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산(馬耳山) 산행기
4월 서울건축사 등산동호회 마이산 산행에 참가하기 위해 교대역으로 나갔다. 6시 35분에 도착해 차에 오르니 서너 분이 먼저 와 있었다. 정시보다 조금 일찍 출발해 내려가다 보니 차가 많이 막혀 예정 시간보다 도착이 늦어질 것 같았다. 중간에 들른 정안휴게소에는 차량이 가득해 보였다. 날씨가 맑은 봄날이라 나들이 차량이 많았다.
휴게소에서 다시 출발해 가다보니 10시 50분 차창 밖으로 마이산이 보였다. 이름대로 말의 귀가 쫑긋 솟은 모습이 신기해 보여서 일행들이 환호하며 사진을 찍었다.
11시 7분 남부 주차장 가까이 당도했다. 많은 차량이 안쪽으로 들어서려고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도보로 이동하기로 하고 개울을 건너기전 다리앞 공터에 내려 준비를 했다.
잠시 후 산행을 시작했다. 금당사 일주문 안으로 들어서기까지 긴 벚꽃길이 이어졌다. 만개한 꽃잎이 바람에 날렸다. 모두가 봄기운을 만끽하듯 즐거운 표정이었다. 탑사 방향으로 진입하다 고금당 가는 좌측 방향으로 들어섰다. 조금 오르다 보니 오름길에 석상이 보였다. 가파른 산길을 이리저리 에둘러 올라갔다. 벌써 기온이 많이 오르고 있었다.
11시 47분 고금당에 도착했다. 이곳은 나옹(懶翁, 1320~76) 선사 오도처(悟道處)로 알려져 있다. 그가 쓴 다음과 같은 유명한 시가 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노여움도 내려놓고 아쉬움도 내려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고금당은 건물이 금색 칠이 되어 멀리서도 금방 눈에 띠었다. 물건을 실어 나르는 레일로드 끝에 운반차가 서 있었다. 부도와 탑이 있는 지점에 올라가 돌아보니 산세가 넓게 조망되었다. 거기서 지나갈 방향을 바라보니 높게 솟은 봉우리에 세워진 정자가 보였다. 아까 진입할 때 차창 밖으로 보였던 비룡대였다.
길을 뒤돌아서 내려가다 아까 올라오던 길의 갈림길에서 직진해 비룡대를 향해 올라갔다. 봉우리가 가팔라서 높다란 계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오르며 바닥을 보니 이 곳 특유의 지질구조가 드러나 보였다. 마치 콘크리트처럼 진흙과 자갈과 모래가 혼합되어 굳어진 모습이다. 그리고 군데군데 큰 돌이 빠져나가서 작은 분화구처럼 구멍이 패인곳도 있었다.
12시 7분 비룡대에 도착했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다 쉬고 싶은 기분에 머무를 수 있는 곳이어서 많은 사람이 머물러 쉬어가고 있었다. 더욱이 산 능성이 위로 마이산이 솟아 보이는 풍광이 좋아보였다. 정자 바닥에 자리를 잡고 일행끼리 식사를 하는 분들도 많았다. 정자 바닥 모퉁이에 자리를 잡고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다 보니 일행 몇 분이 식사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잠시 후 일행이 떠날 차비를 해서 서둘러 마무리하고 함께 나섰다.
비룡대에서 탑사 쪽으로 가는 하산 길도 길이 가팔랐다. 암마이봉 좌우로 능선이 이어보였다. 몇 번 오르내리는 길을 지나 1시 28분 안부의 성황당에 도착했다. 성황당 고개로도 불리는 곳이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깊은 산을 지날 때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게 해달라고 빌던 이런 곳이 곳곳에 있었다.
거기서 우측으로 올라 봉두봉을 지나 다시 내림길로 내려섰다. 안부에 암마이봉 등산로가 보였다. 거기서 봉우리를 바로 오르지 않고 우측 탑사쪽 이정표를 따라 갔다. 신록이 번지는 나뭇가지 사이로 암마이봉이 높게 치솟아보였다.
