릭 플레어는 프로레슬링 데뷔를 준비 중이던 역도선수 켄 파테라와의 권유로 함께 번 가네를 찾아갑니다.
번 가네의 단체인 AWA에서 프로레슬링 경력을 시작한 릭 플레어는 데뷔 2년 만에 처음으로 일본에서 경기를 뜁니다.
릭 플레어가 처음으로 경기를 뛴 일본 단체는 당시 AWA와 업무 제휴를 맺은 국제 프로레슬링이라는 단체였습니다.
한 달 동안 일본에서 머무르며 처음으로 스틸 케이지 매치를 치렀고 처음으로 경기 도중 피 칠갑이 되기도 합니다.
한편 뚱뚱하고 덥수룩한 프로필 사진과는 달리 단정하고 날렵하게 생긴 외모에 그를 직접 본 사람들은 놀랐다고 합니다.
AWA를 떠나 NWA의 가맹 단체인 JCP에 합류한 릭 플레어는 비행기 사고에 휩쓸립니다.
26살의 젊은 나이에 척추가 심각하게 망가져서 다시는 경기를 뛸 수 없다는 진단을 받습니다.
하지만 '네이처 보이'라고 불린 버디 로저스의 움직임을 참조하며 새로운 경기 스타일로 다시 일어섭니다.
새 시대의 '네이처 보이'로서 인기를 얻던 릭 플레어는 AJPW 익사이트 시리즈에 출전하며 다시 일본에 방문합니다.
위상이 상승했기에 첫 방문 때보다 대우도 좋아졌으며 이때 점보 츠루타를 상대로 NWA UN 헤비급 챔피언십에 도전합니다.
미국으로 돌아간 릭 플레어는 더스티 로즈를 꺾고 NWA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오릅니다.
세계 챔피언이 된 릭 플레어는 전국에서 경기를 뛰며 일본과 캐나다 같은 외국에서도 방어전을 치릅니다.
이때 텐류 겐이치로, 테리 펑크, 리키 스팀보트, 브루저 브로디 등 다양한 선수를 상대로 방어전을 치릅니다.
기자들은 릭 플레어는 상대가 어떤 스타일을 지녔든, 기량이 출중하든 떨어지든 뛰어난 경기를 만들 수 있었다고 극찬합니다.
릭 플레어와 알고 지낸 텐류 겐이치로는 손이 크고 후배들에게 베풀 줄 아는 선수였다며 그를 보며 프로의 정신을 배웠다고 회고합니다.
텍사스에서 케빈 폰 에릭에게 타이틀을 뺏긴 릭 플레어였지만 일본에서 다시 챔피언에 오릅니다.
NWA 세계 헤비급 챔피언 릭 플레어는 전일본에 출전 중이던 AWA 세계 헤비급 챔피언 릭 마텔과 맞붙게 됩니다.
사상 최초로 두 단체의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 서로 타이틀을 걸고 맞붙었는데 결과는 더블 카운트아웃으로 끝납니다.
경기를 뛰러 하와이에 갔던 릭 플레어는 NJPW의 사장이자 IWGP 헤비급 챔피언 안토니오 이노키와 만나 사진을 찍습니다.
도쿄 스포츠 측이 이 사진을 가지고 릭 플레어가 NJPW에 서고 싶어한다는 기사를 썼다가 AJPW 사장 자이언트 바바에게 항의받기도 합니다.
테드 터너가 JCP를 인수하고 WCW를 출범하자 릭 플레어는 초대 WCW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오릅니다.
WCW가 AJPW가 아닌 NJPW와 업무 제휴를 맺으며 릭 플레어도 NJPW에 여러 차례 출전합니다.
여러 일본 선수와 맞붙었는데 그중 그레이트 무타와는 미국과 일본으로 오가며 대립을 이어 나갑니다.
그레이트 무타가 테리 펑크 같은 악역들과 힘을 합치자 릭 플레어도 앙숙이던 스팅과 힘을 합칩니다.
잠깐 WCW를 떠나 WWE에 활동하던 릭 플레어는 WWE와 업무 제휴를 맺은 일본 단체 SWS에 출전합니다.
WCW가 몰락한 뒤 WWE로 복귀한 릭 플레어의 자존심은 박살 날 대로 박살 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평소 그를 존경하던 트리플 H가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고 이렇게 에볼루션이 결성됩니다.
당시 신인이었던 랜디 오턴과 바티스타도 합류했는데 릭 플레어는 바티스타와 함께 세계 태그 팀 챔피언에 오릅니다.
WWE가 일본 투어를 개최할 때마다 릭 플레어도 출전했는데 일본에서도 잘 알려진 얼굴이었기에 극진히 대접받습니다.
한 번은 그레이트 무타를 연기했던 무토 케이지가 중계석에 앉아 있었는데 릭 플레어가 다가와 인사를 건네기도 합니다.
환갑을 앞둔 릭 플레어는 은퇴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빈스 맥맨은 은퇴를 강요합니다.
빈스 맥맨이 한 경기라도 지면 바로 은퇴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자 릭 플레어는 이를 받아들입니다.
릭 플레어는 위클리 쇼나 PPV는 물론 방영되지 않는 하우스 쇼에서도 선수 생활을 걸고 링에 오릅니다.
이 과정에서 일본 투어에 출전한 릭 플레어는 미스터 케네디와 윌리엄 리걸을 꺾고 선수 생활을 연장합니다.
하지만 레슬매니아 24에서 열린 숀 마이클스와의 경기에서 패배하게 되어 박수갈채를 받으며 링을 떠납니다.
쏟아지는 성원과 박수 속에 링을 떠난 릭 플레어였지만 은퇴를 원하지는 않았습니다.
재산까지 탕진한 탓에 은퇴를 번복하고는 다른 단체의 섭외를 받을 생각으로 WWE를 떠납니다.
막내아들 리드 플레어가 프로레슬러로 데뷔하자 릭 플레어는 아들과 함께 일본 원정을 떠납니다.
플레어 무타는 한 달 동안 일본에서 머무르며 당시 무토 케이지가 사장으로 있던 AJPW에 출전합니다.
플레어 부자가 일본 원정을 끝마치고 귀국한 지 2주도 지나지 않아 리드 플레어는 마약 중독으로 인해 세상을 떠납니다.
릭 플레어는 처음에는 몇 푼 벌겠다고 지구 반대편인 일본에서 경기를 뛰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일본에서 경기 뛰는 게 즐거워졌으며 기억나는 선수로 그레이트 무타를 손꼽습니다.
WWE 더 범프에 출연한 릭 플레어는 그레이트 무타가 올해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다고 발표합니다.
릭 플레어는 막내아들을 챙겨줬던 프로모터 무토 케이지를 향해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고 밝힙니다.
평소 릭 플레어에게 영향받았다고 말하던 무토 케이지는 릭 플레어의 발표에 자기야말로 감사할 따름이라는 반응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