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보레 콜벳

[연료와윤활]

콜벳은 광활한 미국의 도로에 맞춰 특화된 머슬카다. 운전감각은 정교함보다는 와일드한 편으로 운전자의 응석 따위를 받아주지 않는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무지막지한 머슬카의 한편에서는 차분하고 여유로운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 글 김태영 기자 사진 최진호

레이싱 글러브를 끼고 꽁무니를 흔들며 거침없이 달리다보면 영화 속 스트리트 레이서가 된 기분이다

LS3 엔진의 배기량은 무려 6,162cc. 실린더 내부 공간이 1L 생수병 6개와 맞먹는 크기다

저 멀리 노란색 스포츠카가 보인다. 아직 타 보기 전이지만 앞으로 심장박동이 높아지고 타이어 연기가 사방을 채울 것이며 엔진은 끊임없이 그르렁거릴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엄청나게 많은 연료를 소비할 것도 각오해야 한다. 무작정 달리다 보면 연료가 바닥나서 길 위에 서게 될지도 모르기에 코스 선택에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 아메리칸 스포츠카의 상징 쉐보레 콜벳과 조우하던 날, 애석하게도 비가 쏟아졌다. 야생마처럼 힘 좋고 터프한 차를 몰 때 하필 비라니,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다. 이 차의 성격상 자칫 잘못하면 가드레일을 처박으면서 시승이 끝날 수도 있으니까.

한국에서 아메리칸 머슬을 느끼다
쉐보레 콜벳은 미국을 대표하는 스포츠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3년 1세대부터 최신형인 6세대까지 60년 가까이 발전한 모델이다. 콜벳은 ‘고성능 스포츠카’ 혹은 ‘수퍼카’라기보다는 ‘아메리카 머슬’이란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 머슬카(Muscle car)란 대배기량, 고출력을 뿜는 자동차로 미국의 자동차 황금기인 1960∼70년대에 번성한 차다. 당시 미국의 자동차는 정교한 기술력보다 대배기량 엔진을 이용해 힘 좋고 빠른 차를 만드는 것이 유행이었다(상대적으로 저렴한 휘발유 값이 일조했다). 당연히 차들의 출력이 나날이 높아졌고 남들보다 빠른 달리기 성능을 증명하기 위해 드래그레이스(Quarter mile)도 자연스레 발전하게 됐다.

콜벳은 미국 시장에 맞춰 특화된 머슬카다. 길이×너비×높이가 4,435×1,245×1,845mm로 제원으로는 그리 커 보이지 않지만 실제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만나면 강인하고 큰 차체에 압도당한다. 꼭 머슬카라서 차체가 큰 것은 아니지만 대배기량 엔진을 뒷받침해줄 드라이브트레인을 사용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외모가 와일드하게 진화했다. 앞은 낮고 뒤는 높은 전형적인 스포츠카 레이아웃에 근육이 우락부락 붙은 듯 볼륨 있는 보디를 올렸다. 보디 색상과 동일하게 칠한 헤드라이트, 마치 버터를 칼로 자른 듯 직각으로 선 거대한 뒤 범퍼가 콜벳의 개성을 더한다. 도어레버는 공기저항을 고려해 버튼 타입으로 도어 안쪽에 숨겼다. 큼지막한 생김새와 달리 도어가 열리는 느낌은 보통의 승용차처럼 가볍다.
실내 디자인은 단순하고 기능적인데, 기본에 충실하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기교 없이 T자로 구성된 대시보드에는 계기판, 스티어링, 기어레버가 딱 알맞은 곳에 자리잡았다. 계기판은 커다란 타코미터와 속도계를 중심으로 좌우에 냉각수와 오일 온도 및 압력 게이지를 마련했다. 숫자가 빼곡이 들어찬 속도계 끝에는 300km/h가 선명히 찍혀 있다.
최신 자동차에 올라가는 통합형 컨트롤러 따위는 있을 리 없지만 헤드업 디스플레이(HUD) 조작 스위치와 각종 정보를 제어하기 위한 버튼들이 계기판 좌우에 가지런히 배치돼 있다. 스포츠 시트는 몸을 잘 잡아주도록 가운데를 스웨이드로 처리했다. 시트는 의외로 소파처럼 넓지 않고 동양인의 체형에 잘 맞는다.
평범한 운전석과 달리 실내에서 이어지는 넓은 트렁크는 인상적이다. 웅크리면 사람 2~3명쯤 탈 수 있는 공간인데 운전석과 트렁크의 구분 없이 원룸으로 이어진다. 스포츠카에 수납공간이 부족하다는 말에서 콜벳은 제외다. 트렁크 좌우에 고정식 후크가 있는 것은 탈착식 루프를 수납하기 위함이다. 이 차는 쿠페이지만(컨버터블은 소프트톱 장착) A필러와 B 필러 사이에 루프 패널을 수동으로 탈착할 수 있어 오픈 에어링도 맛 볼 수 있다. 루프는 총 세 군데의 레버를 돌리고 위로 당기면 빠지는 구조다. 단순한 형태라 혼자서도 어렵지 않게 탈부착할 수 있다.