1시 50분 탑사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표를 사고 안쪽으로 들어서다 보니 탑사와 탑, 그리고 암마이봉 숫마이봉이 한데 어우러진 풍광이 펼쳐 보였다. 1979년 10월 이 일대가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봄철 꽃 풍경과 어우러져서 더 환상적인 모습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즐거운 표정이었다. 입구 주변은 먹거리를 파는 식당과 리어카들이 즐비해 장터 분위기였다.
입구쪽 암마이봉 아래에 여기의 탑을 세운 이갑용처사상이 조각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 낮은 탑들이 도열하듯 서있었다. 이갑용(李甲用1860~1957)은 효령대군의 16대손이다. 25세에 마이산에 입산하였는데 임오군란이 일어나고 전봉준이 처형되는 등 시대적으로 뒤숭숭했고 어두운 세속을 한탄하며 백성을 구하겠다는 구국일념으로 기도로 돌탑을 쌓기 시작했다고 한다.
암마이봉 하부 쪽은 깊게 패인 곳이 많아보였다. 이 산의 지질은 모래와 진흙으로 이루어진 퇴적층에 자갈이 곳곳에 박혀있는 역암인데 오랜 시간 풍화작용과 침식을 겪으며 자갈이 빠져서 떨어져 자갈이 있던 곳만 움푹 패였다. 봉우리 밑에 돌탑이 세워진 것도 마이산의 풍화로 자갈들이 많이 떨어져 있게 된 것과 관련이 있다고 추측되고 있다.
중생대에는 경상도, 전라도 지역 전체가 담수호였는데 7천만 년 전에 지각변동이 일어났고 호수 밑바닥 퇴적층이 굳어져 생성되어 있던 암괴가 이 습곡작용으로 솟아올라서 산이 되었다고 한다. 그 증거로 민물고기의 화석이 발굴되었다. 그리고 퇴적층의 특성으로 인해 지형학에서 말하는 타포니(Tafoni) 지형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역암 지질에 나타나는 타포니는 암석의 표면이 오랜 시간 물과 바람 등에 얼고 녹기를 반복하면서 바위표면을 밀어내면서 만들어진다고 하는데, 암마이봉은 세계에서 타포니 지형이 가장 발달된 곳이라고 한다.
탑사 쪽으로 올라가며 길옆에 놓인 탑들을 돌아보았다. 탑사(塔舍,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제35호)는 마이산의 남쪽 사면에 있는 사찰로서 이갑룡처사가 쌓은 80여 개의 돌탑이 있어서 탑사라 불린다. 입구 쪽의 월광탑, 일광탑, 중앙탑, 그리고 대웅전 뒤의 오방탑, 천지탑을 비롯해 약사탑, 월궁탑, 용궁탑, 신장탑 등이 있는데 규모가 큰 탑들은 모두 이름이 붙여져 있다. 탑마다 각각 나름의 의미와 역할을 지닌다고 한다. 주위에서 모은 자연석으로 원뿔 모양을 만들고 그 위에 외줄 탑을 올린 탑들의 높이는 낮은 것은 1m에서 높은 건 13.5m에 이른다.
대웅전 뒤쪽에 위치한 산신각 안에는 여기 탑을 쌓은 이갑용 처사의 상이 산신보다 더 크게 되어 있었다. 세월이 흐르며 마이산 탑과 그것을 쌓은 인물에 대해 신성성이 부여되며 신비스럽게 전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맨 위에 있는 천지탑은 하나의 기단위에 두 개의 탑이 솟아 있는 모습인데 전체 탑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컸다. 그 앞 표지에 3년에 걸쳐 하루 한 개씩 쌓고 꼭대기 돌은 100일 기도후 쌓았다고 적혀 있었다. 위쪽을 바라보니 탑 위로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이 치솟아 보였다.
탑사에서 입구쪽으로 내려서다 좌측 오르막길에 들어 2시 29분 은수사에 도착했다. 그 곳은 숫마이봉 기슭의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있으며 조선 태조가 임실군의 성수산에서 백일기도를 드리고 돌아오다가 들른 곳이라고 한다. 그 뒤쪽의 324계단을 올랐다. 2시 37분 능선 지점에서 좌측 등산로로 가다보니 아까 용두봉에서 내려올 때 보이던 장소가 나왔다. 거기서 암마이봉을 올라갔다.
