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점심을 먹을 때 작년 졸업생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무언가 복수할 대상이라 생각되면 꼭 복수하고야 만다고. 그도 참 피곤하겠다. 앙심을 품고 있으면 마음이 지옥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미워 죽겠어도 슬슬 자기 마음을 달래주는 것이 좋다. 미워하는 사람 자신이 제일 힘들다. 상대도 죽는 허망하고 불쌍한 생명체임을 떠올리기. 그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 사람 입장에서 한 번만 생각해 보기. 그는 그 자신의 입장(상황, 상태, 수준)이 그러해서 그러할 수밖에 없다. A 입장(상황, 상태, 수준)이니 A가 출력되는 것이다. 이해해보려 하는 것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방책이다. 미워하는 것은 스스로를 공격하는 것임을 알기.
- 담임이 시행하는 제도가 마음에 안 들어서 뒤에서 험담하는 학생들도 있다고 들었다. 예전 같으면 마음이 힘들어서 난리 났을 텐데 조금 놀랐을 뿐 예전처럼 부대끼지 않는다. 아직 성숙하지 않은 상황(상태, 수준)에서는 성숙하지 않은 말과 행동이 출력될 수밖에 없음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급식 때 새치기 하는 수준이므로 새치기하는 것을 벌점으로 제재하는 것에 불만이 생기는 것이다. 벌점 받을 행동을 하지 않는 학생이라면 벌점을 주든 말든 신경도 안 쓸 텐데. 이상하다... 상식적인 건데 교육 내용이어야 하는 것이 이상하다...
수학 여행 관련 교육 자료에 포함된 내용들(예: 담 넘어다니지 않기, 기차에서 심하게 떠들지 않기 등)을 보고 이것도 교육해야 하나 싶었는데 교육해야 하는 걸까.
- 담임 제도가 아예 없어지거나, 담임 제도를 유지하더라도 그 역할 또는 업무 범위에 대한 제도적 변화 및 사회적 인식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한 반 학생이 30명 가까이 되는데 각각 출결 변동이든 각종 사고 등 다양한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차분하게 수업 준비에 전념할 환경이 못 된다. 나만 해도 매일 출결 변동이 여러 학생에게 발생하여 조퇴증 쓰고 출석부며 생기부 기록, 학생과 부모님 연락, 서류 제출 안내 및 추후 서류 챙겨서 받는 일까지 자잘하게 신경쓸 일이 많다(수업 연구용 책을 빌려 두고 표지 감상만 몇 달째다).
학생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일단 담임이 책임져야 하는 것처럼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도 이상하게 느껴진다. 왜 담임이 무한 책임을 져야 하지?
반을 운영하면서 이런저런 제도를 시행할 수도 있는데 그것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는 학생과 직간접적 갈등이 있을 때도 있다. 이것도 이상하다. 이렇게 기묘하게 가까운 것은 학생과 교사의 이상적 관계로 느껴지지 않는다. 학생과 교사는 그 명칭이 공통으로 포함하는 '학습'이라는 개념을 생각할 때 교과 수업을 통해 서로 다소간 거리를 두고 이성적으로 만나야 하는 관계다. 감정적으로 얽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현재 담임의 업무가 맡는 범위에 대한 사회적 인식하에서는 담임이 각종 자잘한 일들에 자꾸 깊이 관여할 것을 요구하는데, 이것이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런 감정적 관계는 아무리 생각해도 기묘하고 이상하다...
p.s.
한 담임 선생님께서 여러 아이 관련해서 본인 책임으로 처리할 일이 자꾸 첩첩 쌓이는데 어제는 너무 힘들어서 우셨고 심리 상담까지 받았다고 하신다. 옆 선생님에게서도 반의 학생이 심리적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비상식적인 말과 행동들로 너무나 힘들게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이상해, 이런 관계. 고통을 야기하는 개인의 문제도 있지만, 고통을 당하는 위치에 개인을 처하게 하는 구조에도 주목해 보아야 한다. 제도나 사회 인식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수업과 병행하여 반 학생들 각각의 일 모두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우는 현 담임 제도는 문제가 있다. 어떤 학생을 만나느냐에 따라 엄청나게 힘들어질 수 있다. 교사의 운에 맡겨버리는 것은 무책임하다. 생활 교육 전담 교사라든가 출결 담당 행정 직원을 따로 두는 등 제도 개선책 마련이 필요하다.
내 나이보다 학생들 나이에 가까운, 귀여운 어린 선생님들이 학교에 계신다. 그 분들이 내 나이가 됐을 때에는 훨씬 나은 근무 환경이기를, 행복하고 안전하다고 느끼며 근무할 수 있기를 바란다.
p.s.2.