가속 페달이 차의 성격을 바꿔놓는다
콜벳을 타고 도심 지역을 빠져나오는데, 운전감각이 상상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엔진이 잡아먹을 듯 으르렁대고 운전자와 씨름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흔하디흔한 스포츠 세단처럼 안락하다. 아이들 때 엔진은 부드럽게 돌아가고, 긴 기어비 덕분에 웬만큼 속도가 붙어도 회전수는 1,000~1,500rpm에 불과하다. 당연히 엔진음과 배기음이 우렁차게 들릴 리 없다.
놀라운 것은 시야까지 좋다는 점. 차체가 낮고 운전석 포지션도 낮은데 전후좌우를 감싼 유리의 면적이 넓고 SUV에 어울릴 법한 커다란 사이드미러까지 달아 좌우 교통상황이 한눈에 들어온다. 룸미러로 보이는 후방 시야는 일반 승용차보다 나을 정도.
서스펜션은 두 가지 모드를 제공한다. 기어레버 아래에 달린 마그네틱 셀렉티브 라이드 컨트롤로 댐퍼의 압력을 바꿔 승차감을 높인 투어(Tour)와 스포츠 성능을 강화한 스포트(Sport) 모드를 오갈 수 있다. 레버를 돌리면 즉각적으로 댐퍼의 압력이 바뀌어 투어 모드에서는 노면의 잔 진동이 대폭 줄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콜벳은 졸음이 올 정도로 안락하다. 그러나 가속 페달에 힘을 주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엔진회전수가 4,000rpm을 넘어서자 “우르르 콰광~!” 하는 천둥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강한 토크가 뒷바퀴로 전달되며 차가 게걸음을 치기 시작한다.
콜벳은 세 종류의 엔진이 얹힌다. 기본형은 6.2L 430마력이고 7.0L 505마력의 Z06, 그 위로 수퍼클래스인 ZR1이 6.2L LS9(수퍼차저) 638마력의 힘을 낸다. 한국에 들어온 콜벳은 6.2L 자연흡기(LS3) 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를 단 기본형. 그러나 기본형도 최고출력 430마력/5,900rpm, 최대토크 58.7kg·m/4,600rpm를 발휘해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가속 페달을 꾹 밟으면 속도계는 의미 없는 바늘마냥 오른쪽으로 그냥 돌아간다. 가속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시속 250km에 도달하는데 이 상태에서도 아직 여분의 파워가 느껴진다. 시속 150km 이상에서야 콜벳은 비로소 물 만난 고기 같다. 넓은 차폭과 긴 휠베이스가 고속주행에 탁월하게 작용하며 특유의 안정감이 느껴진다.

정교하게 움직이는 맛은 부족
이 머슬카는 드레그레이스를 벌이거나 최고속도를 향해 달릴 때 매력이 뿜어져 나온다. 물론 드리프트도 쉽다. 이렇게 쉽게 오버스티어를 유지하는 차도 많지 않다. ESP 버튼을 길게 누르면 트랙션 컨트롤과 콜벳 액티브 핸들링 모드가 모두 해제된다. 전자제어가 없는 상태에서는 직선보다 옆으로 움직이면서 조정하는 게 편할 정도. 파워가 넘치는 엔진과 LSD의 결합으로 힘들이지 않고 차를 미끄러트릴 수 있다. 심지어 4단에서도 어렵지 않게 파워슬라이드(엔진 힘으로 차를 미끄러트려 드리프트 하는 기술)가 된다.
반대로 이런 특성으로 정교하게 움직이는 재미는 부족하다. 4륜 독립형 알루미늄 서스펜션(더블 위시본)과 스포츠 댐퍼(마그네틱 셀렉티브 라이드 컨트롤)의 도움을 받았음에도 엔진출력을 섬세하게 조절하기 어렵다 보니 코너에서 계속해서 꽁무니가가 흐른다. 그렇다고 나쁘다는 건 아니다. 단지 직선 달리기와 서킷에 특화된 성능으로 좁고 급격한 와인딩 코스에 어울리지 않을 뿐이다.
다만 연비는 주행하는 환경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독자들의 판단으로 남긴다. 시승 당일 시속 90km로 정속주행을 할 때는 14~15km/L가 나왔고 도심에서는 4~5km/L로 떨어졌다. 공표한 공인연비 7.1km/L(복합연비)가 비교적 정확한 수치다. 나름대로 기름을 아껴가며 탔음에도 180km 주행 후 연료탱크(69L, 고급휘발유 기준 약 17만원)가 깨끗이 비었다.
콜벳의 재미는 확실히 대배기량 엔진에서 나온다. 이는 큰 재미이기도 하지만 단점이기도 하다. 마치 엔진에 맞춰 차가 만들어진 느낌이랄까. 대배기량 엔진과 함께 오버 파워가 가져오는 장점과 단점을 제대로 이해해야 콜벳의 진정한 오너가 될 수 있다.  


2012  Chevrolet  Corvette
보디형식, 승차정원 2도어, 2명
길이×너비×높이 4435×1845×1245mm
휠베이스 2685mm●트레드 앞/뒤 1577/1542mm
무게 1530kg●서스펜션 더블 위시본(SLA)
스티어링 랙 앤드 피니언(파워)
브레이크 V디스크●타이어 245/40R18, 285/35R19엔진형식 V8 ●밸브구성 DOHC 32밸브
배기량 6162cc●최고출력 430마력/5900rpm
최대토크 58.7kgㆍm/4600rpm
구동계 배치 앞 엔진 뒷바퀴굴림
변속기 형식 6단 자동변속기
연비, 에너지소비효율 7.1km/L(6.0, 9.2), 5등급
CO₂ 배출량 253g/km
기본/시승차 8,640만/8,940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