끝난 후에도 학교에 보관한대요. 아이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자랑과 칭찬을 기대할 수 없다는 데 대한 실망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조금 전의 어른스러운 태도는 사라졌다. 아빠와 같이 전시장에 가서 보면 되잖니. 그 여자는 한숨 쉬듯 낮은 목소리로 아이의 조바심을 풀어 주었다.
국민학교 과학전에 출품해서 입상한 모형 비행기는 시립과학관에서 전시 중이었다. 그녀의 말에도 아이의 얼굴은 쉬이 밝아지지 않았다. 아빠랑 보러 가면 되잖니. 말 흉내 내기의 새로운 버릇이 붙은 제 동생을 말없이 흘겨보며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깊이 지른 채 와삭와삭 발밑에 쌓인 낙엽을 밟았다.
골짜기를 벗어나 과수원의 낮은 울타리를 돌면 시의 외곽도로가 나타나고 그 건너 강줄기가 보였다. 차가와진 날씨 탓인가, 그것은 한층 파랗고 깊게 흐르는 듯했다.
그 여자는 잠깐 바람이 불고 있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시간을 가늠해 보고는 내처 걸었다. 아이들이 과수원 앞에 이르러 머뭇거렸다. 지난여름과 가을, 몇 차례 과일을 사러 과수원에 온 적이 있지만 그 곳을 지나쳐 더 멀리 가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과수원 아래는 돼지 막이었다.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돼지 막의 오물, 주민들이 함부로 버린 쓰레기 따위로 더러운 도랑물이 되어 간신히 작은 줄기를 이루며 강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폭우가 지나간 다음이면 제법 맑아지는 물에, 돼지를 치며 사는 가난한 동네 여자들은 머리를 풀어 감고 빨래를 하고 아이들을 씻겼다. 강에 다리를 놓는 공사가 시작되면서부터 밤낮없이 돌아가는 준설선의 모터의 기름이 강을 뒤덮고, 또한 물밑치기 작업으로 위험한 웅덩이가 곳곳에 생겨 익사사고가 잦아지자 시 당국은 강의 사용을 금했던 것이다.
강가에 이르자 아이들은 그녀의 손을 놓고 강줄기를 따라 난 모래펄로 달음박질쳤다. 고개를 한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이고 머리칼을 흩뜨리며, 바람을 공처럼 안고 아이들은 달렸다. 물기 머금어 단단해진 모래펄에는 곧 아이들의 발자국이 꽃처럼 어지러이 찍혔다. 너무 뛰지 말아. 자칫 넘어질 듯 위태로운 걸음으로 숨 가쁘게 형을 따라 뛰는 작은 아이를 향해 그 여자는 소리쳤다.
곳곳에 모래 채취로 생긴 웅덩이와 작은 사구들이 있고 웅덩이에 괸 흐린 물에는 물거미가 힘겨운 몸짓으로 미미한 파문을 만들며 떠 있었다. 한결 기울고 엷어진 햇살이 강 가운데의 중유를 끈끈하게 뒤집어쓴 준설선 위로 맥없이 떨어져 내렸다. 엔진을 끈 낡고 조그만 선체는 폐선처럼 보였다. 지난 밤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가. 갑자기 영하로 떨어진 기온에 피웠을 화롯불 자리에는 불에 난 나뭇가지들이 흩뜨려져 있고 재가 꺼멓게 바람에 날아올랐다. 그 여자는 그 황량하고 텅 빈 강가에서 그것만이 오직 그녀에게 허락된 일인 듯 바람에 날아오르는 재들을 차근차근 힘주어 밟았다. 판자를 잇대어 임시로 지은 간이상밥집의 문이 열리고 어둑신한 안으로부터 갑자기 여자의 한쪽 어깨와 팔만이 비죽 빠져나와 햇빛에 밟게 드러났다. 헝클린 퍼머 머리를 빗고 있던 늙수그레한 그 여자는 빗살에 끼인 머리칼을 햇빛에 털어버리며 잠시 강펄에서 강아지처럼 뛰노는 아이들을 바라보고는 문득 찢어지게 하품을 해대었다.
인부들은 보이지 않았다. 소문대로 공사는 중단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그 여자는 지난 여름 내내 밤새 털털거리며 돌아가는 모터 소리를 들었다. 강으로부터 들려오는, 물밑치기를 하기 위해 준설기를 가동하는 소리였다. 곧 다리가 놓여질 것이라고 했다. 강을 가로질러 놓일 새로운 다리는 이제껏 보아 왔던 그 어느 것보다도 아름답고 견고하며, 잿빛 대리석의 아치 난간으로 이 고장의 명물로 사랑받고 이용되리라 했다. 새로운 다리의 모형도는 진작부터 상설 전시관에 전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공사는 진척이 되지 않았다. 시의 예산이 바닥이 나서 부득이 내년으로 미루어지게 되었다던가, 강바닥에서 예상치 못한 암반을 발견했기에 더 많은 장비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었다. 다리는 강펄에 몇 개의 사구만을 만든 채 시작할 때의 요란했던 풍문과 기대만큼이나 갑작스레 잊혀졌다. 밤새 귓가에서 울리며 밤잠을 설치게 하고 무위한 공상과 조바심에 빠뜨렸던 준설기 소리가 사라진 뒤에도 그 여자는 여전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강의 대안에는 두어 척의 전마선이 떠 있고 울긋불긋한 슬레이트를 얹은 집들과, 밭벼를 거두어들인 낮은 경작지, 몇 동의 비닐하우스 등이 풍경화처럼 펼쳐져 있었다.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초겨울의 풍경에는 결빙되기 직전의 물과 같은 고요함, 정치함이 있었다.