정상부까지 오르는 길이 가팔랐다. 아까 전망대에서 내가 그리는 모습을 보았던 아가씨들이 나를 알아보고 불러 뒤돌아보았다. 나에게 이제 올라가느냐고 물어보아서 한바퀴 돌아왔다고 했다. 인사를 하고 앞서 빠른 걸음으로 올라갔다. 오르다보니 오르는 길과 내려오는 계단길이 갈라져 있었다. 오르는 길 계단은 448개나 되었다.
2시 55분 암마이봉(687.4) 정상에 도착했다. 많은 사람들이 기념 사진을 찍으려고 정상석 앞에서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나는 일행과 합류할 시간이 촉박해 정상석만 보이도록 사진을 찍고 뒤쪽 전망대로 갔다. 거기서 탑사로 들어서는 절벽 아래 산세가 펼쳐보였다. 사방이 급경사로 이루어졌으며 남쪽과 북쪽 사면에서는 섬진강과 금강의 지류가 각각 발원한다.
두 개의 봉우리가 어우러진 마이산은 동봉을 숫마이봉(681.1m), 서봉을 암마이봉(687.4m)이라고 부른다. 신라시대에는 서다산, 고려시대에는 용출산이라고도 했으며, 조선시대부터는 산의 모양이 말의 귀와 같다 하여 마이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봄에는 쌍돗배 같다하여 ‘돗대봉’, 여름에는 용의 뿔처럼 보인다하여 ‘용각봉’. 가을에는 말의 귀처럼 보인다하여 ‘마이봉’, 겨울에는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인다하여 ‘문필봉’으로 불린다 한다.
내려오다 전망대에서 숫마아봉을 보며 그렸다. 거기서 보니 마치 뽀족한 붓처럼 솟아 보였다. 아주 먼 옛날 아이 갖기를 간절히 원한 부부가 기도를 올리고 득남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화엄굴도 보였다. 서둘러 스케치를 마치고 빠른 걸음으로 내려섰다.
3시 23분 다시 암마이봉 입구 안부로 내려가 북부주차장쪽으로 내려섰다. 벌써 신록이 그늘을 이루고 있었다. 하산길 거리가 제법 멀었다. 북부주차장 가까지 도착해 식당을 물으니 지나쳐 있었다. 뒤돌아 백제식당을 찾아가니 안에서 일행이 손을 흔들며 들어오라고 했다.
셔츠에 땀이 흠뻑 젖어 있었다. 자리에 앉아 갈증을 달래려고 먼저 맥주를 한잔 시원하게 들이겼다. 된장찌개, 두루치기, 더덕구이, 파전 등 상차림이 푸짐해보였다. 사무총장이 5시에 출발한다며 즐겁게 식사를 들라고 했다. 1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조금 일찍 출발하자는 예기가 나왔다. 4시 40분경 식당을 나와 주차장으로 가다 뒤돌아보니 다시 마이산이 솟아보여서 크로키 하듯 다시 그림을 그렸다.
진안은 진안고원으로 불리는 내륙의 고산지대이다. 마이산은 진안 고원지대의 언저리에 위치하는데 특이한 지질구조를 보인다. 작년에 전국건축사 등산동호회 장소였던 구봉산도 진안고원에 속한다. 마이산 산세는 겹겹한 산세에 둘러쳐진 입지를 갖추고 있다. 그리고 산 언저리에 탑이 세워져 있어서 마치 기문둔갑술을 펼친 장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생동하는 봄기운과 함께 특별한 풍광을 대하게 되었다. 오후 5시 서울로 출발해 죽암휴게소를 들러 오후 8시 30분 양재역에 도착했다.
(20240413)
첫댓글 따뜻한 봄에 잘 다녀 오셨네요~~
아주 좋은 시기에 잘 다녀왔습니다.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