그나마 우리 사회에는 아직 교사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존중해주는 분위기가 있는데, 그러한 교사가 힘들다고 한다면, 학교 밖 세계는 과연 어떠할까. 서로를 존중하는 사회인가? 누군가의 갑질이나 폭언 등 미성숙한 말과 행동으로 고통 받거나 개인을 돌보지 않는 구조에 놓여 고통 받는 개인이 어마어마하게 많을 것 같다. 왜 한국의 자살률이 높은가. 과연 개인의 심리가 나약해서만일까. 상대를 존중하는 성숙한 사회가 아직 되지 못했거나, 구조적 문제가 주목받지 못하여 내팽개쳐진 개인이 많다는 반증은 아닐까. 각 개인의 운에 맡기고 알아서 살라고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개선이 필요한 사회 문제가 무엇인지 살펴보려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이 사회의 구성원이고 그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으므로 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보호하려 할 때 자신도 안전해질 수 있다.
- 교무실에서 안전 관련 지도, 숙소, 이동편, 식사 등 여러 가지 항목 체크 관련으로 이야기가 오간다. 선생님들이 예민해지신 것이 느껴진다. 무슨 비상 사태 같다...
- 학생들이랑 이야기하다 보면 가끔 생각지도 못한 말과 행동에 빵 터진다(예를 들면 "**이가 자면서 자꾸 방귀를 뀌어서 그 뒷자리의 OO이가 괴로워하며 창문을 자주 열어요."라고 묻지도 않은 뉴스를 보고한다든가..). 하... 나는 그 순간에 이 직업이 너무 좋다. 그 천진난만함 어떡하니. 그걸 어디서 마주치겠니.
- 부모님께 문자 드릴 때 부모님의 소중한 삶인 오늘 하루도 좋기를 기원하면서 마무리한다. 그 때 1) '좋은 하루 되세요.'로 할지, 2) '좋은 하루 보내세요.'로 할지 생각해 보았다. 나의 선택은 2)다. 1)은 외부 요인에 대해 수동적인 느낌이 든다. 2)는 외부 요인이 어떻든 내가 좋은 하루를 만든다는 주체적 의지가 느껴진다. 누구나 자신이 해석하는 세계에 사는 것이므로 어떤 요인이 외부에서 발생하든 좋은 하루로 만드시기를 기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여 2)를 선택했다. 문자 하나 보낼 때까지 많은 생각... 단어도 중요하지만 조사나 어미 선택도 중요해. 아니 그냥 다 중요해... 헤헷. 말에는 힘이 있으므로.
-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어 보이는 것부터 즐겨보기(예를 들면 공부라든가). 그럼 거의 모든 것을 즐길 수 있게 되겠지.
- 수학 여행 안내지를 만들었다. 여러 담임 선생님이 공유해 주신 자료를 검토한 후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으로 편집했다. 안전하게 갔다가 안전하게 오는 것이 목표다.
p.s.
다른 선생님이 쓰신 내용 중 너무 웃겼던 몇 가지:
- 버스에서는 안전 벨트 맨 채 앉아 있기. 질문은 전화로 하기. 뚜벅뚜벅 걸어나오지 않기.
- **이와 OO이는 서로 있는지 확인하기.
- 불만 있으면 안 가면 된다고 안내했음.
- 뭐 되냐고 묻지 않기. 거의 안 됨.
- 뭐 안 하면 안 되냐고 묻지 않기. 다 해야 됨.
- 점호 시 제발 모두 멀쩡히 있기.
ㅋㅋ
- 면담을 하다 놀라버렸다. 아직도 같은 반 친구 이름을 모르는 학생이 있다. 지금 5월 말인데... 우와... 관심 좀...
- 최근 나에게 감동을 준 학생들 어머니께 학생들의 행동을 알리고 칭찬하고 격려해 주십사 문자를 드렸다. 소외되기 쉬운 학생들의 상황을 알려주어 큰 도움이 된 학생들, 급식 도우미 학생이 사정이 있어서 빠졌는데 도와준 학생들이 있다. 체험학습을 앞두고 본인이 맡은 역할을 대신해 줄 친구를 뽑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챙겨준 학생도 있다. 우와... ♡ 이런 학생들을 생각하면서 어머니께 문자를 드리는 마음이 참으로 기쁘다. 너무 예뻐서 눈물이 날 것 같다. 담임 일이 쉽지 않고 학급 운을 많이 타는데 나는 운이 참 좋은 것 같다. 누군가를 배려하고 존중해 주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뭉클하고 나까지 존중받은 느낌이 든다.
<조회>
- 수학 여행 가서 들르는 음식점에 미리 4인 1세트로 메뉴 주문을 한다고 낙곱새와 낙곱 중 어떤 것을 먹을 것인지, 혹시 새우 알레르기가 있거나 새우를 극히 싫어해서 못 먹는 학생이 있는지 조사하였다. 조회 끝나고 교무실로 돌아오면서 조회 중의 나를 돌아보니 웃겼다. 아오 또 열심히 해버렸다. 세상 중요해... 새우 못 먹는 학생이 있는지 낙곱 먹을 건지 낙곱새 먹을 건지가... 세상 열정적으로 조사함. 아니 그게 뭐라고...(가끔 이렇게 디테일하고 열정적으로 삶에 관여할 때 이게 뭐냐 싶으면서 웃긴다.) 교무실로 오는데 복도에서 아이들이 '낙곱새, 낙곱'이라고 말하는 것이 들렸다. 지금 그게 굉장히 중요한 사람 많음... ㅋㅋ
- 나는 너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그냥 아이의 맑은 얼굴이다. 누군가에게 사랑 받고 싶은 아이. 사람들마다 누군가를 해석하는 것은 다 다르고, 그 해석의 단순 총합이 그 사람인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의 모습이 고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냥 너를 너로서, 감정으로 인한 편견이나 판단을 빼고,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려 노력하겠다.