강을 향해 돌팔매질을 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아득하게 눈에 들어왔다. 움직이지 않는 투명한 풍경 속을 가르고 나타난 개가 한 마리, 죽은 쥐를 물고 그 여자의 곁을 지나쳐 갔다. 그 여자의 눈길이 무심히 개의 움직임을 따라 움직였다. 그 개는 한결같이 느린 걸음으로, 그러나 망설이는 빛 없이 강을 질러 걸린 ㅡ 다리공사가 시작되기 훨씬 전, 도괴의 위험으로 통행이 금지된 오래 된 목조의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이른 새벽, 그 여자의 잠을 깨운 것은 느닷없는 전화벨 소리였다. 지구의 반대쪽에서 남편은 들뜬 음성으로 말했다. 곧 비행기를 타. 아마 오늘 밤은 비행기에서 보내야 할 것 같소. 내일 아침이면 그 곳에 닿을 거요. 전화감도는 아주 좋았지만 거리를 의식한 그는 애써 목소리를 높였다. 오시게 되어 기뻐요. 애들은 몹시 기다리고 있어요. 식사 든든히 하시고 감기 안 걸리도록 덧옷 꺼내 놓으세요. 여긴 추워요. 이상 저온이래요. 그 여자도 덩달아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귀국 일자는 1주일 전에 받은 그의 편지에도 명시되어 있었다. 아니 1년 전, 보다 나은 대우와 승진을 회사 측으로부터 약속받고 떠날 때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
지난 일주일, 그 여자는 남편을 맞기 위한 준비를 정신없이 바쁘게 지냈다. 비누를 풀어 마루의 때를 벗기고 도배와 장판을 새로이 했으며 솜을 틀어 새 이불을 풀어 꾸몄다. 그것은 그 여자로서는 거의 필사적이 몸놀림이었으나 일은 아직도 많았다. 오늘은 산 게를 구해 토막 쳐 게장을 담그고 그 곳의 더운 기후가 그의 식성을 변하게 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좋아할 것이 분명한 음식을 몇 가지 장만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청소를 해야 했다. 그러나 그 여자는 긴치 않은 외출로 아침나절을 보내버렸다.
전화를 끊고 그때 막 잠에서 깨어난 아이들에게 자신의 얼굴을 달아오르게 한 설렘과 흥분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그 여자는 짐짓 무뚝뚝하게 말했었다. 아빠가 내일 오신다는구나. 그러나 그 순간 그 여자는 문득 자신의 어조에 깃든 이유를 알 수 없는, 막바지로 몰린 듯한 절박감을 감지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각각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고도 한동안 일을 잡지 못하고 서성이던 그 여자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 며칠 전 받아놓고도 무심히 던져버렸던, 큰아이의 학교 자모회로부터 온 공문이었다. 고아원과 양로원의 월동 준비를 위한 자선 바자에 내놓을 폐품 이용 작품을 만든다는 내용이었다. 그게 언제까지였더라, 그 여자는 서둘러 학교로 달려가며, 자신이 눈먼 말과도 같다고 자조했다.
부대에 가득 든 헌 스타킹을 꼬아 깔개를 만들고 헝겊 자투리로 조각보를 잇는 작업이 그 여자에게 주어졌다. 못쓰게 된 잡동사니 물건들과 헌 옷가지의, 악취와 먼지로 들이찬 임시 작업실로 꾸민 창고에서 되도록 깊이 숨을 쉬지 않으려고 애쓰며 그 여자는 아이의 반 친구 엄마에게 소곤거렸다. 자식이 무섭긴 하군요. 왜요? 내일 남편이 귀국한다는데도 여길 나와 앉았으니 말이에요. 해외에 나가셨던가보죠? 네. 1년 만에 돌아오는 거랍니다. 저런, 바쁘실텐데 나오셨군요. 굳이 그러실 필요가 없는데. 보시다시피 일손들이 이렇게 많고 작업 마지막 날이니 일도 거진 끝나가잖아요? 또 빠진대도 표 나는 것이 아닌 걸요. 어쨌든 참 좋으시겠어요. 결혼한 부부가 1년씩이나 떨어져 있다는 건 불편하고 자연의 법칙에도 어긋나는 일이니까요.
강바람에 섞여, 아이들이 부르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아련히 들려왔다. 그 여자는 늙은 개로부터, 그 개를 바라봄으로써 비롯된 상념에 빠져나올 수 있는 것에 기뻐하며 아이들을 향해 빨리 걸음을 옮겨 놓았다. 다리를 건너간 개는 마을 쪽으로 가지 않고 아직 맞은 편 강펄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지만 그것은 시력이 나쁜 그 여자에게는 이미 느린 속도의 잿빛 움직임에 지나지 않았다.
아이들이 흥분과 경탄의 다급한 손짓으로 가리키는 곳은 강 둔덕의 꽤 굵은 고사목의 둥치였다. 밑둥 부근의 흙이 깊이 무너져 얽힌 뿌리가 드러나고 곁에는 방금 그 곳에서 젖은 흙빛이 생생한 돌이 나뒹굴어 있었다. 아마도 어린 두 사내아이가 힘을 합쳐 바위벽을 밀듯 역사했을 법한 큰 돌이었다.
보세요. 이상한 벌레가 있어요. 가재 같아요. 썩은 나무뿌리들이 얽혀 드러난 곳에 그것보다 한결 엷은 색의, 손가락 길이의 벌레가 엎드려 있었다. 앞으로 모은 두 개의 집게발과 길게 뻗은 꼬리로 그것은 얼핏 가재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여자의 얼굴에 문득 떠오른 긴장의 빛을 알아차리기에는 아이들의 낯선 벌레에 대한 호기심이 지나치게 강했다. 가재가 아니야. 전갈이라는 거다. 어조를 낮추는 일 따위는 이럴 경우 무의미한 조심성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여자는 조그맣게 말했다. 죽은 건가요? 큰아이가 이마를 찌푸리며 물었다. 죽었나 봐. 죽은 거야. 작은 아이는 형의 말을 흉내 내어 맞장구 쳤다. 죽은 체할 뿐이야. 그 여자는 고개를 흔들며 온통 정신이 팔려 있는 아이들을 조금 뒤로 잡아당겼다. 그것은 아이들의 길지 않은 인내력을 알 것이다. 죽은 체 엎드려 있다가 조바심으로 참을 수 없어진, 혹은 이미 안심해 버린 아이들이 발로 건드리거나 손으로 집어 올릴라치면 날카롭게 꼬리를 쳐들 것이다. 이미 그 여자에게는 낯설지 않은, 그리도 친근한 몸짓으로.
그것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던가. 전갈을 처음 보았을 때의 공포 ㅡ단지 공포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복합적이고 부정확한 느낌일는지도 모른다. 공포 속에는 그것이 어떤 동기, 대상에서 유발된 것이든 극도의 단순성과 생생함이 있기 때문이다 ㅡ를 그 여자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의 환상이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전갈을 보기는 처음이에요. 기분 나쁘게 생겼어요. 뭘 하고 있는 걸가요. 전갈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리는 일에 진력이 난 큰 아이가 발밑의 흙을 운동화 앞부리로 후비었다. 정말 그래. 작은 아이가 또 냉큼 받아 대답했다. 전갈의 주름진 세모꼴 등과 염주 알 모양으로 이어진 꼬리는 처음의 윤기를 많이 잃었으나 햇빛을 받아 연하고 거의 투명하게 보임으로써 자신은 결코 의도하지 않았을 생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남편이 떠나던 날 밤, 그가 쓰던 방에 들어가 전등 스위치를 울렸을 때 그 여자는 불이 켜짐과 동시에 벽과 천장이 잇닿은 틈서리에 길게 붙어있는 물체를 보았다. 거의 흰색에 가까운 엷은 색 벽지 위에 연한 갈색의 몸뚱이는 돋을새김의 장식처럼 튀어나와 견고하게 붙어 있었다. 처음 그 여자는 그것이 그리마의 한 종류이리라 생각했다.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스스로를 타이르면서도 그 여자는 선 자리에서 움직일 수도, 그것에서 눈을 뗄 수도 없었다. 꼼작하지 않고 벽에 부착해 있던 그것은 그 여자의 팽팽한 시선에 마지못해 글려오듯 마침내 벽을 대각선으로 가르며 느릿느릿 내려오기 시작했다. 불빛이 만드는 그림자 때문에 몸뚱이는 엷게 부풀어 퍼져 보였으며 실제보다 훨씬 많은 수의 다리로 헤엄치는 듯한 움직임은 부드럽고 마냥 권태로워 보였다. 전갈이구나. 그 여자는 중얼거렸다. 그것은 어쩌면 전갈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믿을 수 없는 확신을 얻기 위한 중얼거림이기도 했다. 그때까지 실제로 전갈을 본 적이 없었던 그 여자에게 전갈이란 대개의 사람들에 있어 그러하듯 그것이 가진 바 맹독성, 야행성, 잠행, 비밀스럽고 잔혹한 생존방식에 대한 인간의 미신적인 두려움이었고 그것이 만들어낸 신화와 전설로 길들여진 상상력이었으며 인간의 어두운 속성의 상징성에 지나지 않았다. 전갈에 대해 그 여자는 생물도감의 그림보다 여름밤의 남쪽 하늘에 긴 주걱 모양으로 늘어서 나타나는 자신의 별자리로도 익숙했다. 전갈좌인 당신은 비밀과 죽음, 어둡고 잔인한 열정과 성적 환상에 항상 사로잡혀 있습니다. 물론 그 여자는 점성술 따위를 믿지 않았다.