<13반>
- 독서 후 생각 나누기 시간에 13반에서는 흥미로운 질문이 잘 나오곤 한다. 오늘은 희수가 '청춘이 우리 삶에 가지는 의미는?'이라는 질문을 만들어 주었다. 나는 저 나이 때 그냥 시험 잘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나 하고 살았지 삶과 관련한 생각은 그다지 해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좋은 질문을 던져 줄 친구가 학급에 있다니 13반 학생들은 참 운이 좋다. 음미하면서 지금을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질문이다. 희수의 질문에 대해 '앞으로 살아가면서 힘든 일이 있을 때 자원이 될 만한 좋은 기억을 쌓는 시기'(태혁), '청춘은 인생의 일정 시기가 아니라 성장하고 배운다면 모든 시기'(예지), '무언가를 시도해 볼 수 있는 희망이 있는 시기'(희수)라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음미하며 듣게 되는 답변들이다. 무언가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을 불안함으로 받아들일지, 희망으로 받아들일지는 본인의 선택이다. 자신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석하면서 살아가기를. 삶이 끝날 때까지 스스로를 응원하면서 성장하고 배우기를. 너희의 삶을 응원해.
- 청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다음 주에 수학 여행이 있는 것이 연결되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수학 여행 갔다 와서 첫 수업 때에는 '수학 여행이 우리 청춘에 가진 의미는?'하고 질문할 예정이니 수학 여행 때 생각해 오라고 하였다.
<15반>
- 책을 읽고 인상적인 부분을 기록한 것이나 질문 만든 것을 나누었다. '정신 질환이 있는 사람은 어쩌면 열심히 살았다는 증표일 수도 있다'는 부분을 민지가 인상적으로 꼽아 주었다. 이런 관점은 처음 접해본다. 그럴 수 있겠구나.
서진이는 책에서 인물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 문장을 읽어주었다. 나는 원래 읽을 때 줄거리 중심으로 빠르게 읽는 편이었는데 이렇게 성격을 유추해 보는 등 음미하며 읽는 독서 방법이 최근에는 더 의미있다고 생각된다.
혜리는 책 '요즘 사는 맛'에서 맛을 묘사한 부분을 읽고 각 계절에 느낄 수 있는 맛을 소중히 여기는 것(예를 들면 딸기를 맛볼 수 있는 겨울을 기다리는 것)을 이야기해주었다. 행복이 이렇게 가까이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라는 그의 말이 많은 학생들에게 가 닿았으면 좋겠다. 행복은 강도보다 빈도가 중요하다고 한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자주 찾고 느끼기를 바란다.
하민이는 대학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학생들에게 대학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구절을 읽어주었다. 그의 말을 들으며 현재 학생들이 학교 오는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단지 대학을 가기 위해 시험 점수를 잘 받는 것이 학교를 오는 목표라면 그것은 학문의 본질이나 순수함과는 거리가 멀다. 무언가 배워서 삶이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지? 세상을 보다 뚜렷하게 이해하는 데 배운 것이 기여하는지?그것이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질문이다.
<11반>
- 북한말에 관심 가져보기를 이야기하는 동영상을 보았다. 동영상과 이번 단원 학습 목표를 연결지어 이야기해보라고 했는데 11반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인상적이었다. 이럴 때면 참 즐겁다. :)
<12반>
- 학습활동, 학습지 확인을 마쳤다. 다른 선생님께서 공유해 주신 북한말 퀴즈 동영상, 박씨전 해설 영상을 보았다. 북한은 참 다양한 외래어를 고유어로 신박하게 바꾸었다.
박씨전은 다른 분이 해설하는 것을 보니 교과서만 볼 때와는 또 느낌이 다르다. 백성들이 당한 고통 부분이 좀 더 와닿았다. 청에 끌려갔다 돌아온 여자를 비하한 단어를 듣자니 여성의 권리가 어떠했는지 실감이 났다.
- 칭찬도장 부여 시간에 기분이 너무 좋다. 이 수업 시간을 열심히 살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것을 인정하여 증표로 남겨 놓는 시간이므로. 대견하고 기특해.
- 초록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빛,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며 빛나는 이파리들을 보자니 기분이 햇빛처럼 찬란하고 초록색처럼 상큼해진다.
오늘도 수고 많았어. 너희 덕분에 행복했어. 내일 또 만나. :)♡