벽을 타고 내려오는 동안, 상대가 다만 놀란 듯 크게 열린 눈으로 바라볼 뿐 무방비 상태라는 것을 간파해 버린 전갈은 꼬리를 쳐들어 둥글게 머리 위로 구부렸다. 적이 위협적이고 도전적인 자세였으나 1초와 1/2초까지 계산되어 이어지는 기계체조 선수의 굴신 동작처럼 유연한 몸짓이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그 여자가 젖어 있던, 이별 뒤의 허탈함과 해방감, 불분명한 가슴 에임, 애상 따위를 비웃듯 벽과 책상 사이의 좁은 틈서리로 천천히 사라졌다. 방은 남편이 사용하던 물건, 기거하던 흔적들로 가득했다. 책상, 책장, 엽총, 배낭, 옷걸이에 걸린 채로인 옷가지들이 곳곳에서 그의 존재를 증거하고 있었고 그 사이에서 전갈을 찾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여자가 혼자 힘으로ㅡ 설사 자고 있는 아이들을 깨워 그들의 힘을 빌린다 해도 ㅡ들어 옮길 수 있는 짐은 몇 가지 되지 않았다. 기껏 그날 밤 그 여자가 한 일이란 바퀴벌레를 죽이기 위해 늘상 해왔던 방법, 즉 붕산가루를 뿌리고 마른 쑥을 태워 연기를 피우는 일뿐이었다. 그것만이 전갈로부터 아이들과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이었다. 그 작은 독충의 위협, 환상 앞에서 그 여자는 무력했다. 밤새 그 여자는 전갈이 소리 없이 기어 다니며 아이들의 연한 살을 찌르고 재빨리 달아나는 환상에 시달려 역시 한 마리 전갈처럼 어둠 속에서 서성였던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남편의 방에 들어올 수 있었을까. 집은 아파트의 4층이고 그 여자가 아는 한, 전갈은 콘크리트 건물에 서식하는 동물이 아니었다. 여름철이 아니어서 창문은 대체로 닫겨 있었기 때문에 창을 타고 들어왔을 리 없었다. 결국 그 여자는 전갈이 남편에게 묻어들어 온 것이리라고 결론을 지었다. 집 밖에서 밤을 보낸 그가 흔히 도깨비바늘이나 민들레 꽃씨, 쥐똥나무 열매 따위를 묻혀 오듯 그것은 아마 남편의 옷이나 짐 속에 숨어 들어온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수렵협회 회원인 그는 출국에 앞서 얻은 휴가로, 때마침 금렵 조치가 풀린 완충지대 부근 산으로 사냥을 떠나 닷새를 보내고 돌아왔던 것이다.
이런 건 학교 표본실에도 없어요. 유리병 속에 넣어 표본을 만들겠어요. 알콜에 담그거나 포르말린을 쓰면 썩지 않는다고 학교에서 배웠어요. 무엇이든 모으기를 좋아하는, 빠진 이빨까지 소중히 모으는 큰아이는 가느다란 나뭇가리로 그것을 들어 올리려 했다. 안 돼. 건드리지 마. 그 여자는 날카롭게 제지했다. 자신의 목소리가 성마르게 신경질적으로, 아이들이 이해할 수 없는 불안을 드러내지나 않았을까 우려하면서 조금 누그러진 어조로 덧붙였다. 독이 있는 거란다. 아주 위험 해. 독이라는 말이 주는 생생한 느낌에 아이들은 잠깐 멈칫했다. 그 여자의 귀에도 그것은 터무니없이 생기 있게 울렸다. 전갈은 머리를 어두운 구멍 쪽으로 향한 채 여덟 개의 마디발을 힘없이 널부러뜨리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보아라, 그 여자는 손을 들어 햇빛이나 쬐련다는 듯 천연한 몸짓 속에 미만한 독기를 가리켰다.
그 후 몇 차례 더 그 여자는 남편의 방에서 전갈을 보았다. 전갈은 그 여자의 기척에도 피하려는 빛 없이 책상 다리나 천장, 방의 틈서리에 단단히 붙어 있었다.
전갈이 보이지 않게 된 후에도 여전히 그 여자는 남편의 방문을 열 때면 핏줄이 팽팽히 당겨지는 듯한 긴장을 느꼈다. 아니, 보이지 않게 됨으로써 전갈에 대한 그 여자의 환상과 두려움은 더욱 커진 듯했다. 방의 어디선가 숨어 수많은 새끼를 치고 서식하리라.
그 여자는 자주 마른 쑥을 태웠다. 빠져나가지 못하고 닫힌 창가에서 안타깝게 비비적거리며 자욱이 서리는 매캐하고 독한 연기에 기침을 해대며 그 여자는 그것이 제독이나 살충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닌, 일종의 주술적 행위로 느껴지곤 했다.
아, 움직여요. 큰 아이가 비명인지 탄성인지 모를 소리를 지르며 동시에 발부리로 흙을 차 뿌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ㅡ어쩌면 진작부터 은밀히 짓누르고 있었을지도 모를 ㅡ 미신적인 두려움에 약간 질린 얼굴로 한 걸음 물러섰다. 전갈은 머리가 흙에 묻힌 채 꼬리 부분만이 오르르 드러났다.
추워요. 아이들이 목을 움츠렸다. 찬바람 속에 오래 방치되어 있던 탓에 뺨이 파랗게 얼고 점퍼 깃 안쪽의 목덜미에는 소름이 가득 돋아 있었다. 추워요, 돌아가요. 아이들이 시려오는 발을 구르며 다시 말했다. 그래, 돌아가자. 아이들은 끙끙대며, 자신들이 젖혀 놓았던 돌을 밀어 구멍 위에 무겁게 눌렀다.
그 여자는 아이들의 언 손을 양쪽에 하나씩 나눠 쥐고 온 길을 되짚어 걸었다. 저물기를 기다려, 썩은 나무둥치를 막은 무거운 돌을 젖히고 기어 나온 전갈이 먹이를 찾아, 채워지지 않는 갈망과 억눌린 욕정으로 소리 없이 헤맬 강펄은 그러나 아직은 고요하고 냉정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아이들은 너무 멀리까지 온 것에 겁을 내는 듯 그 여자의 곁에 바짝 붙어 서서 종종걸음을 쳤다.
갈색의 오리 떼가 강을 향해 흘러드는 더러운 도랑물을 거스르며 자맥질을 하고 있었다. 몇 마리인가는 햇빛이 엷게 남아 있는 둔덕에서 그들의 더러워진 깃털을 털어 말리고 있었다.
아빠는 떠나셨을까요. 아이가 문득 그 여자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럼, 지금쯤 비행기를 타고 부지런히 날아오고 계실 걸. 그 여자는 아이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아빠가 오신다니 기뻐요. 나도 그렇단다. 아빠가 오시면, 아이가 즐거운 공상과 기대로 눈을 반짝이며 잠깐 말을 끊었다. 그래, 모든 것이 잘될 거다. 그 여자가 대답했다.
돌아오는 길에 그 여자는 과수원에 들렀다. 남편은 서리 맞은 뒤의 물기 마르고 볼품없는 사과의 강한 단 맛과 상한 듯한 향기를 좋아했다. 내일 아침 일찍 한 상자 배달해 줄 것을 부탁하면서 그 여자는 묻지도 않는 말을 덧붙였다. 애들 아빠가 좋아해서요. 내일이면 도착합니다. 1년 만의 귀국이지요.
다시금 갈나무 숲으로 들어섰을 때, 메마른 나뭇가지 사이로 부옇게 비쳐들던 햇빛은 거의 사위었다. 그 여자는 어둡고 깊어가는 그늘에 들어서며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방금 지나온 엷은 금빛 햇살 속에, 조그만 두 아이와 아이들의 손을 하나씩 나눠 쥔 자신의 모습이 마치 지나간 시대의 음영, 혹은 이제는 쓰이지 않는 옛 주화의 마모된 양각 무늬처럼 희미하게 남아 있다가 차츰 닳아지듯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어둠 속에서 비로소, 등뼈처럼 단단하게 솟아오르는 시간의 흐름을 뚫고 그 소리는 들려왔다. 불을 끈 마루에서 팔짱을 끼고 서성이던 그 여자는 부엌 옆의 세탁장으로 가서 위층과 연결된 홈통에 귀를 기울였다.
홈통의 울림으로 부풀어 오르고 엷게 퍼져 약간 변질된 음들이 주저하듯 잠깐씩 멎고 그 여자는 차가운 홈통에 더욱 바짝 귀를 갖다 대었다. 자신의 갈망이 채근이 끊긴 음을 잇게 하리라는 몸짓으로.
마루의 커튼을 닫고, 전등 스위치를 내리는 12시 넘은 시각, 더 이상 아무것도 기다릴 것 없다고 생각될 즈음, 층계를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리고 그 여자는 아, 이제 그가 돌아오는구나 생각하곤 했다. 그 여자의 집을 거쳐 올라가게 되는 5층의 마주보는 두 집 중 한 집은 비어 있기 때문이었다. 발바닥 전체를 층계 바닥에 대었다 떼는 무겁고 피로한 발소리는 그 여자의 집 분 앞에 이르러 한 숨 돌리듯 잠깐 멎는 성싶다가 올라가곤 했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홈통을 타고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왔다. 한밤중 느닷없이 들려오는 슈만이나 브르흐의 곡들은 마치 깜깜한 창문들 중의 하나에 반짝 불이 켜지는, 어쩌면 전혀 모르는 사람의 생이 외롭고 순결하게 다가오는 느낌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길에 이어지는 법이 없었다. 그가 어느날엔가의 화려한 무대와 갈채를 꿈꾸며 익혔을 곡들은 대개 첫 악장의 몇 소절만 되풀이 연주되다가 그러한 자신의 바램, 환상을 비웃듯 갑자기 그치곤 했다.
갑자기 사납게 물 쏟아 붓는 소리와 함께 벼락 치는 듯한 물줄기가 홈통으로 쏟아져 내리는 바람에 그 여자는 자신도 모르게 홈통에서 귀를 떼며 한 걸음 물러섰다. 바이올린 소리가 뚝 끊기고 늦은 저녁을 차리는 귀찮은 일에 짜증기를 숨기지 않은 요란한 그릇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다투고 있는 모양이었다. 다툰다지만 그 여자의 귀에는 간혹 들리는 그의 것인 듯한 낮은 웅얼거림을 누르는 여자의 목소리만 들려왔다. 귀를 더욱 바짝 홈통에 붙이고 숨을 죽이는 그 여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웅얼거리는 남자의 대꾸는 좀체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에 비해 여자의 말은 알아듣기 쉬웠다. 그러나 그것 역시 못 살아, 미치겠어. 아아, 따위, 히스테리컬한 외침이 대부분이어서 그 여자는 무엇이 그들 부부의 싸움의 빌미와 내용이 되는지 알 수 없었다. 아아, 졸려서 미치겠어요. 하고한 날 이렇게 밤늦도록 기다리는 것도 못 견딜 노릇이에요. 어쩔 작정이에요. 말 좀 해 봐요. 아아 나는 불안해요. 나는 종종 내가 껍질만 남은 벌레 같은 생각이 들어요.
홈통의 벽에서 웅웅대고 뭉개지고 지워지는, 종내는 탄식으로 덮어지는 말들을, 짐작으로 이어 맞추며 그 여자는 보이지 않는 그의 어깨를 안타깝게 잡아 흔들 듯 중얼 거렸다.
그들 부부는 자주 다퉜다. 밤늦은 시간의 바이올린 소리, 다투는 소리뿐 아이가 없는 탓인지 그의 집은 늘 조용했다. 늦은 오후, 갓 잠깬 듯 권태롭고 부스스한 얼굴로 베란다에 서서 밖을 내다보는 그의 오동통하고 애젊은 아내를 보는 일만 없다면 필시 빈 집이라 여기기 십상이었다. 밤일 하러 나간대요. 시내에 바이올린 술집이 있다더군요. 아파트의 같은 동에 사는 아낙네들은 그의 집을 가리키며 수군거렸다. 잃어버린 꿈과 욕망 때문에 누군가를 안타깝게 부르는 손짓으로 한밤중, 주저하며 두려워하며 수줍게 활을 긋는다는 것은 그 여자의 지나친 감상인지도 몰랐다. 그것은 하루 일을 끝낸 악기의 조율, 가볍게 손을 풀기 위한 의미 없는 동작일 수도 있을 것이다.
늦은 오후, 그 여자는 가끔 층계참이나 아파트 출입문에서 그와 부딪쳤다. 그때는 그 여자가 간식을 먹이기 위해 아이들을 불러들이는 시각이기도 했다.
그의 귀밑머리가 희끗희끗 세기 시작하는 중년을 넘긴 사내였다. 그는 때로 불투명한 막을 통해 보듯 그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했으나 대개는 바이올린 케이스의 무게로 한쪽 어깨를 비스듬히 늘어뜨린 채 버릇인 양 우울하게 이마를 찡그리고 지나쳐 갔다.
남편과 함께 결혼기념일을 자축한다고 간 술집에서 그를 보았어요. 나이든 악사는 처량하더군요. 그 편에서야 우리를 알 리 없지만 인사삼아 세곡이나 청해 들었어요. 반상회에서 만난 한 아낙네는 구석자리에 홀로 앉아 있는 악사의 젊은 아내를 흘끗거리며 낮게 소곤거렸다.
위층에서는 이제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이따금 아파트 광장을 질주하는 찻소리만 들려 왔다. 그들의 다툼은 화해로운 결론을 얻은 것일까. 아니면 그 여자가 남편과의 다툼 뒤에 으레 그러하듯 다친 다음,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슬픔과 욕망으로 무마시키며 깊이 포옹하고 잠이 들까.
그 여자는 풀 길 없는 어려운 수수께끼를 생각하듯 어두운 마루를 뚜벅뚜벅 걸어 다녔다. 갓 바른 도배지의 마르지 않은 풀냄새가 눅눅하게 맡아졌다. 방문 안쪽에서 아이들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새벽 2시가 채 못 된 시각이었다. 남편은 아직 어두운 하늘에 떠 있을 것이다. 아침나절의 외출과 오후의 긴 산책으로 피곤했지만 그 여자는 잠들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차라리 남편의 물건들이 유품처럼 보존되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방의 청소를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 듯했다. 전갈을 발견한 후, 그 여자는 남편의 방 청소를 벼르기만 할 뿐 엄두를 내지 못했다.
1년은 긴 시간이 아니오, 지난해와 또 그 지난 해, 살아온 시간을 생각해 보오. 세월이 얼마나 빠른지. 임지로 떠날 때 남편은 말했었다. 그 여자가 아이에게 말한 대로,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그가 그 곳의 새로운 생활과 일, 사귄 사람들과 풍속에 대해 간간 써 보내듯 그 여자도 아이들의 자라남에 대해, 그가 없는 가정의 쓸쓸함에 대해 편지를 써 보냈다. 그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승진을 보장받는다는 명분이긴 했지만 모두가 내켜 하지 않는 아프리카 오지의 지사 근무를 그는 거의 자원한 것이라고 그 여자는 믿고 있었다.
그 무렵 똑같이 마흔 살 동갑나기인 그들 부부는 일종의 권태로움에 빠져 있었다. 단순히 결혼 생활에 대한 것이라고 말해 버리기에는 복잡한, 무언가 지쳐가고 있다는 분명치 않은 무력감이었다. 마흔 살이란, 자기의 시절이 지나고 있다는 초조감과 함께 인생이 그에게 새로운 계기와 자극을 요구하는 나이였지만 또한 무엇을 새로이 시작하기에는 늦은 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마추어 엽사인 그는 아프리카의 신생국에 냉장고, 세탁기 따위를 팔러 가면서 말라리아와 독충의 위협보다 분명 더럽혀지지 않은 초지와 밀림, 야생의 동물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 여자 역시 살아온 세월의 부피와 경륜이, 시간이 아이들을 자라게 하고 젊은이를 늙게 하듯이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교훈을 그 여자에게 가르쳤으나 그것은 구원도 위안도 되지 못했다. 남편과 떨어져 있게 될 1년간의 시간은 아마 그 여자의 전 생애와 맞먹을 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독이 만성적인 권태와 무위한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리라는 기대와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던가. 원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을까.
남편이 떠난 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하루가 시작되었고 그것이 쌓여 한 달 두 달이 흘러갔다. 그 여자는 한 달에 한 번씩 남편의 봉급을 지급받기 위해 정해진 은행의 창구를 찾아갔고 또 가끔 아이들을 데리고 영화구경을 가거나 갈나무 숲으로 산책을 나갔다. 뚜렷하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때때로 자정너머, 새벽 2시, 3시쯤에도, 술 취한 사람이 함부로 운전하는 자동차와 경비원의 플래시 불빛을 피하여 펄럭이며 아파트의 빈 광장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마음의 외로움이나 불안은 조금씩 스러졌다.
세상을, 자신의 삶을 조금치의 환상도 없이, 칼을 갈듯이 다스려갈 수가 있는 것일까.
제발 그러지 마라. 잠시 조용하던 위층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리에 그 여자는 걸음을 멈추었다. 홈통을 타고 들려오는 것은 남자의 고함소리였다. 그의 아내가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아아, 시끄러워. 그 여자는 마루 가운데 선 채 별반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소리 내어 말했다. 그러고는 자신의 말의 반응을 기다리듯 잠시 쉬었다가 조금 큰 소리로 되풀이 말했다. 아아, 시끄러워 미치겠어.
여전히 여자는 큰 소리로 울고 있었지만 위층의 현관문 여닫기는 소리가 거칠게 들리고 이어 층계를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 여자는 부엌의 전등 스위치를 올렸다. 어둠 속에서 마음 놓고 돌아다니던 바퀴벌레들이 재빠르게 싱크대 밑으로 달아나 숨었다. 소리 없이 흩어져 순식간에 사라진 탓이 그것은 환영처럼 느껴졌다. 그 여자는 잠시 우두커니 서 있다가 생각난 듯 물을 한 컵 따라 마셨다. 부엌과 마루 사이의 튀어나온 흰 벽에는 아이들의 키 높이가 연필로 표시되어 있었다. 남편이 없는 1년 사이 아이들은 각각 10센티가 넘게 자랐다. 그 여자는 손톱으로 문질러 그 연필 자국에 깊게 흠을 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여자의 마음속에 새겨진 흠일 뿐이었다. 아이들은 더 이상 그 자리에서 머물지 않기 때문이었다. 문 하나 건너 자고 있는 아이들이 비현실적인 존재로 아득히 떠올랐다. 물 컵을 든 채 멍하니 서 있는 자신에게 대해 그러하듯.
그 여자는 부엌 전등을 끄고 다시 마루로 나왔다. 층계를 올라오는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헛된 기대로 커튼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을 때 뿌옇게 퍼져 보이는 수은등의 불빛으로는 그의 모습을 찾아낼 수 없었다. 벽시계가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남편이 그 여자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오는 시간이었다. 밝아오는 아침을 향해 어두운 천공을 날고 있으리라.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야 한다. 오랜만에 만나는 남편에게 수면 부족으로 인해 한결 늙고 꺼칠한 얼굴을 보일 수는 없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여자는 달리 할 일을 찾아내지 못한 혹은 우리에 갇힌 짐승처럼 좁은 마루 위를 뚜벅뚜벅 걸어 다녔다. 어느 결에 위층 여자의 울음소리는 그쳐 있었다.
내일 이맘때면 자신은 적도의 햇빛과 뜨거운 바람으로 한결 탄탄하고 거칠어진 남편의 팔에 안겨 깊이 잠들어 있으리라. 그리고 짧은 대화와 긴 침묵, 다시금 평온한 나날들이 계속되리라. 그 여자가 아이에게 말했듯 모든 것이 잘될 것이다. 그 여자의 서성이는 걸음이 한층 빨라졌다.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돌아다니는 전갈의 자취를 찾으려는 듯이.
견딜 수 없는 어지럼증으로 긴 의자에 드러누워 어렴풋이 잠이 들었을 때 그 여자는 4시를 치는 벽시계 소리와 함께 층계를 올라오는 소리, 위층의 벨을 누르는 소리를 들었고, 이제 그가 돌아오는구나, 꿈결처럼 중얼거렸다. 꿈속에서 그 여자는 무언가 안타깝게 기어오르려는 몸짓, 비비적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이 무엇인가 알아보기 위해 일어나야 한다고 긴 의자의 팔걸이를 움켜잡았으나 곧이어 커튼이 열린 유리문의 옅은 새벽빛 속에 펄럭이며 검게 떨어져 내리는 무엇인가가 거역할 수 없는 힘으로 그 여자의 감은 눈시울을 눌렀다.
새벽에 그 여자는 심심찮은 웅성거림과 가슴을 지르는 곡성에 밖으로 나왔다. 그 여자의 집 마로 밑의 화단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사람이 떨어져 죽었어요. 바이올리니스트예요. 사람들은 웅성거리기만 할 뿐 신 새벽에 맞게 된 흉하고 상서롭지 못한 일에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줄기가 부러진 2년 생 단풍나무 곁에 엎드려 있었다. 젖혀진 검은 양복 자락으로 흰 와이셔츠가 보였다. 드러난 한쪽 뺨에 흙이 묻어 있고 머리에서부터 흐른 피가 이마 위에서 가늘게 굳어 있었다. 어떻게 좀 해 줘요. 아아, 어쩌면 좋아. 그의 아내가 남편의 구둣발을 부여안고 울부짖었다. 병원에 전화를 했어요. 곧 앰블런스가 올 겁니다. 사모님, 그때까지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경비원이 그 여자의 어개를 안고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아내가 울음 끝에 띄엄띄엄 하는 소리로 보아 그는 비상 사다리로 옥상에 올라가 다시 5층 그의 집 베란다로 기어 내리려 했던 것이 분명했다. 선생님께서는 술에 취해 계셨던가부죠? 아니에요. 그이는 술을 마시지 않아요. 우린 싸우고 그이는 오밤중에 집을 나가 버렸어요. 그이는 줄곧 머지않아 일터에서 해고 되리라는 불안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어요. 그런 데에서 일하기에는 나이가 많고 이때까지 번번이 그런 이유로 밀려났거든요. 나는 잠이 들면 누가 와서 떠메어가도 몰라요. 그이가 다시 집에 돌아와 벨을 누르다가 기척이 없으니까 베란다로 들어올 생각을 한 것 같아요. 그의 아내는 어린애처럼 몸부림을 치며 울었다.
곧 앰블런스가 다급한 소리로 달려오고 그와 그의 아내를 실어갔다. 경비원은 화단에 흐른 핏자국에 흙을 덮고 부러진 단풍나무 줄기를 울타리 너머로 멀리 내던졌다.
집으로 들어온 그 여자는 밥을 안친 뒤 청소를 시작했다. 아이들은 아직 아침잠에서 깨어나지 않았지만 서둘러야 했다. 시간이 없다, 라고 말했지만 그것이 남편이 올 때까지의 시간을 뜻하는 것인지 자신에게 허락된 한정된 시간을 뜻하는 것인지는 그 여자 자신도 기실 잘 알지 못했다.
남편의 방에 들어가 들어낼 수 있는 물건들을 대강 마루로 옮겨 놓고 방안의 먼지를 털었다. 그리고 빗자루를 넣어 책장 밑을 깊숙이 훑어냈을 때 그 여자는 먼지와 머리칼 따위를 풀솜처럼 뒤집어쓰고 숨어 있는 벌레를 보았다.
빗자루 끝에 딸려 나온, 그것은 엷은 갈색의 이미 오래 전에 말라 죽은 전갈이었다.(남편의 출장으로 나타난 전갈(불안, 두려움, 공포)이 남편이 돌아오자 사라짐)
수샘♥국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